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 23년간 법의 최전선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온 판사 출신 변호사의 기록
정재민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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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올리는 주관적 서평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란 

저자 스스로의 질문에 본인이 이미 답은 내놓은 책이다.

의심을 하며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일지라도

더 많은 좋은 만남과 기회들을 버리지 않기 위해선 

불신보다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살겠다는 다짐이

책을 끝맺는 키워드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은

믿음 여부를 고뇌하게 만드는 저자가 겪은 불신의 경험들이겠다.


선한 뜻으로 준 믿음이 불신이나 배신으로 돌아온 경험이나

그렇게 생긴 불신이 오히려 믿어야 할 상황을 못 믿게 만드는 경험,

재판이란 시스템을 돌아가게 하는 협조관계의

여러 기관이나 사람들 사이 벌어지는 피치못할 불신조장,

전직 판사이자 현직 변호사인 저자의 이런 경험담들은 

인간믿음을 결론으로 끝낸 책임에도

그 반대편에 서있는 다양한 불신의 경험들을

대리경험해 볼 수 있는 내용들로 

이 책을 누구나 읽을만하게 만들기 때문.


거기에 덧붙여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의 글솜씨도 있다.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들도 몇번 언급되는 등

딱딱한게 정상일거 같은 법조인의 글 치고는

너무 부드럽게 읽히는 문맥과 이야기끼리의 흐름은

그가 스스로 말하듯 글과 멀리 떨어져 살아오지 않은

자신의 궤적과 맞닿아 있어서라고 느껴진다.


거기에 이런 류의 에세이집들은

한 이야기에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

각각 독립적인 스토리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선 소제목들은 달리 했지만

이어지는 내용들이 꽤 되기에

소설처럼 흐름을 가지고 읽어나가는 맛에

나도 모르게 편안하고 꽤 즐거웠다.

소소하지만 의도되지 않은 듯한 연결된 글들이

독자로써는 마치 전문가적인 글배치처럼도 느꼈고.


본문 얘기를 하자면 참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후반부로 갈수록 법조인 특유의 시선으로

변호사와 경찰, 판사, 검사들의 역할을 볼 수 있고

그 안엔 어떤 맹점들이 있는지도 둘러볼 수 있게 해놔서

실제 재판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겐

실무적인 코멘트로 작용할 이야기들이 무척 많다.


그럼에도 전반부와 중반부까지가 글로써는 매력적인 건

판사 경험이 있는 변호사로써 소송의뢰인들과

좋지 못한 인연이 됐건 아니건 경험들을 다수 들려줌으로써

찰리 채플린의 격언처럼 '가까이서 볼 땐 비극이지만

멀리서 볼 때 희극이다'란 의미를 그의 글에서 느껴보게 만들기 때문.


사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실제 사람을 믿는 건지는 미지수 같다.


본인의 정신분석을 받으면서까지 심리분석에 열의를 가졌고

스스로 분석가가 되기 위한 코스에 참여도 했었다는 점에선

본인과 타인에 대한 분석꺼리가 분명 존재한다고도 보이는데,

그 근본적인 어떤 결핍이 과연 인간에 대한 믿음을

실제는 부정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믿으며 

믿으며 살고 싶어하는 마음 한구석이

이상적으로 더 투영된 결론은 아닌가 싶기도 해서.


저자가 묘사한 고급 사기꾼들의 모습은

일반적인 사기꾼들의 외형과는 많이 다르던데

재미삼아 짧게 소개해 본다.


화려한 언변으로 홀릴 듯한 고수들이지만

오히려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게 우선이고

두리뭉실한 약속 보다는 명확한 약속을 던진단다.

신뢰를 쌓고 사기를 친다는 논리는

진짜가짜를 불문하고 그걸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느냐가 

사기꾼의 등급을 이해하는데도 중요할 수 있단 걸, 

업무상 피치못하게 사기도 경험해 본 

변호사의 설명 속에서 새롭게 배워봤던 한수였다.


잘 쓴 글에 경험이 담긴 내용이라 

특히나 재밌게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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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양자역학 -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알아야 할
프랑크 베르스트라테.셀린 브뢰카에르트 지음, 최진영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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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올리는 주관적 서평입니다]


양자역학을 다룬 책 읽기를 많이 미뤄오다 선택한 책이다.

나름 쉬워보였고 발전사적 연대기를 다룬 책이라는 생각에서.

목차를 보니 양자역학이란게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그 맥락을 어떤 책보다도 이해하기 좋게 구성된 책 느낌이라.

