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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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1883)올랭피아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등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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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프로세로의 화석은 말한다에 흥미로운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프로세로는 지구 격동의 이력서 암석 25 등을 쓴 고생물학자, 지질학자다. 진정한 과학자들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믿음에 반대되는 증거가 충분히 있다면 그 믿음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로세로는 마셜 케이(Marshall Kay; 1904 - 1975)라는 지질학자를 예시한다


대륙은 이동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기초로 하여 지질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일로 평생을 보낸 마셜 케이는 판구조론과 대륙이동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압도적으로 쌓이자 온 마음을 다해 판구조론을 품에 받아들였다. 정년(停年)이 가까운 나이에도 마셜 케이는 평생 해왔던 일을 새로운 개념에 근거해 다시 짜기 시작했다. 저자 도널드 프로세로는 마셜 케이의 지성적 솔직함과 용기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적 파탄(破綻)을 자초하고 정국을 무한 혼란에 빠트린 사람을 계속 지지하는 사람을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정말 옳다고 생각하고 지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와서 전향하면 자신의 존재가 부정 당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는 것이다


전자라면 정말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고 후자라면 마셜 케이 같은 과학자로부터 배우 필요가 있는 사람이다.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바울의 전격적 회심으로부터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인 유대교 신자였다. 그런 그가 돌아선 사건을 통해 기본인 하나님의 섭리 외에 바울이란 인간의 회심에도 주목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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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한 시선집 - 망향에 서정을 노래하다
연규석 지음 / 고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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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향토문학 발굴위원회에서 펴낸 허목 한시 전집이다. ‘망향에 서정을 노래하다란 부제를 가졌다. 1부 한시(漢詩), 2부 잡학(雜學), 3부 평설(評說)로 구성되었다. 미수 허목 선생은 1595년에 서울(한양 창선방)에서 태어나 1682년 연천에서 타계한 연천의 인물이다. 이 책을 번역, 출판하는 데 시인, 국문학자(교수), 소설가, 평론가, 수필가, 시조시인 등 전문가들이 감수위원으로 참여했다


남쪽 사비수(泗沘水)를 유람한 시가 먼저 등장한다. 사비(泗沘)는 부여이고, 사비수(泗沘水)는 부여의 강이다. 선생은 바윗돌을 불변하는 것으로 보았다. 천승(千乘)이란 말이 나온다. 전시(戰時)에 천() ()의 병거(兵車)를 동원할 수 있다는 뜻으로 제후(諸侯)를 이르는 말이다. 만승(萬乘)은 천자(天子)를 의미한다. 선생은 넓고 큰 성인 교훈 너무도 좋아하여 평생토록 공자의 글을 읽었다고 말한다.(설독개공자; 說讀皆孔子


억편(抑篇)에서 경계한 것 밤낮으로 되뇌었다고 한다. 억편은 위나라의 무공이 90세에 지어 자계(自戒)란 작품이라 한다. 그래서였는지 87세의 선생은 지금의 나는 구십 된 늙은이란 말을 했다.(금아구십로; 今我九十老). 선생은 인정은 본래가 먼 가지로 변하는 것 세상일 날이 갈수록 복잡해진다 친숙한 교분도 때로는 호월처럼 멀어지니 한결같이 보기가 매우 어렵네란 말을 했다. 호월이란 중국 대륙 북쪽의 호족과 남쪽의 월족을 이르는 말이다


선생은 산 밖의 일이야 알 까닭 없고 갈필에 먹 찍어 과두체를 쓰노라란 말을 했다. 갈필(葛筆)은 칡뿌리를 잘라 끝을 두드리어 붓 대신 쓰는 물건이다. 과두(蝌蚪)는 올챙이를 의미한다. 올챙이 모양의 허목 특유의 과두체(蝌蚪體)인 미수전(眉叟篆)은 후학들에 의해 은나라 솥과 주나라 그릇의 명문과 같은 기이한 옛 글이라는 평을 받았다. 선생은 고요한 가운데서 물리(物理)를 관찰하니 자신이 거하는 방도 하나의 건곤(乾坤)일세란 말을 했다. 건곤이란 하늘과 땅을 이르는 말이다


