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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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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1883)올랭피아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등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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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지구 격동의 이력서, 암석 25 오파비니아 21
도널드 R. 프로세로 지음, 김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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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인 도널도 프로세로가 ‘진화의 산 증인, 화석 25’에 이어 쓴 책이다. 첫 번째 편인 '응회암; 불카누스의 분노 – 베수비오 화산의 분출‘에서 우리는 화산재(volcanic ash)와 부석(浮石; pumice)으로 이루어진 버섯구름(mushroom cloud)을 만드는 폭발형 분출을 (관찰자인) 대(大) 플리니우스의 이름을 따서 플리니형 분출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응회암이란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암석이다. 기원전 4000년경부터 구리가 채굴된 키프로스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구리의 원천은 키프로스 중부의 트로도스산맥의 오피올라이트(ophiolite)였다. 오피올라이트는 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피스(ophis)에서 유래한 단어다. 


대부분의 오피올라이트는 해저 용암에서 시작된다. 용암이 식으면 검은 색의 현무암이 되지만 변성이 일어나면 뱀가죽처럼 매끈하고 윤기 있는 사문암이라는 암석이 된다. 맨 위에는 해양 퇴적물이 있고 그 아래에는 물방울 또는 베개모양을 닮았다 하여 베개용암(pillow lava)이라 불리는 암석이 있다. 베개용암층 아래에는 굳은 용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수직 암벽인 판상 암맥(sheeted dike)이 있다. 이는 지각의 틈새로 상승하여 베개용암을 만들던 마그마가 그 틈새에서 그대로 굳어 수직의 얇은 판 모양의 판상 암맥을 만든 것이다. 베개용암과 판상 암맥의 아래에는 오래전에 식은 마그마 저장소인 층상 반려암(layered gabbro)이 있다. 층상 반려암의 화학적 조성과 구성 광물은 그 위에 놓인 현무암과 같다. 다만 용암으로 분출되지 않고서 마그마 저장소 안에서 천천히 식었기 때문에 현무암에 비해 결정이 훨씬 크다. 마지막으로 많은 오피올라이트 복합체의 바닥에는 감람암(peridotite)이라는 암석층이 있다. 이는 맨틀 상부에서 떨어져 나온 얇은 조각이다. 


오피올라이트 복합체는 판구조론의 등장과 함께 설명되었다. 깊은 해저에서 형성된 암석이 육지에 올라온 것도 판구조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피올라이트는 석면, 니켈, 구리 등의 주요 공급원이다. 오피올라이트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지각 운동 환경에서 형성된다. 하나는 판이 갈라지고 마그마가 상승하여 새로운 암권을 형성하는 해양 산맥, 다른 하나는 해양 암권이 다른 판 아래로 밀려들어 화산 활동을 일으키는 섭입대다. 거의 모든 베개 용암은 현무암 성분이므로 일반적으로 베개 현무암이라 부른다. 


저자는 1977년 우즈홀(Woods Hole) 해양연구소 과학자들이 거의 4800미터 깊이의 심해로 들어갈 수 있는 연구용 소형 잠수정인 앨빈호를 이용해 갈라파고스 제도 인근 중앙해령의 해저를 몇 시간씩 조사한 일을 소개한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블랙스모커라 불리는 굴뚝이었다. 이는 지각 틈새로 스며든 차가운 바닷물이 마그마를 통과하면서 황화물을 풍부하게 함유한 뜨거운 물이 되어 상승할 때 만들어진다. 이 물에는 황철석뿐 아니라 황화구리, 황화아연, 황화납, 망가니즈, 은, 금 등의 광물이 들어 있다. 이 광물들은 원래 지각의 암석에 있던 것으로 지각 틈새로 스며든 초고온의 바닷물에 용해되었다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면서 다시 결정화된 것이다. 열수분출공의 생태계는 세균을 기반으로 하는 화학합성 생태계다. 바닷물 속에 녹은 금속 종류에 따라 열수분출공이 내뿜는 뜨거운 물 가운데 검은 연기를 내뿜는 것은 블랙 스모커, 흰 연기를 내뿜는 것은 화이트 스모커라 한다. 흰색 바륨, 칼슘, 실리콘 퇴적물 등으로 구성된 굴뚝은 화이트 스모커다. 


지구 화산의 대부분은 해저에 있다. 화산 폭발은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하며 무작위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지구의 지각이 지각판이라고 불리는 여러 개의 판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판들은 단단하지만 지구 내부의 더 뜨겁고 부드러운 층 위에 떠 있다. 판들이 움직이면서 서로 벌어지거나, 충돌하거나, 미끄러져 지나간다. 모든 활화산의 60%는 지각판 경계에서 발생한다. '주석석(朱錫石)'편에서 우리는 초고온의 지하수가 주위의 데본기 기반암에 스며들어 암석 속 희귀원소를 모두 긁어모으고 그렇게 형성된 물질이 후에 다시 침전되어 광물이 풍부한 암맥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사 부정합; 태초의 흔적과 지질학적 시간의 광대함'편에서 제임스 허턴(1726-1797)을 만난다. 그가 의학 공부를 한 것은 당시에는 화학이나 다른 자연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이 의학뿐이었기 때문이다. 허턴은 성경 속 노아의 홍수 같은 초자연적인 천재지변은 과학적 설명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현상은 과학 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증거를 이용한 실험이나 조사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침식이라는 파괴 과정의 중요성을 깨달은 학자는 많았지만 경관의 창조나 융기에 대해서는 그만큼 설득력 있는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그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에 대해 허턴이 가장 큰 통찰을 얻은 것은 오늘날 경사부정합이라 불리는 노두를 관찰하고서였다. 그에게 경사부정합은 지구의 나이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증거였다. 허턴은 퇴적암이 한때 모래와 진흙이었다고 주장했다. 육지에 있던 모래와 진흙이 강물을 따라 바다로 흘러간 다음 바다 밑바닥에 퇴적되어 단단한 암석으로 굳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암석이 굳는 과정이 열과 압력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했는데 현재 지질학에서는 물속에 녹아 있던 물질이 침전되면서 암석으로 교결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66 페이지) 열과 압력은 암석이 녹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침식으로 인한 기록의 단절을 의미하는 부정합이다. 부정합이 있으면 그간의 시간을 나타내는 암석이 없다. 암석은 기록보다 공백이 더 많다. 상당히 많은 열을 공급하는 방사능은 지구 내부에서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열원이다. 모든 암석이 물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수성론은 화학이 발전하지 못했던 사정, 여행이 제한적이었던 사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변성암은 엄청난 열과 압력에 의해 변형되는 암석이다. 허턴은 화학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던 조지프 블랙과 함께 열이 암석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를 연구했다. 블랙은 숨은열의 존재와 가열된 물질에서 압력의 중요성을 알아냈다. 이를테면 높은 압력을 받는 물은 일반적인 조건에서라면 기화될 정도의 열을 가해도 액체 상태를 유지한다. 


제임스 허턴의 제자 찰스 라이엘(1797- 1825)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률을 공부했지만 곧 따분함을 느끼고 취미로 새로운 분야인 지질학 연구에 심취했다. 그는 동일과정설이 타당함을 압도적으로 증명했다. 동일과정설은 제임스 허턴에 의해 제창되었고 찰스 라이엘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저자는 수성론자들이 백기를 들고 지질학이 현대과학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질학이 현대과학이 된 것은 대륙이동설과 판구조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싹튼 후 최초의 대규모 탄광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탄광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일을 했다. 몸집이 작아 유리한 면이 있었다. 광부는 폭발, 매몰, 화재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 외에 진폐증으로 일찍 죽었다.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었다. 노동 시간 단축, 어린이 노동 금지 등이 노동조합의 힘겨운 노력에 의해 법제화되었다. 석탄 탐사는 산업혁명에서 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했을뿐 아니라 지질학 연구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나무가 죽어서 물에 가라앉으면 흰개미와 다른 여러 분해자들이 빠르게 분해하지만 석탄기는 나무를 소화할 수 있는 곤충이 진화하기 전이었다. 그 때문에 엄청난 양의 식물이 썩어 없어지지 않은 채 석탄 늪에 고인 산성 진흙 아래로 가라앉아서 영원히 지각 속에 파묻혔다. 지각에 너무 많은 석탄이 축적되다 보니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에서 끌어들인 수 톤의 이산화탄소 속 탄소가 그대로 갇히게 되었다. 방사성 붕괴는 붕괴되는 모(母) 원자가 처음 결정 속에 갇힌 시간부터 측정되기에 기본적으로 마그마가 냉각되어 만들어지는 화성암에서 측정된다. 이런 화성암에 속하는 암석으로는 용암류, 화산재 퇴적층, 마그마의 관입으로 형성된 암맥 같은 것이 있다. 


