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동안의 침묵
박정선 지음 / 푸른사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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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집 ‘존재와 사유’에서 이회영의 삶을 비극적 세계관으로 설명한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박정선의 장편이다. 제목으로 쓰인 ‘백년 동안의 침묵’에서 백년이란 우당(友堂) 이회영 독립투사가 저자에게 알려지기까지 걸린 시간을 의미한다. 이 책은 2021년 11월 남산, 예장 공원 해설에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발견하고 읽은 책이다.

 

이 해설 코스에 명동성당 앞 이회영 길, 이회영 생가 터, 2021년 6월 개관한 이회영 기념관이 포함되었다. 독립투사 이회영은 신민회, 신흥무관학교 등을 설립했고 후에 아나키스트가 되어 활약하다가 조카(아버지의 사촌 형 이유원에게 양자로 ‘출계; 出系’해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모두 쏟아부은 ‘중형; 仲兄’ 이석영의 둘째 아들 이규서)의 밀고 때문에 체포되어 뤼순감옥에서 모질고 혹독한 고문에도 조국을 버리지 않고 끝내 의리를 지키다 순국한 비극적 영웅이다. 

 

1910년 조선을 병합한 일본은 “조선 사람은 일본에 복종하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선언을 통해 알 수 있듯 무단 통치의 길로 들어섰다. 이에 나라는 망했지만 기득권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승 대감의 여섯 아들들(건영, 석영, 철영, 회영, 시영, 호영)은 중국 망명을 결의한다. 백사 이항복으로 인한 대한 공신의 후예로서 세세토록 국가의 은덕을 입었으니 이제는 나라의 운명과 함께 해야 하기에 당연히 생사를 막론하고 가족을 모두 인솔하고 일제치하를 떠나 중국 땅으로 망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다.

 

그들은 재산을 팔아 만든 독립자금을 지닌 채 열두 대의 삼두 마차에 나눠 타고 물빛이 오리의 머리색처럼 북청색이라 해서 이름이 붙은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향했다. 그들이 망명한 뒤 다른 동지들이 가을부터 겨울 내내 압록강을 건너 목적지에 도착했다. 관건은 군사기지 설립에 필요한 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현지인들은 땅 팔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런 상항에서 이회영이 난제를 해결했다. 총통 원세개와의 개인적 인연에 힘입은 바다.

 

이회영이 원세개를 만난 것은 20대 중반이었고 중국으로 망명했을 당시 이회영은 원세개를 못본 지 16년이나 된 상태였다. 원세개는 조선에서 10년이나 살았고 조선 때문에 말단에서 높은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청나라 황제를 대신하여 내정간섭까지 하는 등 오만방자했던 원세개는 다행히 이회영의 아버지 이유승 대감의 말은 잘 듣는 편이었고 여덟 살 아래의 이회영을 좋아했다.

 

원세개는 이회영의 석파난(石派蘭)을 좋아했다. 아니 석파난 때문에 이회영을 좋아했다. 원세개는 삼전지묘법(三轉之妙法)을 입에 올리며 석파난에서 바람 소리와 심오한 향기가 난다고 말했다. 삼전지묘법은 난 잎을 세 번 돌려 빼는 기법이다. 이회영에게 난을 그려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자고 한 사람은 서예가 우당(愚堂) 유창환(兪昌煥; 1870 - 1935)이었다. 원세개는 이회영의 퉁소 소리도 좋아했다. 원세개는 이회영의 퉁소 소리를 듣고 향수(鄕愁)를 달랬다.

 

이 소설에서 퉁소는 중요한 장치로 등장하는 악기다. 석파난과 함께 원세개의 마음을 움직인 악기이자 이회영의 22년(1910년 - 1932년)의 망명생활의 한(恨)을 위무(慰撫)해준 악기였다. 이회영은 분신처럼 지니던 그런 악기를 마지막 순간에 챙기지 못했다. 만주 군벌 장학량을 만나 만주에 연락 근거지를 확보하고 지하조직을 만들고 일본 광동군 사령관 무토를 암살하는 거사를 수행하기 위해 가는 길에 형님 이석영의 집에 들렀다가 챙기지 못하고 나온 것이었다.

 

뤼순감옥에서 만난 단재가 “그림자도 지워버리시는 분”이라 칭한 것처럼 용의주도했던 혁명가 이회영은 형제에게도 비밀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기고 중형 이석영에게 북만주로 간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 말을 이규서가 듣고 일본 밀정에 고하는 바람에 이회영은 체포되어 영웅적 생애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이석영은 동생 이회영이 챙기지 못하고 남기고 간 퉁소를 불며 “나는 왜 죽지 않고 살아 있는가?”, “내 아우를 기다린 게요. 만주로 가면서 꼭 오겠다고 그날 밤 이 늙은이와 약속했거든.”이란 자문자답을 했다. 이석영은 아우 이회영이 분신처럼 대했던 퉁소를 놓고 간 것을 자신에게 다시 오겠다는 의미로 읽은 것이었다.

