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궁전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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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서 태어난 악마가 누군가를 쫓는다. 도망치는 남자는 갓난 쌍둥이 아이 두명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뛴다. 쌍둥이 아이들은 한 중년의 여성에게 맡겨진다. 이 중년 여성에게서 간신히 목숨을 구원 받은 쌍둥이에게는 가혹한 운명의 미래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하야 이 여성은 결국 이 쌍둥이들을 위해서 이 둘을 생이별을 시킬 수 밖에 없게 된다.

 

 한명은 이 여성의 손에, 다른 한명은 캘커타의 고아원 원장의 손에 키워지게 된다. 여성의 손에 키워진 소녀의 이름은 쉬어, 고아원에서 자라 원장이 붙여준 이름을 가진 소년은 벤. 벤은 인자한 원장 ’카터’의 보호 아래에서 고아원 친구들 이언, 시라지, 이소벨, 마이클, 로샨, 세스와 어울리며 ’차우바 소사이어티’라는 우정으로 똘똘 뭉친 클럽을 결성하고 아지트를 만들어 그 곳을 ’한밤의 궁전’이라고 이름 붙인다.

 

 소설의 진행은 바로 이 한밤의 궁전에서의 추억으로 미래의 이언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소설의 중심부는 벤과 쉬어의 불행한 운명과 그에 맞닿은 슬픈 과거의 이야기이다.

 

  성장소설을 청소년뿐만 아닌 성인도 읽을 수 있게 쓰고 싶었다는 작가는 왜 벤과 쉬어가 결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결말을 만들었을까. 이 소설은 따지고보면 해피엔딩이 아니다. Bad ending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결말은 시원스럽지 않다.

 

 쉬어는 죽음과 키스하고 벤의 행방은 알 수 없다. 게다가 어릴때 비밀결사대를 만들어 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일이 무슨 일이건 간에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고 서로를 지켜주었던 죽마고우들은 흩어져서 제각각 살다가 죽거나, 아니면 벤과 쉬어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 직후부터 현재까지 만난 적 없이 그저 소식으로만 들을 뿐이다.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런데 쉬어와 벤의 아버지가 죽은 뒤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죽어 증오의 껍데기를 둘러싸고 다시 부활하는 경우처럼 어떤 사실은 신화적이다. 불사조의 디도 여신을 언급하는 것 또한 불사조 전설 같은 환상적인 요소와 오묘하게 엮여 있다. 그런 와중에 과거의 진실과 맞닿은 벤이 그 사실을 깨달을 때 즈음이면, 충격적인 현실 때문에 혼돈에 빠지게 만든다. 쉬어는 이런 진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어떤 진실은 아예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끝까지 모르는 채로 죽음을 맞게 된다. 
 

 

 어릴 땐 봐도 제대로 몰랐던 것들을 의식을 가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사실과 맞닿게 될때의 기분이란 건 가히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성장하면서 주위의 환경으로부터 받는 영향과 반응은 벤의 성장기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금 아쉬운 건 벤의 경우는 벤이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안타까웠다. 악마의 화신이 된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벤은 약한 모습을 보여줄때의 아버지를 보며 연민을 느낀다.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을래야 무심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조금 옥의 티라면 악마의 화신이 된 아버지가 본래의 자신의 모습 또한 지니고 있었다는 게 조금 엉성한 것 같기도 하다.

 

 죽음에서 증오의 탈만 쓰고 다시 살아난 아버지의 모습에는 비정하고 나쁘다 할지라도 옛날 사랑했던 자신의 아내를 아직도 애틋해하고 마지막엔 벤에게 자신을 해방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 또한 완전 악마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니까 악마의 껍질로 싸여 있어도 예전의 따뜻한 감정은 남아있다. 결국 악마보다는 불안정한 인간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점이 어떤 비극적인 현실 속에 덩그러니 던져진 가족의 비참한 모습을 묘사한 것 같기도 했다. ’한밤의 궁전’에서 벤은 절친한 친구들과 우정동맹을 맺었고 16세가 되서야 처음 만난 또래, 사실은 쌍둥이인 쉬어를 만나며 한 가족사, 나아가 과거의 역사 속의 운명과 만나며 어쩌면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를 미래의 불행을 겪게 된다. 하지만 벤은 어쨌든 현실을 직시하고 도망가지 않았다. 이언이 말한 것처럼 최고의 브레인이었고, 용기 또한 남달랐다.


  보통 소설의 결말에서 모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한밤의 궁전]에서는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식이다. 벤은 행방불명이고. 결말이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할 것이다..라는 암시와 여운이 느껴진다.

