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티브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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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대해 읽어보고 싶고 알고도 싶지만
그 존재가 책으로 나왔는지 모르는 것들도 많다.
사람들의 관심사나 고민거리가 책으로 나왔을 때
대부분 눈길을 끌게 되는 건 당연한데
있는 줄도 모르는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눈길을 줘야 할까.
난 이 책을 보면서 이같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센서티브. 핵심적인 영어단어를 번역서의 책제목으로 썼는데
표지에 나온 원제목을 보니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었던거 같다.
이렇게 나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봤으려나.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건 원제목이고
책 자체를 약간 고급스럽게 포장해 주는건 번역서의 제목같다.
책은 말그대로 민감한 사람들에 관해서다.
그러나 보통 생각하는 민감함에 대한 전개는 아닐거 같다.
왜냐면 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보다는
민감하다고 자의던 타의던 느끼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당신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본다면 이런 성향이라고 밝혀주는
어찌보면 음지에서 양지로 민감하단 성향의 정의를
이끌어낸 책이라 보는게 정확할거 같다.
더 놀라운건, 이 책이 이런 주제로 처음 나온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이 참고하고 있는 책들이 꽤 있다.
이미 읽혀졌던 책이 있었다는 것에 앞서 이미 관심있게 주목하고
연구하고 정리해 놓은 작업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 놀랍다.
민감함을 책은 크게 2가지로 정리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첫째 가장 큰 틀은, 민감함이란 가치있는 재능일 수도 있다는 점.
둘재론 민감한 성향이 된 이유나 그래서 힘들수 있는 부분들이다.
이 둘 모두 민감하다면 읽어보고 싶을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다.
특히, 민감함이 재능일 수 있다는 부분은 자신이 뭔가
민감해서 특별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들의 민감함이 어떤 부분에서 재능처럼 발휘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어찌보면 민감함은 어떤 재능보다도 축복받은 재능일 수 있다.
배움에 있어서 타인의 감정을 읽는데 있어서
마치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을 시각화하듯이 읽고 익히니까.
그러나 이런 재능이라 불릴 수 있는 부분들과 상충되게
민감하기에 겪어야 하는 힘듬또한 만만치 않다.
근데 이 힘듬이 어디까지나 스스로 안에서 겪어야하는 자학적인 측면이 강하다.
힘들다,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이나 스스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향과는 정 반대라 할 수 있는 대척점에 있기에
뭐든 자신이 짊어져야할 짐들이고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재능과 숙명. 이 둘 사이에서 싸워야 하는게 민감한 이들의 인생같다.
우는 놈 떡하나 준다는 속담이 있던가.
목놓아 울지 않기에 떡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민감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읽으면서 외국의 사례들임에도 매우 이국적이지 않았던건
인간의 공통적인 한 성향을 다뤘기에 그러했다고 생각된다.
아마 동양인의 시각이었다면 좀처러 나오기 힘들었을 주제같다.
동양권에서는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서양적 시각에서처럼
연구의 주제가 되거나 한번쯤 생각해 볼 대상이 못될거 같아서다.
그냥 개인의 몫으로 남겨지고 대대 손손 그냥 이런 성향도 있다는 정도로 말았을거 같다.
혼자 내면과 놀면서 민감함이 발달되고 특별한 능력도 생길 수 있으나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대로 내면속 자신만 아는 능력으로 묻히고
결국 그냥 샤이하거나 예민한 사람으로 살지도 모르는게 바로
책속에 등장하는 '센서티브'한 사람들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혹 책을 읽는 사람이 책속에 등장하는 성향이라면
저자는 이런 얘기를 해주려 썼을거라 느꼈다.
당신은 특별하다, 그러나 그 성향으로 인해 살면서 힘든점이 많았을 것이며
그 성향이 이뤄진 과정은 행복보다는 고민스런 환경이 토양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건 한편으론 축복도 될 수 있는 민감함이란 놈을 선물로 줬다.
