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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ㅣ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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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 1883)는 ‘올랭피아‘와 ’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은 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論)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등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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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지질여행
박기화 지음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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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자연유산(2007년), 세계지질공원(2010년)으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제주도 지질여행]은 바로 이 제주도의 다양한 암석 및 지질 상황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제주도가 유네스코 다중지정지역이라는 사실 만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마그마와 화산재가 물과 관계를 맺었는가 아닌가다. 제주도에는 파호이호이 및 아아 용암이 굳은 암석이 모두 존재한다. 현무암질 용암은 폴리네시안 언어에서 유래된 파오이호이 용암 또는 아아 용암으로 구분된다. 이들 용암의 형성은 마그마의 화학 성분상 차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용암 분출 당시의 온도, 점성, 유속 등과 같은 물리적 조건 및 탈기체화에 수반된 변화, 지표면 경사 등에 의해 좌우된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표면이 유리질과 같이 반짝이고 매끄러우며 용암 단위의 상하부에 집중된 기공(氣孔)은 대부분 둥근 형태를 지닌다. 아아 용암은 용광로 슬래그처럼 표면이 거칠고 암괴와 같은 형태의 클링커를 지닌 용암류로서 대개 상하부 경계가 불규칙하며 산화로 인해 적색을 띠는 클린커층을 형성하고 중앙부는 비교적 치밀한 용암 상태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마그마가 물과 만나면 급히 식고 물은 끓게 된다. 이런 냉각 및 가열 반응은 매우 격렬하게 일어나 수증기를 다량 함유한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이를 수증기 마그마성 분출 또는 수성 화산활동이라 한다.

 

고온의 마그마가 차가운 물을 만나면 마그마는 작은 반투명한 유리 조각 알갱이로 깨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뜨거운 유리컵을 찬물에 넣으면 유리컵이 깨지는 현상과 같다. 화산분출에 의해 형성된 응회암은 퇴적암 등의 퇴적 구조에서 관찰되는 평행한 줄무늬 구조인 층리(層理)가 형성되어 있어서 퇴적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응회암을 구성하고 있는 유리질 파편들은 물리적 성질이 불안정하며 수증기를 흡수하여 안정화되면서 부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도 쉽게 단단한 암석이 된다.

 

제주도 작은 화산체인 오름은 주변 지형에 비해 뚜렷이 솟아올라 봉긋한 지형을 가리키는 제주어다. 악(岳), 봉(峰), 산(山)으로도 불린다. 오름은 열하(熱河) 분출과 관련이 깊다. 지각운동으로 인해 마그마와 지표 사이에 생긴 단층(斷層)과 같은 줄 모양의 틈으로 용암이 스멀스멸 대량으로 흘러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대체로 유동성(流動性)이 큰 현무암질 용암이 그런 분출을 보인다. 열하분출 하다가 마그마의 양이 떨어지면 지표면의 하나의 통로(화도)나 점을 통해 집중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중심분출을 한다.

 

소화산체는 주로 규모가 큰 순상화산 또는 성층화산의 주화도의 측방 이동, 열극(裂隙)을 따라 만들어진 화산이란 의미에서 기생화산이라 불렸으나 최근 연구에 의해 이들이 순상화산과 성층화산의 사면 분화(flank eruption) 활동과 관계없이 현무암질 화산암 지대에서 독립적인 화산체로서도 만들어질 수 있기에 단일 마그마의 분화에 의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체라는 의미에서 단성 화산이라 한다.

 

단성 화산에 해당하는 368개의 오름은 대부분 화산 폭발시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쇄설물이 화구 주변에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원추형의 작은 화산체인 분석구(噴石丘)이며 그 외 응회구, 응회환, 사발 모양의 화산 분화구인 마르, 방패형 화산 및 용암돔으로 구성된다. 분석구란 분출한 화산쇄설물이 쌓인 언덕을 말한다. 응회환(Tuff Ring)은 마그마가 지하수나 바닷물, 호숫물 등 풍부한 물과 만나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키면서 형성된 나지막한 고리 모양의 수성화산체를 말한다. 정리하면 응회환은 수성 화산체, 분석구는 분화구 주변의 돌언덕을 의미한다.

 

응회구(凝灰丘)는 마그마가 풍부한 물(바닷물, 호숫물 등)과 만나 폭발한 수성 화산체, 분석구는 물 없이 마그마 자체의 가스 압력으로 분출한 육성 화산체다. 응회구란 글자에는 물에 대한 정보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없다. 하지만 화산재 원래 마른 먼지처럼 바람에 쉽게 날아가는 성질을 가진다. 이 화산재가 날아가지 않고 한곳에 단단히 엉겨 붙으려면(凝) 반드시 수분(물)이 필요하다. 마른 모래는 성을 쌓을 수 없지만 물을 섞으면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물이 마그마보다 훨씬 많으면 폭발력이 매우 강력해진다. 물이 순식간에 기화(氣化)하면서 화산재와 파편들을 사방으로 멀리 날려 보내기 때문에 높이 쌓이지 못하고 옆으로 넓고 완만한 고리(環) 모양을 이루게 된다. 이를 응회환이라 한다. 물에 비해 마그마의 양이 많으면 끈적하고 젖은 화산재 반죽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분화구 바로 주변에 떨어진다. 이 수분 가득한 화산재 반죽이 흘러내리지 않고 분화구 주변에 그대로 찰떡처럼 가파르게 쌓이면서 높은 언덕(丘) 모양이 된다. 이를 응회구라 한다.

 

제주도 서쪽 고산포구에는 수월봉과 당산봉이 있다. 낮은 구릉 형태의 수월봉은 응회환이고 경사가 급한 높은 산을 이루고 있는 당산봉은 응회구에 해당한다. 응회환과 응회구가 가까이 분포하고 있어 서로를 비교할 수 있다. 응회암도 물과 관련된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쌓여서 굳은 퇴적암의 한 종류다. 이 화산재가 암석으로 변하는 모든 과정에서 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 없이 만들어지는 특이한 응회암도 있다. 화산이 폭발할 때 너무 뜨거운 화산재(수백 도 이상)가 엄청난 무게로 순식간에 짓눌리면 녹아서 떡처럼 들러붙어 굳는다. 이를 용결응회암(Welded Tuff)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는 물보다는 자체 열과 무게로 굳은 예외적 케이스다.

 

물은 화산재의 1) 요리사, 2) 그릇, 3) 강력 본드 역할을 한다. 땅속에 있던 엄청나게 뜨거운 마그마가 바다나 지하수(물)를 만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이 폭발력 때문에 마그마가 잘게 쪼개지면서 엄청난 양의 고운 화산재 먼지가 만들어진다. 물이 마그마를 화산재로 요리해 낸 것이다. 하늘로 날아간 화산재들은 아래로 떨어지는데, 많은 수가 바다나 호수(물속)로 떨어진다. 그냥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아가 사라지기 쉽지만 물속에 떨어지면 물이 그릇처럼 화산재를 안전하게 모아준다.

 

무거운 재는 먼저 가라앉고 가벼운 재는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시루떡처럼 예쁜 줄무늬(층리)를 그리며 차곡차곡 쌓인다. 화산재 더미 사이로 지하수(물)가 끊임없이 흘러 지나간다. 물속에는 미세한 광물 성분들이 녹아있다. 이 성분들이 화산재 알갱이 사이에 풀처럼 끼어들어 서로를 단단하게 접착시켜 준다. 화산재가 물과 만나면 스스로 화학 반응을 일으켜 끈적한 진흙처럼 변하면서 돌처럼 굳기도 한다.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남쪽으로 약 9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남서-북북동의 장축과 약 41km의 폭을 지닌 타원형의 본섬 및 8개의 사람이 사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도는 바다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만 대륙붕 위에서 이루어진 대륙 지각 내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섬이기 때문에 그 지질학적인 특징은 울릉도, 독도 그리고 하와이 같은 다른 해양 화산도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다. 중앙부에 한라산이 자리하고 368개의 오름이 섬 전체에 고루 분포한다.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은 화구로서 지름이 575m이고 깊이가 100m이다.