 

 제목만 들어보면, 동화같은 환상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이야기로 들어가면 전혀 느낌이 다르다. 활발하고 명랑했다가도 어둡고 침침하며 무섭고 섬찟하기도 하다. lahawaj 라하와즈는 벤이 태어날 때 그의 엄마가 붙여준 이름이다. 이 이름을 뒤집으면 jawahal이라는 말이 되는데 이 이름은 바로 벤과 쉬어의 아버지가 불사조 처럼 악마로 부활했을 때 지닌 이름이었다. 왠지 의미심장하다.  

 ’천사의 게임’이라는 소설의 작가가 [한밤의 궁전]의 작가이기도 한데, 작품을 읽다보면 느낌이 비슷한 경우의 상황이 종종 등장한다.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수수께끼와 책들 말이다.

 

’천사의 게임’에선 한 번도 쓴 적 없는 책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으며 책과 연관이 깊어지고 [한밤의 궁전]에선 벤의 아버지가 과거에 작가였으며 ’시바의 눈물’이라는 책을 쓴 적도 있다라는 장면이 나온다. ’시바의 눈물’이 ’세사르 마요르키’ 작가의 동명소설도 있었기 때문에 헷갈렸는데 한밤의 궁전에서 나온 ’시바의 눈물’의 내용은 ’세사르 마요르키’의 소설 ’시바의 눈물’과 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신기한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과 세사르 마요르키는 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루이스 사폰이 세사르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고 그녀의 소설 제목을 자신의 작품 속에 언급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내용은 다르지만. 암튼 이 점은 궁금한 채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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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진영화 옮김 / 책만드는집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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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동물도 감정이 있다? 없다?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무언의 의사소통이나 분위기만으로도 그 속의 감정을 읽어낼 줄 아는 영리한 동물이라고 한다. 고양이의 눈을 마주보고 천천히 눈을 깜박였을때 고양이 또한 눈을 깜박이면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주겠다는 의사표시라고도 한다. 고양이 눈 인사법이 정말 인상 깊었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는 평소 내가 생각했던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보다 훨씬 고등적인 상념을 즐기는 고양이가 나온다.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건 사람들이 이 고양이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는 것이고 2세 밖에 안됐는데도 불구하고 물독에 빠져 너무 빨리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내가 키우는 베타 물고기는 벌써 3년동안 장수하며 팔팔한데 말이다. 물고기보다도 짧은 생이라니. 인간들을 상세하고 예리하게 관찰한 이름 없는 천재 고양이의 요절이 하필이면 어이없고 허무하게도 물독에서의 익사라. 이로써 고양이가 말하는 인간들의 모습들, 특히 고양이의 주인 구샤미 선생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구샤미 선생이 소세키 작가의 모습을 희화화 했다고 하나 사실 고양이의 사색을 들어봐도 역시 소세키적인 모습이 느껴진다. 고양이는 작품 속 인물들이 이야기 하는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기도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여러가지 사사로운 이야기들. 그다지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말들을 들으며 고양이는 그런 인간들을 낮추어 생각한다. 비록 자신은 신체적으로 약해빠진 고양이로 태어났을지로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행태와 견식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구샤미 선생의 주위로 모여드는 사람과의 매일같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많은 학자들과 그리스 영웅들, 작가, 어려운 어구들이 등장하며 말을 꼬으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각주를 읽어보는 것도 지칠만큼이나 이 책은 무슨 소설이 아니라 인문서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졸면서도 어려운 책 위에다 얼굴을 처박고 있는 이상에는, 학자나 작가의 동류로 간주해야 한다. 그렇다면 주인의 머리가 벗겨지지 않은 것은 아직 벗겨질 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며, 머지않아 벗겨지리라는 게 곧 이 머리 위에 닥칠 운명인 것이다' - 315p

 

 

 소소한 사건임에도 문자를 섞어 안주인이 알아들기 힘들게 말하면서 학자인 티를 내는 구샤미를 보며 고양이는 때때로 비웃기도 하나 그럼에도 다른 가족들에게 천덕꾸러기 신세인 자신을 그나마 거둬준 인성을 보고는 냉정한 시선을 흘기지는 않는다. 마음껏 구샤미 선생을 한심스러워하면서도 그 속에는 정이 있는 것이다. 반면에 주인에게 자신이 잡은 쥐도 뺏기고 몽둥이로 맞았는지 다리까지 절룩이게 된 검둥이 고양이를 보며 그래도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일단 자유로운 영혼으로써 뭐든 생각할 수 있고 굳이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집에 도둑이 들었으나 지켜보기만 했지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한 고양이는 안주인으로부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고양이라는 소리를 듣고 쥐를 잡아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지만 오히려 쥐에게 물리는 신세가 된다. 

