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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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로 만나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 현재까지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총 열여덟 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해에 드디어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자신의 명성을 세계 최고의 반열로 끌어올린 아니 에르노.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라는 확고한 자기 원칙 아래 거짓과 허구를 허락치 않는 아니 에르노의 철저한 글쓰기는 이미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며 탄탄한 팬덤형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팬덤에 나란 존재도 꼽사리로 살짝 찔러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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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글을 접한다는 것은, 초독자에게는 단순히 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는 면에서 면치 못할 생경함과 당혹감을 선사하게 될 테지만, 그 과정을 넘기면서 점점 ‘과연‘이란 감탄을 입에 달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작가의 경지를 넘어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아니 에르노를 향한 세계적 극찬을 심히 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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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쪽 (‘옮긴이의 말‘ 中에서)
<단순한 열정> 은 한 여인의 범상치 않은 사랑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흘러 그와 헤어진 후, 그 사랑이 남겨둔 기억들을 반추한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고백이 보여주듯, 그 사랑은 폭풍과도 같은 열정적인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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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은 옮긴이의 요약처럼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다. 겉으로 드러난 주된 이야기는 그렇다. 그 주된 이야기에만 집착하다보면 사랑을 향한 지독한 욕망에 몸서리치지 않을까 싶다.

<단순한 열정>은 올해 2월에 영화로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에서는 ‘한 여자의 거부할 수 없는 육체적 욕망과 탐닉에 대한 이야기를 관능미 넘치면서 밀도 높게 담아냈다‘(2022년 12월 16일자 ‘노컷뉴스(최영주 기자)‘에서 발췌)고 한다.

작품의 주된 이야기나 영화에서 드러내는 이야기는 다만 <단순한 열정>의 표면적 이야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단순한 열정> 그 속에는 작가의 처절한 글쓰기적 몸부림이 내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읽는다면 누군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랑에 대한 로망을 그릴 테지만, 한 걸음만 더 깊이 발을 담그게 되면 누군가는 글쓰기에 대한 깊은 고뇌의 실체를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

📖 60쪽
제금 나는 내가 아니면 도저히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삭제와 교정으로 뒤덮인 원고를 앞에 놓고 있다. 나는 이것이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않는, 철저히 개인적이고 유치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고백이나 수업 시간에 비밀노트 한쪽에 갈겨쓴 외설스러운 낙서처럼. 혹은 아무도 보지 않으리라 확신하면서 조용히 아무 탈 없이 써내려간 일기처럼. 그러나 이 원고를 타자로 치기 시작하고, 마침내 원고가 출판물의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나게 되면 내 순진한 생각도 끝장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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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통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얼마나 솔직한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질하게 된다.

굳이 <단순한 열정> 뿐만은 아니겠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모두가 한결같이 그러한 질문을 연쇄작용처럼 나의 의식으로 밀어 넣는다. 이런 경험은 가끔 공포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한 질문은 이미 위에서도 피력한 바대로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가 거짓과 허구를 배제하고 있는 만큼 지극히 솔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솔직하다는 것은 숨김이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는 하겠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솔직하다는 것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는 일은 만만찮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직설적인 것이 솔직한 것이다? 하나 비밀 없이 다 드러내야 솔직한 것이다? 일체의 꾸밈이 없는 것이 솔직한 것이다? 하고픈 말을 다 뱉어내면 솔직한 것이다? 감정의 지꺼기조차 남김없이 쏟아내는 것이 솔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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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Danny K-픽션 7
윤이형 지음, 전승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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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면서 윤이형 작가가 떠올랐다. 그리고 <대니>도 함께 머릿속을 맴돌았다. <천 개의 파랑>이나 <대니>는 인간과 안드로이드 로봇의 관계적 이야기라는 면에서 같은 SF적 소설 형태를 띄고 있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지극히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면에서 상당히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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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는 복직을 해야 하는 딸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 탓에 6개월 된 손자의 육아를 맡게 된 72살의 할머니와 24살의 돌보미형 로봇인 안드로이드 베이비시터 ‘대니‘가 우연한 만남으로 해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이 둘의 첫 만남에서 대니가 할머니에게 건넨 말이 참 인상적이다.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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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작가의 작품마다에는 ‘위로‘라는 코드가 한결같이 내재되어있어 언제나 읽어도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윤이형 작가의 작품을 펼치게 되는 이유는 그것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알아 간다.