지질연대학자(방사성 연대 측정 전문가)는 되도록 가장 신선한 결정을 얻으려 한다. 모 원자나 딸 원자가 빠져나가거나 외부로부터 오염되면 붕괴 속도가 왜곡되기 때문이다. 1억±500만년이란 의미는 9500만년~1억 500만년 사이에 있을 확률이 95퍼센트라는 의미다. 방사능을 갖는 우라늄 238은 자연적으로 붕괴되어 납 207이 되고, 우라늄 235는 자연적으로 붕괴되어 납 206이 되고, 포타슘 40은 자연적으로 붕괴되어 아르곤 40이 된다. 붕괴 속도는 아주 느리다. 


아서 홈스(1890-1965)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질연대학의 아버지 또는 지질연대표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홈스는 베개너의 대륙이동설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홈스는 바다 밑바닥이 멀어져야 한다고 가정했다. 이는 해저 확장의 증거가 발견된 1950년대 후반보다 수십 년 앞서는 발상이었다. 아서 홈스는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1942년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40년 런던지질학회의 머치슨 메달을 받았고, 1946년 울러스턴 메달을 받았고, 1946년 미국 지질학회의 최고 영예인 펜로즈 메달을 받았고, 사망 1년전인 1964년 지질학의 노벨상이라는 베틀슨상(Vetlesen Prize)을 받았다. 


2020년 수상자인 지구 물리학자 애니 카제나브(Anny Cazenave; 1944 - ), 2023년 수상자인 물리학자 데이비드 콜스테트(David Kohlstedt; 1943 - ) 등 지질학회의 노벨상이라는 베틀슨상(Vetlesen Prize) 수상자가 물리와 관련된 인물이다. 2008년 월터 알바레즈(Walter Alvarez; 1940 - ;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의 저자)는 내가 책을 읽어 아는 유일한 인물이다. 1964년 아서 홈즈(Arthur Holmes; 1890 – 1965), 1978년 지구물리학자 투조 윌슨(John Tuzo Wilson; 1908 – 1993)도 아는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1966년 수상자인 얀 핸드릭 오르트(Jan Hendrik Oort; 1900 – 1992)는 천문학자이고, 1973년 수상자인 윌리엄 파울러(William Alfred Fowler; 1911 – 1995)는 천체물리학자이다. 파울러는 1983년 수브라흐마니안 찬드라세카르(Subrahmanyan Chandrasekhar; 1910 – 1995)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9장에서는 콘드라이트 운석을 만난다. 이 운석은 태양계 형성 초기에 만들어져서 지구보다 더 오래된 특별한 운석이다. 이 운석을 이루는 물질은 태양계 성운이라고도 불리는 초기의 태양 먼지 구름이다. 별개의 핵과 맨틀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커지지 못한 작은 행성의 잔해다. 초기 태양계의 진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단서다. 멕시코 치와와의 아옌데 마을에 떨어진 운석은 탄소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탄소질 콘드라이트로 전체의 5퍼센트 미만에 해당하는 귀한 운석이다. 탄소 함량이 높은 것은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서 탄소나 물 성분이 제거될 정도로 충분한 열을 받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구 자기장이 생기기 전 다른 천체들이 엄청난 방사선을 맞고 있을 때 지구에서 아주 먼 곳에서 형성되었다.(아옌데 콘드라이트 운석에서 방사선에 손상된 작은 검은색 반점들이 발견된 것이다.) 


아옌데 운석에서 방사성 원소인 알루미늄 26이 붕괴되어 만들어지는 희귀 동위원소인 마그네슘 26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오랜 의문이 풀렸다. 초기 지구에 풍부했던 알루미늄 26이 붕괴하면서 지구를 몇 번이나 녹일 수 있는 열이 발생했음을 알게 한 것이다. 1969년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의 머치슨 근처에 떨어진 운석에서는 여러 종의 아미노산이 발견되었다. 아미노산은 지구의 따뜻한 작은 연못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았기에 충격을 주었다. 철 - 니켈 운석은 아주 희귀하고 특별한 운석이다. 알려진 운석의 약 6%만이 이런 조성을 이루며 석질 운석인 콘드라이트가 훨씬 더 풍부하다. 철 - 니켈 운석을 하나 집어서 들어보면 깜짝 놀랄 정도의 묵직함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철 - 니켈 운석은 콘드라이트 같은 석질 운석보다 훨씬 더 치밀하기 때문에 철 - 니켈 운석의 질량은 알려진 모든 운석 질량의 90%를 차지한다. 이 운석은 문외한의 눈에도 독특하게 보이고 지표면에서 일어나는 풍화를 더 잘 견디며 대기를 통과하는 동안의 마찰로 인한 용융이나 증발도 더 잘 견디기 때문에 운석 수집품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띈다. 특정 소행성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철 - 니켈 운석과 조성이 같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런 지구화학적 증거를 통해서 우리는 철 - 니켈 운석이 원래는 원시 행성의 핵을 이루던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이 운석에는 마그네슘의 동위원소인 마그네슘 26이 모여 있다. 이 동위 원소는 원시 행성을 용융시키는 방사성 열원이었다. 


밀도가 더 높은 물질은 핵에 가라앉고 행성의 분화가 일어나는 동안 맨틀에서 분리되었다. 이 정보는 지구의 핵에 대한 물리학적 증거와 일치한다. 우리는 지진학을 통해서 핵의 크기를 알아냈다. 지진학 자료의 중력 측정을 추가하면 핵의 밀도가 물보다 10에서 12배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의 밀도는 엄청난 압력을 받는 아주 치밀한 금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지구가 자기장을 가진다는 건 핵이 철이나 니켈 같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훌륭한 전도체임을 암시한다. 이런 운석들 덕분에 우리는 본래 태양계의 물질들 중에서 이 모든 특성(높은 밀도, 전기 전도성)을 공통적으로 지닌 물질이 철과 니켈뿐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구 역시 철 – 니켈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합리적 설명이다. 


상업적으로는 다이아몬드가 더 귀중하지만 과학적으로 훨씬 더 많은 정보가 담긴 것은 지르콘이다. 지르콘은 실험실에서뿐 아니라 자연에서도 오래간다. 아주 심하게 풍화되어 전체의 약 99퍼센트가 석영인 모래에도 나머지 1퍼센트 중에는 여전히 소량의 지르콘이 있을 것이다. 태양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질인 운석과 월석은 연대가 최소 45억 5000만 년인데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은 43억 2100만 년 이상 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자. 왜 이런 차이가 날까? 해답은 판구조 운동, 물과 바람에 의해 일어나는 지구 표면의 극심한 풍화에서 찾을 수 있다. 지구 표면은 녹아서 맨틀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판의 운동에 의해 끊임없이 재활용되고 재구성된다. 이와 달리 달 표면은 판구조운동이 없이 죽은 듯 있기 때문에 일부 원석의 연대는 처음 형성된 시기와 같은 45억 년이다.


지르콘 결정 내 산소동위원소 분석으로 초기 지구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산소 동위원소 비율을 토대로 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지르콘이 형성될 때 뜨거운 용융상태의 암석이 담수와 바닷물이 섞인 물과 상호작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40억년 전 만들어진 지르콘 결정에 비정상적으로 가벼운 산소 동위원소가 존재하는데 이런 가벼운 산소 동위원소는 지하 수㎞ 아래에서 뜨거운 담수가 암수를 변화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산소동위원소간의 비율 변화가 물 순환을 증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저자는 초기 지구에 충돌한 혜성들이 녹아서 대양이 형성되었다는 생각은 버리자고 말하며 지구는 처음부터 물을 품은 채 탄생했고 냉각되어 응축될 때에는 이미 존재했을 것이라 덧붙인다. 최초의 바다가 만들어지기까지 필요한 것은 표면 온도가 섭씨 100도 아래로 떨어지는 것뿐이었다. 13장 ‘스트로마톨라이트; 시아노 박테리아와 가장 오래된 생명체’에서 저자는 지구는 생명 역사의 80퍼센트 이상에 걸쳐 더껑이(scum)의 행성이었다고 말한다. 더껑이는 액체 표면에 낀 더러운 찌꺼기나 막을 의미한다. 


