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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
임영주 지음 / 앤페이지 / 2021년 4월
평점 :

제목이 훌륭하다.
이 책제목을 보면서 지인 중 한사람에게
이 책제목 한번 잘 지은거 같지 않냐며
홍보 아닌 홍보문자를 하기도 했던 카피다.
책을 읽기 전이였는데 사실,
이렇게 눈길을 사로잡는 대개가 공감할 만한
좋은 이름을 달고나온 책을 만날 때면
하나 걱정되는게 생기곤 한다.
그건 실상 내용이 끌렸던 제목보다 못하다면
아님, 정말 잘지은 이름값도 못하는
상상 이하의 내용임을 읽으면서 알게 됐을 때의
아쉬움이나 실망을 사서 하게 될까봐.
결국 손에 쥐었다면 읽기는 할테니
최종적으로 크게 망설이게 될 만큼은 아니겠지만
좋은 책을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써
위와 같은 상황들은 딜레마다.
이런 얘기는 이쯤 각설하고,
그렇다면 이 책은 좋은 예로 남았을까 아닐까.
다행이게도 책제목 만큼이나
좋은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책의 서문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실려있다.
요즘은 다양한 심리학 이론들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이를 접한 부모의 수준도 높아져
자신의 아이를 대하면서
좀더 좋은 양육자가 되려는 부모들이 많은거 같다고.
하지만, 현실에선
부모와 아이는 적과의 동침 같을 수 있다고.
사랑하지만 불편한,
분노와 자책을 느끼게 하는
서로가 그런 서로의 상대방이 될 수도.
헌데, 이쯤에서 저자는 하나 넌지시 얘기해 온다.
부모보다 아이의 자책은 짧다고.
그러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키는
부모가 잡은 걸로 보는게 좋겠다고.
거기에 하나 더 뭉클했던건,
부모는 아이를 만들었지만
아이는 부모를 선택한 건 아니기에
둘 사이의 책임감은 아이보단 부모가 지는게
맞지 않겠느냐는 당연한 듯 잊고사게 되는
빼박 명제의 언급.
책에 실렸던 한 상담사례다.
4살 아이를 둔 엄마가 놀이터 미끄럼틀을 태워주러
아이를 데리고 갔다가 겪은 얘기가 그 사연이다.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이미 타고 있기에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한참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너무도 자기 아이의 차례가 오지 않자
먼저 놀고 있던 그 아이에게 사정을 말하고
미끄럼틀에 자신의 아이를 태웠다.
잠시 후, 먼저 놀고 있었던 그 여자애와
4살 아이의 엄마는 본의 아니게 말씨름을 시작하는데,
애엄마와 그 아이의 대화는 이랬다.
자신이 먼저 와서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었으니
자신에게 놀 우선권이 있다는 아이의 말.
애엄마는 그 아이와 더는 그런 대화를 하는게 싫어
놀이터에서 자신의 아이와 떠났다.
하지만 이쯤부터 애엄마의 고민이 시작됐는데
그 여자애와 그런 다툼 식으로 얘기를 하다가
결국 피하듯 떠나온 게 속상했고
한마디도 안지던 그 애가 괘씸했단다.
대충 이런 이야기 안에서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한편의 우화처럼 설명해 들어간다.
어떤게 정답이었을까는 읽는 독자에게 맡겨지겠지만
일단은 애엄마의 시각을 집어준다.
무슨 큰 생각의 오류를 바로잡듯 지적한 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녀의 기존 상식을 조금 비트는 정도랄까.
애엄마로써 두고두고 그 사건이 속상한 건
그 상대가 애였기 때문인 것도 있었을 것이고,
결국 그 자리를 뺏기고 떠났다는
찝찝한 기분 탓도 있을 것이라 봤다.
하지만, 조금 시각을 달리해 본다면,
당시 자신도 기다릴만큼 기다렸으니
이젠 상대가 양보해라 보다는,
우리 아이를 태워주고 싶은데
몇대 몇 정도로 너도 타고 우리 애도 타게
니가 이해해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절충식의 얘기를 먼저 해봤었음 어땠겠느냐고.
그리고 괘씸했던 그 아이도 결국은
아직 성인은 아닌 아이일 뿐,
그 아이의 대찬 구석이
애엄마를 민감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되려 그런 자질은 자신의 아이도
세상 살면서 가졌음 하는게 엄마의 마음일텐데,
그러려면 상황을 좀더 중립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을
만들어 가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조언이었던거 같다.
책엔 이런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 빼곡하다.
재판이라면 판례에 해당될 내용들 같기도 하다.
부모와 아이 중 한사람은 어른이어야 된다는
제목의 말 뜻은 읽어보기 전 각자가 유추해 보겠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곰곰히
한번 더 음미해 봤음도 싶다.
좋은 내용과 저자의 시각이 잘 구성된 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