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어느 불량 가족의 진화가 시작된다.'
 이 한마디 만으로도 이 책의 중심내용은 정리된다.
 여느 아이들과 다름 없이 하고 싶은 것 많고 10대의 그 나이에만 가능한 일들을 포기하지 않는 여울이. 봤다하면 욕만 해대는 엄마가 다른 언니나 병을 제때 치료 받지 못해 부작용으로 때때로 괄약근 조절을 하지 못해 민망한 실례를 하는 역시나 엄마가 다른 오빠에게나 별로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여울은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코스튬플레이'를 통해 푼다.

 '코스튬플레이'는 만화나 게임의 주인공을 모방하는 취미 문화인데, '복장'을 뜻하는‘코스튬(costume)’과 ‘놀이’를 뜻하는 ‘플레이(play)’의 합성어이다. 일본에서 유행한 문화가 한국의 일부 마니아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는 취미다. 때때로 사진으로 보아왔기에 낯설지는 않지만 실제로 주위 사람이 한 적은 없으므로 여울이의 취미의 세계는 역시나 모르는 게 많다. 책 속에서 여울이를 통해 코스튬플레이의 세계를 알게 되니 좀더 친근함이 들었다.

 넓은 집에 살면서 비싼 월세를 내는 여울이 집의 사정은 남이 보는 것과 다르게 형편이 좋지 않다. 아빠는 사무실까지 접고 집에서 가족들을 동원해서 일을 하는 데다 한때 잘 나가던 삼촌은 하루 아침에 망해버려 가족까지 모두 외국으로 나간 상태다. 건강까지 나빠진 삼촌은 갈 곳이 없어 결국 형네 집, 그러니까 여울이 아빠의 집에 들어와 살고 있다. 그는 아직도 주식에 미련을 못 버리고 남은 돈 모두를 탕진한 상태며 형이 시키는 잡다한 일들에 대한 불만도 많다. 형의 일을 해줘봤자 무보수라 조금 억울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여울이의 언니는 고3 수험생인데도 불구하고 아빠가 시키는 문서작성일 때문에 불만이 가득차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말해도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는 무심한 아빠 때문에 결국 집까지 나가게 된다.

 원래도 티격태격하던 가족들은 언니가 나간 후로는 더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집안 일에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여울은 이 상황에서도 코스튬플레이 동호회에서 알게 된 세바스찬에 대한 짝사랑 때문에 마음을 졸인다. 할머니는 매일 같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양로원에 하루빨리 들어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집안일을 해줄 사람은 할머니 뿐이라 아빠는 할머니에게 가족과 함께 얼굴 보며 사는 게 좋지 양로원이 뭐가 좋으냐며 핀잔을 던지며 들어주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아빠와 삼촌이 한바탕 싸우고 삼촌이 집을 나가버리고, 이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집안 문제로 스트레스가 쌓인 오빠가 마시면 안되는 술을 마시고 와서 이불에 실례를 한다. 여울이는 여울이 대로 학교에서는 자신이 복사하여 팔던 식권이 들통 나서 선생님들과 매점 주인에게 불려가 혼이 나고, 평소때 아빠의 지갑에 손을 대던 버릇이 할머니의 지갑까지 옮겨가 들켜버리지만 용케 핑계를 대어 벗어난다. 언니와 삼촌, 오빠가 차례로 집을 나가버리자 가세도 더 빨리 기우는 듯 하더니 결국 집안 곳곳의 물건에 빨간 딱지들이 붙기 시작한다. 나만 믿으라고 하던 아빠는 설상가상 감옥에 갇히게 된다.

 붙어 있으면 으르렁대고 괴로운 가족들이 생각보다 많은 세상이다. 돈을 벌기 어려우면 살기가 어려워지고 그러다보면 옆에 있는 사람이 짐같이 느껴진다.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엔 증오와 미움만 가득하고 가족의 의미는 퇴색한다. 오히려 남보다 못한 게 가족이라는 말이 요즘에는 더 많이 회자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TV와 책에는 그런 사회의 흐름 보다는 이미 옛날이 되어버린 생활상을 미풍양속으로 치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불량가족 레시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처럼 사실적이고 호소력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놀란 점은 교훈과 감동이 아닌 깨달음의 미학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청소년 문학상이라고 모든 것이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 또한 새로웠다.

