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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의 저자 쥘리앙 보브로프는 흔히 물리학자들이 거만한 눈으로 동료 화학자들을 대하는 것은 아마도 두 학문이 지닌 역사적 기원의 차이에서 기인한 현상일 것이라 말한다. 보브로프의 말은 갈릴레이, 뉴턴과 함께 탄생한 물리학은 세계에 대한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을 제시했지만 화학은 연금술사 덕분에 여러 의식(儀式)으로 가득한 마법 세계에서 첫 발을 떼었던 역사적 차이에 초점을 맞춘 말이다. 


그런데 양자 물리학이 탄생한 이후 원자와 전자의 행동을 물리학적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화학적 결합과 반응도 물리학의 법칙 안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복잡한 현상이나 개념을 그것을 이루는 더 단순한 하위 요소나 근본적인 법칙으로 쪼개어 설명하는 환원주의(Reductionism)가 문제인데 양자역학을 통해 화학을 설명해 낸 것은 하위 요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상위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환원주의의 가장 아름답고 성공적인 사례(긍정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양자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전자야말로 빛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리언 레더먼과 크리스토퍼 힐은 [시인을 위한 양자물리학]에서 전자는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며 입자이면서 파동이라 말했다. 그들에 의하면 전자는 무언가 새로운 것, 양자(量子) 상태다. 전자가 양자 상태(Quantum State)라는 말은 전자를 단순히 입자다 또는 파동이다 같은 이분법적 틀로 대하지 않고 확률적으로 공존하는 미시 세계 고유의 완전히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관측하기 전에는 파동처럼 퍼져 있는 확률로 존재하다가 관측하는 순간 입자처럼 특정한 위치에 모습을 드러내는 양자역학의 신비로움을 잘 나타낸 표현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시인을 위한 양자 물리학], [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 등은 최근 내가 읽은 물리학 책의 목록이다. 나에게 전자를 주제로 한 책은 없다. 다만 아직 읽지 못한 일본의 이학 박사 사이토 가쓰히로의 [한 권으로 이해하는 원자 소립자 양자의 세계]란 책이 있다. 


최근 일본의 물리학 석사, 공학 박사 에마 가즈히로의 [전자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 물질·양자·생명을 움직이는 작은 입자]란 책이 출간되었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목차만으로도 관심을 끈다. 제1장 전자는 자연계에서 ‘가장 작은 부품’, 제2장 전자의 베일이 걷히면서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제3장 전자가 보여주는 양자역학적 운동, 제4장 화학에서도 주인공은 전자, 제5장 금속, 절연체, 반도체, 그리고 초전도체, 제6장 생물 몸속에서도 대활약하는 전자 등이다. 양자, 생명 등의 키워드가 눈길을 끈다. 제4장 화학에서도 주인공은 전자는 앞서 예시한 쥘리앙 보브로프의 말을 뒷받침한다. 


분자생물학자 찰스 코켈은 [생명의 물리학]에서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순히 원자에 전자를 하나씩 추가하면서 입자의 종류를 늘릴 수 없다. 전자는 자신과 똑같은 다른 전자 옆에 있는 것을 싫어한다. 이것은 일란성 쌍둥이를 생일 잔치에서 나란히 앉히는 것과 비슷하다. 쌍둥이들은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하며 친구들에게 독자적 존재로 대접받고 싶어 한다. 따라서 무작정 전자 옆에 전자를 쌓을 수는 없다. 전자 또는 모든 페르미온이 같은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이 원리를 파울리의 배타 원리라고 부른다....그렇다면 원자 안에 나란히 있는 두 전자가 서로 똑같지 않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성질 중 하나는 전자의 스핀이다. 전자의 스핀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면 둘은 다르다. 쌍둥이에게 자신을 개인으로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는 것처럼 두 원자는 이제 파울리의 원리를 따를 수 있다...”


[전자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는 원자와 양자역학부터 화학 결합, 금속과 반도체, 초전도체, 생명 현상까지 따로 배웠던 과학 지식이 전자라는 하나의 열쇠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기대가 크다.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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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 중력이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최신작인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를 완독하고 13, 000자의 서평을 썼다. 서평이라기보다 요약하고 내 생각을 덧붙여 내 관점에 따라 정리한 글이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가 내가 읽은 카를로 로벨리의 6번째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과학, 물리학, 철학은 물론 칸트, 스피노자, 아리스토텔레스 등 개별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이제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주문할 것이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화이트홀],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을 읽어야겠지만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가 로벨리의 최고의 책이 아닌가 싶다.