대형 광상의 대부분은 호상철광층(縞狀鐵鑛層; banded iron formation; BIF)이라고 알려진 퇴적층에서 나온다. 이런 암석에는 붉은 띠 모양의 철이 들어 있다. 물에 녹아 있는 철과 이산화규소로 이루어진 퇴적층은 어떻게 모래나 진흙과 섞이지 않고 바다 밑바닥에 쌓이게 되었을까? 오늘날에는 철이 바닷물에 용해될 수 없다. 철은 빠르게 산화되어 다양한 형태의 산화철(녹)을 형성하고 다른 광물에 달라붙거나 바닥에 가라앉는다. 엄청난 양의 철이 바닷속으로 운반되어 농축되기 위해서는 산소 함량이 매우 적어 철에 녹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아주 오래전 철광층이 퇴적된 바닷속에는 산소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지질학자는 대기 중에도 산소 농도가 매우 낮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BIF를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이 최근 알아낸 바에 따르면 가장 거대한 철 퇴적층 중 일부는 엄청난 규모의 현무암 분출로 거대 화성암 지대(Large Igneous Province; LIP)가 형성되었을 때에 나타났다. 26억년전~24억년전에 가장 규모가 큰 BIF들이 형성되었다. BIF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GIF(granular iron formation)라는 알갱이 형태의 철 퇴적층은 여전히 형성되고 있었다. 이들은 산소대폭발로 7억 5000만년~5억 8000만년전의 눈덩이 지구 기간에 나타난 몇몇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사라졌다. 물론 산소 농도는 오늘날의 농도인 21퍼센트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다만 대양에 녹아 있는 철이 녹슬기에는 충분했다. 


산소 농도가 낮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BIF는 대양의 산소 농도가 낮아서 철이 녹으로 석출되지 않고 바닷물에 녹은 상태로 존재할 때에만 형성될 수 있다. 산소 농도가 아주 낮은 곳에서 형성되는 황화철(황철석; 가짜 금이라고 불리는)이 발견된 것이 증명한다. 황철석이 분해되면 철은 빠져나오고 황은 황산염으로 산화되어 석고 같은 광물을 만든다. 어느 정도 규모가 큰 석고 퇴적층은 연대가 18역년 이상인 경우가 드물고 그 시기 이후에 황철석 자갈이나 모래 알갱이가 없다. 


오늘날 해저에서 분출하는 모든 용암은 현무암질 용암이다.(201 페이지) 석영은 화학적으로 활성이 없고 장석과 같은 쪼개짐도 없다. 기반암이 침식되면서 떨어져 나오는 석영 알갱이는 강물이나 시냇물에 휩쓸려 내려가면서 다른 단단한 알갱이에 부딪히거나 시달려도 끄덕없고 물에 용해되지도 않는다. 운반되어온 모래들은 재활용된다. 퇴적 분지에 파묻히고 사암으로 굳어진 뒤에 다시 융기되었다가 산이 침식되면서 다시 한 번 퇴적층을 형성한다. 이 과정이 반복될 때마다 사암 속에는 석영이 점점 더 풍부해지고 불안정한 모래 알갱이는 거의 다 사라진다.(202 페이지) 강물에 운반되어 마침내 저지대의 범람평야에 닿거나 바다로 들어가는 모래에는 대부분 석영이 풍부하며 다른 광물의 양은 아주 적다. 


점이층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모래와 진흙이 섞인 흙탕물이 가라앉았다는 의미다. 가장 큰 입자는 빨리 가라앉고 입자가 고운 진흙은 아주 천천히 가라앉아 굵은 입자와 가는 입자가 분리되는 것이다.(203 페이지) 저자는 지질학 연구 경력의 대부분을 사막과 황무지 등에서 보냈다고 한다. 지층이 그대로 드러난 곳이 화석을 찾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211 페이지)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지질학을 하는 것은 축복이자 도전이라 말한다. 좋은 점은 대륙 대부분이 사막이나 덤불숲이어서 암석이 그대로 드러난 노두가 많다는 점이다. 나쁜 점은 대단히 큰 대륙지각의 안정 지괴여서 퇴적층이 매우 얇고 불연속적이라는 점이다. 


16장 ‘다이어믹타이트; 열대의 빙하와 눈덩이 지구‘에서는 알베도 피드백 고리라는 말이 나온다. 눈덩이 상태의 지구가 녹기 시작한 것은 화산으로 설명이 제시되었다. 지구는 꽁꽁 얼어붙은 우주의 다른 행성들과 달리 활발한 구조 활동을 하는 지각판으로 이루어져서 수많은 화산이 활동하는 곳이다. 화산이 폭발하면 다량의 기체가 방출된다. 이산화탄소, 수증기, 메테인, 이산화황 같은 온실 기체가 특히 많이 나온다. 조 커슈빙크가 만든 눈덩이 지구라는 표현은 인상적이고 기억하기도 쉽다. 저자는 커슈빙크가 일주일만에 떠올린 생각은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에 걸쳐 하는 생각들보다 더 대단하다고 말한다. 


