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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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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1883)올랭피아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등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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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명과 과학적 사유
최화 외 지음 / 문사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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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명과 과학적 사유는 철학자들의 사유를 모은 책이다. 근대과학이란 물리학의 발달로부터 출발했다. 갈릴레오가 현실적 사물에 수학을 적용하려 했을 때 그가 완전히 독창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천문학에서는 그보다 먼저 천체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왔었고 그런 시도의 원조를 따지자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플라톤은 수학적 법칙을 천상의 세계에 대해서만 적용했고 갈릴레오는 그것을 지상의 세계에도 적용했다. 천상에만 질서가 있다는 고대의 생각을 뿌리치고(?) 지상에서 질서를 찾으려 한 것이다.(16 페이지) 베르그손은 자유는 우리가 매순간 느끼는 자유의 감정 그 자체이며 어느 정도 자유로운가는 우리 내면의 어느 정도의 깊이에서 나온 행동인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전통 형이상학이건 근대 물리학이건 모두 물질을 이용하려는 지성의 힘에 기반을 두고 세계를 설명한 시도였다면 베르그손은 새롭게 우리의 인식능력은 지성을 넘어서는 측면, 생명의 입장에서 지성의 자리를 한계지을 수 있는 측면을 지닌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철학은 이제 전통 형이상학을 완전히 뒤집어 정지체에서 운동으로, 본질에서 기능으로, 형상에서 지속으로, 공간에서 시간으로의 역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닫힌 우주에서 열린 우주로, 형태 중심에서 유전 중심으로, 성년 중심에서 연속성의 담지자인 씨앗 중심으로, 개체에서 종으로, 도덕률에서 상황으로, 무감동에서 참여로 등의 변혁이 베르그손에게서 일어난 것이다. 정지가 존재에서 운동이 존재라는 말로 바뀐 것이다. 생물은 운동하지만 자신임을 잃지 않는다. 자발적 운동은 말하자면 모순적 운동인데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운동이 베르그손이 말한 지속(持續)이며, 지속이야말로 진정한 존재라는 것이 바로 운동이 존재라는 말의 의미다


운동이 존재라는 말은 진정한 존재는 운동이라는 의미다. 운동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단(不斷)히 타자화되는 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운동했음에도 타자화되지 않고 자기동일성을 잃지 않는 운동이다. 기억이 지속의 자기동일성을 확보해준다. 그러한 생명의 존재방식은 지성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베르그손은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초()지성주의다. 지성은 주어진 것들의 배열을 달리할 수 있을 뿐이지만 창조는 배열 정도가 아니라 주어진 것 자체를 즉 없던 것을 새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 이성은 자연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근세에 와서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과학은 인간 이성이 이룩한 위대한 결과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맞추어 인간 이성을 다소 제한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도 생겨났다. 이른바 수학적, 과학적 이성 또는 과학적 합리성의 틀에 따라 이성이 마치 오성과 같이 규정되는 것이다. 근대의 과학적 합리성의 토대를 이룬 것은 바로 근대 물리학을 가능하게 한 수학(기하학)이다.(85 페이지


아인슈타인은 많은 철학책들을 읽고 철학에 대해 많이 알고 생각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철학적 배경이 상대성 이론을 만들어내는데 긴요한 기여를 했다. 아인슈타인은 또한 자신이 만든 상대성 이론이 가지는 철학적, 물리학적 함의를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반대로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은 철학적인 문제로 간주되는 시간, 공간에 대한 물리학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144 페이지) 제네시스를 쓴 이탈리아 물리학자 귀도 토넬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등을 쓴 카를로 로벨리는 어떤가


동양과학의 발화는 주의를 끈다. 조셉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전개된 논지는 중국에도 과학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는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인과율에 의한 과학은 없었다. 동양과학문화에서 인과는 중요 담론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니덤은 중국과학이란 말은 자유롭게 썼다. 미국인 중국학자 나탄 시빈(Nathan Sivin)은 니덤의 생각을 비판했다. 중국인들이 자연을 정리하는 방식은 유별(類別; classification)이었다. 그들은 인과 대신 유별을 이론적으로 다듬어 나갔다


유별은 서양에도 있었지만 중국의 유별은 독특했다. 미셸 푸코는 중국의 유별을 접한 후 충격에서 비롯된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썼다. 그것이 그가 말과 사물이라는 지식의 분류학에 관한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였다. 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황제에 속하는 동물,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처리된 동물, 사육동물, 젖을 빠는 돼지, 인어, 전설상의 동물, 주인 없는 개, 광폭한 동물, 셀 수 없는 동물,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등등.. 


조선조 회화에 대한 인식은 시대적 정치적 배경에 따라 변화했다. 조선초기에는 조선왕조 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따라 대체로 회화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국가의 기틀을 잡고 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며 왕조를 안정시키는 것이 시대적으로 당면한 과제였다. 문인사대부의 역할 또한 유교이념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며 국가안정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이는 시(), (), ()를 비롯한 예술일반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초기에는 개국에 따라 국가의 기틀을 잡고 공고히 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기 때문에 여기적 활동인 예술 활동에 집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림 그리고 글씨를 쓰며 즐기는 일은 여기(餘技), 소도(小道), 천기(賤技), 말기(末技), 잡기(雜技)로 인식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도본말예(道本末藝), 완물상지(玩物喪志)로 대표된다. 조선 전기의 문인인 강희안(姜希顏; 강희맹의 형)은 당대 최고라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 보았다


성종실록에도 회화는 잡기(雜技)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비록 회화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해도 이런 인식이 그림을 비롯한 예술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았다. 완물상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작품 활동에만 매달려 도를 구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회화에 대한 인식은 조선후기에 두드러진다. 조선후기는 양란을 거치며 국가적 위기상황이 있었지만 왕조가 안정되었으며 도시가 발달하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하여 문화적 욕구가 상승한 시기다


