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오르듯 살면 좋았을걸. 낮은 오름 하나 오르듯, 그리 살면 되는 것을.세상 모든 일이 다 한라산이고 백두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위축돼서 살았다.오르지 못할 산, 넘지 못할 산일 거라고 짐작하며 회피로 일관했다. 오름의기쁨은 높이에 비례하지 않았다. 조금만 올라가도 충분했고 넉넉했다. 거대봉우리를 넘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얕은 둔덕 하나하나를 오르고 넘다 보면 튼튼한 다리도 생기고 멀리 보는 눈도 생기고 기세도 생긴다. 오름 오르듯, 한 오름 한 오름, 잘 쳐내며 살았어야 했다. 살아야 한다. 오르지 못하고스쳐 지나온 오름이 많다. 해낼 수 있는데 못해낼 거라 지나친 과업들이 많다. 이제는, 다시 오름. 다 오름. 삶에 좀 더 오름. 때로는 악착같이 때로는 한량하게, 오름 또 오름. - P120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겠지."당연한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인간은 아무것도 잃지않고 뭔가를 얻으려고 한다. 그 정도면 그나마 낫다. 지금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뭐든 손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들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로채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누군가가 얻고 있는 그 순간에 누군가는 잃는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 위에 성립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게 그런 세상의 규칙을 자주 들려주곤 했다. - P51
다음 주, 우리는 헤어졌다. 전화 통화 오분 만에 헤어졌다. 흡사 관공서의 행정 절차 같은 사무적인 대화만으로 우리는 끝났다. 그녀와 나는 천 시간이 넘게 전화로 얘기를나눠왔다. 천 시간의 통화로 쌓아온 관계를 우리는 고작 오분간의 통화로 끝내버렸다.우리는 전화가 생김으로써 곧바로 연결되는 편리함을 손에 넣었지만, 그에 반해 상대를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시간은 잃어갔다. 전화가 우리에게 추억을 쌓아갈 시간을 앗아가고 증발시켜 버린 것이다.나에게 매달 날아오는 휴대전화 청구서, 통화시간 스무시간, 청구 요금은 일만이천 엔 우리는 그 가치에 상응하는 대화를 나눴을까. 우리가 나누는 한마디의 가격은 과연 얼마일까. - P82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면 손을 내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그런 아버지 덕분에 아카마쓰 집안의 교육 방침은 공부는 둘째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며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라고 배웠다. "아버지가 영원히 사는 게 아니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친구다. 그러니 친구를 많이 사귀도록 해라. 그리고 소중하게 여겨라"가 아버지가 버릇처럼 하던 말씀이었다. 그렇게 쌓아온 네트워크로 아카마쓰운송이라는 회사를 운영했다.상대를 믿고 최선을 다한다. 대신 믿음을 배신한 상대는 용서하지 않는다. - P189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치며 키워와 전통으로 자리 잡은, 역겨운부분만 호프자동차에 남아 자본주의 안에 자리 잡은 공산주의라고나 할까, 무슨 짓을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다는 무사안일주의, 자본의 온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이자키가 하려는 일은 그 온실의 천장을 날려버려 세상에 휘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을 끌어들이려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때 가노나 미우라처럼 온실에서 재배된 인간들은 과연 어떤반응을 보일까. - P170