 

제주도를 멀리서 보면 서쪽과 동쪽은 완만하고, 한라산에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쪽은 험준하다. 서쪽과 동쪽에 완만한 저지대 지역에는 파호이호이 용암이 굳어서 된 암석이, 북쪽과 남쪽 지역에는 아아 용암이 굳어서 된 암석이 주로 분포한다. 제주도에는 용암 분출에 의해 형성된 화산암과 화산 폭발에 의해 형성된 화산쇄설암 또는 응회암이 있으며 용암과 용암 사이의 퇴적층도 나타난다.

 

시추 조사에 의하면 제주도 동부는 해수면 하부로 150m까지, 서부지역은 해수면 하부 50~ 70m까지 용암이 분포하고 있고 그 밑으로는 서귀포층과 U층(unconsolidated formation; 굳지 않은층 또는 미고결층)이, 더 깊은 곳에는 중생대 화산암과 화강암이 기반암으로 자리한다. 응회구와 응회환은 수성 화산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체로 제주도 해안에 주로 분포한다. 이 화산체는 수 cm에서 수십 cm 두께로 반복된 응회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출봉과 같이 높은 산을 이루고 있다.

 

응회암층의 수평 분포는 수백m에서 수 km에 이르며 근원지로부터 멀어지면서 그 두께는 점차 얇아진다. 제주도 지표 하부에도 용암에 의해 덮여 응회암층이 분포해 있는 것이 시추 조사로 확인된다. 제주도는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지표 부분으로 기반암-U층-서귀포층-화산암류 및 퇴적층 순서의 지질 분포를 이루고 있다. 분출 시기를 달리하는 용암과 용암 사이에는 수m 내지 수십m에 이르는 퇴적층이 사이에 존재한다. 이들 퇴적층은 화산활동의 휴지기 동안 또는 종료 이후 퇴적된 것으로 역질(礫質) 내지 이질(泥質)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퇴적물은 대부분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굳지 않은 화산회(火山灰)가 빗물에 의해 씻겨나가고 계곡이나 얕은 곳에 퇴적된 것이다.

 

곳에 따라서는 하천이나 바닷물에 의해 이동 퇴적되어 형성된 퇴적층에는 사층리, 비늘 구조 등의 퇴적 구조도 발달한다. 제주도의 해수면 44m-258m 하부에 모래와 점토로 구성된 퇴적층(U층)이 나타난다. U층은 해수면이 가장 낮았던 시기에 육지와 연결되어 있던 제주도 초기의 환경을 알려주는 지층이다. 모래와 점토로 구성된 제주도 하부의 퇴적층은 아직도 굳지 않아 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마그마가 약 150m 두께의 U층을 뚫고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물을 만나게 된다. 이 때문에 화산 폭발의 모습은 매우 격렬하고 마그마가 깨지면서 수많은 작은 돌 알갱이들로 이루어진 수성 화산체를 만든다.

 

제주도를 이루고 있는 용암 전체를 걷어낸다면 일출봉과 같은 화산체가 곳곳에 분포하는 제주도 형성 초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가 만들어지는 동안에 여러 번의 빙하기가 있었다. 빙하기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130m 정도 낮아서 여러 차례 육지와 연결되었던 적이 있었다. 해수면이 높아진 시기에 분출한 용암은 물속으로 흘러 들어가 베개 모양의 암석을 만들었다. 제주도에 여러 차례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말은 우리나라 전체의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얼음으로 뒤덮이지 않은 비빙하 지역이었다. 제주도 삼양 해변은 검은 모래로 유명하다. 이 검은 모래는 해안 주변에 분포하는 화산암이 오랜 기간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과 하천을 통해 운반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현무암은 규소의 함량이 적은 대신 철과 마그네슘 함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고철질(苦鐵質) 마그마로부터 생성되기 때문에 감람석, 휘석, 각섬석, 흑운모 등의 광물들이 많아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을 띤다. 현무암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암편과 광물들은 해양생물 파편보다 무겁기 때문에 파도에 의해 멀리 운반되지 않고 연안에 잔류할 수 있어 검은 모래사장이 발달할 수 있다.

 

삼양 해변 이외에 이호 해변, 성산읍 종단, 성산 해변, 남원읍 공천포 해변, 안덕면 화순 해변, 대정읍 하모 해면 등도 제주의 주요 검은 모래 해변 지역이다. 만장굴과 김녕사굴은 신흘리 현무암이 분출할 때 만들어진 용암 동굴이다. 용암 동굴은 파호이호이 용암에서 흔히 형성된다. 넓이는 수m에서 수십m에 이르고 길이는 수백m에서 수십km에 이른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점성이 낮고 높은 온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표면이 얇게 굳어도 내부에서는 높은 온도의 용암이 계속 흐르게 된다.

 

용암의 공급이 줄어들거나 용암의 흐름을 막고 있던 방해물이 제거되면 굳은 표면은 남아 있고 내부에 흐르던 용암의 높이가 낮아져 동굴이 만들어진다. 용암 동굴 내에는 용암이 흐르던 높이가 변한 현상이 동굴 벽에 남아 있다. 계단 모양으로 층을 이루고 있는 지붕 모양의 암석을 동굴 입구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동굴 속을 흐르던 용암의 높이가 여러 차례 변했음을 의미한다. 동굴의 천장에는 오각형 또는 육각형의 절리들이 발달해 있다. 동굴 벽에는 용암이 흘렀던 기록들이 남아 있고 천장 가까이에는 돌고드름처럼 생긴 용암 종유석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용암은 상당히 묽은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제주도의 여러 오름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있다.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이다. 용암이 내부에서 밀어 올려져 용암 표면이 부푼 빵처럼 만들어진 구릉을 의미하는 투물러스를 만들 때 절리를 따라 내부 용암이 치약이 짜진 것처럼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를 스퀴즈업이라 한다.(베개 용암 형성시 용암이 빨리 식은 겉면을 뚫고 나오는 것을 수중 스퀴즈업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투물러스에 생긴 틈을 따라 내부의 용암이 코끼리 발톱 모양으로 지표로 나온 것을 라바토(lava toe)라 한다. 투물러스 표면에 형성된 거북등 절리도 있다. 주상절리를 위에서 바라본 것을 거북등 절리라고 한다.

 

산굼부리는 용암 분출을 일으킨 마그마의 공급이 갑자기 줄어들거나 마그마가 다른 곳으로 이동 함으로써 지하의 공간이 형성되어 위에 있던 암석들이 지금의 깊이로 침강하여 만들어진 함몰 분화구다. 함몰구조는 지름 크기에 따라 1km 이상이면 칼데라(caldera), 1km 이하이면 함몰 분화구(pit crater)라 한다. 제주도에는 화산암 뿐 아니라 화산활동이 멈춘 기간에 형성된 퇴적암도 있다. 퇴적암은 빗물에 씻겨 내려온 커다란 암괴와 미세한 암석 부스러기로 구성되어 있다. 미세한 입자들은 대부분 화산회다.

