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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ㅣ 걷는사람 시인선 20
이소연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2월
평점 :

간략하게 책의 내용을 먼저 읽어볼 기회가 있었고
그 짧은 만남에 그냥 끌렸다, 그 어두움에.
그러나 좋았다는 표현은 쓰기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다운된 상황일지라도
느껴봤던 어떤 일상의 감정보다도
훨씬 침잠된 느낌을 주는 시어들이었고,
시의 소재로 쓰였을 듯한 상황들도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끌렸다.
태생적으로 어두움을 좋아하는 성향도 아닌데
이 시집은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그리고, 시집만큼 이 책의 시인이 궁금해지는 바도 컸다.
영화나 다른 창작 장르의 사람들을 보면
어두움을 표현하는 사람이 의외로 너무 밝은 느낌이라 놀랄 때도 있는데
이 시집을 쓴 사람은 그런 반대의 상황을 떠올려 보기까진 어려웠다.
그런데 한번 보고 싶었다.
침잠의 언어를, 상처의 언어를 쓰지만
그 언어를 쓰게 하는 시간을 거친
실제의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상황이
마치 논픽션을 쓰듯 사실만을 기초했는지 아닌지 난 모른다.
하지만, 그저 느낌 상으로 시적 감수성이나 창작으로만 썼다기엔
내용이 살아있고 서술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철이란 제목에 넘버링을 붙여
연작시의 모습으로 쭉 이어지는 시들에선,
굳이 하나의 연관성은 없음에도
그 안으로 느껴지는 한사람의 감성은 느껴지는 듯 했다.
내가 시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시란 이렇게 짧은 지면, 짧은 문장들 속에서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감정교류가 일어나면
읽고 느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진짜 이 시인은 어릴적 철조망에 찢겨 생긴 얼굴 상처가 있을까.
지나가다 마주친 그 동네할아버지는 진짜 생존하는 인물이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들이 모두 소설감이라고 하지만
이 시집에 등장하는 시상들의 소재들은
쉽게 느껴지는 것들이 별로 없는듯 했다.
그리고 남다른 기억과 시인의 관찰력도
문학에 기인한 것인지 상처인지 잘 구분은 되지 않지만,
시인 이소연이 묘사한 시속 표현들을 보면서
내가 그녀라면이란 공감속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또하나, 궁금한건 전쟁에 참전해 본듯한 가족의 얘기가
과연 시인 본인의 것인지 의아했다.
시인의 나이로 볼 때, 전쟁경험을 가진 직계가 있는게
가능하진 않을거 같은데 말이다. 이또한 나는 모를 일이지만.
책 말미에 문학평론가의 평이 짧게 붙어있다.
초반 평가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실제 시 각각에 대한 느낌으로 들어간 후엔
평론가의 느낌과 내 개인적 느낌과는 갈리는 부분들이 많았다.
어느 부분은 나보다 훨씬 어둡게 평가하는 부분들도 있었고,
너무 하나의 감정선으로 엮는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난 여전히 이소연이란 시인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