"언젠가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가 올 겁니다. 그때까지 이를 악물고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볼 수밖에 안 그래요, 사장님?"맞는 말이다. 미야시로의 차분한 목소리가 아카마쓰의 가슴에스며들었다. - P191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리석었다.예전에 대기업에 다닐 때 제일 화가 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인사 조처였는데.쓸모없는 놈들이 출세하고 진짜 실력 있는 사람들은 무시당하는 세상. 도대체 상사나 인사부 녀석들은 무얼 보는 걸까. 마음속에 품었던 분노는 늘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런데 이 꼴이 뭔가 이제 나도 멍청한 인사부와 다를 바 없다.아니, 아니. 과연 그런 일이 있는 걸까? 핸들을 쥐면서 아카마쓰는 생각했다. 도도로키 주택가에서 간조8호선‘으로 빠져 하네다방면으로 나가는 트럭들 사이로 차를 몰았다.업무 내용으로 승패를 겨루라. 아카마쓰가 종종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때 가도타가 주의를 받은 ‘모양새‘를 고치려고 하지 않은 것은 아카마쓰가 말한 대로 업무 내용으로 승부를 겨루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일을 제대로 해냈을 때 아카마쓰가 진짜로 그걸 인정해줄지 어떨지, 그걸 알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말만 앞서는 관리직인지 아닌지, 가도타는 그걸 확인하고 싶었던게 아닐까?그렇다면 나는 낙제다. - P34
건축을 전공한 음식칼럼 니스트 라는 특이한 경력답게 음식에 관한 그의 에세이는 건물에 기초가 중요하듯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기본 재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희귀하거나 비싸거나 쓰임새가 한정된 것들보다 동네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식탁에 흔히 오르는 식대로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 페이지 10 향신료와 필수요소, 채소 , 육류와해산물,과일,달걀 유제품류 ,곡물 6가지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나머지 7번째에는 알아두면 좋을 식재료 이야기라는 장으로 이뤄져 있다. 요리를 별로 많이 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 하면 책장을 펼쳤는데 , 잘 못하는 요리라서 그가 말하는 이야기가 자꾸 흥미가 가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첫번째 향신료 부분에 나온 카레의 팁은 바로 써먹어도 좋다. 저자는 명절에 불필요한 음식 대신에 카레를 한가득 끓여 영화나 보며 지낸다고 한다. 자취생활 시작하면 제일 쉽고 간단한 음식이 카레였다 .맨처음은 오뚜기 3분 카레로 시작하지만 곧 그 특유의 인스턴트 맛때문에 집에서 가끔 해먹게 된다. 카레는 적은 양이 아닌 많은 양으로 끓여야 맛이 나는데 혼자 해놓고 몇날 몇일을 먹자니 질리게 되는데 , 저자는 남은 카레로 우동면을 사서 수란과 함께 먹는 법을 제시해준다. “일단 막 끓이자마자 한 끼, 다음 날 한 끼를 밥에 얹어 먹고 남은 건 우동 면을 버무려 먹는다. 우동 면은 건면보다 이미 익힌 즉석 제품이 제격이다. 남은 카레에 물을 조금 더해 약불에서 끓이다가 면을 넣는다. 포장 속에서 뭉쳐 있던 면이 풀어지면 달걀 한대를 깨어 카레에 넣고 그대로 뚜껑을 덮어 수란처럼 익힌다. 마무리로 파나 쪽파를 송송 썰어서 뿌려 먹는다. 페이지 20 이런 소소한 팁 뿐만 아니라 소금을 사는 방법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채소 부분의 토마토의 후숙과정이 당연한 귀결로 여겨지는 채소의 슬픔을 이야기하며 “ 토마토는 맛에 대한 기대 없이 건강을 위한다 생각하고 먹고 산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토마토 통조림을 택하는 방법과 요리에 응용하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몇가지 이야기만으로 저자가 얼마나 요리에 재료에 진심인지를 알 것 같다. 단순히 이 채소는 이러해 하는 식이 아닌 자신의 경험담 + 재료의 특성 +요리방법 =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져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특히 재료들에 담긴 그의 이야기와 나의 추억이 만나는 지점을 맛보는 즐거움도 있다. 요리를 배우기 위한 요리책이 아닌 재료의 본맛에 대해 그리고 이런 재료들에 담긴 어릴적 추억을 불러들이면서 “ 아 나도 이제 요리란 것을 해볼까” 하는 오래된 자취생 ,작가의 말처럼 “ 파는 음식을 먹다 먹다 지겨워 생존의 차원에서 작가조차도 고려해 보는 이들에게 “ 라는 말이 딱인 책이다. 그러다 보면 요리하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