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지 못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 친절 강박자 피플 플리저를 위한 마음의 기술
패트릭 킹 지음, 진정성 옮김 / 웨일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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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출판사 제공, 서평은 극히 주관적]


광고카피를 보면 익숙하지 않은 

용어 하나가 보일 것이다, '피플 플레져'. 


해당용어는 알고 있었기에 책을 선택했지만

이 주제로써 전에 읽은 해리엇의 책이 원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금더 신중하게 접근해 보니

미국 등에선 이미 대중적으로 형성된 개념이자

사용된지 오래인 신조어 수준의 심리표현임을 알수 있었다.

그것도 벌써 몇십년 전에 대대적으로 유행을 탔던 이름.


어찌보면 공의존 개념과 상당히 겹치지만

'피플 플레져'를 다루는 이유는

부당한 관계를 추구하는 부류가 존재함을 알리는 것 포함, 

희생을 당연시 하는 피플 플레져 부류들의 

회복을 돕기위해 일종의 자습서처럼  

사용해 보라는 의도에서 구성된 책 같다.


먼저, 피플 플레져라 불리는 사람들의 성향부터 적어본다.


과도한 책임감,

갈등 회피,

착한 사람 컴플렉스,

자기 희생,

칭찬을 받음으로해서 자신의 가치 증명,

인정 욕구 강함,

자기보다 타인 우선.


단지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는 형용사들을 빼보면

모두가 하나같이 사회와 가정을 

긍정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매우 좋은 요소들이다.

책임감, 희생, 칭찬, 인정 등.

하지만 거기엔 이 뜻을 왜곡시키는 형용사들이 붙어있다.

과도한, 자기, 증명목적, 욕구로써의 등.


서로 다른듯해도 이 여러가지 특성들이 

난 마치 하나같이 보인다.  


"나는 어찌되도 괜찮아, 당신만 좋다면..."


피플 플레져는 자신과 같은 남을 보면

그냥 자신과 똑같을 삶이라고 지나칠까?


아닐것이다.

왜냐면, 책임감이나 자기 희생은 

자신을 못보더라도 타인의 고통은 매우 섬세하게 캐치해 냄으로써

그걸 메꿔주고 싶어하는게 바로 피플 플레져의 본성이라 볼 수 있으므로.


누군가가 피플 플레져로 보인다면

그걸 느낀 다른 피플 플레져는 분명 도우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지 말라고,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할 수 있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자신의 삶은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이상한가?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책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피플 플레져의 사고방식을 바꿔주려 노력한다.


모두에게 사랑받고자 하지 마라,

자신이 수용받고 싶어 타인을 수용하지 않아도 된다,

죄책감 같은 자동적 사고가 자신 내부에 작동됨을 인지하라,

도움이 되지 못해 불안해진다면 그걸 마주하라 등

필요한 조언들의 나열


일단 이론적인 피플 프레져의 특성접근부터 시작한 후,

거절 연습이라던가 경계를 설정해 봄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게 우선시되야 함을

실생활에서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내용이다.


중국에서 나온 책도 이 주제로 다룬 책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접하긴 쉽지 않은 주제다.

주위에서 만일 피플 플레져로 사는 사람이 있을 때

그를 돕는 사람이 많을지 그의 특성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을지

그것부터 한번 대신 생각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본다.

그 자신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부터 쉽지 않으니.

자동적 사고와 행동으로 인한 폐해 중

가장 인간적인 원인에서 출발하지만 

가장 비인간적인 결과를 낳는게 

바로 피플 플레져라고 본다.


주위에 있다면 그 선함이 좋게 쓰이도록 도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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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충분히 강한 사람입니다 -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600억 자산가 이야기
박지형(크리스)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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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된 책, 서평은 극히 주관적으로 씀]


‘에세이 추천’


읽기전 첫장에 실린 사진하나로 이미

이 책에 담긴 저자의 비상식적인 기적같은 회복원동력은

무엇이었을지가 명확해지며 뭔가 알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딸의 사진 한장.


이 책을 읽기전 유튜브에서 저자를 본 적이 있다.

왜 검색됐는진 모르지만.


특유의 시니컬한 분위기가 참 인상적이던 사람.

그러나 그 속에서 느껴지는 그만의 개성은

사업을 이뤄낸 사람들에게서 보통 많이 보이던

사업마인드가 장착된 사람들만의 

특유한 아우라 같은 것이라 기억한다.


책을 읽어보니 

돈의 가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벨류에이션의 관점에서 돈을 바라보는 

사업가들만이 풍기는 묘하면서 특이한 

그런 시크함이 첫만남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그는 아팠다, 정말 심하게 많이.

누구는 이런 사연을 들으면 요즘은 일단

진짜 그랬었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본다.