 

국수집에서 외상으로 국수를 얻어먹던 이석영은 음식 먹기를 거부하고 홀로 삶을 마쳤다. 그때 그는 80세였다. 66세로 삶을 다한 아우 이회영이 죽은 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소설에는 이회영과 관계한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1) 우당 이회영이 영구(榮求)라는 호를 지어준 두 번째 아내 이은숙은 이회영보다 스무 살이나 적은 사람으로 목은 이색(李穡)의 후손인 한산 이씨 가문의 당찬 여인이었다. 이은숙의 아버지가 무남독녀인 은숙을 은숙보다 스무 살 이상이나 많은 이회영에게 시집보낸 것은 이회영 가문이 명문가여서가 아니라 지사(志士; 절의가 있는 선비) 집안이어서였다. 조선이 나라를 빼앗기기 2년 전인 1908년의 일이었다.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해 온갖 고생을 다한 이은숙은 24년의 결혼 생활 동안 우당과는 13년 밖에 함께 하지 못했다.

 

프롤로그, 본문, 에필로그 이루어진 소설 가운데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우당은 아내 이은숙의 꿈에 나타난다. “내 사명이 끝났으니 이제 다른 신지(新地)로 가야 하오.”, “저도 함께 가렵니다.”, “영구는 나와 함께 가지 못하오.”, “그래도 따라가렵니다.”, “아니 되오.”..1908년 혼인식을 치른 스무 살의 이은숙과 마흔 둘의 이회영은 첫날 밤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독립문을 세울 때 정초식에서 불렀던 애국가를 불렀다. “두 사람은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지결의를 맺는 심정이었다.”

 

2) 중형 이석영은 양부 이유원의 막대한 재산을 신흥무관학교 설립과 운영에 쏟아부어 결과적으로 양부의 이름을 알렸다. 3) 이회영보다 세 살 적은 이상설(李相卨)은 이회영의 아버지 이유승의 저동(苧洞) 댁 옆의 이용우 대감 댁에 출계(出系; 대를 잇는 양자가 되는 것)하기 위해 진천에서 발탁되어 서울로 올라온 인연으로 알게 된 사람이다. 훗날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밀사로 활약한 이상설은 안중근 의사가 가장 존경한 스승이었고 우당 이회영에게 해외의 한인 자녀들을 교육하여 독립군으로 길러야 한다는 뜻을 표명한 선각자였다. 1906년 이상설이 중심이 되어 만주 용정에 설립한 신학문 민족교육기관 서전서숙(瑞甸書塾)은 1년만에 폐교된 뒤 명동서숙으로 승계되었다.

 

4) 뱃사공 첸징우를 빼놓을 수 없다. 첸징우 덕에 이회영 가족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첸징우는 이회영이 사례비로 준 돈을 종자돈 삼아 후에 큰 배의 선주가 되었다. 상해에서 다렌을 오가는 유람선주가 된 첸징우가 이회영에게 손님을 받지 않고 이회영만을 모시고 황포강을 건너겠다는 제의를 하지만 이회영은 다렌 부두에 나와 자신이 탄 남창호를 기다릴 동지들을 생각해 거절한다.(다렌은 만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일본 요원들은 이규서의 밀고를 받고 40명의 승객이 탄 여객선에서 정확히 이회영을 찾아냈다. 젊은 투사들, 가족 등이 중대한 거사를 수행하기 위해 나서겠다는 이회영을 만류하자 이회영은 언제까지 늙으면 들어앉아야 하고 젊은이는 불속이라도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 것인가, 늙었으니 초라한 행색으로 가족을 찾아가는 것처럼 하면 누가 혁명가로 보겠는가, 적임자는 자신이라는 말로 맞섰다. 첸징우는 남창호에서 일본 경비정으로 옮겨지는 이회영을 보고 따라가 구하려다가 일경들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던 이회영은 고문기술자이자 다렌 수상경찰서장 후쿠다 오시이로부터 “충성스러운 밀고자”의 이름을 듣고 절규한다. 후쿠다 오시이는 망명 전 민족자본을 만들기 위해 왕실 소유의 개성 땅을 빌려 대규모 인삼 재배를 시작한 이회영을 중심으로 한 우리 청년들을 보며 일본에 맞서려는 야심을 가진 혁명가의 눈을 보았었다. 당시 후쿠다는 수확을 앞둔 2만평의 인삼을 군인들을 동원해 모조리 도둑질해갔다. 이회영은 당시 경무청이 도리어 인삼재배가 무허가라고 엄포를 놓자 격분해 경무청과 후쿠다 고문의 방문을 부수어 구금되었다가 고종의 개입으로 방면되었다.

