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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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1883)올랭피아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등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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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신 - 리처드 도킨스 뒤집기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김태완 옮김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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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케냐에서 태어난 영국 혈통의 진화생물학자다. 도킨스는 진화를 바라보는 가장 상상력 넘치는 방법, 그리고 진화를 가르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방법은 진화의 전 과정을 유전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소유하고 실어 나르는 신체를 교묘하게 조작하며 감독한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유전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화법을 발전시켜 오고 있다. 단순히 개체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세계 전체를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생물체들은 모두 유전자로 환원되고 유전자들은 다시 디지털 정보들로 환원된다. 도킨스는 동물을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시키기 위해 모든 동력을 사용해 자신에게 부여된 지시 사항을 실행해 나가는 기계로 보았다. 도킨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사상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다. 본문에 찰스 다윈과 윌리엄 페일리 이야기가 나온다. 1743년에 태어나 1805년에 사망한 페일리는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였다. 페일리는 저서 [자연신학](1802)에서 시계공 비유(Watchmaker Analogy)를 주장했다.

 

길을 가다 정교한 시계를 발견했다면 그것을 만든 시계공이 있음을 당연히 알 수 있듯 눈(Eye)이나 심장처럼 정교한 생명체를 보면 이를 설계한 위대한 설계자(하나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캠브리지 대학교 시절 신학을 공부했던 젊은 다윈은 페일리의 이 정교하고 합리적인 복음주의 논리에 완전히 매료되어 페일리의 책들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으며, 그의 서술 방식은 나에게 유일하게 유익했던 학문적 경험"이었다고 고백했다. 다윈은 그러나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탐험하며 자연을 관찰한 끝에 생명체가 정교한 디자인을 가진 것은 맞지만 그것이 신의 일시적인 창조가 아니라 수억 년 동안 일어난 변이와 자연선택의 결과라 주장했다.

 

저자 맥그래스는 서문에서 자신은 도킨스의 진화생물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진화생물학으로부터 도출시키는 종교와 지성의 확장된 결론들을 다루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진화생물학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진화의 가장 기본적이자 중심적인 단위가 유전자다. 멘델로부터 유전자의 현대적 개념과 유전 법칙의 토대가 도출되었으나 멘델 자신은 유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멘델은 유전이 특정한 단위 또는 인자(因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 단위 또는 인자는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은 우리에게 유전자의 발견을 가져다 주었으며 발견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유전자의 발견은 다윈주의 세계관에 대한 도킨스의 설명에 있어서도 근간(根幹)이 될 만큼 중요하다. 유전자라는 용어를 전 세계에서 가장 처음 사용한 사람은 덴마크의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빌헬름 요한센(Wilhelm Johannsen; 1857~1927)이다.

 

유전자와 DNA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DNA가 책의 종이와 글자라면 유전자는 책 속에 적힌 하나의 이야기(챕터)에 해당한다. DNA는 세포핵 속에 들어 있는 길고 긴 화학 물질의 사슬 그 자체다. 하나의 DNA 분자가 수개월 이상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DNA는 자기 복제 능력을 통해 이론상으로 사본의 형태로 1억 년 이상 살 수 있다. 이에 반해 생물 개체 또는 집단은 짧은 시간을 살기 때문에 오랜 기간 천천히 축적되는 변화를 영속시킬 수 없다.

 

맥그래스는 "유전적 변화는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가? 우선 보자면 도킨스가 강조하는 복제자의 충실한 복제와 변화의 발생 사이에는 명백하고도 치명적인 모순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복제자가 그렇게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한다면 어떻게 변화가 나타날 수 있겠는가? 충실한 전달은 동적인 상황이 아니라 정적인 상황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도킨스는 유전자를 성공적인 복제자(Replicator)로 정의하며, 세대를 거쳐도 정보가 깨지지 않고 완벽하게 전달되는 높은 복제 충실도(Fidelity)를 생명의 핵심 속성으로 간주했다.

 

이에 맥그래스가 만약 유전자가 100% 완벽하게 정보를 복제하고 전달한다면 세상은 처음 태어난 생명체의 상태 그대로 멈춰 있어야 한다고 반론을 편 것이다. 정보의 변동이 없으므로 새로운 형질이나 종이 탄생하는 진화(동적 상황)는 불가능해진다. '완벽한 복제자''진화의 발생'은 논리적으로 정면충돌한다는 것이다. 도킨스를 비롯한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모순을 완벽을 지향하지만 물리적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불가피한 오류로 해명한다. 유전자는 우수한 복제 메커니즘과 오류 수정 기능을 가지고 있어 복제 충실도가 극도로 높으나 100% 완벽한 복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유전자를 마치 스스로 살아남으려 애쓰는 능동적인 주체처럼 묘사한다고 비판하며 이는 도킨스가 물리적 화학 물질에 불과한 유전자를 신격화(의인화)하는 것이라 결론 짓는다. 맥그래스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우연히 발생한 타이핑 실수의 반복이 단백질의 정교한 상호작용과 인간의 의식 같은 '고차원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크다고 본다. 맥그래스는 페일리의 기계적 지적설계론(시계공 유추)을 그대로 옹호하지 않고 '유신진화론(창조적 진화론)'을 지지한다.

 

맥그래스에게 신은 완벽한 시계를 만들어 세상에 던져둔 시계공이 아니라 진화라는 역동적인 과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연 법칙과 환경을 창조한 존재다. 도킨스로부터 확장된 표현형이 도출되었다. 빌헬름 요한센이 생물체가 가진 유전 정보가 겉으로 드러나 실제 관찰 가능한 모든 물리적, 생리적, 행동적 특성을 뜻하는 표현형을 제안했고, 도킨스가 확장된 표현형(Extended Phenotype)을 제시했다. 논점은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과 복제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물리적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다.

 

도킨스는 요한센이 만든 전통적인 표현형 개념을 생물 개체의 몸 바깥 영역으로 확장시켜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자신만의 혁신적인 이론을 도출해 낸 것이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 출판 6년 만인 1982년 확장된 표현형이란 개념을 제시한 이유는 진화의 진짜 주인공은 개체(생물 몸)가 아니라 유전자라는 자신의 핵심 주장을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의식적으로 이기적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다양한 모습은 의식적으로 이기적인 행위자를 닮았다고 말했다.(88 페이지)

 

유전자는 뇌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의식적인 목표나 의도를 전혀 가질 수 없지만 진화와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유전자의 작동 방식은 마치 치밀하고 영리한 독재자가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모습과 완벽하게 똑같아 보인다는 뜻이다. 도킨스가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부른 것은 유전자의 마음 상태를 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복제본만을 세상에 남기려 드는 유전자의 기능적 결과를 문학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유전자는 아무 생각이 없지만 진화의 냉혹한 법칙은 유전자를 가장 완벽한 이기주의자의 모습으로 빚어냈다.

