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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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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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느님의

메가폰이다.

  -C.S. 루이스

 

 

 진작에 알았을껄.
 사람들은 때때로 일이 이미 벌어진 후에야 이런 일이 있을껄 몰랐다는 듯 말하곤 한다.
 정말로 몰랐을까.. 어떤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그 전조현상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감지하지 못할만큼 둔해서? 


 벌어진 후에는 이미 늦었다. 그런데 늦은건 늦은 거고 다시 또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는 일들을 주워담을 수 있는 다양한 해결책들을 논의해야 한다. 자신의 실수를 숨기기 바빴던 공적 책임자들, 막을 수 있었음에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책임이 직접, 간접적으로 있는 사람들.. 그들은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된 것은 무너져야 올바름이 알아서 솟는다고 하지 않던가. 

 

 대부분은 쓸모없는 이미 벌어진 일들을 다시 회자시키고 비논리적으로 방향을 잘못 잡은 헐뜯기가 몇년이나 지속된다.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피해자들에게는 누군가에게 하소연할만한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그들이 그만이라고 할때까지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어야 할 공동체의 책임이 있다. 그게 국민이고 국가이며 같은 공동체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의무이다.

 

 콜럼바인.
 이 책은 미국 총기사건이 연쇄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시초에 대한 보고서이다.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최대한 가해자들이 일을 벌이기 직전 몇년전부터 사건이 일어난 후의 몇 년 후까지를 그들이 남겨놓은 흔적과 사건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작성되었다. 많은 부분들에서 의문점과 어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가해자들이 자살을 하였기 때문에 가해자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의도를 짐작해야만 하는 다양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해설하고자 하기 때문에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펴고 덮을때까지 내가 줄곧 떠오른 생각은 미국민의 시선과 시스템이다. 그렇게 무차별적 살인이 시작되어 줄곧 이어지는 수많은 총기사건들을 몸소 겪고 있으면서 왜 총기금지법을 만들지 않았는가. 너무 많은 이해관계들이 얽히고 설켜 개개인 국민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것인지, 땅덩어리가 커서 주별로 있다보니 공동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 힘들어서인지, 몇명 정도의 사람들이 목숨이 잃었을때야 총기금지법에 대한 적극적인 법개정이 이루어질 것인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이미 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거기에 많은 이해관계가 얽혔을때는 특히 개정하기가 힘든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법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스스로 지니고 있다. 반이상의 미국민들은 총기를 허가한다는 것일까...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되고 널리 퍼져있을때즘 라스베가스에선 또다시 총기사건으로 59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몇백명의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난사범은 역시 자살을 했다. 콜럼바인에서 시작됐던 난사범들은 책을 뚫고 나와 라스베가스에서 다시 무차별적 살인을 행했다.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그다지 환경이 어려웠던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두뇌는 쌩쌩히도 잘 돌아가서 다른 일을 했더라도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운명이었다는 점이다.

 

 콜럼바인의 난사범들은 지극히 평범했으나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겪었던 남학생들이었다. 청소년기는 뇌의 변형이 이루어지는 시기라 감정의 폭이 수시로 바뀌며 변덕 또한 남다른 시기이다. 제 2차 성장이 맞물리는 시기에 그들에게 주입되었던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그 사상이 그들을 그런 길로 흐르게 하였을까. 적어도 둘 중 한명은 나치즘을 신봉하긴 했었다. 인종차별적이었고 사람이 세상을 해롭게 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세상을 정화시키며 그렇게 할 수록 멋진 삶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우울증과 비행은 극적으로 치달으며 그들에 손에 너무나도 쉽게 쥐어진 총에 의해 폭발하고 말았다. 총이 그렇게 쉽게 쥐어지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저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 하지만 다수는 아니었을 것이며 제재로 인해 언젠가는 그들의 악행은 막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콜럼바인사건은 막을 내릴 일이 아니며 앞으로 계속될 사건들의 전조증상이다.  