사회 전반적으로 문화적 수준이 높아졌으며 그 결과 조선초기의 회화인식과는 달리 회화할동을 공공연한 문인의 활동으로 내세울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미수 허목, 표암 강세황, 추사 김정희 등에서 회화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수 허목은 무릇 기예의 오묘한 경지란 전념하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다며 그림도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집중적인 노력과 지속적인 탐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문을 하는 태도로 회화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회화가 더 이상 완물상지로 폄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그림에 속기가 없고 고상하며 글씨 또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평한 강세황은 영조의 말에 따라 절필(絶筆; 그림 그리는 것 그만 둠)했던 인물로 문인화의 기본 개념으로 속()과 아()를 들었다. 조선후기 문인화론의 완성은 김정희에서 이루어졌다. 김정희는 강세황을 비판했다. 사실 그대로 그리는 것을 지양(止揚)한 것이다. 동기창(董其昌)은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란 말을 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의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다. 김정희도 가슴 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는 김정희가 처음 쓴 말로 서권기의 핵심은 다독(多讀)이다. ()을 칠 때 서권기가 필요했다. 조선에는 난이 서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을 직접적으로 관찰하고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중국의 화첩(畫帖)을 보고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사난(寫蘭)의 어려움이 제기되었으며 난은 특히 사의를 드러내는 화목으로 여겨졌다. 이런 배경에서 난초의 사의성은 학식과 문자적 의미와 연관을 갖게 된다. 서권기는 자신의 뜻을 잃지 않고 지켜나간다는 의미로도 쓰였다


김정희가 말하는 문자향 서권기란 문인화가 갖추어야 하는 학식 인품 등 여러 덕목을 통합적으로 포함하는 다의적 용어로 쓰였다. 김정희는 회화에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적용하여 논하며 회화를 도의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게 하며 학문과 동등한 지위를 갖추게 했다. 격물치지는 사물에 가까이 이르러 그 사물의 이치<; >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회화를 격물치지의 수준에서 논의하면 그림은 더 이상 잡기가 아니며 그림에서도 도를 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뛰어난 학문과 예술의 경지는 단지 실사구시의 방법을 따르고 격물치지적 태도를 취하는 것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학습을 통한 깨달음을 내면화하고 실천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한 내적 성숙이 필요하다김정희는 그림 그리는 자에게는 무자기(毋自欺) 즉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종종 말에 속는다. 말들은 우리가 무심코 창 밖을 바라볼 때 거기에 있는 창문 유리창처럼 결코 투명한 매체가 아니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지도는 영토가 아니고 개란 관념은 짖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박하게도 저 창문처럼 말들을 투명한 것으로 믿기를 좋아한다. 그런 말들은 투명한 듯 보이지만 이미 상당한 두께를 가진 색유리와 같다. 나아가 그것은 심지어 우리의 유용성과 행위의 관점에서 실재를 조각내고 절단해 명사, 형용사, 동사로 굴절시킨다. 물론 이러한 굴절은 그 자체 오류는 아니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이 또한 실재의 일부이며 우리 지성의 결과인 과학이 파악한 세계는 실재의 반을 표현한다


단 이것으로 나머지 반을 모두 설명하고자 할 때 문제와 오류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물리 화학적 체계로, 유기체현상으로 모두 설명을 하고자 할 때가 그렇다. 베르그손은 햄릿이라는 걸작은 사실상 전혀 예측불가능한 창조적인 작업(지속, 직관, 생명이 갖는 본질적인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햄릿이 나오고 난 이후에야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쓸 가능성을 갖고 있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햄릿과 동시에 또는 이후에 성립되는 가능성을 과거로 역투사한 것이며 착각에 불과하다. 즉 회고적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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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산책, 자연과학의 변주곡
교양과학연구회 지음 / 청아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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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산책, 자연과학의 변주곡‘은 지구과학을 특별한 학문으로 분류한다. 하늘과 땅, 해양을 망라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지구과학은 고체 지구, 대기와 해양, 우주를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은 체계가 잘 잡혀 있었으나 정성적인 설명만 있었고 갈릴레이는 정량적 질문을 통해 새로운 계기를 만들었다. 창조과학은 대표적 유사과학이다. 실증적 검증을 통하지 않았거나 반증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규칙성, 원인과 효과, 규모와 비례, 시스템과 시스템의 모형, 에너지와 물질, 안정성과 변화 등은 여러 분야의 과학이 공유하는 공통 개념이다. 


평형은 상태가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외부에서 살짝 건드렸을 때 평형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안정 평형과 불안정 평형으로 나뉜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화는 섞기만 하면 일어나는 화학 변화처럼 빠른 것부터 종의 진화, 우주의 팽창 같이 매우 느린 것까지 다양하다. 세포 내의 대사 작용부터 지층의 형성, 은하의 충돌까지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물리학과 화학의 기본 법칙을 따른다. 짧은 시간에는 안정한 상태로 보이지만 긴 시간에 걸쳐 변화할 수도 있다. 생명체는 매일 같은 상태로 보이지만 긴 시간에서 보면 자라고 나이를 먹는다. 


탄소순환은 산업혁명 이전까지 동적 평형을 유지했으나 그 이후 평형 상태가 변해 지구 온난화를 일으켰다. 과학적 소양을 갖추려면 평소 사실에 근거한 논리적 분석으로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는 두 가지 이유로 해수면을 높인다. 첫째는 육지 위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이고, 둘째는 바닷물이 온도 상승으로  인해 팽창하는 것이다. 물체의 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을 기록으로 남긴 첫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반복되는 천상의 운동과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지상의 운동을 구분했다. 지상 물체의 운동도 원인이 없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운동과 원인이 있는 격한 운동으로 구분했다. 


그의 운동 이론은 스승인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관찰에만 의존한 것이었고 대개 추론에 의지한 정성적 설명이었다. 갈릴레이는 실험을 통해 수직 방향으로 운동하는 물체는 모두 같은 속력으로 낙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평 방향의 운동에 대해서도 실험과 추론을 통해 물체의 자연스러운 상태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갈릴레이의 발견을 바탕으로 뉴턴은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을 힘이라 부르고 힘을 받은 물체의 운동은 가속된다는 운동 법칙을 가정했다. 


물리학의 네 가지 힘 가운데 중력은 우주를 지배하는 힘이다. 전자기력은 지상을 지배하는 힘이다. 원자 안의 핵과 전자들을 꽁꽁 묶어 주는 힘이 전자기력이다. 원자핵을 묶는 힘을 강력이라 한다. 약력은 양성자를 중성자로, 중성자를 양성자로 만드는 힘이다. 양자역학의 가장 큰 성과는 원자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해(解)를 파동 함수 또는 오비탈이라 한다. 전자들은 에너지가 낮은 오비탈부터 채운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양자 상태에는 하나의 전자만 있을 수 있다는 파울리의 배타원리가 작용하고 100여 종의 원소가 보이는 화학적 성질을 집약한 주기율표를 설명할 수 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관성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성립하는 이론이기 때문에 특수한 경우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를 확장하기 위해 중력을 도입했다. 


