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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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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1883)올랭피아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등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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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읽는 조선 - 공간을 통해 본 우리 역사 규장각 교양총서 1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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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내 주요 관심사다. 서울 및 연천 해설의 연장선상에서 생긴 결과다. 서울은 한성백제와 조선, 일제하의 경성 등의 키워드로, 연천은 고구려와 고려 등의 키워드로 풀어나가고 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펴낸 도시로 읽는 조선은 한양, 개성, 전주, 변산, 제주, 평양, 인천, 원산, 경성 등의 아홉 도시를 해명함으로써 조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공간과 장소는 의미가 다르다. 공간은 낯설고 유동적이어서 쉽게 잡히지 않는 개념이고 장소는 공간에 주관적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책에서 다룬 아홉 도시 가운데 내게 주관적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곳은 한양, 개성, 원산, 경성 등이다. 물론 한양, 경성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고 개성, 원산은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곳이다. 다만 한양, 경성은 서울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만나는 곳이고 개성은 고려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원산은 내가 사는 연천을 통과하던 경원선의 종착점이다. 한양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려 문종대부터다. 고려는 건국 이후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서경(西京)으로, 신라의 수도 경주를 동경(東京)으로 삼아 개경(開京)과 함께 3경 체제를 구축한 데 이어 문종대에 양주를 남경(南京)으로 승격시키고 궁궐을 조성했다.

 

58세에 고려 수도 개경의 수창궁에서 즉위한 조선 태조는 천도(遷都)를 단행했다. 태조는 즉위 2년까지 고려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계룡산을 새 수도로 추천한 사람이 권중화였다. 하륜은 무악(현재의 신촌, 연희동 일대)을 추천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성(漢城) 설계를 담당했던 정도전도 처음에는 천도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태조대에 전조후시(前朝後市) 원칙에 따라 신무문 밖에 시장을 조성했으나 지역이 좁고 바로 뒤가 막혀 있어 태종이 종로로 옮김으로써 유통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개성은 20136월 개성역사유적지구란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영조실록에서 처음으로 두문동(杜門洞) 일화가 나온다. 두문동(杜門洞)은 고려가 멸망하자 조선 시대 송도(개경, 개성) 성거산 서쪽에 고려의 신하 72명이 살던 곳이다. 72명은 공자의 제자 72현을 모델로 만든 수()로 보인다.

 

전주는 감영(監營)으로 호명되었다. 감영은 감사(監司)의 본영(本營) 즉 조선시대 8도에 파견된 관찰사(2)의 업무 공간이었다. 전주는 나주, 광주에 비해 서울에서 가까운 고을이다.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관찰사는 일상적으로 지방관의 근무를 평가하고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감찰(監察) 업무를 치르는 등 상당히 힘든 일정을 치렀다. 조선 후기 전주는 감영을 바탕으로 대도시로 성장했다.

 

사람 살기에 적합하면서도 호젓하고 풍광이 빼어난 변산은 한 면은 넓게 바다로 열려 있고 나머지 세 면은 산으로 둘러쳐져 있는 호리병 같은 곳이다. 변산반도와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있다. 교산 허균과 반계 유형원이다. 변산은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형원은 서른 두살 때 변산에 들어와 죽을 때까지 살았다. 변산에서 유형원이 집중적으로 저술한 책이 반계수록이다. 이 책은 토지제도를 비롯, 정치, 교육, 군사 제도 및 사회신분제 등 국가 전 분야에 걸쳐 조선의 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법제를 모색한 국가 기획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기조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에 둔 변혁이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등에게로 이어졌다.

 

제주는 풍부한 신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브리콜뢰르(손재주꾼)의 브리콜라주(손재주 작업 결과물)로 파악한 신화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 제주다. 치밀한 계획이 아닌 무엇이든 손쉽게 사용 가능한 재료로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다.

 

평양은 평안도의 감영이 있던 곳이다. 평양 감사가 아니라 평안 감사라 해야 맞다. 감사 즉 관찰사는 도 단위의 관직이다. 평안감사가 탐관오리의 대명사가 된 것은 평양이 사행로의 주요 경유지였기 때문이다. 경유지 도처에서 사신들을 접대하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천은 일본에 의헤 설치된 조계(租界) 지역이었다. 인천은 1876(고종 13) 강화도 조약 이후 부산(1876), 원산(1880)과 함께 개항된 세 항구 중 하나다. 인천이 개항된 시기는 1883년이다.