 

푸른 바다 사이에 우뚝 솟은 성채와 같은 모양 봉우리 정상에 있는 거대한 사발 모양의 분화구, 그리고 그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의 장관 때문에 성산일출봉은 많은 사람들의 감흥과 탄성을 자아낸다.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오름 중에서 그 모양과 멋이 가장 두드러진 일출봉에 대해 군계일학이라 표현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출봉은 다른 오름과는 어떤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왜 생긴 것일까? 제주도 대부분 지역은 온도가 1200°C에 가까운 현무암질 마그마가 분출한 후 용암이 되어 흐르다가 식어서 만들어진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뜨거운 마그마가 지표를 향해 올라오던 중 지하수를 만나거나 바닷물이나 호수 물 또는 빙하와 같은 얼음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마그마나 용암은 급히 식고 물은 끓게 된다. 이런 냉각과 가열 반응은 매우 격렬하게 일어나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물이 풍부한 지역의 마그마가 관입한 것이 바로 1963년 아이슬란드의 셧시(Surtsey) 화산과 일출봉을 만든 수성화산활동의 원인이다.

 

마그마나 용암이 물에 의해 급격히 냉각되어 산산이 부스러져 분출한 화산재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흑색 유리와 같다. 이렇게 수성 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유리질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소규모 화산체를 응회구 또는 응회환이라 한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대부분의 오름은 분석구다. 이들은 구성물질, 화산체의 크기와 형태가 응회환(응회구)과 다르다. 분화구의 바닥이 해발 90m에 있으며 높이가 180m에 이르고 경사가 30°를 넘는 유리질의 화산재 층으로 구성된 일출봉은 전형적인 응회구에 해당한다.

 

일출봉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구조는 황갈색 또는 짙은 회색의 응회암층들이 무수히 쌓여 만들어진 층이다. 화산재가 화구 근처에 겹겹이 쌓이면 사면의 경사가 점점 가파르게 변하지만 사면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경사각에는 한계가 있다.(78 페이지) 재들이 쌓이다가 어느 한계점에 이르면 더 이상 쌓이지 못하고 미끄러지거나 무너지게 된다. 이런 경사각도를 안식각이라 한다. 자연환경에서 가장 높은 자갈의 안식각이 35°인데 일출봉의 응회암층들이 보여주는 경사는 최대 45°에 이른다.

 

그 원인은 일출봉의 화산재들이 분출할 당시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안식각보다 가파른 경사면에 쌓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짝 마른 모래로는 모래에서는 싸울 수 없지만 축축한 모래로는 여러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리가 스쳐 지나가며 보아왔던 일출봉의 가파른 경사는 수성 화산활동의 선물이었기에 가능했다. 일출봉의 화산력(礫)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산재가 수 mm 두께로 덮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화산재가 화산역에 달라붙었을까?

 

다량의 물이 마그마와 섞이면서 수성 화산활동이 일어날 경우 습기를 머금어 끈끈한 상태인 화산재는 콩알처럼 뭉치기도 하고 화산력의 표면에 달라붙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산력을 부가 화산력 또는 피복 화산력이라 한다. 이런 화산력들이 일출봉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수성 화산활동이 물이 풍부한 상태에서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현무암질 마그마가 얕은 바다 밑에서 분출하며 형성되기 시작했다. 수심이 낮은 곳에서 분출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분출 초기부터 폭발적인 분출을 하였다. 다량의 물이 마그마와 섞이며 폭발이 일어나 화산재와 화산 력은 많은 물을 머금은 채 차갑고 끈적끈적한 상태로 분출하였다.

 

수백 m 높이의 분수처럼 솟구친 화산재와 화산력들은 화구 주변에 한 겹씩 쌓이며 다른 화산에서는 보기 힘든 뚜렷한 층리를 만들어 갔다. 화산재가 차곡차곡 쌓임에 따라 안식각(30도)을 훨씬 넘는 가파른 경사면을 가진 응회구가 만들어져 갔다. 가파른 경사로 인해 응회구의 사면에서 종종 크고 작은 사태가 일어났고 지층의 변형이 일어났다. 화산분출이 끝난 후에는 빗물과 유수에 의한 침식이 일어나 일출봉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번 쌓였던 화산재나 화산 쇄설물이 빗물이나 흘러내리는 물(유수) 등에 의해 다시 깎이고 이동하여 다른 곳에 쌓이게 된(재동; 再動; reworked) 퇴적층이 쌓이게 되었다.

 

바닷가까지 운반된 화산 기원 물질들은 파도와 해류의 작용을 받으며 퇴적되어 신양리층이란 현세의 퇴적층을 만들었다. 응회구는 지하에서 상승하던 마그마가 지하수나 바닷물 같은 많은 양의 물과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소규모 화산체를 말한다. 응회퇴적물의 지층 경사 방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화구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섭지코지 지역에는 분석구에서 흘러나온 아아 용암에 의해 낮은 구릉을 이룬 조면 현무암이 분포한다.

 

성산일출봉이 형성될 때 운반 퇴적되어 만들어진 성산층이 조면현무암을 덮었고 곳곳에 풍성(風性) 사구가 있다. 제주도에는 360여개의 오름이 있다. 이 가운데 약 340여개는 분석구이다. 나머지는 수성 화산체(물과 마그마의 반응)와 용암 원정구(점성이 높은 용암)다. 더데오름은 분석구도, 수성화산체도 아닌 끈적끈적한 조면암질 마그마가 분출하여 지표에서 멀리 흐르지 못하고 굳어진 용암돔(종상화산체)이다. 섭지코지에는 분석구의 형성 비밀이 담겨 있다. 섭지코지 해안에는 분석구가 침식되어 분석구의 중심부인 화도와 이로부터 멀리 날아가 쌓인 스코리아 층까지 노출되어 있다. 이렇게 분석구의 중앙부부터 외곽부까지 모두 관찰할 수 있는 곳은 제주도에서도 섭지코지가 유일하다. 섭지코지는 바다 쪽으로 좁게 길게 뻗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조면암(Trachyte)은 산성 또는 중성 화산암이다. 조면암은 제주도와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암석이다. 섭지코지 일대의 아아 용암은 섭지코지에 있는 분석구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표면이 매우 거칠고 크고 작은 암편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분석구(오름)가 먼저 형성된 후 또는 형성되는 과정 후기에 용암이 흘러나온 것을 의미한다. 분석구는 화산 활동으로 생긴 산(구릉) 자체를 말하고 분화구는 그 산 꼭대기에 뚫려 있는 구멍(분출구)을 뜻한다.

 

지하 깊은 곳에서 올라온 마그마는 탄산음료와 같다. 처음에는 가스가 꽉 차 있어서 뚜껑을 열자마자 콰아아 하고 공중으로 엄청나게 뿜어져 나온다. 이때 공중에서 식어 떨어진 자갈들이 분출구 주변에 모래성처럼 높이 쌓인다. 이것이 바로 오름(분석구)이다. 시간이 지나 가스가 다 빠지면 뿜어져 나갈 힘(압력)이 없어진 걸쭉하고 무거운 치즈 같은 용암만 남게 된다. 이 무거운 용암은 자갈로 대충 쌓여 있는 약한 모래성(오름) 꼭대기까지 올라갈 힘이 없다. 대신 모래성의 맨 아랫부분이나 약한 옆구리 틈새를 뚫고 스르륵 삐져나와 주변 바닥으로 흘러가게 된다. 마치 꽉 찬 치약의 옆구리가 터져서 나오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름을 현대적 의미의 천문대는 아니지만 별을 관측하기 가장 좋은 자연 천문대로 본다. 1928년 일본인 지질학자 하라구치 쿠만이 서귀포시 천지연 폭포 서쪽 새섬 앞 해안가에 패류 화석을 많이 포함한 지층을 서귀포층이라 명명했다.