 

 

 어쩌면 고양이는 일부분이 주인 구샤미와 많이 닮아있다. 위가 안 좋아 별의별 알려진 바 없는 이상한 민간통치로 자신의 몸을 달래보고자 하지만 늘 실패하고 허접한 구샤미와 고양이 자체로썬 아무래도 허점이 많은 주인공 고양이. 이런 점 때문에 구샤미 또한 고양이를 내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도후군이 말한다. '얼마전에도 제 친구인 소세키라는 사람이 [하룻밤]이라는 단편을 썼습니다만, 누가 읽어도 애매해서 종잡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본인을 만나서 전하고자 하는 게 뭐냐고 따져 물었지만, 본인도 그런 건 모른다며 상대해주질 않는 겁니다. 그런 게 바로 시인의 특색이 아닌가 싶습니다.' -254p 255p

 

 

 예리하게 찾아보면 소세키 자신을 언급하며 타인의 시선으로 드러내는 장면들이 곳곳에 나타나있다. 이것 또한 실제 자신을 희화화 하면서 유머를 주는 방식이다. 그저 비평적 어조의 본문을 심각하게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바로 작가가 써내려간 문장의 해학적인 요소 때문이다.

 

 

 구샤미가 여러 사람들이 기부금을 얻기 위해 보낸 편지를 받고선.
 '보통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떠벌리지만, 학자는 알 만한 것을 알기 어렵게 지껄인다. 대학 강의에서도 어려운 말을 지껄이는 사람은 평판이 좋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사람은 인망이 없는 걸 봐도 잘 알 수 있다. 주인이 이 편지에 탄복한 것도 의미가 명료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취지가 어디에 있는지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361p
 
 이라고 고양이가 말하는 부분이 있다. 고양이는 자신의 시각으로 본 지식인의 허위허식에 비아냥거리며 실소를 던진다. 작가의 의식이 느껴진다. 그 밖에도 여성관, 예술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의식도 두드러지게 나온다. 
 


 '나체 신봉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도 나체가 좋다면 딸을 벗거벗기고, 그 참에 자신도 벌거숭이가 되어 우에노 공원을 산책이라도 해보면 어떻겠는가. 못 하겠다고? 못 하는 게 아니라 서양인이 안 하니까 자신도 하지 않는 것이리라. 실제로도 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예복을 입고 뽐내면서 데이코쿠 호텔 같은 곳에 외출하지 않는가? 그 이유를 물어보면 별거 없다. 그냥 서양인이 입으니까 따라서 입었을 뿐이다. 서양인은 강하니까 무리하든 우스꽝스럽든 흉내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모양이다.' -279p

 

 

 서양에 대한 이런 관점이
 '니체 시대에는 영웅 같은 사람이 하나도 나오질 않았지. 나와밨자 아무도 영웅으로 내세워 주지도 않았고, 옛날엔 공자가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공자도 활개를 폈지만, 지금은 공자가 한두명이 아니야. ...중략.. 우리는 자유를 원해 자유를 얻었네. 자유를 얻은 결과 부자유를 느껴 곤란을 겪고 있어. 그러니까 서양문명이란건 언뜻 좋아 보여도 결국은 잘못된 것일세. 이에 반해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마음의 수양을 해왔어. 개성이 발달한 결과 모두가 신경쇠약에 걸려서 수습하기 곤란하게 됐을 때, 그때 가서야 '왕자가 다스리는 백성은 평안하도다'라는 시구의 가치를 비로소 발견하게 될 테니까.' - 501p

 

 그러나 간게쓰군은 이런 말들이 별 감명이 안 생긴다며 염세적이라며 구샤미의 말에 답한다.
 구샤미가 염세적인 니체의 주장들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서양문화를 비판했지만, 사실 구샤미 또한 염세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서양문명이 잘못된 점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유를 다시 없애고 왕자가 다스리는 백성이 평안하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비약적인 말들이 간혹 드러나며 구샤미의 허점이 보이기도 한다.  
 


 '개성의 발전이란 곧 개성의 자유라는 의미겠지. 개성의 자유라는 것은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의미이겠고, 그렇다면 예술 같은 게 존재할 까닭이 없잖아. 예술이 번창하는 것은 예술가와 그 예술을 누리는 사람 사이에 개성의 일치가 있기 때문일거야. 한데 자네가 아무리 신체시인이라고 버티고 나간들 자네 시를 읽고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면, 자네의 신체시도 안됐지만, 자네밖에는 독자가 없다는 말이 되겠지. ... 중략.. 자네가 쓴 것은 내가 이해를 못 하고, 내가 쓴 것은 자네가 이해를 못 하게 되는 날에는, 자네와 나 사이에 예술이고 나발이고 할 게 뭐 있겠어?" 499p

 

 '개성이 발달한 19세기에 기가 죽어서 옆 사람의 시선이 염려돼 마음 놓고 잠도 편하게 잘 수가 없으니' 500p

 