 

영흥만에 위치한 원산은 태조 이성계의 조상인 목조(穆祖) 때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조선은 일본이 개항지로 영흥만을 요구하자 왕릉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었다. 일본이 원산을 개항지로 고집한 것은 가상의 적인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경성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의 500년 도읍지인 한양(한성)을 대체해 불린 이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 도시인 서울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가 20세기 초 즉 경성 시절이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독립운동과 저항, 상존하는 위험이 그 사대의 전부가 아니듯 모던함도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근대 또는 현대라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변화와 속도를 당대인들은 모던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경성과 밀접했던 시인, 작가가 이상(李箱), 박태원 등이다. 이상은 제비 다방, 쓰루(つる; ) 다방 등을 운영했다. 상자 속에 갇힌 듯 전공이나 제한된 관심사에 매몰된 근대인을 희화화한 이상은 암울하고 무력한 식민지 시대에 비상 충동을 느꼈으리라.

 

책의 앞 부분에 이상의 오감도 이야기가 나온다. 1인의 아해부터 13인의 아해까지 등장하는 이 시에서 13이란 숫자는 조선 13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선 8도가 13도가 된 것은 1896년 갑오개혁 이후다. 이상의 오감도는 막다른 골목이자 뚫린 골목인 식민지 시기 한반도의 공간성과 역사성을 결함시킨 작품이다.(9 페이지) 이상의 날개가 관념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좌우된 개인의 실존을 드러낸 작품이듯 오감도 역시 시대상황과 무관할 수 없는 작품이다. 도시 이야기를 다룬 여타의 다양한 책들을 읽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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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키워드로 읽는 시민을 위한 조선사
임자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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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에 집중하다 보니 근현대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조선사에 정통하지도 못하다. 그럼 나는 왜 조선사에 집중해온 것일까? 단순히 이야기 거리를 얻으려는 것일 수는 없다.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교훈을 위해 역사를 배운다고 쉽게 말하지만 제대로 되었는지 자신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10가지 키워드로 조선과 대한민국을 비교하는 책을 만났다. 열 가지 키워드란 주권의지, 법치국가, 페미니즘, 국제외교, 기본소득, 정치개혁, 정당정치, 개인과 국가, 세대갈등, 적폐청산과 정권교체 등이다. 저자는 조선과 대한민국을 쿠데타란 개념으로 비교한다. 잘 알려졌듯 조선은 이성계, 이방원, 수양대군 등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대한민국은 박정희, 전두환 등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저자는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했어도 무수한 문제점을 만들어냈다면 그것을 과연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묻는다. 그리고 이성계, 이방원, 수양대군의 쿠데타는 왕조시대의 쿠데타이고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는 민주공화정체제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절대 같을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가령 수양대군은 쿠데타를 감행했지만 체제를 전복하지 않았기에 백성을 해칠 필요가 없고 왕위를 노리는 대신과 혈육을 경계하면 되었을 뿐이지만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는 민주국가라는 대한민국의 기초를 공격한 것이기에 즉 민이 주인인 체제를 전복했기에 국민을 해쳐야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들이 아직 조선 백성의 사고를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서 들여다볼 말이 있다. “사회의 분화와 변모로 붕당에 여러 요소가 끼어들기는 했지만 원론적으로 말해 붕당(朋黨)의 힘은 공부에서 나온다.. 정조가 탕평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 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책을 검토하고 나라의 방향을 결정할 만한 식견이 있었고, 그 식견을 신하들에게도 인정받았다.. 정조는 정치가들이 또는 대통령이 존경해야 하는 인물이라기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닮아야 하는 인물이다."(7정당정치중에서)

 

핵심은 정조는 정치가들이 또는 대통령이 존경해야 하는 인물이라기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닮아야 하는 인물이라는 말이다. 2장 법치국가편에서 저자는 법은 지켜야 하지만 그전에 물어야 할 것이 법은 무엇인가, 란 물음이라 말한다. 새길 말은 왕조국가인 조선에 입헌주의에 입각한 법치주의 개념이 전혀 없었는가, 란 물음이다. 조선은 상당히 짜임새가 있는 나라로 입헌주의란 개념을 가지지 못했을 뿐 유사한 개념은 얼마든지 가지고 있었다.

 

조선은 철저히 기획된 나라였다.(51 페이지) 이 말은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한 사상과 방향성을 바탕으로 설계되고 건국되었다는 말(12 페이지)과 상응한다.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만들어 왕에게 올린 것을 들 수 있다. 세조는 즉위하자마자 이전까지의 모든 개별 법령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대대로 통치의 기초로 삼게 할 최고 법전을 만들고자 했다.(완성된 것은 성종대에 이르러서다.)

 

조선보다 나아야 할 우리나라는 법이 세력을 가진 자, 부유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운영되고 있어서 우리에게 큰 과제를 준다. 그래서 법학자, 판검사, 변호사가 아니라 해도, 국회의원이 아니라 해도 법을 질문하고 법 정신을 고민하는 것이다. 저자는 페미니즘편에서 문정왕후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보인다. 문정왕후는 유일하게 어머니로서 수렴청정을 한 인물로 조선에서는 보기 드물게 수렴청정과 외척정치를 주도적으로 활용해 정치 전면에 나섰다.