  콜럼바인사건은 다양한 모방 총기범들을 잉태했으며 한국인이라서 더욱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던 조승희 사건은 이민자의 삶의 궁핍에서 그를 바라보아야할 것인지, 제대로 그를 조사하지 않았던 미국조사관들에 의해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32일간의 금식을 했던 주미대사의 행동과 미국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위협행동들 등 한 개인의 행동을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해석하려 했던 그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조승희는 콜럼바인사건의 총기범들과는 다른 형태의 총기범이었다. 하지만 조승희 개인의 보고서에 대해서는 콜럼바인에서 보여준 증거들과는 달리 방대한 양의 자료가 없었고 그가 정말로 많은 언론과 책출간을 통해 보도되었듯이 피해자로 자란 가해자인지 확실할만한 증거물이 없었다. 조승희사건 후의 조승희는 있었지만 조승희사건 전의 조승희는 알 수 없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일들을 지극히 평범한 시선으로 분석한 콜럼바인의 두 학생에 비해 조승희에 관해선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정보가 없었다. 객관적인지 판단할 수 없는 언론만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조승희는 조현병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에반 레이첼 우드가 주연으로 나오는 '인 블룸'이라는 영화가 있다. 극중 다이애나로 나오는 그녀는 단짝 친구 모린과 함께 있다가 교내에 총을 들고 와 무차별 난사 중이었던 남학생에 의해 둘 중 한명만 살려 주겠다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 다이애는 사랑스러운 딸과 남편과 함께 평범한 행복을 경험하며 살고 있지만 결말로 가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사실 그 총기범이 제안했을때 그녀는 총에 맞아 이미 죽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에게 앞으로 있을 수 있었던 행복한 삶들은 총기범의 단순한 역학적 손가락운동에 의해 무참히 사라진다.

 

 총기범들에 의해 많은 개개인들의 삶들이 물거품처럼 흩어지고 깨어졌다. 희생된 사람들과 함께 생존한 가족들과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삶 또한 많은 부분의 행복을 예전처럼 누리지 못할 것이다. 보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은 희생자의 감정에 공감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까지도 그때의 기억을 통해 불행한 순간을 간접체험할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없다니 참 억울한 일이다. 가해자는 없으되 가해자만큼의 책임은 미필적고의에 의해 총기를 허가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가야하지 않을까.

 

 두가지 갈래 길이 있을때 모든 것을 파괴하는 길로 가야할지 때때로 이런저런 사건이 있을지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길로 가야할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두번째 길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적어도 모든 것이 파괴되진 않을테니까  계속해서 시도해볼만한 가능성들이 주어지니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핵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미국과 북한이 포기하지 않았던 파괴의 길을 한국은 다른 길을 선택해서 다른 가능성들을 시도하고 있다. 이게 어떤 결과로 나올지 앞으로도 계속될 존재하느냐, 파괴되느냐의 갈림길에 선 신중한 선택이 각 나라 정상에게 진심으로 깨달아지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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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포크 KINFOLK Vol.7 킨포크 KINFOLK 7
킨포크 매거진 엮음, 김미란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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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는 몰랐던 대접.이라는 단어.
 하물며 반가운 친구가 왔을때 준비할 께 뭐있냐 하지만서도 사실 더 즐거울 수 있는 건 음식 덕분이 아닐까.

 감히 장담할 수 없기에 아이스크림을 산다. 이 말에 공감을 느낀다. 늘 오는 사람의 손엔 먹을것이 어김없이 들려있고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 또한 무얼 해줄까 고민하며 있었던 시간들.


 

 

 킨포크.처음 이 단어를 들었기에 키친포크? 주방에서 쓰는 포크인가? 그럼 이 책은 주방에 관련된 것인가? 이런 누구나처럼의 생각으로 책을 펴들었건만 새로운 신세계를 만났다. 친족이나 일가, 가까운 사람을 뜻하는 킨포크. 무려 2011년에 처음 창간된 후 감성 실용 매거진으로 세계에서 잔잔한 기쁨을 주고 있다는 이 책. 킨포크족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문화 현상의 하나로 자기만의 개성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단언하기는 힘들만큼 이 책엔 인생의 많은 부분들이 깃들어있다. 우리가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물쭈물하다가 끝나버렸다는 버나드쇼의 희극적인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인생은 우물쭈물할만큼 무언가로 가득차있다. 그 중 긍정적인 부분을 꽃잎처럼 따낸다면 킨포크. 이 책이 탄생하지 않을까.

 

 

재밌게도 변치않는 에티켓과 진부한 구닥다리 에티켓을 비교하듯 양면의 장으로 소개된 장이 있다. 어느 나라에고 상통하는 에티켓은 있게 마련인듯  뭔가 코믹한 요소가 담긴 장이다.

 

 

 소금을 소량으로 직접 생산한다니.. 이 또한 매력적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소금을 이렇게 과정 하나하나를 거쳐 생산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번거롭고 귀찮은 일일까. 슬로우라이프, 슬로우푸드, 슬로우슬로우. 이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분명 무척 부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삶을 많은 사람들은 꿈꾸고 있을 것이다. 직접 내 입에 들어가고, 가족과 친척, 친구, 이웃,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을 생산하고 밥상 위에 올려질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하나하나 내 손으로 행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불신의 먹거리 행태에 많은 사람들이 직접 생산해 먹고싶다는 마음은 이미 팽배해져있다. 그런 욕구를 이 부분에선 더욱 불러일으킨다.

 

 

 

호수위의 디저트타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장면. 이 장면을 보노라면 누구든 자신의 버킷리스트 항목에 추가해놓지 않을까. 죽기 전엔 한번 해보고 싶은 여유.