  이 개성의 발달이란 건 오늘날도 통하는 공감적인 말로 이 책이 19세기에 쓰였음에도 21세기에 읽어도 구시대적인 감상이 아니라는 건 어쩐지 조금 서글픈 느낌이 든다.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나도 개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있을 때까진 자신의 예술을 인정 받지 못하고 고독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니 말이다.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눈으로 글을 이끌어갔다고 해서 가벼운 글은 결코 아니다. 고양이의 눈을 통해 휴머니즘의 특색이 더 짙게 표현되고 옵션으로 다른 동물들의 감정에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소세키의 말장난적인 문장은 더불어 재미를 주고 인간을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봄으로써 인간들의 군상에 대해 함께 실소하고 여러 주제의식에 대해 견식을 넓히는 데 인문서, 심리서 못지 않은 만족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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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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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의 아버지는 자식과 함께일때만 비로써 온전한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마커스 또한 분명 온전한 일인으로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마커스는 마커스라는 일인이 되기 위해 시도를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그의 아버지의 집착이 광기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된다. 결국 마커스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럴수록 아버지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한다.

 마커스가 올리비아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마커스의 짧은 생의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인간은 다른 동물의 세계처럼 자연계의 흐름대로 살지 않는다. 인간의 세계에는 좀더 많은 모순과 부딪힘, 결핍이 사회적 활동들과 엮이어 있으니까. 그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달리 바라는 게 없으며 자식이 독립을 할때까지 전적으로 보살펴주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에게서 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위치와 남보다 낫다는 차별의식 같은 것들 같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는 것들이 끼어드는 이상 다른 동물들이 보여주는 미덕을 지니기가 힘들다.

 아버지의 품에서 처음으로 한발자국 벗어나 대학에 간 마커스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한들 언제나 자신의 일에 유난히 집착했던 아버지가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같은 학교였다는 이유만으로 문제를 일으킨 아이가 자신의 아들에게도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마커스에겐 과대망상, 과잉보호로 느껴지고 이것은 곧 스트레스로써 그를 압박한다.

 마커스는 자신이 나쁜 길로 빠질까 노심초사하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기껏해야 몇킬로미터 떨어진 대학기숙사일 뿐이다. 마커스의 첫 룸메이트 플러서는 병적인 성격을 가진 게이로 일종의 사회생활 범주의 첫번째로 마커스와 트러블을 일으키는 인물이 된다. 부모의 물질적 희생으로 대학을 다니게 된 마커스는 그 보답으로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일도 해서 생활비와 학비에 보태야만 했다. 그러려면 밤에 잠을 잘 자야 했지만 하필 플러서는 밤마다 잠도 안 자고 노래를 틀어놓고 시끄럽고 무례하게 굴었다.

 대화로 플러서를 설득할 수 없었던 마커스는 방을 바꾸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바뀐 방의 룸메이트 또한 썩 마커스와 맞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차에만 관심이 많은 엘윈은 주위의 다른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인간관계에 대해 무심하다. 처음에 마커스는 그런 엘윈이 편했지만 자신이 올리비아와의 열정적인 경험에 대해 토로할 때조차 벽처럼 구는 엘윈은 그야말로 무의 존재보다 더 허무한 감정을 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마커스가 엘윈에게 진정 격분을 느꼈던 것은 엘윈이 올리비아를 '씨발년'이라고 한 것 때문이었다.

 마커스는 올리비아를 좋아했다. 그런데 엘윈이 마커스가 좋아한 올리비아를 하등 인간 취급하며 천하게 여긴 것이다. 물론 마커스 탓도 있었다. 그가 엘윈에게 올리비아와의 프라이버시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면 벽 같은 엘윈이 그런 말도 내뱉지 않았을 테니. 마커스에게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프라이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서로 존중하면서 유대관계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인간관계같은.  그러나 두번째 룸메이트조차도 마커스에겐 지겨운 인간으로 판명나면서 결국 그 방에서도 나와 아무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독방으로 옮겨간다.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났음에도 세상에 나와 첫만남으로 만나는 인간들은 마커스와 전부 대립되는 인물들 뿐이다. 그런데도 대학의 학과장은 마커스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늬앙스를 풍긴다.

 마커스는 진정 자유롭고 싶어하고 진정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자 마자 바로 권위적인 학교의 제도 앞에서 울분을 토한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선 채플에 꼬박꼬박 참여해야 하고 학교재정이 정한 규율에 부족한 학생이 되어서도 안되고.. 마커스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하는 그 모든 상황들이 마커스를 흥분시키고 결국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한 마커스는 학과장 앞에서 욕설까지 내뱉는다.

 마커스가 신의 개념을 반대하는 버트런트 러셀을 존경하는 것에서도 마커스가 어떤 사상을 가졌고 어떤 신념을 지지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곧 종교인인 학과장으로부터 반하는 사상이기도 하다.

 
 구역질이 나올 만큼 역겨워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39p
 
 마커스가 아버지가 닭을 손질하는 것을 보고 역겨워도 그것을 따라할 수 밖에 없었듯이 학교에서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어긋나고 뒤틀리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결국 마커스는 자신의 참을성이 한계의 극한까지 몰렸고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그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운명이 기다린다.