그런 쪽의 수기는 아니라고 보고

이 책을 읽어줬으면 싶은게,

먼저 그를 접해본 독자로써의 견해.


사소하지만 덕분에 

의료지식에 관한 달라진 시각도 생겼다.


항암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간혹

피주머니나 각종 그들이 겪은 치료를 논하며

정식 명칭같지 않은 몇몇 용어로 

본인의 경험들을 들려줄 때 보던 그런게

이 책에도 소소히 등장해 있었데,

저자의 경험담을 통해 그런 상황의

몇몇 묘사들을 듣다보니,

어떤 상태에서 어떤 약물치료를 받게 됐을 때

이런 묘사들이나 약물치료 또는 

보조치료 등을 언급한건지 이해가 되면서,

비정형화된 묘사방식이라고 느껴졌던 것들이 실은

이런저런 이유로 쓰인 실제 사실에 근거한

용어들임을 알게되니 그것부터가 

사실감 있는 정보이자 묘사가 됐고

그런 바탕위에 책을 더 공감하며 읽어나갈 수 있었다.


재미라고 할 순 없는 주제들.


하지만 감히 말해 보건데

사지에서 돌아온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덤덤한 경험담은 그 자체로 

묘한 재미적 요소를 준다.


그건 우리가 흔히 겪고 말하는 

엔터테인먼트 적인 재미로써가 아니라

삶의 의지와 극복과정이 주는 감동의 재미 말이다.


마치 이순신 장군의 어록같은 태도로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한 인물.


죽고자 하니 살았다는 건 아니더라도

죽음을 초연하게 대한 냥 

그냥 기존 살아가던 방식의 삶을 살아내다 보니

다시 삶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보여지는게 

많은 인생사라 보이고.


첫 발병의 시작을 알렸던 사건에선

부인은 울며불며 당장 귀국하라고 했었다.

그는 외국에서 자신의 건강이상을 경험했고

흔히 졸도라고 말하는 블랙아웃을 겪는다.

그러나 거기서는 단순 해프닝 정도로 취급 받았으나

이미 자기 몸은 일정수준 이상 심상치 않음을 

저자 스스로 느끼던 중 일어난 일이었고.


저자의 여러 말들 중 가장 인상적인 한 대목.


'산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죽을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게 의지'


이것 때문에라도 문득 

이순신 장군의 어록같이 그의 개인사가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는 사실 

살려고 아둥바둥 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치료나 처치를 원론에 근거해 받거나 조정했으니.

단지, 살아있는 동안 이미 죽은 사람처럼 

살긴 싫어서 시작한 원래의 활동반경으로 

사는데까지 살다 가겠다는 각오가 남달랐을 뿐.


자식의 힘이 뭔지 죽을 운명의 사람도

아주 일부는 이같이 살아나는 

기적과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점도,

이 책 속 개인사이자 메세지라고 본다.


자식같은 부모, 부모같은 자식도 많은 세상에서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어주고

그 딸이 아버지가 살아갈 힘을 준 건 감동이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태생적으로

분명 느낄게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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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공화국 -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의 수단이었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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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 but 주관적인 서평]


책이 나온 시점이 참 절묘했다,

한참 2025년 탄핵정국이었으니.


저자 강준만은 사실 거의 

지금과 같은 구조의 평론가들 부류들 중

가장 최초의 시사평론가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또다른 한명은 

비슷한 활동은 했지만 직업마저 독특했던

정신과 의사였던 정혜신이었고.

하지만 두명 모두 지금은

예전 같은 활동량은 아니다.

다만, 강준만은 아직도 굉장히 다작의 작가라는 점에서

동기부여가로 활동했던 공병호와도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다.


그가 이번엔 낸 이 책은

앞서말한 최근 이슈와 겹치는 듯 보이게 

묘한 시점에 이 책을 냈지만 

읽어보면 등장인물들과 주요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탄핵정국과 겹친다는 점만 빼면

법률가들 그 자체를 다룬다는 점에서 

약간 착시를 일으킬 소지는 있겠다.


명백히 주제는,

법대를 나온 엘리트들이

그들 스스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노라고

선택하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들의 그 와중에 보이게 되는

직업윤리와 사적욕망들이 어떻게

일반인들의 세상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강준만의 눈으로 다뤄보는 내용이라고 보는게 

정확히 이 책이 가진 성격이다.


책 '문재인의 운명' 중 내용 일부를 언급하는데

책자체의 내용보다는 이 책 내용 중 

일부가 빠진 내막에 대해 다루면서 

왠지 논지와는 안맞을 거 같은 내용이 

결국 맥락을 같이 하게되는 설명도 

독자 각자가 읽게됐을 때 

충분히 재밌을만한 부분이다.