 반항 심리가 글자 곳곳에 베인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던가 '트레인스포팅'의 불량스러움을 [불량가족 레시피]에서는 한국적 정서로 순화시켰다.

 각자 이기적이고 각자 외롭고 각자 힘든 가족들이 나오는 이 책 주인공들의 모습의 일부는 나 자신, 내 형제, 내 부모, 내 친척들을 생각나게 만든다.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류은이'는 그렇지 못했던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해본 경험을 되살리게 한다.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렇듯 한명 한명 마다 지조 있는 캐릭터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대표 캐릭터이기도 하다.  
 엄마가 없는 것에 대한 결핍, 환경의 결핍에 의한 욕구불만족, 각자 자신이 처해진 상황끼리 충돌하는 딜레마...

 여울이 가족의 진화가 과연 뭉쳤을 때 힘을 발휘하도록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여울이는 이제 좀더 책임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목적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자신이 꼭 해야 되는 일이 있으므로. 티격태격 해도 아직 여울이의 가정에 희망이 있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만일 그것마저 가능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결말은 우울해졌을 것이다. 학대와 폭력이 가정사에 늘 일어났던 일이라면 대번에 이 가정은 흩어져야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읽는 독자들은 자기 가정이 이 정도는 아니라며 안심하고 스스로 위로할 것이다. 그리고 책 속의 주인공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겠지.

 하지만 여울이 가정에 있는 결핍은 말 그대로 결핍과 결핍의 더미들이다. 분명 행복하지 않는 요소들로 가득차 있고 불만족스런 상황들의 연속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 역할자로써 간절히 필요하고, 각자의 노력과 배려들이 있다면 그들이 모은 힘의 아귀들이 알맞게 맞춰 들어가 더욱더 단단해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일단 결말을 보기 전까지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이 책을 보면서 모든 독자들은 내 가족의 자서전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음성
타리에이 베소스 지음, 정윤희 옮김 / 살림Friends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운이 전학 오자 아이들은 관심을 보인다. 모든 아이들과 두루 잘 지내던 시스 또한 운과 친해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운은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운 또한 인기가 많은 시스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막상 다가서는 시스를 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운은 시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려고 한다. 친구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던 일이 익숙했던 시스에게 운은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에 초대하고, 시스는 운을 만나러 가는 길 내내 부푼 마음으로 설레인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운은 여전히 미묘하고 어색함의 분위기로 시스를 대하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려 한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든 시스는 운의 비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운은 갑자기 시스에게 함께 옷을 벗자고 권한다. 재미난 놀이라도 할 것 같아 흥미를 느낀 시스는 운과 함께 옷을 벗지만 곧 운이 어떤 재미난 일도 없이 다시 옷을 입자고 하는 바람에 김이 새버린다.


 다시 어색함과 불편함이 감도는 분위기를 느끼는 사이 운은 다시 비밀이야기를 털어놓으려 하고 시스는 갑자기 두려움이 생겨버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운은 실망한다. 그리고 다음날 도저히 시스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학교를 결석하고 얼음성으로 간다.


 이야기보다는 사춘기 10대들의 예민한 감정과 이해하기 어려운 감성들을 미묘하게 표현하는 데 집중한 [얼음성]은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운 것 같다. 상징과 빗댐, 느낌과 묘사언어 등의 음악적 요소와 언어에 의한 이미지 시각 등 회화적 요소에 의해 독자의 감각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이 설명보다 더 많이 차지한다. 그렇다보니 자칫 소설의 객관성보다는 시의 주관성에 이끌려 읽을 소지가 많은 책이다.


 이야기의 재미를 원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느낌과 표현의 재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개성이 강한 글로 인상에 남을 것이다.