 그다지 신뢰성이 없는 서니 코틀러가 제안해준 채플 대리 출석으로 마커스 대신 나가야 하는 지글러가 들키는 바람에 마커스는 결국 한국전쟁의 군인으로 징집된다.

 마커스의 죽음은 소설의 주제를 더욱더 강조시킨다. 마커스가 죽자 얼마 안되어 역시나 그의 아버지 또한 죽음을 맞이한다. 마커스가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면 '팬티습격사건'이 있던 날 밤 그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던 엘윈은 허무하기 짝이 없이 죽어버린다. 마커스가 청춘의 얄궂은 운명에 의해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엘윈 또한 바보같은 죽음이긴 하지만 청춘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와 같이 '팬티습격사건' 또한 청춘들의 한바탕 이슈로 삼각구도를 이룬다.

 몇몇의 한국 청소년들이 '팬티습격사건'과  비슷하게 무모하고 분별의식 없는 청춘을 불사르는 사건으로 한바탕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일명 '졸업식 알몸 뒤풀이'로 인터넷을 돌고 돌던 동영상과 사진들이 사건의 내막이다. 이 사건은 일파만파 논란거리가 되었고 결국 2011년 졸업식엔 이런 엽기적인 행동을 막고자 경찰들이 학교근처에 배치되었다.

 청춘. 마커스와 그 외에 다른 이들이 보여준 청춘의 일부 모습들은 자유와 한계, 학교와 사회 규율의 범위을 연상시키게끔 하기도 한다.

 필립 로스는 이 작품에서 구체적인 상황의 모습들을 역력하게 표현해냈다. '필립 로스 식'이라는 표현을 이해할만하다. 

 

ex)
 쇠고기에서 내 두 손으로 뚝뚝 들었고.. - 46p  문장 어색한 것 같습니다. '뚝뚝 떨어졌고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64p -8째줄 영원이 - >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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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바느질하다
김지해.윤정숙 지음 / 살림Life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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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엔 따라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특히, 가방이라던지, 필통, 덮개 같이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게 탐나는 게 많았다. 예전에 친구가 청바지로 가방을 만들어 들고 다닌 적이 있어 이 책에서 나온 안 입는 청바지로 만든 가방은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그 두터운 청바지 천을 손수 꼬매느라 만드는 데 보름이 걸렸었다. 근데, 미싱이 있다면 훨씬 수월하고 손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미싱을 다룰 줄 알아야겠지. 

 책 속에 원피스나 커튼, 이불, 스커트, 백등은 특히 그냥 손으로 만들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미싱이 필요할 듯. 



 안그래도 청바지를 입고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 쪽이 찢어진 것이 두벌 정도 되는데 안 버리길 잘 한 것 같다. 한번 나도 도전해봐야겠다. 청바지 두벌쯤이면 이쁜 가방이랑, 파우치, 백등 여러가지의 물건을 만들 수 있겠지. 




 미싱을 만져본 적이 없기에 이런 그림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연구하다 보면 몇번의 실수 끝에 할 수 있을 것 같다. 




 위에껀 냉장고 손잡이 커버인데, 이걸 응용해서 가스선커버나 문 손잡이 커버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이 가방은 진짜 만들어서 팔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해 보인다. 이건 청바지천 말고 다른 천도 필요한데 있어보이는 원단 천은 스스로 구해야 할 듯하다. 요즘엔 핸드메이드가 인기이니,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천이나 옷감을 파는 시장에 들려서 직접 보고 사는 방법도 있고. 

 책에 나온 핸드메이드 물건들과 연계된 물품을 파는 쇼핑몰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소개는 나와있지 않아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 책의 작가분 블로그는 - http://blog.naver.com/thecottage 이다. 





 필통도 정말정말 마음에 쏘옥! 들었다. 크라프트 종이 원단이 필요한 이 물건은 이 책에서 그나마 가장 손쉽고 빠르게 따라 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걸 응용해서 다른 것들도 만들어보고 싶다. 



 

 아이와 함께 입는 원피스나 앞치마, 두건 같은 아기자기한 것도 많았는데 엄마와 아이가 함께 만들어 입으면 넘 이쁘고 보기 좋을 것 같다. 예전에 뜨개질책을 사서 기껏 목도리를 뜨고 장갑을 뜨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내게 바느질은 좀 더 쉬워 보인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있고. 탐나는 물건들도 있고. 이렇게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선물로 줘도 정말 뜻깊은 선물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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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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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0일에
  염소의 축제를 기념한다
 - 도미니카의 메렝게, <염소를 죽였네> 

 