 

대포동 주상절리에서 바닷물과 만나는 부분은 절리가 뚜렷하지만 클링커층이 있는 윗부분에서는 주상절리가 희미하다. 주상절리의 상부에 있는 두꺼운 클링커(clinker)층이 외부 열을 차단하는 보온 역할을 하여 용암류 상부가 서서히 식었기 때문이다. 주상절리의 치슬마크(Chisel mark; 끌 무늬 또는 마디층)는 용암이 한 번에 쭉 갈라진 것이 아니라 석공이 조각칼(끌)로 바위를 조금씩 쪼아내듯 단계적으로 균열이 깊어지면서 기둥 표면에 남은 수평 방향의 무늬를 말한다.

 

제주도에 분포한 화산암을 모두 제거하면 해수면 하부 100m 지점부터 200m의 두께로 분포하는 굳지 않은 퇴적층이 나타난다. 제주도는 약 188만 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퇴적층만 제주도에 분포했었다. 이 퇴적층은 뚫고 올라온 마그마는 퇴적층에 들어 있는 물과 접촉하여 수성 화산분출부터 시작하였을 것이다. 용머리 응회환은 이 시기에 발생한 수성 화산분출에 의해 만들어졌다.

 

제주도 서남쪽에 자리한 송악산은 우리나라 최남단 섬인 마라도를 볼 수 있고, 한라산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제주도 전체 경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라산 정상 북쪽에는 한라산 조면암이 분포하고 조망대 지역에는 백록담 현무암이 분포한다. 한라산 조면암은 높은 점성을 가지고 돔상(狀)으로 솟아 한라산을 더 웅장하게 만들었다. 한라산 정상은 백록담 현무암을 만든 용암이 마무리하였다. 이 용암이 북동쪽으로 오동동까지 10km, 남동쪽으로 신례리까지 11km를 흘러갔다. 관음사 부근에 구린굴을 만들고 곳곳에 밧줄 구조를 남긴 것으로 보아 점성이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이었다.

 

제주도에는 연 평균 2,061mm에 해당하는 비가 내리지만 연중 물이 흐르는 하천이 없다. 물이 잘 빠지는 다공질 화산암으로 제주도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과거 제주도는 물이 매우 귀한 섬으로 알려졌지만 지하수를 개발해 이용하면서부터 물 부족 문제는 사라졌으며 제주 삼다수가 국내 먹는 샘물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제주도에 1년 동안 내리는 빗물을 양으로 환산하면 37억 6900m³에 달한다. 이 중 55%의 빗물은 중발산작용과 직접 유출 과정을 통해 손실되고 나머지 45%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된다. 제주도의 지하수 함량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투수성이 좋은 다공질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며 우리나라 대륙지역 평균 지하수 함양률보다 3배나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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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도미노 총서 5
에티엔 클렝 지음,박혜영 옮김 / 영림카디널 / 1997년 10월
평점 :
절판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과학 철학자인 에티엔느 클랭(Étienne Klein; 1958- )이 쓴 시간을 주제로 한 [시간]이란 책이다. 저자는 항상 사용하는 개념들이 가장 큰 수수께끼를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시간은 난점(難點)이다, 그 이유는 뒤로 물러서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시간의 밖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을 잡을 수도 없다. 전 우주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적 의미의 시간은 없다는 말을 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도 표준으로서의 시간,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시간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시간은 우리가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저자는 시간은 자명하면서도 만질 수 없고,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재빨리 사라져 버리고, 친숙하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이라 말한다. 물리학자들의 말대로 시간이 화살표 방향으로 흐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발견할 수 없는 대상일 뿐이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물리학자들은 늘 시간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가변적이며, 불안정하고, 덧없는 것인 반면 물리학은 변화를 벗어난 관계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움직이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것 또는 적어도 비가역적인 것을 열망한다.

 

물리학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물리학의 목표가 일시적인 현상들에서 출발하여 영원한, 다시 말해 시간에서 해방된 법칙들을 세움으로써 변화하는 것을 항구적인 것으로 귀결시키는 데 있다고 믿는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라면 누구나 시간을 초월하는 것을 겨냥하지 않는가? 저자는 물리학 내에서조차 시간은 다양한 양상을 띤다고 말한다. 단적으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카를로 로벨리처럼 루프 양자중력 이론 진영에 속하지만 시간은 실재한다고 말하는 리 스몰린의 차이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이 말한 시간의 화살은 사랑의 욕망을 상징하지 않고 시간의 가차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흐름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떤 두 사람도 시간을 꼭 같이 계산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껠레비치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이상하게도 시간은 텅 비어 있을수록 더욱 우리에게 짐스럽게 여겨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러한 시간은 역학의 일반 대상들과 구별된다.

 

권태로운 시간은 끝없이 길게 느껴지며, 초조한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나 밀도가 높고, 기쁨의 시간은 강렬하고 마치 정지한 것 같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장 껠레비치의 이야기는 할 일이나 의미로 채워지지 않은 텅 빈 시간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보다 오히려 권태라는 무거운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알 수 있는 말이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날것 그대로 느낀다. 이는 인간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불안이 되기도 한다.

 

공간의 위상 기하학과는 반대로 시간의 위상 기하학은 대단히 초라하다. 그것에는 단지 두 가지 변이(變異) 밖에 없다. 즉 직선과 원 다시 말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선적인 시간과 고리 모양으로 맞물리는 순환적 시간이다. 후자는 원의 마술적 특성에 힘입어 그리스인들(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의 영원회귀 신화에서처럼 신화 속에서 많이 나타난다.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물리학은 고통스럽게도 그리스 사상의 두 기둥을 중심으로 양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한편에는 존재와 근본적인 부동성을 주장한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있고 다른 편에는 그와 동시대인으로서 변전(變轉)과 유동성(流動性)을 주장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있다.

 

저자는 뉴턴, 아인슈타인, 프리고진의 시간론을 말한다. 뉴턴은 우주 전체에 하나의 거대한 시계가 똑같이 흘러간다고 보았다. 관찰자의 상태나 물질의 존재와 상관없이 시간은 독립적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적 시간의 개념을 깨뜨리고, 시간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속도)와 중력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론 아인슈타인에게도 시간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4차원 시공간의 한 축일 뿐이다.

 

프리고진은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물리 법칙이 자연계의 '가역성(되돌릴 수 있음)'만 설명하는 반쪽짜리 과학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에 기반하여, 자연계는 에너지를 소비하며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산일(散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우주는 되돌릴 수 없는 한 방향으로만 진화하며, 이를 통해 물리 법칙 안에 시간의 화살과 우주의 창조성을 복원시켰다.

 

역학(力學)은 자연이 행하는 모든 것을 똑같은 과정에 따라 해체할 수 있다. 가령 종이 위에서 항성들은 거꾸로 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뉴턴의 물리학에서 동시성의 개념은 그 어떤 원칙상의 혼란도 야기하지 않는다. 두 명의 실험자는 그들의 시계를 동시에 작동시켜 동시성을 갖게 할 수 있다. 단지 빛으로 신호를 교환하기만 하면 된다. 뉴턴에 의하면 빛은 무한 속도로 퍼져가기 때문에 이 신호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두 실험자는 시계의 동시성이 그대로 유지 됨을 확인하여 그들의 개인적 시간이 아닌 보편적이며 공통된 시간을 창조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단 하나의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뉴턴의 시간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밀도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 시간은 영원하며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시간이므로 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항상 동일하게 흘러간다. 미시방정식(물리학의 분자·원자 수준의 법칙)은 시간 반전 대칭성을 가지기 때문에 가역적이고, 거시방정식(열역학이나 유체역학 등)은 확률적 통계와 엔트로피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비가역적이다. 거시방정식은 미시방정식에서 비롯된다.

 

프리고진은 시간이 발명품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베르그송의 경구(驚句)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에 발명품이란 망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베르그송이 시간은 발명품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이유는 그가 보기에 진짜 시간이란 매 순간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절대적인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베르그송 철학의 정수인 [창조적 진화의 핵심 개념이다.

