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년을 살아보니'는 올해 97세를 맞은 김형석 교수의 철학적 수필집이다. 저자는 철학 교수로 오랜 시간 후학을 가르친 경험을 가진 분이다. 100세를 앞두었음에도 육체적 건강과 뇌 건강을 두루 유지하고 있는 저자는 특기할 만하다. 더구나 이렇게 책을 내기까지 하니 더욱 그렇다. "가르치는 일 한 가지만 하면 된다."는 저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평생 철학을 가르친 분의 만족감을 짐작케 하는 담담한 회고라 할 수 있다.


70년 전 인연을 맺은 80살 제자를 만나고 돌아온 이야기처럼 감동적인 이야기가 관심을 집중시킨다. 남는 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간직한 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글은 남다르게 느껴진다. 저자는 사랑하고 결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결혼을 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많은 문제점을 안타까워 한다. 애욕의 애정으로의 승화를 말하는 저자의 글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읽힌다.


책에서 저자가 첫 순서로 언급한 철학자가 쇼펜하우어이다. 쇼펜하우어는 결혼을 거부했지만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허무한 고독을 느끼는 사람은 자녀 없이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가벼운 글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글 특히 저자처럼 90 평생 철학을 공부해온 분의 글에는 이론에 치우치지 않는 지혜, 개념이 아닌 느낌, 지식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빛이 가득하다.


가령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는 괴테의 말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일상에서 길어올려 전하는 내용은 대표적이다. 놀라운 것은 저자의 상세한 기억력이다. 물론 당사자가 아닌 우리로서는 약간의 오류도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구체적 사례를 들어 치밀하게 글로 이어나가는 공력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년 전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자체로 흥밋거리이다.


섭리라는 말을 하며 철학적인 이야기여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사회학의 개척자인 오귀스트 콩트와 막스 셸러의 이론을 이야기 한다. 종교에 관한 두 철학자의 상반되는 견해가 흥미롭다. 섭리 체험이란 말을 종교를 긍정하는 말로 풀어내는 저자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저자에 의하면 섭리는 은총의 체험이다. 저자는 섭리를 운명도 허무도 아닌 제3의 것(대안)으로 인정한다. 저자가 반대하는 것은 종교적 폐쇄성(에 갇혀 있는 것)이다.


'백년을 살아보니'는 수필 형식의 글이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힌다.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은 책의 구성이다. 1부 행복론, 2부 결혼과 가정론, 3부 우정과 종교론, 4부 돈과 성공, 명예론, 5부 노년의 삶론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각 부의 내용들이 풍성하고 다양하다는 점이 놀랍다. 명불허전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너무 일찍 성장(정신적)을 포기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한다.


아무리 40대라도 공부하지 않고 일을 포기하면 녹스는 기계와 같아서 노쇠해진다는 것이다. 건강에 자신이 없었던 저자가 100세를 바라보게 된 것은 신체나 정신적 무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50 고개를 넘겨서야 정상적인 건강에 자신을 찾았다는 저자이다. 저자는 노년기의 지혜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서 지식을 넓혀가는 일이라 말한다. 좀 더 일찍 저자의 정통 철학서들을 접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마음이 든다. '백년을 살아보니'를 잔잔한 저녁 노을 같은 책이라 부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