 운이 사라지자 시스는 자책감과 깊은 절망에 빠져 한동안 어두워진다. 긴 겨울이 지날 즈음 아이들과 얼음성으로 가게 된 시스는 아직도 불쑥 솟아있는 얼음성을 보고 알지 못할 공포에 떨며 불안해한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마음을 지닌 채 아이들과 얼음성 위에 있던 시스는 곧 얼음성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아이들과 안전한 곳으로 간신히 피한다. 그리고 무너지는 얼음성을 보며 마음 속에 있었던 죄책감과 응어리들도 깨어지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없어진 운을 생각하기 위해 더는 어두워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운을 영원히 잊지 않겠지만 빈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까지 차단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아픔과 부재, 잃어버림과 우정에 대해서 ’타리에이 베소스’는 독특하고 색다른 느낌으로 표현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미묘함은 독자에게 낯선 감을 주기도 하지만 작가의 강한 개성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레니엄 1부 세트 - 전2권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책에는 매력적인 캐릭터 미카엘과 카리스마 짱인 리스베트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몇몇 개성이 강한 캐릭터가 나오긴 하지만 이 두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심어둔 이야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결국 해결될 일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또다른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식의 독특한 구조를 가진 이야기 체계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체계에서 또 한번의 재미를 느끼며 사람들은 더더욱 이 책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미카엘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보통 남자와 다를바가 없지만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항상 옳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에선 다른 남자와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막는 것에 대해선 우유부단함이 느껴지는 데 그것에 대해선 여자들이 별로 좋아하진 않을 것 같네요. 하지만 남성으로 보지 않는다면 한번 쯤 친해지고 싶은 캐릭터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또 하나의 매력덩어리 리스베트는 작은 체구에 비상한 머리를 가진 아픔을 지닌 이십대 중반의 여성이기 보다는 소녀같은 이미지로서 책에서 이 인물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이야기가 되지 않은 만큼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 인물들에게 멋지게 한방 시원하게 날릴 줄 아는 대담함과 용기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된 많은 상처와 아픔으로 인해 그것과 맞써서 싸우는 게 아니라 뒤에서 공격할 수 밖에 없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신을 가진 불행한 여성입니다. 그렇게 환상적인 콤비가 만났지만 미카엘은 43에 리스베트는 겨우 25살일 뿐입니다.

  책속으로 들어가보면 또 다른 인물들 미카엘의 친구들이 나오는 데 그 인물들 중 에리카가 가장 돋보입니다. 에리카는 미카엘의 옆에서 모든 것을 돕죠, 한국인의 정서로는 여기서 나오는 남녀관계는 사실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책의 전반적인 내용에 애정관계선은 중간중간 너무 심각하게 책의 방향을 이끄는 것에서부터 조금 방향을 트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어줘 실제감과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흥미를 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미카엘은 반예르 그룹이라는 예전에는 스웨덴의 잘 나가는 큰 기업이었지만 이제는 기울어져 가는 한 가문의 헨리크부터 의뢰를 받게 됩니다. 의뢰의 내용은 다름 아닌 어렸을 때 사라져 버린 손녀딸의 살해범을 찾아달라는 것! 그는 그런 의뢰를 받지 않는다고 단칼에 거절했지만 귀가 솔깃한 몇 가지 제안을 내걸고. 일단 손해볼 것 없다고 생각한 미카엘은 승낙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야기는 아주 천천히 전개가 됩니다. 영화를 볼때처럼 숨넘어갈 긴박감이 있지 않지만 가면 갈수록 책을 덮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렇다해도 결과부터 막상 보고 싶지는 않을 정도로 책은 전체적으로 확 끌어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지루할지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해도 결코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는 않은.. 참 신기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전도 있으니까 그런것을 찾는 사람에게도 결코 실망을 시켜주진 않을 것입니다.

 1부작을 덮고 나서 제가 한 생각은 역시나 2부작과 3부작을 언제 나오나였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선 출간이 안 되었더군요. 2부작은 11월에 3부작은 내년에 출간되는데 그때까지 기다려야 된다니 참 ..
 작가가 자신의 노후대책을 위해 썼다고 농담식으로 말했다는데 정말 일대의 잊지 못할 소설을 쓰고 안타깝게 결과도 보지 못하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에 대해 저는 더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소설처럼 살아생전에 역시 기자였고 밀레니엄이라는 잡지사의 편집자이기도 했는데 소설속에는 자신의 모습이 많이 엿보인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는 생전에도 언론인으로써의 사명을 다 하다 보니 테러의 위험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소설로 인해 벌어들인 인세를 모두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살아있을땐 거의 보지도 않았던 말로만 가족들인 그들에게... 참 비운의 작가인듯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의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CSI 미드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과학수사라는 분야까지 함께 인기가 높아졌다. 이전에는 미흡했던 증거 축출 능력들이 시대가 바뀌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증거들을 모을 수 있는 방법들이 생긴 것이다. 발로 뛰고 직감에 의존하며 추리능력을 발휘해야 했던 옛날 방식에 비해 오늘날은 실험실에서 부검과 검식들을 통해 증거들을 찾아낸다. 이때 경찰의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거나 사인과 사망경위를 밝혀 인권을 도모하는 일을 주업무로 하는 학자를 법의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갖가지 능력으로 증거들을 모으는 방식은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범죄를 근절하기 힘든 건 그만큼 범죄 또한 함께 발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설 속 여주인공 '케이'가 말했듯이 증거들은 아무리 많아도 변호사들이 자기들의 이득에 맞춰 어떻게 해석하고 알리느냐에 따라 범죄에 대한 재판의 결과는 달라진다.
 