하지만 읽기전 그런 내 꿈이 너무 야무졌음은 곧 느끼게 됐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에도 그런 느낌은 거의 동일했는데

이유라면 결국 양자역학이란 어느 한 이론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인문학 영역이 결합된 과학같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책 내용 내내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과학자들이다.

그러나 그 모든 물리학자들의 이론들과 업적들도

양자역학의 정확한 성격을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것이 곧 이 책의 성격을 표방했다.


그렇기에 책이 설명하는 양자이론에 대한 개념을

가장 일반적인 언어로 설명했다고 이해되던 장을 일부 발췌해

이해한 부분을 풀어보려 하는데,

그건 양자색깔로 양자역할 한부분을 설명한 챕터.


항상 인간을 둘러싸고 있으며 말로 표현되는 색깔이란 인식.

물체의 색깔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해당물체의 다양한 파장의 빛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스펙트럼들 중 가시광선 부분의 파장을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고

이때 고유의 색을 지닌 이 방출로 해당 물체가 가진

전자기파의 진동수나 파장에 의해 색이란게 결정되듯 보이는 것.

물질 가장자리에 있는 전자들이 광자를 흡수하고

더 높은 에너지 준위로 도약하는데,

오직 정확한 에너지를 가진 광자를 흡수할 때만

더 높은 에너지 궤도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고

이런 논리로 어떤 물질에 빛을 비추면 결국 

특정한 에너지를 가진 광자들만 흡수되고

나머지 광자들은 모두 반사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사라지는 진동수들이

색이란 걸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

즉, 흡수되지 않은 광자들이 반사되면서

이 빛이 물질의 색을 결정한다는 건데,

이 과학적인 이야기가 책에서 

왜 양자역학 얘기에 나왔는지 까지가 이야기의 끝이라 

이를 이어가 보려 인용해 보려 한다.


결국, 사람들의 피부톤도 색깔이라 보고

그걸 양자로 인식해보는 컨셉으로 이어진다.

피부색 속 알파카로틴과 베타카로틴이 피부느낌을

창백하게 만들거나 그을린 듯 갈색이 되게하는 과정이 일어난다.

즉, 이런 논리로써 결국 앞서 말한 색깔을 

저마다 띄게 하는 것도 광자가 방출현상이 

인간 피부에도 또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게 가능한 건 인간이 하나의 거대한

양자공장 구조라서 그렇다는 논리.


색깔을 구별하게 되는 논리를 이해하게 시작된 설명에서

양자로 구성된 건 인간의 몸도 해당된단 결론으로 

양자이야기의 이해구조를 넓히는 컨셉.


더 쉽게 이야기해보자.


즉, 양자역학이라는 과학을 이해하고 논한다는 건

결국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물체나 생명체 전반에 모두 존재하는 양자의 역할로

양자들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이해해 봄으로써,

전방위적으로 양자가 만들어내는 많은 일들이

과학적으로 흡사 신의 창조론을 이해하듯 이해해 볼 때 

좀더 벽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이해해 봤다.

어디까지나 쉽게 이해해 보고자 정리해 본 느낌.


제일 처음 등장한 네덜란드의 시몬 스테빈의 자유낙하 실험 또한

모든 양자역학의 시작이라고 저자가 설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관계 없어보이는 여러 과학사 속 다양한 시도가

양자역학이라는 큰 범위를 설명할 수 있게 존재한

거시적 일부분이라는 걸 설명하려던 의도라고도 이해됐고.


철학을 공부해야 철학을 알게 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과학을 공부하면서 그 안에서 깨우친

규칙성들과 법칙들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진짜 철학을 배우고 있는거 같았다고 언급한 내용도,

양자역학이 공식처럼 이해되긴 어렵지만 과학이라 불릴 수 있는 건

이 학문 자체를 바라보는 철학적인 면 때문이란 생각도 해봤다.


양자역학은 무엇이다라고 단정내리기 위해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 스스로의 정의만 남은건가도 싶다.

양자역학이 표방하는 '철학'적 느낌을 이해해 보긴 한거 같고.


양자역학이 결국 현대적 종합학문으로 

결국 세밀한 논리정립에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내 내공과 안목도

좀더 길러져야 할거 같다. 그럼에도 구성자체는 재밌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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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안을 감염시키고 있는가 - 다미주 세계로 연결된 우리는, 서로의 세계가 된다
스티븐 W. 포지스.세스 포지스 지음, 서주희 옮김 / 하나의학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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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도서에 올리는 주관적 서평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트라우마란 말은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나 정신병리학적 틀에서는

트라우마란 용어사용은 거의가 전쟁경험 정도나

큰 재난급 사건 정도에서나 언급되는 용어 느낌이었다.

