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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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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1883)올랭피아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등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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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에게 양자역학 가르치기 - 나의 첫 양자 수업 프린키피아 2
채드 오젤 지음, 이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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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이자 화학물리학 박사 채드 오젤(Chad Orzel)[우리집 강아지에게 양자역학 가르치기]는 상대성 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양자역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이다. 제목에 나오는 강아지는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강아지에게 양자역학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이다. 강아지는 사람과 다르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는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양자역학이 난해하고 난감해 보이는 것은 양자역학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기대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저자가 의미하는 바는 양자역학을 배우려면 강아지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양자론을 정립하도록 만들어준 발견은 빛과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입자 - 파동 이중성이었다. 일반적으로 파동이라고 생각하는 빛도 어떤 실험에서는 입자의 흐름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입자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전자빔도 어떤 실험에서는 파동처럼 보인다는 사실들도 밝혀졌다. 저자는 앞부분에서 입자와 파동의 차이를 설명한다. 파동 자체는 공간에서 변이의 확산일 뿐 물리적으로 분명한 위치와 속도를 갖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입자는 한 개, 두 개, 세 개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파동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자 물리학을 이해하려면 파동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예전에는 비교할 수 없었던 빛과 소리는 지금은 파동의 상이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이야기된다. 빛과 소리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차이가 나타난다. 빛의 파동은 직선으로 지나가지만 소리의 파동은 장애물을 돌아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소리의 파동은 상당히 넓게 회절되기 때문에 심하게 꺾인 길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일상적인 물체는 빛의 파장보다 너무 크기 때문에 회절을 관찰할 수 없다. 그러나 충분히 작은 장애물에서는 빛의 파동적 특성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플랑크의 편법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빛을 끊어짐 없이 이어져 있는 물(water)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빛을 연속적인 파동으로 생각하니 에너지가 무한대로 나오는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플랑크는 빛을 모래알처럼 쪼개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플랑크의 편법은 물리학자들이 연속적인 파동이라고 생각해 왔던 빛을 입자의 경우처럼 물의 연속적인 덩어리의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플랑크의 가상적인 진동자는 빛을 불연속적인 밝기 단위의 입자로만 방출할 수 있다. 그 진동자가 바로 양자 물리학의 양자라는 개념이다.

 

플랑크가 빛의 양자에 해당하는 광자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것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플랑크는 빛이 불연속적인 양자의 흐름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자신이 사용한 이상한 편법을 쓰지 않고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플랑크의 불연속적인 에너지 계산법을 적용한 결과 주파수가 낮을 때는 고전역학의 비례 그래프를 따르다가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에너지가 무한대로 가지 않고 다시 0으로 떨어지는 완벽한 곡선을 얻게 되었다.

 

닐스 보어는 플랑크의 불연속성 개념을 원자 구조에 도입하여 전자가 아무 궤도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에너지 준위를 가진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광자는 밝기가 아니라 진동수와 관계가 있다. 진동수가 너무 작으면 빛이 아무리 밝아도 전자가 방출되지 않고 진동수가 커지면 아무리 빛이 희미해도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가진 전자가 방출된다. 빛의 밝기는 광자의 개수이고 진동수는 광자 하나의 에너지이다. 빛을 불연속적인 입자의 흐름으로 생각해야 했지만 그런 입자들이 여전히 파동과 마찬가지로 진동수를 가지고 있고 간섭 패턴도 만들어냈다.

 

아인슈타인, 밀리컨, 콤프턴은 모두 빛의 입자성을 밝혀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루이 드 브로이는 빛과 물질 사이의 대칭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자와 같은 물질적 입자도 파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빛 파동이 입자처럼 행동한다면 입자도 파동처럼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드 브로이는 운동량이 파장에 의해서 결정되는 광자와 마찬가지로 전자와 같은 물질적 입자도 운동량에 의해서 결정되는 파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데이비슨, 거머, 톰슨의 실험에 이어서 과학자들은 모든 아원자 입자들이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입자의 질량이 증가하면 파장은 점점 더 짧아지기 때문에 직접 파동의 효과를 관찰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불확정성 원리는 단순히 측정 자체가 시스템의 상태를 바꾼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양자 불확정성은 양자 물체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나타나는 결과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근본적인 한계에 해당한다. 불확정성이 측정에 의한 시스템의 상태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1920~1930년대에 등장했다.

 

마당에 있는 토끼의 위치와 운동량을 아주 정확하게 알아내고 싶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토끼의 위치를 더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면 토끼가 달아나버리기 때문에 토끼의 속도가 변한다. 아무리 느리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더라도 언젠가는 토끼가 도망칠 것이다. 결국 토끼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모두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토끼처럼 지각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도망칠 수 없는 전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려면 빛의 광자가 반사되도록 해서 산란된 빛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전자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광자도 운동량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광자가 전자에 의해 반사되면 전자의 운동량도 변한다. 현미경의 렌즈는 어느 정도 범위의 각도에서 광자를 수집하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 후에는 전자의 운동량이 불확실해진다. 전자가 어느 쪽으로 움직였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자 이론에서는 위치와 속도에 관한 양들이 처음부터 정의되지 않는다. 불확정성은 측정의 실질적인 한계에 대한 법칙이 아니라 현실의 한계에 대한 법칙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측정하기 전에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의 값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값을 물어보는 것부터가 의미가 없다.(68 페이지)

 

양자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모두가 불확실하다고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파동 함수는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나타낸 식을 의미한다.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이를 제곱하면 위치에서 입자가 발견될 확률을 알게 해준다.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운동량의 불확정성과 위치의 불확정성이 지나치게 크지 않은 하나의 파동 다발을 얻는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의 의미는 단순히 위치와 운동량을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그런 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자의 파동적 성질을 설명하려면 전자가 행성과 같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해야만 한다. 대신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일종의 구름처럼 흐릿한 모양으로 떠다닌다고 생각해야 한다.(83 페이지) 전자의 위치는 불확실하지만 원자핵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고, 운동량도 불확실하지만 전자가 원자핵 주위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범위로 제한된다. 일상적인 대상은 너무 크기 때문에 양자역학적 불확정성을 확인할 수가 없다. 아주 작은 입자가 아주 작은 공간에 갇혀 있어야만 불확정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자가 언제나 위치와 운동량 모두에 대해 불확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 에너지가 절대 0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전자의 일부이면서도 에너지가 0이 되려면 전자가 움직이지 않고 원자핵에 멈춰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전자를 원자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려면 원자핵에 중심을 둔 폭이 좁은 전자의 파동 다발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다발에는 운동량이 0이 아닌 상태들이 대단히 많이 포함되게 된다. 그래서 수소에서 가장 낮은 에너지를 가진 상태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에너지는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85 페이지)

 

영점 에너지는 갇힌 입자가 가질 수 있는 절대적 최소 한계가 된다. 시스템을 아무리 조심스럽게 만들어도 입자는 언제나 움직이고 작은 무작위적 요동 때문에 입자가 움직이는 속도의 크기와 방향은 끊임없이 바뀐다. 영점 에너지는 양자 물리학에서 우리의 직관과 가장 확실하게 어긋나는 아이디어 중 하나로 세상에 완벽하게 정지하고 있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시스템으로부터 모든 에너지를 빼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언제나 약간의 에너지는 남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지어 텅 빈 공간도 영점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양자 효과에 의한 불확정성은 일반적으로 매우 작아서 현실적으로 거시적 대상은 확실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다. 과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세상이 얼마나 철저하게 고전 역학적인가 하는 점이다. 양자 물리학에서는 파동처럼 행동하는 입자, 서로 다른 두 곳에 존재하는 대상, 죽어 있으면서 살아 있기도 한 고양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놀라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는 양자 법칙이 일상적인 강아지와 고양이를 포함한 거시적 세계에서 곧바로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양자역학에서 이론을 지배하고 파동 함수를 계산해주고 행동을 예측해주는 수학적 방정식이 있지만 파동 함수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양자역학의 철학적 문제는 대부분 이론의 해석에 대한 것이다. 파동 함수, 허용 상태, 확률, 측정은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이다. 모든 것은 파동 함수를 가지고 있고 파동 함수는 어디를 살펴 보거나 상관없이 어떤 값을 갖게 된다. 양자론에서는 주어진 대상이 언제나 어떤 상태에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전자는 중간 에너지 상태를 거치지 않고 순간적으로 도약한다. 두 상태 사이의 극적인 변화를 양자 도약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에너지도 약에 해당하는 상태 변화에는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전자는 특정한 파장의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한다. 파동 함수는 확실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철학적 문제가 끼어든다. 고전 물리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양자적 무작위적 확률은 매우 난감한 개념이다. 물리학에서는 최후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완전히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실험을 반복하더라도 두 번째 실험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여러 가지 가능한 결과의 확률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상자를 열어서 두 상자 중 어느 하나에 과자가 들어 있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과자가 왼쪽 상자와 오른쪽 상자 모두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빛의 편광은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인 중첩, 측정, 확률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양자 지우개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을 이해하면 양자 물리학의 핵심적인 요소를 모두 이해하는 셈이라고 한다. 이는 입자의 경로 정보(어디로 갔는지)를 지워서 사라졌던 파동의 간섭무늬를 되살리는 실험장치나 현상을 말한다.