그런데 이게 당신의 친구가 되어줄 수도 당신을 앞으로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뭔가 내보이고 나아가는게 필요한게 인생인데
센서티브한 사람의 성향 자체가 그와는 거리가 있으니까.
그러나 센서티브가 가진 긍정적인 능력을 인지하고
그로인해 자유를 느끼며 발휘하고 살 것이며 어떻게든 자신감있게 행복해 지라고..
이런 주제가 책으로 나왔있던 다는 거부터 놀라는게 순서였던 책이었건만
읽으면서는 이런 주제로 연구한 이들과 센서티브하게 살아온
전세계 사람들 중 일부들에 대해 굉장한 울림같은 걸 느껴본 책이었다.
민감한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이런 책이 있다고 알려주는 지인들이 많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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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Bridge Book 시리즈 1
쇠얀 키에르케고어 지음, 이창우 옮김 / 샘솟는기쁨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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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맨 뒤에 붙은 역자의 해제로 몇번이고 넘어가서 읽었다.
3번 정도라 기억하지만 더 될지도 모르겠다.
작은 단행본의 두께를 가진 이 책을 읽어내는데 매우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잊었던 예전 생각도 났었다, 이 저자의 죽음의 이르는 병을 읽다가 힘들었던 그때가.
어렵다. 문맥이 어렵고 사용된 단어가 어려운게 아니라
한글로써 쉽게 읽혀지는 문체임에도 따라가기가 벅찼다.
그러나, 유명한 철학자로써 그의 사유가 내가 이해하기 벅차다고 해서
주관적인 느낌을 자꾸 가지려 하는 걸 견제하며 읽어야 했다, 그정도로 힘들었던듯.
기독교를 주요 주제로 풀어가는 책으로써 어느 순간엔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 썼나 오해도 들었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기독교를 믿는 이로써 실천해야할 진리를
저자만의 설득으로 새롭게 해석하는가도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한 내용도 아닐뿐더러
기독교에 대한 어떤 간단한 정의 또한 아니라
다 읽고 난 지금에서 책을 떠올려 볼 때
이 책을 가장 정직하게 읽을수 있는 방법은
그냥 이해와 상관없이 소설책의 맨 끝장을 향해 달리듯
저자의 사유를 따라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란 판단이 든다.
이해가 되던 어렵던 정리가 안되던 말이다.
그럼에도 모든 책엔 읽은이로써 뭔가가 정리되는건 있어야 하겠기에
나름의 주관적인 느낌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신자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리를 궁금해하고 점점 좋아지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던게 몇가지 있었는데 그게 참 아이러니 하다.
하나는 세익스피어요, 하나는 불교였다.
세익스피어는 이 책의 서술이 마치 그가 쓴 희곡이나 독백을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 많았단 느낌 때문이고,
불교를 떠올린 건, 이 책이 담은 내용들이
서양인의 것임에도 왠지모를 불교의 선문답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익스피어와 불교의 느낌을 받게 해준 기독교를 탐구한 책.
이게 내가 느낀 이 책의 큰줄기의 느낌들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사람과 달리 새는 창고를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도 이렇게 간단하게 쓴건 아니고 나의 이해에 가깝지만 적어본다.
새들은 매일 날아올라 돌아다니며 살아간다.
둥지로 돌아오기도 다시 떠나기도 하면서.
아님 그 둥지마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어느 곳에서
잠시 내려앉아 쉬고 있을지도.
인간의 생각으로 반복되는 새의 생활이 자유로움이 아닌 고생이라면
그들도 어딘가엔 하루 쉴수 있을 의식주를 위한 창고라도 있는게 좋을거 같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럴 수 있는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건 인간의 생활패턴이자 저자가 말하는 필요악.
필요해서 행하고 점점 기틀을 가지게 됐지만
어느순간부터 목적과 수단의 핵심을 잃어버린 보편적인 패턴으로써만 인정되는 것.
이게 내가 키에르케고어가 설명하려 한 새를 비유했던 부분의 작은 이해다.