조 커슈빙크는 '지구의 삶과 죽음'을 쓴 피터 워드와 함께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쓴 인물이다. 커슈빙크는 만일 지구가 완전히 얼어 있었다면 호상 철광층이 생겼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얼어붙어서 움직임을 멈춘 대양은 산소가 줄어들고 탄산염이 포화 상태까지 녹으면서 산성도가 아주 높아질 것이다. 대양은 강이 완전히 얼어붙었기에 흘러들어오는 퇴적물이 없기 때문에 황산염 유입이 차단되어 저산소, 저황산염 상태인 산성 바다에 철이 풍부하게 녹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37억년~17억년 전 사이에 그랬던 것처럼 철이 해저에 쌓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라진 바다가 그 자리에 다시 생긴다는 발상은 그런 생각을 처음 떠올린 투조 윌슨의 이름을 따서 윌슨 주기라 부른다. 외래 암층(exotic terrane)은 다른 곳에서 유래한 것이 확실한 지각 물질로 이루어진 지괴(地塊)를 말한다. 거대한 지각 덩어리들이 지난 2억 5천만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브리티시컬럼비아까지 태평양을 건너왔다는 이야기를 지질학자들과 고생물학자들은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증거가 확실하다. 화석 증거뿐 아니라 판구조 운동의 증거까지도 알래스카, 브리티시컬럼비아, 북아메리카의 태평양 연안 대부분이 주요 단층선을 따라 지괴들이 들러붙어 형성되었음을 뒷받침해준다.(243 페이지) 마침내 이 지괴들이 정말로 적도 이남에서 왔고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도 확실히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 고지자기 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윌슨에 의하면 대서양 동물상과 태평양 동물상을 분할하는 찰스 둘리틀 월컷(Charles Doolittle Walcott; 1850 – 1927)의 경계선은 지금은 사라진 예전의 대서양에 의해 분리되었던 두 대륙 사이의 봉합선이었다. 오래전에 사라진 이 대양은 때로 원시 대서양이라 불렸으며 지금은 이아페투스해(海)라 불린다.(234 페이지) 대륙이 이동한다는 베게너의 생각은 맞았지만 오류도 있었다. 그는 대륙들이 지구 전체를 돌아다녔다고 주장했다. 지질학자들은 베개너의 생각이 맞다면 대륙이 해양지각 위를 지나갈 때 카펫처럼 우그러진 곳이 아주 넓게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는 해양지각이 다른 대륙 아래의 섭입대로 미끄러져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베개너는 대륙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는 무슨 힘으로 움직이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베개너가 계산한 대륙 이동 속도는 1년에 250센티미터였다. 대륙 이동 속도는 1년에 대략 2.5센티미터다. 유럽 지질학자로서 드물게 아서 홈스가 대륙이동설을 지지했다. 아프리카에서 연구를 진행한 덕이었다. 남반구에서 대륙이동설을 입증하는 사실들이 수집되었는데 당시는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로 가는 원양 정기선이 매우 느리고 비쌌기에 그 지역까지 직접 가서 암석을 보고 온 지질학자는 아주 소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심해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심해는 잠수함전이 중요해짐에 따라 알려지게 되었다. 심해 퇴적물 코어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백악은 일반적으로 점토와 비슷하지만 점토보다 풍화와 붕괴를 잘 견딘다. 백악에는 틈새가 많아 다량의 지하수를 저장할 수 있다. 그래서 건조한 철에는 물을 서서히 방출하는 천연 저수지 역할을 한다. 한때는 진짜 백악이 분필로 쓰였지만 오늘날 분필은 석고 가루를 막대 형태로 압축한 것이다. 진짜 백악은 방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과학에서 우연한 발견이 많음을 지적한다. 단순히 뭔가를 알아보고자 탐구하고 순수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주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월터 앨버레즈의 사례도 세렌디피티에 해당한다. 그는 이탈리아 아펜니노 산맥에서 암석 구조와 지층이 기울어지고 접힌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공룡 멸종은 유카탄 반도에 대한 소행성 직격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가 현재는 데칸 화산 폭발이 원인인 것으로 바뀐 상태다. 분명한 것은 충돌, 폭발, 해수위 하강이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세 사건이 모두 멸종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저자는 자연은 복잡하며 단순한 모형을 거부한다고 말한다. 월터 앨버레즈는 여러 원인의 복합적 작용을 지지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지구 자기장의 뚜렷한 움직임뿐 아니라 오래된 암석의 자성에는 다른 놀라운 특성이 있다. 자기장의 방향이 이따금씩 뒤집히는 것이다. 마리 샤프(1920-2006)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양저 전체의 지도를 완성한 과학자다. 해구(海溝) 가운데 몇몇이 챌린저호라는 범선에 감지되기도 했다. 1950년대까지 해구(海溝)는 미스테리 자체였다. 가장 충격적인 결과 중 하나는 해구 아래의 중력이 극히 낮다는 점이다. 해구 아래의 아주 깊숙한 곳에는 무거운 맨틀 대신 밀도가 작은 지각 물질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고압, 저온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청색 편암(blueschist)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지구과학은 판구조론이 있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많은 부분이 판구조론에 의한 현상임을 알게 된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석유회사들이 퇴적암에만 관심을 둔다는 점이다. 석유는 퇴적암에서 형성되어 퇴적암에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본토 사이에 위치한 메시나 해협(Messina Strait)은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이 3.1km다. 이 해협은 시칠리아를 통과하여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를 오가는 거의 모든 철새의 중요 이동 경로다. 


대부분의 초기 지질학자들은 층을 이루는 모든 암석이 흔히 노아의 홍수라고 하는 대홍수의 작용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암석이 멀리 옮겨지는 작용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자갈층을 완전히 쓸어버리지 않고 어떻게 그런 큰 바위만 골라서 움직이게 했는지와 같은 의문들에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게다가 그 바위들은 표면이 거칠고 모가 나 있다. 지질학자들은 이런 퇴적물이 홍수에 떠밀려 형성되었다고 하여 표이층(drift)이라고 했다. 홍적층(diluvium)은 홍수 퇴적층이란 의미다. 흐르는 물은 갑자기 에너지를 잃더라도 바위, 자갈, 모래, 진흙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퇴적물을 내려놓지 않는다. 알갱이 크기 순서대로 자갈층과 모래층이 먼저 쌓이고 마지막으로 실트와 진흙으로 된 얇은 층이 덮인다. 


빙하 바닥에 끌려가는 암석은 엄청난 얼음 무게에 짓눌린다. 이 때문에 강판의 톱니처럼 자국이 난다. 밀란코비치가 천문 주기와 빙하시대의 원인에 관한 문제를 천문학자나 수학자가 계산할 수 있는 수준에서 다루기는 했지만 지질학에서는 아직 그것을 뒷받침할 명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밀란코비치가 지적한 세 가지 주ㅇ요한 기후 변동 요인은 이심률, 자전축 기울기(변화), 세차운동 등이다. 


육상 기록은 침식으로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1970년대 심해 퇴적층 코어가 분석되면서 해결되었다. 육상의 불완전한 퇴적 기록과 달리 깊은 해저에는 해수면에서부터 거의 일정하게 고운 진흙과 플랑크톤 껍데기의 비가 내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쌓인다. 전 세계 대양에는 200만-300만년에 거친 기후가 거의 연속적으로 기록된 코어가 아주 많다. 과학자들은 특정 온도에 민감한 플랑크톤을 이용해 특정 코어 속 대양의 온도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지질학사를 보면 획기적인 생각들은 대부분 처음에 극심한 반대, 조롱, 비난 등에 노출되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자료가 축적되면서 생각을 바꾸는 경우도 간혹 있다. 마음으로는 인정하지만 자존심, 당시까지의 연구가 아까워서 등의 이유로 인해 침묵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막스  플랑크는 과학은 장례식이 한 번 있을 때마다 발전한다는 말을 했다. 반면 저자가 '화석은 말한다'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마셜 케이는 일생의 연구가 퇴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60대에 들어선 나이에도 판구조론의 관점에서 자신의 연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올만한 지질학의 이론들은 다 나온 것일까? 훌륭한 지질학자들도 제한된 경험, 한계에 봉착한 상상력, 자료 부족 등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한 사례는 참 많다. 내막을 아는 우리는 행복하다. 하지만 상세히, 구체적으로 알고 설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 ’지구 격동의 이력서 암석 25‘를 강력 추전한다. 지구 과학이야말로 종합과학이고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은 책이다. 물론 이해하는 것은 기꺼이 치러야 할 과제이고 앞으로 계속 그래야 한다. 본문에 퍼즐 맞추기, 큰 그림 보기 등의 말이 나온다. 지구과학 공부는 이리저리 퍼즐을 맞추어 자연이라는 큰 그림을 이해하는 수단이다. 이 책 다음에 어떤 지구 과학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어떤 지구과학 글을 써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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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순간의 물리학 -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물리학의 대답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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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과학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일곱 편의 강의를 수록한 책이다. 첫 번째 강의는 상대성이론에 관한 강의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론이다. 저자는 상대성이론은 발표와 동시에 찬사를 받기는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중력 즉 사물을 추락시키는 힘과 서로 논리적으로 충돌한다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상대성이론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부터 전자기장의 매력에 흠뻑 빠져 아버지가 지은 전기 발전소의 회전자를 돌려보면서 중력에도 전력처럼 일정한 범위 즉 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기장과 동일한 중력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장이 공간 속에서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중력장 자체가 공간이라는 천재적인 발상을 했다. 이제 공간도 물질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었다. 공간은 파도처럼 물질을 이루며 휘기도 하고 굴절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는 실체라는 의미다. 태양은 자신의 주변 공간을 굴절시키고 지구는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기울어진 공간 속에서 직선으로 주행하기 때문에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공간이 중력파의 영향으로 바다의 표면처럼 물결을 이루며 이는 쌍성(雙星)에서 관찰될 것이라 예측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이 화려하고 경이로운 세상에서 우주가 폭발하고 공간이 출구도 없는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시간은 한 행성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느려지고 별과 별 사이에 펼쳐진 공간은 바다의 표면처럼 물결 모양을 이루며 흔들린다고 설명한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무리를 이루어 즉 빛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광자(光子)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빛 에너지가 공간 내에 연속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의 특정한 지점들에 위치하고 이동은 하지만 분리되지 않으며 각각 하나의 개체로서 흡수되는 일정한 수의 에너지 양자로 이루어진다는 가설을 염두에 두었다. 이 간단한 설명이 바로 양자이론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플랑크가 양자이론을 낳은 아버지라면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을 기른 아버지라 할 수 있다. 모든 원소는 양자역학 기본 방정식을 따른다. 화학 전체가 이 하나의 방정식에서 나온 것이다.