 

저자는 일리야 프리고진이라면 시간의 화살표는 없지만 거시적 층위에서는 시간의 한 화살표가 있다는 환상이 생긴다는 말 대신 시간의 화살표는 있지만 미시적 층위에서는 시간의 화살표가 없다는 환상이 생긴다고 말할 것이라 말한다.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도 통계역학의 기초를 다지던 루트비히 볼츠만의 H-정리(H-theorem)와 거시적 비가역성(시간의 일방통행성)에 대해 강력한 논리적 이의를 제기했다. 물론 저자가 말했듯 푸앵카레의 영원회귀는 주기가 너무 길어서 사실상 비가역성과 맞먹는다.

 

저자는 중력과, 오늘날 훌륭한 중력이론인 듯 여겨지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서도 논한다. 그의 체계에서 중력은 우주의 서로 다른 물질적 내용물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 자체의 기하학적 속성이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중력을 언급하며 무게를 갖는다는 것은 자기 시간을 갖는 또 다른 방식이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말은 물질이 존재하며 가지는 무게(중력)라는 속성이 단순히 아래로 떨어지는 성질이 아니라 그 존재가 우주 속에서 시간과 관계를 맺는 독특한 방식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무게가 없다면(빛처럼 질량이 없다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 채 시공간을 최고 속도로 통과하지만, 무게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자신만의 리듬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의 원칙들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원칙들은 아직 모순 없이 양립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파동함수를, 서로 다른 여러 항들의 합이라 정의한다. 모든 물리적 체계를 모든 가능한 상태들의 합으로 설명하는 것은 중첩원리라 불리는 것의 직접적인 결과다.

 

합(+)의 형태로 중첩되어 있는 여러 개의 파동함수들 중에서 측정 후에 선택된 하나의 파동함수는 실제로 측정된 에너지의 값과 일치하므로 그대로 존속한다. 이때 우리는 파동함수가 측정에 의해 축소되었다고 말한다. 양자물리학에서 특정한 속성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다름 아닌 측정 그 자체다. 저자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나이도 같고 흔히 약혼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못해 짝짓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시간이 개념의 보편성이란 없으며 시간을 중심으로 한 이론적 통일성도 없다고 말한다. 시간의 화살통의 목록은 작성했으나 우리가 본 것은 단지 화살의 동강들(열역학적, 우주론적, 양자적) 단편들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현상학자 후설은 미래는 기다림의 대상, 현재는 주의의 대상, 과거는 기억의 대상이라 말했다. 시간에 대한 베르그송의 생각은 양자물리학의 시간론과 잘 들어맞는다. 베르그송은 상대성이론은 비판했고, 양자역학은 긍정했다. 공간은 우리가 지닌 힘의 표시이자 그 증거이기도 하다.우리는 공간을 정리할 수도 있고 개조할 수도 있다. 공간 속에서 모든 방향으로 온갖 속도로 돌아다닐 수도 있으며 지그재그로 갈 수도 있고 공간의 외양과 형태를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오히려 우리의 나약함의 표시이다.

 

시간은 우리가 어느 때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산책 장소가 아니다. 시간은 유순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시간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우리에게 자신을 강요한다. 시간은 서서히 조금씩 우리 모두를 거의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한 불로 파멸시킨다. 우리의 무능함을 상징하는 시간, 그것은 우리 인간 조건이 거역하지 못할 경계이다. 저자는 인간의 권한이 인간에 대한 저주가 되지 않도록 보장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묻는다.

 

저자는 어떤 생각들은 우리를 시간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 다른 생각 들은 우리를 시간으로 이끌어들인다고 말한다. 고엽이라는 샹송에 나오는 “낙엽이 무수히 쌓이네”라는 가사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우수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때 시간은 텅 빈 허전함이 되며 우리를 가을의 블루스 속에 천천히 잠들게 한다. 가을은 언제나 무언가의 종말이어서 우리 자신의 종말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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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
쥘리앙 보브로프 지음, 김희라 옮김, 이재일 감수 / 북스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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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양자(量子)다. 전자는 너무 빨라 우리는 그 움직임의 흔적만 볼 수 있다. 전자는 뿌연 증기처럼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전자는 흐릿하고 미세하며 부피를 가진 듯하지만 측정하는 순간 갑자기 하나의 입자로 변한다. 전체성 또는 양자 물리학의 미스터리가 이미 이 기이한 장면에서 작동하고 있다. 흐릿한 영역이 파동 함수다. 전자의 위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르다.

 

이렇게 기이한 상황이 전자나 원자처럼 극히 작은 차원에서만 발생하고 테니스공이나 모래 아래에서는 생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자 물리학의 위대한 이론가 리처드 파인만은 강의를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고 한다. "누구도 자신을 속이지 않고서는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없다." 닐스 보어도 이렇게 경고했다고 한다. "양자 이론에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파동 함수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측정하려 했다는 행위가 그것을 즉시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작은 차원의 세계는 양자적이며 파동과 입자 사이 어딘가에서 아주 뜻 밖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작은 차원의 세계가 양자적이란 말은 미시적인 크기의 차원에서는 거시 세계의 연속적인 물리법칙이 통하지 않고 에너지가 불연속적인 양자라는 덩어리 형태로만 존재하며 확률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뜻이다.

 

아인슈타인이 각각의 광자가 파동인 동시에 입자라는 이야기를 했다면 루이 드 브로이는 물질을 이루는 입자가 파동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물질파는 해당 물체의 크기가 약 10억분의 1m 정도로 아주 작고 가벼워야 한다. 파동함수는 단순한 파동이 아니라 존재할 확률이다. 파동 함수는 반드시 어디에서나 같은 값은 아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결정론적인 꿈을 산산이 부순다. 전자의 위치를 치밀하게 예측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저자는 슈뢰딩거 방정식은 완전히 결정론적이라 말한다.

 

이것을 이용하면 파동 함수의 형태와 시간에 따르는 변화를 매우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우연을 개입시키는 것은 오로지 최종 단계인 측정을 할 때다. 반대로 입자의 에너지 값을 정하고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면 계산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으며 이 값은 이후 실험을 통해 완벽히 확인된다. 양자 물리학은 흐릿한 것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며 심지어 역학이나 광학보다도 정확하다.

 

얻고자 하는 것을 잘 선택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입자의 에너지를 악보 형태로 표현한다. 양자화는 불연속적인 세계를 표현하는데 이 세계는 잘 분리된 층계참들로 이루어져 있고 한 층계참에서 다른 층계참으로 솟아오를 가능성은 있지만 두 층계참 사이에 있는 것은 절대 금지된다. 과학에서는 유추의 미에 눈이 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며 원자가 태양계와 닮아 있다는 아이디어를 버리라고 말한다. 파동 함수의 원형들을 오비탈이라고 부르는 것은 행성의 궤도를 연상시킴으로 그릇된 명칭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전자들은 같은 장소에서 문자 그대로 상호 침투하며 합쳐지려는 구름 같다고 말한다. 이것이 원자를 표현하기 까다로운 이유다. 산소 원자는 우리들의 몸, 대서양, 화성 또는 이 책 등 어디에서 나온 것이든 언제나 정확히 같은 특성과 같은 형태를 갖는다. 이것은 물질의 동일성이라고 한다. 원자에 핵심적 특성을 부여해 이 원자를 비슷한 다른 것과 구별 짓는 것은 사실 각 원자의 전자 중 맨 마지막 전자다.