내가 알기론 키에르케고어가 남긴 말인 줄 모르고 쓰는 명언들이 꽤 많은걸로 안다.
우연히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도 어떤 다른책에서 그의 명언을 읽었다.
우연이면서 굉장히 묘한 느낌으로 남았는데, 이렇게 유명한 글귀가
키에르케고어의 것이었구나 약간은 놀라면서 알았었던 그 문장을 다시 읽었던거 같다.
철학책을 읽어서인지 마지막 정리도 약간 철학적으로 해보련다.
어렵다는 건 각자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겐 어떤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어렵다는 말로 표현될수도 있을 것이고,
누구에겐 하고는 싶은 뭔가가 알수 없지만 하고싶다는
욕망은 있어 어렵다는 표현을 할 수도 있을것이다.
모두 공통으로 사용하는 말과 단어들이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르게 사용하면서 다른데 때론 같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같은데 때론 다르다고 생각하며 사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역자는 말했다, 이 책의 핵심은 읽는 각자의 해석이라고.
이 책을 번역한 자신도 이 책을 요약할 순 없다고.
난 역자의 말을 이렇게 이해했고,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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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테크닉, 내 몸의 사용법
프레더릭 알렉산더 지음, 이문영 옮김, AT 포스쳐 앤 무브먼트 연구소 감수 / 판미동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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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장르에 관계없이 통찰력을 즐기게 되는 책들이 있다.
아마 명저라고 이름 붙일만 한 사유와 기록들을 담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난 알렉산더 테크닉은 모른다.
그저 대강의 소개정도만 들어보긴 했으나 문외한이라 보는게 맞을거다.
그런데도 언젠가 누군가 알렉산더 테크닉을 물어왔을 때
내가 아는 아주 단편적인 상식수준의 대답을 해주었던거 같은데
그 창시자가 쓴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 상황이 매우 미안해졌다.
내게 물었던 그사람에게도 창시자 알렉산더씨에게도.
당시 아주 틀린말은 아니었으나 정말 모르고 한 말이었다는 걸 통감해야 할거같기 때문이다.
그때 아마 호흡법을 위주로 한 자세교정이라고 얘기했던거 같은데
이 책을 테크닉이 아닌 산문적인 책으로 매우 잘 읽어 내려가면서
당시의 내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책을 읽은 기준에서 그때 내 말은 틀린 말이었다고 하고 싶다.
지금 다시 누군가 내게 알렉산더 테크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얘기할거 같다.
모르겠다, 그러나 매우 좋은거고 배워둘만한 가치와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으니
관심이 있고 인연이 닿는다면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그리고 아마 누구에게 물어도 한단어로 요약해 낸다면
그건 진짜 아는 건 아니라고 봐야할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이 책의 저자가 쓴 이 책의 원제목인 The Use of Self가 핵심아니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알렉산더 요법의 창시자도 자신이 만든 이 테크닉에 관한 설명이
한 문장이 아닌 산문적 서술이었었어야 가능했었는데
어찌 누가 한문장이나 단어로 표현해낸다는게 맞겠는가 반문하고도 싶다.
이 책은 알렉산더가 쓴 최후의 완성된 결정체는 아니더라도
엘렉산더 테크닉이 태어나게 된 계기와 당시 진행상황,
그리고 그가 발견해 낸 방법들의 프로토콜이 나와 있기에
미완이면서 완성본이라고 봐야하는 독특한 가치를 담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또한가지는, 이 책을 일반사람들,
그것도 관심이 없거나 관련 사유나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읽게 될 때는
매우 난애하고 이게 뭐냐고 덮어버릴 가능성도 매우 농후하다는 점이다.
정당한 매치는 아니지만, 중국의 경전들 중에 비교를 하자면
문외한 사람들에겐 다소 노자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은 아닐까 싶다.
