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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ㅣ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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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 1883)는 ‘올랭피아‘와 ’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은 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論)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등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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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이라는 아름다움 - 중력의 의미를 탐구하는 새로운 지적 탐험
클라우디아 드 람 지음, 김성훈 옮김 / 사람in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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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드 람(1978-)은 중력의 심오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평생 연구한 여성 이론 물리학자다. 여성이란 말을 하는 것은 그의 [중력의 아름다움]에 여성 물리학자로 산다는 것이란 챕터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법칙에 대한 이해와 해석 즉 그 의미와 기원,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내용은 결코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며 계속해서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고 말한다. 중력의 보편적 성질은 떨어뜨린 물체가 가차 없이 지구 질량 중심 쪽으로 이끌려 가는 단순한 현상을 훨씬 넘어선다.

 

흥미롭게도 뉴턴은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중력) 법칙이라는 개념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내비쳤다. 저자는 전자기 현상이 빛의 기본 입자인 광자의 발현인 것처럼 중력은 중력자라는 기본 입자의 발현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주의 진화를 자연의 근본적인 양자적 특성과 조화시키려면 더 깊은 수준에서 중력에 대해 다시 검토해야 한다. 중력은 아무런 편견이 없다. 사람이든 행성이든 블랙홀이든 풍선이든 망치든 깃털이든 치즈 조각이든 호박이든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중력을 경험한다.

 

저자는 중력 질량과 관성 질량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력 질량은 중력의 영향을 받거나 만들어내는 크기이며, 관성 질량은 물체의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기 어려운 정도(저항)를 나타낸다. 쉽게 말해 중력 질량은 이 물체가 얼마나 무거운가? 또는 지구가 이 물체를 얼마나 강하게 잡아당기는가?를 나타내고 관성 질량은 이 물체를 밀거나 멈추려고 할 때 얼마나 힘이 드는가?를 나타낸다. 물론 모든 물질에서 두 질량은 10의 마이너스 15 제곱의 정밀도 안에서 동일하다. 이를 등가 원리라 한다.

 

가령 달에서 망치와 깃털을 떨어뜨리면 망치가 중력의 인력을 더 강하게 느끼겠지만 관성도 크다. 반면 깃털은 중력의 인력을 약하게 느끼겠지만 관성 역시 작다. 그래서 깃털이 중력에 더 효율적으로 반응한다. 등가 원리에 따르면 중력 질량의 효과와 관성 질량의 효과가 서로를 상쇄하기 때문에 망치와 깃털은 정확히 같은 속도로 땅에 떨어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공기 저항이 있는 지구에서는 망치가 훨씬 먼저 땅에 떨어진다. 공기 저항은 물체를 느리게 떨어지게 한다. 그 이유는 중력과 반대 방향(위쪽)으로 물체를 밀어 올리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질량이 큰 물체는 공기 저항을 더 잘 뿌리치기 때문에 지구에서 더 빠르게 떨어진다.

 

저자는 자신의 존재 전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조각에 지나지 않으며 그 조각을 잇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인간이 무중력의 느낌을 경험할 방법은 자유낙하 밖에 없다. 지표면을 향해 자유롭게 떨어지는 사과든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비행사든 결국 낙하하고 있다. 그리고 낙하하는 동안에는 지구의 중력장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낙하하는 동안에는 매 순간 완전한 무중력 상태의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즉 매 지점 매 순간 자신에게 국소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마치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인 것처럼 기술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 궁극적으로 중력은 어디에서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일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중력은 이 공간과 시간 속의 서로 다른 지점들이 서로 연결되는 순간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중력은 시간과 공간의 조각을 하나로 연결하는 실이다. 중력을 시공간이라는 천(fabric) 즉 구조 자체와 밀접하게 관련된 존재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시공간의 천은 종종 탄력 있는 트램펄린의 표면으로 비유되고 난다. 중간에 무거운 콩을 가져다 놓으면 표면이 아래로 처지면서 매트에 있던 다른 물체들이 그 쪽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런 비유가 중력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결함을 안고 있다. 우선 우리는 그냥 휘어진 공간만이 아니라 휘어진 시공간의 기하학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물리학에서 나온 가장 흥미로운 통찰 중에는 공간을 시간과 연결하는 미묘한 방식에서 나온 것이 많다. 따라서 시공간이 아니라 공간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중력의 본질에서 큰 부분을 놓치게 된다. 공이 트램펄린의 표면을 휘게 할 때 다른 물체들이 중심에 있는 공을 향해 움직이는 이유는 공 그 자체에 이끌리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물체들은 지구의 중력에 끌리고 있으며 공에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지구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중력이 약할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저자는 우리가 지구 표면에서 24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약 2만km 상공을 도는 GPS 위성은 24시간보다 아주, 아주 살짝 짧아진 시간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정확히는 38 마이크로 초(0.000038; 38/1,000,000) 짧아진다. 중력이 약해지면 시간이 빨리 흐르고 빠른 만큼 짧아진다. 사람은 이런 작은 시간 차이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하지 않지만 38 마이크로 초면 빛이 11km 넘게 움직일 수 있다. (300,000km×38÷1,000,000; 11.4km) 위성과 지구 사이의 시공간 곡률 차이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으면 GPS 장치가 제공하는 위치 정보에 매일 수십 km씩 오차가 생길 것이다. 보정에 필요한 초정밀 시계를 만드는 핵심 기술을 양자역학이 담당한다.

