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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인의 사막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지도를 펼쳐놓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타타르인의 땅을 찾으려고 하면 실패한다. 어느 시대쯤일까를 생각해봐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국경의 요새, 멀리보이는 북쪽 땅, 타타르인 모두 메타포다. 서사로만 읽어도 충분히 의미들을 건져낼 수는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게 읽었다고 하더라도 책을 덮은 후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들이 살아난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조반니 드로고는 첫 부임지 바스티아니 요새에 도착한다. 그 요새는 상상하고 멀리서 보이던 것과 달리, 사람이 거주하기 힘들어 보이는 건물과 흉벽, 포대와 탄약고, 그 뒤에 돌투성이의 황량한 사막이 북쪽을 향해 나 있을 뿐이다. 그는 국경을 넘어 언제 올지 모르는 타타르인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요새를 떠날 날을 기다린다.
“그들의 행운과 모험, 그리고 적어도 각자가 한 번쯤은 경험할 기적 같은 시간이, 저 북쪽 사막으로부터 올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불분명해지는 이 막막한 우연을 위해, 군인들은 인생의 전성기를 요새에서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다.”(71p)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요새를 떠나고 싶어 하는 젊은 장교들과 달리, 드로고는 요새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 순간 “그는 어떤 고귀한 일을 해냈다고 믿으며 자신한테 생각지도 못한 선의가 있다는 것을”(89p) 발견한다. 그를 떠나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오래전 오르티츠 대위를 처음 마주했던 그날부터 정해져있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를 그 요새에 붙잡은 것은 그 세계의 부조리다.
누군가는 이 요새가 이 곳에 존재하도록 머물러 있어야한다. 타타르인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믿고. 그를 눌러 앉힌 욕망도, 라차리와 앙구스티나 중위의 죽음도, 오지 않는 타타르인을 기다림도 부조리하다.
상관 오르티츠 대위는 말한다.
“이곳은 뭐랄까, 유배지 같은 곳이지. 그러니 어떤 분출구를 찾아야 할 필요가,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할 필요가 있어. 어떤 자가 그런 생각을 떠올렸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타타르인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네. 맨 처음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네.”(211p)
오르티츠 대위는 퇴임하면서 드로고에게 이년 안에 전쟁이 일어날테니 떠나지 말라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니길 바랐다. 사실 그는 드로고 또한 자신처럼 군인으로서 큰 행운을 누리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길 빌었다. 그러지 않으면 억울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드로고에게 우정을 느꼈고, 그가 잘 지냈으면 했다.”(248)
인간의 본래적 감정일까? 아니면 세계에서 길들여진 이기심과 시기심일까?
상관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을 그는 헛되이 기다렸고, “너무나 오랜 세월 아침마다 변함없이 황량한 그 저주받을 평야를 봐왔지만”(141p) 부하들에게 그 진실을 알리지 않는다. 나이가 든 드로고 역시 자신이 처음 요새를 찾아왔을 때 오르티츠와 만났던 곳에서 새로 부임하는 모로 중위를 만난다. 그 역시 중위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못한다.
요새의 군인들은 ‘오멜라스의 소년’이다.(어슐러 르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마을의 행복을 위해 지하 감옥에 묶여 있는 소년) 세상의 부조리는 내가 빠져있는 덫을 타인이 피해가도록 알리지 않고, 그렇게 그것을 묵인하고 세습하며 집단을 존속시킨다.
진실을 알았음에도 드로고는 시시때때로 불안에 시달리며, 일상의 익숙한 리듬에 젖어 들어간다. 그리고 “드로고는 삶의 중요한 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환상을 놓지 않는다. 그는 결코 오지 않은 자기의 때를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241)
많은 시간이 흘러 마침내 적이 왔을 때, 그는 노쇠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역시 부조리하다. 그는 요새 밖으로 옮겨져 죽음이라는 진정한 적을 기다린다. 어쩌면 이 순간만은 진실하다. 요새라는 세계에서 그를 사로잡았던 희망과 환상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순간이다.
인생에서 올 것만 같은 약속된 그 무엇,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시대가 만든 허상일 수 있다.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그것이 원하는 때에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마치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보여 진다. 세계가 만들어낸 신기루다. 가장 확실한 사실은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마지막에 내가 기다린 것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미 비껴갔을까? 아직 오지 않았나? 아님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인가?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이 세계가 약속한 영광은 어쩌면 허상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불안감은 커지고, 아직 오지 않은 그 무엇은 실체조차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 기다림들의 집합이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그 ‘오멜라스의 소년’일지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번 새로운 체계를 따르고, 비교조건을 찾으며, 상황이 더 나쁜 사람들을 보고 위안 받을 필요가 있었다.”(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