 

오비탈의 다양성과 원자들이 서로 합쳐지는 방식의 다양성 덕분에 액체, 기체 또는 고체, 금속, 절연체 단단하고 무른 물체, 색깔, 광채가 나는지, 투명한지, 자성을 띠는지 등 여러 양상이 나타난다. 기체를 들뜨게 하면 기체의 전자들은 갑자기 더 높은 에너지로 도약해 형태를 바꾼다. 그리고 잠시 후 처음 상태로 되돌아온다. 그렇게 하면서 전자들이 빛을 내는데 이것이 우리가 프리즘을 통해서 보는 빛이다. 빛의 색깔은 전자들이 받았다. 되돌려준 에너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보라색은 네 번째 에너지 준위와 일치하고 파란색은 세 번째 에너지 준위와 일치하는 식이다.

 

불확정성원리를 적용하면 열역학은 심지어 절대 0도에서도 원자들이 계속해서 조금씩 움직일 거라고 예상한다. 원자들은 0점 에너지를 가진다. 구체적이며 놀라운 결과로 절대 얼지 않는 액체 헬륨이 존재한다. 불확정성원리가 위치와 속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와 시간도 이 원리와 관련이 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불확실해지는 것은 바로 에너지다. 에너지는 크게 변동하기 시작하는데 때로는 미세하게 때로는 엄청나게 요동친다. 이 기이한 유령 에너지는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심지어 진공에서도 이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진공의 양자적 요동이라고 한다. 파동항수가 둘로 나뉠 때 일부는 벽을 통과하고 나머지 일부는 튕겨 나온다는 것이 입자가 둘로 나뉜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입자는 측정되면 때로는 왼쪽에 때로는 오른쪽에 물질화되어 나타난다는 뜻이다. 관련된 확률은 슈뢰딩거 방정식을 이용해 계산한다. 파동이 벽을 통과할 확률은 장벽의 높이, 입자의 에너지와 질량에 달려 있다. 장벽이 높을수록, 입자가 무거울수록 또는 입자의 에너지가 작을수록 장애물을 뛰어넘기가 더 어렵다.

 

이것은 승마 경기에 나선 말의 경우와 같다. 그런데 양자 입자가 가볍고 빠르면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을 통과할 수 있다. 이것을 터널 효과라고 한다. 장벽에 갑자기 구멍이 생겨 가끔 입자가 통과하도록 해주는 거라고 비유할 수 있다. 터널효과의 원인은 입자의 파동성이다. 양자 파동이든 빛의 파동이든 파동이 거울 같은 벽으로 보내지면 이것은 반사된다. 하지만 파동이 튕긴 거울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파동이 전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파동이 아주 작은 일부만 거울의 두께 속으로 침투해 그곳에서 거의 즉시 엄청난 양이 사라져버린다.

 

이 작은 잔여물이 소멸파다. 효과는 아주 미약하다. 빛의 파동은 반사면에서 기껏해야 몇 백 나노미터 정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양자 파동 함수가 장벽에 도달하면 반사되지만 조그만 일부는 장벽의 두께 속으로 들어간다. 터널 효과가 없다면 인류는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터널 효과 덕분에 우리의 태양이 빛나기 때문이다. 터널 효과 덕분에 두 양성자는 결국 충분히 가까워져 태양 안에서 융합한다. 측정은 양자 이론의 가장 까다로운 주제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실험자가 무엇을 하든 입자를 찾아내고자 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입자에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쳐 갑자기 그것의 파동 함수를 붕괴시킨다. 결잃음은 왜 양자 입자가 환원되어 파동성을 잃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 몸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각기 양자적이고 파동적이라고 설명한다. 이점이 우리 몸에도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우리 몸의 원자들은 같은 보조를 취하지 못한다. 우리 몸에서 나는 열, 몸에 있는 어마어마한 수의 원자, 그리고 이것들의 끊임없는 운동 등 모든 요소가 즉시 결잃음을 유발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양자적 발현을 막는다.

 

우리는 파동을 닮아 있지도 않고 두 슬릿을 통과해 간섭할 수도 없으며 결잃음 때문에 덜 중첩되는 존재도 아니다. 양자 물리학에서는 인과관계라는 개념 자체가 의문시 될 정도로 우연이 고유한 특성처럼 보인다. 저자는 세 개의 해석을 말한다. 닐스 보어의 코펜하긴 해석, 루이 드 브로이와 데이비드 봄의 파일럿파 해석, 다세계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 물리학과 고전 물리학의 경계가 어디인지 전혀 말해주지 못하며, 파일럿파 해석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과학자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관점은 기권이다. 양자 물리학을 하려면 확률과 비결정론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해석에 의존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측정하고 계산하고 예측해서 결국 당신이 얻은 결과를 발표하면 된다. 태양의 흰빛은 다양한 색깔의 파동이 중첩되는 것이다. 빗물 방울이 이 색깔들을 분리해 각 색의 파장에 따라 경로를 바꾼다. 이런 식으로 무지개는 빨강에서 보라까지 색깔별로 하늘에 흩어진다. 중첩 원리는 다양한 성질의 모든 파동에 적용된다.

 

모든 양자적 물체는 파동처럼 움직이므로 양자적 물체 역시 이 현상과 관련이 있다. 파동 함수는 진짜 진동이 아니어서 확률만 설명한다. 측정하면 파동이 한 점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이 입자를 동시에 두 곳에서 직접 관찰할 수는 없다. 전자가 실제로 동시에 두 곳에 있다고 결론짓는 것은 어폐가 있다. 전자가 모든 면에서 동등한 두 경로 중 어느 하나를 자유롭게 통과해 간섭 무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저자는 연약한 중첩 상태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입자를 측정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중첩은 양자적 특성 대부분을 품에 안을 수 있다. 중첩 덕분에 입자는 동시에 두 가지 상태에 있을 수 있으며 각 상태는 고유한 에너지 준위를 갖는다. 이때 에너지 값은 두 준위의 중간값이 아니라 이 값인 동시에 저 값이다. 중첩은 스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물체는 어떤 크기일 때까지 동시에 두 상태를 점유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든 에르빈 슈뢰딩거다.

 

그는 슈뢰딩거 고양이라는 유명한 실험을 제안했다. 저자는 어떤 물체가 이 크기 이상으로는 양자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정확한 경계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첩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 있는 것은 아주 단순한 벤젠 분자다. 이 유기화합물은 다양한 플라스틱 제조에 쓰인다. 이곳의 기하학적 구조는 단순하다. 탄소 여섯 개로 이루어진 육각형 모양이며 각 탄소는 팔을 뻗어 수소 하나를 매달고 있다.

 

탄소는 매번 어떤 이웃과 함께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전자를 공유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어떻게 결정할까? 사실은 선택하지 않는다!(149 페이지) 수소와 산소 원자들이 서로 결합할 수 있는 것은 양자 중첩 덕분이다. 이들 전자의 스피는 동시에 위 방향과 아래 방향을 향한다. 중첩은 가장 단순한 전쟁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고체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얽힘은 이론을 통해 완벽히 설명될 뿐 아니라 30년 전부터 해온 모든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미스테리라는 말은 얽힘이 우리의 직관을 넘어서 있다는 뜻이며 이전 장들에서 설명한 다른 역설들보다 더 역설적이라는 의미이다.

 

전자는 전하량, 질량, 그리고 스핀을 갖는다.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멀리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두 입자가 멀리서 즉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국소성 원리에 의지했다. 이 원리는 어떤 물체가 지금 있는 근접한 환경을 통해서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상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틀렸다. 얽힘에 관한 실험은 사실 양자 물리학이 국소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떤 이들은 우리의 의식이 없이 양자 원자와 양자 입자로 만들어졌고 이 의식이 우주 전체와 얽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리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얽힘은 지극히 연약한 현상이다. 얽힌 두 입자 중 하나와 경로에 있는 다른 원자들 간의 아주 작은 상호작용도 즉시 효과를 파괴한다. 여기서도 결잃음이 작동한다. 이야기들을 읽을 때 우리는 제한 없는 즉각적 소통을 꿈꾸게 된다.빛이 화성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인 4분을 기다리지 않고도 화성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얽힘을 이용해 빛의 속도로 능가할 수 있을까? 답은 불행해도 아니오다. 전달되는 것은 선택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쓸모없고 그저 수많은 양자 역설을 탐구하는 내 효용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여러 기술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이미 상용화된 기술도 있다. 구별 불가능성은 우리 세계의 차원에는 존재하지 않는 순전히 양자적인 특성 중 하나다. 그러므로 그것을 우리의 고유한 기준과 직관으로 살펴보기는 어렵다. 동일한 페르미온 두 개는 같은 지점에 있을 수 없다. 보손은 다르다.