 

맥그래스는 도대체 우리가 왜 태어나는가? 다윈주의의 대답은 자연선택이다. 사실 이것이 모든 것에 대한 다윈주의의 유일한 대답이다.“라고 말한다.(92 페이지) 맥그래스는 도킨스 같은 강경 다윈주의자들은 인간의 존재, 도덕, 예술, 종교까지 '자연선택과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만 설명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맥그래스는 다윈은 갈림길을 만든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사유 방식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다윈 이전에는 세계는 신이 설계한 어떤 곳으로 볼 수 있었지만 다윈 이후에 설계를 내세우는 것은 모두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세계에서 진화의 과정은 신을 위한 개념적 공간을 전혀 남겨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신적인 창조자에게 호소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 다윈주의의 틀 속에 자신의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윈 이후에는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104 페이지) 맥그래스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이후 저작들은 18세기의 생각(당시의 지도적인 기독교 저자들이 이미 거부했던)에 대한 19세기의 논박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기독교 전체에 대한 논박일 수는 없고 단지 영국 국교회가 잘못 선택한 것에 대한 논박일 뿐이라고 말한다.(137 페이지)

 

맥그래스는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 자체를 무너뜨렸다는 도킨스식의 프레임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다윈은 단지 당대에 유행했던 생명이 다한 18세기 영국식 신학을 논박했을 뿐으로 기독교 역사 전체의 관점에서 진화론은 얼마든지 수용 가능한 과학적 사실이라는 논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맥그래스는 다윈이 1840년대의 어느 시점에서(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이른바 전통적 기독교 신앙을 거부했다는 것은 여지가 없지만 정통 기독교 신앙의 거부와 무신론의 수용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이론적인 틈이 있다고 말한다.(143 페이지)

 

다윈이 정통 기독교 신앙을 떠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를 떠난 다윈의 종착지는 신은 절대 없다고 확신하는 적극적 무신론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겸손한 불가지론이었다. 맥그래스는 이 지점에 착안해 현대 무신론자들이 다윈을 무신론의 교조로 해석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다윈주의를 무신론으로 가는 지적 고속도로라고 본다고 말한다.

 

도킨스가 세밀하게 계획을 잡은 궤도는 불가지론에서 그 바퀴 작업을 멈추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자리를 잡고 계속 머물고 있다. 다윈주의와 무신론 사이에는 근본적인 논리적 틈이 있다. 도킨스는 이 틈을 메우기 위해 증거가 아닌 레토릭으로 다리를 놓으려 하고 있다.(156 페이지) 도킨스는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유일하게 신빙성 있는 지식은 과학적 지식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도킨스의 입장을 확장시켰을 때 철학자, 변호사, 신학자 등은 과학적 지식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된다.

 

맥그래스는 공격적 무신론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었으나 종교적 회심을 거쳐 신학박사가 된 분자생물학 연구자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도킨스는 증명될 수 없는 것을 거짓으로 간주한다. 도킨스는 불가지론이 지적으로 나약한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생물학적 논증이 논리적으로 최대한 갈 수 있는 곳이 결국 불가지론 뿐이라고 말한다.(180 페이지) 맥그래스는 누구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고, 누구도 신의 존재를 반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어 그 어느 누구도 확실성을 가지고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불가지론에서 무신론으로 비약을 했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맥그래스는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지구가 평평한지 또는 DNA가 이중나선의 형태를 취하는지 등의 질문과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런 문제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보다 나은지와 같은 문제에 더 가깝다. 이런 문제는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 하지만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한 그들의 결론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맥그래스는 "아마도 도킨스는 요즘 종교에 반대하는 책을 쓰기에 바빠서 종교에 관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 같다. 가끔 고전 신학자들을 인용할 때 보면 2차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 같고 그래서 위험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라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화학자이자 저명한 과학 철학자인 마이클 폴라니가 자연과학자는 후에 거짓으로 드러날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믿어야 하는 사람들(현재의 믿음들 가운데 어떤 것이 거짓으로 드러날지도 모르는 채)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며 도킨스는 무슨 자신으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204 페이지)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과학적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라고 한 도킨스에게 불가지론은 무신론이라는 주장은 과학적 주장인가, 과학 외적 주장인가? 전자라면 과학은 잠정적이라는 전제를 무시하는 것이고 후자라면 진정한 지식이 아닌 것이 된다. 맥그래스는 자신은 과학에 완전히 비현실적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자연과학은 오직 증거로만 말한다고 생각했던 맥그래스는 자신은 여전히 과학을 사랑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어떤 자연과학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용 가능한 한계를 넘는 수준까지 레토릭을 사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특히 자신의 전공 영역을 넘어설 때 또는 실험 증거가 부족해서 그 부분을 가리고자 할 때 더욱 그러하며 문화 비평이 텍스트에 숨어 있는 교묘한 술책을 보여주기 위해 문학과 함께 자연과학 논문부터 읽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무신론은 진화론을 포함하는 어떠한 과학에 의해서도 결코 증명될 수 없다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다른 모든 인간의 활동과 생각처럼 종교도 개혁 되어야 하고 재평가받아야 하고 수정되어야 하지만 제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226 페이지) 도킨스는 문화 복제자란 의미의 밈(meme)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과학자다. 도킨스는 종교를 가장 중요한 밈의 사례나 간주한다.

 

도킨스는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밈의 사례들로서 음악의 선율, 생각, 유행어, 패션, 건축 양식, 노래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신 역시 여기에 포함시켰다. 도킨스는 사람들이 신이 없는데도 신을 믿는 이유를 신이라는 밈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e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237 페이지) 맥그래스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작동 메커니즘은 상당히 다른 것 같다고 말한다.(245 페이지)

 

맥그래스는 유전자는 처음에 이론적 필요에 의해 생겨났지만 후에 완전한 증거에 의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받았으나 밈은 어떤가?라고 묻는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유전자는 생물학적 수준, 화학적 수준, 그리고 물리학적 수준에서 잘 정의되어 있는 관찰 가능한 실체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자는 염색체의 특정 부분이며, 화학적으로 DNA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리학적으로는 읽을 수 있거나 번역될 수 있는 유전자 코드를 표현하는 뉴클레오티드 서열로 구성되어 있는 이중나선 구조다.(247, 248 페이지)

 

맥그래스는 유비 논증은 심각한 오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양자 이론이 아무데나 적용되는 식의 잘못된 유비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 때문에 낭패를 겪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맥그래스는 모든 인간문화는 이미 동시대인과 후속 세대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명확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책, 의식, 제도, 구전 등이 그것으로 이렇게 유전자와의 유비를 통해 방어되고 있는 밈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필요 없는 잉여물일 뿐이라고 설명한다.(254 페이지)

 