 왜 독재자들은 하나같이 후에 악한 명성을 남기는 걸까. 왜 그들은 하나같이 장점들이 있는 반면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는 걸까. 좋은 점들로만 똘똘 뭉쳐서 한 나라의 독재자가 되기란 불가능할까. 로마는 그런 정치로 오랜 세월 눈부신 발전과 평화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왜 이제는 현실에선 불가능하고 동화에서만 가능한 일이 되버린걸까. [염소의 축제]는 독재자가 과연 고품격 인격과 높은 질의 윤리와 정의라는 미덕을 지닐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다른 나라들이 한국과 한국인의 생활속에 스며든 생각들을 알 수 없듯이 나 또한 다른 나라들의 상황을 밖에서 안을 보는 정도로 밖에 알지 못한다. 그것도 제법 시끌벅적하게 보도되는 사건들만. 도미니카가 꽤나 얌전하지 않게 아이티의 간섭에서 벗어나서 공화국이 되었고 독재자 트루히요가 만만치 않은 독재정치로 20세기 최악의 폭정 중 하나로 이름 나 있는 것은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악평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나라에 미친 업적은 무시할 수 없다.   

 - 모두가 염소를 조국이 구원자로 떠받들었다. 그는 지방 토호 세력과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고, 아이티의 재침략 위험을 종식시켰으며, 세관을 통제하고 도미니카 화폐 사용을 금지했으며 예산 승인권을 가지고 있던 미국과의 굴욕적인 종속을 마감시켰고, 자발적이건 강요에 의해서건 최고 인재들을 정부에 입각시킨 사람이었다. 그러니 트루히요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들과 사랑을 나눈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혹은 공장과 농장과 목장들을 모두 삼켜버렸다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어쨌든 그는 도미니카를 번영시킨 주역이 아니었는가? - 1권  246

 게다가 그는 친환경주의자이기도 했는데 전투적 환경주의자였던 발라게르를 후원했다. 발라게르는 생계형 벌목이건 탐욕적 벌목이건 엄벌에 처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도미니카가 자랑하는 녹지의 대부분은 발라게르의 몫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구분해야 할 껀 많은 업적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개인적 비윤리적인 행태가 덮여선 안된다는 것이다.

- 비범하고 놀라운 정치인의 엄격하면서도 훌륭한 지도력 아래서 급성장하고 있는 나라의 겉모습 뒤에는 살해와 탄압과 기만이라는 잔혼학 현실이 있는 것은 아닌지, 선전과 폭력을 통해 가공할 거짓말을 숭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1권 246p

 국가에 이익이 되지만 그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면, 전체적으로 범죄가 일어나진 않지만 한 사람에 의해 범죄가 자행된다면. 이게 더 낫지 않냐고 하는 건 심각한 오류다. 도미니카라는 국가에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모두 트루히요의 놀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여성은 인간의 존엄과 권리의 혜택이 없다는 것과 똑같다.

 한 사람에 의해서 모든 법과 자유가 정해진다면 그 사람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을 자행한다고 한들 그의 법을 바꿀 수가 없다. 그렇다면 한 사람을 위해서 모든 국민들이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으며 한 나라는 한 사람의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머진 모두 꼭두각시니까. 전세대에서 누군가 말했듯이 그러면 국민은 그 한 사람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대신 자유의지를 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런 국가가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인간은 감정이 있는 동물이고 그 감정은 오랫동안 눌려지면 터지게 마련이다.

 "그는 독재자였고, 그래서 그에 대한 말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가 더 살기 좋았던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갖고 있었고, 범죄도 그다지 많지 않았어요. 그렇지 않아요, 아가씨?" - 168p
  49살의 우라니아가 고향을 찾았을 때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의 간호사의 말인데 이는 모순을 말해준다. 더 살기 좋았다? 그때가 더 살기 좋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트루히요를 숭배하며 그에게 복종해서 자신의 안정을 찾았던 사람들 말이다. 또 이것도 저것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을테고. 또 한가지 넘어갈 점은 간호사는 그때 네살이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몸소 느낀 것이 아니라 부모나 어른들로부터 들은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그녀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볼만큼 경험적 전제가 없다.
  범죄도 많지 않았다? 트루히요가 저지른 범죄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엄마가 트루히요의 한낱 성적 노리개가 된 경험이 없었던 사람이 있었을 테고 어린 딸이 남자친구가 생기기도 전에 일흔 먹은 노인의 불구가 된 성기에게 활력을 주어야 할 일이 없었던 사람도 있었겠지. 또 괜히 충성성을 시험한다고 여자친구의 동생을 죽이거나 친동생이 죽는 것을 묵인할 수 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을 테니.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간호사는 피해자의 입장을 제외하고 순전히 주위의 어른으로부터 듣고 언론으로 본 사실들을 주워삼아 트루히요 시대의 긍정적 모습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시대의 피해자로 남아버린 우라니아는 그 간호사의 말을 듣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우라니아는 트루히요 덕에 아버지를 증오하고 자신의 고향까지 미워한다. 뿐만 아니라 잘 지내던 사촌과 친척들까지 멀리한다. 몇십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잊으려고 했던 고향에 돌아와 다시 과거를 떠올리면서 여전히 고향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그토록 피하려고 했던 시대의 잔재에 남아 있는 것을 알고는 허탈해한다.