 

카를로 로벨리는 흥미롭게도 관계는 신학(神學)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면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고립적이지 않은 세 위격(位格)으로 존재한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의 근원이고, 성자와 성령은 하나의 신적 본질을 공유하며 서로 안에 거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수학이나 예술처럼 우리는 과거의 축적된 유산을 바탕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유클리드, 알콰리즈미(페르시아의 수학자), 브라마굽타(인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진구소(秦九韶; 친지샤오; 중국 남송 시대의 대표적인 수학자이자 기상학자, 정치가), 가우스 뿐 아니라 사포(고대 그리스의 시인), 무라카미 시키부(일본 헤이안 시대의 궁녀, 소설가, 시인), 제니스 조플린(미국의 록 가수)의 유산 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제니스 조플린이다. 록 음악, 특히 로벨리와 같은 국적의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을 오랜만에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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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근대 개발 시대에 중요한 통찰력을 주었고, 불교는 문명의 위기와 맞물려 사람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는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기독교와 불교는 지향점과 방법론이 다르겠지만 종교적 깊이, 인문학적 수준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씀입니다. 오래 전에 [불교와 양자역학], [양자역학과 불교] 등의 책을 인상적으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때만 해도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책은 불교만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최근 존 폴킹혼, 러셀 스태나드 등을 통해서도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논의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영국의 성공회 신자이자 물리학자인 러셀 스태나드는 양자역학의 '빛과 전자의 파동-입자 이중성'을 기독교의 '예수의 신성·인성 이중성(기독론)' 및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비유로 사용한 바 있지요. 물론 그럼에도 현대의 많은 물리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은 불교가 양자역학과 훨씬 더 근본적인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평가하는 반면, 기독교는 양자역학을 통해 교리의 모순을 방증하거나 비유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양자역학, 그리고 그 물리학으로 종교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관건은 아니겠지요. 덧붙여 잘 모르지만 불교 성직자들은 이상한 정치적 언행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기독교는 그런 경우가 많은 것도 기독교 책이 잘 선택되지 않고, 불교 책이 잘 선택되는 한 요인이겠지요. 저도 기독교인인데 기독교 설교는 수천년 전에 쓰인 경전을 현대적 맥락하에서 어떻게 살려서 가르치고 갈 길을 제시할지에 대해 별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약간 죄송한 말씀이지만 모 교회 목사님께서 오래 전에 쓰신 모 기독교 전문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에서 현상을 분석하고 전개하는 것에는 예리한 구성력을 보이시는 등 충분한 지면을 할애하셨지만 결론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는 참 소략한 말씀이었습니다. 큰 상찬을 받은 논문인데도 참 허무하게까지 느껴지는 결론이었습니다. 어쩌면 기독교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면 다 된다는 상황이라면 답은 명확하고, 할 바는 별로 없어 그것을 책으로 낼 여지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최근에 안 바이지만 질그릇 이론이 있더라고요. 볼품없고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도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친히 빚으시고 그 손에 붙잡아 쓰시면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특정 정치인을 그런 그릇으로 보는 사람들에게서 그의 행동이 성경적이어서 지지하고 그를 하나님이 쓰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지향성이 같아 그를 하나님이 흠이 있어도 쓰신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편향이 보인다고 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볼품없고 깨지기 쉬운 그릇과 삿되고 무도한 그릇은 구별해야 하지 않겠는지요?

 

적당한 구절이 있으면 그것에 현실을 꿰어 맞추는 경향이 기독교인들에게서 자주 보인다고 말하면 지나칠까요? 수전 손탁이 해석에 반대한 것을 생각합니다. 해석하기 어려우면 놓아 두어야 할 텐데 굳이 해석하고 적용하려 드는 것은 무리한 일이지요.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구절을 읊조리면서 현실을 참고 견디고 기도하고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식으로 설익은 결론을 내고 일을 저질러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인사들이 기독교 책을 읽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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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8월 18일 아이슬란드 오크예퀴들(Okjökull) 빙하 장례식이 열렸다. 녹아 사라진 얼음 조각을 애도하는 자리를 넘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후변화로 인해 소멸한 자연을 향해 치러진 공식 장례식이자 전 세계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였다. 과학적으로 빙하는 자체 무게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두께(약 40~50m 이상)를 유지해야 하는데 오크예퀴들은 2014년 이미 자격을 잃고 '사망 판정'을 받았다.

 

"오크(Ok)는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빙하의 지위를 잃은 빙하입니다. 앞으로 200년 동안 우리의 모든 빙하가 똑같은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 기념비는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음을 기록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행동했는지 여부는 오직 당신(미래 세대)만이 알 것입니다."

 

오크예퀴들 빙하 추모비에 새겨진 이 '미래로 보내는 편지'의 추모 글을 쓴 사람은 아이슬란드의 유명 작가이자 시인, 환경운동가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Andri Snær Magnason; 1973 - )이다. 작가는 오크예퀴들 장례식 이후인 2019년에 나온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2014년 어느 날 아이슬란드의 한 빙하가 사라졌다.”고 썼다.