맥그래스는 밈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모델을 통해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며 밈만이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복잡한 현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제기하는 신이라는 바이러스를 문제 삼기 위해 바이러스는 탐색될 수 있고 그래서 엄격한 경험적 조사의 대상이며 유전자 구조 역시 정밀하게 분석 가능한데 마음의 바이러스는 가설적이라고 비판한다.(260 페이지) 맥그래스는 매우 용감하게도 도킨스가 지지하고 있는 과학과 종교의 전투라는 대중적 신화는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고 말한다. 그의 대중과학 저서는 현재 학문의 동향을 빨리 따라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267 페이지)

 

18세기 영국에서는 종교와 과학 사이에 눈부신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뉴턴의 천체역학은 조화로운 우주의 창조자인 신에 대한 기독교의 견해와 최소한 양립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최대한은 그 견해에 대한 영광스러운 확장으로 이해되었다.(269 페이지) 맥그래스는 기독교 신학은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인식을 결코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준다고 말한다. 기독교 신학이 자연 현상을 설명하면 신적 의미가 제거된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286 페이지)

 

맥그래스는 신비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해하려는 인간 이성의 능력 너머에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비가 이성과 서로 반대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291 페이지) 신비를 다루는 영역은 신학만이 아니다. 자연과학도 신비를 다루기에 적절하다. 양자역학이 신비의 범주에 딱 들어맞는 탁월한 과학 영역의 사례라고 말하는 맥그래스는 과학 공동체와 종교 공동체 모두 우리의 사유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증거의 역할 때문에 생기는 지적 난제를 인정하면서 관찰된 것에 대한 최선의 가능한 설명으로 수용된 것을 제시하며 경험의 모호함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는 말을 한다.(292, 293 페이지)

 

프린스턴 대학의 과학 철학자인 반 프라센은 "삼위일체, 영혼, 개별성, 보편성, 1 질료, 잠재성의 개념들 때문에 당혹스러운가. 닫힌 시공간, 사건 지평, EPR 역설, 붓스트랩 모형이 보여주는 기상천외의 낯설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프라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경험 세계와 현상 세계에 대한 경험적 참여는 간단하지 않은 이론적 개념들을 만들어내며 그 현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킨스의 신]은 도킨스가 26살 때이던 1979년 처음 제안받고 25년이 지난 2004년 완성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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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가뭄 때문에 경북 포항 형산강에 바닷물이 역류해 와 수돗물에서 짠맛이 난다고 한다. 형산강의 감조(感潮) 구간은 포항 송도동 하구(영일만 유입부)로부터 상류로 약 10~12km 내외 구역이다. 독일의 세계적 지리학자 헤르만 라흐텐자흐(1886-1971)[코레아](1945년 출간)에서 형산강을 남한의 동해안 유일의 가항하천(可港河川)으로 보았다.([코레아]는 라흐텐자흐가 한반도 전역을 직접 답사하고 남긴 방대한 지리서다.)


가항하천은 수심이 충분히 깊고 폭이 넓어 배가 안전하게 통항하며 여객이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하천을 말한다. 서두에서 말한 바닷물 역류는 내가 사는 연천의 주요 두 강 중 하나인 임진강과도 관련이 있는 현상이다. 임진강의 실질적 감조구간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 하구(교하)로부터 상류로 약 40km 구역까지다그곳보다 더 상류쪽인 연천 호로고루 아래의 고랑포는 수위만 상승, 하강하고 염도(鹽度)는 변함없는(바닷물이 직접 유입되지 않는) 감조 담수(淡水) 구간이다


폭염과 가뭄으로 강의 수량이 줄어 바닷물이 역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은 모든 물질이 맞물려 연속적으로 운동하는 공백(진공) 없는 세계라는 데카르트의 와동(渦動; 볼텍스; vortex) 이론이 떠오른다. 25년전 수련 당시 내가 들은 말 가운데 아리조나주 세도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가 강한 곳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물론 내 기 수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되었다


지질 해설을 한 지 6년이 넘은 지금은 세도나의 사암(砂巖) 지대는 약 27천만 년 전 페름기 지구의 역동적 환경 변화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세계적인 자연의 걸작이자 기() 학문과 지질학이 완벽하게 교차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할뿐이다. 세도나의 거대한 바위산과 절벽들은 강렬한 주황색과 붉은빛을 띤다. 사암 속에 포함된 적철석(Iron Oxide; 산화철) 성분 때문이다


당시 읽던 책이 곽내혁 저자의 [내 안의 우주에 이르는 길]이고 수련 종료 후 같은 저자의 [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를 읽었다. 신간 검색을 하다가 곽내혁 저자가 올해 초 [기론 입자에서 으로]이란 책을 낸 것을 확인했다. 정독해야 알겠지만 이번에 나온 [기론- 입자에서 으로]는 내가 읽기에 버거울 것 같다. 앞의 두 권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흥미롭게 읽었다


아침에 AI와 베르그송과 바슐라르의 대립에 대해 대화를 했었다. 그것은 세상을 지속(持續)으로 본 베르그송과 불연속으로 본 바슐라르의 대립이다. 베르그송의 지속은 시간을 시계 바늘처럼 쪼갤 수 있는 공간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결코 단절될 수 없는 질적인 흐름이자 변화 그 자체로 보는 사유 방식이다. 바슐라르의 불연속은 베르그송의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속적 지속에 정면으로 맞서는 개념이다


과학은 과거의 상식, 일상적 경험, 잘못된 전통을 과감하게 부수고 단절(Rupture)할 때만 진보하다는 바슐라르의 과학사 및 인식론의 불연속인 인식론적 단절(Rupture épistémologique)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이다. 우리가 과학을 이해할 때도 인식론적 단절이 필요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는 일상적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지만 현대 과학은 이 일상적 상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바슐라르는 우리가 과학 개념을 마주할 때 친숙한 이미지나 비유에 의존하려는 무의식적 습관을 경계했다. 가령 우리는 원자를 이해할 때 흔히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들의 모습(보어의 원자 모형)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대 양자역학에서 전자는 정해진 궤도를 도는 알갱이가 아니라 확률적 구름 형태로 존재한다. 뉴턴 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해서 저절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책을 읽듯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연속적인 과정이 아니다


나는 베르그송의 지속에 매력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바슐라르의 불연속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와 얽히는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한 행위의 시작, 진정한 의미의 시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베르그송에게 어떤 근원적인 창조의 순간들 - 예컨대 베르그송이 회상한 바 있듯이 어느 화창한 봄날 그의 뇌리 속에서 지속의 개념이 홀연히 떠올랐던 그 창조의 순간은 그의 지속 이론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1999년 출간 [담론의 공간])


1999[담론의 공간]을 읽고, 2001[내 안의 우주에 이르는 길]을 읽고, 2006[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를 읽던 때가 내가 인식적으로 가장 활발하던 때다. 흥미롭게도 곽내혁의 [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에 바슐라르의 [초의 불꽃]이라는 시적인 에세이집이 소개되어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바슐라르는 물리학자, 시인, 철학자다