 

페르미온은 외로운 늑대다. 보손은 양자 물리학의 양이어서 떼로 이동하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서로 겹치게 쌓여 있기도 좋아한다. 스핀은 영어로 돌다(회전하다)라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전자의 스핀은 전자의 자체적 회전을 뜻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자는 부피가 없는 점이기 때문이고 빛의 속도보다 빨라야 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스핀은 전자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양자역학적 성질을 의미한다. 스핀은 언제나 정수 또는 반 정수다.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잘 조율된 물리량일 것이다.

 

정수(整數) 스핀을 갖는 원자는 모두 보손, 반정수(半整數) 스핀을 갖는 원자는 모두 페르미온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광자를 매개로 서로 끌어당긴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여전히 이 책을 읽고 있는가?(162 페이지), 여러분을 이해시키지 못했을까?(183 페이지) 등이다. 저자는 배타 원리 덕분에 원자 속 전자들의 파동함수가 다양해지고 그 결과 원자도 다양해진다. 우리 우주가 풍요로운 것은 그 때문이다.(186 페이지) 또한 이 원리는 분자 대부분의 존재를 보장해준다.

 

공유결합은 전기적 상호작용과 배타 원리가 교묘하게 섞인 결합이다. 흔히 물리학자들은 거만한 눈으로 동료 화학자들을 대한다. 아마도 이것은 두 학문의 역사적 기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물리학은 갈릴레이, 뉴턴과 함께 탄생했고 이들은 세계에 대한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을 제시했지만 화학은 연금술사 덕분에 여러 의식으로 가득한 마법 세계에서 첫 발을 떼었다. 양자 물리학이 탄생한 이후 카드 패는 다시 섞였다. 화학과 물리학은 하나의 동일한 학문이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이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189 페이지) 마지막 문장은 양자역학의 탄생으로 원자와 전자의 행동을 물리학적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화학적 결합과 반응 역시 물리학의 법칙 안에서 이해되기 시작했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원자의 움직임은 드브로이 파장이라는 특수한 물리량에 의존한다. 물질이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는 드브로이 파장에 의존한다는 의미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에 이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보손 기체의 움직임을 해석한 최초의 인물이다. 저자는 물리학계의 7대 불가사의를 고르라고 하면 주저 없이 보스 아인슈타인 응축을 꼽을 것이라고 말한다.

 

때로 물리학의 가장 큰 진전은 뜻 밖의 접근으로부터 나온다. 통찰력 있는 연구자들은 겉보기에 별개인 현상들 속에서 공통 구조를 찾아낸다. 그들은 이 그럴듯하지 않은 조합에 근거해 새로운 통일적 이론을 쌓아오는 데 열중한다. 뉴턴은 물체의 추락과 행성의 운동이 같은 방식으로 설명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고전역학을 만들어냈다.

 

보손과 페르미온을 구분 짓는 것은 스핀이다. 이것이 정수이면 보손, 반정수이면 페르미온이다. 전자는 페르미온이다. 스핀이 2분의 1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자 둘이 쌍을 이루면 이 쌍의 스핀은 정수가 되고 보손처럼 움직일 것이다. 저자는 기초 연구의 시간은 기업가의 시간이 아니며 언론의 시간은 더더욱 아니라고 말한다. 그 시간은 아코디언 연주다. 연구자들은 흔히 수십 년에 걸쳐 한 걸음씩 아주 천천히 전진을 이루고 그러다 갑자기 어떤 발견을 하면 그것은 결국 새로운 성장을 동반해 연구 분야에 깊은 변화를 일으킨다.

 

저자는 현재의 양자 컴퓨터는 거의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전자공학은 우리에게 개척해야 할 흥미로운 연구의 장, 극한에 도전하는 양자물리학, 얽힘 상태에 있는 수백 마리의 슈뢰딩거 고양이를 제공한다. 아마도 그렇게 환상적인 양자 컴퓨터는 결코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낙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253 페이지) 양자 물리학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고 길들여야 그게 뭔지 제대로 알 수 있다.하지만 제대로 아는 그때부터 우리는 깊은 당혹감에 빠진다.

 

양자역학은 물질의 특성 대부분을 설명해준다. 물질의 내구성, 분자의 안정성, 자성 등 우리 일상의 모든 요소 역시 양자를 기반으로 한다. 마찬가지로 LED에 공급되는 전류는 그 안에 전자를 들뜨게 에너지를 제공한다. 이 전자들은 즉시 여분의 에너지를 내놓으며 광자를 방출한다. 이 전구의 색깔은 전자가 방출한 에너지 양에 의해서만 달라진다. 에너지 차이가 가장 적으면 붉은색, 가장 크면 파란색이다.

 

책 내용들 중 인상적인 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크립토크롬을 양자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양자물리학에 반한 이유는 이 학문이 가장 소중한 것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여행으로의 초대다. 이 학문은 우리에게 특이한 산책을 제안한다. 마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의 벽을 통과할 때 발견하는 마법 세계의 방식처럼 양자 물리학은 모든 게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마력의 세계, 준엄하고 일관적이지만 완전히 엉뚱한 새로운 법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를 제시한다.(27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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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 작가가 된다는 것에 관한 여섯 번의 강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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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Eleanor Atwood; 1939년 ~ )는 현대 캐나다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시인, 에세이스트, 평론가다. 2000년 요청받은 윌리엄 엠프슨에 대한 강의에서 파생된 [글쓰기에 대하여]는 글쓰기보다 작가의 정체성 및 위상, 독자의 의미 등을 주제로 삼은 책이다. 말할 것 없이 작가는 글쓰기의 주체이고, 독자는 “대상이 없는데 글을 쓰는 소설가는 드뭅니다.”(184 페이지)란 저자의 말대로 작가와 함께하는 존재다. 저자는 자신은 작가이자 독자일뿐 학자도 아니고 문학 이론가도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작가들에게 왜 글을 쓰냐고 묻는 대신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았다. 저자는 글쓰기란 어두움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서 운이 좋으면 어둠을 밝히고 빛 속으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오리라는 욕망 또는 충동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책은 그런 어둠 그리고 욕망에 대한 책이라고 말한다. 어떤 작가도 어려서부터 작가에 대한 편견이 전무한 순백의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그에 걸맞게 책과 고독이 함께했던 어린 시절과 자신이 속했던 가족 이야기를 펼친다.

 

저자가 맞이한 2차 대전 종전 후인 1940년대 후반은 더 이상 전시 생산 체제에 동원될 필요가 없어진 여성들이 무리지어 집으로 돌아와 베이비붐이 일어난 때이다. 저자는 1956년 축구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던 중 갑자기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은 후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자가 처음 시집을 낸 것은 26세 때였다. 문예지를 통해, 그리고 문예지에 글을 기고하는 교수님들을 통해 감춰져 있던 문을 찾았다고 말하는 저자는 노스럽 프라이, 마셜 매클루언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노스럽 프라이와 마셜 매클루언은 20세기 중후반 학계를 흔들었던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의 대표적인 대사상가들이자 토론토 학파(Toronto School)를 이끈 주역들이다.