윤이형 작가의 작품들은 내게 있어 위로를 선물하는 독서적 수단이라기 보다는 윤이형이라는 작가에 대한 그리움을 나름 해소하는 감정소비의 목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독서를 통한 새로운 인생항로를 열어준 작가이자, 그럼으로써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어준 작가 윤이형.

분명 자신의 굳은 신념이었고, 작가적 양심에 거짓없는 순수한 선택이었다지만... 나는 아직도 그의 절필 선언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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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굶주려보지 않은 자는 자신의 식욕 억제에 대해 멋지게 논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번도 괴로워하지 않은 자는 원칙의 힘에 대해 아름답게 장광설을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가난은 큰 슬픔처럼 결코 듣지 못하는 불치의 난청을 갖고 있다. 연설은 날카로움을 잃는다. 그리고 ‘죽느냐 사느냐‘만이 유일한 문제가 된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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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혈전 한국희곡명작선 80
김나영 지음 / 평민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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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쪽 (해설부분)
무대
이 희곡은 야외극을 위해 썼다. 한 번 등장한 인물은 극이 끝날 때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는 무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므로 어떤 부분은 강조되고 어떤 부분은 흘러갈 것이다. 어떤 부분은 관객 코앞에서 행해지고 어떤 부분은 먼 풍경처럼 펼쳐질 것이다.
이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형제들의 외적 변화다. 점잔을 빼며 등장했던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지저분하고 추하고 우스꽝스러운 몰골로 변해간다. 옷은 찢어져 너덜거리고 밀가루와 흙투성이가 된 채 마침내 ‘피투성이 짐승‘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타락은 매우 ‘시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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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극을 위해 썼다‘는 작가의 극작 의도가 눈길을 끈다. 일반적으로 극장 무대에서의 공연을 전제로 하는 희곡에 반해 아예 대놓고 야외극을 하라고 종용하는 희곡은 처음 만난다.

그렇지만, 야외극이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실내 극장이 구비하고 있는 시스템을 야외로 옮겨놓아야 하는 기술적인 문제부터 만만치 않다. 전면 개방된 야외에서 배우들의 대사 전달면에서나 작품의 내용 집중도에서도 제약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런 저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이 그야말로 야외극에 경력과 능력이 있는 연출을 잘 만나야 할 뿐이지 않을까.

어쨌든 이 작품이 야외극으로 올려진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보고 싶기는 한데, 아직까지 야외극으로 올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2021년에 모 극단이 대한민국연극제 서울지역 경연작으로 공연을 하 바가 있긴 하지만, 야외극이 아닌 실내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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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의 내용은 풍자적이랄 수도 있겠지만, 인물들의 대사들이 비트는 맛보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다소 과하지 않나 싶다.

내용은 80대 중반의 실향민이자 황스한방병원 이사장인 아버지가 소풍이라는 명목으로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그리고는 유산 상속을 하겠다며 자식들에게 다양한 게임을 제안하는데, 자식들은 눈 앞에 걸린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제목에서처럼 혈전을 벌인다.

재물 앞에서는 가족도 없는 인간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탐욕에 물든 인간들(병원장, 교회 목사, 입시학원 원장 등 겉으로 보기에는 점잖고 사회적 덕망도 있어 보이긴 하지만)이 어떻게 유치찬란하게 변모해가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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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더많은 유산을 상속받겠다고 형제끼리 염치도 저버린 채 피터지게 싸운다는 뻔한 도식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소동같은 장면이 야외에서, 그것도 흙먼지 날리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당장에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재미가 남다를 것 같다. 남들 싸움구경만큼 재미난 것도 없지 않은가. 시쳇말로 구경은 불구경과 싸움구경이고, 옛말에는 불구경보다 재미나는 것이 싸움구경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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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김나영 작가의 작품은 이번에 두 번째로 만난다. 처음 만난 작품은 <#밥>이었는데,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수작으로 뽑는 작품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김나영 작가의 작품을 만나면서 다시금 <밥>을 펼쳐보게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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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쓰레기는 나의 문제이며, 도시의 문제이며, 세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식량 문제이며, 기후변화 문제이며 지구의 문제입니다. 나의 문제는 곧 인류의 문제입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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