철보다 더 무거운 원소들은 무거운 별이 죽으면서 폭발하는 초신성에서 생겨났다. 초신성 폭발로 핵분열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원소(방사능을 가진 원소)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원소가 중성자를 획득하면서 새로운 원소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리처드 파인만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 사라질 때 단 하나만을 남길 수 있다면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물은 원소가 아니라 수소와 산소라는 두 가지 원소의 화합물이고 공기는 질소와 산소의 혼합물이다. 혼합물은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각각의 성질을 잃지 않고 물리적으로 단순히 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탄수화물은 탄소, 수소, 산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다. 단백질은 수소, 산소, 탄소, 질소, 황 등 다섯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다. 수소, 산소, 탄소는 단백질, 탄수화물에 모두 들어 있고 질소, 황 등은 단백질에만 들어 있다. 물질이 원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마지막 단계가 분자다. 한 모금의 물도 나누다 보면 H₂O라는 하나의 분자에 도달하고 물 분자를 분해하면 물과는 성질이 다른 수소와 탄소를 얻는다. 우주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화학 반응은 수소 분자를 만드는 반응이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인데다 수소 원자는 전자가 한 개 밖에 없어서 불안정하다. 이처럼 쌍을 이루지 않는 홑전자를 가진 수소 원자는 수소 라디칼이라 불린다. 과격하다고 할 정도로 반응성이 높다는 의미다. 


수소 라디칼 둘이 만나면 순간적으로 전자를 공유하면서 수소 분자를 만들기 때문에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공간의 모든 수소가 분자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수소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넓은 우주 공간에서 수소 원자 둘이 충돌할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에는 지구 탄생기의 물질이 남아 있지 않지만 태양계를 떠도는 운석 중에는 지구가 태어날 당시의 것도 있다. 이런 측정 결과들을 종합하여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가 지금으로부터 약 45억 7천만년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지름이 현재의 절반 정도였던 원시 지구에 1년에 1천 개 이상의 미행성이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격렬한 충돌로 지구의 지표가 뜨거워졌다. 미행성과 원시 지구 속에 있던 가스 성분들이 바깥으로 빠져나와 두껍고 진한 가스가 원시 지구의 표면을 덮었다. 대기는 열의 방출을 막기 때문에 지표 온도는 암석이 녹을 정도로 높아졌고 지표는 마그마로 덮였다. 우주에서 바라보았다면 지구는 시뻘건 지옥의 불구덩이와도 같았을 것이다. 원시 지구의 반지름이 현재의 20%에 이르렀을 때 미행성의 가스 성분들이 대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반지름이 현재의 45% 정도 되었을 때 지표 온도가 올라 암석이 녹아 마그마 오션을 형성했고 대기압의 증가는 절정에 올라 대기압이 100기압에 이르렀다. 


철과 니켈 같이 무거운 금속은 가라앉으며 점차 중심쪽으로 낙하하여 금속 핵을 만들었다. 원시 대기, 마그마 오션, 핵으로 분리된 것이다. 지표가 매우 뜨거워서 원시 대기층에는 격렬한 대류 운동이 일어났다. 원시 지구를 덮은 수백 킬로미터의 수증기 구름 상층부에서는 태양의 강한 자외선에 노출된 수증기가 수소와 산소로 분리되고 가벼운 수소는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상층부는 저온의 우주 공간에 연결되므로 수증기와 이산화탄소 성분의 대기는 급랭하고 비가 내렸다. 그러나 비가 지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고온의 마그마 오션 때문에 다시 기화되어 버렸다. 지표가 더 식으면서 300℃에 가까운 고온의 비가 드디어 지표에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 비는 지표 온도를 급속히 낮췄고 더 많은 비가 내리면서 굳어진 마그마 오션 위로 150℃ 정도의 원시 해양이 모든 지표를 덮었다. 


바다가 만들어지고 대기 온도가 100℃ 이하가 되면서 수증기가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가 되었는데 이마저도 바다에 녹아 들어가면서 대기량이 크게 줄었다. 바다에 녹은 이산화탄소가 석회암 형태로 퇴적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압력이 60기압에서 10기압으로 떨어졌다. 이제 지구의 주성분은 질소로 바뀌었고 드디어 지구가 푸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표에는 딱딱한 암석질의 현무암 지각(地殼; earth crust)이 생겼다. 이 현무암은 지하 깊은 곳에서는 다시 녹으며 화강암을 만드는 마그마가 되었다. 다른 행성에는 화강암의 지각이 없다. 화강암은 지구만의 특징이다. 


지각의 암석들은 더 단단해지며 지표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판(板; plate)을 이루었다. 원시 지구가 탄생하고 5~6억년 안에 대기와 해양, 지각, 맨틀, 핵의 지구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아직은 무르지만 지구의 껍질과 속살이 완성된 것이다. 과거의 공기 중 산소 함유량을 아는 방법은 당시의 공기를 조사하는 것이다. 당시의 공기가 보존된 곳이 있다. 수십만년 전의 시기는 남극이나 북극의 얼음에 갇힌 공기를 분석해 알아낸다. 더 오래된 시기는 광물을 이용한다. 광물은 다양한 형태의 결정을 만드는데 작은 공간이 남는 경우가 있고 그 안에는 결정이 만들어질 당시의 공기가 들어 있다. 이 공기 방울은 광물과 함께 수십억년을 지낸다. 이 공기의 양은 아주 적지만 성분을 분석하기에는 충분하다. 


광물 안에 들어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광물이 만들어진 시기를 알 수 있다. 약 25억년 전 바닷속 산소의 양이 급증했고 산소는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금속 원소를 산화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바닷물에는 여러 가지 금속 원소가 녹아 있었는데 철이 가장 많았고 산소와 결합한 철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층층이 쌓여 호상철광층이 되었다. 이 철광층은 현대 인류에게 철을 제공하는 주요 자원이다. 그 형성에 생물의 진화가 관여한 것이다. 딱딱한 지각 아래는 고체이긴 하지만 오랜 세월 조금씩 움직이는 맨틀이 있다. 