 

저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휘어진 실재를 따로 가로지르는 직선은 항상 가장 직접적인 경로라는 말을 한다. 행성의 관점에서 보나, 지구에 사는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 보나 태양계를 자유롭게 항해하는 모든 것은 자신만의 직선 경로를 따라 멈추지도 않고 미끄러지지도 않고 방향을 바꾸지도 않고 곧장 나아간다. 태양계가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가 이 행성에 태어난 순간부터 곡선 공간 속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이 휘어진 공간 속의 직선 하나뿐이다.

 

저자는 물질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우리가 땅바닥에 떨어지면 고통스러운 이유는 중력이 아니라 파울리의 배타원리 때문이라는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운 말을 한다.(80, 81 페이지) 낙하 그 자체를 통해서 또는 어딘가에 떨어져 그 충격에 멍이 들어서 중력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중력이 지시하는 각자의 시공간 경로를 따르려고 최선을 다 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기거나 짓누르는 조석력(潮汐力)이 발생하고 그 힘을 통해 중력을 느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중력의 전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몸의 모든 입자도 기술적으로는 그런 장치에 반응을 나타낼 것이다. 다만 중력은 워낙 미세한 힘이기 때문에 현재의 기술로는 이를 감지할 만큼 정밀한 장치를 만들 수 없으며 가까운 미래에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중력의 메신저에게도 그 사촌인 빛에 대해 빗대어 비슷하게 이름을 붙여줄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글라이트(gravity+light)는 어떨까? 현재 과학계에서는 중력의 메신저를 전자기파의 중력 버전인 중력파라 부르고 있다.

 