바슐라르는 [초의 불꽃]에서 나는 촛불을 통해 세계와 내가 하나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일체감을 노래합니다. 나를 가두던 현실의 불연속적인 벽들이 허물어지는 치유의 순간입니다.“란 말을 했다. 곽내혁은 기의 감각이 있다면 누구라도 우주를 상식과 다른 내용으로 만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에게 상식이 된 우주가 좌뇌로 인식된 것일 뿐 우주의 실체는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우주를 우뇌로 떠올릴 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란 말을 했다.([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 159 페이지)


바슐라르의 불연속적인 벽들의 허물어짐과 곽내혁의 좌뇌와 우뇌의 통합은 같은 맥락이다. 최근 나를 가장 우선적으로 규정하는 지질학이야말로 인식론적 단절이 필요한 학문이다. 지질학은 단단하고 고정된 사물(바위, 대륙)의 이미지와 단절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간과 역동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이성적으로 재구성해 낸 학문이다. 가장 단단하고 고정된 사물(지구)을 마주하고서 가장 유연하고 역동적인 불연속적 도약(시간과 판의 이동)을 사유해야 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다. [기론]을 읽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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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흔드는 과학 - 지진에 대해 우리가 아는 혹은 모르는 것들
수잔 엘리자베트 호프 지음, 김성욱.김인수 옮김 / 경북대학교출판부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지구물리학 박사 수잔 호프(Susan Elizabeth Hough)의 책이다. 저자는 이 책 이후인 2009년 나온 [지진 예측 과학(Predicting the Unpredictable: The Tumultuous Science of Earthquake Prediction)]에서 우리는 지금 지진을 예보할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원제의 정확한 뜻은 [예측 불가능을 예측하기: 지진 예측의 격동적인 과학]이다.

 

저자는 지진을 예보하고 재해를 평가하는 일은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발도 들여놓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지구과학에서는 다소 복잡한 개념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학술적 용어나 까다로운 수학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다. 책에 나오는 유명 과학자 중 한 사람이 찰스 다윈이다. 그는 대륙 이동 대신 해수면 변화를 주장했다. 다윈은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적 변화가 지구의 모습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다윈은 분명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판구조론의 진짜 로제타 스톤은 돌에 적힌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것보다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해저에 새겨진 자기(磁氣) 줄무늬였다. 이는 해양 지각이 자석처럼 자성을 가진다는 의미다. 현무암은 마그마로부터 고화(固化)될 당시 지구 자기장 방향을 기록하여 보존하는데 이 방향은 그 후 지구 자기장이 다르게 변하더라도 그대로 유지된다.

 

판구조론이라는 용어는 1969년에야 처음 나왔다. 대륙 이동과 해저 확장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인 캘리포니아주 아실로마에서 열린 작은 지구 물리학 발표회에서였다. 군사 작전으로서의 지구 물리학과 순수 학문으로서의 지구 물리학, 이 양자의 오래된 공생관계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판구조론 혁명을 통해서 지구과학에서는 새롭고 거시적인 기본 패러다임(근간 법칙)이 명확히 자리 잡았다.

 

지구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꼽히는 해저 확장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잠수함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현대 지진학이 전 지구적인 정밀 데이터를 갖추게 된 배경에는 냉전기 핵전쟁의 공포가 있다. 전쟁 지형을 분석하고 군사 시설을 짓는 기술은 현대 지반 공학 및 엔지니어링 지질학의 기반이 되었다. 저자는 GPS 자료는 판의 운동과 판의 내부 변형에 관한 문제에서 매우 유효하게 활용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지진 예보는 미해결 문제다.(47 페이지)

 

저자는 맨틀은 대류하는데 열점은 왜 대류하지 않는가? 묻는다. 대류는 상부 맨틀에서 일어나고 열점은 하부 맨틀의 엄청난 압력 때문에 암석이 꽉 눌려 있어서 상부 맨틀처럼 빙글빙글 도는 수평 대류가 거의 일어나지 못하고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하부 맨틀의 최하단 즉 지하 약 2,900km에 위치한 핵-맨틀 경계(CMB)에는 거대한 열점의 뿌리가 존재한다. 과학자들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깊은 곳의 구조를 알아낸 유일한 방법이 바로 지진(Earthquake)이다.

 

지구 내부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파가 지구 전체로 퍼져나간다. 이 지진파가 핵-맨틀 경계의 뜨거운 열점 부근을 통과할 때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맨틀 경계의 뜨거운 열점 부근을 통과할 때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는 이유는 극도로 높은 온도와 물질의 부분적인 용융 때문이다. 지진파(특히 전단파인 S)는 매질이 단단하고 밀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이동하고 부드럽고 액체에 가까울수록 느리게 이동한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일반 맨틀)을 달릴 때는 발걸음(지진파)이 빠르지만 뜨거운 열 때문에 반쯤 녹아내린 끈적한 아스팔트나 진흙탕(열점 부근)을 지날 때는 발이 푹푹 빠지며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약권(弱圈)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대류 작용이 판을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라면 지진은 그 힘의 전달자다.(53 페이지) 확장축 지진들의 운동량을 전부 더해 보면 관련된 판의 전 운동량보다 적게 나온다. 이를 지진 모멘트 결손(Seismic Moment Deficit) 또는 낮은 지진 결합도(Low Seismic Coupling)라 부른다.

 

이는 지진 없이 미끄러지는 운동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확장 작용이 섭입과 달리 큰 마찰 저항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1) 암석은 온도가 높아지면 부서지기보다 진흙이나 고무처럼 끈적하게 늘어나는 연성(Ductile) 성질을 갖는다. 이로 인해 판이 양옆으로 벌어질 때 에너지를 모았다가 쾅 하고 터지는 지진을 일으키지 않고 암석이 소리 없이 천천히 늘어나거나 미끄러지는 비지진성 변형(Aseismic Deformation)으로 판의 이동을 대부분 소화한다. 실제 확장축에서는 전체 변형의 약 90% 이상이 지진 없이 조용히 일어난다.

 

2) 확장축에서 판이 갈라지는 힘은 오직 암석의 단층 운동(Tectonic faulting)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갈라진 틈 사이로 지하의 뜨거운 마그마가 끊임없이 주입되며 공간을 채우고 판을 밀어낸다. 이 마그마 주입 과정은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지 않고도 판을 양쪽으로 확장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지진계에 기록되는 운동량의 총합을 크게 줄인다.

 

3) 한편 지진이 발생하려면 암석이 차갑고 단단하여 깨질 수 있는 지진원성 층(Seismogenic Zone)이 두꺼워야 한다. 하지만 확장축은 고온의 마그마 환경 때문에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단단한 상부 지각의 두께가 보통 수 킬로미터(대개 5km 이내)로 매우 얇다. 응력을 버텨낼 수 있는 암석 층 자체가 너무 얇다 보니 대규모 지진(모멘트가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원천적으로 부족하다.

