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동네에 살고 있습니까 - 동대문구 사람들의 소소한 삶과 역사
시민나루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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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동네에 살고 있습니까’는 동대문구의 동(洞)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다룬 동들은 제기동, 회기동, 이문동, 휘경동, 청량리동, 전농동, 용신동, 답십리동, 장안동 등 아홉 개 동이다. 이 동들은 놀라운 역사를 가진 동들이다. 조선 왕조의 출범과 함께 왕이 친히 농사의 모범을 보인 곳, 그 수고를 백성들과 국밥으로 나누며 하늘에 제례를 올리던 신성한 곳, 동부권 물류와 소비의 중심지, 도성의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던 공급지, 국가의 전략적 중요 관리대상이었던 목마장이 있던 곳, 노동환경이 열악하던 시절 영상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최고의 복지를 제공하던 촬영소가 있던 곳...

 

제기(祭基)는 조선시대 왕이 제사를 지내던 터를 말한다. 회기동(回基洞)은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묘인 회묘(懷墓)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회묘는 고양 서삼릉 영역으로 옮겨졌다. 이 동에 경희대학교가 있다. 신흥무관학교를 이은 학교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그 사실을 감추려 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가운데 돈이 있는 사람들이 없어 재력이 있는 친일 경력의 인사들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연화사(蓮華寺)는 회릉의 원찰이었다가 회릉이 회묘로 격하되자 일반 사찰이 되었고 의릉(懿陵)이 들어서면서 다시 원찰이 되었다. 이문동(里門洞)은 시골이 연상되는 동이다. 도둑을 단속하기 위해 전국의 마을 입구에 세운 문인 이문은 성문(城門)과 대비된다. 성과 외부를 구분하는 문이 성문이라면 마을과 마을의 외부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이문이다. 이문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다. 이런 곳에 설렁탕 같은 음식을 파는 곳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세조는 야간 치안을 감당한다는 취지로 전국 요지에 방범초소격인 이문을 세웠다. 이문동에는 천장산(天藏山)이 있다. 상술하지 않겠지만 하늘이 숨겨놓은 산이 아니라 권위주의 시대의 정보기관이 숨겨놓은 산이다. 휘경동(徽慶洞)은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휘경동은 수빈 박씨의 묘인 휘경원(徽慶園)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청량리(淸?里)는 지역의 청량사(淸凉寺)란 절에서 유래했다. 전농동(典農洞)은 임금의 경작지인 적전(籍田)에서 유래한 동이다.

 

청량리가 대중적인 이름이라면 전농동은 유서 깊은 이름이다. 전농동에는 부군당(府君堂)이 있다. 신당(神堂)을 말한다. 조선 개국 공신 조반(趙?; 1341 ? 1401) 대감을 모신 곳이다. 전농동은 화가 박수근의 마지막 생을 기억하는 곳이다. 전농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이 배봉산(拜峯山)이다. 110m 높이의 낮은 산으로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과 '휘경원'이 있었다. 정조가 부친의 묘소를 향해 절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 산의 형상이 도성을 향해 절을 하는 형세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 등에서 유래됐다.

 

배봉산 숲속 도서관은 가볼만한 곳이다. 용신동은 용두동과 신설동을 합한 이름이다. 신설동(新設洞)은 구한말 종로의 연장선의 의미로 세워진 신도시였다. 한성부의 숭신방과 주로 겹쳤다. 마을 뒷산의 세(勢)가 용의 머리와 같다고 해서 용두동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살던 판자촌으로서의 기억이 강하다. 청년 전태일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판자촌 중 한 곳이 청계천변 용두동이다.

 

답십리동은 뚜렷한 정체성이 없다. 지금 사람들은 청량리역과의 접근성 때문에 답십리를 청량리와 묶는 경향이 있지만 이 지역의 정체성은 왕십리 지역과 더 잘 묶인다. 왕십리는 조선 전기부터 한양도성에 채소를 공급하는 배후지였다. 당시는 저장시설과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고기나 채소 등 부패하기 쉬운 것들은 먼 곳에서 운반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청계천 주변의 왕십리 등 인근 지역 일대는 한양도성의 채소 공급지로 기능했다.

 

마장동 일대의 우시장도 그런 연유로 활성화되었다. 청계천의 지류를 활용해 왕십리와 답십리가 순무, 배추 등을 도성에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답십리의 영화촬영소와 고미술상가는 가볼만하다. 장안동은 동대문구에서 인구, 공원, 학원, 사무실이 가장 많은 동이다. 현재 자동차 중고시장이 있는 장안평역 근처는 조선시대에는 말이 쉬어가던 살곶이 목장이 있던 곳이다. 장안동에 공원이 많은 것은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말 목장, 군사 훈련장)였던 것과 관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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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3-04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돌아다니던 동네가 나오니 신기합니다^^ 마장동 대로 주변에는 90년대에도 한 번씩 말이 다니곤 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김수영 시인이 10대 시절(6년 정도, 1934-1940) 살았던 곳도 용두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2-03-04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김수영 시인 이야기까지 들려주시고..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