빛이나 전자기파가 전자기력의 메신저인 것처럼 글라이트나 중력파는 지구의 질량에 의해 형성된 시공간 곡률에서 조석력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접하는 모든 중력 효과에 대한 정보를 실현하는 메신저다. 빛을 그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결정하는 질량인 관성질량이 우리가 지금까지 측정한 그 어떤 것보다도 작다. 우리가 아는 한 질량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빛을 움직이게 만드는 데는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역으로 그 속도를 늦출 방법도 없고 흡수하는 것 말고는 그 전파를 멈출 방법도 없다. 빛이 항상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력파 역시 질량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우주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파되는 내내 영속적으로 운동을 유지하며 자신의 사촌인 빛과 똑같은 속도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른다. 저자는 LIGO를 이야기한다.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 Observatory를 의미하는 것으로 중력파를 감지하기 위해 만든 세계 최대의 레이저 간섭계 관측소를 말한다. 저자는 일반 상대성이론은 큰 성공을 거둔 이론이지만 이 이론에서 정말 특별한 점은 스스로의 몰락을 예측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이것은 한 이론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우아한 특성이 될 수 있으며 자연의 법칙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일반 상대성이론이 공식화되기 전에는 자연의 법칙으로 우리 주변의 세계를 설명하면서도 이런 법칙으로 자연을 적절히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언제 찾아오는지 분명히 알 수 없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고민하는 것은 일반 상대성 이론이 실패할지, 실패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가 아니라 그 다음에 등장할 이론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거대한 우주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양자 역학은 미시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하지만 두 이론은 수학적으로 서로 충돌한다. 물리학자들은 일반 상대성이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 거대하고 근본적인 이론의 일부(근사치)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 저자가 선구자 중 한 명인 질량이 있는 중력자(Massive Gravity) 이론도 다음의 이론 중 하나다.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인 중력자가 아주 미세한 질량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여 우주의 가속 팽창(암흑 에너지 문제)을 설명하려는 시도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지배하는 거시 우주에서 충분히 무거운 질량이 한곳에 모이면 블랙홀로의 붕괴는 선택이 아닌 자연법칙의 필연적인 결과다. 다만 물리학자들은 무한대가 나타나는 특이점 자체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뜻하는 신호로 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합친 양자 중력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별은 중심에서 밀어내는 힘(압력)이 있어서 중력에 찌그러지지 않고 버티지만 별이 너무 무거워지면 반전이 일어난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밀어내는 힘(압력)조차도 너무 강해지면 오히려 중력을 더 무겁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저자는 E=mc²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정지 상태에 있는 입자는 자신의 관성 질량 m과 광속 c의 제곱에 비례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 공식을 통해 질량의 개념이 에너지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물리학의 거의 모든 단위는 어떤 형태로든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 일례로 시간을 생각해 보자. 100m를 10분 안에 가야 한다면 피곤할 일이 없이 아주 기분 좋은 속도로 걸어갈 수 있겠지만 시간이 20초 밖에 없다면 결승전에 도달할 때는 숨이 찰 것이다.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에너지가 증가한다는 말이 된다. 태양은 약 50억년 후 연료가 바닥나기 시작하면 적색 거성이 된다. 핵융합 에너지가 줄어들면 태양을 지탱하던 압력(팽창력)이 감소하여 중력 때문에 중심핵이 급격히 수축한다.

 

이 수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력 에너지가 중심핵을 이전보다 더 뜨겁게 만든다. 뜨거워진 중심핵 주변의 바깥 층(수소껍질)이 열을 받아 새롭게 핵융합을 시작한다. 이 강력한 에너지 때문에 태양의 외곽 층이 바깥쪽으로 밀려나며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다. 부피가 수백 배로 커지면서 태양 표면의 에너지가 넓은 면적으로 분산된다. 이로 인해 표면 온도가 낮아져 붉은 빛이나 노란색 대신 붉은빛을 띠는 적색거성이 된다. 이후 태양은 백색 왜성이 된다. 중심핵의 핵융합이 완전히 멈춘 후 질량이 상당 부분 지구보다 별로 크지 않은 영역 안에 갇히게 된다.

 

그러면 태양은 남아 있는 열로 희미하게 빛을 내는 백색 왜성이 될 것이다. 백색인 이유는 스스로 연료를 태울 때 나는 열이 아니라 예전에 품었던 열이 너무 뜨거워 하얗게 달아오르기 때문이다. 태양은 질량이 작아 절대 블랙홀이 될 수 없다. 지금은 블랙홀의 존재를 그냥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불가피하다고 여기고 있다. 블랙홀의 중심부에 충분히 가까워지면 일반 상대성이론이 가차 없이 무너진다. 거대한 우주를 다루는 일반 상대성이론과 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주의 탄생 시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말한다.(147 페이지) 저자는 일반 상대성이론이 플랑크 척도에 버금가는 큰 곡률에서만 실패하는 것일까? 혹시 터무니 없을 정도로 작은 곡률에서도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저자는 잠복 결핵 양성으로 인해 우주비행사의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과학자로서 여전히 중력을 실험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훨씬 더 혹독한 도전 즉 학자로서의 도전을 이어 나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저자는 성공적인 이론 물리학자가 반드시 키워야 할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은 자신의 연구 분야나 경력에서 성과를 올리기 전에 실망 속에서 보내야 하는 긴 시간을 참고 인내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154 페이지) 저자는 오늘날 우리 우주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이어갈 주인공은 은하도 아니고 텅 빈 공간 곳곳에 풍부하게 흩어져 있는 암흑 물질 덩어리도 아니고 영원의 시간을 버티며 모든 곳으로 쉬지 않고 퍼져나간 암흑에너지라고 말한다.

