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CSI 미드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과학수사라는 분야까지 함께 인기가 높아졌다. 이전에는 미흡했던 증거 축출 능력들이 시대가 바뀌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증거들을 모을 수 있는 방법들이 생긴 것이다. 발로 뛰고 직감에 의존하며 추리능력을 발휘해야 했던 옛날 방식에 비해 오늘날은 실험실에서 부검과 검식들을 통해 증거들을 찾아낸다. 이때 경찰의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거나 사인과 사망경위를 밝혀 인권을 도모하는 일을 주업무로 하는 학자를 법의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갖가지 능력으로 증거들을 모으는 방식은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범죄를 근절하기 힘든 건 그만큼 범죄 또한 함께 발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설 속 여주인공 '케이'가 말했듯이 증거들은 아무리 많아도 변호사들이 자기들의 이득에 맞춰 어떻게 해석하고 알리느냐에 따라 범죄에 대한 재판의 결과는 달라진다.
 

 

 이런 제도적 시스템 문제에 대한 견제로 법정과 관련된 사람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판단의 기회를 주는 배심원 제도가 있지만, 이마저도 그들을 어떤 절차에 따라 뽑는지 그리 똑똑하지 않는 사람만 모아놓은 오합지졸이라 오히려 재판의 질이 떨어진다. 이런 사실을 비판하는 속내가 케이의 말에서 느껴진다. 결국 증거는 많아도 변호사들이 누구 편에 서서 침발린 입으로 잘도 변호를 하면 그에 따라 증거가 해석되게 되어 버리고 배심원 또한 소신의 판단이 아닌 변호사의 말빨에 의해 판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케이가 여자가 선택하는 직업으론 생소한 법의관의 자리에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은 그녀가 맡게 되는 사건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현실감과 생생함을 지니고 있어 캐릭터에게 몰입하게 만든다. 얼마전에 끝난 '싸인'이라는 드라마에서 한국에선 처음으로 '법의관'을 소재로 했다.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실제로 한국엔 법의관이 19명밖에 되지 않고 여자 법의관은 1명이라고 하는 데 그래서 그런지 이런 직업 자체가 한국에선 생소해 보인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법의관들은 외국에서 흔히 일컬어지는 법의관의 모습보다 활동하는 범위가 넓은 것 같다. 퍼트리샤 콘웰의 [법의관]에선 그녀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의학적인 소견 말고는 어느 하나에도 참견하지 않는 것에 비해 '싸인'에 등장하는 법의관, 특히 '박신양'과 '김아중'은 수사까지 하고 바디에 있는 증거가 아닌 범인이 가진 증거들을 직접 찾으러 다닌다. 위험을 무릎쓰고 범인과 직접 대면까지 하고 말이다.

 

 

 콘웰의 [법의관]에서 주인공 케이는 살인사건이 있을 때마다 불려가 자기가 맡은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되는 것에 비해 '싸인'의 법의관으로 나오는 박신양과 김아중은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한다. 형사로 나오는 '정겨운'은 정작 별로 하는 일이 없고. 한국에선 법의관들이 정말 드라마처럼 하는 일이 더 많은 것일까?

 

 

 콘웰의 [법의관]에선 확실히 수사는 경찰청 반장 '마리노'가 다 하고 사건의 치정관계 또한 그가 조사한뒤 케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일러주는 식이다. 케이가 연쇄 살인범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당할 때도 그녀를 구해준 사람은 바로 눈치 빠른 경찰 '마리노'였다. 마리노가 그다지 호감가는 스타일은 아니라 법의관인 케이와는 사건 때문에 언제나 얼굴을 마주치면서도 늘 껄끄러운 관계다. 개인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그러나 사건의 실마리를 잡고 여러 개의 끊어진 실들을 연결하고 매듭짓는 건 마리노였다.

 

 

 케이는 사건에 얽힌 실 몇가닥을 지니고 있을 뿐, 거기까지가 그녀의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래서 확실히 콘웰의 [법의관]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주어진 역할과 임무가 있고 거기에 맞게 제 전문성을 발휘하기에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헛점을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매끄럽게 진행된다. 억지로 이 사람이 이렇게 해야 되고 저기에 있어야 되고 왜 저 사람이 저렇게 해야 되는지 아귀가 안 맞아들어간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에 비해 '싸인'은 왜 국회의원 딸이 저기에 있고, 저 여잔 제 정신인가, 몇번의 연쇄 살인에도 잘도 피해가던 살인범은 뜬금없이 하필 검사 머리를 때려야 했었고 이 살인범이 쓴 게임시나리오를 박신양은 그렇게 몇일동안까지나 읽을 정도로 긴 구성인가 등등 여러 가지 어설픈 부분들이 많았다. 게다가 막방에선 서프라이즈한 편집까지. 깜짝 놀라게 했다. ^^; 미드가 여러 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면, 한국 드라마는 한두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그 한 두명이 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게 아닐까.
 
 콘웰의 [법의관]은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책이 두꺼운 편인데 그다지 두껍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슬슬 읽혀진다. 법의관이라는 전문적 분야라고 해서 어렵다거나 상투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몇가지 전문적 의학적 사실들은 더더욱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개인적인 흥미분야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상세하게 알고 있는 콘웰이 만들어낸 소설이라 그런지 주인공 '케이'가 콘웰과 외형적으로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형적으론 내가 그녀를 잘 알지 못하기에 판단할 순 없고. 그래서 어딘가에 케이라는 인물이 정말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에 나온 인물들이 나오는 다음 편 이야기도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