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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의 삶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전작들 『낙원』 『바닷가에서』보다 여인들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아샤와 아피야의 서사를 통해, 재산권, 교육, 결혼, 출산 등으로 아프리카의 이슬람 여인들의 지위와 삶을 환유한다. 강력한 가부장제 아래서, 우탐시티리(‘숨기다’ ‘보호하다’는 뜻의 스와힐리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교육받는 것을 금하며, 가부장의 이익을 위한 결혼을 하고, 생명을 건 출산을 하게 되는 여성의 지위는 소유물에 불과하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특별하게도 안타깝게도 읽히지 않아서 이상했다. 너무나 많은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나에게도 굳은살이 박힌 것일까? 아피야의 유년시절은 『레미제라블』의 코제트를 연상케 하고, 아샤는 결이 다르긴 해도 『토지』의 서희를 연상케 한다. 누군가에게 구출되어야 하고, 잔뜩 독기를 품고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주민 역사와 수탈과 전쟁이라는 큰 범주의 이야기는 왠지 그녀들의 인생에서는 겉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들을 둘러싼 장막이 두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맞다! 논제를 작성하고 토론을 마친 후에도 지금까지 리뷰를 쓸 수 없었던 것은 일리아스나 함자와 같은 남자들과 달리 그녀들 인생이 당대 아프리카 상황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변화 없이 이전 시대를 답습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남자들이 겪는 사건에 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여성들의 삶과 전쟁과 혼란의 역사를 몸으로 통과한 남성들의 삶, 두 줄기로 읽어내게 된다.
탕가니카(탄자니아 본토) 지역은 1885~1916년 동안 독일 보호령 하에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독일령 동아프리카 방위대는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동아프리카에서 독일군과 더불어 싸웠던 아스카리에게는 훗날 바이마르 공화국 및 서독일로부터 연금이 지급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벨기에, 포르투갈, 영국에 분할되었고, 1916년 영국군의 탕가니카 점령 후 이 지역은 1919~1961년간 영국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이 소설은 독일과 영국군의 전쟁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립이전까지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독일의 동아프리카 지역 지배 모습은 일제 강점기 문화 통치와 닮았다. 잇따른 봉기로 독일인들은 폭력만으로 식민지를 제압해 생산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진료소를 만들고, 말라리아와 콜레라 퇴치 캠페인을 시작했다. 학교는 소수의 순종적인 엘리트만을 학생으로 받았었으나, 피지배인을 위한 기초 교육을 목적으로 개방했다.
“지금이야 누구나 ‘명랑’의 반의어가 ‘우울’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테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 ‘명랑’은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 기원은 1930년대 총독부의 ‘명랑화’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독부가 내세운 ‘도시 명랑화’의 경우, 이때 ‘명랑’의 반의어는 ‘불결, 불량, 오염, 범죄, 퇴락, 퇴보’등이 될 것이다. 그런데 1930년대에 ‘명랑’의 반의어로 사용된 말은 그 외에도 더 있다. ‘불온 지대 명랑화’나 ‘소리판을 명랑케, 난잡을 배격’과 같이, 이시기 ‘명랑’과 함께 자주 등장했던 말에는 ‘저급, 퇴폐, 난잡, 침울, 불온’등과 같은 말도 있었다. 즉 이시기 총독부가 내세운 ‘명랑’은 건전의 동의어로서 체제에 저항하는 것들은 억압하고 체제가 요구하는 인간만을 양성하기 위한 규율 담론이었던 것이다.(소래섭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70)”
이 시기, 서구 문명에 매료된 모던보이가 등장한다. 유럽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 문명을 동경하게 되는 일리아스와 같은 사람들이다. 문명을 식민지배에 사용할 때 사람들은 위치와 처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반응한다.
1차, 2차 세계 대전으로 이 대륙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독일의 지배에 저항하는 항쟁이 여러 번 일어났는데도 그것은 그저 들려오는 소식이다. 물론 일리아스와 함자의 경우 독일군으로 참전한다. 어쩔 수 없이 밀려들어간 것이라, 이 전쟁의 의미에 대해 자각하지 못한다.
일리아스가 자신도 모르게 제복과 군악대의 행진에 이끌려 독일군에 들어가게 된 것처럼, 문명의 겉모습은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한다. 독일군에서의 경험은 그 생각을 키울 뿐, 전쟁의 실상에 대해서는 눈이 가려진다. 다시 영국과 독일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독일군에 입대하려는 그에게 이 전쟁의 본질은 “두 침략자의 싸움일 뿐(70p)”이라고 하는 칼리파의 충고에 귀를 닫는다.
“난 독일인들한테서 친절함 말고는 겪어본 적이 없어요.(71p)”
그의 경험은 용병대의 잔인함이나 전쟁의 본질 따위를 무시하게 만든다. 전쟁이 끝나고 바다를 건너 독일로 간 그는, 자신이 역사의 어떤 지점에 서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나치를 위해 열렬히 깃발을 흔든다. 그 결말을 보지 못했기에 그는 후회조차 남기지 않고 생을 마감한다. 이들에게 역사를 통찰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우리가 지나치게 역사라는 매트릭스 안에 갇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함자는 『낙원』의 유수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이 탄자니아 지역을 식민지배하기 직전, 군대가 마을로 진군해 들어오는 장면을 바라보는 유수프의 복잡한 정체성과 불안한 동아프리카의 상황을 그리면서 이야기는 끝이 났었다. 함자(유수프)는 자신을 향해 문이 닫힌 상인의 집을 떠나 독일군대에 들어간다. 가족으로부터, 동족으로부터 배척당한 자들이 생존을 위해 향하는 유일한 집단이다. 여전히 눈에 띄는 외모로 인해 오해와 수모를 겪지만, 그가 군대생활에 적응해 가는 모습은 군대라는 집단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예상치 못했지만, 그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 살인적인 일과를 보내고 피로해져 함께 투덜거리는 것이, 명령에 노련하게 반응할 만큼 강해진 자신의 몸이 또한 지휘관이 요구하는 대로 정확하게 행군할 수 있게 된 능력이 자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기진맥진해 잠든 사람들의 몸과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의 퀴퀴한 냄새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농담은 야만적이었지만, 그야 모두가 겪는 것이었다. 함자는 튀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자기 몫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다. 작전을 수행하러 나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아스카리가 도착하면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들의 두려움에 짜릿하게 번지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98p)”
아스카리 부대에서 함자는 편견, 조롱, 폭행, 폭력에 시달린다. 그러기에 조용히 몸을 숨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오벌로이트난트(중위)가 함자를 가까이 두고 보호하는 방식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펠트베벨은 함자를 공격했고, 함자는 부상을 입는다. 독일군의 패색이 짙어지고, 부상당한 함자를 독일 선교사에게 맡기고 떠나면서 오벌로이트난트는 함자에게 실러의 『1789년 문학연감』을 남긴다. 독일인 목사는 함자가 그런 책을 갖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기고 전해주지 않는다. 나중에야 돌려주며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타인이 누리는 것들이 그에게 합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는 사회보장에 대해 혈세를 운운하는 말들을 듣곤 한다. 우리의 도처에 그런 시선들이 존재한다.
봉건적 사유, 식민지의 정체성, 전쟁과 같은 폭력은 개인의 삶에 비극을 만든다. 칼리파, 아샤, 함자, 아피야, 일리아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아갔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결혼, 가족, 친인척으로 묶여 있으나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일리아스는 역사의 희생자일까? 아니면 무사유에 대한 책임이 있을까? 그리고 함자에게서 “산후(産後)의 점액으로 뒤덮인 비겁 (『낙원』)”은 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