 

4) 바닷물이 갈라진 지각 틈새로 침투하면 뜨거운 맨틀 암석과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사문암(Serpentine) 같은 광물을 만들어낸다. 사문암은 일반 암석에 비해 마찰력이 매우 낮고 매끄러운 특성을 갖는다. 단층면에 이 광물들이 형성되면 판이 걸려 부러지지 않고 부드럽게 미끄러지기(Creep) 때문에 지진 에너지 방출이 억제된다. 요약하면 확장축은 뜨겁고, 마그마가 틈을 채우며, 암석이 부드럽고 매끄럽기 때문에 판이 이동하는 전체 에너지 중 극히 일부(1%~10% 수준)만 지진으로 전환되고, 나머지는 소리 없는 변형과 마그마 활동으로 해소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변환 단층의 경우에는 단층의 운동량이 지진으로 미끄러진 운동량 전부를 합친 것과 같다. 확장축은 뜨겁고 마그마가 도와주어 지진 없이 부드럽게 벌어지지만 변환 단층은 차갑고 단단한 암석이 마그마 없이 서로 꽉 맞물린 채 수평으로 비벼지기 때문에 판이 움직이려는 모든 에너지가 지진의 형태로만 100% 방출되기 때문이다. 마그마는 판의 운동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어 대형 지진을 억제한다. 주로 판이 양갈래로 찢어지는 확장축(해령)이나 열곡대에서 발생하는 정단층은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인장력 때문에 단층면이 수직에 가깝게 비스듬히 떨어지는 구조다.

 

이 환경에서는 판이 벌어지면서 단층면에 가해지는 수평 압력이 낮아진다. 이 틈을 타 마그마가 아주 쉽게 위로 솟구치며 단층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단층 암석이 서로 비벼지며 지진을 일으키기 전에, 마그마가 틈새를 부드럽게 채운다. 이 때문에 정단층 지역에서는 판이 멀어지는 거대한 운동량에 비해 지진의 크기가 매우 작고 미소 지진 형태로만 유발되는 억제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륙과 해양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섭입대(: 일본 해구, 칠레 해구)에서 주로 발생하는 역단층은 두 판이 서로 엄청난 힘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단층면이 강하게 압착된다. 역단층면은 엄청난 압력으로 꽉 맞물려 있어 판이 움직이지 못하고 거대한 에너지가 쌓인다. 이때 단층면 깊은 곳에 마그마나 뜨거운 열수가 침투하면 마그마의 압력이 단층을 양옆으로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를 유체 유효 응력 감소라 한다.

 

꽉 맞물린 단층을 살짝 띄워주는 역할을 하여 판이 대지진 없이 스르륵 미끄러지는 비지진성 슬로우 슬립을 유도한다. 하지만 정단층과 달리 역단층은 사방에서 누르는 힘이 너무 강해 마그마가 쉽게 틈을 뚫고 분출하지 못하고 갇히기 쉽다. 만일 마그마가 단층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지 못하고 특정 구역에 계속 갇혀 압력만 높아지면 단층면의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완전히 붕괴시켜 오히려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초거대 지진(Megathrust Earthquake)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요약하면 정단층에서는 마그마가 빈 자리를 채워주는 평화로운 건설자 역할을 하여 지진을 효과적으로 지워버리지만 역단층에서는 꽉 막힌 단층면 사이에서 마찰을 줄여주는 아슬아슬한 윤활유 역할을 하다가 압력이 제어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거대 지진을 터뜨리는 야누스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1) 2004년 수마트라-안다만 대지진(규모 9.1)2) 2011년 동일본 대지진(규모 9.0)의 경우다.

 

1) 토호쿠 대학교 연구진 등의 시뮬레이션 연구(2022)에 따르면, 3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수마트라-안다만 대지진은 단층대 깊은 곳에 갇힌 초고압 유체(Pore-fluid pressure)가 단층의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완전히 붕괴시키면서 대규모 단층 미끄러짐을 촉발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입증되었다. 2) 태평양판이 일본 열도 밑으로 파고들 때 포함된 물과 마그마 성분이 섭입대 틈새에 갇혀 극도의 과압(過壓)을 형성했고 이 압력이 브레이크를 부수고 터지면서 단층이 무려 50m 이상 수평 이동했고 역사적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판 내부 지진은 지각을 이루는 거대한 판의 경계가 아니라 판의 한가운데서 발생하는 지진을 말한다. 판 내부 지진을 일으키는 힘의 근원은 여러 가지다. 멀리 중앙 해령으로부터 대륙을 가로질러 전달되는 압축력, 대규모 빙하가 물러난 후 다시 지각을 서서히 융기시키는 힘 등을 열거할 수 있다. 판 내부 지진은 판 경계 지진보다 발생 빈도가 훨씬 낮은 것에 비해 인명피해는 훨씬 클 수 있다. 이는 파괴적 지진에 대한 대비가 훨씬 미흡하기 때문이다.

 

단층은 광산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단층이란 암석의 연속성이 중단되는 곳으로 이를 통해 광산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지구과학자들은 과거에 운동이 발생했던 암석면 즉 불연속면에 대해 단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단층면은 실제 완벽한 평면은 아니다. 단층은 단단하고 손상 없는 지각 내에 존재하는 약한 접합면이다. 지진은 지각의 약대(弱帶)인 단층과 연관되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단층에는 잘게 갈린 물질로 된 일정 크기의 비지대(gouge zone; 단층 깊은 곳에서 암석이 짓이겨져 만들어진 진흙·광물 가루 지대)라는 것이 있다. 비지라는 것은 반복적으로 운동하는 단층 작용으로 암석이 갈려 작은 가루가 된 것이다. 단층이 오래되고 잘 발달할수록 비지대가 두꺼워진다. 단층도 진화한다. 단층은 지역적 특성과 스트레스 상황을 고려하여 생겨나고 발달해 간다. 이렇게 단층이 생겨나고 진화하는 과정은 매우 느리다.

 

지각의 여기저기에는 과거 함께 활동했던 단층들이 자리잡고 있다. 단층 중 어떤 것은 판 경계라는 중요한 약할을 하는 반면 어떤 단층은 어쩌다 한 번 움직이는 사소한 균열대로 그친다. 저자는 지구는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말한다. 얼른 보아 한 개로 쭉 뻗은 것처럼 보이는 단층도 자세히 보면 여러 작은 직선들 즉 더 작은 단층 분절들로 되어 있다.

