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책 - 세미나 시작부터 발제문 쓰기까지, 인문학공부 함께하기
정승연 지음 / 봄날의박씨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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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seminar)는 토론식 수업을 의미하는 말이다. 정승연의 ‘세미나책’은 세미나의 시작부터 발제문 쓰기까지 인문학 공부에 대해 논한 책이다. 저자는 출판사 블로그 관리를 맡고 있고 인문학 세미나의 강의 수강도 하고 있는 분이다. 써야 할 글이 많은 분이다. 저자는 경쟁력 담론을 인문학과 무관한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인문학을 비판과 대안 창조의 학문으로 보는 나의 문제의식에 수렴하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관성적인 생각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습관처럼 굳어진 나의 관점에 균열을 내고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하리라. 저자는 답은 잠정적이기에 다시 갱신된다고 말한다. 이는 심지어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까지 포함해 모든 글쓰기는 연습(187 페이지)이라는 저자의 다른 말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인문학 공부는 잠정적이라는 다른 말(22 페이지)과도 통한다. 저자는 배움의 대상은 사람을 넘어서 있지만 배움은 대부분 사람으로부터 온다고 말한다.(26 페이지) 저자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 원리에 기반하는 대상이라 말한다.(29 페이지) 세계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 아닌 특정 원리에 기반하는 현상이라는 말, 그리고 배움의 대상은 사람을 넘어서 있다는 말은 학문이란 현상을 넘어서는 본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저자에 의하면 세계관을 의식하며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원리주의와 회의주의라는 두 개의 극단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세계란 자기가 경험한 것이기에 그에 대한 질문은 결국 ‘나’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32 페이지) 공부란 ‘나’를 해석하는 문제라는 의미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어느 순간 공부를 왜 하지?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국 공부를 해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문을 두고 생각해본 결과 안 해도 된다는 결론이 났다면 그때 공부를 중단하면 된다는 것이다. 세미나를 통해 읽기를 이어가면 서로 다른 구성원들 속에서 그 밀도가 높아짐을 느끼게 된다.(42 페이지)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또는 우리 모임의 바깥과 연결되는 것이다. 자기 세계에 매몰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관건은 어려운 책이라도 끝까지 혼자서라도 읽어내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저자는 다시 한 번 의미 깊은 말을 한다. 경험이 많지 않으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74 페이지) 나는 평소 공부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는 말을 하곤 한다. 공부할 것을 찾아내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니 글감을 찾는 노하우를 갖춰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어렵더라도 해설서에 의지하지 않고 원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저자가 말하는 원전이란 원서를 우리 말로 번역한, 그 철학자가 직접 쓴 1차 텍스트를 말한다.) 저자는 원전을 읽는 고생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 해설서를 읽으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79 페이지) 그렇게 해설서를 경유해서 다시 원전으로 돌아오면 그제서야 조금씩 원전이 건네는 말이 들려온다.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일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글자도 이해되지 않던 문장이 단박에 이해될 때가 있다.(88 페이지) 고전이란 시간을 견디는 책이다. 매번 다시 태어나는 책이라는 의미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18세기 낭만주의자들에게 신성한 자연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20세기 중반에는 주체 중심의 근대철학을 극복하는 토대를 마련해주었고 오늘날에는 뇌과학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읽히는 것이다.(9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읽기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글을 읽는 동안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머릿속을 뒤적거려야 한다. 잘 읽히지 않는 대목을 만나면 샅샅이 훑어야 하고 이것도 맞춰 보고 저것도 맞춰 보며 텍스트를 의미화해야 한다.(102 페이지) 공부 하는 이유는 앎을 확장하고 상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104 페이지)

 

텍스트를 읽는 것은 작은 부분들을 그러모아 전체를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앎들을 텍스트의 내용과 합치고 뭉쳐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앎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104 페이지) 이 말을 들으며 인간은 안식처가 있는 덕분에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이야기를 주고받는 능력 덕분에 적절한 안식의 공간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이야기의 끈’ 5 페이지)는 말을 생각한다.

