동피랑 한국희곡명작선 84
강수성 지음 / 평민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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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훌쩍 떠나 통영 동피랑에 닿으면 작품 속 용태가 내려 준 커피를 마시며 용태가 그린 벽화를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가슴 따뜻한 이야기에 마치 전설처럼 전해지는 동피랑이 막 그리워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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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탸는 그렇게 믿는다. 나쁜 짓을 하면 그에 따르는 대가를 언젠가는 받게 된다고...

어릴 적 읽었던 동화들은 항상 권선징악으로 확정되는 교훈을 강요했다. 못된 짓을 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런 이치라고 가르치지만 나는 강요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게 믿었던 세상의 이치가 오늘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런 이치가 한낱 말장난처럼 느껴지기에... 나쁜 짓을 하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나쁜 짓을 할 줄 모르면 오히려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무슨 진리인 것처럼 착하게 살면 되레 고통스런 삶이 마치 선물처럼 따라붙는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한 세상인가. 그럼에도 착하게 살라고 세상은, 가엾은 사람들은 강요한다.

그래서... 삶이 참 슬프고, 우울하다.

그럼에도... 한탸의 믿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직은... 모르겠다.

악행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는 법이니까.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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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고가 오로지 인간의 기억 속에만 각인되어 있던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근사했을 것이다. 그 시절엔 책을 압축하는 대신 인간의 머리를 짜내야 했겠지. 하지만 그래 봐야 부질없는 건, 진정한 생각들은 바깥에서 오기 때문이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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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조용히) 오빠.
용태 (돌아본다)
주희 방해 됐지?
용태 (일어나며) 괜찮다••• 오늘도 할머니 설득하러 왔구나?
주희 오빠 설득하러 왔다.
용태 나를? 주희가 날 설득할 일이 다 있나?
주희 오빠도 나랑 같이 서울 가.
용태 너랑 같이? (피식 웃을 뿐)•••.
주희 나는 아빠가 아무리 반대해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릉 할 거야. 오빠도 미대를 가. 혼자서 이러지 말고 대학 진학을 해서 정식으로 미술 공부를 해. 그래야 빨리 성공할 수 있잖아.
용태 성공? 난 그림 그림서 성공이란 거 생각 안 해. 내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주희 빠른 길을 택해야지!
용태 느리게 가도 좋다. 성공이란 게 뭔데? 난 어릴 때부터 꿈꿔온 화가의 길을 향해 쉼 없이 걸어갈 뿐이다. 내가 하는 일이 내 마음에 들 때, 그때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주희 (용태를 빤히 본다)
용태 비싼 학비 들여감서 미술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벌써 접었어. 전혁림 선생님도 그렇게 했어. 나도 그렇게 할 거야. 그런 길을 가고 싶어.
주희 그분은 유명해지기 전까지 고생, 고생, 고생도 엄청 했는데?
용태 글쎄다••• 어떤 게 고생인지 난 아직 몰라. 단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고 싶은 것뿐이니까.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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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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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10쪽)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167쪽)


<자기만의 방>은 위 두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다랄까. 그렇다고 이것이 170여 폐이지에 걸쳐 버지니아 울프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부가 될 수는 없을 지라도, 자신의 이야기는 독립적 존재로서, 자유적 주체로서 온전한 자신이 되는 픽션이 되어야 한다는 귀결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찌보면 <자기만의 방>이 던지는 주제를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재정적 안정과 독립된 공간, 즉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자물쇠 달린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외침보다는 그를 행하는 또는 행해야 할 여성이 우선 도달해야 할 목적지에 대한 깨우침을 우선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독립적 존재 또는 자유적 주체에 대한 개념의 실체적 의미를 현실적으로 자각하는 일, 특히 남성중심사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조장된 허구들을 제대로 파악하여 남성들에 의해 구성화된 여성 존재의 실체를 재구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존재성은 당신이 정한 것인가, 사회가 정한 것인가. 여성은 존재인가, 구성요소 내지는 사회존속을 위한 역할인가.

여성은 살아 존재하는가, 역할로 구성하는가.

......

<자기만의 방>은 이번에 번역본을 달리하여 두 번째 접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펭귄 클랙식 본이었고 이번은 민음사 본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는 내내 버지니아 울프의 위대함보다는 시종일관 의식은 곁길로 빠져나가 나혜석을 떠올리며 주목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동시대를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와 나혜석.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에서 1941년까지, 나혜석은 1896년에서 1948년까지. 거의 동시대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혜석을 버지니아 울프만큼 기억하지는 않는다.

마치 나혜석의 마지막 모습처럼... 나혜석의 마지막 신분은 행려병자였고, 아무도 모르게 길에서 홀로 외롭게 죽어갔다.

......

정말 바빴다. 바빠서 더 게으름을 피웠나 보다. 3주 전부터 읽은 책들만 쌓여가고, 정리를 못했다. 오랜만에 여유랄까... 바쁠 때는 여유롭고 싶고 여유로워지면 뱌쁘고 싶고... 이 지랄같은 인간 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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