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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언어 - 삶과 죽음의 사회사, 2024 아우구스트 상 수상작
크리스티안 뤼크 지음, 김아영 옮김 / 북라이프 / 2024년 11월
평점 :
읽고 싶은 책이었음에도 책장을 펼치기까지
예상보다 꽤 시간이 걸린 책이다.
내용은 방조적이지 않으니 자살에 관해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울수 밖에 없겠지만
자살에 관해 통찰하고자 하는
넓은 범위의 시야를 담은
인문학적 접근이라 보는게 더 맞겠다 생각한다.
전체내용 중 특히 9장을 추천하고 싶은데.
가장 압축돼 있고 핵심적인 내용이랄 수 있어서다.
'무의미 하고도 유의미한 삶'이란 부제가 붙은
9장의 해당본문 중 일부를
먼저 인용해 보겠다.
"유의미함이라는 감정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식으로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며,
중요한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인간적인 현상으로서
유의미함을 느끼다는 것은
동시에 그 반대되는 상황, 즉
의미를 상실했을 때
취약해 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유의미함...
의미상실...
취약해 질 수...
이 3개의 단어가
짧은 문장 안에서 핵심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책을 쭉 읽어가면서는
한글처럼 읽히는 번역같지 않은 자연스러움에
저자가 아닌 역자부터 찾아보기도 했는데,
일단 스웨덴책이라 스웨덴어 번역이라고 생각됐지만
영어로 1차 가공된 원전을 바탕으로
번역됐을 수도 있겠다도 싶었다.
그러나 그냥 저자의 국적대로
스웨덴어로 쓰여졌다 할지라도
영어와 스칸디나비아어까지
2개국 언어를 전공한 번역자이기에
원문 텍스트 그대로였더라도
왠지 번역이 가능했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여러 장들 중에 9장을 유독
핵심으로 다루고 싶은 이유라면
다른 장들에서는
인물이나 자살과 관련된 사상 위주의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게 많은 반면,
9장은 가장 현실적인 주제로
가장 현대적인 시각으로 자살을 다룬다고 느껴져서다.
단어의 정의를 언급하고
그 정의의 역발상까지도 언급함으로써
독자의 시각을 자연스럽게 넓히고 또 넓혀가는 구조다.
유의미한 삶을 살기 위한 전제란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다는 스스로의 확신이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피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 장은,
90%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답하는 경향을 띄지만
객관적으로 이런 긍정적 답을 한 사람들일지라도
행동만으로 볼 땐
그리 중요한 것들만을 선택적으로 잘 하며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닥 가치없는 삶을 살면서도
자기최면 식으로 긍정의 자신을 믿는다는 식으로
꼬집는 의미라기 보단,
세상 사람들 모두의 삶 자체가
의미있는 행위로만 구성돼 있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에 포인트를 맞춘 의미로 풀이한 것이었다.
설사 아무것도 안하더라도
유의미한 감정을 추출해 내는게 탁월한게
또한 인간이기도 함을 밝히면서.
이어 종교적인 신앙이 존재가능한 이유를 접목하게 되는데
종교에서 의미하는 삶이란
찾을 필요 없는 디폴트적인 것이기에
미리 신이 정해둔 대로 산다는 관점으로
오래 유지되어 온 믿음이라고 봤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독일 단어 중 '게보르펜하이트'란게 있어
('각자의 바램과 관계없이 우린 삶에 내던져 진다')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말하며,
이미 정해지거나 부여된 의미따위는 없다는 이론으로
약간 비튼 결말에 종착하고 있기도 하다.
한번 뿐인 삶은 각자의 책임하일 뿐이라는.
각자 삶에서 느끼는 유의미와 무의미의 일부분은
정신병의 시초로 설명하는 부분에선,
무의미함에서 병이 시작될 수 있다고도 한다.
지난 경험이 흐려지고
이유없다고 느껴지는 게
병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다며,
익숙했던 것들이 낮설어지고
이미 알았던 것들임에도 난해해지며
더이상 몸에 각인됐던 규칙들이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는
자신이 다른사람과 달라졌다 느끼는 것이
그 징조일 수 있다고도 말한다.
참고로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다.
자명하다 느끼며 살아왔던 것들을
더이상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며 살 수 없어진다면
그로인한 충격이 얼마나 클지 재차 비유하며,
이같은 상황은 더이상 자신의 뇌가
자신에게 확신을 주지 않는 상황에 처한 것이라 간추린다.
이는 최종적으론 '망상'으로 가는 단계로써
중요한 것과 무시해도 되는 것을 걸러 줄
내적 필터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음을 의미하며,
여러 사람에게 의미없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이라도
자신에게만은 새롭게 무척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며
암시처럼도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완전히 고착되는 단계에 이르면
이상적인 논리를 완전히 받아들여
모호했던 내면 속 많은 것들을
상호연관 시키는데 성공하고
이를 안도감으로 받아들여
안도하게 되는데 이를 결국 '망상'이라 정의했다.
즉, 주관적인 관점에서
잘못된 진실에 의미를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
지엽적인 이론들이지만
결국 자살을 생각해 보는 길잡이로 쓰였으며,
선택하는 것도 선택이지만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이질적이면서 당연한 이 발상의 전환을
자살의 관점을 들여다보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단순히 삶이란
살아볼만한 것이라고 확신을 주려는 의도는 안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것으로써
모든 생물이 가진 것이지
인간 개개인만 가진 걸로 볼 문제가 아니라 말하고 싶어했다.
즉 자연발생적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지구상 모든 생물들 중 하나로써 인간을 봄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러 모습을 이해할 때 만이
삶의 모든 걸 순수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저자의 지적이고 인간적인 모습 모두를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