 

코펜하겐 해석 진영은 미시적 물리학과 거시적 물리학 사이에 엄격한 경계선을 설정함으로써 중첩과 측정의 문제를 회피해보려고 노력했다. 양자, 전자, 원자, 분자와 같은 미시적 대상은 양자역학의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지만 강아지, 물리학자, 측정 장치와 같은 거시적 대상은 고전 물리학에 의해서 지배된다.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는 절대적으로 구분이 되기 때문에 거시적 대상이 양자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는 절대 볼 수 없다. 양자 측정에는 거시적 측정장치와 미시적 대상의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그런 상호작용이 미시적 대상의 상태를 변화시킨다. 그런 상황을 일반적으로 파동 함수가 단 하나의 상태로 붕괴된다고 표현한다.

 

유진 위그너는 파동 함수가 붕괴되는 것이 친구가 상자를 열었을 때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 결과를 통보 받았을 때인지를 물었다. 역학은 미시적 물체와 그런 물체로 구성된 집단의 성질을 설명하는 데는 훌륭하지만 우리가 보는 세상은 고집스럽고 놀라울 정도로 고전적이다. 미시적 세상과 거시적 세상의 절대적 구분을 고집하는 코펜하겐 방식은 많은 물리학자들에게 문제를 회피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코펜하겐 해석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말해주지만 그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는 설명해주지 못했다.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는 미시 세계의 확률적 법칙과 거시 세계의 결정론적 법칙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어떻게 연결하고 설명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한다. 코펜하겐 해석에 만족한 물리학자는 거의 없다. 그 대안 중 하나가 다중 세계 해석이다. 그들에 의하면 똑같은 사건이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과정으로 진행되는 무한히 많은 대안 우주가 있다. 파동 함수는 언제나 부드럽고 연속적으로 변화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파동 함수의 어느 한 가지만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가지를 보게 되는지는 확률적으로 결정된다.

 

결어긋남은 파동 함수의 서로 다른 가지들이 상호작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이나 다중 세계 해석은 물론이고 다른 해석을 좋아하는지에 상관없이 측정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파동 함수의 물리적 붕괴가 포함되거나 또는 계속 확장되고 진화하는 파동 함수의 여러 가지 중 어느 하나만을 인식하거나 상관없이 측정은 능동적인 과정이다. 상태를 측정하기 전까지 물체는 모든 가능한 상태의 양자적 중첩 상태로 존재하지만 측정을 한 후에는 즉시 하나의 상태로만 관찰된다.(161 페이지)

 

본문에는 양자 제논 효과도 나온다. 제논의 역설의 양자적 해석이다. 1990년 콜로라도에 있는 국립 표준기술연구소의 데이브 와인랜드 연구진의 웨인 이타노가 베릴륨 이온을 이용한 실험으로 양자 제논 효과를 분명하게 확인했다. 터널 현상은 담장을 향해 달려가는 강아지의 경우처럼 장애물을 향해서 움직이는 입자가 마치 장애물이 없는 것처럼 장애물을 통과해 버리는,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양자 현상이다. 양자 입자는 물질의 파동적 성질 때문에 고전 물리학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단단한 물체 속으로 파고 들어가거나 지나가 버릴 수 있다. 가장 분명한 에너지의 형태는 움직이는 물체가 가지고 있는 운동 에너지이다.

 

일상적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 에너지는 질량에 속도의 제곱을 곱한 양의 절반에 해당한다. 운동 에너지는 언제나 0보다 큰 값을 가지며 질량이나 속도가 늘어날수록 커진다.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다른 물체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가능성을 퍼텐셜 에너지라고 부른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무거운 물체는 퍼텐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물체는 움직이지 않지만 지나치게 활동적인 강아지가 테이블에 부딪혀서 바닥으로 떨어지면 운동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183 페이지)

 

에너지는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에서 특히 중요하다. 양자 입자는 잘 정의된 위치나 속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전 물리학에서처럼 그런 성질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도 에너지는 보존되기 때문에 에너지를 이용해서 양자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다. 얽힘(entanglement)은 기본적으로 두 물체의 상태 사이의 상관성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언제나 원인으로부터 결과에 이르는 경로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결정론적 우주관을 철저하게 믿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양자역학에 대해서 심각한 철학적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는 측정하기 전까지는 양자 입자의 성질이 결정되어 있지 않고 확률적인 값을 가진다는 생각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했다.

 

1930년대 초가 되면서 아인슈타인은 어쩔 수 없이 불확정성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양자 이론을 불편하게 느꼈다. 양자역학은 고전 물리학에서와는 달리 멀리 떨어진 측정들도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에서 비국소적 이론이다. 국소성은 고전 물리학의 핵심이기 때문에 의문을 품을 수 없다. 국소성에 따르면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이 필요하다. 공간 이동은 비국소적 상관성을 응용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예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름만으로도 수많은 상상을 하게 되어서 순간적으로 물질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스타트랙]과 같은 과학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A에서 출발한 물체가 부드러운 폭음과 함께 사라졌다가 멀리 떨어진 B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 소설에서 보았던 것과 비교하면 실제 양자 공간 이동은 실망스럽게 보인다. 양자 공간 이동은 물체 자체가 아니라 물체의 양자 상태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더욱이 정보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의 속도도 빛보다 느리다. 과학 소설에서 꿈꾸는 공간 이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공간 이동의 핵심은 원격 복사라고 할 수 있다. 한 곳에 있는 물체를 다른 곳에 있는 복제품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는 팩스 장치가 고전 물리학을 이용한 공간 이동의 예가 될 수 있다.

 

중간 이동이 가능한 것은 양자 물리학이 비국소적이기 때문이다. 공간 이동 개념은 1993년에 처음 소개되었고 1997년에 안톤 자일링거가 이끄는 인스부르크 연구진에 의해 처음으로 증명되었다. 그들은 자외선 레이저에서 나온 광자를 두 개의 적외선 광자로 변환시켜주는 결정을 통과시켜서 얽힌 광자를 만들었다. 각각의 적외선 광자의 에너지는 본래 자외선 광자의 절반이 되었다. 그들은 두 차례에 걸쳐서 레이저를 결정해 통과시킴으로써 모두 4개의 광자를 만들었다. 광자 2와 광자 3의 쌍은 공간 이동에 필요한 얽힌 쌍으로 사용했고 나머지 두 개의 광자 중 하나인 광자 1은 공간 이동이 될 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편광기를 통과시켰다. 나머지 광자 4는 언제 자료를 수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를 사용했다.

 

저자는 물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양자 공간 이동을 이용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양자 공간 이동은 특정한 상태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준다. 그렇다면 양자 공간 이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명이 없는 물체를 옮기는 데에는 양자 공간 이동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식이 있는 대상을 옮기는 경우에는 반드시 양자 공간 이동이 필요하다. 의식은 근원적으로 양자역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도 있다. 로저 펜로즈는 [황제의 새 마음]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그런 주장이 옳다면 사람이나 강아지의 뇌 상태를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팩스 장치가 아니라 양자 공간 이동장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사람을 공간 이동시킬 수 있는 단계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양자 공간 이동에 대한 관심은 훨씬 더 작은 물체에 한정되어 있다. 위치와 운동량에 대한 불확정성 외에 에너지와 시간의 불확정성도 있다. 직접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입자인 가상 입자는 심각한 과학 이론에서는 지나치게 환상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입자들이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빛과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양자 전기 역학 또는 QED라고 부르는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가상 입자는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가상 입자와의 상호작용이 전자의 상호작용 방식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그런 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 효과는 아주 작지만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실험 결과와 소수점 아래 14 자리까지 일치한다. 이런 실험은 QED가 옳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 아니라 수십억 달러가 필요한 입자가속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새로운 아원자 입자의 존재를 알아 낼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양자역학은 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리 불가능하고 신기하게 보이더라도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일반 원리에 맞는 과학 이론이다. 현상이나 장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양자라는 단어가 공짜로 에너지를 만들어 주거나 메시지를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보내도록 해주지는 않는다. 양자역학의 원리는 우주의 심오한 구조 속에 들어 있다. 양자역학은 그런 법칙을 따를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그런 법칙이 양자적 특성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양자역학의 여러 가지 예측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통찰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모든 상식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양자역학은 사실이기에는 너무 그럴듯한 것은 거의 확실히 엉터리라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상식 법칙을 넘어서지 않는다. 양자 물리학에 따르면 영점 에너지는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경우에도 존재하는 에너지다. 운동 에너지를 최소값으로 만들고 퍼텐셜 에너지를 증가시킬 수 있는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모두 제거해 버림으로써 양자 시스템으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꺼내더라도 여전히 시스템에는 잔류 에너지가 남는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마찬가지로 영점 에너지는 물질의 기본적인 파동적 성질에서 비롯되는 결과이다. 우리가 불확정성에 의한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점 에너지를 이용해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없다. 영점 에너지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광자의 절반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요구는 의미가 없다. 양자 자유 에너지에서 주로 언급되는 또 다른 요소는 진공 에너지다. 이것은 QED에 따르면 반드시 존재하는 가상 입자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빈 공간의 영점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영점 에너지 주장의 변종이다.

