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 말 못 하고 혼자 감당해야 할 때 힘이 되는 그림책 심리상담
김영아 지음, 달콩(서은숙) 그림 / 마음책방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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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만난 사례자들 개개인의 심리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와 함께, 그들이 함께 했던 그림책들이 나오면서

그 책들이 가진 줄거리 소개가 되고

그렇게 각자의 사연들은 마무리 된다.


심리치료에 그림책을 사용하다는 저자.

많은 사연들을 만났다고 보이고

그런 사연들 중에 저자가 선별했을

기억의 사람들이 책 안에 소환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한 사연부터 

좀더 차근차근 읽기 시작하게 됐다.


30대 여교사의 상담사례.

초면인 남남으로써 만난 상담자와 사례자.

그 자리에서 그녀는 무덤덤하게 

자신이 이 자리에 온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죽음이다.

비통함이나 고통의 결과로써가 아닌

저 오늘 조퇴할께요 정도의 느낌으로

삶으로 부터의 조퇴 느낌이랄까.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가능성을 

초면의 저자에게 내 비췄다.


다른 사례자들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저자가 특별히 각자의 사연을 어루만지는 건 거의 없다.

오히려, 질문을 던지고 기구함을 이야기 하려는 그들에게

살짝 야단을 치는 듯한 느낌처럼 

현실을 자각할 수 있을만한 조언을 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은유적인 그림책 스토리들.

그런데, 이 사연에선 그런 패턴과 조금은 달랐던 건,

상담가인 저자 스스로가 내놓을 수 있는

아무런 상대의 프로필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당시의 이야기.

교사이기에 삶은 보통 사람들보다 안정돼 보였고

특별히 죽을만하다고 느껴지는 고민거리도 없어 보였다.

둘의 시작은 이렇게 출발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알게 된 것도 없다.

그저,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고

아주 사소하게 별것 아닌 것들로

둘의 관계는 이어져 간다.


그렇다면 그런 친분을 통해

결국 굉장한 속사정을 이야기하며

사실은 이랬다는 고백이라도 등장했을까.

전혀 아니다.

그냥 편하게 같이 걷고 분식집도 다니면서

소소하게 선물도 주고 받는 식의 관계 정도 됐으며

모르는 사람보다는 조금 나은 관계가 되었다.

그러다 사소한 것들이 쌓이면서

상담가의 촉으로 조금씩 느껴지고 알게 된

사례자의 히스토리가 접수돼 갔을 뿐.


그녀의 사연은 어찌보면 별거 없었다.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믿음이 결여된 성장기를 거쳤으나, 

특별한 오점을 남길만한 드라미틱한 사연은 없었다.

그렇게 저렇게 성인이 되어 갔고 

한명의 사회구성원으로 역할은 가지고

살아가는 여성은 되었다.

그러다 이렇게, 

상담자리에선 제일 큰 본인의 이슈는 

죽고싶은 것이라는 말을

툭 상담자에게 드러내 꺼내보인 것이다.


여기서 약간의 반전이라 느껴지기 시작하는 건,

별거 아닌 듯 보이는 그녀의 상황들이

상담자의 해석을 거치면서

허무맹랑한 허무주의자처럼 보이는

30대 여성의 투정 같은건 아닌

분석가능한 상황으로 그려지고 

그 해석이 의미심장하게 되어 간다는 것이다.


사례자 스스로는 허무하다.

그러나, 그걸 허무로써 스스로 인식 못한다.

죽고 싶다는 것도 정말 괴로워서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식의 선택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 삶 자체가 죽음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느니 그냥 죽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느꼈지는 공허함을

의미있게 해석하고 저자는 그려냈다.

삶의 열정이 없지만, 

열정 자체를 자가생산해 낼 수 없는 삶이란 걸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다는 걸 모르고 살아온 사례자.


이런 그녀의 큰 문제의식의 핵심은 원죄의식이었다.

희망보다 좌절을 먼저 느끼며 살아온 삶.

자신에 대한 확신 없는 태도.

모든 사람과 대면대면한 관계만 있게 했고

친구도 원했지만 만드는 법은 몰랐던 삶.

저자는 그 허무에 대해 이렇게 짧은 정의 또한 내린다.

허무는 특별한 공허감이 아니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그것이 허무다 라고.


별거 아닌 듯 스쳐가는 느낌들을 통해

저자는 그녀가 못느껴 봤을 

삶의 의지란 걸 되살리고 싶어했다.

의지를 체험케 한다고 해서 특별하진 않다.

그냥 소소한 일로 작은 불씨를 만들어 가는 것.

그러다, 권해준 그림책들로 인해

그 불씨를 좀더 살릴 수 있을 단계까지가 끝.


어찌보면 이 이야기의 기승전결 속에서

드라마틱한 사연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와 같은 그런 상황들은 

오히려 울림있게 다가오는 사례로

돌아보게 만드는 평범 속의 비범 같은 사례 같았다.


오랜만에 원죄의식에 관해 읽으면서

저자가 풀어보는 원죄의식에 대한 해석이 

색다르고 진하게 와 닿았었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죄인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기를 잃은 삶.


그림책을 심리적 도구로써의 활용도 새로웠지만,

기실 이 책에 실린 저자의 시각에서나

다양한 사연에서 더 여러가지를 배웠던거 같다.

분홍빛의 표지 또한, 동화스럽게 꾸며져 있지만

동화책 표지 같은 이 표지 또한 

넘기고 들어가서 여러 삶들을 읽다보면,

잔혹동화 같은 각각의 사연들 속에서

애쓰는 이와 도와주는 이 모두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게 시작해 큰 것을 느껴보게 도와줄 수 있는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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