 

내용상 똑같은 지식이어도 내가 내 삶으로 지속적으로 불러들이는 것들이 아닌 지식들, 무언가를 위해 공부한 지식들은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생명력을 급속도로 잃고 만다.(108 페이지) 인문 고전 읽기는 텍스트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독특함과 차이를 수행하는 능력을 확대하는 일이다.(116 페이지)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전문 연구자가 아니어도 공부하는 삶은 가능하다. 자유로움이 그들의 생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지식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은 없다. 기존 지식들을 연결하거나 분해, 조립하면서 재구성한 것들이다. 그렇게 스스로 재구축한 것들이야말로 자기 인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의 지식을 만들려면 원재료가 있어야 한다. 기존 지식들이다. 읽고 또 읽어야 한다.(126 페이지)

 

인문 고전 텍스트의 요점 같은 것은 세미나가 끝나고 난 후에 다 잊어버려도 상관 없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질문을 만들고 그에 답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발제란 세미나에서 회원들을 대신해 질문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140 페이지) 문제로 보이는 것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문제와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이 훈련의 핵심이다.(140, 141 페이지) 세미나에서 발제문은 읽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그 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읽는 것과 동시에 의문을 만들어야 한다.

 

질문을 위한 질문이라도 만들려고 마음을 먹고 읽어야 겨우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발제문을 쓸 수 있다.(185 페이지) 텍스트를 바탕으로 글을 쓸 때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텍스트를 고스란히 옮길 가능성이 높다. 그럴 바에는 그냥 텍스트를 보면 된다. 각각의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면 아주 좋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라 발제문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152 페이지)

 

이 부분을 읽으며 에세이는 유기적으로 이어지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공부는 지식이 나를 거쳐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160 페이지) 자신의 지식을 말로 바꾸어 밖으로 내놓는 것은 중요하다. 세미나는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다.(161 페이지) 세미나에서는 내가 읽어내지 못한 지식을 다른 사람은 읽어내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입을 거쳐 나온 그 지식이 내가 얻은 지식들을 활성화시킨다.(166 페이지)

 

이를 보며 우리 모임을 생각한다. 세미나 모임은 아니고 비영리 모임인데 공통 이슈 외에 구성원들의 주된 관심사가 각기 다른 것이 특징이다. 세미나는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공부방식이다.(176 페이지) 저자는 공부는 단지 아는 것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차라리 모르는 것을 늘려가는 일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178 페이지) 글을 무조건 많이 써야 한다. 써지지 않아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잘 쓰려면, 최소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능한 한 적게 하려면 무조건 많이 써야 한다.(184 페이지) 저자는 작가들이 글을 보통 사람들보다 잘 쓰는 이유가 써야만 하는 글, 쓰기로 약속한 글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185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과거의 글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그 만큼 그가 성장했음을 증거한다고 말한다. 머리에서 나와 손을 타고 화면에 글자로 출력되기까지 엄청난 변환과 왜곡이 일어난다. 이 역시 많이 쓰는 것으로 점차 극복할 수 있다.

 

관건은 어려운 읽기, 쓰기, 말하기에 적응하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쓰기로 약속이 된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을 쓰지 않고선 공부를 한 것 같지 않은 데까지 가게 된다.(197 페이지) 나는 서평을 쓰지 않으면 책을 읽은 것 같지 않다거 느낀다. 창의성이란 숙달과 관련된다.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이해하는 것에 매몰되면 정답이라는 가상을 추구하게 된다.

 

인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모두가 좁은 의미에서든 넓은 의미에서든 진리를 추구하는 학인이고 해석자다.(201 페이지) 우리는 애정을 가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최근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을 선물 받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다. 인문학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더 설득력을 가진 해석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틀릴 가능성이 없는 해석은 없다는 의미다.(20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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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0-06 0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감사합니다

초딩 2021-11-07 11: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1-07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11-07 1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thkang1001 2021-11-07 13: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벤투의스케치북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1-08 18: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이하라님

벤투의스케치북 2021-11-0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thkang1001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