 

양자역학을 잘못 이용하는 또 다른 주요 분야가 대체의학이다. 서점과 인터넷은 양자역학이 건강과 부와 장수의 열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런 주장에서 가장 흔하게 활용되는 것이 바로 양자 측정이다. 사기꾼들은 양자 이론에서 측정하기 전까지는 상태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자신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그런 식이라면 스스로에게 양자 제논 효과 실험을 반복하면 영원히 사는 것도 가능해진다. 자신이 언제나 건강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그런 양자 측정이 몸이 병들지 않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자 효과는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연구대상이 커질수록 확인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양자 중첩 상태가 확인된 가장 큰 물체는 수십억 개의 전자가 모인 경우이고, 양자 제논 효과는 하나의 입자에서만 확인되었다. 양자역학은 이상하지만 훌륭한 이론이고 흥미로운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현대 기술은 어떤 식으로든지 양자역학에 의존한다.

 

현대 전자 장치와 컴퓨터 칩은 양자역학에 의해 작동하고 현대 통신에 사용하는 레이저나 LED와 같은 공학 장치도 기본적으로 양자 장치이다. 놀라운 사실은 양자역학이 기적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예측이 일상적인 통찰과 어긋나기는 하지만 이론 그 자체가 상식을 완전히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약속하는 사람은 거짓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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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속 물리학 - 런던 대학교 물리학 교수가 들려주는 일상 속 과학 이야기
헬렌 체르스키, 하인해 / 북라이프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물리학자이자 해양학자인 헬렌 체르스키의 책이다. 헬렌 체르스키는 자연과 사물을 설명할 때 '기계(Machine)'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저자가 대상을 기계로 표현하는 이유는 물리학자이자 해양과학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체르스키는 바다나 인체를 단순한 물질의 덩어리가 아니라, 태양에너지나 영양소를 받아 전 지구적·생명체적 규모로 순환시키는 동적인 독립 시스템으로 바라본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바다의 해류와 밀도 변화, 인체의 세포와 근육 움직임이 모두 정교한 물리학적 규칙에 의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다.

 

저자는 물리학은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도구가 되며 관심 있는 현상들을 설명해주기에 물리학을 공부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물리학의 몇 가지 기본 원리를 알면 세상은 장난감 상자가 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물리학은 동일한 패턴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멋지다. 과학은 사실은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사물을 이해하는 논리적 과정이다. 저자는 말한다. 과학의 핵심은 가능한 한 모든 증거를 검토해 스스로 실험한 후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자신은 해수면의 물리 현상을 연구한다고 말한다. 실험주의자라 바다에 나가 하늘과 바다의 복잡하고 아름다운 경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는 것이 자신이 하는 일의 일부라고 말한다.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1687[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두 물체 사이의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규칙을 토대로 지구의 각 부분이 서로 당기는 힘을 합하면 옆으로 작용하는 힘은 상쇄되어 결과적으로 지구 중심을 향해 아래로 작용하는 힘만 남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저자는 지구의 거대한 엔진인 바다는 다른 모든 것처럼 중력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한다. 바닷물이 담긴 그릇을 계속 젓는 것은 열과 염분이다.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밀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밀도가 다른 각 부분의 유체는 중력 싸움에 적응하기 위해 유동한다. 바다의 염도는 모든 곳에서 균일하지 않다. 3.1%에서 3.8% 사이로 차이가 큰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문제다. 탄산음료에 설탕을 넣으면 밀도가 높아지듯 바닷물은 다량의 소금 때문에 담수보다 밀도가 높다. 뜨거운 물이 따뜻한 물보다 밀도가 높다.

 

바다의 온도는 극지방에서는 섭씨 0도까지 내려가고 적도 부근에서는 섭씨 30도에 이른다. 따라서 차갑고 염도가 높은 물은 가라앉고 따뜻하고 염도가 낮은 물은 떠오른다. 물은 이 같이 단순한 원칙에 따라 지구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한 방울의 바닷물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수천 년이 걸린다. 북대서양에서 바닷물은 바람에 열을 빼앗겨 온도가 내려간다. 해수면이 얼어 생긴 얼음은 주로 물로 이루어지고 소금은 바닷물에 남는다. 이 과정에서 바닷물은 온도가 더욱 내려가고 염도와 밀도는 높아져 중력의 법칙에 따라 해저 바닥을 향해 밑으로 가라앉아 밀도가 낮은 물을 밀어낸다. 이후 해저 바닥을 천천히 유영하다가 강물처럼 협곡을 흐르고 산등성이에 부딪히기도 한다.

 

북대서양에서 출발한 바닷물은 해저에서 1초에 몇 센티미터씩 남쪽으로 흐르고 약 1000년 뒤 첫 장애물인 남극대륙에 도달한다. 그리고 대륙 때문에 남쪽으로 이동하는 길이 막히면서 동쪽으로 움직이다가 남극해를 만난다. 지구 바닥의 거대한 해양 교차로인 남극해는 남극대륙을 감싸고 돌면서 대서양 하단, 인도양, 태평양과 결합해 모든 바닷물을 연결한다. 북대서양에서 출발해 천천히 흐르던 엄청난 양의 바닷물은 남극대륙 주변을 돌다가 다시 북으로 이동해 인도양이나 태평양으로 향한다. 1600년 동안 한 줄기의 햇살도 받은 적 없던 물이 주변의 물과 점차 섞여 밀도가 내려가면 해수면으로 떠오른다. 그곳에서 빗물, 강물, 얼음이 녹은 물로 염분이 희석되고 바람이 일으킨 해류에 밀려 다시 북대서양에 돌아오는 여정은 재개되고 반복된다. 이를 열염분 순환이라고 부르며 이 같이 바닷 물이 역전되는 현상을 해양 컨베이어 벨트라고 한다.

 

지구의 기상 패턴 뒤에는 열-염분 순환이라는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극단적 기상 상황을 잠재우는 안정적 열 저장고 위에서 변덕스럽고 얇은 대기층이 움직인다. 바람이 일으키는 해수면의 표층 해류는 몇 세기 동안 탐험가와 상인을 실어 날랐다. 그런데 해양의 컨베이어 시스템은 탐험가와 상인 만큼 인류 문명에 중요한 요소인 열을 이동시킨다. 모든 관심은 대기가 받지만 배후 세력은 바다다. 지구본이나 지구의 위성 사진을 볼 기회가 있다면 바다를 그저 대륙 사이를 메우는 파란 공간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천천히 움직이는 거대한 해류를 이끄는 중력을 상상하면서 파란 부분이 지구의 가장 큰 엔진임을 기억하자.(93 페이지)

 

케첩은 특이하게도 천천히 밀면 거의 고체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빠르게 힘을 가해 움직이면 액체처럼 쉽게 흐른다. 케첩이 병 바닥이나 포테이토칩 위에 있다면 가해지는 힘은 약한 중력 뿐이므로 고체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세게 흔들어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액체처럼 매우 빠르게 이동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빠르게 하는지 느리게 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점액은 당단백질이라고 부르는 아주 긴 분자들이 섞인 젤(gel)이다. 젤은 가만히 있을 때는 사슬 사이에 화학적 연결고리들이 생성되어 고체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세게 밀면 바로 고리들이 끊어지면서 스파게티 면 가닥처럼 긴 분자들이 풀어진다. 그대로 몇 초가 지나면 다시 고리들이 생기며 젤이 된다.

 

흘러내리지 않는 페인트 역시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페인트는 가만히 있으면 걸쭉하고 찐득하다. 하지만 붓으로 누르면 점성이 떨어져 벽에 얇게 펴 바를 수 있다. 그리고 붓을 떼면 바로 점성이 높아져 마르기 전까지 벽에서 흘러내리지 않는다.

 

빗방울이 바위 위로 떨어지면 시간 척도는 달라진다. 빗방울이 떨어진 바위는 화강암이다. 인간의 기억에서 움직이거나 변한 적이 없다. 하지만 4억 년 전 남반구에 거대한 화산 분출이 있었고 아래에서 나온 마그마가 화산암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이후 수천 년 동안 마그마가 식으면서 서서히 여러 모양의 결정으로 분리되고 단단한 화강암이 되었다. 시간이 더 흘러 커다란 돌덩이는 빙하기를 거치면서 쪼개지고 식물과 얼음에 의해 깎이고 비에 침식되었다. 그러다가 화산활동이 뜸해지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발로 화산활동이 끝난 후 대륙의 일부였던 암석이 북쪽으로 이동해 왔다. 지구가, 지표면에 잘 맞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이리저리 끼워 맞추는 동안 여러 종과 지질학적 시대가 출현했다가 사라졌다.