 

저자는 문을 통과해 시인들이 우글거리는 개미총(塚)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반드시 무언가를 보증받은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짜 보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일까? 어떻게 해야 그만한 수준이 됐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 그나저나 수준이라는 건 뭘까? 이들 중 일부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말인데 훌륭하다는 건 뭘까? 누가 훌륭한지 여부를 결정했으며, 어떤 리트머스 시험지를 사용한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글쓰기가 다른 예술과 차별화되는 한 가지 특징은 외견상 민주적이라는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글쓰기를 표현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저자가 말했듯 머릿 속에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그것이 바로 작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자신은 이중성의 세계에서 자랐다고 설명한다. 이중성의 세계란 저자의 실제 성장 배경과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관통하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저자는 두 독립체 이야기를 한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의 존재 즉 개를 산책시키고 규칙적으로 밀기울을 먹고 세차를 하는 등의 일을 하는 존재와, 아무도 안 볼 때 그 몸을 넘겨받아 글쓰기에 사용하는, 같은 육체를 공유하지만 좀 더 희미하고 애매모호한 또 다른 존재를 의미하는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사무실 게시판에 하나의 문장이 붙어 있다고 말한다. 작품이 좋아서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파테(파이크로스트에 고기, 채소 등을 갈아 만든 소를 채우고 오븐에 구운 것)가 좋아서 오리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는 글이다. 저자는 작가는 글을 쓰고 출간을 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기에 독자가 책을 읽을 때는 이미 바뀐 존재라는 의미에서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중성과 관련된 쌍둥이 이야기를 한다. 그 가운데 카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는 성경이 출처여서 친근하다. 이 밖에 저자가 거론한 예 가운데 로마의 건국 신화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집트의 종교적 핵심인 오시리스와 세트도 있다. 전쟁의 신 마르스와 알바 롱가의 공주이자 제사장(레아 실비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와 연관이 있다. 왕위를 찬탈한 아물리우스 왕에 의해 테베레강에 버려진 쌍둥이는 암늑대 루파의 젖을 먹고 자란다.

 

저자는 여러 문학 작품을 인용하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자는 작가는 글을 쓸 때 자신을 작품 속에 집어넣는데 이렇게 할수록 자신의 진짜 자아를 잃어버린다고 설명한다.(81 페이지) 저자는 평론가들은 곤경을 피하기 위해 소설가를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 말한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해당 작가가 플롯은 잘 짜지만 나머지는 별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견고하고 영속적이지만 말하기는 아니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예수를 이야기꾼으로 소개한다. 저자에 의하면 예수는 우화로 가르치지 글로 적지 않았다. 그 자신이 말씀이요, 소망하는 곳으로 흘러가는 성령인 까닭이다. 또한 예수의 적대자였던 바리새인, 서기관은 법문 즉 기록된 글을 고수한다.

 

저자의 말을 보르헤스의 말과 비교할 만하다. 보르헤스는 “....흔히 인용되는, 글은 남고, 말은 날아간다는 구절은 말이 덧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글(文語)이 항구적이고 죽은 것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말은 빠르고 가벼운 것, 플라톤의 말처럼 빠르고 신성한 것이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모두 말로 가르쳤다.”란 말을 한 아르헨티나의 현재 작가다.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혼자이고, 이야기꾼은 배우처럼 즉석에서 관중에 반응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세대는 돈을 더러운 빨래 같이 여긴 세대라 말한다. “예술적 진실과 돈을 무 자르듯이 나눌 수 있을까요?” 저자는 자신은 한순간도 자신이 글쓰기로, 아니 자신이 쓰는 분야의 글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가 통과한 1950년대 캐나다는 문학을 위한 최적의 장소인 런던, 파리, 뉴욕의 변방이자 타지였다. 그러니 캐나다 작가들은 부득이하게 오롯이 예술을 위한 예술에 헌신하는 길밖엔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미국의 작가 루이스 하이드 이야기를 한다. 하이드에 따르면 진지하게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은 예술의 영역과 돈의 영역을 중재해줄 수 있는 중재인을 잘 얻어야 체면 구기는 지저분한 흥정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작가가 되었을 무렵에는 여성 작가, 특히 여성 시인이 되면 얼마나 고약한 일을 겪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성 작가들은 낭만주의 시대에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으며 천재라는 메달을 별로 걸어 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 여성 작가들은 그들의 힘이 감소했다거나 세계 무대에서 위신이 나아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보다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걸출했던 여자 선배들과 비교해 자신들이 아주 허약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저자는 종류를 막론하고 예술은 종교적 의미에서 수양이라고 말한다.

 

“예술가가 모시는 신은 아름다운 형식을 중시하는 고전주의자 아폴론이어야 할까요? 그게 아니면 말썽꾸러기이자 사기꾼이자 도둑인 헤르메스여야 할까요? 밀턴의 [실낙원]에 나오는 성령을, 아니면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의 서문에 등장하는 불의 뮤즈를, 아니면 마술사 해리 후디니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야 할까요?”(157, 158 페이지)

 

저자는 갓 시인으로 등단한 스무 살 무렵의 자신에게 몸소 트럭 운전사가 되어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실제로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지 직접 깨닫지 않는 이상 시인으로서 어떤 위치에도 오를 수 없다고 말한 한 남자 시인을 떠올리며 자신은 예술과 삶 사이에, 고기를 넣으면 소시지가 나오듯 인과관계가 확실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술 지상주의는 신문과 정치적 반응과 시장의 힘이 공존하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이상적 세계’이자 예술과 사회 양쪽 모두 표 장사로 번 돈을 세면서 코끼리 똥으로 장식된 성모 마리아상 같은 것들을 놓고 충돌하는 곳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래전 자신의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자연을 존중하세요. 그게 여러분이 가진 전부니까요.“란 말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요즘 무엇보다도 자기 보호 차원에서 일기 비슷한 것을 겨우 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독자가 누구인지 안다고 한다. 그것은 3주 후의 자신이다. 기억이 나지 않아 하는 대비책이다. 저자는 혹여 독자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해도 작가는 반드시 독자를 가정해야 하고 언제나 가정한다고 말한다. 물론 가정은 하되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시각화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너무 큰 실패와 너무 큰 성공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본문에 이런 말이 인용되어 있다. ”성공은 오직 인생 황혼기에, 그것도 오직 작은 양만 복용해야 하는 독약이다.“ 최악은 독자들을 만족시키려고 자기 복제를 했는데 오히려 복제라며 비난받는 경우다. 저자는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네‘라는 라틴어 구절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걱정이 그를 짓고자 하는 욕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고 말한다.

 

왜 다른 예술이나 매체가 아닌 굳이 글쓰기가 개인의 최종적 소멸에 대한 불안과 그토록 복잡하게 연결되는 것일까? 그것은 이야기가 펼쳐지면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에서 드러난다. 구부러진 것이 곧게 펴질 수도, 세월 때문에 더 구부러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길이 생긴다. 플롯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상적인 말을 한다. 모든 책의 해피엔딩도 마찬가지다. 토마스 울프의 말처럼 다시는 고향에 못 가더라도 고향에 대해 글을 쓰면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장을 만나게 된다. 책은 또 다른 나라다. 그 속에 들어갔다가도 다시 나와야 한다. 지하 세계처럼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다. 모든 작가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가르침을 얻는다.

 

계속 글을 쓰는 한 작가는 앞서 글을 썼던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탐구하게 된다. 동시에 그들에게 평가받고 질책 당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작가는 작가로부터 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조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죽은 자들은 과거도, 이야기도, 특정한 진실도 모두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마음껏 탐닉하려면 결국 지나간 시간에서 온 사람들과 거래를 해야 한다. 그 지나간 시간이 겨우 어제라 하더라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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