 

문정왕후는 죽을 때까지 실질적 권력자였다. 그의 치세 기간에 을사사화가 있었다. 물론 사화라고 하지만 사림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윤임 일파를 제거하려고 한 것이기에 사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정왕후에게 쏟아지는 것은 비난 일색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정왕후 치세가 난세인 것은 유교 국가에서 불교를 되살리려 했기 때문이다. 조선이 불교를 억누른 것은 유학의 나라를 세우려 한 목적도 있었지만 재산을 국유화하려는 목적도 있다.

 

물론 그 과정이 너무 강압적이었다.(86 페이지) 명종 시대는 임꺽정이 활약한 시대다. 그 시대는 사실 임꺽정이 유독 유명했을 뿐 크고 작은 도적이 넘쳐나던 시대였다.(87 페이지) 저자는 저들 도적이 생긴 것은 도적질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추위와 굶주림에 절박하게 시달려서라는 명종실록의 말을 인용하며 유교 국가에서 불교를 되살린 것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왜 농민이 도첩(度牒)도 없는 중이 되려고 절에 들어가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 정치하는 자의 올바른 자세라 말한다.(88 페이지)

 

저자는 문정왕후에게 아쉬운 점은 시대를 읽는 눈이 부족했던 것이라 말하며 좋은 머리와 정치적 식견으로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은 조선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한계 때문이라 설명한다.(90 페이지) 저자는 문정왕후의 패착 중 하나로 외척의 정치농간을 꼽는 것에 대해 외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조선의 구조적 모순이라 말한다.(92 페이지) 외척은 왕에게 가장 중요한 뒷배였다.(80 페이지) 단종의 비극도 단지 단종이 어리고 세조의 야망이 커서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다. 단종은 수렴청정 없이 곧장 친정(親政)을 행했다.

 

우리가 페미니즘 논쟁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남자 대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부디 우리사회가 조금씩 페미니즘에 익숙해지면 좋겠다고 말한다. 조선은 신분 차이와 가부장적 질서를 옳다고 본 나라였다면 대한민국은 모두가 평등하게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전제로 시작된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이 중요하다.

 

4장 국제외교편에서 저자는 조선의 명나라 의존과 대한민국의 미국 의존을 한자리에서 논한다. 광해군이 정치를 못한다는 이유로 나라를 바로잡고자 반정을 일으켰다는 명분이 무색하게 인조 정권은 나라를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120 페이지) 성종 때 들어서 모든 시스템이 완성되었지만 건국 이래 최초로 가장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원자에서 세자로, 그리고 왕으로 즉위해 금수저 코스를 밟은 연산군이 전무후무한 문제적 통치를 펼치자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중종은 세자수업도 받지 못했고 정치 경험도 없어서 정통성과 민심을 확보해줄 지지 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명나라에 의존했고 성리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때부터 조선과 명은 군신관계를 넘어 한 집안이자 부자관계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고 사림이 정치의 핵으로 등장했다.(122 페이지) 5장 기본소득편에서 저자는 대동법과 새로운 상상력을 논한다. 현종 대에 예송논쟁이 있었고 그보다 더욱 중요하게 그 시대는 소빙기의 영향으로 사상 최악의 대기근이 찾아든 시기였다.

 

조선은 놀랍게도 세 차례 전쟁(임진, 정묘, 병자년 전쟁)과 소빙기의 대기근이라는 참사의 시기를 조세개혁으로 돌파했다.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를 붙들고 예송논쟁을 일삼기도 했지만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유학의 기본이념도 상기할 줄 알았고 이를 실현할 집요한 경세가도 있었다.(145 페이지) 세금이 누구를 위해 얼마나 합리적으로 운영되는지 투명하게 공개되면 백성들은 세금이 증가하는 것을 덮어놓고 거부하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150 페이지)

 

저자는 항산이 있으면 항심이 있다는 맹자의 말로 기본소득을 이야기한다. 기본소득은 돈이 지배하던 세상보다 훨씬 다채롭게 개개인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줄 것이다.(158 페이지) 6장 정치개혁편에서 저자는 정치는 사람 사이의 대화라 정의한다.(179 페이지) 정치는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기에 매일의 일상에 있다. 7장 정당정치편에서 저자는 주자학이 본고장인 중국보다 조선에서 그 꽃을 활짝 일찍 피워낸 셈이기에 민주주의는 낯설어하면서도 대의민주의의 중요 요소인 정당정치에는 친숙함을 느끼는 묘한 현상이 생겼다고 말한다.(192 페이지)

 

저자는 예송논쟁이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소모적인 면이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전란으로 혼란해진 나라의 질서를 상당히 조선다운 방식으로 바로잡아가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한다.(197 페이지)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참여가 우리의 전통이었다.(212 페이지) 8장 개인과 국가편에서 저자는 길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별을 바라보며 다음 시대의 문을 연 인물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한 사람을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정도전을 선택할 것이라 말한다.(221 페이지)

