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매스 - 세상을 바꾼 천재 지식인의 역사
피터 버크 지음, 최이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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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폴리매스의 능력 그 자체만을 바라본다면 

폭넓은 관심과 특별한 재능을 가진 그들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이 될 대상같다.

하지만, 폴리매스 본인의 인생 속에선

폭넓은 관심이란 일종의 재앙이 될 수도

특별한 재능이란 그런 관심에 연료처럼 쓰이는 

부스터 같기도 하다는 건 주목해 볼 부분일 것이다.

 

한가지도 아닌 여러 지식을 통합시키고 연결시킬 줄 아는

그 능력만으론 타인의 부러움이 충분히 될만한 대상, 폴리매스.


하지만, 책전체 흐름을 건너 뛰어 가장 결말쪽으로 가보겠다.

오늘날 폴리매스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저자는 그 자체를 물음표로 놔둔듯 보이고

분명 독려하고는 있고,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 질 수 있는

폴리매스들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느껴지지만

어찌보면 그게 전부다.

폴리매스를 위해 특별히 결론지어진

그 능력을 쓸 발휘처는 방대한 자료들을 집대성 하고도 

특별히 결론지어지지 못했다는게 마음 아팠다.


우선, 폴리매스란 용어부터 살펴보자.

이 자체가 의미하는 인간형은 매우 간단하다.

박학다식, 통합형 지식을 추구하는 삶,

오늘날의 재능러, 르네상스형 인간 등으로 명명 가능한 특성.

이런 정의에 맞는 폴리매스를 대표할 한명을 떠올려 본다면

긴 설명이 필요없이 와닿는 누군가 이미 존재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너무도 유명한 이 이탈리아인.

그러나 구체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이 사람을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까?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인체비례도?


우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책에서 언급된 폴리매스의 대표적 인간형으로써

그의 활동과 인생은 분명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다빈치는 확실히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다.

의학, 미술, 군사학, 음악 등 

흔히 말하는 열 손가락을 꼽고도 남았던 그의 재능.

하지만, 책에선 그의 재능 자체를 칭송하고자 그를 언급하진 않는다.

냉정하게 보자면 폴리매스를 대표하는 그의 인생 전체와

그럼으로써 어떤 개인적 인생궤적을 그렸는지가

좀더 이야기꺼리고 그걸 냉정하게 그려준다.

저자는 다빈치를 정의하자면

정해진 직업이 없던 사람으로 묘사했다.

당시 유명한 장인의 밑에서 수련시간을 거쳤고

그걸 비롯 여러 교육의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켰다. 

그가 살던 시대엔 이런 방식이 일반적인 교육방법이었다.

같은 걸 배운 다른 동기들도 있었으나 

모든 면에서 다빈치는 확실히 월등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당시에 그런 재주로 그가 남다르게 살아가진 못했다.

남다르지 못했단 건, 일신의 영위나 인정은 얻지 못했다는 얘기.

다른 책에서 다빈치의 일생을 언급했던 걸 빌리자면

그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고정된 수입을 얻기위해 

매번 성과를 내려 애써야 했으며 

그런 식으로 호구지책을 이어가기 위해

매우 노력했고 고생했다고 설명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분명 집고 넘어가는 바

최종적으로 인류 전체에겐

큰 영감을 남겼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텐데,

다빈치 인생 자체로는 당시엔 힘들었다.

이 부분을 추가해 설명할 때도 

저자의 설명에선 다빈치 업적 속 넌센스는 존재한다.

의학자 다빈치, 미술가 다빈치가 아닌,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그는 영감을 남겼기에,

오늘날 중요한 영감을 남긴 사람을써 인정은 받지만

한분야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거나

한분야에 업적 그 자체를 남긴 사람은 아니란 사실이다.


저자는 다빈치처럼 살아간 여러 지식인들 관련

많은 자료를 취합해 여러 경우들을 소개하고 있는 와중,

다빈치와 같은 삶을 살아간 사람들을 명명하길

'레오나르도 증후군'이라 표현하고 있다.


뛰어나지만 한사람의 인생으로나

하나의 학문으로 봤을 땐 구체적인 결론이 없었던 삶으로써.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로써 살아갔던 

그런 열정이 바로 폴리매스들이다.

또다른 폴리매스들 중엔 

자본론의 마르크스나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도 해당된다.

이들도 분명한 업적을 남긴 듯 보이나

되돌아 가보면 상당부분 그들에 관한 인정은

당시가 아니란 점이 주목된다.

오늘날 같은 평가는 그 당시가 아닌

후세들의 평가라는 점에서 보편적인 폴리매스들과 연관성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주요 저작들을 남기기도 했지만 

꽤 많은 연구들을 결론 내지 못한 미완의 노력으로 끝을 맺었다거나,

마르크스 또한 그이 자본론을 본인이 최종 선보이지 않았고

사후 지인들을 통한 출판이 됐던 바를 저자는 주목했다.

많은 폴리매스의 특징이자 인생이 그러했듯.


다시 책의 결론으로 돌아가,

저자는 그나마 폴리매스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갔고

현재 생존한 유명 폴리매스들의 주요 연령대 또한 

1930년 전후 생들이란 점을 분석해 봤을 때,

같은 류의 폴리매스에 속하는 사람들의 활동반경은

이 예측불가능한 디지털 시대 안에서 불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이게 시사하는 바란,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여러 지식을 연결하거나, 

하나의 지식군 내에서 복잡한 구조를 간파하고 

통일시켜내는 능력치 자체는 뛰어난 재능이나,

그런 재능들이 아주 과거 또는 르네상스시대, 

산업화 시대 등에선 직업적으로 통용됐으나

작금의 디지털 시대엔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의문으로 남는다는 뜻으로 비춰졌다.


과거 폴리매스를 자식으로 둔 여러 부모들은

자녀가 가진 성향을 못마땅해 했다고도 한다.

그 이유는 하나에 에너지를 집중하지 못하고

다방면으로 분산돼 결과를 내지 못했음을 단점으로 봐서였다.

어떤 폴리매스들에겐 분명 맞는 얘기였고

특출나게 자신만의 길을 간 폴리매스들에겐 

일종의 인재를 몰라 본 간섭처럼 보이는 사례일지 모른다.

하지만, 폴리매스란 용어를 만들고 책을 쓴 저자의 관점에서

폴리매스의 지식습득력과 그걸 결과를 도출해내는 능력을 돌아보며

역사적으로 이런 폴리매스들의 역할론을

장단점으로 저울질 해봤을 때 어느정도 평가해 본 저자 조차도 

결과를 낼 수 있는 폴리매스여야 

좀더 귀중히 여겨질 재능이라 보는 듯 했다.


어찌보면 단순히 폴리매스란 유형의 

그 인간형 자체에 독자를 주목시키는 책 같지만,

다양한 삶을 살아내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다른 방식의 영감을 줄만한 

특별하지만 특별할 수 없기도 한

폴리매스들의 특별한 삶을 귀감처럼 보여줬다고도 느낀다.


개인적으론 결과를 내는 삶이 

어떠한 재능만큼이나 소중하고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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