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태어나면 시작된다. 어릴때는 슬픔의 무게를 모른다. 대신 울음과 짜증이 서툰 슬픔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자라면서 저마다의 다양한 삶의 모양과 슬픔의 모양을 가지게 되고 예상하지 못하거나 예상하면서도 슬픔에 다가서서 그 모양이 주는 변덕을 견디고 견뎌내는 것. 그것이 삶의 무게이다.
때때로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기도 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섰지만 감당하기 벅찬 시련들. 왜 이런 시련들을 내게 주나이까. 아무리 외쳐보아도 허공의 메아리로 돌아오는 답은 내가 한말의 되돌림이다. 인과응보. 세상은 그리 간단한 인과응보로 나타나지 않는다. 왜 죄를 짓고도 그리 뻔뻔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가. 그럼 아주 뻔뻔하면 된다. 죄에 무감각할 정도로 뻔뻔하면 그 사람은 양심에 거리낄것이 없기 때문에 죄책감이 자신을 짓뭉게놓지 않는다. 어중간하게 뻔뻔하다가도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은 도무지 속일 수 없으니 자신을 짓뭉게고 일상이 힘들어지면서 부메랑처럼 자신이 한짓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그러니까 양심에도 거리낌없이 죄를 짓고도 뻔뻔한 이런 사람. 그런 사람은 죽을때까지 자기 멋대로 잘 산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정말로 그리워하며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슬픔의 다양한 모양을 단편 하나하나로 표현하고 있는 바깥은 여름. 보통 책 제목이 본문의 단편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바깥은 여름.이라는 이름의 단편을 만날 수 없다.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이렇게 총 7개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세상 사람들의 풍경은 우리가 겪는 일이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어에 나오는 사건, 사고들의 어떤 뒷 이야기들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뒷다마. 건너건너 누구 누구가 아는 사람이 가족이야, 친구야. 아는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는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 결국은 나였으면, 내 가족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난제들. 생각거리가 담긴 단편들이다.
입동. 소소하게 자신의 집을 꾸미고 DIY로 직접 인테리어를 해서 비용을 아끼는 요즘 트렌드가 되는 젊은부부들의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는 집. 그 집에는 무표정하고 멍한 표정으로 다른 세상에 가 있는듯 무심한 아내가 있다. 아내가 그런 상태가 된 이유. 그 이유가 궁금해 이야기를 따라 넘어가다보면 불행한 슬픔의 모양과 만나게 된다. 소박한 꿈을 안고 열심히 일을 해서 빚을 갚아가며 아이가 크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할 그들이 원했던 삶의 모양은 후진하는 유치원 버스에 아이가 치이면서 작고 말랑말랑한 손을 다시는 느껴볼 수 없게 된 끔찍한 현실로 주어진다. 그들 부부에게선 다시는 성장하지 않을 어린 생명의 끊긴 숨.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재가 미래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뒤이어 그들이 금전적인 문제로 아이의 죽음으로 받게 된 보상금에 손을 대면서 느끼는 죄책감. 이 부분은 매우 현실적이다. 그렇게 슬픔의 모양은 입동에서 시작되어 '노찬성과 에반'에서 또.다.시. 매우 현실적인 실제감을 드러낸다.
노찬성과 에반.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천만을 넘어선 이 시대.
누구나 어릴때 노찬성과 에반을 떠오르게 할만한 에피소드는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이때는 대부분 동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노찬성 나이때쯤 나 또한 강아지, 병아리를 키우고자 열망한 비슷한 경험이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수고로움은 특히나 집안살림이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는 부담이 가중되는 일이기 때문에 애시당초 가장들은 동물을 못 키우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아니면 그 동물이 불행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기에 책임을 지겠다고 선포하고 키우게 마련이다. 그러지 않는 아이들도 많겠지만 나 같은 경우도 노찬성처럼 그렇게 동물을 거둬온 적이 있었다. 사실 아이들이 책임질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가장 중요한 책임은 돈으로 하는 것인데 그게 되지 않으니 결국은 가장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많은 추억을 쌓기도 전에 에반은 암에 걸리고만다. 이미 진행될때로 진행된 암에 걸린 에반을 수술시킬 수도 없고 고통스럽지 않게 안락사를 시키기로 마음 먹은 노찬성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에반을 생각하며 힘들게 번 아르바이트비를 그 나이때즘 갖게 되는 욕망으로 인해 자기합리화하며 야금야금 사용하게 되버린다. 에반은 더이상 희망이 없게될즈음 비극으로 치닫는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자신의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노찬성. 어쩌면 자살인듯 보이는 에반의 마지막. 꿈에서 본 아버지의 교통사고현장과 할머니의 쉿! 몽환적이면서 비극의 한 토막이 현실적인 노찬성의 유년시절의 에피소드를 만든다.
동물과의 교감은 인간과의 교감과는 또다른 측면이다. 요즘 하루 걸러 발생하는 여러 동물학대행태들은 생명에의 존중과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잔인한 모습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을 찡하게 하는 교감.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 생명의 신비에 정말로 감동을 느낀다면 동물을 학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노찬성은 아직 아는 게 많이 없는 앳된 아이에 불과하지만 사람이 느껴야할 본질이 뭔가에 대한 성숙함을 깨닫게 하는 존재다.
노찬성과 대조되는 인물로 '가리는 손'에 나오는 청소년들. 때때로 거리낌없고 잔혹하리만치 냉혹한 청소년들의 행동을 볼때가 있다. 성숙되지 않은 그들의 행동은 상대방을 생각할 생각도 없고 죄악의 무게도 없으며 선과 악을 왔다갔다하며 불안불안하다. 천사같다고 생각했던 솜털 같던 아이가 사실은 나만의 착각으로 생각되어질때. 그것만큼 무서워지는 일이 또 있을까. 가족. 가장 믿음직스러운 울타리가 깨어지면 그 밖으로는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불신과 불안이 덮쳐올까.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바뀌게 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세월호. 이 사건을 떠올리면 아직도 뭉친 슬픔이 풀어내지 못한채 몽클몽클 돌아다니며 답답하게 한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결국은 모두가 가라앉고 만 저 바다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수면 위로 떠오른 숨겨지지 않은 슬픔을 견뎌야할 가족들은 마치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그는 집에서 예전에 했던 행동들을 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를 볼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 사死자들의 가족들은 서로의 안부를 계속 궁금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 겪은 일에서 느낀 소외감. 슬픔의 모양이 비슷하면 서로 궁금해지게 되기 마련이다.
유독 죽음과 맞닿은 이야기를 많이 만난 바깥은 여름. 이 책을 읽고 있는 현재도 타 들어가는 여름이다. 폭염으로 인해 분출되는 노폐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삶은 얼마나 이글이글 타오르는 폭염과 같은가.도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노폐물들이 삶의 격정으로 분출될지라도 그 뒤에 찾아오는 잔잔한 평화는 죽음의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의 성숙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