읽고는 있는데 어떤 결론으로 가고 있는 건지,
다 읽고 나서는 어떤걸 혼자 해볼수 있는 건지 불만스러울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저자도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서
이와 같은 비슷한 불만을 들었다니 그저 내 개인적인 평일 뿐이라곤 할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걸 떠나서 이 책의 가치와 읽어봐야 하느냐만을 놓고 본다면
난 무조건 읽기를 권하고 싶고 그 가치를 높게 봐야 한다고 하고 싶다.
얼마전 헬스클럽에서 개인PT를 받고 있는 한 여성의 운동 모습을 보게됐다.
내가 있는 쪽 맞은 편 거울로 비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절로.
많이 유명해진 버피test란 것도 하는 거 같았고
연속해 몸을 앞으로 굽히거나 윗몸일으키기 동작 등도 하는 거 같았다.
그 옆모습이 보이는터라 자연스레 척추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올수밖에 없었는데
나라면 말리고 싶다는 생각이 거울로 운동모습이 들어올 때마다 순간순간 일었다.
척추 하부쪽인 요추부는 힘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흉추 중간부위와 약간 밑쯤 해당하는 부위의 유연하지 못함이 매우 눈에 거슬렸다.
그렇게 되면 필요한 운동 효과를 다 못보는 건 둘째치더라도
척추의 굴신시, 몸 중 다른 부분들이 보상적으로 무리를 하거나
불필요한 인지가 될거 같다는 우려가 들었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몸이 그렇게 약하진 않다, 훨씬 안좋은 모션과 신체를 가지고도
수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살진 않으니까.
그러나 맞지 않는 동작, 지속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는 구조적 동작들은
분명 상식적으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알렉산더 테크닉은 어쩌면 이런 점에서 실질적인 활용서가 아닌
사유와 제시를 하고 있는 앞서가는 발상을 담았던 책이었다.
스스로 몸의 이상을 치료하고자 시작됐던 그의 노력과 고뇌가
알렉산더 테크닉이라는 이론으로 정립되었는데
그 이론정립의 시작은 저자 자신의 몸에 관한
문제점들을 관찰하고 조사하면서 깨우치게 된 관찰노트이자 고민의 답들이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가,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고칠것인가.
고친다는 건 안하는 거, 그렇다면 무엇을 대신 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 이제 좀 찾은거 같다, 그런데 왜 진척이 없는 것일까.
이렇게 찾고 찾아 결국에는 어떤 단계들은 연결하고 지속하며
어떤 단계에선 모든 원래의 목적을 잊고
잊음으로써 무의식적으로 행할 수 있는 원래 가졌었던 몸의 프로그래밍을 눌러놓고
새로운 맞는 프로그램을 몸에 업로드 하는 식으로 변화를 해나간다.
사실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게 책의 출발점이었지만
그 결과물을 읽는 독자로써 이 책은
하나의 철학책이고 과학서적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거 같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든 완전 백지상태로 보는 사람들에게나
실용적인 것만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외면도 당할수 있을 수준높음이 있다.
언젠가 너무 간단하고 뭐야 하는 책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 책을 다시보니 느낌이 달랐었다.
그 책은 예전이나 그때나 그냥 그대로 있었고 나만 전과 후가 달라져있었을 뿐.
책은 그대로 거기에 있었는데 읽는 사람이 몰라보는 거.
그런 우를 범하지 않는게 행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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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아이를 병들게 하는 경피독 -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여성질환의 발생, 예방, 치료에 관한 모든 것
이케가와 아키라 지음, 오승민 옮김 / 끌레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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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곤 생각했다, 내 주변에 안전한 건 무엇인가...없었다.
물도 공기도 땅도 사람도.
이 생각을 비관론이라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려면 해도 된다.
그러나 실제 그렇지 아니한가라고 되려 반문하고 싶다.
도대체 그 많은 소비 후 처리과정들은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 깊게 생각해 보았는가.
물도 화학적으로 정화하지만 완벽치는 않다.
내 집을 먼지를 털어 내겠다고 아무리 좋은 공기청정기와 청소기를 동원해도
결국엔 그냥 창문 밖 내집 담 밖으로 버리는 건데
그게 밖으로 평생 다신 안마주칠 격리처리로 마무리 되어지는가 생각해보면 그 답 또한 나온다.