 

직선으로 보이는 각각의 분절들도 또 확대하면 더 작은 분절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졌음이 나타난다. 각 분절들을 또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여러 분절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 마치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꺾고 자세히 보면 그 전체적 생김새나 복잡한 모양이 다시금 나무처럼 생겼음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반복적 성질은 수학적으로 프랙탈 즉 자기 유사성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단층이 분열된 것 - 작은 꺾임과 갈라짐 - 이 거친 돌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70, 71 페이지)

 

단층이 움직이면 마찰력이 감소하지만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단층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지진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한 단층에서의 지진 발생률은 장기적으로 그 단층에 작용한 응력의 축적률과 단층이 미끄러진 비율에 따른다. 현대 과학이 실전에서 쓰는 것은 지진을 미리 맞추는 예측이 아니라 지진이 이미 땅속에서 발생한 순간 무선 전파가 지진파보다 빠르다는 점을 이용해 몇 초는 또는 몇 십초 전에 대피 명령을 내리는 조기 경보 시스템이다.

 

샌 안드리아스 단층대는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다. 태평양판과 북미판 사이의 경계는 왜 이리 복잡한가? 그 답은 판 구조운동이 공 모양의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에는 가장 긴 판 경계 구조가 펼쳐져 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캘리포니아 북부와 중부의 동편에서는 광대한 지각 덩어리가 지속해서 늘어 당겨지고 있다. 이 확장 작용이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가 생겨나기 전부터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전개되던 섭입 작용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가 생겨난 후 확장 작용은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의 북쪽 3분의 2 부분을 서쪽으로 밀어냈다. 몇 백만 년이 지나면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의 일원인 몇몇 단층들이 직접 판 경계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과학자도 있다. 이런 진화는 시간이 지질학적 단위로 흘러야 가능하다.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는 당분간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선의 하나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지질학과 지진학을 아우르는 하나의 중요한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열쇠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로 지진 재해는 엉뚱한 데서 생긴다. 섭입대 지진에서처럼 해양 지각이 갑자기 내려앉으면 해저에서 파도가 생겨난다. 이런 파도를 쓰나미라고 한다. 이것은 지진 발생지 바로 인근의 해안으로 달려든다. 이런 파도는 시속 수백km의 속도로 해저 바닥을 따라 소리 없이 전파된다. 그러다가 연안의 수심이 얕은 곳에 이르러서는 에너지가 수직으로 집중되어 엄청난 진폭 증가가 일어난다.

 

즉 공해에서는 보이지 않던 파도가 갑자기 커다란 물의 장벽으로 변하는데 때에 따라 그 높이가 수십m나 된다. 쓰나미는 근원지 바로 근처의 해안지대에 엄청난 재해를 가져온다. 또 수천 km 떨어진 해안지대도 마찬가지다. 쓰나미 경보 체제가 없던 예전에는 멀리서 지진이 일어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맹렬하게 연안으로 돌진하는 물의 장벽에 당하기도 했다. 알래스카 쓰나미의 대부분은 그 지역 지진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지진 발생 후 바로 뒤에 쫓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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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다이어리 - 세종 33년 간의 기록
김경묵 지음 / 새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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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李裪)라는 이름을 가졌던 조선 4대 임금 세종(1397- 1450)33(1418-1450)간의 재위 기록을 담은 책이다. 중국은 정치 제도를 우선시하는 발정시인(發政施人)의 정치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조선은 사람을 먼저 헤아리는 시인발정(施人發政)의 정치를 택할 수 있었다. 세종은 그것을 했는데 그렇지 않은 임금들이 많았다. 정조는 시인발정과 발정시인의 면모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세종이 아내 소헌왕후의 공식 이름을 검비(儉妃)라고 정하려 했으나 부왕 태종이 반대해 공비(恭妃)라 정했다는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는 하나의 예이다. 태종은 세종의 길을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세종에게 스승 같은 존재였던 한편 세종을 고뇌케 한 존재이기도 하다. 악역을 자임한 것이다. 세종은 장인 심온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을, 바른 말을 습관처럼 하는 자신의 입버릇에서 시작되었다고 자책했다. 장인이 자신에게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전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15, 16 페이지)

 

고뇌 또는 자책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왕이 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밖으로 돌아다니지도, 병이 들지도 않았을 것이어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말한 것이다.(31 페이지) 이는 태종이 충녕대군(세종)을 마음에 둔 반면 원경왕후는 양녕대군(폐세자된 아들)을 깊이 아낀 데서 비롯된 일이다. 세자(世子)란 왕의 자리를 잇는 사람을 말한다. 세종은 아버지는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희생했다고 말한다.(17 페이지)

 

세종은 "나는 지금까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선비와 같이 살아오지 않았는가...", "내가 아는 것은 책에서 익힌 지식이 전부이기에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해서 배우고 또 익히고 있다.." 같은 말을 했다. 책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매일 아침 조회를 마치고 나서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어김없이 경연을 연다. 신하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나라 안팎에서 일어난 현안 이슈를 토의한다. 경연(經筵)을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장소라고 부르는 이유다.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국방이 최우선이라고 가르쳤다. 태종은 유련(流連)을 경계할 것을 가르쳤다. 유는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을 말하고, 연은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을 말한다. 세종은 수령에게 지배당하는 소민(小民)을 사랑하라고 지시했고, 정부에는 국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을 최우선으로 마련하라고 매일 같이 닦달해 왔기에 수령들이 왕에게 거짓 보고를 하는 상황이 오랫동안 누적된 것만 같다고 여겨 마음 아파했다.

 

자식의 신분을 노비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종부법과 종모법을 보자. 종부법은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는 것이고, 종모법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것이다. 종부법에서 종모법으로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 사람이 이조판서 허조였다. 이는 허조뿐 아니라 다수의 신하가 여종을 첩으로 들여서 아이를 낳고 노비 즉 재산을 늘리고자 한 수법이었다.

 

강무(講武) 이야기도 나온다. "3월에 경기도 연천으로 군사훈련을 다녀오며 메마른 논과 밭을 직접 보고 왔다."(87 페이지) 강무란 왕이 직접 전국의 군인을 모아서 사냥하며 훈련시키는 제도로서 농사일 전의 초봄과 추수를 마친 늦가을, 이렇게 두 번 한다.(111 페이지) "왕은 국민의 배고픔을 보고 지나칠 수는 있어도 국민의 목숨을 지키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임무를 부여받은 왕의 태도다." 이 말은 태종이 아들 세종에게 한 말이다.

