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출판 기획, 편집 강의를 하신 한 강사 분은 두 시간 강의는 어느 정도 하겠는데 세 시간 강의는 도살장에라도 끌려가는 기분이 든다는 말을 했다. 이 분의 말이 많은 생각을 유도한다. 강의를 준비하는 분의 노고와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두 시간 강의라고 쉽겠는가? 그럼에도 듣는 입장에서는 그 이상을 바라게 되는 것 같다. 1300여 페이지의 미술 인문서를 쓴 한 강사 분이 자신의 책을 풀어 설명하는 강의 프로그램을 두 시간으로 설정한 것을 보며 동서양 철학을 미술로 보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다 하려는가, 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제 신화 속의 역사 강의를 하신 분의 말처럼 자기 주도 학습이 필요할 것이다. 미술사와 철학을 배운다기보다 공부하는 방식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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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의 모바일 상품권 ‘카페 라떼 Tall’ 티켓의 유효기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무심히 보아온 스타벅스의 사이렌 로고가 오늘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바다에 뛰어들도록 충동하는 ‘여성의 얼굴과 독수리의 몸을 가진 전설의 동물들’이다. 스타벅스가 사악하다고 할 수 있는 사이렌을 로고로 설정한 것은 전 세계 사람들을 커피의 바다에 빠지게 하겠다는 포부에 따른 것이다.


스타벅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1등 항해사이다. ‘모비딕‘의 고래 이름인 모비딕에서 영감을 얻어 ’Moby Dick‘이란 곡을 만든 영국의 록 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보다 그 소설에서 회사 이름을 따오고, 그리스 신화에서 사이렌의 이미지를 가져와 로고로 설정한 스타벅스가 훨씬 대담하고 기막히게 느껴진다. 세련을 소비하는 것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 스타벅스의 카페 라떼.. 언제 마시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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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29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전 ..레드 제플린이 ..더 ! 한표 줄래요 .
ㅎㅎㅎ
스벅은 제 취향은 아니어서 ..ㅎㅎㅎㅎ

벤투의스케치북 2016-08-30 06:30   좋아요 1 | URL
네...취향, 저도 아니에요. 공짜 티켓이 생겼을 뿐이지요.. ㅎㅎ

[그장소] 2016-08-30 06:5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좋은 일로 생기신거니 축하!!
생활의 발견 ㅡ으로 만나보는 벤투! 나쁘지 않네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08-30 07:1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본의 아니게 미신(迷信)과 미신 아닌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 중.. 풍수지리에 따르면 좌청룡은 장남을, 우백호는 차남을 상징한다고... 풍수지리에 대해 잘 모르기에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등의 상징 자체를 미신이라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조선왕조의 스물 여섯 왕위 세습 사례 중 적장자(嫡長子) 세습이 여섯(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에 불과했고 그나마 숙종 외의 다섯 임금은 일찍 죽거나 반정(反正)으로 폐위(廢位)된 것을 장남에 해당하는 좌청룡 낙산(駱山)은 낮고 차남에 해당하는 우백호 인왕산(仁王山)이 높고 험준한 까닭이라 보는 것은 어떤가? 오행(五行)에서 불을 의미하는 례(禮)자가 들어 있는 숭례문의 겅우 한양을 내려다보는 남쪽의 관악산이 풍수지리적으로 불의 산 즉 화산(火山)인 까닭으로 불을 불로 막으려는 의도에서 불을 닮은 숭(崇)자가 선택된 것이라는 것은 또 어떤가?

 