내부의 핵에서 전달하는 열에너지는 맨틀을 움직이며 살아 있는 지구를 만든다. 짧은 시간 동안 사는 우리가 그 변화를 직접 볼 수 있는 현상은 화산과 지진 정도이지만 지구는 대륙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구 내부는 화학적 조성과 물리적 상태에 따라 지각, 상부 맨틀, 하부 맨틀, 외핵, 내핵으로 구성되었다. 지각의 판은 중앙 해령(海嶺)에서 태어나 수평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해구(海溝)에서 상부 맨틀 속으로 섭입한다. 이를 슬랩이라 한다. 하부 맨틀로 들어가지 못하는 슬랩은 계속 모여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고 덩어리가 충분히 커지면 하부 맨틀로 진입한다. 


하부 맨틀로 이동한 저온의 상부 맨틀은 계속 아래로 내려가 위에까지 도달한다. 이를 차가운 플룸이라 한다. 상부 맨틀로 이동한 고온의 하부 맨틀 물질은 압력이 낮아져서 녹는 점도 내려가고 부분적으로 녹아 마그마로 변한다. 녹아서 가벼워진 마그마는 계속 올라가는데 이를 뜨거운 플룸이라 한다. 약 27억 년 전 이런 일이 시작되면서 상부와 하부 맨틀 각각에서 일어나던 대류가 맨틀 전체에서 일어나는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플름은 독립적으로 발생하지만 서로 근접하는 여러 개의 플룸이 합쳐져 19억 년 전부터는 거대한 수퍼플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플룸은 주로 맨틀에서 활동하지만 지구 표층의 판구조론과 핵 운동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1980년대 인체 단층촬영의 원리와 비슷한 지진파 토모그래피가 실용화되어 초거대 플룸과 해구에서 가라앉은 슬랩 덩어리가 촬영되면서 플룸의 존재가 밝혀졌다. 판구조론 이후 살아 있는 지구를 이해하는 플룸 구조론이 탄생한 것이다. 지구는 거대한 공간으로 뻗어나가는 자기장을 가진다. 이 자기 장은 지구를 향해 날아와 생명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우주선(宇宙線)을 밴앨런대에 가두어 막아준다. 이 고마운 자기장이 생긴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유력한 이론은 플름 구조론이 설명하는 외핵의 다이나모 이론이다. 


지구 자기장은 가끔 남북이 바뀌었으니 지구 중심에 고정된 거대한 영구 자석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 지구 반지름의 절반을 차지하는 핵은 외핵과 내핵으로 구성된다. 지진파 연구에 따르면 외핵은 횡파가 전달되지 않지만 내핵에서는 전달된다. 횡파는 고체에서만 전달되므로 외핵은 액체이고 내핵은 고체다. 내핵과 외핵의 주성분은 철과 니켈이다. 무거운 철과 니켈로 이루어진 핵은 맨틀보다 밀도가 커서 핵과 맨틀 사이에는 물질의 교환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플룸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외핵의 경계에 도달한 낮은 온도의 슬랩이 높은 온도의 외핵에 도달하면 외핵 일부가 냉각된다. 차가워진 곳은 밀도가 높아져서 더 아래로 내려가고 이에 밀려난 내부의 뜨거운 곳은 위로 올라간다. 


다이나모 이론은 이 대류 운동이 플룸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액체 상태인 외핵에서 이러한 교란이 일어나면 외핵에는 격렬한 흐름이 생길 것이다. 이 흐름에 이온화된 원자들이 있다면 커다란 전류를 일으킬 것이고 그 전류가 지구의 자기장을 만든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지구 자기장 기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약 35억 년 전에 생긴 자기장은 강도가 매우 낮았지만 약 27억 년 전 플룸이 생긴 이후 급속도로 강해져 현재의 값과 가까워졌다. 지구가 식어가면서 고체 상태의 지각이 만들어졌지만 초기에는 육지가 없었다. 지구 내부의 용암이 약한 지각을 뚫고 위로 올라와 다른 곳보다 높은 곳을 만들면서 육지와 대륙이 나타났다. 


대륙이 천천히 이동한다는 대륙이동설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독일의 알프레트 베개너였다. 그는 여러 대륙에 분포하는 양치식물의 화석, 남북 대륙에서 발견된 석탄, 인도와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아에서 발견된 진화에 의한 침식 지형,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해안의 일치와 같은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1915년에 출간한 ’대륙과 해양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대륙이 이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륙의 이동을 포함한 지각의 지질학적 현상을 10여 개의 판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판구조론이다. 판구조론은 지질학 연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이론은 화산, 대양 중심의 중앙 해령, 심해 해구와 같은 지형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실마리를 제공했다. 거대한 대륙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대륙의 이동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 지진과 화산, 대양, 해저 지반의 변화, 암석에 기록된 지자기의 방향 분포, 대륙간 거리의 미세한 변화 등을 관측하면 답을 알 수 있다. 맨틀의 주성분은 암석인데 상부 맨틀 맨 위쪽의 얇은 층은 지각과 온도도 비슷하고 매우 단단하다. 이 얇은 층과 지각을 합쳐 암석권이라 하고 그 아래 하부 맨틀까지는 부드러운 연약권이라 한다. 


맨틀은 기본적으로 지진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체지만 연약권은 긴 시간에 걸쳐 대류가 일어나는 유체의 성질도 있다. 연약권에서는 높은 온도의 물질은 위로 올라가고 낮은 온도의 물질은 아래로 내려가는 대류가 서서히 일어난다. 상하로 움직이는 대류는 수평의 움직임도 수반하는데 이 수평 운동이 암석권을 옆으로 밀어 지각의 판을 움직인다. 판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면 판이 멀어지는 곳도 있고 가까워지는 곳도 있고 옆으로 밀리는 것도 생긴다. 이러한 판의 경계에서는 다양한 지질 현상이 일어난다. 암석권의 아래에 있는 연약권의 수평 방향 움직임이 암석권을 움직이는 것은 확실하지만 큰 규모에서 어떤 작용이 있는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플룸 구조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핵으로 섭입한 슬랩이 하부 맨틀로 하강하는 차가운 플룸은 주변의 다른 플룸과 결합하면서 하부 맨틀 전체에 몇 개의 커다란 하강류를 만들어낸다. 이런 거대한 하강류에는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힘이 생기고 그 상부에 있던 맨틀은 한 장소로 모이게 된다. 현재 지구에는 세 개의 수퍼 플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뜨거운 수퍼 플룸은 남태평양과 아프리카의 아래에 있고 차가운 수퍼 플룸은 아시아 아래에 있다. 뜨거운 수퍼 플룸은 주변 일대에 마그마를 공급한다. 남태평양 아래의 뜨거운 수퍼 플룸은 거대한 태평양판을 서쪽으로 밀고 화산섬으로 연결된 하와이 열도 생성에도 관계한다. 