 

거대한 화산이 폭발한 후 지구가 살아오는 시간 중 10분의 1 만큼의 기간이 지난 지금 화산이 남긴 것은 폭발 후 밖으로 튀어나온 내장의 잔해다. 그 잔해 중 하나가 영국 제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1345미터의 벤 네비스 산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생명이 약 37억 년 전 심해 열수 분출구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측한다. 분출구 안은 따뜻한 알칼리성 물이었다. 바깥은 약산성의 차가운 바닷물이었다. 분출구 표면에서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이 섞이면서 평형이 이루어졌다. 초기 생명체는 평형으로 가는 경로 가운데서 수문 역할을 하다가 탄생했다고 여겨진다. 평형 상태로 가는 흐름은 방향을 틀어 최초의 생체 분자들을 만들었다. 최초의 수문은 성벽 즉 생명이 있는 안과 생명이 없는 밖을 구별하는 세포막으로 진화했다. 최초의 세포는 평형 상태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 남았고 평형 상태를 피해야만 정교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세계로 가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우주의 다른 세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항성과 행성의 수는 아주 많기 때문에 생명체가 출현하기 위한 조건이 아무리 까다롭더라도 어디선가는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우주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우리에게 전파 신호를 보낼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도 우주는 엄청나게 광활해서 전파 신호를 개발한 문명은 우리에게 보낸 신호가 도달하기 한참 전에 멸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체가 전혀 의도치 않게 우주로 신호로 보낼 수는 있다. 하와이에 있는 마우나케아 산 정상의 산등성이 위에 한 쌍의 망원경 돔이 나란히 있다. 돔은 처음 봤을 때 우주를 쏘아보는 거대한 개구리의 눈 같다고 생각했다. 이곳의 이름은 켁 천문대로 태양계 밖 생명체를 최초로 발견할 거대한 눈동자가 있다.

 

물의 신기한 동결 현상은 꽁꽁 언 북극해에서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노르웨이 최북단에 있는 해변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북극해가 보인다. 얼음이 없는 여름 동안 24시간 내내 끊이지 않는 햇빛은 작은 해양 식물로 조성된 이동하는 거대한 숲에 영향을 공급하고 물고기, 고래, 바다 표범이 이곳에서 배를 채운다. 여름이 끝나가면 빛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한여름에도 섭씨 6도에 불과했던 해수면 온도는 더욱 낮아진다. 서로 미끄러지듯 지나다니던 물 분자의 속도도 느려진다.

 

이곳의 물은 염도가 높아 영하 1.8도까지 액체 상태로 머물 수 있지만 맑은 날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얼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얼음 쪼가리가 물 위로 떠오르고 가장 느린 물 분자들이 얼음에 부딪히면서 그대로 달라붙는다. 하지만 아무 곳에나 달라붙을 수는 없다. 분자는 얼음에 부딪혀 결합할 때 다른 분자의 위치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는다. 분자들이 서로 부딪히며 움직이던 구조는 규칙적인 육각형 격자로 배열되는 결정 형태로 바뀐다. 온도가 떨어질수록 얼음 결정은 커진다.

 

얼음 결정이 독특한 이유는 엄격하게 정렬된 분자들이 따뜻한 온도에서 돌아다닐 때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물질은 분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때보다 규칙적인 격자 형태로 정렬될 때 간격이 좁다. 하지만 물은 그렇지 않다. 결정체는 크기가 커지면서 주변 물보다 밀도가 낮아져 위로 떠오른다. 물은 얼면서 부피가 커진다. 그렇지 않다면 얼음은 가라앉아 극지방의 바다는 지금과 매우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온도가 떨어질수록 얼음은 커지고 바다 위를 덮은 단단하고 하얀 부분은 늘어난다.

 

전자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춤춘다. 전자의 춤이 만든 화면을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작은 부품들이 정확한 시간에 정확하게 작동해야 한다. 따라서 초기 텔레비전에는 다이얼과 단추가 많았고 텔레비전 주인들은 이를 조작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나침반의 주요 목적은 길을 찾는 것이다. 둥근 지구의 표면 위에서 길을 찾는 일은 언제나 어렵지만 수 세기 동안 탐험가들은 지구의 자기장을 믿고 의지했다. 지구는 자북극과 자 남극이 있어 누구라도 나침반을 이용해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자성은 단순하고 저렴하며 결코 닳지 않는 훌륭한 항해 도구다. 하지만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첫 번째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로 지구의 자극은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극은 이동할 뿐 아니라 이동거리가 엄청나게 길 수 있다.

 

우리 발 아래 깊은 곳에 있는 외핵은 철이 풍부하고 천천히 회전하고 있다. 열은 지구 중심에서 지표면으로 옮겨가고 지구가 회전하면서 용해된 암석 또한 회전한다. 느리게 움직이는 외핵에 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전기 전도체 역할을 하고 따라서 토스터의 전자석처럼 행동할 수 있다. 외핵이 회전하면서 발생하는 전류가 지구의 자성을 생성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은 용해 된 암석이 느리게 이동하며 일어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암석의 움직임이 변하기 때문에 자극들이 이동한다. 철 함유량이 높은 외핵 암석은 지구 전체가 회전하면서 같이 회전하기 때문에 자극은 지구의 자전축을 따라 대략 정렬되지만 대략 일 뿐이다. 따라서 정확한 방향으로 항해를 해야 한다면 자북극과 진북은 동일하지 않으므로 현재 자북과 진북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의 지도는 자북극과 진북 모두 알려준다.

 

저자는 우리 몸은 다양한 종류의 원자로 구성되지만 원자들이 배열되는 방식 때문에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직접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줄 도구를 만드는 데 능숙한 전문가다. 우리는 손 안에 끓는 물을 담을 수 없지만 강철로 된 주전자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밀봉된 용기가 아니므로 말린 잎을 보관할 수 없지만 유리병이 대신 해줄 수 있다. 우리는 집게발이나 껍데기, 상아가 없지만 칼과 옷, 통조림 따개를 만들 수 있다. 세라믹 컵 덕분에 연약하고 민감한 우리 손가락에 열에너지를 전달하지 않고 뜨거운 음료를 담을 수 있다. 금속, 플라스틱, 유리, 세라믹은 나무, 종이, 가죽같이 생물학적 물질과 함께 인간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338 페이지)

 

우주의 모든 물질은 수소, 탄소, 산소 등 동일한 기본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연필심(흑연)과 다이아몬드가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갖는 것처럼, 원자가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 그 물질이 할 수 있는 일과 성질이 완전히 결정된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자의 종류는 사실 지구상의 흙이나 돌, 또는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인간이라는 형태로 원자들이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걸어 다니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그 배열의 규칙(뼈의 강도, 근육의 수축 한계, 신경 전달 속도)을 벗어나는 일(: 날개 없이 하늘을 날거나, 벽을 통과하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 너머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지구 시스템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인 암석, 대기, 바다, 얼음, 생명체는 서로 상호작용한다. 구성요소마다 고유의 리듬과 역학이 있지만 지구가 다양성을 갖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춤이 구성 요소들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구성 요소들은 모두 같은 힘에 이끌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비슷한 현상들이 발견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들로 이루어진 하늘의 공기는 부력에 따라 이동한다.

 

우리가 나온 건물의 난방에 의해 온도가 올라간 공기는 주변 공기보다 밀도가 낮아 위로 떠오른다. 따뜻한 지면에서 올라온 공기 기둥은 수 킬로미터에 이르고 1km를 오르는데 약 5분이 걸린다. 차갑고 밀도가 높은 공기는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아래에서 흐른다. 이러한 대류의 패턴은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 전반에 걸쳐 있다. 공기는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깊은 바다의 표면을 바라보면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력이 존재한다.

 

물은 1번에 한 알갱이씩 깎여나가므로 자갈들은 수백만 번의 무작위적인 충돌로 지금의 모양을 갖춘 것이다. 아주 작은 알갱이를 깎는 것은 1/1000초면 충분하지만 자갈은 수년 동안 서서히 마모된 후에야 반질반질해진다. 지질 연대에서 해변은 일시적이다. 새로 공급되는 자갈과 모래의 양이 바다로 씻겨 사라지는 양보다 클 때만 유지될 수 있다. 앞으로 수개월 그리고 수년 동안 모래는 바다의 움직임에 따라 바다로 들어갔다가 해변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해변의 조수를 사랑하는 이유는 모래가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에 의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찻잔 안에서 폭풍이 보인다는 말이다. 자연의 원리를 꿰뚫어 보는 과학의 힘을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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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단백질 - 탄생, 사랑, 변신, 그리고 죽음을 순환하는 생명의 과학
샤히르 S. 리즈크.매기 M. 핑크 지음, 홍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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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히르 리즈크, 매기 핑크의 [춤추는 단백질]의 원제는 [The Color of North]. 눈 속에 있는 크립토크롬이라는 단백질 덕분에 방향을 색으로 인지하고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염두에 둔 제목이다. 단백질은 생명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물고기와 개구리가 한겨울 혹독한 추위에서 얼어 죽지 않는 것은 혈액 속 얼음 결정의 성장을 막아주는 단백질이 있기 때문이다. 박테리아가 끓는 물 속에서, 심해 열수구의 극한 압력 속에서도 번성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단백질은 식물과 박테리아에게 기억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인류는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을 직접 설계하고 있다.