 

정도전은 현재의 불의와 구체제의 부패보다 그 다음에 펼쳐질 세상에 무게중심을 둔 특별한 인물이다. 이로 인해 조선은 건국부터 하고 방향을 설정한 나라가 아니라 방향이 먼저 설정되고 그에 따라 세워진 독특한 나라가 된 것이다. 정도전을 비롯한 이들이 모델로 삼은 나라는 성리학의 나라인 송나라였다. 송나라가 불교와 도교에 빼앗긴 인재를 다시 유학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의거(依據)한 것이 신유학 즉 성리학이다.(232 페이지)

 

조선은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옥새를 줌으로써 무혈 개국을 한 나라가 되었다. 당대 명문거족에 비해 내세울 것이 없었고 외가 쪽이 노비의 피가 섞여 있는 정도전(229 페이지)은 그로 인해 평생 고통을 겪었지만 그렇기에 종법제도에 관심을 둘 필요는 없었다.(239 페이지) 정도전에게 중요한 것은 관이 아닌 민이었지만 그가 백성을 주체로 인식한 것은 아니다. 그는 민을 나라의 근간으로 여겼다.(241 페이지) 저자는 정도전이 사대부로서 나라에 대한 책임을 자임하고 이를 감당하려고 자기 삶을 걸었음을 강조하며 민주주의라는 명칭에 걸맞은 책임을 요구한다.

 

저자는 9장 세대갈등편에서 조선은 당하관인 젊은 대간(臺諫)들로 하여금 왕과 대신들을 모두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균형을 이루게 했다고 말한다. 사간원(司諫院)은 왕의 언행과 시정에 잘못이 있을 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서 바로잡는 간쟁(諫爭)을 맡았고 사헌부는 관료들의 잘못과 위법을 규찰해서 탄핵하는 일을 맡았다.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태종은 사간원의 인원은 줄이고 사헌부 인원은 그대로 두었다. 물론 사헌부는 경우에 따라서 왕도 탄핵했다.(252 페이지)

 

대간 임명권은 문신의 인사를 담당하는 이조에서 분리해 정5품인 이조 전랑에게 주었다.(이조 전랑 인사권을 두고 동인과 서인이 갈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태종이 정승은 청렴한 것보다 왕과 정책을 토론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뜻에 무조건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소신껏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진짜 충성이라고 본 것이다.(259 페이지) 토론과 비판은 단순히 잘못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로써 빚어진 현재의 문제들을 수습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조선이 젊은 관료를 대간으로 선별해서 그들의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유는 그들의 치기어린 열정과 의욕이 나라를 오래오래 젊게 유지해줄 원동력이 될 것이란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267, 268 페이지) 저자는 젊은 세대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젊다고 모두 시선이 새롭다거나 새 질서로 세워진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것은 아니란 점이라는 말을 한다. 자신의 욕망으로 정도전이 내세운 궁극의 개혁 시도를 막은 태종도 새로운 내일을 열지 않으면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음을 잘 알고 구세력의 힘을 최대한 억제해 조선이 고려와는 다른 나라가 될 수 있게 했다.(269 페이지)

 

10장 적폐청산과 정권교체편에서 저자는 조선의 복잡다단한 정치투쟁의 장을 논한다. 그리고 지난 일을 덮어놓고 무조건 용서하자는 말은 진짜 용서가 아니라 덧붙인다. 이규상은 ‘18세기 조선인물지에서 역학이나 의학에 학이란 글자를 붙이는 것은 글을 알아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사림은 조정을 장악한 이후 민생 현안을 살피기보다 도리를 가르치면 세상은 저절로 바루어진다는 막연한 생각에 의지했다.(305 페이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서로의 일에는 공식성이 있다. 열심히 배워서 남주는 것은 자기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여느 직업의 결과처럼 당연히 수반되는 부분이다. 출구와 상상력을 제시할 책임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 18세기에 위기와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내일을 준비하지 못하고 망국으로 치달은 조선의 역사가 안타깝다면 지금은 오늘에 대한 안목을 갖추기 위해 우리 각자 노력해야 한다.(306 페이지)

 

