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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 므네모스의 책장
임다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2월
평점 :

재밌다.
소설의 맛은, 작가가
독자를 자신의 책에 얼마나 빠져들게
해 줄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확실하게 그걸 경험하게 해준다.
드라마 속 '그 어려운 걸 또 해냅니다'란 대사처럼
대리만족 하듯 선사해주는 기분좋음도.
스토리 전개에 따라 작가의 정서를
가상의 스토리로 느껴보는 부분들도 참 좋았다.
그래서인지, 대게는 음악에서 찾을법한 릴렉스도
이 소설로 의도치않게 경험해 봤던거 같다.
읽다가 운동 갈 시간도 다 됐는데 그냥
오늘도 빠지고 계속 읽고싶단 유혹도 느꼈을만큼.
하지만 2일이나 못 갔는데
오늘까지 빠질 순 없기에 부랴부랴 출발.
어찌됐건, 이 책은 내게 휴식같은 소설이 됐었다.
단순한 판타지의 옷을 입고 있는 듯 보여도
심리적인 요소를 강하게 가미한 작가의 터치에
쉬운 듯 깊은 은유도 느꼈다.
의미있게 읽은 구석이 많은 지문을 간직한 책임에도
그 자체는 가벼워 쇼파에 기대 읽을때나
한손으로 버티듯 들고 누워 읽을때도
매우 편히 읽을 수 있던 것도 나름 좋았다.
전개가 빠르고 덜 복잡한 전체 얼개,
그만큼 등장인물도 많을 순 없을 스토리다.
주인공 기억술사 선오, 거기에
중요한 주조연들이 5명을 넘지 않는.
하지만, 모두 각자의 색깔과 역할이 있어
작가가 말하고자 했을 메세지는
인물 각자의 사연을 담아 잘 전해진다.
희주의 감퇴되는 기억력은
이 책이 주는 메인 소재이자 주제일거다.
애초에 스스로 어떤 기억을 가졌었는지 조차
스스로 인지 불가능한 망각상태였고,
사라져가는 기억들 대해선
아쉬운 감정조차 스스로 없던 그녀.
신기하게도 어릴적 기억부터
차례차례 사라져간다.
이런 애가 탈법한 흐름과 달리
희주의 태도는 무덤덤하기 그지 없다.
반대로 애가 타는 이는 오히려 선오.
이타적인 선오의 개입과 능력을 활용한 노력으로
희주도 책의 스토리도 활력을 찾아갈 기미가 띄게 된다.
초반 상당기간의 느낌은 마치 스릴러와도 비슷하지만
일정수준 이상의 긴장감으로는 높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유를 굳이 찾을 필요는 없는건,
결국 이 책의 큰 메세지는 책을 끝까지 다 보고
완결된 스토리로써 느꼈을 때 알게 될 것들이라 그러하다.
그때쯤이면 왜 어떤 사건을 통한 긴장감의 고조가 덜한 구조인지
그리고 그런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는지 각자가 알게 될 부분같다.
책의 중간정도 쯤 편의점 강도사건을 잡기위한
뇌파검사를 진행하는 장면에선,
선오 이외의 또다른 기억술사가 있음을
예상하게 하는 장면도 나오면서 긴장감을 높이지만,
그게 누구일거 같다는 예상이 맞은걸 보면
이 책은 단순 긴장감을 높이는데 있진 않고
각자의 기억속 밑바탕이 되는 자신만 알 이야기들을
선오의 힘을 빌어 해보고 싶었다고 느껴졌다.
그렇기에 맞춰야 할 정도 어려운 추리는
이 책엔 없을 수 있는 걸 수도.
그러니 독자들은 그냥
등장인물들을 빌어 작가가 하고 싶었을
진짜 이야기들을 따라보는게 가장 최선일 듯 싶다.
몇몇 인물의 묘사에선 작가적 표현은 참 놀라웠다.
담백하지만 또렷이 전해지는 문맥의 의미들 때문일까,
가상인물들의 머리속이지만 허황되지 않거니와
그냥 맥락없이 벌어지는 각자의 이야기들이라기엔
현실적이며 이어지는 부분들이라 생동감을 준다.
다른 한편으론,
'부당한 대우'라는 느낀다는 이현수 경사의 표현이나,
책에 2번이나 거의 똑같이 등장해
순간 같은 부분을 또읽고 있나 순간 당황했던
'쑥스러워져 목덜미가 간지럽다'는 등의 표현들은,
일상에서 나 스스로는 잘 안 쓰는 표현임에도
분명히 의미만은 알고 있어온 그런 소소한 표현들이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런 문장들 속에서 느껴보는
디테일이나 편안한 표현 또한 즐거웠다.
유익하게도 읽었고.
저자가 꽤 오랜 공을 들였을 한권의 창작물이란 생각에
좋았고 감사하게도 읽었다.
기억을 지움으로써 멀어지려 한 희주,
기억에 집착함으로써 간직해 온 은아,
수많은 여자들 대신 아픈 은아를 선택한 태준의 결핍적 선택,
조선생에 의해 사회적 성장이 멈춰진 강동범의 일생,
사회적 부적응이 만든 트라우마이자 변종 몽그리들.
짧고 굵게 등장하는 모두
이 책의 중요한 사람들과 장치다.
1가지 아쉽다면,
너무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존중'이란 키워드.
단어가 주는 의미는 충분히 알겠으나,
그 '위 아 더 월드'의 느낌이 개인적으론 다소 버거웠다.
조금 덜 무겁게 느껴지는
관심, 배려, 포용, 고려, 수용 정도는 어땠을지.
흠잡을 곳 없는 책에 아쉬움 하나 정도 적어봤다.
특별한 러브라인이 없다는 점도
책을 더 담백하게 만들어 준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