 

저자는 단백질의 구조를 해독하는 일은 몹시 어렵지만 모든 단백질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비밀은 그 고유한 구조에 달려 있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DNA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설명서다. 일어나야 할 때와 잠자리에 들어야 할 때를 알려주는 것도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말 그대로 우리 주변 환경을 해석해주는 존재다. 간세포와 뇌세포의 차이는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어떤 유전자를 읽느냐에 달려 있다. 비유하자면 모든 세포는 같은 악보를 가지고 있지만 각자 자신에게 맞는 악기만 골라 연주한다. 그래서 세포 안의 DNA는 그 세포가 누구의 것인지를 알려주고 세포가 실제로 만들어내는 단백질은 그 세포가 어떤 세포인지를 알려준다.

 

각 세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DNA가 대본이라면 단백질은 그 이야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주인공이다. 그러나 단백질이 DNA로부터 직접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는 중간 단계가 있다. 이때 DNA에 담긴 유전자의 정보를 읽어 단백질을 만드는 언어로 옮겨주는 매개분자인 RNA가 등장한다. RNADNA의 지시를 받아 단백질의 구성 단위들을 정해진 순서대로 하나씩 이어 붙인다. 마치 요리사가 레시피를 보고 재료를 순서대로 넣어 요리를 완성하는 것처럼. 이렇게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이어지는 흐름을 생물학의 중심 원리(central dogma)라고 한다.

 

설계도(DNA)가 있고 그것을 읽는 컴퓨터(RNA)가 있고 실제로 일하는 일꾼(단백질)이 있는 셈이다. 단백질의 종류는 다양하다. 많은 단백질이 진화를 거치고도 거의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일부 단백질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특성을 발전시켜왔다. 박테리아가 원자로 내부의 강한 방사선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해수면에서 수 킬로미터 아래 심해 열수구 근처의 엄청난 압력과 고온에서 미생물이 버틸 수 있는 것도 모두 단백질 덕분이다. 철새가 수천 km를 날아가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는 단백질이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겨울 가자미의 세포는 결빙 방지 단백질(antifreeze protein) 덕분에 영하의 물속에서도 손상되지 않는다. 인간은 특유의 독창성을 발휘해 추위와 싸울 우리만의 방법을 개발했다. 우리 조상들은 중앙난방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 짐승 가족으로 만든 옷을 발명해 유라시아의 가장 추운 지역으로 과감히 나아갔다. 또한 모든 기술 중에서 가장 독특한 기술인 불을 다루는 능력을 터득해 원래라면 사람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번성할 수 있었다. 불을 피우거나 중앙난방을 발명할 능력이 없는 다른 생물들은 저마다 추위에 대처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겨울잠을 자거나 두꺼운 지방층을 축적하거나 결빙 방지 단백질을 이용해 얼음 결정으로 인한 손상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개구리는 빙핵형성 단백질(ice nucleating protein)의 도움을 받아 이 문제를 해결한다. 가자미나 딱정벌레의 결빙 방지 단백질이 얼음 결정이 자라는 것을 막는 것과는 반대로 개구리의 빙핵형성 단백질은 오히려 결빙을 촉진한다. 단 얼음이 마구잡이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세포 바깥쪽을 향해서만 얼음 결정이 자라도록 유도해 각 세포를 얼음 껍질로 감싼다. 덕분에 세포 안의 내용물은 길고 혹독한 겨울 내내 안전하게 보존된다. 물론 단백질만으로는 부족하다. 개구리에게는 또 다른 핵심 분자인 포도당의 도움이 필요하다. 포도당 농도가 올라가면 세포 내부를 메이플 시럽처럼 걸쭉하게 만들어 세포 안의 물이 어는 온도를 크게 낮춘다.

 

세포 밖에서는 빙핵형성 단백질이 세포를 얼음 껍질로 감싸고, 세포 안에서는 포도당이 내용물을 지킨다. 이 둘의 협력으로 개구리의 몸 전체는 얼어붙지만 세포는 살아 있는 상태로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구조 단백질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진 세포가 흐물흐물해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화학이라는 언어로 소통하는 단백질들이 하나의 단위로 기능하는 생화학적 춤을 말한다. 인간이 거미줄과 누에실을 원래 용도와 전혀 다른 목적으로 활용해 온 것처럼 생명체들도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이미 가진 단백질을 새로운 용도에 맞게 바꿔왔다.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 있던 것이 쓰임을 바꿀 뿐이다."(73 페이지) 자연은 새로운 것을 처음부터 만들기보다 이미 가진 구조를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는 데 능숙하다.(77 페이지)

 

레이우엔훅이 현미경 아래에서 관찰한 극미동물들을 춤추게 했던 단백질이 인간의 세포골격을 이루는 단백질과 많은 특성과 구조를 공유한다. 저자는 단백질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주변 세상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깊이 관여한다고 말한다.(81 페이지) 저자는 망막의 광수용체 세포에서 발견되는 빛에 민감한 단백질 그룹인 옵신(opsin)에 대해 말한다. 옵신은 빛에 의해 활성화될 때마다 비틀리고 굽어지며 뒤틀려 주변의 다른 단백질들과 부딪힌다. 이런 비틀림은 연속적이고 정교한 분자들의 춤으로 이어진다.(89 페이지)

 

인간이 가진 옵신의 수는 셋이다. 많은 생명체가 세 가지 이상의 옵신을 가지고 있다. 갯가재는 12개의 옵신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빨간, 파란, 초록에 각기 반응하는 옵신이 서로 다르게 반응하여 수천만 가지의 색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암석의 색을 인지하는 원리는 우리 눈의 망막에 있는 세 가지 옵신이 흡수하는 빛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암석 자체의 색은 그 안에 포함된 광물 성분과 화학 원소에 의해 물리적으로 결정되지만 우리가 그것을 녹색 암석, 붉은색 암석으로 구분하여 보는 것은 세 가지 옵신의 메커니즘에 의해서다. 즉 지질학적 성분과 생물학적 시각 시스템의 합작품이다.

 

크립토크롬은 옵신보다 오래전부터 빛을 감지해온 단백질이다. 크립토크롬은 탄소, 산소, 수소, 질소처럼 자성(磁性)을 띠지 않는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어 자석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각 원소 안에는 아주 작은 전자들이 있다. 전자는 보통 둘씩 쌍을 이룬다. 이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정렬되어 자기적 성질을 상쇄한다. 그런데 햇빛이 새의 눈으로 들어가 크립토크롬에 닿으면 빛 에너지가, 쌍을 이루고 있는 전자 하나를 떼어낸다. 바로 이 홀로 남겨진 전자가 나침반 바늘처럼 지구 자기장에 맞추어 정렬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향 정보가 울새에게 북쪽이 어디인지 알려준다.(122 페이지) 크립토크롬이 전자 쌍을 갈라놓는 순간 새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북쪽이라는 독특한 색을 하늘에서 본다.

 

인간도 크립토크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DNA 복구 기능은 사라졌고 빛에 반응해 수면과 각성주기를 조절하는 기능은 가능하다. 식물도 크립토크롬을 이용해 빛을 감지해 그 방향으로 자란다. 세 종류의 옵신만으로 수천만 가지의 색을 볼 수 있듯 다섯 가지 미각 수용체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풍미의 조합을 만들어낸다.(104 페이지) 냄새를 맡는 데는 훨씬 많은 수용체가 필요하다. 1000 가지 중 제 기능을 하는 것은 400 가지다. 우리는 1조 가지의 냄새를 식별할 수 있다.

 

생명체가 육지로 진출하기 전 원시 바다에서 살아 남으려면 물속에서 냄새 맡는 능력이 필요했다. 최근 실험에 따르면 신생아는 태아 시절이나 모유 수유 시절 엄마가 섭취한 음식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진화적 이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엄마가 먹었던 음식은 안전하다는 가장 초기의 기억에 바탕한 이끌림이라 할 수 있다. 시각이 완전히 발달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 엄마의 냄새로 엄마를 알아본다. 후각은 원초적이다. 공기 중에 떠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분자들을 포착하는 일은 쉽지 않다. 후각 수용체가 극도로 민감해야 하는 이유다.