     

    양자역학에서는 다른 무엇인가에 부딪히지 않는 이상 그 무엇도 확실한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한다. 모든 개체가 어떤 상호작용에서 다른 상호작용으로 넘어가는 양자도약은 대부분 우발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전자는 어디에서 또다시 나타날 것인지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저 여기 또는 저기에서 나타날 가능성만 계산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것과 상호작용을 하는지와 상관없는 객관적인 실체가 실재로 존재한다는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양자물리학 이론들은 물리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면서 한 물리계가 다른 물리계에 어떻게 인지되는지만 설명한다.

     

    저자는 과학은 실험, 측정, 수학, 엄격한 추론이기 이전에 시각적인 것이라 말한다. 공간은 평면이 아닌 곡선이다. 은하들이 흩뿌려진 우주의 조직 자체가 바다의 파도와 비슷한 파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바다에서 배가 지나가면 파도가 요동치듯 블랙홀이 지나가면 우주 공간도 동요한다. 우주의 입자들은 공간을 채우고는 있지만 자갈 같은 물체가 아니라 기본적인 장()에 상응하는 양자(量子). 진짜 빈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기본 입자들은 모두 하루살이 같은 짧은 삶을 불안해하며 계속 만들어지고 파괴된다. 양자역학과 입자이론을 통해 우리는 세상이 불안정하지만 끊임없이 나타나는 물질들이 떼를 지어 있는 곳, 하나가 나타나면 다른 것은 사라지는 일이 꾸준히 반복되는 곳임을 배운다.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끊임없이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몇 종류의 기본 입자들이 진동과 함께 우주 공간에 무리를 지어 나타난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모든 것이 연속적인 곡선 공간임을 말하고 양자역학은 에너지 양자들이 불연속적으로 점프하는 평평한 공간임을 말한다. 두 분야를 통합하려는 이론이 양자중력이론이다. 물리학계에서 두 가지 이론이 완전히 상반됨에도 동시에 대성공을 거둔 예는 처음은 아니다. 뉴턴의 경우 갈릴레오의 포물선과 케플러의 타원을 조합해 만유인력을 찾아냈다. 맥스웰은 전기이론과 자기이론을 조합해 전자기 방정식을 찾아냈다. 아인슈타인은 전자기와 역학 사이의 심각한 모순을 해결하려다 상대성이론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성공적인 이론들 사이의 모순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양자들은 그 자체가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 속에 있지 않다. 공간은 각각의 양자들을 통합하여 만들어진다. 세상은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관계처럼 보인다. 모든 자연의 춤은 이웃해 있는 것들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진행된다. 시간의 흐름은 세상 안에 있고 그 세상 안에서 그리고 양자들 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양자들 간에 발생하는 사건들이 이 세상이고 그 자체가 시간의 원천이다. 물리학자들은 19세기 중반까지 열이 열기라는 유동체의 일종이거나 온기와 냉기 두 가지의 유동체라는 전제를 두고 연구했지만 맥스웰과 볼츠만은 이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 못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최대한 혹은 최소한의 가능성은 부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내일 내가 사는 곳에 비가 올 것인지 맑을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이 8월이라면 적어도 내일 눈이 올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절친했던 미켈레 베소가 죽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미켈레는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이 기이한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처럼 물리학을 믿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것이 고질적으로 집착하는 환상일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말은 시간 속에 존재하고 우리의 언어 구조 자체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거대한 은하와 별들의 바다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현실을 구성하는 무수한 형태의 벽화들 사이에서 우리는 수많은 물결무늬 중 하나일뿐이라 말한다. 우리는 학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해서 얻은 지식들을 바탕으로 우리의 개념 구조를 조금씩 바꾸는 법과 그에 적응하는 법도 익히고 있다. 우리가 만든 세상의 이미지들은 우리 안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공간 속에 살고 있다. 이 이미지들이 우리가 속한 현실 세계를 어느 정도는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 세상을 조금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그 이미지들의 흔적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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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접경지역 기행 5 : 철원 DMZ 접경지역 기행 5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DMZ연구팀 지음 / 경인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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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탄강은 곡창지대 철원의 젖줄 역할을 하는 강이다. 한탄(恨歎)이 아닌 한탄(漢灘)을 쓰는 강()이다. ()을 크다는 의미로 쓰느냐, 은하수로 쓰느냐 하는 논쟁이 있는 듯 하다. 철원은 행정구역상으로 4개 읍, 3개 면으로 이루어진 군()이다. 철원읍, 동송읍, 김화읍, 갈말읍, 근남면, 근동면, 서면 등이다. 동북쪽의 근북면, 원남면, 원동면은 군사분계선과 접한 미수복 지역이어서 행정 기능은 다른 읍면에서 대신한다.


    철원읍에 철원군청이 없다. 그 이유는 1954년 수복 후 군청이 지포리에 설치되었고 지포리와 신철원리가 분할되면서 현재의 갈말읍 신철원리에 군청이 위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강은 북쪽 김화읍의 수리봉에서 발원하여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흐르다가 김화읍 정연리에서 한탄강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2009년 이전까지 남대천이라 불렸다. 우리나라에는 남대천이 많다. 일제가 일왕이 있는 궁궐을 향해 남쪽으로 흐르는 강을 남대천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2009년 김화읍장 이의현 씨의 노력에 힘입어 제 이름을 찾았다


    철원 노동당사 앞에는 자그마한 크기의 소이산이 있다. 이 산에 올라 북쪽을 보면 평강고원이 보인다. 평강고원은 한탄강 용암대지를 만든 용암의 시발점인 오리산이 있는 곳이다. 1000여 미터의 장암산이 아닌 400여 미터의 오리산이 한탄강 용암대지를 만든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오리산 외에 검불랑에서도 용암이 흘러왔다. 오리산 분화구를 통해 나온 용암은 북동쪽으로는 추가령을 넘어 함경남도 안변까지 흘러갔고 서남쪽으로는 임진강 하류인 파주 율곡리까지 흘러갔다. 오리산 용암은 점성이 낮다


    백마고지는 현무암으로 둘러싸인 곳에 솟아 있는 화강암 바위산이다. 직탕폭포는 세로보다 가로가 긴 폭포다. 베개용암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물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직탄(直灘)이 원래 이름이었으나 직탕(直湯)으로 바뀌었다. 송대소(松臺沼)는 적벽(赤壁)으로 유명하다. 고석(孤石)은 화강암을 덮은 현무암이 풍화되어 모습을 드러낸 화강암 바위를 말한다. 고석의 화강암은 약 1억년전인 중생대 백악기의 화강암이다. 고석은 임꺽정 전설로 유명한 곳이다.


    해방 이후 철원을 장악한 북은 1948년 당시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장 김명여를 시켜 한탄교를 건설하도록 했다. 하지만 다리의 북쪽만 완성한 상태에서 한국전쟁으로 건설이 중단되었고 1952년 주한 미군 79 공병대와 국군 62 공병대가 남쪽 교각과 보를 완성하였다. 그래서 다리 중간을 경계로 건축양식이 다르다. 북쪽의 아치는 남쪽보다 기둥이 많고 가늘며 기둥 상부는 반원형 곡선이다. 남쪽 아치는 북쪽보다 기둥이 적고 굵으며 기둥 상부는 둥근 네모 형태를 하고 있다. 이외 남과 북이 함께 만든 다리로 고성 합축교를 들 수 있다. 승일교는 이승만의 승과 김일성의 일이 만난 말이다


    순담계곡은 강 양안이 모두 화강암이다. 순담계곡은 물결이 세고 굴곡이 심하고 물결 변화가 심해 래프팅 장소로 선호된다. 월하리는 1914년 일제 강점기에 월음 마을, 하리 마을을 하나로 하면서 앞자를 따 부른 이름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궁예와 왕건에 얽힌 전설을 더 좋아한다. 과거 왕건이 궁예의 부장으로 있을 때 궁예를 해로, 자신을 달로 낮춰 부르기 위해 월하리라 했다는 것이다