 우라니아가 고모와 조카앞에서 과거의 일을 털어놓자 고모는 말한다.
 "이리 와라. 이제 성호를 긋고 기도하자꾸나. 네가 가장 원하는 것을 위해 기도하자. 하느님을 믿니? 알타그라시아 성모를 믿니? 네 어머니는 알타그라시아를 믿는 독실한 신자였어. 우라니타. 그녀가 매년 1월 21일이 될때마다 이게이의 바실리카 성당으로 순례를 가기 위해 준비했던 게 기억나는구나. 넌 지금 원한과 증오로 가득해. 그건 좋지 않아.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자, 이제 기도하도록 하자. 우라니타." -359p
 
 고모는 우라니아의 상처가 극복되기 위해 도움을 주기 보단 회피하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우라니아는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병원에 있는 부친을 찾아가 말한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나요, 아빠? 권력의 자리에 있다는 환상을 갖기 위해서였나요? 가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출세는 부차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빠나 아랄라, 피차르도, 치리노스, 알바레스 피나, 마누엘 알폰소는 스스로 더러워지고 싶었던 거예요. 트루히요는 당신들, 그러니까 침을 맞거나 학대당할 필요가 있고, 타락해야만 성취했다고 느끼는 그런 사람들의 영혼 밑바닥에 있는 마조히즘적 소명 의식을 일깨워주었던 거지요." - 100p

 소설 속에서 조니 아베스는 트루히요의 '개'로 나온다. 말하자면 트루히요가 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그의 손과 발을 핥으면 충성하는. 그 자신 또한 그렇게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며 소령은 말한다.

 '대령은 악마일수도 있어. 하지만 수령님에게는 유용한 존재야. 나쁜 일은 죄다 그가 뒤집어쓰고, 좋은 일은 모두 트루히요의 업적이 되거든. 그것보다 더 훌륭한 봉사가 무엇이겠어? 정권을 30년 이상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더러운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조니 아베스 같은 사람이 필요해...  수령님은 그걸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옆에 두는 거야. 만일 대령의 그 같은 충성이 없다면, 베네수엘라의 펠레스 히메네스나 쿠바의 바티스타,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페론에게 일어났던 일이 수령님에게도 일어났을지 몰라.' -70,71p

 또 그는 트루히요를 위해 아주 유용한 일들도 알아서 처리해준다. 트루히요는 그저 남들이 별로 좋지 않게 보는 그를 옆에 두고 가장 밑바닥 일을 맡기면 알아서 처리하는 것을 보고 흐뭇해할 뿐이다.

 조니 아베스는 트루히요의 정적들이 스스로 선정적인 언론에 휘말리게 만들었고 자선가는 멀리서 조니 아베스가 얼마나 교묘하고 독창적으로 반대파를 제거하면서 체제를 구해내는지 멀리서 지켜보았다. 망명자 그룹이나 그의 독재에 반대하는 국가들도 이런 끔찍한 사고가 총통의 정치적 보복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 - 115,116p

 근데 알려진 사실로 쟈니 아베스라는 인물이 반체제 인사였고 비밀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나온다. 그 쟈니 아베스가 소설의 조니 아베스가 아닌가 하는 의문점이 들었지만 이 책이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 문제에서 벗어난다. 이 책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들 중 몇몇이 역사적 오류를 들먹이는데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에서 그 비판 또한 오류로 낙인 찍혀 버렸다.

 본문 중에 쿠오바디스가 언급되는데, 쿠오 바디스(Quo vadis, (Domine))는 "(신이시여,)어디로 가나이까?"("Whither goest thou?" 또는 "Where are you going?")라는 의미의 라틴어 문구이다. 누군가는 트루히요의 뜻대로 도미니카가 움직여 준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말했다.

 순진한 사람들과 바보들과 천치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인간의 허영심과 탐욕과 우둔함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착취하는 데 대가인 트루히요. 이에 도미니카 국민들은 왜 마비 상태가 되었을까. 즉 결단력과 이성과 자유의지가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고음의 목소리와 위선자의 시선을 지녔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몸단장에 신경 쓰고 장식한 그 남자가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건, 친구건 적이건 모든 도미니카 사람들에게 주문을 걸듯 행사하던 활동 불능 상태였다. -158p

 트루히요는 미국에서 도미니카를 옹호하는 대가로 뒷돈을 받는 국회의원, 청지인, 로비스트들이 미국 정치 상황이 바뀌면,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해서 제재 조치를 철회시키거나 완화시키면서 그에게 유리한 입장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며 비밀리에 수당 지급을 했다.