 

수용체는 우리가 같은 세상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문이지만 이를 사용하는 방식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감각 수용체를 이루는 유전자 구성에 아주 작은 변화만 있어도 음식에 대한 선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시각, 후각, 미각은 저마다 다른 감각이지만 세 감각은 서로 다른 색깔로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함께 빚어낸다. 분자 수준에서 보면 이 세 감각은 동일한 기본 원리를 공유한다. 실제로 옵신, 후각 수용체, 미각 수용체 대부분은 하나의 단백질 계열에 속하며 특유의 바구니 모양 구조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고통, 기쁨, 두려움, 불안, 우울, 황홀감, 후회, 심지어 사랑까지 이 모든 감정은 단 하나의 수용체가 아니라 수천 종의 단백질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산물이다.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 단백질이 있다.(118 페이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수용체들은 쉬지 않는다. 이들이 서로 협력한 덕분에 우리는 꿈속에서도 보고 냄새 맡고 걷고 말할 수 있다. 근육은 가만히 있는데 꿈속에서 뛰어다닐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뇌와 몸 사이의 연결이 일시적으로 끊어져 있는 덕분에 꿈속에서 아무리 격렬하게 움직여도 실제로 다치지 않는다.

 

GPCR은 미각, 시각, 후각을 통해 세상을 감지하는 능력의 중심에 있으며 우리 몸의 서로 다른 부분 사이의 소통에서도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한다. 냄새와 맛, 호르몬, 약물로부터 정밀한 화학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하나의 감각, 감정 혹은 기억으로 번역해낸다. 결국 세상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형성하는 것도 이 작은 단백질들이다.(120 페이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는 우리가 갖추지 못한 모든 동물들의 놀라운 감각은 분자 수준에서 단백질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진화는 더 우수한 것을 향한 발전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방향으로 일어나는 느린 변화라 말한다.(124 페이지) 라이너스 폴링은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여 현대 분자생물학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다른 화학자들이 분자를 이해하려면 양자 물리학의 복잡한 수학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자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파동 함수를 다루는 방식으로만 분자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폴링은 달랐다. 그는 형태에 주목했다. 원자들이 저마다 고유한 크기와 결합 각도를 가진 퍼즐 조각처럼 서로 맞물려 분자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자물쇠와 열쇠처럼 딱 맞는 형태의 원자끼리만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른 화학자들은 건축자재(원자) 하나하나의 미세한 진동과 물리적 성질을 수학적으로 완벽히 계산하느라 건물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면 폴링은 블록(원자)의 크기와 결합 각도를 확인한 뒤 레고 블록을 맞추듯 직접 손으로 조립해가며 전체적인 빌딩(단백질 구조)의 형태를 완성한 것이다. 폴링은 원소마다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50년대 후반 DNA의 언어가 어떻게 단백질의 언어로 번역되는지를 밝히는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가 확립되었다. 이로써 DNA는 생명의 설계도, 단백질은 설계도에 따라 일을 하는 완성품이라는 관점이 자리잡았다. 유전자는 DNA 언어로 쓰인 연속된 글자들이다. 유전자로 번역되면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는 글자들이 정확한 순서로 길게 이어진 사슬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갖 일을 한다.(137 페이지) 수소 결합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아미노산 서열의 반복적인 패턴 때문에 수많은 수소 결합이 한꺼번에 형성된다.

 

이 결합들은 핵심 구조를 안정적으로 붙들어 두면서도 단백질이 기능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유연하게 구부러지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수많은 단백질을 이루는 두 구조 중 알파 나선은 건물의 기둥이나 대들보, 베타 시트는 벽, 천장, 바닥에 해당한다. 이 두 구조를 조합하면 강도와 유연성을 갖추면서도 거의 무한에 가까운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알파 나선과 베타 시트는 단백질이 접히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대표적인 단백질의 2차 구조다. 단백질은 크고 복잡한 분자다.

 

제인 리처드슨이 리본 다이어그램을 고안해 단백질 구조를 시각화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리본 다이어그램에서 알파 나선은 비틀린 리본으로, 베타 시트는 나란히 놓인 평평한 화살표로 표현된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다른 이유는 결국 단백질에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서열과 조성(造成)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생명의 다양성을 만들어낸 것이다.(159 페이지)

 

단백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매일 단백질을 접한다. , 우유, 고기처럼 우리가 먹는 많은 음식에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된 뒤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로 다시 만들어진다. 효소는 아미노산이 고유한 순서로 연결되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형태로 접힌 단백질이다. 효소가 다른 단백질과 다른 점은 화학반응을 직접 일으킨다는 점이다. 효소는 반응 속도를 엄청나게 높여 생명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효소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체 분자가 효소의 손을 거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레첸 앤더슨은 효소를 불씨에 비유했다. 저자는 그레첸 앤더슨을 효소 같은 사람에 비유했다. 당신을 알아보고, 당신 안의 잠재력을 알아채고 당신을 끌어당겨 안으로 품고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때로는 당신을 뒤틀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준비가 되면 손을 놓는다. 변화하고 재구성된 새로운 당신을 세상으로 내보낸다.

 

식물의 자외선 차단제 역할을 하던 페닐프로파노이드가 효소의 작용에 의해 리그닌이 되었다. 이 리그닌 덕분에 나무가 높이 자랐고 그에 따라 이산화탄소를 더욱 많이 흡수하게 된 만큼 산소가 많이 배출되어 데본기가 막을 내리고 석탄기가 시작되었다. 산소가 풍부해진 지구에서 생명은 폭발적으로 번성했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나무에서 목질을 만드는 한 줌의 효소였다. 리그닌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등장하기까지 약 6000만년이 걸렸다.

 

저자는 인간이 무수히 버리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효소들을 연구하는 최신 이슈를 전한다. 효소는 귀중한 영양분을 순환시키는 자연의 방식이고 그렇게 돌아간 영양분은 다른 생명체로 흡수된다.(198 페이지) 흥미롭게도 루시페린은 먹이사슬을 타고 퍼져나간다. 이 덕분에 바다의 수많은 생물이 빛을 낼 수 있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발광(發光) 네트워크다. 혈액응고 인자가 너무 늦게 활성화되면 출혈이 멈추지 않고 너무 일찍 활성화되면 혈전이 생긴다. 활성화와 억제의 정밀한 균형 위에서 우리 몸은 매 순간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에쿼린은 발광 해파리에서 발견되는 칼슘 결합 발광 단백질이다. 루시페린과 대비된다. 단백질은 생명체를 만들고 생명의 반응을 촉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죽음의 도구로도 진화해왔다.(268 페이지) 가장 위험한 독소가 반드시 동물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식물 역시 포식자를 막기 위해 단백질 독소를 진화시켜왔다.(277 페이지) 독은 용량에 달려있다. 인슐린조차 과다 투여되면 치명적이다.(282 페이지) 방울뱀의 인테그릴린은 혈전 위험이 높은 환자의 항응고제로 사용된다. 먹이감의 피를 멈추지 않게 하던 단백질이 이제는 혈전으로 인한 죽음을 막는 약이 된 것이다.

 

뒷마당 흙 속에 사는 박테리아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수수께끼다. 어쩌면 그것이 진화의 본모습인지도 모른다. 목적도 방향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때로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생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289, 290 페이지) 생존하기 위해 죽여야 하는 세상에서 모든 생명체는 어느 정도 독성을 띠는 존재다. 삶이라는 극장에서 살인은 이야기의 줄거리이고 단백질은 주연을 맡는다. 결국 막이 내리면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오며 그 배후에는 어김없이 단백질이 있다.

 

단백질은 질병과도 관계된다. 저자는 한때 뉴런의 건축가였던 단백질들이 뉴런 사이의 신호 전달을 가로막는 잔해가 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치매와 기억상실 증상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알츠하이머 공히 잘못 접힌 단백질들로 뒤엉킨 그물망이 관계한다. 단백질은 유전물질 없이 스스로를 복제하고 전파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다. 저자는 점액을, 달라붙을 만큼은 끈적이되 쉽게 흐를 만큼은 유동적인 적절한 점도를 유지하는 것이라 설명한다.(311 페이지)

 

효소 하나하나, 단백질 하나하나가 생명이라는 교향곡을 이루는 음표다. 그중 단 하나라도 음이 어긋나면 그 여파는 오케스트라 전체로 퍼져나간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과학자들은 이 흐트러진 선율을 다시 조율하는데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최신 연구들은 알츠하이머처럼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질환부터 낭포성 섬유증처럼 유전되는 질환까지 치료와 예방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맞춤형 접근법의 문을 열었다. 대부분의 단백질 기반 질환들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저자는 유전자 편집의 희망은 단순히 오류를 바로잡는 데 있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단백질을 창조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생명의 진화는 선형적인 진보가 아니다. 수많은 가지마다 잎사귀가 무성한 거대한 나무로 상상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문제가 항상 단백질의 지나친 활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백질이 제 기능을 못해 질병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기능상실은 유전 질환에서 특히 흔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망가진 것을 고치는 일이 작동하는 것을 멈추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341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아는 단백질의 세계는 거대한 빙산 위의 눈송이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주 짧은 단백질이라도 꿈틀대고 비틀리면서 서로 다른 부위가 결합할 수 있는 방식은 거의 무한에 가깝다. 지구 온도 상승, 온실가스 배출 증가, 매년 쌓여가는 오염물질과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단백질 공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352 페이지) 저자는 모든 생명체 안에서 단백질은 그들만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역동적이고 서로 호응하며 끊임없이 생동하는 세계라고 말한다. 단백질은 단순한 분자 기계가 아니다. 여러 면에서 단백질은 미시 세계에서 기적을 행하는 존재들이다.(35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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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메마르면 병이 된다 - 만성 질환의 고리를 끊는 근본 치료 혁명
손원록 지음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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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겪는 질병과 고통의 근본 원인이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메마름증에 있다고 보는 책이다. 우리의 몸이, 생명 활동 그 자체가 지나치게 타오르며 고갈되고 있는 상태 즉 몸이라는 토양 자체가 사막화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저자(약리학 박사/ 약사인 현강; 玄江신원록)는 세 가지 지나침을 이야기한다. 1) 숨이 얕고 빨라지는 과호흡, 2) 신경이 항상 곤두서 있는 과흥분, 3) 몸이 쉼 없이 에너지를 태우는 과대사가 그것이다. 저자는 2000년 전의 화()와 지금 우리가 겪는 열()은 그 근본 결이 다르다고 말한다.