이 때문인지 과거와 달리 일부 트라우마란 것들은

스몰 트라우마라는 새로운듯한 명칭으로 재등장 시킨 것도 봤다.

일상생활 속 다양한 불안요소들을

트라우마라는 강력한 용어안에서 설명하려 했다는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단 중요하진 않겠고.


이렇게 트라우마란 걸 일상에서 논할 땐,

대부분은 불가능의 영역으로써 이를 언급하기 위해서라기 보단

결국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존재로 언급하고자 하는 면이 

더 커보인다는게 저자의 설명속에 있다.


하지만, 책은 더 나아간다.

트라우마는 사건 자체로 정의되는게 아니라고.

또한 오히려 트라우마로 언급되는 사건에

해당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말하는 거고

그렇게 달라질 수 있는 해당성질 자체를 

더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도.

즉, 사건 자체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닌거라게 주요하다.


트라우마는 단일 사건으로 비롯될 수 있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비롯될 수도 있다는 발상이 

어쩌면 더 중요해 보였는데, 트라우마란

심각하지만 짧은 충격을 주고 끝난 일이 될수도 있겠고

사소해 보이지만 오랜 시간 걸쳐 누적된 것도 될 수 있다는 말.


결국, 트라우마로 명명하고 싶다는 건

신경계가 진짜 일어난 그 당시 이후에도 

여전히 두려움을 멈추지 않으려 하거나

계속 뭔가가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으로,

그로인해 세상을 살아가는걸 마치 전투모두처럼 살아가며

스스로 세상을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정도가 낮아져서

얼마나 기존 삶을 피폐하게 만들수 있는지 여부가

트라우마를 심각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 되겠다.


저자인 스티프 포지스 박사는 

트라우마나 PTSD 관련 대가로 알려진 정신과 의사다.

데어 반 콜크 박사보다 훨씬 와닿는 설명을 한다고 

책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었는데

관련업계에선 이미 저명인사라고 역자는 소개했다.


결국 다미주 이론을 짧게나마 정리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저자가 직접 이야기 하는 다미주 이론의 취지란,

세상을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끼는지를 

신경계와 몸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지로써

설명하는데 활용하는 '새로운 모델'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트라우마와 PTSD가

자연스레 책에 등장하는 주요 키워드이기도 하고.

불안이란 책제목 때문에 선택한 사람들은

좀더 심오한 불안을 마주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겠다.


특이하게 한의학에서 정신과를 다루는 역자가 번역을 했는데

그녀의 소감 안에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게 하려고

실제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노력했다는 걸 읽고

그 의도대로 좋은 느낌이 전달됐기에 고맙게 읽은 책이기도 했다.


그동안 생각보다 트라우마와 복합PTSD 관련 책들을

여러권 읽어봤는데 개인적으론 이 책이

가장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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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으로서의 노자 - 비즈니스 전장에서 승리하는 3,000년의 공략법
하라다 쓰토무 지음, 오시연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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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도서에 관한 주관적 서평입니다]


도덕경 원문을 가지고 다니며 읽었던 건 좋았던 추억이다.

워낙 휴대하기도 편한 얇은 두께에 사유를 제공하는 문장들.

단순히 읽는 그대로라면 결코 따라가듯 읽을 수는 없던 책.


그런 책 내용 중에 특히나 읽고 싶게 만드는

이 책만의 내용이 하나 있었다.

"강자가 약자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내가 힌트없이 해당내용을 상상한 것과 달리

책이 제공한 문장으로써 힌트를 제공해 보겠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최상의 선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물은 도의 작용에 가장 가깝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노자가 언급한 물이란

일종의 여백이란 구조로써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실제,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자발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게

현실화가 될만한 상상일까?


이걸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도 연결했는데

현실속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선 기다림만으론 안되고

어떤 조건이 더해져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약함'이었다.


여백의 효력에 유약함이란 조건이 더해져야 비로서 기세가 생긴다는.


여기서의 약함도 단순 강약이 아닌 유연함을 뜻했다.

인간사에서의 약함은 강약이 아닌 집착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그걸 그 상태를 버틸 수 있는 지속성이 바로 '강함'이라는 것.

결국 겉으로는 약한듯 보이지만

약함을 유지할 수 있는 근성을 강함의 대표자로써 바라본 뜻. 


바위를 뚫는 물방울의 힘처럼,

물이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사람도 대다수가 낮은 곳에 머무르기를 택해야 한다고 말하며

반대로 높은 곳에 머무르고자 선택했을 땐

다툼과 경쟁이 생기는 건 당연한 논리로 이해시키고자 한 부분.