본문에 통천(通川)이란 지명이 나온다. 북(北) 강원도 통천으로 주상절리인 총석정(叢石亭)이 유명한 곳이다. 통천은 정축년(丁丑年) 1637년 정월 병자호란을 피해 강원도 동해로 피난하면 쓴 시에 나오는 지명이다.(병자호란은 병자년에 일어나 이듬해인 정축년에 끝난 전쟁이다.) 선생은 난리가 있은 이후부터는 일마다 괴로움이 생겨난다 슬프다 오랑캐의 난리 때문에 애처롭게 가시 숲을 숨어 다녔네라고 말한다


선생은 행실을 닦음은 수관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한다.(수행자수관; 修行自漱盥) ()는 양치질 할 수이고 관()은 씻을 관이다. 선생은 묵매(墨梅)를 이야기한다. 묵매는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를 소재로 수묵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웅연(熊淵)에서 뱃놀이하고 영숙(永叔)에게 보여주다란 글이 있다. 웅연은 연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으로 웅연(熊淵) 계람(繫纜)의 그 웅연이다. 범주(泛舟)는 배를 띄우는 것을 말한다. 영숙은 권수(權修)의 자()미수의 종형인 허후(許厚)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이다


본문에 폐소(弊梳)라는 말이 나온다. 낡은 얼레빗을 말한다. 선생은 피난 길에 만권 서적 읽었건만 나라에 도움 없고 외딴 지역 몸 피하니 부끄러움 많구려,...주머니 속 한 빗을 오히려 간직했네 아침에 헝클어진 머리 감아 빗고서 창해에 다다르니 두 눈이 밝았어라.’란 말을 한다. 본문에 기려(羈旅)란 말이 나온다. 기려란 객지에 머무는 것, 또는 그런 나그네를 말한다


1627년 정묘호란을 피해 북 강원도 평강으로 피난했던 선생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영동을 거쳐 의령까지 내려가 의령, 창원 등에서 시간을 보냈다. 선생은 이 시기를 기려(羈旅)10년이라 표현한 바 있다.(; 굴레 기) 본문에 의춘(宜春)이란 말이 나온다. 의령의 옛 이름이다. 선생은 문장은 애초부터 궁할수록 기이했나니 두보 이백 멀리 좇아 광염을 펼치리라란 말을 한다.(문장고래궁역기; 文章古來窮亦奇 원추보백양광염; 遠追甫白揚光焰


선생은 늙은 것이 예만 배우고 세상일 몰라 예 말할 때마다 많은 사람 기롱하네란 말을 했다.(노인학례불학무; 老人學禮不學務 담례매피다인휴; 談禮每被多人 咻..; 떠들 휴) 선생은 일식(日蝕)을 재앙이라 판단한다. 선생은 감악곡(紺岳谷)을 이야기한다. 감악산 골짜기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 늙은 이는 연협(漣峽)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한다. 연협은 연천 골짜기를 말한다


선생은 내가 그대와 65년간 인간의 객이 되었더니 베갯머리에 잠깐 봄 꿈을 꾼 것과 어떠하던가란 말을 한다. 정끝별 시인의 늦도록 봄이란 시를 연상하게 한다. “앉았다 일어섰을 뿐인데/ 두근거리며 몸을 섞던 꽃들/ 맘껏 벌어져 사태 지고/ 잠결에 잠시 돌아누웠을 뿐인데소금 베개에 묻어둔 봄 마음을 훔친/ 저 희디흰 꽃들 다 져버리겠네// 가다가 뒤돌아보았을 뿐인데// 흘러가는 꽃잎이라/ 제 그늘 만큼 봄날을 떼어가네// 늦도록 새하얀 저 꽃잎이/ 이리 물에 떠서 


선생은 자신의 가난을 부귀와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부귀불이오기한; 富貴不易吾飢寒) 선생은 은거시(恩居詩)를 남겼다. 숙종으로부터 집을 하사받고 임금의 은혜 안에 거한다는 의미에서 시를 남긴 것이다. 선생은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큰 병통은 망녕되이 엽등(躐等)하고 조장(助長)하여 빨리하려 함에 있으니 이는 사적인 뜻이 벌써 승()한 것인데 사가 앞서고서 학()을 이룰 수 있는 자는 없다고 말했다. 엽등은 등급을 걸러 뛰어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선생은 근세 학자의 폐단은 실천함은 부족하고 의견부터 내세우며 지나치게 과격하기까지 하여 경박하다고 말했다. 선생은 기()는 이()에서 나오고 이는 기에서 행하여진다고 말했다. 근본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쉬지도 않고 어그러지지도 않아 갔다가 다시 온다고 말했다. 드러난 것은 천지의 조화와 육성(育成)이요 사시(四時)가 차례로 교대하는 것이며 만물의 시작과 끝이요 인사(人事)의 성쇠인지라 심은 것을 북돋고 기울어진 것을 넘어뜨리기까지 흥하고 멸함이 모두 여기에 매여 있다. 이것은 한 번 가고 한 번은 오는 소장(消長)의 일정한 원칙이다.(236 페이지