 

현대 의학은 병든 잎사귀를 떼어내는 데 집중하고 한의학은 숲 전체의 기운을 말하지만 정작 잎사귀를 병들게 한 오염된 토양 즉 현대인의 삶 그 자체를 바꾸는 데는 구체적인 답을 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현대 의학이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생명체는 기계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기계는 부품을 갈아 끼우면 새것처럼 작동하지만 생명체는 전체적인 환경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비싼 새 부품을 넣어도 금방 다시 망가진다.

 

우리는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의 모양이 어떤지, 어떤 유전자가 암을 유발하는지까지 알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 작게 쪼개어 보다 보니 정작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전체 그림은 놓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너무 많이 먹어서 혈관에 기름이 끼는 대사증후군, 24시간 쏟아지는 정보 자극으로 인한 뇌의 과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경쟁사회의 압박감 등이 우리 몸에 열을 만든다.

 

책을 읽으면 현대인들이 얼마나 편의주의적이고 자기 몸을 망치는지 알게 된다. 두통이라는 것은 뇌가 지쳤으니 쉬라는 신호인데 진통제를 먹고 밤새 야근을 한다. 이것은 불이 났는데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시끄럽다고 화재경보기의 전선만 잘라버리는 것과 같다. 집은 타고 있는데 경보음만 끄고 안심하는 꼴이다. 저자는 높은 혈압, 높은 혈당, 높은 염증 수치가 새로운 정상으로 굳어버리는 것, 몸이 비상사태를 일상으로 착각해버리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겪는 만성질환의 뿌리이자 자신이 말하는 메마름증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병원에서 말하는 자율신경실조증을 생명력의 고갈이라 부른다. 저자는 닫힏 계 안에서 에너지가 계속 투입되면 압력이 높아지듯 우리 몸속에 갇힌 에너지는 필연적으로 열로 변질된다고 말한다. 이 열은 장작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외부 감염에 대항하는 건강한 실열(實熱)이 아니라 엔진 오일이 바닥난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 엔진 내부에서 마찰로 인해 뿜어져 나오는 파괴적인 고열과 같다. (진액; 津液)이 고갈된 솥에서 은근하면서도 집요하게 배어 나와 솥 자체를 달구는 마른 열이다. 한의학에선 이를 허열(虛熱) 또는 조열(潮熱)이라 정의한다.

 

한의학에서 진액은 우리 몸속의 모든 정상적인 수분을 통칭한다. 현대 의학적으로 표현하면 혈액, 림프액, 뇌척수액, 관절액, 점액, , 눈물, 세포 내액, 세포 간질액 등을 모두 포함한다. 진액이 부족해지면 관절이 뻣뻣해지고 위장이 손상되며 눈이 건조해진다. 진액이 부족하면 영양 공급이 차단되고 독소가 축적된다. 진액이 부족하면 체온 조절에 실패하고 열이 축적된다.진액이 부족하면 조직이 손상에 취약해진다. 진액이 부족하면 산성화가 진행되고 뼈가 약해진다.

 

종합하면 진액이 부족하면 혈액이 순환이 나빠져 고혈압과 동맥경화가 생기고 점막이 마르고 손상되어 위염, 식도염, 건조증이 발생하며 관절액이 줄어들어 관절염과 통증이 수반되고 뇌척수액이 감소하여 두통과 인지기능 저하가 일어나며 림프 순환이 막혀 부종과 면역력 저하가 일어나고 몸속의 열을 식힐 수 없어 몸은 계속 뜨거워지고 세포는 타들어간다.(56 페이지) 메마름증의 열은 체온계로는 측정되지 않는다. 체온을 재도 정상 온도인 36.5도가 측정된다. 하지만 메마름증 환자는 열감을 느낀다.

 

얼굴은 화끈거리는데 손발은 차갑고 밤에는 식은땀이 난다. 이것이 바로 허열, 마른 열이다. 체온계는 피부 표면 또는 구강 점막의 온도를 측정할 수는 있어도 조직 깊숙한 곳 즉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대사 열이나 염증 열은 측정하지 못한다. 현대 과학은 이를 산화 스트레스로 설명한다. 세포 안에서 활성산소가 과도하게 생성되면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고 세포막이 산화되며 DNA가 공격받는다. 이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지만 체온계로는 잡히지 않는다.

 

저자는 냄비 뚜껑을 열어 놓고 가스 불을 최대로 한 경우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냄비 뚜껑을 활짝 열어놓았기에 수증기가 거침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과호흡에 비유한다. 가스 불을 최대로 키웠기에 물이 격렬히 끓어오르는 것을 과흥분에 비유한다. 냄비 안에 물 외에도 첨가물을 넣은 것은 물이 걸쭉해진 상태로 빠르게 말라붙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과대사에 비유한다.

 

이산화탄소는 적혈구가 산소를 효율적으로 내려놓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현대인이 숨을 헐떡이지 않더라도 세포 단위에서는 매 순간 보글보글 끓으며 스스로를 태우는 끓는 냄비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본문에 한 여성 요가 강사의 사례가 나온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증상(편두통)과 손발이 찬 증상(수족냉증)으로 상담을 받게 된 사람이다. 정밀검사 결과 그녀는 혈중 이산화탄소 분압이 정상치 이하로 떨어진 상태였다. 습관적으로 몰아쉬는 과도한 들숨과 잦은 한숨이 원인이 된 것이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적혈구가 산소를 내려놓기 위해 이산화탄소가 필요한데 과한 들숨 등으로 그런 촉매제 역할을 하는 이산화탄소 수치가 부족해진 것이다. 헤모글로빈은 주변 환경에 따라 구조가 변하는 단백질이다. 이산화탄소가 없으면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결합하려는 성질이 아주 강해져 산소를 내려놓지 않는다. 그래서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품은 채 조직을 그냥 지나쳐 조직은 저산소 상태에 빠지게 된다. 요가 강사의 폐와 동맥혈에는 산소 포화도가 99%로 차고 넘치지만 정작 산소가 필요한 뇌세포와 손발 끝의 말초 조직들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발견자인 크리스티안 보어의 이름을 따서 보어 효과(Bohr effect)라고 한다. 이렇게 작위적인 것은 좋지 않다.

 

저자는 과호흡은 단순한 호흡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음양 밸런스를 무너뜨려 전신을 사막처럼 건조하게 태워버리는 재앙의 불씨라고 말한다. 저자는 과흥분 상태는 자율신경계의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을 완전히 붕괴시킨다고 말한다. 과흥분은 우리 몸을 사막화시키는 주범이다. 과대사는 과호흡, 과흥분과 연동되는 연쇄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좋은 장작(탄수화물, 지방)을 적절한 산소와 함께 태우면 깨끗한 물과 이산화탄소만 남지만 젖은 장작(단백질, 불완전 연소)를 마구잡이로 태우면 독성 찌꺼기가 남는다고.

 

과대사는 필연적으로 엄청난 양의 젖산, 암모니아, 요산, 케톤체, 활성산소를 만들어낸다. 저자는 주말 내내 쉬어도 피곤하다, 자고 일어나도 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은 단순한 체력 저하 때문이 아니라 몸속에 가득 찬 독성 매연인 담음, 어혈, 뼛속 진액을 태우는 허열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몸이 스스로 균형(항상성)을 맞추려는 노력을 현대 의학은 종종 질병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약물로 강제 진압하려 든다고 말한다.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치료를 위해 먹는 화학약품들 자체가 우리 몸을 물리적으로 메마르게 한다는 것이다.(88 페이지)

 

몸이 건조해지면 우리 몸의 항상성은 깨지고 교감신경은 더욱 항진되어 다시 3과 현상을 부채질한다. 약이 병을 만들고 그 병 때문에 또 약을 먹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겪는 탈수가 단순히 마시는 물의 양이 부족한 상태라면 메마름증은 우리 몸의 수분을 세포 내에 잡아두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아쿠아포린은 세포막에 존재하는 물 전용 통로다. 우리가 마신 물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 말 그대로 우리를 살리는 생명수가 되려면 반드시 이 물을 통과해야 한다.