 

 이런 제도적 시스템 문제에 대한 견제로 법정과 관련된 사람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판단의 기회를 주는 배심원 제도가 있지만, 이마저도 그들을 어떤 절차에 따라 뽑는지 그리 똑똑하지 않는 사람만 모아놓은 오합지졸이라 오히려 재판의 질이 떨어진다. 이런 사실을 비판하는 속내가 케이의 말에서 느껴진다. 결국 증거는 많아도 변호사들이 누구 편에 서서 침발린 입으로 잘도 변호를 하면 그에 따라 증거가 해석되게 되어 버리고 배심원 또한 소신의 판단이 아닌 변호사의 말빨에 의해 판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케이가 여자가 선택하는 직업으론 생소한 법의관의 자리에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은 그녀가 맡게 되는 사건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현실감과 생생함을 지니고 있어 캐릭터에게 몰입하게 만든다. 얼마전에 끝난 '싸인'이라는 드라마에서 한국에선 처음으로 '법의관'을 소재로 했다.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실제로 한국엔 법의관이 19명밖에 되지 않고 여자 법의관은 1명이라고 하는 데 그래서 그런지 이런 직업 자체가 한국에선 생소해 보인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법의관들은 외국에서 흔히 일컬어지는 법의관의 모습보다 활동하는 범위가 넓은 것 같다. 퍼트리샤 콘웰의 [법의관]에선 그녀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의학적인 소견 말고는 어느 하나에도 참견하지 않는 것에 비해 '싸인'에 등장하는 법의관, 특히 '박신양'과 '김아중'은 수사까지 하고 바디에 있는 증거가 아닌 범인이 가진 증거들을 직접 찾으러 다닌다. 위험을 무릎쓰고 범인과 직접 대면까지 하고 말이다.

 

 

 콘웰의 [법의관]에서 주인공 케이는 살인사건이 있을 때마다 불려가 자기가 맡은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되는 것에 비해 '싸인'의 법의관으로 나오는 박신양과 김아중은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한다. 형사로 나오는 '정겨운'은 정작 별로 하는 일이 없고. 한국에선 법의관들이 정말 드라마처럼 하는 일이 더 많은 것일까?

 

 

 콘웰의 [법의관]에선 확실히 수사는 경찰청 반장 '마리노'가 다 하고 사건의 치정관계 또한 그가 조사한뒤 케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일러주는 식이다. 케이가 연쇄 살인범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당할 때도 그녀를 구해준 사람은 바로 눈치 빠른 경찰 '마리노'였다. 마리노가 그다지 호감가는 스타일은 아니라 법의관인 케이와는 사건 때문에 언제나 얼굴을 마주치면서도 늘 껄끄러운 관계다. 개인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그러나 사건의 실마리를 잡고 여러 개의 끊어진 실들을 연결하고 매듭짓는 건 마리노였다.

 

 

 케이는 사건에 얽힌 실 몇가닥을 지니고 있을 뿐, 거기까지가 그녀의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래서 확실히 콘웰의 [법의관]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주어진 역할과 임무가 있고 거기에 맞게 제 전문성을 발휘하기에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헛점을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매끄럽게 진행된다. 억지로 이 사람이 이렇게 해야 되고 저기에 있어야 되고 왜 저 사람이 저렇게 해야 되는지 아귀가 안 맞아들어간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에 비해 '싸인'은 왜 국회의원 딸이 저기에 있고, 저 여잔 제 정신인가, 몇번의 연쇄 살인에도 잘도 피해가던 살인범은 뜬금없이 하필 검사 머리를 때려야 했었고 이 살인범이 쓴 게임시나리오를 박신양은 그렇게 몇일동안까지나 읽을 정도로 긴 구성인가 등등 여러 가지 어설픈 부분들이 많았다. 게다가 막방에선 서프라이즈한 편집까지. 깜짝 놀라게 했다. ^^; 미드가 여러 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면, 한국 드라마는 한두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그 한 두명이 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게 아닐까.
 