    월하리에서 노동당사를 지나 현재 민통선을 따라 백마고지 쪽으로 더 들어가면 대마리가 나온다. 북을 마주한 최전방이며 최초의 재건촌인 대마리는 남북의 가장 강력한 화기들이 집중된 냉전의 공간이다. 당시 국가는 북의 침략에 대응하면서도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전투력을 갖춘 사람들을 선발하여 6745150명을 15조로 나누어 대마리에 입주하게 하였다. 한 손에 총을, 한 손에 농기구를 들었던 이스라엘의 키부츠 사람들처럼 그들은 북과의 대치 상황 속에서 식량 생산의 일꾼이자 분단국가를 지키는 선두주자로 투입되었다. 땅을 준다는 국가의 약속을 믿고 이곳으로 들어왔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땅은 잡초와 나무가 무성하며 바위와 돌들이 너브러진 데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지뢰가 곳곳에 박히어 있는 전쟁의 땅이었다


    김화읍 생창리도 개척 마을이다. 민간인 통제선 이북 마을을 민북마을이라 한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철원역에서 내금강까지 운행하던 116.6km의 전철로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전기철도다. 1924년 완공되었다. 월정리역에서 동북 방향으로 가면 금강산 전기철도의 28개 역 중 하나인 정연역을 만날 수 있다. 정연역이 있던 정연리는 원래 평강군이었다가 한국전쟁으로 철원에 편입된 마을이다. 정연리 마을 앞에서 한탄강과 화강이 Y자를 이루며 합류한다. 그 합류점은 평강군, 김화군, 철원군이 만나는 교차지점이기도 하다


    전쟁 전까지 구 철원제일교회는 지하 1, 지상 3층 규모의 교회로 교인 수가 500여명에 달하였던 교회다. 1919310일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3.1 만세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1942년 강종근 담임목사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해 구속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다가 순교했다. 노동당사는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해를 꿈꾸며 뮤직 비디오를 촬영한 곳이다. 1946년 완공된 건물로 규모가 참 크다. 한국전쟁 전까지 평강, 김화, 철원의 업무를 담당한 곳이다


    소이산은 작은 산이지만 고려시대부터 봉수대가 설치될 정도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한국전쟁 당시부터 소이산은 미군의 미사일 기지와 레이더 기지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철원평야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2012년 민간인에게 완전히 개방되면서 이 산은 지뢰밭이 지킨 평화의 숲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한국단편소설의 완성자로 불리는 상허 이태준의 고향이 철원이라는 사실은 그의 명성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그의 책 문장강화와 짧은 산문집인 무서록80년 세월을 넘어 지금도 판매되는 스테디셀러다. 전쟁으로 인해 분단된 철원의 지형은 동서로 넓게 뻗은 모양이다. 특히 북동부 DMZ 지역은 험준한 산악지형이어서 철원평야가 펼쳐진 서북부보다 접근성이 떨어진다.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철원의 4개의 전망대 중 가장 동쪽에 있는 승리전망대는 이 지역의 육군 15사단 승리부대의 이름을 딴 전망대다. 군사분계선 155 마일 정중앙에 있다. 2002년 개관했다. 남북이 서로를 관측하기에 가장 쉬운 지형으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승리전망대에서 보이는 북녘땅은 바로 눈앞에 있지만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한 발짝도 들어가 볼 수 없다


    평화전망대 바로 앞에 궁예가 세운 태봉국 도성터가 있다. 남북을 동서로 가르는 군사분계선은 정확히 태봉국 도성터를 반으로 가르고 있다. 백마고지의 원래 이름은 395고지다. 백마고지란 이름은 계속된 포격으로 온통 하얗게 피어오른 포연이 걷힌 뒤 드러난 모습이 수목을 태운 잿더미들이 쌓여 마치 백마가 쓰러져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52106일에서 15일까지 열흘간 중국군 제 38군과 한국군 제9사단이 30만발이 넘는 포탄을 상대에게 쏟아부으며 고지의 주인이 일곱 번이나 바뀌는 혈전을 치른 곳이다. 최종 승자는 한국군 제9사단 백마부대다


    소이산(所伊山)은 눈 덮인 철원평야를 굽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학저수지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인근 협곡에서 물길을 모아 축조한 인공저수지다. 상류에 토고저수지가 완공되면서 저수량과 수계의 규모가 확연히 줄었다. 물이 말라 이제는 저수지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철원 두루미는 199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개체수가 늘었다. 북한을 덮친 대기근 때문이었다. 원래 두루미가 철원보다 자주 찾던 월동지는 철원 북쪽 70km 지점인 북한 안변 평야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린 대기근이 북한을 덮치면서 북한 농민들은 기근을 피하기 위해 논의 낙곡을 필사적으로 주워갔다. 그 결과 겨울에 두루미가 먹을 낙곡이 사라졌고 함께 안변의 겨울을 지키던 240여 마리의 두루미가 사라졌다. 철원이 두루미에게 매력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비무장지대의 습지와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주변 논이 두루미의 적합한 월동지역이 된 것을 들 수 있다


    철원의 동쪽 끝자락 화천과의 경계를 겹겹이 막아서는 대성산, 복주산 사이로 해발 1057미터의 복계산이 있다. 이 산기슭 해발 595 미터 정상에 깎아 세운 듯 우뚝 선 40미터의 층암절벽이 있다. 이곳이 바로 조선 초기 방랑 시인으로 유명한 김시습의 호 매월당과 같은 이름을 가진 매월대다. 매월당(梅月堂)의 매월은 매화, 달의 결합어다. 상촌 신흠이 쓴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제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고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디 모습을 간직하고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는 시가 생각난다


    금오신화를 지으면서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작은 집 푸른 담요에 따뜻함이 넘치는데 달이 밝아 오니 매화 그림자가 창을 가득 채우네. 김시습은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것에 충격받아 전국을 유랑하며 은둔 생활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단종의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공부하던 책을 불태우고 출가했으며, 이후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세상을 풍자하는 시를 남겼다


    궁예도성으로 불리던 도성 터는 2005년 공식적으로 태봉국 도성으로 정정되었다. 궁예가 마지막 격전에 나선 곳이 보개산성이다. 보개산은 강원도 철원, 경기도 연천, 포천이 만나는 경계 지점에 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고려사에는 궁예가 평강(부양)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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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령 구조곡의 지형 - 2025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이민부.이광률 지음 / 가디언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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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디언북에서 2025년 1월 나온 ‘추가령 구조곡의 지형’은 사실상 추가령 구조곡을 총괄하는 유일한 저서다. 추가령은 楸哥嶺이라 쓴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북쪽의 육진(六鎭)에서부터 곧바로 삼방곡(三防谷)·추가령(楸柯嶺)으로 달려 평강(平康)·이천(伊川) 사이로 나와서 고랑포에 도달하는 것도 또 3백여리에 불과합니다.” 경기 관찰사 이형규(李亨逵)가 상소한 내용 중 한 구절이다. 추가령 구조곡은 좁게는 북동(북북동)-남서(남남서) 주향(走向)의 원산-서울 사이의 구조선들을 포함한다.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북의 함북 길주, 명천에서 남의 충남 보령까지 단층대로 보는 것이다. 추가령은 철령과 함께 역사시대를 통해 자주 국경으로 사용된 듯 하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도 남북간의 교류에는 주로 철령이 이용되었으며 추가령 혹은 분수령은 보조적으로 또는 긴급할 때 사용된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빠른 교통로를 위해 추가령에 신작로와 경원선이 건설되며 주요 통로가 됨에 따라 철령은 쇠퇴했다. 원산- 연천-서울을 잇는 추가령 구조곡은 백악기 또는 신생대 제3기 초에 생성된 우수향(右手向) 단층이 그 이후에 재활된 단층선곡이다. 


    연천군과 철원군 사이의 고대산, 지장봉, 보장산 일대의 산지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지장봉 산성 화산암류로 불리는 화산암이 분포한다. 이 화산암류의 대부분은 유문암질 응회암, 용결 응회암으로 담홍색, 담갈색, 회청색의 다양한 암색을 띠며 암편의 함량 변화가 심하다. 구 한탄강의 유로와 현 한탄강의 유로는 대체로 일치하며 추가령 현무암은 구 한탄강을 따라 유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추가령 현무암질 용암류가 만든 용암대지 지형은 형성 이후 하천의 침식 작용에 의해 원 지형이 파괴되는 개석(開析) 작용을 받았다. 