 

태종은 세종에게 이 한마디를 전해주기 위해서 군사훈련을 할 때면 언제나 세종을 모질게 다루었다. 세종이 그토록 싫어하던 돌 싸움을 맨 앞에서 지켜보게 했고 군대의 기강이 해이해 졌다고 판단되면 바쁜 농사 철에도 군사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훈련 중에는 냉정한 왕이었지만 훈련을 마친 뒤에는 다친 군인을 치료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세종이 지켜보게 했다.(143 페이지)

 

재위 13년인 1431년 세종은 18세의 세자 향과 함께 첫 군사훈련을 했다.(149 페이지) 조선의 농부는 꽤 어려운 위치의 사람들이었다. 농부가 가을에 추수를 마치면 정기 군사훈련과 성을 쌓는 중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때로는 무기 창고에 보관된 무기를 수리하는 일도 해야 하고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해야 한다. 이처럼 농부는 나라에서 부르면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군인이 되기도 하는, 고단한 신분의 사람이다.(223 페이지)

 

자책을 많이 한 세종은 군사훈련 중 추위에 얼어 죽은 군인들이 나온 것에 대해서도 자책했다. 재위 8년인 1426년 세종은 강원도에서 한창 군사훈련을 하던 중 서울에 큰 불이 났다는 긴급 보고를 받는다. 화폐개혁이 방화의 원인이라고 말해줬다. 전년도부터 나라에서 하루아침에 조선통보로만 거래하라고 명령해 법을 어기고 물물거래를 하다 적발되면 재산을 몰수하고 감옥에 가둔 결과 가족까지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는 거지로 전락했기에 국민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황망한 일들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벌어진 것이어서 그 가족들이 명화(明火) 강도를 본떠 화적 집단으로 뭉친 것으로 짐작된다.

 

명화란 횃불을 밝혀 들고 다니던 것을 말한다. 세종은 군대를 통솔하는 것은 명령으로 가능하지만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반드시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았다고 말한다. 곡식의 생산량이 늘면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먹고 남은 곡식을 화폐로 바꿨다가 필요할 때 곡식으로 다시 바꾸게 될 텐데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화폐개혁을 서두른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세종은 이 사건으로부터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 그것을 알아채면 빨리 돌아올 줄 아는 사람이 왕이어야 한다는 태종의 유언을 되새겼다. 세종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군사훈련을 위한 사냥터 몇 곳도 농경지로 개관하도록 허가 했다. 다만 군사훈련을 할 때도 있으니 사냥을 금지하는 것은 유지했다.(123 페이지) 세종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노는 것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국가고시에서 공부와 말, 활로 구분되는 문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125 페이지)

 

재위 12년인 1430년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동시에 지진이 발생했다. 4월말인데 서리만 내리고 비는 내리지 않고 햇볕만 쨍쨍한 날이 이어져 농작물 파종에 지장을 주는 이상기후 이야기도 전한다. 세종은 "우리나라에는 지진이 없는 해가 없고 하삼도(충청, 전라, 경상)에 매우 많다"는 말을 했다. 새롭게 알게 해주는 사실이 많은 것이 [이도 다이어리]의 특징 중 하나다. 국가 고시 시험에 노비 신분은 응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중 하나다.

 

이 사실 자체는 세운 것이 아니다. 노비의 자식이 국가 고시에 합격해 고위직까지 승진하면 노비가 양반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렇다.(161 페이지) 세종은 금수저 청년은 자유분방하게 살지만 가난한 부모를 만난 청년을 평생 흙수저로 살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방법으로 범죄자의 자식이라도 재주가 있거나 착한 청년이면 권리로 채용할 수 있게 법을 보완한 것이다.

 

조선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빼놓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나라다. 여진족과 생존을 위한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어 당장이라도 오랑캐 무리를 몰살시킬 군대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지만 중국 땅에 조선 군대를 들여보내는 것은 황제와 사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171 페이지) 두 여진족 부족인 오랑캐는 강가의 사람이라는 뜻이고, 우디 캐는 숲속의 사람이라는 뜻이다.(189 페이지) AI는 둘 다 숲속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랑캐는 몽골, 퉁구스족 계열의 부족인 우량카이에서 유래했다.

 

세종은 변역(變易) 방식의 정치를 지향했다. 내가 먼저 바뀌는 것이 변이고 남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행동이 역이다. 여기저기가 다 문제다. 북쪽 국경을 넘나드는 여진족 만큼 남쪽의 항구를 드나드는 왜인(倭人)의 상황 또한 좋지 않다.(194, 195 페이지)

 

세종은 정초(鄭招; ? - 1434)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62일 나보다 더 나를 닮았고 언제나 왕을 사랑으로 돌봐주던 신하 정초가 죽었다. 내가 왕이 되고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경연이고, 정초가 없는 경연은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정초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다. 정초는 내가 왕이 된 해에 장인이 역모에 몰려 죽임을 당할 때 경연에서 지금은 보고도 못 본 듯 행동해야 한다며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새로 임명한 수령은 반드시 가까이 불러서 소민을 사랑하라고 당부하라고 알려주었던 인물이다.“

 

소민은 지배당하기만 해서 힘이 없고 움츠러드는 작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197 페이지) 정초는 문학, 농업, 천문, 과학, 음악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기틀을 닦는 모든 핵심 사업을 주도한 세종대왕의 핵심 참모이자 만능 천재 학자였다. [농사직설]의 저자이기도 한 정초는 이천, 장영실 등 기술자들이 과학 기구를 만들 수 있도록 과학적 이론을 정립하고 작업을 총지휘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초는 언제나 배우고 묻기를 좋아한 인물이었다.

 

세종은 세자 향을 어떻게 대했을까? 다음의 구절을 보자. "328일 이른 아침에 세자 향을 데리고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건원릉에 가서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아버지와 추억이 많은 광진구에 있는 낙천정에 들러서 점심을 먹고 강을 건너서 송파구의 나루터 부근 편평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불을 쬐며 아들에게 선대왕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음 날 돌아오는 길에 부모가 잠들어 있는 서초구에 있는 헌능에 들러서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이틀 동안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나라가 탄생하고 유지되는 기본을 일러줬다. 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것에는 못 미치지만 나도 내 방식으로 아들에게 전해주고 있다"(199 페이지)

 

흐뭇한 정경이다. 세종은 대다수의 집현전 학사들이 언론, 감찰, 인사, 국방을 다루는 힘 있는 기관으로 옮겨가고자 한다고 말한다. 세종은 태만한 마음을 잡고 종신토록 집현전에서 공부하고 경연을 준비하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러나 세종은 최악의 가뭄이 닥치자 집현전 인원을 32명에서 20명으로 줄이는 결단을 내렸다.(229 페이지)

 

세종의 책 이야기는 계속된다. 예전에 아버지가 방에 틀어 박혀 지내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해 아들 주변에 있던 책을 모두 치웠던 적이 있는데 그때 구소수간(歐蘇手簡) 책 한 권만 방에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205 페이지) ()과 무() 또는 중앙과 변방의 갈등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다. 부모가 죽어도 아내가 죽어도 장례를 치르러 집에 다녀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 국경을 지키는 장수의 숙명임에도 국경을 지키는 장수가 조그만 사건 사고라도 저지르면 서울의 관리들은 트집을 잡고 죄인처럼 대하기 일쑤였다.(211 페이지)