소장은 쇠하여 사라짐과 성하여 자라남을 이르는 말이다. 선생은 이() 밖에 기()가 없고 기 밖에 이도 없다고 말했다. 선생은 육경(六經)의 글은 성인이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표준을 세우며 개물성무(開物成務)한 천지의 지극한 가르침이라 했다. 육경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예기(禮記), 악기(樂記), 춘추(春秋)를 이르는 말이다. 개물성무는 사람이 아직 알지 못했던 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세상의 일을 이룬다는 의미다


선생은 예송 논쟁(1659년 기해예송, 1674년 갑인예송)에서 남인의 인물로 참여한 인물이다. 참최(斬衰), 재최(齊衰)란 말이 나온다. 참은 마름질하지 않았다는 의미고 재는 꿰맸다는 의미다. 참최는 3년간, 재최는 1년간 상복을 입는 것이다. 효종 승하시 대비인 자의대비가 몇 년간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놓고 남인은 3, 서인은 1년을 주장했고(서인 승), 효종 비 인선왕후 장씨 승하시 남인은 1, 서인은 9개월을 주장했다.(남인 승


효종에 대하여 서인은 효종이 왕이지만 장자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했고 남인은 효종이 차자이지만 왕이기에 적통을 이었다는 점을 어필했다. 남인의 3년설에 대립해 서인이 내세운 것은 기년설(朞年說)이다. 정권에서 소외된 남인이 군주의 대통을 강조하는 이론을 내세운 것은 왕권 강화를 통해 왕조 질서를 확립하고 벌열 세력을 억제해 일반 사대부의 기회 균등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선생은 청사열전(淸士列傳)을 저술했다. 청사는 청렴하고 결백한 선비를 이르는 말이다. 선생은 권람의 집 후조당(後凋堂)을 소개하며 자신을 경계하는 집이라고 플이했다. 후조는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야에서 나온 말이다. 가장 늦게 시든다는 의미이니 자신을 경계한다는 말이 타당하다 보인다. 비파는 늦게까지 푸름을 유지한다는 의미의 비파만취(枇杷晩翠)와 뜻이 통하는 말이겠다


선생은 허자(許磁)의 증손이며 백호 임제의 외손이다. 선생이 우의정에 대배(大拜; 의정 벼슬을 받음)된 것은 81세 때인 숙종 1년이다. 선생은 같은 해에 정3품 좨주(祭酒)도 역임했다. 선생은 1680년 경신대출척 때 삭탈관직당했다. 선생은 퇴계학파에 속한다. 퇴계학파는 영남학파와 근기학파로 나뉜다. 선생은 근기학파의 성립에 기초 역을 맡은 분이다


번암 채제공은 성호 이익의 묘갈명에서 우리의 학문은 원래 계통이 서 있다. 퇴계는 우리나라의 공자로서 그 도를 한강(寒岡)에게 전해주었고 한강은 그 도를 미수에게 전해주었는데 성호는 미수를 사숙(私淑)한 분으로서 미수를 통하여 퇴계의 학통에 이어졌다는 말을 했다. 선생이 한강을 만난 것은 부친의 임지를 따라 고령, 거창 등 영남 여러 고을을 왕래하면서 23세 때 그의 종형 관설공 허후(許厚)와 함께 성주로 찾아가서다


선생은 한강의 많은 제자 가운데 가장 후배로 한강 학문의 상속인이 되었다. 미강별곡이란 작품이 있다. 선생이 목민관으로서 삼척에서 약 2년간 근무하다가 돌아온 뒤 타계하고 9년이 지난 1691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嵋山面) 동이리(東梨里)에 미강서원(嵋江書院)이 세워졌다. 지난 2006년경 발견된 미강별곡은 1883년 고종 20년에 윤희배라는 사람이 미강서원 일대를 유람하면서 지은 국한문 혼용 가사문학 작품으로 추정된다