 

마그나손은 ”우리는 신문에서 빙하 해빙, 기록적 고온, 해수 산성화, 배출가스 증가 같은 머리기사 제목을 보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여긴다. 과학자들이 옳다면 이 단어들은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그 어떤 사건보다 심각하다. 우리가 제대로만 이해한다면 이 단어들은 우리의 행동과 결정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 의미들의 99퍼센트는 백색잡음으로 흩어져버린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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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warming이 아니라 글로벌 heating의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 현재 지구의 온도 상승 속도는 인류 역사뿐만 아니라 지구 역사 전체를 통틀어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하게 빠르다. 가속 가열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지금의 기온 상승이 인간 때문이 아니라 태양 활동, 화산, 지구 자전축 변화 등 자연적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연적 요인만으로는 지금의 폭발적인 온도 상승 속도를 절대 설명할 수 없다. 만일 산업화 이후 인류가 지금과 다르게 마구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순환형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을 유지함에 따라 폭염, 한파, 초대형 태풍 같은 극단적인 이상 기후가 일상화되지 않고 예측 가능한 계절의 변화가 유지되었을 것이다. 석탄, 석유 대신 수력, 풍력, 조력, 초기 형태의 태양광 기술이 19세기부터 집중 연구되었을 것이다. 가뭄과 홍수로 인한 식량 위기가 적어 전 세계적인 기아 문제가 지금보다 훨씬 덜했을 것이다. 거주지가 사막화되거나 침수되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수천만 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하지 않아 국제 사회의 사회적 비용과 갈등이 크게 줄었을 것이다.

 

화석연료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축복이자 문명의 존립을 흔드는 저주였다고 할 수 있다.

1) 전 세계에서 화석연료 연소 및 산업 공정으로 인해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나라는 중국, 미국, 인도 순이다. 2) 누적 순위는 미국, 유럽연합, 중국 순이다. 3) 국민 1인당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면 미국, 호주,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순이다.

 

우리나라는 기후 빌런 국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1) 재생에너지 비중이 9~10%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꼴찌 기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고, 2) 전력 생산의 60~70% 이상을 여전히 석탄화력발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고, 3) 철강(포스코), 반도체·전자(삼성) 등 탄소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중화학 공업과 제조업이 국가 경제의 뼈대를 이루고 있어 단기간에 탄소를 줄이는 것이 매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고, 4) 개발도상국의 기후 변화 대응을 돕는 기금(기후 재원) 분담이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설정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설령 넷 제로(탄소중립)에 성공하더라도 다른 나라들이 탄소를 계속 배출한다면 우리는 기후 변화로 인한 타격을 거의 그대로 입게 된다. 대기는 국경 없이 전 지구를 하나로 순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의 약 1.3~1.6%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에 사고가 난 네팔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극히 미미하지만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네팔은 기후 불평등으로 인한 대표적 희생국이다. 얼마 전 한 탐방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미국, 중국 등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는 관심이 없고 패권주의적 경향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세계가 암울하다고 하자 탐방객은 (선호하는) 미국을 (“빨갱이 나라”) 중국과 함께 논하는 것이 불편했던지 화난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 70대 여성 탐방객이 지지하는 트氏는 기후 위기를 사기라고 부르며 전면 부정하는 확고한 기후 변화 회의론자다. 마이클 마니아티스의 [분리수거에 진심인데 왜 지구는 뜨거워질까?]란 책이 나왔다.

 

글로벌 기후 연구 기관인 카본 메이저스(Carbon Majors)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협정 이후 전 세계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80%가 단 57개의 화석연료 및 시멘트 기업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전 세계에서 분리수거된 플라스틱 중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9~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기술적·경제적 이유로 매립되거나 소각로에서 불타며 엄청난 탄소를 뿜어낸다. 1970년대 미국의 대형 석유화학 기업들은 플라스틱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재활용 마크를 만들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플라스틱은 죄가 없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한 소비자의 잘못이다"라는 프레임을 씌워 쓰레기 처리 비용과 도덕적 죄책감을 고스란히 개인과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긴 것이다.

 

요즘 많이 떠도는 말이 화성 또는 달 테라포밍이다. 아메데오 발비 같은 천체물리학자가 지적하듯 테라포밍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위험하고 비용이 너무 들어가는 일이다. 전 세계의 넷 제로(Net-Zero)를 달성하는 것이 화성 테라포밍보다 압도적으로 쉽고, 비용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적게 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 캠페인이 아니라 문명 전체의 뼈대를 바꾸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번 빙하 붕괴에 의한 히말라야 대홍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의 추세는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Exodus가 난망한 거대한 늪에 빠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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