    하천에 의한 개석은 주로 현무암층과 기반암 사이의 경계부에서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용암대지에는 수십 미터의 단애(斷崖)가 형성되었다. 개석이 용암대지 내부에서 진행된 곳에서는 대규모 협곡이 발달하여 한탄강의 특징적인 지형이 되었다. 추가령 구조곡 일대에는 지구조적 연약대를 따라 열하분출한 현무암질 용암이 철원-평강 용암대지로 불리는 대규모 화산 지형을 형성하였다. 이는 제주도와 함께 해양성 지각으로 분류되는 울릉도, 독도와는 다른 경향을 보이며 하와이와도 다른 경향을 보인다.


    즉 추가령 현무암은 해양 도서(島嶼)나 호상열도와는 달리 대륙 내에서 구조선과 관련된 열점에서 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리산과 검불랑 북동 4km 지점의 성산(680m)이 중심이다.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은 주로 구 한탄강 유로를 따라 남쪽으로 흘렀으며 추가령을 넘어 북쪽으로는 흐르지 않았다.(53 페이지) 한탄강 상류인 철원군 철원읍 일대에서 최고 11매, 철원군 동송읍 일대에 최고 6매,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에 4매,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에 1매의 용암이 온 것으로 추정된다.(55 페이지) 


    화산 활동에 의한 용암대지 형성 시기는 10만년전, 4만년전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신생대 제4기에 형성된 대규모 화산체 또는 화산지역으로 백두산 화산체, 한라산 화산체, 울릉도-독도 화산체, 철원-평강 용암대지, 신계-곡산 용암대지 등 모두 다섯 곳을 꼽을 수 있다. 철원-평강 용암대지와 신계-곡산 용암대지는 인접했다. 추가령 구조곡의 용암 대지는 평강 지역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안변, 남쪽으로는 파주까지 분포한다. 그러나 하천이 매우 좁고 깊은 협곡을 이루는 세포와 고산 사이의 남대천 구간과 연천군 부곡리와 포천시 운산리 경계부의 한탄강 하곡 구간에서는 좁은 용암대지 지형면이 하천의 침식에 의해 대부분 사라져서 용암대지가 상류 쪽과 연결되지 못하고 단절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추가령 구조곡의 용암대지는 화산 분출의 중심부인 철원-평강 지역, 하곡을 따라 흐른 용암류에 의해 형성된 북쪽의 고산-안변 지역, 남쪽의 연천-파주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추가령 구조곡 일대에 발달한 용암대지의 총 면적은 약 825.84km²다. 중심부인 철원-평강 구역의 면적은 약 546km², 고산-안변 지역 구역의 면적은 135km², 회양-창도 구역은 약 91km², 연천-파주 지역의 면적은 약 54km²다. 연천-파주 구역의 용암대지는 면적에 비해 둘레가 매우 크다. 이는 한탄강과 임진강의 좁은 하곡을 따라 용암대지 지형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59 페이지) 


    철원-평강 용암대지의 평균 고도는 329m, 회양-창도 구역은 454m, 연천-파주 구역은 46m에 지나지 않는다. 회양-창도는 淮陽-昌道로 쓴다. 정리하면 연천-파주 지역은 면적도 가장 좁고 고도는 가장 낮다. 철원-평강 용암대지를 형성한 후 남쪽으로 진행한 용암류는 좁은 한탄강 하곡을 완전히 메우며 흘러내려 한탄강의 곡저에는 30-40m 높이의 두꺼운 현무암층이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한탄강에 합류하는 지류 하천의 하구에는 수십 m에 달하는 용암댐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용암댐에 의해 지류 하천의 중하류부 하곡에는 용암댐에 막혀 본류로 흘러들지 못한 유수가 정체되면서 거대한 호소(湖沼)가 형성되었다. 


    한탄강의 지류 하천 중 차탄천과 영평천에서 용암댐 형성 후 고호소(古湖沼)가 형성되었다. 철원-평강 용암대지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철원, 포천, 연천 지역에서 나타나는 주요 화산 지형은 용암대지, 주상절리, 베개용암, 스텝토, 다양한 부정합면, 클링커, 현무암 풍화층, 용암댐에 의한 고호소 퇴적물 등이다. 베개용암은 용암의 성분, 온도, 점성, 냉각 속도, 수온, 수압, 수심, 경사도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1) 한탄강을 따라 흘러온 용암이 지류인 영평천이 한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을 막음에 따라 호소(湖沼)가 만들어진다. 어느 정도의 깊이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뒤이어 온 용암류가 (먼저 흘러온 용암류에 의해 만들어진) 호소(湖沼) 속으로 흘러들어 급격히 냉각한다.


    평강의 오리산 부근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용암은 고도가 낮은 구 한탄강의 하곡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고결되며 하곡을 모두 메우고 주변으로도 흘러넘쳐 고도가 낮은 평지와 구릉을 메워 현무암 용암대지를 형성하였다.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은 봉우리가 용암에 의해 매몰되지 않아 그대로 남는다. 용암대지 내에 섬처럼 고립된 상태로 돌출되어 있는 원래의 기반암으로 이루어진 구릉이나 봉우리를 스텝토라 한다. 클링커는 현무암질 용암이 기반암이나 퇴적층과의 접촉부에서 식어 형성된 불균질한 암석 조각이나 덩어리를 말한다. 철원-평강 용암대지의 하곡은 갑작스러운 용암 피복에 의해 주인 없는 유역분지가 되면서 현재는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으로 크게 양분되었고, 부분적으로 남대천이 잠식했다.


    고석정에서 약 2km 떨어진 순담계곡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한탄강 협곡과는 달리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순담계곡에서 볼 수 있는 화강암은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으로 동송읍 장흥리, 양지리 일대와 김화읍 생창리 일대에 분포한다. 일반적으로 화강암을 이루는 장석은 흰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순담계곡의 화강암은 분홍색을 띠는 장석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용암 분출 후 한탄강은 주로 현무암과 화강암의 접촉부를 따라 흘렀으나 순담계곡은 드물게도 한탄강이 순수한 화강암 지대를 관통하면서 형성시킨 계곡이다. 


    이로 인해 순담계곡의 하식애는 현무암 주상절리가 아니라 덩어리 형태의 화강암에서 특징적으로 발달하는 판상절리가 주를 이룬다. 한탄강 현무암 협곡에서는 기반암인 화강암이 현무암에 의해 덮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동송읍 장흥리에 자리한 고석정 주변이다. 고석(孤石)이란 한탄강 골짜기에 홀로 솟아 있는 화강암을 가리킨다. 이는 현무암 용암대지와 화강암의 접촉부가 유수에 의해 침식을 받아 드러난 것이다. 이 화강암은 철원이 용암으로 덮이기 이전의 기반암으로 뚜렷한 홍색을 띠어 주변의 흑운모 화강암과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암석이 만나는 곳은 다른 곳에 비해 쉽게 침식을 받아 하천이 흐르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깊은 계곡을 형성한다. 그 결과 기반암인 화강암 곡벽은 완경사를 이루고 현무암 곡벽은 주상절리에 의해 수직절벽을 형성하고 있어 하천 양안이 비대칭을 이룬다. 고석정 부근에서 한탄강 본류로 흘러드는 대교천은 하천 양안뿐 아니라 하상까지도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현무암과 화강암의 경계에 형성된 고속정의 하천 양안이 비대칭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현무암으로만 이루어진 대교천 현무암 협곡은 대칭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재인폭포 폭호(瀑湖) 수면 부근에 위치한 단애면 최하단부 암석의 표면에서는 유수에 의한 굴식(掘蝕; plucking; 빠른 물살이 하천 바닥이나 기반암에 있는 암석의 일부를 뜯어내는 작용), 마식(磨蝕; abrasion), 건습풍화, 동결파쇄 작용 등이 일어난다. 


    용암대지 형성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침식기준면과의 고도 차가 크게 발생하여 불안정해진 한탄강은 침식기준면에 가까운 안정적인 하천의 고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침식기준면과 접한 하류 쪽에서부터 하방침식과 두부침식을 진행하였다. 특히 과거 하곡 충적층 부근이나 기반암과 용암대지 사이의 지질 경계부는 풍화침식 작용이 집중되면서 새로운 하도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침식기준면이란 하천이 침식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높이의 이상적인 면으로 일반적으로 바다의 해수면이 된다. 이런 하방 및 두부침식 과정을 통해 현재의 한탄강 협곡이 형성되었다. 