음미해야 할 인상적인 말은 예()란 예의와 예절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개인의 위치를 결정하고 개인이 개인과, 그리고 공동체와 맺는 관계의 적절한 형태를 정의하며 개인의 분수(分數)를 결정한다(55 페이지)는 말, 예로써 다스린다는 말은 어떤 자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분명하게 제시되는 것을 말하고 시스템에 법의 주안점을 두는 것을 말한다는 말(58 페이지)이다. 조선사를 통해 어떤 것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를 알려면 시민을 위한 조선사를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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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도서관 숲
김외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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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인류가 99 퍼센트의 시간을 함께 한 생명의 터전이다. 나도 당연히 그런 조건의 산물이다. 내가 로망으로 여기는 곳이 있다. 침엽수림인 전나무 숲길이다. 침엽수는 활엽수에 비해 피톤치드를 더 많이 생산한다. 활엽수림에 비해 부엽토(腐葉土)가 적어 부족한 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아미노산 생산에 필요한 피톤치드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 바이오메틱 연구소의 실험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붓다 사후 앞에 칠엽수(七葉樹)가 우거진 칠엽굴에서 결집을 한 이야기(마로니에 공원)와 학림(鶴林)을 이야기했었다. 보리수 아래에서 석가모니가 수행을 할 때 숲 속 피톤치드가 깨달음에 이르도록 큰 도움을 줬다고도 볼 수 있겠다. 상상으로 알아야 할 바다. 물론 숲은 석가모니의 고행 장소이기도 했다.

 

피톤치드는 후각에 작용한다. 후각이 미각, 청각, 촉각, 시각보다 먼저 우리의 몸에 작용한다. 향기는 인간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숲은 바다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자산이다. 남해 물건리의 방조어부림이 대표적이다. 물건리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 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란 고두현 시인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란 시에도 나오는 곳이다.

 

놀랍게도 이 방재림은 조선시대인 350년 전에 시작되었다. 도시에도 당연히 숲은 보물섬 같은 곳이다. 도시 숲이 경쟁력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숲의 총량과 행복감의 총량은 상당 부분 비례한다. 인류의 삶은 철저히 자연에 의존해왔고 반드시 자연에 의존해야 하기에 자연을 찾는 것은 본능적이고 근원적이다.

 

숲에 가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가 소나무다. 소나무는 1930년대 우리나라 산림면적의 75퍼센트를 차지했으나 80여년 후인 현재는 25퍼센트로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의 소나무는 지역에 따라 줄기가 곧게 자라는 성질(통직성; 通直性)과 굽어 자라는 성질(만곡성; 彎曲性)을 지녔다.

 

금강산에서 울진까지 동해안을 따라 자라는 소나무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습설(濕雪)의 무게에 부러지지 않고 잘 견디도록 줄기는 곧추서고 가지는 짧고 가늘게 변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숲을 개간하면서 잘린 소나무는 죽지만 참나무는 더욱 많은 가지가 나와 자랄 수 있다. 참나무는 산 높이에 따라 각기 터를 잡고 있다. 가장 아래서부터 상수리,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가 자란다. () 사이의 하이브리드가 가장 발달한 나무가 참나무다.

 

변종과 잡종이 많이 식별하기 어려운 참나무류에서 멀리서도 식별할 수 있는 종이 겨울철 떡갈나무다. 잎자루와 가지의 경계에 생기는 떨켜세포가 잘 형성되지 않아 시든 잎이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떨켜세포는 시든 잎을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게 한다.) 참나무 섬유소를 분해하여 먹고 사는 것이 표고버섯이다.

 

나무 둘레를 굵게 하는 형성층이라는 세포분열층이 퇴화한 대나무는 조직 해부학적으로는 풀이지만 형성층이 있다가 퇴화한 것이기에 볏과의 나무로 인정한다. 대나무는 나무도 닮고 풀도 닮은 중간적 식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어느 쪽도 닮지 않은 독특한 생활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감자와 유사한 생태로서 바로 땅속줄기에 의해 오랜 세월 영양 번식하면서 군락이 성장하기 때문에 좀체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60년마다 대나무가 꽃 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꽃 없이도 오랜 세월 잘 번성하던 대나무가 갑자기 군락 전체가 고사(枯死)하기로 작정하고 꽃을 피우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나무 씨앗은 중력을 이기며 바람을 타고 DNA를 전파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버드나무는 5월이 되면 종자의 운반 거리를 늘리기 위해 씨앗에 솜털(종모; 種毛)을 날려보낸다. 그런데 종모를 꽃가루로 오인한 사람들이 앨러지를 염려해 버드나무류 가로수를 많이 제거했다. 식물은 복잡한 뇌를 포기한 대신 정교한 호르몬으로 주위를 인식하고 반응하며 햇빛과 양분을 얻고 꽃과 잎을 피우며 종자를 결실한다.

 

물리화학적인 생체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중력을 거슬러 30미터 높이에 물을 뽑아 올리고 추위에 대비하여 단풍과 낙엽을 지우며 영하 70도의 혹한에도 얼지 않도록 세포의 삼투압도 조절한다. 은행나무가 한때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무로 인식되었듯 메타세콰이어도 그랬다.