 

스트레스 상태 즉 과흥분이 지속되면 우리 몸은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세포막을 경직시키고 아쿠아포린의 활성도를 떨어뜨린다. 문이 닫힌 상태에서 물만 부으니 물은 세포 밖인 혈관과 조직 사이에 고여 부종을 만들거나 그대로 신장으로 배출된다. 또한 물을 잡아 두는 힘은 미네랄 특히 전해질 미네랄에서 나온다.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적절한 농도로 존재해야 삼투압 원리에 의해 물이 세포 내외로 오갈 수 있다. 맹물만 과도하게 마시는 행위는 오히려 체내 미네랄 농도를 희석시켜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물을 더 빨리 배출하게 만드는 자발적 탈수를 유도한다.

 

진액이 고갈되면 가장 먼저 혈장의 수분이 줄어들어 피가 농축되고 끈적해진다. 필요한 것은 억지로 피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끓어오르는 냄비에 불을 끄고 과열된 혈액을 식혀주며 말라버린 혈관에 맑은 물을 채워주는 정적(靜的) 치유이다. 피가 끈적해지면 심장이 더 강하게 펌프질을 한다. 이것이 고혈압이다. 혈압약은 끈적한 피는 그대로 두고 심장박동을 줄여 압력을 낮춤으로써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게 해 뇌혈류량을 30~40%까지 감소하게 한다. 그래서 어지러움과 무기력증이 생긴다. 필요한 것은 혈압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피를 맑게 하는 것이다.

 

통상 위장 점막세포는 3~5일마다 완전히 교체된다. 그런데 혈류가 부족하면 재생이 멈춘다. 낡은 세포는 떨어져 나가지만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다 보면 점막이 점점 얇아진다. 통증을 완화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진통제나 근육 이완제를 먹는다. 하지만 진통제는 뇌로 가는 통증 신호만 차단할 뿐 메마른 근육에 물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약을 분해하느라 간과 신장의 수분을 다 써버려 근육을 더욱 말려 버리는 악순환을 만든다.(113 페이지)

 

()은 뼈를 비롯해 골수, 관절액, 뇌수(腦髓)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과대사는 체내에 산성 노폐물을 축적시킨다. 우리 몸은 ph 7.35-7.45의 약알칼리성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ph0.1만 벗어나도 효소 기능이 망가지고 0.2 이상 벗어나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골다공증을 칼슘 섭취 부족이나 노화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생리학적 관점에서는 현대인의 골다공증은 몸이 산성으로 변하는 대사성 산증에 대한 방어기제다. 혈액이 과대사로 인해 산성화가 되면 우리 몸은 약알칼리성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뼈에서 알칼리성 미네랄인 칼슘을 녹여내어 혈액으로 가져온다. 이를 골융해라고 한다.

 

메마르고 척박한 저산소 환경에서 살아남은 세포가 독하게 변형을 일으킨 것이 암이다. 골다공증약은 뼈가 부서지는 것은 막을 수는 있지만 새 뼈를 만들지는 못한다. 혈액은 영양과 수분을 실어 나르는 보급 트럭이다. 혈액이 끈적해져서 흐름이 막히면 보급로가 끊긴 근육과 뼈는 굶주리게 된다.(125 페이지) 놀라운 사실은 우리 뇌의 75~80%가 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근육(70%), (30%)보다 높은 수분 함량이다. 뇌가 이토록 축축한 물주머니여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생각, 감정, 기억이라는 모든 정보가 전기의 형태로 오직 물을 통해서만 흐르기 때문이다.

 

뇌세포 간의 소통은 전기신호로 이루어진다. 뇌가 메말라 수분이 부족해지면 전도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신호가 가야 할 곳에 가지 못하고 끊어지면 마치 전구가 깜빡거리다 꺼지듯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온다. 반대로 신호가 엉뚱한 곳으로 튀어 합선을 일으키면 제멋대로 불꽃이 튀듯 불안과 공황, 환청이 발생한다. 과호흡은 뇌혈류를 감소시키고 과흥분은 뇌를 과열시킨다. 과대사는 뇌에 노폐물을 축적시킨다. 수면은 뇌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체온 항상성의 일환이다.

 

잠이 들면 체온이 1도 정도 떨어져 뇌가 쉬는데 메마름증 환자는 뇌가 항상 과열되어 있어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뇌세포가 식지 않으니 피로 물질인 아데노신이 아무리 쌓여도 잠들지 못한다. 저자는 치매, 파킨슨병, 우울증, 공황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를 메마름이 부르는 5대 뇌질환이라 규정한다. 뇌가 과열된 원인 즉 3과로 인한 메마름증 자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억지로 수치만 맞추는 강제된 평형은 약을 끊는 순간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여전히 불이 타고 있는 상태다. 뜨겁고 건조한 뇌를 시원하고 촉촉하게 바꿔주면 신경전달물질은 저절로 균형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뇌의 신경가소성이다. 과거에는 뇌세포가 죽으면 재생되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최신 연구에 따르면 뇌는 환경만 갖추어지면 죽을 때까지 변하고 새로운 회로를 만들고 회복할 수 있는 놀라운 장기다. 이 회복의 열쇠가 바로 진액이다.(158 페이지)

 

저자는 통합의약학의 첫 번째 원칙은 증상이 아닌 사람을 보는 것, 두 번째 원칙은 숫자가 아닌 감각을 보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항상성은 38억 년 생명 진화가 선물한 위대한 지혜라고 전제하며 병은 단순한 세균의 침입이나 암세포의 발생만 의미하지 않고 근본적으로는 내 몸에 항상성 유지 능력이 한계치를 넘어 붕괴된 상태라고 말한다. 3과는 항상성을 깨뜨리는 주범들이다.(169 페이지) 메마름증의 치유도 우리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스스로 진액을 채우고 과열을 시키며 항상성을 회복하도록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저자는 잠에서 깨어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따뜻한 물 300~500ml를 천천히 마실 것을 주문한다.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물 한 잔은 간밤에 쌓인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라는 첫 신호다. 저자는 청열 해독(淸熱解毒)의 대표 식품으로 녹두차를 권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과호흡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말한다. 1분간 호흡 횟수가 16회 이상이면 과호흡이다. 오늘날 과흥분을 일으키는 최대 원인은 디지털 기기다.

 

저자는 잠들기 2시간 전에 모든 디지털 기기를 끌 것을 주문한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무료할 수 있지만 2주가 지나면 오히려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평온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또한 스마트폰 없이 식사할 것을 권한다. 식사 중에는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음식의 맛, 식감, 향에 집중한다. 바로 마음 챙김 식사다. 천천히 씹고 음식의 온도를 느끼고 입안에서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한다. 이렇게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과식도 방지한다.

 

바싹 마른 몸을 윤택하게 하려면 단순히 물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부족하다. 세포 하나하나가수분을 머금고 있을 수 있도록 진액을 채워주어야 한다. 저자가 추천하는 식품은 제철 채소와 과일, , 연근, 오크라, 미역, 다시마, 매생이 등의 점액질 식품, 발효 식품 등이다. 이런 음식을 먹어 메마름증을 치료하는 것을 자윤(滋潤)이라 한다. 저자는 진정한 치유는 무엇을 더 먹느냐가 아니라 우리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되찾아주느냐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208 페이지) 

 

저자는 고혈압이든 당뇨든 암이든 상관없이 모든 만성 질환의 깊은 뿌리에는 처절한 메마름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몸이라는 숲을 가꾸는 현명하고 부지런한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치유는 병원이 아니라 우리의 식탁, 침실, 마음 속에서 일어난다. 저자는 평온함이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적막이나 죽은 듯한 고요가 아니라고 말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도 내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유연하게 흔들리며 균형을 잡는 힘, 어떤 시련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라 말한다.(217 페이지)

 

[몸이 메마르면 병이 된다]란 책의 출간 소식을 처음 접하고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다. 어제(2026630)까지 대부분 과학책 특히 지구과학책으로 구성된 76권의 책을 읽은 2026년 상반기를 보내고 드물게 읽게 된 책이다. 책을 사서 제목이 보이지 않게 포장을 할까 망설였다. 나는 책이 말하는 메마름이 살이 마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내 몸을 보고 내가 체중을 늘리기 위해 책을 사 읽는 것이라고 생각할까 보아서였다. 다행히 혼자 근무하는 날인 오늘 책을 모두 읽고 서평까지 썼다.

 

책을 읽으며 나는 책에 나오는 사례자들 만큼 심한 상황은 아님을 알고 안도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으니 알맞은 긴장으로 해결에 최선을 다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또한 책이 저자의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로부터 비롯된 메마름증으로 인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저자에게 감사해야 하리라. 책은 의외의 진실들을 알게 해주었다. 감사하다. 재독할 만한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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