사람도 물과 같이 다툼에 관여말고

'기꺼이' 사람들이 꺼리는 자리로 

향해야 함이 아닌 향할 줄 알아야 함을 강조했다.


뻔한 얘기 같지만 원문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수많은 도덕경 해석서들이 존재하고

그 나름대로 읽을만한 구석이 존재하게 되는 건

결국 원문의 힘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항상 남다른 현대적 해석에

목마른 책이 바로 도덕경이기도 하고.


일본 특유의 깔끔하고 정리된 접근법이 돋보여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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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턱 멍키 - 탐닉의 대가
제임스 해밀턴-패터슨 지음, 박명수 옮김 / 로이트리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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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도서에 써보는 주관적 서평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문명발달은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인간 이외의 모든 생명에게 인간들의 없적이란

결국 백해무익할 뿐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촌철살인 같은 시각과 지식이 들어있는 책이었다.


가장 대중적으로 다가올 애완동물로 풀어낸

환경오염과 인간의 사리사욕은 상상밖으로 거대하다.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번창되어진 애견사업.

독특하게 그나마 개보다는 덜 사유화 된 동물로

고양이를 언급한 저자의 설명 자체도 독특한데

그 이유는 고양이 특유의 개성 탓으로 돌린다.


일단 사람이나 애완견 모두 상당한 생활폐기물을 발생시킨다.

먹고 배출한 막대한 양은 전세계 애완견으로 치면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 수준이란 것도 놀라웠다.

게다가 의료용으로 사람몸이나 개들의 몸에 투여된 약품들도

완전히 생체분해된 후 사라지는게 아니라 배설물로 나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땐 환경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는 설명이 있다.


이런 식으로 소개된 여러 분야들 마다는

다양한 개선노력들 또한 같이 등장하지만,

결국 인간들이 어찌라도 잘 해보려는 노력들이란 

결국 의도만 거창하다 흐지부지 끝날 

미봉책일수 밖에 없는게 대부분이었다.


우습게도 세계적 환경오염을 염려해 모인 

그런 좋은 목적지향적인 모습 속에서도,

막대한 운송수단들이 내놓은 

저마다의 환경오염 물질들을 감안하며 보자면

이는 한편의 코메디와 같다고 묘사해 놓은 저자다.


그럼에도 식용이 아닌 애완용으로 길러지고 

많은 시간을 인간과 공생하는 애완동물들을

이런 가해자적 시각으로 상세히 분석한 게 

달갑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 같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육식용으로 도축되는 애완용이 아닌 고기로써의 생명들을

애완용 동물들과 완전히 다를 수 없는 생명들이란 짧은 언급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던 상식선의 부분이기도 하다.


책제목이 '스턱 멍키'인 이유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다양한 결과들을 

고차원적으로 포장하며 인간의 우월성이고

인류역사를 위해 공유되어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구상의 주요 포식자처럼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지구전체의 입장에서 마땅치 않은 가해자 역할이고

결국 인간들 모두가 사냥꾼이 생포하려 설치해 놓은 

원숭이 덫에 손을 집어넣고 그 먹이를 놓치 못해 

날뛰다 잡히는 원숭이와 같다는 뜻이 담겨있다.

덫에서 꺼내지더라도 결국 이전 덫보다 

좀더 큰 이동용기에 담겨 잡혀가는

어리석은 원숭이가 인간이란 은유적 표현.


자기 꾀에 자기가 희생양이 되는건 자초한 거고

그 이유는 손에 든 걸 놓치기 싫어서라는 설명이 담긴 셈.


환경을 단순히 걱정해서 쓴 책이라고만 보긴 어렵고

인간존재 이유에 대한 커다란 비판과 의문사항들이 담겼다.


전기자전거란 친환경 대체재를 이용한다고 해도

그걸 생산하는 모든 과정은 결국 기존 자전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돌아보는 시각 속에는 

단순 회의론이 아닌 비판타당성이 분명 존재한다.

어떤 식의 친환경 운송수단으로 바뀐다 한들

버려지게 될 기존 운송수단들은 또하나의 상품이 되어

좀더 열악한 지역에 전달될 것이고

그곳에서 원래의 쓰임을 이어갈거란 예측도 담겼다.


적나라한 환경보호적 비판시각을 펼쳤다기 보다는

인간이 불가역적으로 지구 자체에 가하는

다양한 불이익들을 설명해 본 책으로 보는게 맞을 것.

불편하지만 맞는 얘기라는 그 자체를 돌아봐야 할 내용들이었다.


상식으로써의 단순 인문학이 아닌

한명의 인간으로써 따져봐야 할 

책임감을 느끼며 읽어야할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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