 

해괴(駭怪)한 일을 없애기 위해 해괴제(解怪祭)를 지냈다고 한다.(219 페이지) 세종은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세종은 왕이 되고 나서 신하에게 한 첫 말이 "더불어 의논하자"였는데 세 정승이 자신의 뜻을 읽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고 마침내 그들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게 되어서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고 말한다.(234 페이지) 물론 세종은 법을 바로 세우는 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324 페이지)

 

재위 18년인 1436년 세종은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내는 세금이 쌀 70석에 이르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계속되는 흉년에 세종은 처음으로 왕으로서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231 페이지) 무엇이 문제일까? 산업, 기술이 부족한 때문일까? 이때 세종은 눈병이 심해져서 문서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다고 말한다. 수개월 동안 적지 않은 문서를 읽어가며 일하고, 밤에는 잠을 줄여가며 자치통감훈의 책 원고 작업을 하며 눈을 혹사시킨 후유증인 듯하다고 말한다.(234 페이지)

 

본문에 오랑캐 이만주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과 세조 시대에 조선 북방을 끊임없이 위협했던 건주여진의 대추장이다. 46진을 개척하도록 촉발한 인물이다. 재위 21년인 1439년 이런 기록이 있다. 국경에서 성을 쌓고 있는 소민에게 밥을 가져가면 물고기가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로 모여드는 것 같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것을 지켜보기가 괴롭다는 평안도 군사령관의 편지글이다. 세종은 밥이 배고픔을 해결하지만 성은 목숨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평안도 벽단, 함경도 원성 등지에 행성과 바리케이트 공사를 했는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여름 장맛비에 휩쓸려 많은 곳이 허물어졌다. 현장을 조사하고 온 관리가 주먹으로 내리쳐도 허물어졌을 정도였다고 보고했다. 눈에 보이는 성의 바깥만 돌로 쌓고 보이지 않는 곳은 모래와 흙으로 대충 메운 부실공사였기 때문이다. 세종은 문제의 핵심이 성을 쌓는 기술 차원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목표를 달성하려고 재촉했던 데에 있다고 말한다.(300 페이지)

 

다양한 여진족들이 귀화해왔다. 대부분은 국경 가까운 지역의 좁은 땅에서 부대끼며 살았다. 세종이 당뇨병을 비롯한 여러 병으로 인해 작은 일처리는 세자가 맡는다라고 통보하자 신하들은 왕이 아직 젊어서 병이 곧 나을 것이라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를 보며 세종은 요즘 신하들의 말과 행동은 지금까지 왕에게 당했던 것을 되갚아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동안은 자신이 늙고 병이든 신하를 퇴직 시키지 않았던 것처럼 왕도 죽을 때까지 일해야 마땅하다고 압박하는 듯하다고 말한다.(317 페이지)

 

신하들은 세자로 하여금 군사훈련을 지휘하게 하려는 세종에 극구 맞서기까지 했다. 세종은 찬바람이 불면 온천이 간절해진다고 말한다. 이런 구절이 있다. "144233일 아내와 세자를 포함한 온 가족이 강무를 겸해서 강원도 이천(伊川) 온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고 보니 강무장에 아내와 함께 온 것도 처음이다. 강무는 세자가 지휘하게 했고 나는 틈틈이 세자와 더불어 사냥을 하며 아이들과 정을 쌓았다. 아홉 살 막내 이염(영웅대군)은 여행이 지겨운가보다."(319, 320 페이지)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는 어떤 사건의 현상이 아닌 배경을 헤아리는 데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가령 고의 방화 사건에 대해서도 세종은 해당 지역의 수령을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며 문제의 핵심은 왕 때문에 주민이 길을 내고 건물을 짓는 등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위 25년인 144347세의 세종은 12월 마지막 날 우리나라 사람의 말을 듣고 글자로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이라는 세상에 없는 새 문자를 만들었다고 세상에 알렸다.(335 페이지)

 

세종은 오랫 동안 비밀리에 새 문자를 만들어 왔다. 온천에 가서 틀어박혀 지낸 이유도, 군사훈련을 취소한 이유도 모두 훈민정음 연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세종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감정과 소통에 섬세했다. 요즘 말로 정동(情動)의 사람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정동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몸들과 만나며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다. 정동 이론의 핵심은 의식 이전의 거친 감각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언어와 의미로 전환되느냐에 있다.

 

세종은 자신이 한창 젊었을 때는 신하의 보고를 받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너의 말이 아름답다. 그러나"라고 말하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차근히 설명하는 열정이 넘쳤었다라고 한다. 그런데 몸이 약해지자 자신의 지시대로 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354 페이지) 세종은 몸이 낫기 전까지는 이런 마음의 병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재위 28년인 144650세의 세종은 아내를 보내야 했다. 세종은 "아내 이름은 소헌(昭憲)이라 정했다. 아내가 살아서 불리던 이름이 공비(恭妃)였다. 겸손하고 예의 바른 아내의 모습을 보고 태종이 지어준 이름이다. 죽은 뒤에 불릴 아내의 이름을 내가 직접 정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소헌은 밝음을 일깨워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실제로 아내는 왕인 나보다 더 아랫사람을 믿어주던 왕비였다."(373 페이지)라고 말한다.

 

"99일 세자가 영릉(英陵)에 가서 어머니 제사상에 밥 한 그릇을 올렸다. 그리고 띠로 벽과 지붕을 이은 한 칸 넓이의 임시 거처에 들어가서 밥을 먹다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목이 메이도록 울었다고 한다. 나도 그립고 보고 싶은데 큰아들이 오죽했을까? 어머니와 함께했던 날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났을 것이다. 내가 추억하는 아내는 평소에 믿음을 주는 말로 정을 쌓으며 살았고 나에게 모범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잔소리도 잘난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왕이 처신하는 도리의 바탕이 되는 정을 아내에게 배웠다'라고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374, 375 페이지)

 

세종은 정()이란 글자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뜻을 가진 글자라 말한다. 세종은 훈민정음이 백성의 한()을 풀어내고 정()을 쌓는 글자라고 말한다. "왕은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아야 하늘이 준 기쁨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병이 들고 늙으니 쉽게 피곤해지고 게을러진다. 내가 지금 그렇다."(390 페이지)

 

재위 32년 즉 마지막 해인 145054세의 세종은 소민(小民)과 더불었던 소여왕(小與王)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태종은 신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통치하는 권도의 왕이었고 세종은 신하와 대화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즐겼던 정도의 왕이었다.(421 페이지) 부모를 잘 만나서 자신의 이성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세종의 이성은 감성을 잘 헤아리는 바탕 위에 세운 이성이다. 여주 영릉(英陵)에서 해설을 하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세종 시대의 과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싶다. 정초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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