아프리카 아래의 뜨거운 수퍼 플룸은 동아프리카 열곡대(裂谷帶)라는 거대한 계곡을 만들며 장래에 아프리카의 동쪽을 대륙에서 떼어낼 것이다. 아시아 아래의 차가운 수퍼 플룸은 주변 대륙을 끌어당기며 4~5억년 이내에 지구의 모든 대륙을 끌어와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 내부의 수퍼 플룸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구 표면을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해석된다. 화석 연구의 권위자였던 프랑스의 박물학자 조르주 퀴비에는 지질층별로 다른 화석 구조를 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물이 멸종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지층별로 다른 생물들이 있는 이유는 커다란 천변지이(天變地異)에 따른 결과라는 격변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퇴적암층이 형성된다는 사실과 함께 방사성 동위 원소의 사용으로 지층과 화석의 연대 측정이 가능해지면서 화석에 대한 다른 해석이 제기되었다. 최근 지층의 생물들이 이전 지층의 생물들보다 현존하는 생물들과 더 비슷한 점, 화석들의 변화 정도, 비슷한 종류의 생물들이 비교적 일정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점 등을 포함한 많은 관찰결과가 격변보다는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주장을 더 뒷받침한다. 


책 말미(末尾)의 표현을 음미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의미있게 여겨진다. “질적으로 다양한 정보들 사이의 정합성과 논쟁점을 찾아내고 신뢰할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판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의미로 이해된 과학 리터러시가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것이다.” 본문을 읽으며,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지질공원 해설사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은 물론 발전된 덕목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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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지 않아도 괜찮아 지구과학 물화생지 문해력 기르기 1
노수연.오현경.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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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海洋), 대기(大氣), 지질(地質) 학자가 함께 쓴 책이다. 과학지식의 예술화를 위해서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예술가의 시선으로 은유하는 과학적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말이 공감을 자아낸다. 내가 읽은 여러 지구과학책들 가운데 가장 실제적이고 유용한 책으로 추천한다. 해양, 대기, 지질, 천문으로 이루어진 지구과학 분야 중 해양, 대기, 지질을 다룬 책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책머리에란 부분에 저자(지질학자)의 지질 공부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가 나온다. 제목인 외우지 않아도 괜찮아 지구과학은 그런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게 만든 지구과학책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복잡한 화학식과 난해한 결정구조란 말은 광물을 공부하려면 알아야 하는 화학의 위상을 알게 하는 말이다. 화학이란 말은 바다의 염분이 오랜 시간 다양한 지질학적, 화학적 과정을 통해 축적되어 왔다는 말에도 나온다. 생지화학 과정이란 말은 생태계에서 생물이나 지질 또는 화학의 상호작용을 통해 화학원소가 순환하는 것을 말한다. 염분(鹽分)편에서 우리는 바닷물 속 염분이 물 분자 간 결합을 방해해 바닷물의 어는 점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바닷속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의 흐름인 해류(海流)는 표층순환과 심층순환을 만들어낸다. 표층순환은 풍성(風成)순환이자 수평방향의 순환이고, 심층(深層)순환은 열염(熱鹽)순환이자 수직방향의 순환이다. 바람<풍; 風>과 소금<염; 鹽>과 관계되는 것이다.


심층 순환은 초당 수 센티미터의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순환으로 한 바퀴를 순환하는 데 1000년이 걸린다. 해류는 단순한 바다의 흐름이 아니라 지구의 기후, 해양생태계, 나아가 인간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흥미로운 것은 해양심층수다. 저자의 결론에 의하면 해양심층수와 과학자들이 심층수라고 부르는 해수가 동일한 바닷물은 아니다. 본문에 흥미로운 표현이 있다. anthropogenic CO₂란 표현이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사용으로 방출된 이산화탄소를 의미한다. 인류기원 탄소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탄소는 대기, 해양, 육상, 생물 사이를 순환하며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뿐 아니라 생태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해양은 암석 다음으로 큰 탄소 저장 수단이다. 대기보다 약 60배 많은 탄소를 저장해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절하고 수십년에서 수천 년 사이의 시간 규모를 가지고 전 지구 탄소 순환을 조절한다. 태양의 탄소 저장 능력은 기후변화 완화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해양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함으로써 지구의 온도를 조절한다. 해양이 없다면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현재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그 결과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되어 인류에 큰 문제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hiatus라는 단어도 재미 있다. 행동의 중단, 빈 틈을 의미한다. 21세기에 들어서 지구온난화 추세가 멈추거나 분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Global warming hiatus)에서 쓰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는 바다를 오늘날의 시점에서 바라보지만 바다는 오랜 시간 지구의 기후변화를 기록해 온 거대한 타임캡슐이다. proxy란 말도 있다. 대리(代理)를 뜻한다. 과거의 기후변화는 우리가 관측장비로 직접 측정하고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과거의 온도, 강수 등을 추정할 수 있는 프록시를 사용해야 한다. 빙하 퇴적물, 퇴적물, 석순, 나무의 나이테, 암석 등이 프록시 자료로 기능한다. 고기후 연구를 통해 과거의 기후변화를 분석하면 기후 시스템의 자연적 변동성과 인위적 영향력을 구분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철분이 많은 먼지가 있는 시기에 대기의 탄소량이 좋고 기온이 낮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철 시비(施肥)는 해양 표면에 철을 인위적으로 공급해 해양 식물 플랑크톤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방법으로 제안되어왔다. 철은 해양 식물 플랑크톤의 주요 영양소로 일부 해양 지역에서는 철의 부족이 이들의 성장을 제한한다. 한계가 있는 철 시비보다 탄소 포집 저장 기술이 최근 각광받고 있다. 