어떻든 숭례문의 사례는 이름에 밝을 희(熹)자가 들어 있어 그 기운을 중화시키기 위해 호에 그믐을 뜻하는 회(晦)자를 넣은 주희(朱熹)의 사례와 비슷하다. 실익을 중시하면 미신, 상징으로 받아들이면 미신이 아니라 보면 어떨까? 인의예지신을 내세우는 오행(五行) 원칙에 따라 한양 도성의 동쪽 대문을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서쪽 대문을 돈의문(敦義門)으로, 남쪽 대문을 숭례문(崇禮門)으로, 북쪽 대문을 숙정문(肅靖門: 소지문, 炤智門)으로, 도심의 전각을 보신각(普信閣)으로 설정한 것은 인의예지신이라는 추상적인 미덕을 추구한 것이니 실익과 무관한 것 즉 미신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 그러면 불로써 불을 막기 위해 남쪽 대문을 숭례문으로 이름지은 것은 실익과 관련된 것이기에 미신이라 할 수 있을까? 미신 vs 합리가 아닌 추상적 사유방식 vs 즉자적 사유 방식으로 나누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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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유정은 지음 / 리베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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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교수의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사임당 평전'은 예술가로서의 사임당을 조명한 책이다. 이 점은 물론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현모양처가 아닌 여성 군자적 면모에 초점을 두고 사임당(1504 - 1551)을 조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잘 알다시피 현모양처란 개념은 18세기 무렵 서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하의 근대 가족이 생기면서 비롯되었다. 더욱 우리나라의 경우 이 개념은 일제에 의해 여성은 참전할 군인을 공급하는 존재로 왜곡, 선전되었다. 조선의 현모양처 어머니들이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저자는 시, 서, 화에 두루 능했다는 말로 사임당을 설명하는 세태에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더한다. 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는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확실히 정착되지 않은 시기였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대등한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시대였다. '주자가례'와 '소학'의 보급과 성리학의 지배이념화로 여성들은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임당이 살아간 시대는 네 번의 사화(士禍)가 일어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역사를 배우는 근본 의미들 중 하나를 생각해보자. 가령 조선 전기와 중기, 후기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여성이 처한 환경의 변화, 성리학적이고 가부장적인 편협한 질서의 고착화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변천은 생각하지 않고 조선 그것도 17 세기 이후에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지배 이념 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임당(師任堂)은 당호이다. 인선(仁善)이란 이름을 가졌다는 기록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옛 중국의 문왕이라는 훌륭한 임금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이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태임을 본받는다는 의미이다.


율곡이 말한 것처럼 사임당은 포도와 풀벌레를 그리는 데 절묘한 솜씨룰 보였다. 조선이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아니었지만 가부장적인 시대였던 것은 사실이다. 사임당은 남편 이원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여성이었다. 아내의 생각과 재능까지 모두 존중한 이원수도 존경할 만하다. 송시열을 필두로 한 노론계의 학자들은 사임당을 상찬했는데 그것은 율곡을 성현으로 만들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상당히 의도적이고 불순한 동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장지연의 '여자독본'은 달랐다. 사임당을 구한말 여성들이 본받아야 할 어머니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물론 사임당은 조선의 군국의 어머니상으로 선전되기도 했다. 사임당은 육영수 여사에 투영되어 전 국민의 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임당을 가장 적확하게 규정하는 말은 스승 같은 어머니, 간언하는 아내, 여자 군자, 시, 서, 화에 두루 능한 예술가란 말이리라.


사임당은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을 수양한 다음 남을 가르침을 이르는 말)과 법성현(法聖賢: 성현을 본받아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성장했을 것이며 스스로 솔선해 자녀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또한 아들, 딸을 차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임당에게는 율곡 말고도 작은 사임당으로 불린 매창(梅窓: 1529 - 1592)이란 딸도 있었다.(매창은 16세기 유희경의 정인이었던 매창과 동명 이인이다. 사임당은 7남매를 두었다.)


셋째 아들 율곡은 퇴계와 쌍벽을 이룬 조선 최고의 학자이다. 넷째 아들 우(瑀)는 거문고, 글씨, 시, 그림 등 네 가지에 뛰어나 사절(四節)로 불렸다. 사임당은 시로써 지극한 효성을 드러냈다. 시는 꾸며낼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저자는 공자가 말한 유교 미의식을 설명한다. 회사후소(繪事後素)가 그것이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만든 뒤에 한다는 의미이다.


사람도 아름다운 자질을 갖춘 후에야 꾸밈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미적 형식보다 내면의 인격적 충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가 사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의 강조점 중 하나로 외양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미가 서로 잘 어울림을 뜻하는 문질빈빈(文質彬彬)과 함께 생각해 볼 부분이다. 사임당은 세심하고 정감 어린 정서, 사랑의 인품을 바탕으로 한 보기 드문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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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저녁 비가 내린 뒤 어제는 가을 등산에 어울릴 차림으로 외출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오늘 새벽엔 나도 모르게 이불을 덮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런 중간 계절에는 적응이 중요하다. 기분을 업 시켜주는 빠른 음악들을 우울할 때 들으면 이상하듯 이제는 선풍기 바람이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한여름 약냉방 전철에서도 긴 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몸이 찬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가을 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상 기후에 적응하느라 지친 몸이 내는 호소(呼訴)에 귀기울이고, 너무 쉽게 밖을 향하곤 하던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시(詩)를 찾아 읽고, 하루 30분 걷기로 생각과 몸을 함께 최적화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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