    한편 주변 산지에서 발원하여 용암대지를 흘러 한탄강에 유입되는 지류 하천은 적는 유량으로 인해 침식 능력이 작아 한탄강 본류와 같은 속도로 하방 및 두부침식을 진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용암대지면 부근의 고도에서 하도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류인 한탄강과 지류 하천의 고도 차이로 인해 지류가 유입되는 한탄강 협곡의 단애면에는 폭포가 형성된다.


    대부분의 폭포는 두부침식에 의해 위치가 상류 쪽으로 이동한다. 폭포가 형성되어 단애면을 따라 유수가 낙하하면서 기저 굴식과 굴착에 의해 폭호가 단애의 내부로 점점 확장되면 단애면이 점차 불안정해져서 단애 상부가 붕괴하면서 단애의 위치가 상류쪽으로 이동하는 두부 침식(headward erosion)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폭포의 위치가 하천의 상류 쪽으로 점차 이동해가는 폭포의 후퇴(recession)가 일어난다. 용암대지의 하부에는 기저굴식이 용이한 연암(軟巖)의 현무암층이 놓여있어 폭포의 형성조건인 폭호와 노치(notch; V자나 U자형으로 움푹 팬 자리)가 형성되기 유리하고 용암대지 중부의 현무암층은 주상절리가 매우 조밀하게 발달되어 있어 풍화침식을 받아 암석이 붕괴할 경우 수직의 단애면이 형성되고 유지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진다.


    재인폭포는 후빙기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유량이 늘면서 후퇴 속도도 조금 더 빨라졌을 것이다. 아직은 현무암 용암대지 내에 자리하고 있지만 후퇴가 계속되어 중생대 백악기 화산암류 지역까지 도달하면 주상절리에 의한 단애면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폭포는 사라질 것이다.


    추가령 구조곡은 서울 노원구- 의정부 - 양주 - 동두천 - 전곡 - 연천 -철원 - 평강 - 세포 -고산 - 안 변- 원산을 잇는 길이 약 160km의 좁고 긴 직선 골짜기로 지표에 뚜렷한 선형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신생대 제4기에 화산분출이 발생한 구조곡 중앙에 철원, 평강, 세포 남부 일대는 현무암 용암의 열하 분출에 의해 직선상의 추가령 구조곡이 완전히 매몰되어 선형성을 확인할 수 없는 평탄한 용암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남한의 연천, 동두천, 양주, 의정부 일대와 북한의 세포 북부, 고산 안변 지역은 용암이 및 구조곡을 따라 흐르다가 곡 내부에만 소규모의 용암대지나 현무암층을 형성하였다. 용암류의 이동 경로와 거리가 멀어 용암의 영향이 전혀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북북동 남남서 또는 남북 주향을 이룬 직선상의 구조곡이 현재까지 뚜렷하게 발달되어 있다. 단층선에 발달한 하천을 적종(適從)하천이라 한다. 차탄천, 신천, 중랑천이 대표적이다. 차탄천과 중랑천은 남류하지만 신천은 북류한다. 하천의 남류, 북류는 발원지와 하구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하천의 흐름은 지구의 자전과 관련이 없다. 지형적 의미에서 추가령 구조곡의 폭은 약 3~10km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가장 폭이 좁게 나타나는 지역은 연천 일대이며, 가장 폭이 넓은 지역은 덕정 일대다. 이는 기반암의 특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덕정 지역은 중생대 화강암 지질로 풍화작용과 하천에 의한 침식작용이 활발하여 수지상의 하계와 상대적으로 넓은 침식 분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분수계가 넓게 나타나며 연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암인 중생대 화산암이 분포하며 이 지역을 흐르는 차탄천 하류부에 해당하는 전곡 지역은 현무암 용암 대지로 이루어져 있어 하천이 협곡을 만들며 흐르기 때문에 하천의 형성과정에서 활발한 측방침식과 퇴적 작용보다는 주로 하각을 통한 하천의 발달이 우수하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상대적으로 좁고 긴 분수계를 형성하고 있다. 


    연천 전곡읍 일대와 철원 율리리 지역에는 용암대지가 분포한다. 이러한 용암들은 평강 지역으로부터 한탄강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하곡을 메워 형성된 것으로 현재의 하천은 용암 대지 아래로 깊은 협곡을 형성하고 있지만 용암 대지 형성 직후의 옛 하천의 유로는 용암 대지의 표면을 따라 흘렀거나 넘치면서 한탄강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다. 하천은 침식기준면에 도달할 때까지 고도를 낮추는 하방 침식작용을 일으키는데 이렇게 하천이 지표를 좁고 깊게 침식하는 하각 작용을 통해 하안 단구가 형성된다. 따라서 하안단구의 형성시기와 하천과의 고도 차이를 알면 하천이 고도를 낮추는 침식 속도인 하각률을 계산할 수 있다. 


    철원, 전곡 용암 대지의 형성에 따라 한탄강과 지류 하천의 고도가 급격하게 상승하였고 이들 하천은 원래 또는 이상적인 하천 고도를 회복하기 위해 매우 활발한 하각 작용을 진행하였다. 용암 대지 형성 직후에 용암 대지 표면을 흘렀던 하천은 현재까지 대체로 0.5-0.9미터/ ka의 매우 높은 하각률을 나타내고 있다. 연천 한탄강 유역에서는 신생대 제4기뿐 아니라 중생대 백악기에도 격렬한 화산 분출이 있었다. 


    그 결과 일부 화산지형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좌상바위다. 현무암에는 분급(分級)되지 않은 수cm에서 수십 cm 크기의 화산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이들 암석이 화구 또는 화도 부근에 퇴적된 것임을 말해준다. 좌상바위 부근의 한탄강 하상은 중생대 응회암질 퇴적암이다. 주로 궁신교 아래의 하천 바닥에서 관찰되는 녹회색 또는 담갈색을 띤다. 이들 퇴적암은 화산 폭발 시 분출한 화산재가 물이나 바람에 의해 이동해 와 쌓인 데다가 둥근 자갈들이 섞인 것이다. 


    연천 전곡읍 은대리에는 1999년 9월 18일 천연기념물로 제412호로 지정된 연천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가 있다. 물거미는 공기 방울을 이용하여 물속에서 대부분 생활하는 역진화 생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1994년 전곡 용암대지 점토층에 궤도 차량의 바퀴 자국으로 만들어진 식생이 있는 얕은 물웅덩이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물거미 서식지의 기본적인 지형 조건으로는 불투수(不透水)층의 토양과 표면 늪지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물의 보존과 유지에 미치는 지형과 토양 수문 등 생물환경의 안정성도 중요하다. 전 세계 물거미의 서식지 분포는 과거 빙하 지형 또는 주빙하(周氷河) 지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빙하 지형의 작용으로 호소(湖沼)가 형성되어 육상 생태계가 거대한 수중 생태계로 바뀐 지역들이 산재한다. 그러나 한반도는 빙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지역으로 물거미가 수중 생태계로 역진화한 원인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다. 


    연천 전곡 용암대지의 용암은 평강에서 남서쪽 3km에 위치한 오리산을 중심으로 열극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린 것이다. 은대리 일대는 선캄브리아대 연천층군의 변성퇴적암류가 기반암을 이루고 그 위에 두께 30~40m의 두꺼운 현무암층이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전곡리 일대에서 한탄강에 유입하는 지류 하천인 차탄천은 용암댐에 막혀 연천 일대에는 과거에 넓은 호소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곡리와 은대리 지역의 용암대지에는 홍수시 용암댐을 월류하여 운반된 제4기 운적물들이 분포한다. 이 운적층은 대부분 점토와 실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입자가 미세하여 토양 공극이 작아 수분의 투과를 억제하여 불투수층을 형성하여 많은 수분을 지표면에 고이게 하여 습지 형성 요인을 제공하는 중요한 지형적 특성을 갖는다. 여기에 유기물층이 형성되면 보수력의 증가로 습지의 물 수지는 더 높아지면서 영구적인 습지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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