 콘웰의 [법의관]은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책이 두꺼운 편인데 그다지 두껍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슬슬 읽혀진다. 법의관이라는 전문적 분야라고 해서 어렵다거나 상투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몇가지 전문적 의학적 사실들은 더더욱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개인적인 흥미분야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상세하게 알고 있는 콘웰이 만들어낸 소설이라 그런지 주인공 '케이'가 콘웰과 외형적으로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형적으론 내가 그녀를 잘 알지 못하기에 판단할 순 없고. 그래서 어딘가에 케이라는 인물이 정말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에 나온 인물들이 나오는 다음 편 이야기도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세트 - 전2권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영웅열전]에는 19명의 영웅들이 나온다. 주로 영웅이라 함은 한 나라를 지키는 강한 싸움꾼과 비슷한 이미지인데 따지고보면 영웅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운 사람도 많이 나온다. 특히 2권에는 주로 철학자, 웅변가들이 많이 나오는데 '디오게네스' 가 그 속에 낀 것이 제일 인상 깊다. 


 
 비록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가 '나도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했을지언정, 디오게네스의 영웅적 이미지로써가 아닌 조의조식하는 자신의 삶에서 또한 지조를 잃지 않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 같은 삶'을 산 철학자들이라는 뜻으로 '퀴니코스 철학자'로 불리는 디오게네스는 형편이 구차스러워 값싼 푸성귀를 구해 깨끗이 씻어 먹고는 했다고 한다. 이것을 본 유복한 친구 아리스티포스가 지나가다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고개 수그리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호의호식할 수 있는 것을..."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조의조식하는 법을 조금만 알면 고개를 숙이고 알랑방귀는 뀌지 않아도 되는 것을..." 91p

 

 

 디오게네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음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모습만으로 그를 판단하기 힘든 것은 기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절대 긍정에 이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절대부정이 그들의 기행의 긍정적 의미인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가 바로 앞에 인사를 하러 와도 태양을 가린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은 건 틀림없는 사실인 듯하다. 부와 명예는 잃을 게 많으니 자유를 누릴 순 없지만 자신은 그런 것 대신 자유를 누리는 걸 택한다는 디오게네스는 촌철살인적인 짧은 명구를 남기며 역사 속에 강한 존재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파르타. 라고 하면 왠지 우락부락하고 무식이 좔좔 흐르는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지만 이외의 스파르타를 책 속에서 볼 수 있다. 스파르타하면 뤼쿠르고스가 빠질 수 없다. 그는 교육의 이점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신체단련을 위해 사람들을 강하게 훈련시켰다. 스파르타인들은 촌철살인의 짧은 문구를 즐겨 썼고 횡성수설하는 긴 말보다는 침묵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하는 체육경기에서는 알몸으로 참가해야 했고 후에는 여성 또한 이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알몸으로 참가해야 했다. 그들은 알몸을 내보여야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영화 '300'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아이를 두 세명 놓을 때까지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얼굴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는 아이를 놓기 위해 성관계를 하는 것이지 관능적 사랑은 오히려 해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파르타인들은 스파르타에는 간통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스파르타의 헬레나라고 해서 헬레나가 스파르타인이었나.. 하고 조금 헷갈렸는데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정략결혼 상대자였다는 걸 알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헬레나는 스파르타인이 아니었기에 파리스와 눈이 맞았다. 스파르타인은 간통이 있을 시에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답은 바로 트로이의 운명을 보면 알수가 있을 것 같다.    

 

 

 금욕적이고 침묵적이며 수사학이 발달되었지만 향략적 예술을 즐기지 않은 민족이 스파르타다. 그러다보니 후손들이 그들이 남긴 유적을 볼 때 다른 선대들이 남긴 문화유산보단 많이 심심한게 사실이다.