문재인이 이 책을 썼을 당시엔

책의 큰 골격을 이루는 몇가지 내용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한 부분을 동료 정치집단 내의 반발로

그냥 넣느냐 빼느냐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권양숙 여사의 책임론에 대한 것.


문재인 본인은 이것을 꼭 넣고 싶었다고 

강준만은 책은 적고있고.


끝까지 측근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힌 문재인.

측근들은 만일 끝까지 넣겠다고 고집한다면

의절하겠다는 최후통첩까지 해대는터라

결국 문재인이 고집을 꺾었다고 한다.

권력욕이 없다던 문재인은 결국 

이 책을 시작으로 대통령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권양숙 여사에 대한 이야기는 삭제됐고.


이 책을 기점으로 한국을 

검사의 횡포로 시달리고 있다 나라로 본다 쪽으로

정치어젠다의 방향을 바꾼 계기로도 소개하기도 한다.


조국, 윤석열로 시작된 이 책의 시작이

문재인까지 이어질 수 있는 스토리가 된 것은,

정의와 법률에 의한 일관된 법집행이 아닌

법을 다루는 이들이 권력 속 어떤 누구와 밀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법조계의 비도덕성을 

질타하는데서 책의 촛점은 맞춰져 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한 법의 동원,

부인에게 순종적이어서 망가져간 것으로 판단되는 

대통령으로써 보다는 남편 윤석열,

대장동 변호사들의 영전으로까지 이어진 

이재명의 재판 스토리가 가진 뒷얘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선물으로써 

출세한 아들이 되고자 사법고시를 선택한

아들 문재인의 삶과 그가 보여준 인생궤적 등,

지금의 한국의 주요 이슈들엔 여지없이

법조계 인물들과 각종 법률가들이

어떻게 엮여있을 수 있는지 

우회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책.


서울대를 나와 법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다룬 책일 수도 있다.


많이 배운것 자체가 인간자체의 성숙까지는

결코 보장할 수 없음도 보여주려는 책이며,

하기 힘든 말을 언제나 일정수준의 강도에서

자신의 언어로 보여주는 

강준만의 책이라는 점도 

오랜만에 재밌게 읽을 수 있던 요인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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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시간과공간사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송용구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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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 but 주관적 서평]


한번 읽었던 책을 또 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겐 10번 이상 읽었던 책도 있었는데

그 책은 재미가 바탕이 된 책이었기에 가능했다면,

데미안이란 책을 그정도로 다독하진 않았지만 

언제나 인상깊은 책이 뭐냐고 물을 때면

자동적으로 내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이 책이 튀어나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 데미안을 다시 한번 새로운 마음으로 

몇십년이 흐른 지금 다시 읽고자 결심.


나는 데미안이란 책을 읽으며

데미안을 만나려 읽진 않는다.

내게 이 책의 존재 이유는 

피스토리우스란 인물에 더 있기에.


하지만 데미안을 읽은 많은 이들이 

피스토리우스란 인물은 잘 언급하진 않는다.

어찌보면 그는 싱클레어를 포함한 

여러 주요인물들보다는 어른이면서 

또한 성직자란 포지션까지 있는 인물인데,

그가 책에서 보이는 모습은 

책의 얼개상 주인공들과 매우 중요한 

대척점을 이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를 가진다.


쉽게 말하면 싱클레어가 방황은 하더라도 

자아를 완성해 나아가는 설정이라면,

피스토리우스는 결국 자신을 안정시키는데

실패한 인물로 보는게 맞을 인물이다.

흔들리고 고뇌하는 수준이

훨씬 절절하게 다가오는 인물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중 

데미안을 최고작품으로 꼽진 않는다.

특히 영미권에서나 교육계쪽에선.

데미안 대신 선택된 책은 

'황야의 이리'이고.


얼마전 황야의 이리도 읽었고

이번에 데미안까지 읽었으니

기억으로 두 작품을 단순 비교하는게 아니라

가장 최근에 받은 느낌을 바탕으로

유명한 2개의 작품을 비교할 수 있던 것도 

나름 의미가 컸던 일이 됐다.


일단, 두 책의 성격은 다르다.


데미안의 스토리 라인이 심적으로 훨씬 촘촘하다면

황야의 이리는 3인칭 시점 같은 서사가 더 두드러지면서

모노 드라마도 연상되는 독백같은 문체로 씌여있다.


왜 황야의 이리를 최고라 꼽는지도 이해가지만

내 성향으론 데미안이 가진 특성에 더 울림이 크다.

데미안에는 비교대상이 인물의 서사로써 좀더 명확하고

스토리가 쭉 끊기지 않고 결말까지 흘러간다는 점에서,

좀더 어른스러운 책이라 느껴지는 '황야의 이리'보다

친근하고 애잔함이 강해서 그런가보다.


누가 데미안을 읽었다고 하면

꼭 피스토리우스는 어땠냐고 묻게 된다.