대기편에서 만날 수 있는 정보는 대기 현상의 장기 자료를 가지고 통계분석을 거처 얻는 특성이 기후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모델의 불완전성, 초기조건의 불확실성, 대기 내부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예보는 완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22년 11호 태풍 힌남노는 나이키의 스우시(swoosh) 로고를 연상하게 하는 급격한 방향 전환(전향)을 보인 진로 외에도 강도 또한 급격한 강화 및 약화를 보여준 태풍이었다. 태풍은 열대 저기압(tropical cyclone)의 한 종류다. 온실 기체는 미움의 대상이다. 폭염, 가뭄, 폭우, 산불 등의 피해를 입으면 그 원인을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로 돌린다. 하지만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테인은 우주로 빠져나가는 지구 복사에너지를 흡수해서 다시 지표로 방출해 생명체가 살기 좋은 기온으로 유지해주는 고마운 존재다.(203, 204 페이지)


화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이긴 하지만 대기의 밀도가 지구의 1퍼센트에 지나지 않아 온실효과가 매우 적다. 이로 인해 평균기온은 영하 63도이며 일교차도 아주 크다. 대표적인 온실 기체인 이산화탄소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대기중 배출량이 늘어났지만 그 자체로는 대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다. 수증기에 의한 온실효과가 훨씬 강력하다. 여름철 열대야는 낮에 상승한 기온이 밤이 되면서 복사냉각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대기 중의 수증기가 온실효과를 일으켜 기온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에 의한 영향과 자연 변동성에 의한 영향이 어우러져 있으며 서로 비선형적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둘의 영향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지구온난화는 공간적으로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해양보다 육지에서, 위도별로는 적도보다 극에서 더 강하게 일어난다. climateflation(기후플레이션; 기후 변화로 인한 물가상승)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물가 회의에 기상청장이 처음으로 참석했다고 한다. 


지질편에서는 흙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흙은 암석이 풍화되어 만들어진다. 풍화에는 물리적 풍화와 화학적 풍화가 있다. 토양은 주로 화학적 풍화를 받는다. 토양 입자는 물리적으로 깨지기에 너무 작기 때문이다. 화학적 풍화를 받아 토양이 만들어지는 것을 토양 생성작용이라 한다. 배수(排水; 물빠짐)가 불량한 습지 같은 습윤지역에서는 미생물에 의한 유기물 분해 속도가 매우 느리다. 유기물 분해에는 산소가 필수적이다.(251 페이지) 우리나라는 인셉티솔(Inceptisols)과 엔티솔(Entisols)이 약 80%를 차지한다. 인셉티솔은 토양 발달이 어느 정도는 진행되었지만 특징적인 토양층이 나타나지 않는다. 


엔티솔 역시 토양층이 거의 발달되지 않아 발달이 불량한 표층과 토양 모재만이 나타나는 토양이다. 이렇게 인셉티솔과 엔티솔이 우세하게 나타나는 것은 우리나라의 토양이 지속적인 침식과 퇴적 등 지표 환경의 변화가 심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토양은 토양 내에 영양분이 부족하고 척박하다.(대한민국 국가지도집 참고) 지금까지 조사된 광물은 5000여종이다. 암석을 이루는 주요 조암광물은 8종이다. 감람석, 휘석, 각섬석, 흑운모, 백운모, 사장석, 정장석, 석영 등이다. 광물들은 각기 다른 저마다의 용융점을 갖는다. 순서에 맞춰 결정으로 정출(晶出)된다는 의미다. 이를 분별정출이라 한다. 


알칼리 장석은 포타슘(칼륨)과 소듐(나트륨)이 풍부한 장석을 말한다. 알칼리 장석 중 정장석(正長石; orthoclase; K 장석)은 포타슘이 우세한 경우다. 사장석(斜長石; plagioclase)은 소듐과 칼슘이 풍부한 경우다. 조장석(曹長石; albite)은 소듐 비율이 큰 경우를 말한다. 회장석(灰長石; anorthite)은 칼슘 비중이 큰 경우다. 보웬의 반응계열은 연속반응계열과 불연속반응계열로 나뉜다. 연속반응계열은 광물의 결정구조가 유지되는 경우로 주요 성분의 비율이 변할뿐 정출되는 광물 자체는 사장석으로 일정하다. 가령 냉각 초기엔 칼슘 성분이 풍부한 Ca 사장석을 정출하다 점차 마그마 내 칼슘이 고갈되며 소듐 성분이 풍부한 Na 사장석이 정출된다. 


마그마는 지각 하부나 맨틀 상부가 녹아 만들어진 것이다. 불연속 계열은 냉각이 진행될수록 광물의 성분뿐 아니라 결정구조까지 변화한다. 성분뿐 아니라 결정구조까지 변한다는 말은 광물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대체로 금속원소가 비금속원소보다 용융점이 높기 때문에 마그마 냉각 초기에는 마그네슘과 철 등 금속원소가 풍부한 고철질 광물이 정출된다. 감람석, 휘석, 각섬석, 흑운모가 고철질 광물이며 금속원소 특성상 어두운 색을 띤다. 냉각 초기 고철질 광물 중에서도 가장 먼저 마그마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철과 마그네슘이 풍부한 감람석이다. 냉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철과 마그네슘에 이은 알루미늄과 규소, 산소가 차례로 용융점을 맞는다. 그리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마그마는 다른 형태의 광물인 휘석, 각섬석, 흑운모를 정출하기 시작한다.


휘석보다 각섬석이, 각섬석보다 흑운모가 금속원소 함량이 낮다. 냉각 후기 철과 마그네슘을 모두 소진한 저온의 마그마는 비금속원소인 규소와 산소 함량이 높은 광물들을 정출한다. 산소와 규소로 이루어진 분자인 이산화규소가 풍부한 광물을 규장질 광물이라 한다. 이산화규소 덩어리인 석영, 장석류인 정장석, Na 사장석, 백운모가 해당한다. 규장질 광물은 이산화규소의 특성상 대체로 무색 또는 밝은 색상을 띤다. 이산화규소를 포함하지만 비교적 알루미늄 함량이 많은 정장석이 먼저 정출되고 이후 알루미늄 비중이 줄어들며 백운모가 정출된다. 알루미늄이 모두 소진되면 비로소 순수 이산화규소 결정체인 석영이 만들어진다. 


