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질서는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니만큼, 아마 신으로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신이 그렇게 침묵하고만 있는 하늘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 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 P172

"뭣 때문에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서지요?"
"나도 모르죠. 아마 나의 윤리관 때문인가 봐요."
"어떤 윤리관이지요?"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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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당신 생각을 말해 주시오. 당신은 이것이 페스트라고 확신합니까?"
"질문을 잘못하셨습니다. 이건 어휘 문제가 아니고 시간 문제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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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오?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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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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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한겨레출판

✏️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이해하지 못한,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인생을 두고 잔인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전에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야, 한심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의 끝에 다다를 즈음, 작가가 소설을 정리하듯 던지는 말에 멱살을 잡힌 듯 합니다.

📖
그리고 지금 여기, 당신,

지금까지 원도의 기억을 쫓아온 당신도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인물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은가? (239쪽)

독자로써 속마음을 들키는 순간이었고, ‘그래, 당연하지!‘를 속으로 외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 역시 아니다.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
이것이다. (240쪽)

늘 그런 듯합니다. 머리가 먼저 나서고 마음은 머리 때문에 분노하게 됩니다. 혹자는 이를 좋게 포장해 냉철한 이성이라고 합니다. 포장을 벗겨내면 그저 치기어린 비난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설 속 원도는 횡령범에 사기꾼이자 뺑소니 살인범에 지나지 않습니다. 작가가 말한대로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원도의 삶, 그의 서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안쓰러운 마음도 듭니다. 그런 혼돈 속에서 원도가 죽음을 선택하려는 모습이 다시 혼돈을 자아냅니다.

원도라는 인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으냐를 두고 원도에게 향하는 독자로서의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정죄할 것인지, 살아야 된다고 구원의 손길을 뻗을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뭐라고 한 사람의 삶을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나‘입니다. 그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 그것은 고스란히 그의 몫일 뿐입니다. 내가 그의 선택을 결정지을 권리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지금 너의 삶은 어떠하냐?˝ 입니다.

...

🔖
이 소설은 2013년에 발표된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가 초판입니다. 2018년에 작가의 요청으로 절판되었다가 2024년에 <원도>라는 제목으로 다시 선보인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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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이 은혜에게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이 사소한 불편이 너를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할 때마다 은혜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너의 정상성은 괜찮은 것이고, 그것이 너를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은혜도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보경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가끔은 자신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확인시키는 차갑고 날카로운 창살 같다는 것을. 휠체어 덕분에 걷지 못하던 이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 인도, 계단,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기술의 발달 과정에서 은혜는 철저하게 삭제되었다. 사람들은 지하로 가라앉은 은혜를 모르는 척 외면하더니 어느 순간 휠체어에 앉혀놓고 측은하고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이 기술이 너를 구원했다는 듯이 굴었다. 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면 애초에 생겨나지도,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였다.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pp.220-221)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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