 그러자면, 트루히요 뿐만 아니라 미국의 비리 또한 만만치 않게 더러운 진실을 일깨워준다. 어쨌든 트루히요는 미국에게 비굴하게 굴진 않았다는 점은 나름 높이 평가될지도 모르겠다.

 트루히요는 은퇴하여 연금을 받는 정치인처럼 해외에서 말년을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 나라에서, 야만족이었고 가난한 무리였으며 조롱받던 나라를 자신이 공화국으로 변모시킨 이곳에서 살 작정이었다. -209p

 게다가 트루히요는 나라를 다른 나라에게 팔아먹는 짓을 저지르진 않았다. 그런 점이 미국에게는 못 마땅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트루히요가 깔아놓은 미국의 정치인과 로비스트들에 대해 언급된 부분은 미국의 어두운 이면을 묘하게 드러내며 비판하기도 한다. 


 '염소'는 이 작품에서 트루히요를 살해한 사람들이 그를 지칭하는 별명이다. 일반적으로 트루히요의 애칭은 '병마개'였는데, 이는 그가 무차별적으로 많은 훈장을 달고 다녔고, 아이들이 그것을 모방하기 위해 병마개를 사용한 데 기인한다. - 58p

 그리고 이 책에서 갖는 염소라는 별명이 가지는 상징은 트루히요의 과도한 성욕과 남성적 능력인데 이는 번식력과 생명력의 상징을 통해 악마주의의 육욕적 관점을 내포하는 전통적 관점과도 일치한다고 한다. 

 하필 아무 죄도 없는 염소가 이런 불명예스런 상징을 얻게 되어 불쌍하지만 어쩌면 염소의 뿔이 악마의 뿔과 비슷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람들이 연상해낸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엔 트루히요 뿐만 아니라 도미니카 공화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개개인적인 모습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그들의 사적인 모습들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연결되는지, 그 모습들을 드러낸 가운데 얼마나 사회의 병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며 이야기의 발단과정을 표현하고 전개, 위기, 절정에 다다르면서 고요한 결말을 드러낼지 읽는 와중에도 내내 궁금하게 만들었다.

 저 자신도 트루히요 지지였다가 환멸을 느끼고 반대파가 되었으면서 현재의 트루히요 지지자들을 경멸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왠지 데자뷰를 겪는 느낌과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한국도 독재정치를 겪었고 나는 그 시대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감정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똑같은 코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북에 살고 있는 곳은 독재정치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스스로 철저히 고립되어 있어 그 쪽의 실정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곳 국민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독재는 과거의 일만이 아닌 것이다. 

 트루히요의 아들 람피스는 할리우드로 가서 친구 포르피리오 루비로사와 함께 스캔들 전문 잡지와 가십 칼럼의 단골 여배우들과 어울려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마시고 놀았다. 미국의 언론은 도미니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웠고 칼럼니스트들은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람피스가 킴 노박에게 최신형 캐딜락을 선물했고, 자 자 가보에게는 밍크코트를 선물했다고 폭로했고 이 일은 미국 시민을 비롯한 정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어느 민주당 하원의원은 그 선물이 워싱턴이 도미니카 정부에서 무상 지원하는 1년치 군사 원조와 맞먹는 금액이라고 평가하면서, 그게 공산주의와 맞서는 가난한 국가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이며, 미국 국민들의 돈을 쓰는 최선의 방법이냐고 따져 물었다.   - 183p

 람피스의 방탕한 생활은 도미니카의 언론에선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았다.
  
 지금 남한과 북한의 모습이 비슷한 상황에 빠진 것 같아 안타깝다.


 '그녀는 적극적인 여성인 것 같지만 성 역할이 규정되어 있었고, 라틴아메리카의 부르주아 사회가 남성우월주의 사고의 독재자를 지지하며 여자들에게 순결을 강요했던 지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87p
 해설의 이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라니아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강간에 대한 충격과 아버지에 대한 믿음에 대한 배신에서 오는 상처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순결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트루히요의 뒤로는 어떤 남자도 없었고 어떤 남자만 보아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었던 건 열네살 어린 나이에 일흔이나 된 트루히요에게서 겪었던 일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녀에게 트루히요는 성적관계의 첫 남자다. 어린 나이에 겪는 충격적인 일은 더 생생히 기억에 남곤 한다. 게다가 아직 성관념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을 때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까 그녀에게는 그런 사건들에 대한 심리적인 반사작용으로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순결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부터 끔찍한 과거의 회상이 떠오르며 생길 실망 때문에 다른 남자들까지 거부한다는 게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펼쳐진 책은 말하는 머리이며, 닫힌 책은 기다리는 친구이고, 잊힌 책은 용서하는 영혼이며, 망가진 책은 우는 가슴이다." - 2권 31p
 본문 속 이 문장은 우라니아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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