화산쇄설암이 화산탄을 포함하면 화산각력암, 화산력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화산력 응회암, 화산재로 이루어지면 응회암이라 한다. 화산재는 바다보다 육지에 퇴적될 때 더 천천히 냉각된다.(270 페이지) 화산재 입자들이 서로 융합되어 더욱 치밀한 구조가 된 것을 용결조직(welding texture)이라 한다. 바다에서는 화산재가 빠르게 식어 용결작용이 일어나기 어렵다. 대륙지각은 규소와 산소 함량이 높다. 가볍다는 의미다. 해양지각은 고철질로 이루어졌다. 


광물동정은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광물의 물리적 특징과 편광현미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광학적 특징을 종합하여 한다. 예를 들어 비현정질 조직으로 이루어져 분출암의 특징을 보이면서 편광 현미경 관찰시 조밀한 사장석과 단사 휘석, 감람석 반정과 유리질 석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 해당 암석은 현무암이라 판단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관입암의 특징인 현정질 광물 구조와 다량의 석영 및 장석류 광물이 관찰되는 암석은 화강암이라 판단한다. 지구의 지각은 여러 판의 경계를 중심으로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에너지는 결국 지진이나 화산 폭발, 조산 운동 같은 지각변동을 통해 해소된다. 즉 수많은 단층과 습곡, 화산이나 산맥은 지구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흔적이다. 


지질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과학지식의 예술화를 위에서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예술가의 시선으로 은유하는 과학적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변성은 고체 상태에서의 암상 변화를 뜻한다. 고온, 고압 환경에서 다시 마그마로 녹아 재결정될 경우 암석은 변성암이 아닌 화성암이 된다. 변성은 지표 풍화작용에 의해 암석이 점차 유약해지는 변질과 확연히 다르다. 변성암은 암석을 둘러싼 물리적 조건이 크게 변화하여 기존 광물 성분과 조성, 구조 등이 명확히 달라진 암석이다. 변성 작용을 받은 암석은 직관적으로 파동과 유사한 모습을 띤다. 변성 작용은 열에 의해 변성되는 접촉 변성 작용, 압력에 의해 변성되는 동력 변성 작용, 조산대나 섭입대 또는 큰 규모의 퇴적 분지에서 발생하는 광역 변성 작용 등으로 나뉜다.


현무암 같은 고철질의 해양지각이 섭입 초기 낮은 열과 압력을 받아 변성되면 푸른 남섬석을 특징으로 하는 청색 편암이 만들어진다. 이후 맨틀 가까이 섭입이 더 진행되면 암석은 훨씬 높은 열과 압력을 받게 되는데 이때 청색 편암이 에클로자이트로 변성된다. 에클로자이트는 단사 휘석의 일종인 녹색의 옴파사이트에 검붉은 석류석이 알알이 박힌 독특한 외형을 특징으로 한다. 풍화는 암석이 점차 약해지고 부서지는 현상을 말하고, 침식은 풍화와 함께 퇴적물이 다른 장소로 옮겨지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느낀 바는 그간 나는 암석을 화성암인지 퇴적암인지 변성암인지 가리는 데는 열심이었지만 크기별로 나누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입자 크기에 따른 분류는 자명한 명명법이다. 2mm 이상의 역질 퇴적물이 우세한 퇴적암은 역암(礫岩)이라 하고 0.063~2mm 이하의 사질 퇴적물이 우세한 퇴적암이면 사암(砂巖), 0.063mm 이하의 이질 퇴적암이 우세한 퇴적암이면 이암(泥巖)이라 한다. 이질 퇴적물로 이루어졌으며 암석 내 층리 및 박리 구조가 발달한 경우 별도로 셰일이라 한다. 


역암, 이암, 사암 등은 규산질쇄설성 퇴적암을 입자 크기나 구조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석회암 여부를 판단할 때 암석에 붉은 염산을 뿌리곤 한다. 칙 소리를 내며 거품이 일면 석회암일 확률이 높다. 석회암을 이루는 탄산염 퇴적물은 암석이 만들어진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왔다는 특성이 있다. 이는 지표 위 노출된 암석 풍화물이 낮은 지대로 구르고 굴러 이동해 굳어진 규산질쇄설성 퇴적암과 상반된 모습이다. 저자는 다양한 기후모델을 개발해 미래의 기후를 추정하고 그에 근거해 미래에 대비해 공학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러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책이어서 시리즈의 예정편인 생물학, 물리학, 화학도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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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03-14 0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용한 지식들이 많아서 좋아요. 감사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5-03-14 07:39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책이지요..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 -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는 혁명적 환경 철학
에릭 잠파 앤더슨 지음, 김성환 옮김 / 한문화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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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잠파 앤더슨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고 세상의 중심이 되는 존재라는 신념인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인 동시에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지구에 살아가는 동안 모든 존재와 역동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일깨우는 이야기다. 티베트 의학을 공부하고 불교를 수행한 역사학자이자 교육자인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데에는 식물을 사용 대상이 아닌 관계 자체를 위한 고유한 생명체로 바라보게 된 전환이 자리한다. 


저자는 2017년 캘리포니아 토팡가의 티베트 의학 클리닉으로 시작해 2019년 런던으로 이전한 후 신체적, 정신적, 생태적 회복에 전념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한 Shrimala의 창설자이기도 하다. 책 제목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란 초자연적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외면해 온 수많은 존재들을 이르는 말이다. 저자는 모든 생명이 본질적으로 인식 능력이 있고 모든 존재가 자신의 진화론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인식 과정에 참여한다는 사실에는 더 이상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무시하고 착취하는 태도가 오늘날 무수한 사회적, 생태적 위기를 불렀다. 


저자는 인류세란 용어는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권력을 행사한 수천 년의 기간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이 수동적인 사물이나 배경이 아닌 밀접하게 연결된 작용 요인들의 광대한 집합체라는 사실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시기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라 말한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모든 인류가 기후 위기에 같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곧 자연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중심주의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인간 아닌 존재들을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법을 매우 효율적으로 학습한 결과다. 