 

두 나무처럼 백합나무도 살아 있는 화석 수종으로 불리는 나무다. 겨울이 되면 나무들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분이 얼지 않도록 세포액의 농도 즉 삼투압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부지런히 한다. 나무는 물이 얼면 견딜 수 없는 열대 수목부터 영하 70도까지 견딜 수 있는 한 대성 수목에 이르기까지 종이 실로 다양하다. 버드나무와 자작나무 가지는 적당한 조건만 갖추어주면 영하 269도씨의 액체 헬륨에도 견딜 수 있다.

 

물은 서서히 차가워지면 빙점 이하에서도 얼지 않는 과냉각(過冷却; overcooling) 현상이 일어난다. 분비나무의 겨울눈은 영하 30도까지 과냉각한다. 그런 다음 세포 내부의 세포액 속에 당 함유량을 늘리고 삼투압을 높여 얼지 않게 한다. 나무가 내동성을 확보하는 두 번째 방법은 세포액의 수분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나무는 육상 생물종의 80퍼센트가 멸종한 K - T(중생대 백악기 - 신생대 팔레오기) 시기와 빙하기 추위 속에서도 진화했다.

 

페로몬이 같은 종에 작용하는 화학물질이라면 카이로몬은 다른 종에 작용하는 화학물질이다. 나무는 사실 귀머거리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는 관계로 청각이 별 쓸모가 없다. 소리에 반응하는 식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애기장대가 대표적이다. 애기장대는 애벌레가 자기 나뭇잎을 갉아먹는 아삭아삭하는 소리가 나면 애벌레가 싫어하는 머스터드 오일이란 물질을 뿜어낸다. 물론 이는 매우 특별한 상황이다.

 

식물은 클래식과 록 음악을 구분할 수 없어도 냄새를 맡을 수는 있다. 나무는 후각신경이 없는 대신 에틸렌 수용체를 통해 공기 중의 휘발성 화학물질을 감지한다. 나무들은 햇빛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키를 크게 하는 싸움이다. 하지만 햇빛을 많이 받는 만큼 나무 상층부는 수분 부족을 겪게 된다. 물을 빨아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미다.

 

단풍에 대해서도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무는 왜 가을에 에너지를 소비하면서까지 붉은 색의 안토시아닌 색소를 만들어낼까? 2009년 이스라엘과 핀란드의 공동 연구진의 연구에 답이 있다. 그들은 대륙에 따라 단풍색이 달라지는 이유를 두 지역의 상이한 지질 변동에서 찾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식물은 약 3500만년전부터 곤충을 물리치기 위해 안토시아닌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수차례의 빙하기가 닥쳤다. 이로 인해 유럽과 북미 대륙의 운명이 갈렸다. 북미대륙이나 동아시아에서는 수목들이 빙하기의 혹한을 피해 따뜻한 곳으로 남하할 수 있었지만 유럽은 알프스 산맥에 가로막혀 남하하지 못하고 멸종한 것이다. 이 가설을 설득력 있게 볼 필요가 있다.(유럽의 자생 수종은 80여종, 우리나라의 자생 수종은 1200여종)

 

즉 유럽은 빙하기에 나무들은 물론 곤충들까지 알프스 산맥에 가로막혀 대부분 멸종한 탓에 나무가 곤충이 싫어하는 붉은 색(이 색은 노란색에 비해 진딧물이 1/6 밖에 접근하지 못하는 색이라고 합니다.)(에너지를 소비하면서까지) 굳이 만들 필요가 없게 된 것이고 이로 인해 노란색 단풍이 우세해진 것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나무가 붉은 색의 안토시아닌 색소를 만드는 것은 생태적 생존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송이가 과거와 달리 가스를 연료로 하는 환경 변화로 인해 솔가리를 긁어가지 않아 본의 아니게 맞는 비옥한 환경 때문에 개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먹고 먹히는 식물과 곤충처럼 두루 얽힌 인연의 그물을 생각하게 한다. 한편 자작나무는 산불 등 자연재해를 입은 지역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여 토양을 회복시켜 주는 수종이다.

 

자작나무는 백색의 껍질이 옆으로 벗겨지는데 거제수나무도 회백색의 껍질이 벗겨지기 때문에 두 나무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자작나무 껍질에 짙게 배어 있는 베툴린(Betuline)이란 정유물질은 불에 잘 타면서 습기에 강하기 때문에 젖는 나무로도 불을 피울 수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등산길이나 숲 속에서 야영할 때 비에 젖은 나무 중 모닥불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자작나무가 유일하다.

 

추위에 약한 단감나무를 키우려면 추위에 강한 고욤나무 종자로 기른 대목(臺木)에 단감나무 가지를 접붙이고 찬바람을 막아주는 곳에 심어야 한다. 이것도 인연(因緣)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떫은 감은 임산물로, 단감은 농산물로 분류하고 있다. 감은 본래 임산물이었지만 단감은 단단한 상태의 열매를 수확하여 시장에 출하하기 때문에 물렁하게 익은 땡감의 홍시보다 유통 비용이 적게 들고 상품성이 오래 지속되어 소득원이 되기에 단감만 농산물로 분류하게 되었다.