그럼으로써 안타깝지만 피스토리우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다는 점 때문에 언제나 놀라게 되는 나.


책의 내용증 중간 부분에

그리 임팩트 있게 등장하지 않는

피스토리우스란 인물을 기억해주는

데미안 독자층이 더 많아지면 

일종의 동질감으로 행복할 거 같다.


오랜만에 만난 데미안

역시 첫장부터 강렬했던 데미안.

나중에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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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를 마주할 결심
스즈키 유스케 지음, 명다인 옮김 / 밀리언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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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이나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트라우마를 다룬 책 중에 제일 좋은 내용을 담은거 같다.

대학원생들 전용이나 전문 상담가용도 접해봤던 경험에 비춰

이 책이 그런 책들보다 오히려 더 나은 점들도 많다고 보는데,

좋은 책이 될 조건은 흐름을 써내려가는 

저자마다의 전개방식에 있을 때도 많은데

저자 본인이 아닌 제3자의 정서나 지식을 

은연중에 고려하면서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아서나

어떤 이유가 있어서 좋게 와닿고 아니고를 말함은 아니다.

특히 심리서 장르에서는 더더욱.


이런 간단하 판단기준 하에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 쳤을 때,

이 책만이 가진 흐름이 독자의 정서와 지식수준의 여러 변수에

불특정 다수에게 먹힐 그 믹스가 조화로워

무생물인 책 한권에 담긴 저자의 지식은 

단순 활자가 아닌 필요한 부분들을 알아서 보충해가며 

개인과외하듯 흐른다면 특히나 좋은 진행이라고 느낀다.

용어풀이라던지 볼드체를 쓰는 등의 가독성이 아닌

진짜 가독성이 흐름을 타고 있을 때 좋은 책.


이제 내용을 들어가 보면

트라우마를 본론으로 다루기 앞서 

각자의 트라우마가 왜 다를 수 밖에 없는지

그 기준부터 부드럽게 터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 터치가 슬프게 다가오는 건

트라우마 자체를 건드리기 보다는

인간 존재 그 자체가 지닌 실존과 고독을

예상못하게 건드린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밖에 살아보지 않으니까'...


맞는 이 짧은 말은 굉장히 많은 걸 내포한다.

경험도 유일하고 해석도 유일한 각자의 삶.

정답은 있을수도 있지만 모두 그냥 머금고 살기에

공유되는 정답은 없고 뭐를 따라하기도 

애매한 삶이란 독창성과 고유성.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의 부모로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나는 누구의 배우자로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의 형제자매로 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이 비슷한 듯 다른 문장은 사실 너무도 다른 현실을 담았다.


'나는 자식이지만 너의 자식이 아니며

나는 부모이지만 너의 부모는 아니며

나는 배우자이지만 너의 배우자는 아니며

나는 형제지만 너의 형제자매가 아니란 그것'


이것은 완전 다른 시각을 인지해야만 

그 진실을 이해할 수 있는 특수성을 가진 문제다.


각자의 삶이 다르기에 트라우마 또한 

다를 수 밖에 없음을 내포하겠지만,

언제나 분노하고 언제나 슬프고 언제나 우울하며

어딘가 공감을 얻고 띠론 호소하고 싶을지라도,

그 사연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란

사실 이 세상엔 공유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진다.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라는 말은 이해하면서

나를 나만큼 이해할 타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기대하고 믿는다는 건 넌센스란 출발은

트라우마를 이해하는데도 필요할 요소일지 모른다.


트라우마는 2가지로 나뉜다, 큰 것과 작은 것.

큰 것은 자연재해나 불가항력 등 외력에 의한 것이 많고

작은 것은 일상생활에서 벌어진 그밖의 것들을 뜻한다.


트라우마는 흡사 우울증과 유사하지만

책이 말하는 가장 이 둘의 큰 차이점은

트라우마는 자기분열을 남긴다는 점이다.


이 분열이 정신착란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분열이라 명명하는 것은,

자신안에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존재하는

자신도 알기 어려운 경계와 공간이 존재하는 듯한 

모호한 느낌의 불편함이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에겐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의 존재이유는

자신이 경험한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활용되는

해리란 방어기재와 유사하다고도 보인다.


해리도 3가지로 나뉘는데

1차와 2차까지는 거의 분열과 가깝고

3차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하나의 몸에 여러 인격이 존재하는 

그런 경우를 말하며 

해리 중 매우 흔치않은 단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우울증이라 명명하지만

어쩌면 트라우마 증세일 수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그건, 원인이 바뀌면 접근법과 치유단계도

달라진다는 당연한 논리 때문이고.


트라우마 자체에 관심이 있어서건

아님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이건

이 책의 내용들은 분명 어떤 방향이던

상당한 만족을 줄 통찰을 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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