아닌거다, 결국 그 모든건 다시 이쪽으로 넘어 온다.
물도 돌고돌아 오고, 공기도 돌고돌아 다시 온다, 다시...
경피독은 우리가 피부로 노출되고 흡수하게 되는
다양한 환경 호르몬들과 화학적 침투물들을 이야기 한다.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물이나 땀 등을 통해 섞여서 들어오기도 하며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알게모르게 흡수해 버리는
각종 화학적 존재들을 일컫는 총체를 지칭하는 단어다.
특히나 산부인과 의사인 일본 저자이기에
여성에 대한 부분과 자녀에 대한 부분에 상당부분 더 자세함을 추가해 뒀다.
각종 생리불순증상들과 부인과 질병들, 그리고 경피독과의 연관성.
디톡스와 치료들로 배출을 모색해 볼 수 있지만
완전 차단이란 불가능한 환경에 살고 있다.
머리나게 해준다는 발모샴푸, 피부각질을 제거해준다는 각종 고급 스크럽 제품들,
화이트닝을 해준다거나 피부속을 채워준다는 다양한 기능성 화장품들...
경피독을 설명해 주는 부분들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경피독이란 수중기를 통해서도 피부와 접촉됨으로써 들어올수도 있고
땀이나 물을 매개로 옷등을 통한 접촉에서도 들어 올수 있다고.
그렇게 간접적인 방법으로도 막을수 없는 독성이
어쩌면 직접적인 사례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결국 피부용도로 쓰게 되는 생활속 화학제품이란 공통점들이 있는
샴푸나 화장품 등의 경로를 통해선 전혀 몸에 쌓이는 경피독은 없다고 볼 수 있는 건가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독자로써의 의문들.
난 이책을 나 혼자만 보면 안된다는 생각을 책 보기전부터 하며 선택했었는데
책을 보면서는 더 강해진거 같다.
건강 염려증라거나 뭔가 깨닫게 해주려는 그런것만은 아니다.
내가 얘기해 줘봐야 책한권에 담긴 경피독에 대한 내용이나 느낌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읽고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은 그런 단순한 생각때문이었다.
좋자고 하는데 결국 좋지 않은거면 하지 않거나 줄여야 하진 않겠나.
이젠 자연속에서 산다고 해도 결코 인공적인 것들과 차단되어 살수 있는 세상은 아닌듯 싶다.
공기나 물 모두 순환되는 세상에서 어디라 한들 유일한 곳이 있을수 있으랴.
경피독에 대한 책 자체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나만 노력해서 된다고 할 수 없는 분야 중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됐다.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책속의 책 '침묵의 봄'이란 책도 읽어보진 않았지만
침묵이란 단어와 봄이란 역설적인 조합에서 어떤 내용일지 대강의 느낌은 받았다.
그런 환경을 극복해내기 위해선 이런 책도 읽어야 함이고
혼자가 아닌 같이 실천하는 뭔가도 필요하단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각종 인공화합물로 내일도 살아가겠지만
나부터 조금씩 더 책과 같은 의식을 넓히며 덜 화학물 친화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환경론자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생존과 후손들의 더 나은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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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 가장 기본적인 소망에 대하여
김승호 지음, 권아리 그림 / 스노우폭스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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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느껴지던 첫 느낌은 여유였다.
그리고보니 여유라는 말도 참 여러 방면으로 쓰이는 단어다.
옷사이즈가 넉넉해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워도, 정신적으로 평안해도
여유라는 이 한단어는 다양하게 쓸수 있는.
저자의 여유는 경제적인 부분도 물론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건지
아님 애초에 그런 그릇이 있는 건지 정확치는 않지만
그의 글에선 마음의 여유 정신적인 여유가 함께하고 있음이 전달된다.
그는 말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것을 줄 수 있고
그걸 가져보는게 결코 나쁘진 않은거 같다고.