 

나이테는 나무 그루터기에서 동심원 형태로 나타나는 성장 고리를 말한다. 열대 지역의 나무는 성장주기가 1년 단위가 아니기 때문에 나이테는 없고 다만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곳은 성장주기를 표현하는 성장테가 생기게 된다. 뿌리가 지탱해주긴 하지만 나무가 그렇게 가늘고 높게 자라면서 중력이나 강한 바람의 혹독한 압력을 수백년 견딜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나무의 구조조직과 리그닌, 셀룰로스 등 화학 성분에 있다. 목재를 철근 콘크리트 전주(電柱)에 비유하면 셀룰로스는 철근, 헤미셀룰로스는 골재, 산소가 포함된 유기화합물질인 리그닌은 시멘트에 해당한다. 고등식물은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리그닌을 합성하여 지상의 중력이나 바람에 대항하면서 다른 식물보다 훨씬 키가 크고 곧으며 단단하게 자랄 수 있게 되었다.

 

나무의 화학성분은 셀룰로스 50%, 헤미셀룰로스 25%, 리그닌 25% 등이다. 한지의 주원료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닥나무다. 닥나무의 내피섬유는 세포막이 두꺼워 잘 썩지 않고 질겨서 긴 인피섬유를 얻을 수 있다. 닥나무를 물에 찌고 껍질을 벗기면 백피를 얻고 이를 약 30 40cm 크기로 잘라 가마솥에 잿물을 넣고 쇠죽을 끓이듯 8시간 정도 삶는 증해(蒸解) 과정을 거치면 닥나무 펄프를 얻을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잿물은 대나무의 셀룰로스 성분만 남기고 종이를 누렇게 변색시키는 리그닌 성분과 기타 불순물 등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227, 229 페이지) 리그닌은 반응성이 높아 공기나 빛 등에 노출되면 쉽게 산화한다. 예부터 한지를 만드는 사람은 손이 희고 깨끗하다고 한다. 닥나무에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티로시나아제를 억제하는 카지놀 에프라는 미백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30만년 전에는 숯을 발명하여 불씨를 보존하고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청동기 시대를 거쳐 1만년전부터 숯 에너지로 철 생산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철기시대를 열 수 있었다. 철제 농기구 사용으로 농업 생산량이 증대되었으며 이는 인구 증가와 교역 활성화를 촉진시켜 도시형 문명 구축에 이바지했다.(234 페이지)

 

산림에서 벌채한 원목을 땅에 그냥 두면 산불로 불쏘시개가 되거나 썩는다. 결과적으로 수목이나 토양에 저장되어 있던 탄소가 이산화탄소가 되어 대기 중으로 달아나고 만다. 이런 목재를 수집하여 숯으로 구워둔다면 목재 속의 탄소가 불활성화되어 고체 상태로 영구히 묶어둘 수 있다. 숯은 탄소 덩어리여서 영구히 썩지 않는다.(238 페이지) 숲은 천연 정수기, 공기청정기, 에어컨이 되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 깨끗한 물과 공기를 선사한다. 또한 온실가스를 줄이며 거친 기후를 달래어 우리 삶의 환경을 쾌적하고 청정하게 만들어준다.(249 페이지)

 

저자는 인간은 숲의 종족이라고 전제한 뒤 기독교 창세기에 나오는 생명 나무는 대추야자나무를 신성하게 여긴 역사적 흔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268, 269 페이지) 과학의 진군을 멈출 수 없다면 최소한 방향만이라도 공존으로 수정해야 한다.(272 페이지) 인간은 숲의 종족이기에 숲을 건강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최고의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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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쓰는 조경학개론
이규목 외 지음, 김연금 엮음 / 한숲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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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造景)을 영어로 landscape architecture라 한다. 건축, 산업, 도시 분야는 협력이 긴요한 분야임에도 제도적으로나 공공사업 시행에 있어서 영역간 침범이 자주 일어난다. 조경의 기본 성격이 포괄적이고 범위가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조경은 자연을 다루고 건축은 인공물 즉 건물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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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은 외부 공간을 다루고 건축은 내부 공간과,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부분을 다룬다. 조경은 수평적이고 건축은 수직적이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대개 환경을 개발하고 이용하고 고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조경가들은 친환경적이다. 조경은 나무의 생리적 특징 등을 공부하는 유일한 분야다. 조경의 주요 설계 대상이 정원이라면 건축의 주요 설계 대상은 주택이다.

 

조경가들이 하는 일은 광범위하다. 이런 점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1. 외부 공간에 어느 정도 관심과 흥미를 느끼는까? 2. 실용적 도면을 그리는 데 흥미와 숙련도는 어느 정도 갖추었는가? 3. 미술과 조각 등에 대한 흥미도는 어느 정도인가? 4. 식물, 수학, 지리, 역사, 사회학 등에 대한 흥미는 어느 정도인가?

