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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천 명의 백인 신부를 우리에게 달라. 그러면 우리는 당신들에게 말 천 마리와 평화를 줄 것이다."
1874년 9월, 샤이엔 족의 대족장 리틀 울프가 미국 제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에게 제안한 평화안이다. 물론 실제론 미국은 이 평화안을 거절하고 지네들 원하는 대로 했지만, 이 소설은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백인 상류층인 쟁쟁한 집안에서 자라난 메이 도드는 철도 회사 간부인 부친의 회사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에 불과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안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그녀는 그 남자와 혼전 동거를 하고 아이까지 놓는다. 그 시대의 가뜩이나 보수적인 미국 상류층에서 이는 수치스러운 일로 찍혀 가족으로부터 외면 당한 그녀는 곧이어 남편에게도 버림 받고 아이까지 뺏기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녀가 영문도 모른 채 갇히게 된 곳은 정신 병원이었다.
총명하고 지성적인 그녀는 멀쩡했음에도 그 곳에서 부친의 압력을 통해 의사들이 쓴 부정한 진단서에 의해 매번 병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고 일부 의사들은 종종 그녀를 찾아와 성적으로 욕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는 실날 같은 희망이 보이는 소식이 전해오고, 바로 미국정부의 프로젝트였다. 인디언 부족들에게 자발적으로 지원한 미국 여성들을 결혼시켜 아이를 놓을 때까지만 함께 살면 자유가 되는 조건이었다.
메이는 함께 지원한 백인 신부들을 호송하는 기차에서 존G 버크 대령과 만나게 되면서 짧지만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필 그런 상황에서 사랑에 빠진 그들은 각자 약혼자가 있는 처지라 그대로 헤어지고 만다. 문란하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그녀를 도와 함께 백인 신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간호사 겁 많은 마사는 메이 옆에 꼭 붙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토로한다.
이 책은 편지 형식이 되었다가 일기 형식이 되었다가 일인칭 시점이 되었다가 종종 전지적 시점이 되기도 한다. 사건들을 진행하는 방식이 마치 드라마적 구성이라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가도 긴장을 늦추는 식으로 흥미진진하게 이끌어나간다. 소재부터가 신선하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인디언 사회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시각까지 독특한 관점을 시사해준다.
샤이엔 족이 하필 말과 백인 신부를 교환 조건으로 건 것부터가 문명 사회와 비문명 사회의 구별성이 엿보인다. 이 책에는 일방적으로 인디언족의 편을 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백인 사회를 옹호한 것도 아니다.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문명 사회를 문명 사회의 시각으로 견주어서는 안되는 주의점도 깨닫게 해준다.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문명 사회와 확실히 다르다. 그들은 사악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선함이 없이 테두리 안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자연에서 적당한만큼만 취한다. 그 전 세대에서부터 이어져 왔던 관습은 바뀌지 않고 세습되고 이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라 건의를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극히 미신적이고 오히려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까지 세습되는 관습은 문명 사회 사람들이 보기엔 끔찍하고 악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인디언의 살아가는 방식은 동물에 가깝고 동물보다는 더 끔찍한 축제적 살육이 추가된다. 이런 근본 없는 행각들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출저는 알 수 없지만 전쟁을 통해 인간의 본능이 되살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백인 신부들은 인디언 사회의 야만성에 경악하지만 반면에 이런 모습들을 제외하면 그 곳에서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따뜻함과 행복감도 느낀다.
미국과 미국인들이 인디언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 책은 비판의 형식을 버리지 않는데, 금광 때문에 인디언땅을 빼앗는 미국인들의 이기심과 비인간성을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총으로 죽여대는 군인들의 모습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 죄도 없는 소년을 총으로 쏘는 버크 대령의 모습, 자신의 아이와 함께 도망가다 함께 총에 맞아 죽는 여자들을 밟고 죽여대는 군인들의 모습을 대비시켜 효과는 더 극화된다. 게다가 미국인들은 인디언과의 거래에서 인디언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생계를 차단시켜놓고 일방적인 거래를 한다. 미국인들의 문명에 영향을 받은 혼혈 인디언들의 무분별하고 엽기적인 행각들도 미국을 비판하는 데 한 수 거든다.
결국 죽는 메이와 그녀의 살아남은 딸. 후세에 남은 인디언과 혼혈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에필로그 형식으로 정리되긴 했지만 뭔가 아쉬운 느낌이다. 인디언 사회는 결국 없어졌고 천명의 백인신부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는 시작도 해보지 못했고 소설 속에서는 위기에 부딪혔다. 결국 백인 문명의 승리인가.
당당한 여장부들이 많이 등장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페미니즘적 성격이 두드러져 보이는 당당한 여성 메이가 주인공인 걸 보더라도 가부장적 사회, 보수적 사회에 도전장을 내민다.
'이 거대한 싸움에서 살아남은 건 아이들 뿐이었고 그걸로 충분했다. 아이들에게 축복이 있으라..'
이는 아직도 화합이라는 희망에서 싹트고 있는 씨앗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그러니 이 씨앗에 희망을 건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마지막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종종 꼭 그래야만 되는 상황인가 하는 아쉬운 장면도 있었지만 소설은 작가가 원하는 대로 가리라. 라는 원칙에 의해 독자는 거기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생각엔 인디언의 고지식한 면도 자신들의 멸망을 불렀고, 미국인들의 욕심 많고 뻔뻔한 제국주의 앞에는 과연 어떤 것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1/0917/pimg_76387616669729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