 

 

 

버킷리스트.
 한장 한컷 남겨진 때로 가지 않은, 그러나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들. 그것들이 이루어질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닐까.

 

 

 

소금 레몬 아이스크림.
 이건 내 레시피 버킷리스트로 올라버렸다.
  그닥 어렵지 않은데 그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걸 만들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으랴. 


 소금은 단맛과 만났을때 단맛을 추겨올려준다. 신맛은 단맛과 만났을때 그 상큼함을 배로 올려준다. 그러면 짠맛과 단맛, 신맛은 궁합. 가히 환상적이지 않을까.

 

 

 

 

소. 이 부분에선 감동이 찡하게 밀려왔다. 우리에게 우유를 줘서 그걸로 아이스크림 등을 만들어주는 소에게 몸에 좋은 풀 먹이기, 소화가 잘 되게 돕기, 그래야 우리에게 우유를 주는 소에게 고마움을 보답할 수 있으니까.  세상의 모든 소들이 비록 결과가 뻔할지라도 사는 동안 이런 과정의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사진이 왜 좋은지는 모르겠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이 장면이 왠지 내 어린 시절 아래를 내려다보며 공상에 빠지곤했던 때를 떠올리게해서일까. 그냥 좋다.

 

 

 

 

삶은 여유를 즐길 수 있을때 충만해진다. 하지만 그 여유가 사치가 아니라 자연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것.  일상의 기쁨이란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라는 것. 그리 어렵지 않은 간단한 사실도 우리는 행하지 못하는 삶이 대부분이라 킨포크는 더욱더 우리의 이상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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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폴 서루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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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이 되어버린 집. 내 가정과 내 아이에 가지는 사랑과 희망을 잃었을때의 상실감. 타국에서의 외로움에 더해진 가정의 파탄이 어떤 식으로든 결국 세상의 끝으로 심리를 보내버리게 만드는 낯선 나라에서의 분열. 어쩐지 영화 '싱글라이더'가 떠오르는 단편. 이것을 시작으로 폴 서루의 여행은 극과 극을 치달으며 세상의 허례허식을 비판하고 인간심리의 근원을 생각하게끔 한다. 끔찍하고 기발한 장면이 오히려 현실을 더욱 부각시켜 인간의 정서를 자극시키는 소설! 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독자들이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줄 이해할만하다. 외국인이 외국에서의 외국사람과의 이질적인 생활. 공감되지 못하는 소통. 그 불편한 느낌을 잘 표현해낸 세상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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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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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면 시작된다. 어릴때는 슬픔의 무게를 모른다. 대신 울음과 짜증이 서툰 슬픔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자라면서 저마다의 다양한 삶의 모양과 슬픔의 모양을 가지게 되고 예상하지 못하거나 예상하면서도 슬픔에 다가서서 그 모양이 주는 변덕을 견디고 견뎌내는 것. 그것이 삶의 무게이다.

 

 때때로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기도 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섰지만 감당하기 벅찬 시련들. 왜 이런 시련들을 내게 주나이까. 아무리 외쳐보아도 허공의 메아리로 돌아오는 답은 내가 한말의 되돌림이다. 인과응보. 세상은 그리 간단한 인과응보로 나타나지 않는다. 왜 죄를 짓고도 그리 뻔뻔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가. 그럼 아주 뻔뻔하면 된다. 죄에 무감각할 정도로 뻔뻔하면 그 사람은 양심에 거리낄것이 없기 때문에 죄책감이 자신을 짓뭉게놓지 않는다. 어중간하게 뻔뻔하다가도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은 도무지 속일 수 없으니 자신을 짓뭉게고 일상이 힘들어지면서 부메랑처럼 자신이 한짓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그러니까 양심에도 거리낌없이 죄를 짓고도 뻔뻔한 이런 사람. 그런 사람은 죽을때까지 자기 멋대로 잘 산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정말로 그리워하며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슬픔의 다양한 모양을 단편 하나하나로 표현하고 있는 바깥은 여름. 보통 책 제목이 본문의 단편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바깥은 여름.이라는 이름의 단편을 만날 수 없다.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이렇게 총 7개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세상 사람들의 풍경은 우리가 겪는 일이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어에 나오는 사건, 사고들의 어떤 뒷 이야기들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뒷다마. 건너건너 누구 누구가 아는 사람이 가족이야, 친구야. 아는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는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 결국은 나였으면, 내 가족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난제들. 생각거리가 담긴 단편들이다.