 

 

 영웅이미지보다는 철학자 이미지에 어울리는 퓌타고라스는 윤회설을 믿었다. 그는 육체는 한번 없어지면 영원히 사라질 것이나 영혼은 영혼하며 원래 있던 곳을 떠나면 다른 집을 찾아 들어가 거기에 다시 거한다고 했다. 따라서 살생은 살인이나 다를 바가 없으므로 채식주의를 선호했다. 퓌타고라스는 서아시아, 인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만난 동방박사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바가 많을 것이다. 인도를 비롯한 동방에서 불교사상이 유행했고 불교사상에서 또한 윤회설과 살생을 금하는 항목이 있다. 이는 퓌타고라스를 통해 서양사상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퓌타고라스의 그리스 이름이 '퓌타 고라스', 영어 이름은 '파이테거래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붓다 구루스'인 것을 봐도 왠지 심상치 않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알렉산드로스가 세계를 정복하면서 서양문화를 동양에, 동양문화를 서양문화에 서로 융합시켜 헬레니즘 문화가 발전한다. 이 문화 다음으로 헤브라이즘 문화가 뒤에 등장하는데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서술은 끝마치지 못한 상태다. 어쨌든 헬레니즘 문화를 통해 서양과 동양에서는 여러가지 중복되는 설화와 전설, 신화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그리스와 로마 역사를 중심으로 회자되는 에피소드마다 그와 비슷한 일례의 동양 역사의 중심 인물의 에피소드를 곁들이기도 한다. 


 

 탈레스의 일화는 1권의 솔론의 이야기를 담은 164,165p와 2권의 탈레스의 이야기를 담은 71,72p에 중복 에피소드가 나와 있다.

 

 독신으로 살던 텔레스가 친구인 솔론이 방문해 결혼을 할 것을 종용하자, 하인을 시켜 솔론의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꾸미게 한다. 이말이 거짓인 줄 몰랐던 솔론은 망연자실해 울부짖지만 곧 탈레스를 통해 진실을 전해 듣게 된다. 탈레스는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을 기르지 않는 까닭은 자식의 죽음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마도 자식이 있는 한은 항상 염려와 걱정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탈레스는 알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늘을 보며 사유에 잠기며 걷다 물에 빠진 에피소드가 있었던 만큼 탈레스 또한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피라미드에 올라가지도 않고 그 길이를 잰 것으로 유명하다. 막대기를 꽂아 그림자의 길이를 잰 후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보고 피라미드의 길이를 알아낸 것이다.

 

 

 책 속 인물들 중 가장 안타까웠던 인물은 그라쿠스 형제였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다 귀족과 보수 원로들에게 맞아 죽었다. 소수인 그들보다 국민들이 다수인데도 그 당시 국민은 그다지 자기 의사를 내비치고 그 의사를 반영하는 사람을 지지할만큼 의지나 의식이 깨어 있지 않았다. 그라쿠스 형제를 다수 국민들이 몸소 지지하고 들고 일어났더라면 자신들도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었을텐데 아쉽게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최고의 보물이 아이들이라고 말하던 그라쿠스 형제의 현명하고 자애로운 어머니 '코르넬리아' 또한 이 시대에 흔하지 않는 훌륭한 여성이자 어머니로 후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 밖에 아리스테이데스, 한니발과 스키피오, 카이사르, 퓌로스 같은 영웅들과 철학자, 현자에 가까운 소크라테스, 플라톤, 키케로, 포키온,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사랑한 남자 알키비아데스가 나온다.

 

 

 페리클레스가 스파르타와 내통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자 아테나이인들은 페리클레스를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그를 더욱 신용하고 그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페리클레스가 그런 공작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바로 적이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저자는 '우리가 역사를, 혹은 역사로부터 배워야 하는 까닭은 이로써 자명해진다'고 말한다.

 

 

 아직도 역사를 재현하는 사태들이 많이 일어난다. 지금 일어나는 어떤 일들을 보면 역사에 일어난 일과 비슷한 사례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기는 커녕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는 그저 재미와 흥미거리가 아닌 때로는 교훈과 지혜의 역할도 한다는 것을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료와 그림들로 보는 책을 만들고자 했던 작가가 심장마비로 일찍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완전하게 완성되지 못한 책을 덮을 때쯤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느껴졌다. 후속작도 궁금해짐은 더할 나위 없다. 운명의 매정함이 얄미워진다. 그러나 작가님의 팬으로써 삼가 고인의 명복을 차분히 빌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