저자는 동물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 아닌 생명체를 생물학적 기계로 간주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인간중심주의의 뿌리로 규정한다. 인간중심주의의 시작은 그리스였지만 그것을 전 세계로 이어지게 한 세력은 기독교다. 물론 저자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생기는 문제들을 모두 플라톤의 탓으로 돌리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남성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자연의 배경화를 옹호하는 사상들의 뿌리가 대부분 그리스 철학의 이 위대한 거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한다.(111 페이지) 


기독교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로마 지역의 종교 운동인 만큼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발달한 다양한 철학사상을 이어받은 상속자나 다름없다.(117 페이지) 성체성사와 같은 기독교 의례는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에서 영향을 받았을뿐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를 지배했던 신비주의적 제례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게다가 초기 기독교도들은 신플라톤주의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에 깊은 친밀감을 나타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실상 불멸의 창조신 관념에 반대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가톨릭 교회의 권위자들은 말썽이 생길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의 작품들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더욱 확고하게 융합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혼(理性魂) 개념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인간의 존재적 우위는 물론 인간적인 탐색의 과정을 통해 신성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개념 모두를 입증하려 했다. 이 두 전통을 하나로 합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인간 중심주의라는 공통의 기반 덕분이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자신의 확신을 입증하기 위해 개와 다른 동물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인 생체 해부 실험을 벌여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20세기 초가 될 때까지 뉴턴과 다윈주의는 우주의 작용에 신성이 관여한다는 모든 가설을 완전히 몰아냈다.(122 페이지)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다. 관건은 인간중심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위를 점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다고 인간의 번영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36 페이지) 탄소발자국이란 용어는 과학자나 정책입안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석유와 가스 산업에 쏠리는 부정적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브리티시 페트롤륨이란 석유 & 가스 회사가 고용한 홍보 전문 기업이 만든 용어다. 민간 부문 사업자들은 산업 규제의 기미만 보이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며 반발했고 인간이 자연의 제약을 넘어선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위해 지구를 창조했다면 인류의 번영이 지구를 파괴하도록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는 식의 인간중심주의적 신화를 즐겨 인용했다. 


저자는 가장 설득력 있는 과학 이론이라 해도 이야기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이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신을 제품 하나만 보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라는 신화적 세계 속에서 만들어진 경험과 정체성을 고려해 구매하는 것을 보라. 저자는 갈릴레오나 뉴턴, 마리 퀴리 같은 혁신적인 연구자들도 하나같이 과학적인 과정에 냉철하게 몰두하면서도 마술적인 기법과 초자연적인 신념에도 진지한 관심을 보였음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식물의 뿌리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Merlin Sheldrake 참고) 뿌리는 진화론적으로 뒤늦게 추가된 부분이다. 식물이 독자적으로 성장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들은 5000만 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뿌리의 역할을 대신하는 균류에게 의존해 왔다. 마치 실처럼 생긴 이 균사체는 식물군이 땅속으로 수 킬로미터까지 뻗어나가면서 화학 신호와 영양분 치료용 화합물 등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균류가 없었더라면 초기의 식물은 5억 년 전에 절대 물 밖으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균근균은 수천만년 동안 식물의 뿌리 역할을 했고 식물이 스스로 뿌리를 내리는 법을 배운 후에도 계속해서 식물군을 돕는 역할을 도맡아왔다. 오늘날에도 균사체는 식물 공동체 내에 민감한 미생물 군집을 보호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번영을 돕는다. 


하지만 균류가 그저 식물의 보디가드겸 광대역 통신망을 제공하는 역할만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태양빛을 활용해 스스로 영양분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유기체에 의존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유형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균형 잡힌 환경을 유지하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존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균류는 사실 유전학적으로 식물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 특수성 덕에 그들은 생명체계 속에서 그들 자신만의 특별한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균류가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균류는 우리의 내부와 주변부에 두루 퍼진 채 자연환경이 거의 모든 측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인간 아닌 존재들을 무시하는 태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이 주조(鑄造)한 하나의 공동 산물과도 같다.(101 페이지) 신성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143 페이지) 신성의 개념은 우리 발아래에 있는 땅을 향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사용할 수도 있고 우리를 생태학적인 해리(解離) 상태로 몰아가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옥, 악마 등의 개념이 유대 계시 신앙과 조로아스터교의 상호작용으로 뒤늦게 추가된 개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기후 변화의 결과들과 직면하겠지만 그 결과가 균형 잡히거나 균등한 방식으로 배분되지는 않을 것이다.(152 페이지) 


티베트 의학에서는 정신 질환을 보이지 않는 존재들 때문에 시작된 병으로 보기도 한다.(172 페이지) 티베트 의학의 패러다임에 따르면 인류의 건강은 우리 주변 존재들의 건강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 우리는 개인의 몸과 에너지, 마음의 균형뿐 아니라 인간 이외의 존재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내부의 균형까지 함께 유지해야 한다.(174 페이지) 저자는 신화라는 말을 넓게 사용한다. 그에 의하면 신화는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한다. 자연 세계와 인간 이외의 생명체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평범한 바위조차 무한한 경외감의 원천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과학 소설가 어슬러 르 귄은 일반적인 현실주의 소설들과 달리 공상 소설은 인간이 아닌 개체들을 핵심적인 존재로 포용한다고 말했다. 르 귄에 의하면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인간과 대등한 가치를 지닌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은 곧 강박과도 같은 현실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214 페이지) 저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 존 로널드 루엘 톨킨(반지의 제왕의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공상은 인간의 자연스런 활동이다. 이것은 이성을 파괴하거나 모욕하지 않는다. 게다가 공상은 과학적 진실에 대한 인식을 방해하지도 진실에 대한 취향을 무디게 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이성이 더 예리하고 명료할수록 창작할 수 있는 공상의 질 역시 더 나아질 것이다.> 


나는 이를 종교와 과학의 관계로 바꾸어 읽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과학적 이성에 능할수록 종교적 마인드가 더 높아진다고. 저자는 우리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 모두를 자연 자체로 인식하는 세계관을 채택해야 한다고 말한다.(242 페이지)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붓다의 8정도이다. 저자의 글을 통해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다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류의 메시지에 공감할지 모르겠다. 아니 공감은 많은 사람들이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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