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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세트 - 전2권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영웅열전]에는 19명의 영웅들이 나온다. 주로 영웅이라 함은 한 나라를 지키는 강한 싸움꾼과 비슷한 이미지인데 따지고보면 영웅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운 사람도 많이 나온다. 특히 2권에는 주로 철학자, 웅변가들이 많이 나오는데 '디오게네스' 가 그 속에 낀 것이 제일 인상 깊다.
비록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가 '나도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했을지언정, 디오게네스의 영웅적 이미지로써가 아닌 조의조식하는 자신의 삶에서 또한 지조를 잃지 않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 같은 삶'을 산 철학자들이라는 뜻으로 '퀴니코스 철학자'로 불리는 디오게네스는 형편이 구차스러워 값싼 푸성귀를 구해 깨끗이 씻어 먹고는 했다고 한다. 이것을 본 유복한 친구 아리스티포스가 지나가다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고개 수그리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호의호식할 수 있는 것을..."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조의조식하는 법을 조금만 알면 고개를 숙이고 알랑방귀는 뀌지 않아도 되는 것을..." 91p
디오게네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음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모습만으로 그를 판단하기 힘든 것은 기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절대 긍정에 이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절대부정이 그들의 기행의 긍정적 의미인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가 바로 앞에 인사를 하러 와도 태양을 가린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은 건 틀림없는 사실인 듯하다. 부와 명예는 잃을 게 많으니 자유를 누릴 순 없지만 자신은 그런 것 대신 자유를 누리는 걸 택한다는 디오게네스는 촌철살인적인 짧은 명구를 남기며 역사 속에 강한 존재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파르타. 라고 하면 왠지 우락부락하고 무식이 좔좔 흐르는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지만 이외의 스파르타를 책 속에서 볼 수 있다. 스파르타하면 뤼쿠르고스가 빠질 수 없다. 그는 교육의 이점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신체단련을 위해 사람들을 강하게 훈련시켰다. 스파르타인들은 촌철살인의 짧은 문구를 즐겨 썼고 횡성수설하는 긴 말보다는 침묵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하는 체육경기에서는 알몸으로 참가해야 했고 후에는 여성 또한 이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알몸으로 참가해야 했다. 그들은 알몸을 내보여야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영화 '300'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아이를 두 세명 놓을 때까지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얼굴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는 아이를 놓기 위해 성관계를 하는 것이지 관능적 사랑은 오히려 해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파르타인들은 스파르타에는 간통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스파르타의 헬레나라고 해서 헬레나가 스파르타인이었나.. 하고 조금 헷갈렸는데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정략결혼 상대자였다는 걸 알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헬레나는 스파르타인이 아니었기에 파리스와 눈이 맞았다. 스파르타인은 간통이 있을 시에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답은 바로 트로이의 운명을 보면 알수가 있을 것 같다.
금욕적이고 침묵적이며 수사학이 발달되었지만 향략적 예술을 즐기지 않은 민족이 스파르타다. 그러다보니 후손들이 그들이 남긴 유적을 볼 때 다른 선대들이 남긴 문화유산보단 많이 심심한게 사실이다.
영웅이미지보다는 철학자 이미지에 어울리는 퓌타고라스는 윤회설을 믿었다. 그는 육체는 한번 없어지면 영원히 사라질 것이나 영혼은 영혼하며 원래 있던 곳을 떠나면 다른 집을 찾아 들어가 거기에 다시 거한다고 했다. 따라서 살생은 살인이나 다를 바가 없으므로 채식주의를 선호했다. 퓌타고라스는 서아시아, 인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만난 동방박사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바가 많을 것이다. 인도를 비롯한 동방에서 불교사상이 유행했고 불교사상에서 또한 윤회설과 살생을 금하는 항목이 있다. 이는 퓌타고라스를 통해 서양사상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퓌타고라스의 그리스 이름이 '퓌타 고라스', 영어 이름은 '파이테거래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붓다 구루스'인 것을 봐도 왠지 심상치 않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알렉산드로스가 세계를 정복하면서 서양문화를 동양에, 동양문화를 서양문화에 서로 융합시켜 헬레니즘 문화가 발전한다. 이 문화 다음으로 헤브라이즘 문화가 뒤에 등장하는데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서술은 끝마치지 못한 상태다. 어쨌든 헬레니즘 문화를 통해 서양과 동양에서는 여러가지 중복되는 설화와 전설, 신화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그리스와 로마 역사를 중심으로 회자되는 에피소드마다 그와 비슷한 일례의 동양 역사의 중심 인물의 에피소드를 곁들이기도 한다.
탈레스의 일화는 1권의 솔론의 이야기를 담은 164,165p와 2권의 탈레스의 이야기를 담은 71,72p에 중복 에피소드가 나와 있다.
독신으로 살던 텔레스가 친구인 솔론이 방문해 결혼을 할 것을 종용하자, 하인을 시켜 솔론의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꾸미게 한다. 이말이 거짓인 줄 몰랐던 솔론은 망연자실해 울부짖지만 곧 탈레스를 통해 진실을 전해 듣게 된다. 탈레스는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을 기르지 않는 까닭은 자식의 죽음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마도 자식이 있는 한은 항상 염려와 걱정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탈레스는 알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늘을 보며 사유에 잠기며 걷다 물에 빠진 에피소드가 있었던 만큼 탈레스 또한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피라미드에 올라가지도 않고 그 길이를 잰 것으로 유명하다. 막대기를 꽂아 그림자의 길이를 잰 후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보고 피라미드의 길이를 알아낸 것이다.
책 속 인물들 중 가장 안타까웠던 인물은 그라쿠스 형제였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다 귀족과 보수 원로들에게 맞아 죽었다. 소수인 그들보다 국민들이 다수인데도 그 당시 국민은 그다지 자기 의사를 내비치고 그 의사를 반영하는 사람을 지지할만큼 의지나 의식이 깨어 있지 않았다. 그라쿠스 형제를 다수 국민들이 몸소 지지하고 들고 일어났더라면 자신들도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었을텐데 아쉽게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최고의 보물이 아이들이라고 말하던 그라쿠스 형제의 현명하고 자애로운 어머니 '코르넬리아' 또한 이 시대에 흔하지 않는 훌륭한 여성이자 어머니로 후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 밖에 아리스테이데스, 한니발과 스키피오, 카이사르, 퓌로스 같은 영웅들과 철학자, 현자에 가까운 소크라테스, 플라톤, 키케로, 포키온,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사랑한 남자 알키비아데스가 나온다.
페리클레스가 스파르타와 내통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자 아테나이인들은 페리클레스를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그를 더욱 신용하고 그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페리클레스가 그런 공작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바로 적이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저자는 '우리가 역사를, 혹은 역사로부터 배워야 하는 까닭은 이로써 자명해진다'고 말한다.
아직도 역사를 재현하는 사태들이 많이 일어난다. 지금 일어나는 어떤 일들을 보면 역사에 일어난 일과 비슷한 사례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기는 커녕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는 그저 재미와 흥미거리가 아닌 때로는 교훈과 지혜의 역할도 한다는 것을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료와 그림들로 보는 책을 만들고자 했던 작가가 심장마비로 일찍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완전하게 완성되지 못한 책을 덮을 때쯤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느껴졌다. 후속작도 궁금해짐은 더할 나위 없다. 운명의 매정함이 얄미워진다. 그러나 작가님의 팬으로써 삼가 고인의 명복을 차분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