그러나 한번 그래보기 위해선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각자 스스로의 변화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여기까지만 본다면 어느 자기계발서와도 같은거 아니겠느냐 하겠지만
많은 비슷한 책들을 접해왔던 나로서는 이 책만이 가지는 반짝임 같은게 느껴졌고
그냥 단순히 또한권의 자기계발서이자 이미 다른 책에도 등장했었던
비슷한 얘기들이라고 단순 치부될 수 없는 가치를 봤다.
매우 온돌같이 응근히 마음을 데워오면서 책을 끝까지 읽을 때까지
그 온기를 식지않게 해주는 진심같은게 책을 읽는 내내 같이 한거 같다.
집필기간 중 항시 목욕재개하며 글을 써왔다던데 헛말은 결코 아닌 듯.
누군가에게 강연장에서 명품시계를 채워주는 얘기에선 남다른 감흥도 있었다.
어쩌면 하나의 에피소드일수도 있겠고,
다른 한편으론 외국생활을 한 저자가 서양적인 마인드로
극적인 퍼포먼스를 순간 발휘해 내 감동과 여운을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는
다소 불편한 진실을 담진 않은건가 상상도 해볼만하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어떤 순수함으로 인한 행동을 의심한다거나 색안경을 낀건 아니다.
그냥 어쩌면 이정도 흡입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정도의 얘기거리를 던지는 것도 하나의 좋게 바줄만한
능력이라고 생각해 떠올려봤던 생각이었을 뿐.
결론을 말하자면, 진심이었던지 아님 해프닝이었던지보다
모든게 저자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의 힘이 아닌가 하는 부분에
한가지 추가해서 기억할 수 있는 페이지였다고 생각했다.
요즘 비슷한 길을 알려주는 책들을 우연히 여러권 읽었다.
어떤 책은 치열한 내용을 매우 독하고 직설적으로 가이드해 주었고,
또다른 어떤 책은 다른 느낌으로 자각하고 깨우치는 가이드를 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내가 어떤 느낌이었나 생각해본다면
서로 다른 책들이었지만 개인적으론 마치 원래 3부작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각각의 개연성이 한 궤적으로 이어지며 필요한 부분들을 체워주고
우연이었는지 필연에서였는지 나에게 다가와준 고마운 존재로 느껴졌다.
내가 1년 전에만 읽었더라도 아마 이런 감흥이진 않았었을거 같다.
너무 감명깊었다 너무 좋았었다가 아니다.
그땐 이렇게 안받아 들였을거 같다.
그땐 이렇게 얘기해줘도 그냥 책으로 남아버렸을거 같다.
근데 완전 새로운 내용들만은 아닌데도 여느 때와 달리
많은 것들이 내게 퇴적되듯 하나둘 쌓이고 울림을 만든다.
활자가 아닌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중 이 책은 정말 온돌처럼 은은했지만
다른 모든 책을 아우를 수 있었던 포용력이 존재했다.
사례와 권유, 그리고 조언들.
세상에 자기 이름을 알리는 책들은 나름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발판이 되어줄 책이 될수도 있을 것이고 집필자체가 자기만족이자 자아실현의 장도 될수 있다.
이 책도 어쩌면 그런 부분이 분명 있을지도 모를것이다.
그러나 내가 느낀 저자의 진심은 말그대로 진심이었다.
누군가에게 돌아가지 말고 지름길로 가보라고.
나만 알고 있지 않고 당신도 알아도 우리 모두 상관없는 공유해도 되는 길이라고.
이 얼마나 고마운 발상이고 실천인가.
부의 재분배라던가 사회공헌같은 거창함이 아님에도 그보다 더 웅대함이 전달된다.
세상이라는 물에서 고기를 잡는 법을 피상적이지 않게 가르쳐주려는 가이드.
나에게도 어떤식으로든 지름길이 되어주리라 믿어지는 책이었고
개인적으론 부의 축적방법을 배웠다는 것 이상의
삶의 개인과외를 받았던 시간으로 기억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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