 

이회영이 민족자본을 만드는 데 뛰어든 것은 이상설이 신학문을 배우고 돌아올 동안 상동청년회 동지들과 민족자본을 만들겠다고 공언(公言)한 데 따른 것이다. 상동(尙洞), 하면 전덕기(全德基; 1875 -1914)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뒤 작은아버지의 집에서 자라던 전덕기는 스크랜튼 선교사를 만나 세례를 받고 상동교회에 입교한 데 이어 신학 교육을 받고 목회자가 되었다.

 

상동은 조선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상진(尙震)이 관직에서 물러나 살던 곳에 그의 성을 따 지은 동네 이름이다.(‘상; 尙’은 후백제의 목천 사람들이 왕건에게 끝까지 저항하자 왕건이 내린 코끼리를 뜻하는 상(象)이란 성을 후에 바꾼 것이다. 1908년 이회영이 신식 결혼식을 거행한 상동교회는 상진 대감이 살던 집이 있던 곳이다.) 상동교회가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변해가자 스크랜튼이 정치적인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전덕기는 “불의와 정의는 언제나 정치에서 시작되고 정치에서 실현”된다는 말을 한다.

 

이회영은 1926년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의 배후 조종자로 몰려 쫓기기도 했다. 물론 나석주의 의거를 기획한 사람은 유림(儒林) 대표 심산(心山) 김창숙(1879 - 1962) 선생이었다. 조선 망국의 원흉으로 지목된 유림이 그나마 고개를 들 수 있었던 것은 심산 덕분이다. 이회영의 동생 성재 이시영, 이회영 본인, 이상설은 모두 과거에 급제한 인물들이다. 각각 그들의 나이 17세, 25세, 22세의 일이다. 단재(丹齋) 신채호도 어려서부터 사서삼경을 두루 읽고 후에 성균관에 입교한 유학 진영의 사학자이자 아나키스트였다.

 

돋보이는 것은 이회영의 열린 정신과 선진적 혜안이다. 이회영은 여덟 살의 나이에 일본을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나라로 규정했는가 하면 수재(水災)를 당한 사람들을 보며 아버지 이유승 대감에게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은 우리 집안이 솔선해서 곳간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42세에 상동교회에서 신식 결혼을 올렸는데 이는 백성들로 하여금 개화 문물을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여성의 재혼을 백안시하던 시대에 스무살에 청상이 된 누나를 거짓으로 죽은 것으로 처리하고 재혼을 시킨 것도 대단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노비들을 해방시킨 것도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노비 출신들도 서간도에 간 것은 평등한 신분이 된 그들이 원해서였다.)

 

안온(安穩)한 삶을 버리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길에 나선 투사 이회영의 지조(志操)와 절의(節義)에 감동하며 책을 읽었다. 안타깝고 비장하게 읽히는 이 소설은 일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인상적인 점은 이회영을 비롯 관련 인물들이 불가피하게 때로 자발적으로 맞닥뜨리는 혹독함 사이 사이에 만들어가는 짙은 서정성이다. 이회영이 석파난을 그려 독립운동자금을 만드는 대목은 예술의 무목적성과 목적성이 조화롭게 만나는 부분이다. 이상설과 이회영이 만나 감동적인 면모로 낙조(落照)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우당 형은 매번 지는 해에 넋을 놓습니다.”란 이상설의 말, 단풍이 붉으면 인삼이 살이 찌고 향이 짙어진다는 말,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회영이 말술을 마시는 원세개와 어울리며 한 “술은 차를 대신할 수 없으니 차는 술을 대신하는 법”이라는 말 등은 비극적 삶을 더욱 확연하게 드러내는 장치이자 그 자체로 예술적인 부분이다. 남산에서 ‘닭이 알을 품은 형국의 서울’을 자칫 일본군의 발길에 치기 전에 결단하라는 독촉으로 읽는 부분은 또 어떤가. 비극적이지만 한탄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예술성과 사상성이 조화를 이루어 이회영 선생에 대해 충분히, 그리고 바로 알도록 해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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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03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그 박정선 님이 저자인 거 같군요.
이런 역작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책 담아갑니다. 리뷰 고맙습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2-03 18:33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좋은 책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