 

5. 쓰기와 말하기의 숙련도는 어느 정도인가? 6. 타인으로부터 얼마나 신뢰를 받는가? 7. 문제해결의 논리성을 갖추었는가? 8. 대중의 욕구에 얼마나 민감한가? 9. 예술적 욕망에 대한 민감도는 어느 정도인가? 10. 독립심을 갖추었는가? 11.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경으로 받아들이는 정도는 어느 만큼인가? 12.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조경도 예술적 측면이 있어서 양식(樣式: 예술적 풍조)이 있다. 조경 분야에서 양식이 성립된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다. 르네상스 양식이 전 유럽으로 퍼질 무렵 프랑스는 대담한 바로크 스타일을 취했다. 앙드레 르노트르란 조경가가 유명하다. 보르비콩트 성()의 정원을 만든 사람이다. 이 정원을 보고 루이 14세가 의뢰해 설계한 궁전이 베르사유 궁전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정원 양식은 풍경식이다. 프레데릭 옴스테드와 캘버트 보가 영국 리버풀 버큰헤드 공원을 참고해 설계한 공원이 센트럴 파크다. 중정(中庭)을 스페인 말로 파티오라 한다. 중정은 건축물로 싸인 정원을 말한다. 서양이 인본주의적이었다면 동양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했다. 서양에서는 풍경화라 하고 동양에서는 산수화라 한다.

 

서양화에는 감상자가 그림에 그려져 있지 않지만 동양에서는 그려져 있다. 외국에서는 정원 설계가가 정원을 설계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사대부들이 담당했다. 사대부들은 정치에도 관여했고 시서화에도 능했고 성리학에도 정통했고 정원도 만들었다. 중국 정원은 대비 효과가 상당히 크다. 음양 대비가 그것이다.

 

일본 정원의 대표적 특징은 가레산스이(고산수양식). 마른 산수란 의미다. 돌을 세워 폭포를 만든 뒤 모래로 물 흐름을 표현했다. 건축 분야에서 모더니즘이 나타난 것은 기술 발달의 결과다. 철근 콘크리트를 만든 사람이 조제프 모네다. 도축장이었던 곳을 공원으로 만든 것이 프랑스의 라빌레트 공원이다.

 

고분벽화를 통해 알려진 이집트의 정원은 현세가 아닌 내세로 가지고 갈 정원이다. 테베 시장을 역임한 센네페르가 무덤에 그린 정원은 포도밭 정원이다. 중앙에 포도밭이 있는 유일한 예이다. 기독교 정원 양식은 없다. 종교와 관련한 정원 양식은 이슬람 정원이 유일하다. 중세 정원인 수도원의 약초원은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성경의 에덴동산을 재현한 것은 오히려 이슬람 정원이다.

 

비스타는 보이는 시점이 강조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양쪽을 폐쇄하는 공간 구성 기법이다. 미적 구성 원리에서 가장 지배적인 것은 통일성과 다양성이다.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 무언가를 하면 환경이 된다. 반면 경관은 사람들이 어느 시점에서 보는 한 덩어리의 대상이다. 경관을 영어로 landscape라 한다. 지리학에서는 사람이 손댄 경관을 문화경관이라 부른다.

 

미적 가치와 생태적 가치는 상충할 수 있다. adscape란 광고 간판만 보이는 경관을 말한다. wallscape는 방음벽 사이를 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답답한 경관을 말한다. flatscape는 무미건조한 경관을 말한다. 현재의 경관에 인간이 개입하는 것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과정에 오늘이라는 켜를 덧대는 일이다. 경관이란 과거부터 수많은 변화를 거치며 쌓아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계획은 글로 하는 것이고 설계는 도면으로 하는 것이다. 여러 필자 중 한 사람인 최정민은 논리와 직관은 이분(二分)의 대립적 사고 체계가 아니라 호혜적 사고 체계라고 말한다. 조경에도 생태학적 접근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생태학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에른스트 헤켈이다.

 

생태학(ecology)과 경제학(economy)은 집, 생활의 장을 의미하는 eco라는 공통의 단어를 어원으로 한다. 장혜정은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 이론을 다른 각도로 본다. 즉 안정화 욕구, 사회적 욕구, 자기표현 욕구, 미적 욕구, 자기실현 욕구를 위계 서열로 볼 것이 아니라 자아를 겹겹이 둘러싼 피부층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동진(東晉)의 곽박(郭璞)이란 사람이 쓴 장서(葬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죽은 이는 생기에 의지해야 한다. 땅속에 묻힌 사람은 정기를 받아야 하고 그 정기는 자손에게로 이어진다.” 이규목은 풍수란 죽은 사람의 묘자리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땅을 이해하고 읽고 해석하는 방법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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