 

 입동. 소소하게 자신의 집을 꾸미고 DIY로 직접 인테리어를 해서 비용을 아끼는 요즘 트렌드가 되는 젊은부부들의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는 집. 그 집에는 무표정하고 멍한 표정으로 다른 세상에 가 있는듯 무심한 아내가 있다. 아내가 그런 상태가 된 이유. 그 이유가 궁금해 이야기를 따라 넘어가다보면 불행한 슬픔의 모양과 만나게 된다. 소박한 꿈을 안고 열심히 일을 해서 빚을 갚아가며 아이가 크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할 그들이 원했던 삶의 모양은 후진하는 유치원 버스에 아이가 치이면서 작고 말랑말랑한 손을 다시는 느껴볼 수 없게 된 끔찍한 현실로 주어진다. 그들 부부에게선 다시는 성장하지 않을 어린 생명의 끊긴 숨.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재가 미래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뒤이어 그들이 금전적인 문제로 아이의 죽음으로 받게 된 보상금에 손을 대면서 느끼는 죄책감. 이 부분은 매우 현실적이다. 그렇게 슬픔의 모양은 입동에서 시작되어 '노찬성과 에반'에서 또.다.시. 매우 현실적인 실제감을 드러낸다.

 

 노찬성과 에반.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천만을 넘어선 이 시대.

 누구나 어릴때 노찬성과 에반을 떠오르게 할만한 에피소드는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이때는 대부분 동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노찬성 나이때쯤 나 또한 강아지, 병아리를 키우고자 열망한 비슷한 경험이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수고로움은 특히나 집안살림이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는 부담이 가중되는 일이기 때문에 애시당초 가장들은 동물을 못 키우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아니면 그 동물이 불행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기에 책임을 지겠다고 선포하고 키우게 마련이다. 그러지 않는 아이들도 많겠지만 나 같은 경우도 노찬성처럼 그렇게 동물을 거둬온 적이 있었다. 사실 아이들이 책임질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가장 중요한 책임은 돈으로 하는 것인데 그게 되지 않으니 결국은 가장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많은 추억을 쌓기도 전에 에반은 암에 걸리고만다. 이미 진행될때로 진행된 암에 걸린 에반을 수술시킬 수도 없고 고통스럽지 않게 안락사를 시키기로 마음 먹은 노찬성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에반을 생각하며 힘들게 번 아르바이트비를 그 나이때즘 갖게 되는 욕망으로 인해 자기합리화하며 야금야금 사용하게 되버린다. 에반은 더이상 희망이 없게될즈음 비극으로 치닫는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자신의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노찬성. 어쩌면 자살인듯 보이는 에반의 마지막. 꿈에서 본 아버지의 교통사고현장과 할머니의 쉿! 몽환적이면서 비극의 한 토막이 현실적인 노찬성의 유년시절의 에피소드를 만든다.

 

 동물과의 교감은 인간과의 교감과는 또다른 측면이다. 요즘 하루 걸러 발생하는 여러 동물학대행태들은 생명에의 존중과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잔인한 모습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을 찡하게 하는 교감.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 생명의 신비에 정말로 감동을 느낀다면 동물을 학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노찬성은 아직 아는 게 많이 없는 앳된 아이에 불과하지만 사람이 느껴야할 본질이 뭔가에 대한 성숙함을 깨닫게 하는 존재다.

 

 노찬성과 대조되는 인물로 '가리는 손'에 나오는 청소년들. 때때로 거리낌없고 잔혹하리만치 냉혹한 청소년들의 행동을 볼때가 있다. 성숙되지 않은 그들의 행동은 상대방을 생각할 생각도 없고 죄악의 무게도 없으며 선과 악을 왔다갔다하며 불안불안하다. 천사같다고 생각했던 솜털 같던 아이가 사실은 나만의 착각으로 생각되어질때. 그것만큼 무서워지는 일이 또 있을까. 가족. 가장 믿음직스러운 울타리가 깨어지면 그 밖으로는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불신과 불안이 덮쳐올까.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바뀌게 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세월호. 이 사건을 떠올리면 아직도 뭉친 슬픔이 풀어내지 못한채 몽클몽클 돌아다니며 답답하게 한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결국은 모두가 가라앉고 만 저 바다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수면 위로 떠오른 숨겨지지 않은 슬픔을 견뎌야할 가족들은 마치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그는 집에서 예전에 했던 행동들을 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를 볼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 사死자들의 가족들은 서로의 안부를 계속 궁금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 겪은 일에서 느낀 소외감. 슬픔의 모양이 비슷하면 서로 궁금해지게 되기 마련이다.

 

 유독 죽음과 맞닿은 이야기를 많이 만난 바깥은 여름. 이 책을 읽고 있는 현재도 타 들어가는 여름이다. 폭염으로 인해 분출되는 노폐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삶은 얼마나 이글이글 타오르는 폭염과 같은가.도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노폐물들이 삶의 격정으로 분출될지라도 그 뒤에 찾아오는 잔잔한 평화는 죽음의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의 성숙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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