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철 작가의 '포로들의 춤'은 스위스의 유명 사진작가인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 1916 - 1954)이 남긴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실마리를 얻은 소설집이다. 작가가 실마리를 얻은 사진은 가면을 쓴 포로들끼리 팔을 엮은 채 스퀘어 댄스를 추는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의 기이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유엔 재교육 캠프에서의 스퀘어댄스, 거제도, 한국 1952'(Square Dance, Koje Do, Korea, 1952)란 제목이 붙었다. 포로수용소에서의 춤이라니 비상식적이다. 이 사진이 증거하는 비상식은 님 웨일즈와 김산의 '아리랑'에 나오는 의열단원(義烈團員)들의 기이한 행적을 떠올리게 한다. 독서와 오락을 즐겼고 사진을 즐겨 찍었고 공원 산책하기를 즐긴 아나키스트 성격의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원....임시정부의 활동을 미온적인 것으로 본 사람들... 차이가 있다면 포로수용소에서의 춤이 비자발적인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심리적 안정과 거리가 먼 의열단원들의 독서와 오락, 사진찍기와 산책은 자발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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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의 손에서 떠날 때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면 모든 것이 악해진다.“ 이 글은 루소가 쓴 ‘에밀’의 첫 문장이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해명하는 데에도 참고할 만한 250년 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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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읽기는 허공을 가르는 듯하다. 쉬운 책과 어려운 책 사이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책과 필요한 책 사이에서 길을 잃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마수미란 이름이 내게 다가왔다. 알라딘 이벤트로 마수미의 ‘가상과 사건’ 서평회가 마련되어 있다. 젊은 서평자 세 명이 해당 책을 읽은 결과를 서평 형식으로 발표하고 질의 및 토론을 할 것이라고. 관심이 있지만 기피해오곤 한 저자이고 개념이다. 마수미의 책 제목을 블로그 이름으로 설정한 블로거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영향력이 꽤 크다고 생각할 만하다. 문제는 내 읽기에 있다. 과연 필요한가, 란 의문이 선택을 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책을 읽어 생각이 풍성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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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압생트, 기시감, 미시감 등의 시어들로 생각을 유발하는 시, ‘압생트’는 조용미 시인의 신간 ‘나의 다른 이름들’에 담긴 시들 가운데 하나이다. 시인은 기시감과 미시감을 함께 앓는다. 고흐가 조증(躁症)과 울증(鬱症)을 앓았던 것처럼. 시인은 기시감과 미시감을 오가는 자신의 상황을 전생의 기억이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이 설명은 해석의 여지나 여운을 남긴다는 면에서는 좋지만 정확한 인식을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궁금한 것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데 익숙한 것으로 보이는 사태(기시감)나 익히 알고 봐오던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느끼는 사태(미시감)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이다. 이 문제의식은 표제작인 ‘나의 다른 이름들’에 나오는 “...나는 어디까지 나일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나임을 증명할 수 있으며...”란 구절과 차원이 같다.


‘베네치아 유감’이란 시에서 시인은 “... 두렵다가 친근/ 해졌다. 무관하다가 다시 두려웠다. 내가 만들어 낸 헛/ 것이 분명하다고 믿은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란 말을 한다. ‘나의 사랑하는 기이한 세계’ 역시 같은 차원으로 읽을 시이다. “내가 보고, 내게 보이는 것들/ 내게로 와 내 눈에만 살며시 보이는 헛것들// 속삭이며 귓속을 울리는 내 것이 아닌 이 숨소리들// 나의 감각이 구축한 튼튼하고 허약한 세계/ 내가 설계한 기이한 건축물...” 환(幻)이고 헛것이지만 “튼튼”하다고 볼 여지가 있는 세계를 알기 위해, 기원을 찾는 시인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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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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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살아보니'는 올해 97세를 맞은 김형석 교수의 철학적 수필집이다. 저자는 철학 교수로 오랜 시간 후학을 가르친 경험을 가진 분이다. 100세를 앞두었음에도 육체적 건강과 뇌 건강을 두루 유지하고 있는 저자는 특기할 만하다. 더구나 이렇게 책을 내기까지 하니 더욱 그렇다. "가르치는 일 한 가지만 하면 된다."는 저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평생 철학을 가르친 분의 만족감을 짐작케 하는 담담한 회고라 할 수 있다.


70년 전 인연을 맺은 80살 제자를 만나고 돌아온 이야기처럼 감동적인 이야기가 관심을 집중시킨다. 남는 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간직한 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글은 남다르게 느껴진다. 저자는 사랑하고 결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결혼을 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많은 문제점을 안타까워 한다. 애욕의 애정으로의 승화를 말하는 저자의 글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읽힌다.


책에서 저자가 첫 순서로 언급한 철학자가 쇼펜하우어이다. 쇼펜하우어는 결혼을 거부했지만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허무한 고독을 느끼는 사람은 자녀 없이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가벼운 글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글 특히 저자처럼 90 평생 철학을 공부해온 분의 글에는 이론에 치우치지 않는 지혜, 개념이 아닌 느낌, 지식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빛이 가득하다.


가령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는 괴테의 말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일상에서 길어올려 전하는 내용은 대표적이다. 놀라운 것은 저자의 상세한 기억력이다. 물론 당사자가 아닌 우리로서는 약간의 오류도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구체적 사례를 들어 치밀하게 글로 이어나가는 공력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년 전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자체로 흥밋거리이다.


섭리라는 말을 하며 철학적인 이야기여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사회학의 개척자인 오귀스트 콩트와 막스 셸러의 이론을 이야기 한다. 종교에 관한 두 철학자의 상반되는 견해가 흥미롭다. 섭리 체험이란 말을 종교를 긍정하는 말로 풀어내는 저자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저자에 의하면 섭리는 은총의 체험이다. 저자는 섭리를 운명도 허무도 아닌 제3의 것(대안)으로 인정한다. 저자가 반대하는 것은 종교적 폐쇄성(에 갇혀 있는 것)이다.


'백년을 살아보니'는 수필 형식의 글이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힌다.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은 책의 구성이다. 1부 행복론, 2부 결혼과 가정론, 3부 우정과 종교론, 4부 돈과 성공, 명예론, 5부 노년의 삶론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각 부의 내용들이 풍성하고 다양하다는 점이 놀랍다. 명불허전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너무 일찍 성장(정신적)을 포기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한다.


아무리 40대라도 공부하지 않고 일을 포기하면 녹스는 기계와 같아서 노쇠해진다는 것이다. 건강에 자신이 없었던 저자가 100세를 바라보게 된 것은 신체나 정신적 무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50 고개를 넘겨서야 정상적인 건강에 자신을 찾았다는 저자이다. 저자는 노년기의 지혜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서 지식을 넓혀가는 일이라 말한다. 좀 더 일찍 저자의 정통 철학서들을 접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마음이 든다. '백년을 살아보니'를 잔잔한 저녁 노을 같은 책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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