윤희배는 고종 20(1888) 선생을 문묘에 배향해 달라고 상소한 인물이다. 미강별곡은 선생을 '신야에 은거하던 이윤이 은나라 탕왕을 도와 하나라 걸왕을 축출하고, 위수에서 낚시하던 강태공이 주나라 무왕을 도와 은나라 폭군 주왕을 징벌한 공을 세웠듯 신야위수(莘野渭水)급의 혁명적 충신이라 노래하는 작품이다


미강별곡에는 미강팔경이 선정되어 있다. 십리창벽(十里蒼壁), 세우어정(細雨漁艇), 일대징담(一帶澄潭), 석양풍범(夕陽風帆), 아미반륜(峨嵋半輪), 구포홍금(鷗浦紅錦), 봉암천인(鳳巖千仞), 학정단하(鶴亭丹霞) 등이다. 선생의 집은 구루암에서 은거당으로 바뀌었다.(393 페이지) 은거당 뒤에 150평 가량의 십청원에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맥문동 등 열가지 사시사철 늘 푸른 나무가 있었다. 백졸장(百拙藏)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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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은 보웬이란 인물들 가운데 연천 해설을 시작한 2020년 이래 연천 전곡리 한탄강 가에서 주먹도끼를 수습해 구석기 역사를 바꾼 그렉 보웬(1950 - 2009)이란 이름을 많이 언급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다소 빈도는 줄었다. 새로운 고고학 내용을 더 캐낼 수 있다면 그 분에 대해 말할 거리를 추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근에는 지질학의 보웬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온도에 따른 광물의 정출(晶出) 순서인 보웬 반응 시리즈를 고안해낸 노먼 레비 보웬(1887 - 1956)이라는 캐나다의 지구화학자이자 암석학자다. 흥미로운 점은 그 분의 이름을 딴 달의 분화구가 있다는 사실이다. 달이니 천문학의 영역이겠지만 분화(噴火)라는 지질 영역 내의 이슈이기에 그런 명명이 가능했을 것이다. 예전 몰두했던 천문학에 대해서까지 다시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 달의 용암군인 Kreep(칼륨, ‘희토류; rare earth element’, ‘인; 燐‘)이란 말에서도 지질과 천문의 연관성은 주목할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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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월 지질공원 해설사 근무를 시작했으니 이번 달 말로 근무 5년이 된다. 코로나 팬데믹, 시스템 문제 등으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나름으로 책도 찾아 읽고 유튜브도 보고 기사도 검색하고 지질자원연구원(硏究院)에 질문을 해 답도 받는 등 공부하느라 애썼으나 많이 부족하다. 이번 달 들어 윌리엄 스미스 전기인 세계를 바꾼 지도와 헬렌 고든의 깊은 시간으로부터란 책을 읽었다.(깊은 시간으로부터는 추천할 만한 책이다.) 그랜드 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 지질학(얀 잘라시에비치), 지구 100 1권, 제주과학 탐험(문경수), 모든 것의 기원(데이비드 버코비치),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닐 슈빈), 근원의 시간 속으로(윌리엄 글래슬리), 지구의 짧은 역사, 지오포이트리(좌용주) 등의 책은 읽은 범위 내에서 말하건대 좋은 책들이다. 읽고 서평을 썼지만 재독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다른 책들도 포함시켜 개념 중심으로 지구과학 내용을 정리하여 수시로 익혀야 할 필요를 느낀다. 


    션 캐럴의 빅 픽쳐란 책이 있다. 양자와 시공간, 생명의 기원까지 모든 것의 우주적 의미에 관하여란 부제를 가진 책이다. 원제도 빅 픽쳐(The Big Picture)로 번역본과 같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리학 내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닌 두 가지 차원이다. 하나는 의식의 부상이란 제목의 글에 틱타알릭 로제가 언급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제목과 연관이 있는 Do you get the picture?란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다. 


    틱타알릭은 4억 년쯤 전 물에서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로 수생동물과 육상동물을 잇는 잃어버린 고리로 여겨진다.  4억년은 연천 지질공원 해설사들과도 연관이 있는 수치다. 연천의 기반암인 미산층이 4억년 정도부터 퇴적되기 시작한 암석이기 때문이다. 헬렌 고든의 책에서 읽은 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질학적 규모에서 볼 때 지진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 규모에서 볼 때는 결정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불규칙하게 일어난다.”(128 페이지) Do you get the picture?란 그림이 그려져?(이해가 되?)란 의미의 문장이다. 공부란 크게, 그리고 경우에 따라 세밀하게 그림을 그려 이해시키는 것(이미지로 떠오르게 하는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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