 

은하에 있는 항성, 항성 주위를 도는 행성, 그리고 모든 행성과 성간 먼지에 들어 있는 모든 원자 심지어 중성미자의 질량까지 모두 합쳐도 은하 주위 궤도를 도는 항성에 작용하는 중력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우주가 열심히 귀여운 걸음마를 하던 5만 살쯤부터 암흑 물질이 우리 우주의 진화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는 관측 증거가 이제는 풍부하다. 암흑 물질의 중력이 최초 은하들의 씨앗을 뿌리고 최초 항성들의 탄생을 이끌었다.

 

저자는 우주는 무(無)로 팽창한다고 말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주는 그 무엇으로도 팽창해 들어가지 않는다. 그냥 자기 자신 안에서 스스로 팽창하는 것이다.(162 페이지) 입자의 질량이 있는 경우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²에 따라 입자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질량에 비례한다. 입자의 질량은 입자 고유의 것이고 우주가 팽창해도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우주가 팽창하면서 그 부피가 증가함에 따라 유질량(有質量) 입자의 에너지 밀도 역시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광자 같은 무질량(無質量) 입자의 경우에는 그 에너지가 질량이 아니라 파장으로 결정된다. 이 경우 파장이 짧을수록 무질량 입자의 에너지는 커진다. 에너지는 곧잘 반중력 현상으로 묘사된다. 저자는 우주는 휘어져 있고 팽창하고 있고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계에서는 물리량이 반드시 일정할 필요가 없고 우주의 에너지도 예외가 아니.(172 페이지)

 

암흑에너지의 진정한 힘은 시간과 공간의 어느 한 지역에서 국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전반에 걸쳐 일정하게 존재하는 특성 즉 응집력과 끈기에 있다. 암흑에너지는 우주의 팽창 속에서도 줄어들지 않으며 은하나 은하단의 경계에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우주 탄생 당시 암흑 에너지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반면 다른 모든 형태의 에너지는 우주의 팽창과 함께 점점 희석되다가 결국 거의 씻겨 나갔다. 오늘날 우리 우주는 너무 나이가 많아지고 너무 많이 늘어나서 대부분의 요소가 거의 완전히 희석되어 사라져 버렸다.

 

반면 암흑에너지는 그냥 일정한 상태로 머물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수십억 년 동안 꾸준히 지배적인 에너지로 자리 잡았다.(173 페이지) 암흑에너지는 우주 어디에나 있다. 심지어 지구 위에도, 우리 귀 뒤쪽에도 존재하고 우리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일정량이 폐 속으로 들어온다. 우리가 암흑에너지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은 모든 힘 중에서 가장 약한 힘인 중력을 통하는 것 외에는 없다.(174 페이지)

 

물질은 은하단 주변에 주로 집중된 반면 암흑에너지는 우주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다. 저자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이 중력 이론을 구축하는 토대가 되어준 철학적 기반 즉 등가원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의 원래 방정식을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은 우주 상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것을 도입하는데 아인슈타인도 큰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다. 중력이 없는 상태에서 우주 상수는 단순히 기준점을 가리킬 뿐이다.

 

우주 상수는 우주의 에너지 밀도에 대한 기준점일 뿐이다. 이것을 바꾼다고 해도 아무것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정적(靜的)이라고 생각했다. 우주 상수의 목적은 우주를 정적인 상태로 유지될 수 있도록 물질이 우주에 미치는 중력의 영향을 상쇄하는 것이었다. 우주 상수는 아인슈타인의 생애 최악이 실수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암흑에너지 일 수도 있다.

 

그가 시대를 앞서 또 한 번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우주의 후기 가속 팽창을 관찰하기도 전에 먼저 설명해낸 것이다. 저자는 설령 우리가 완전한 진공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이 공간은 물질이나 물리적 입자 대신 에너지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끝없이 만들어지고 소멸하는 입자와 반입자로 이루어진 양자 바다의 에너지를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진공 에너지라고 부른다.(180 페이지)

 

LHC(large hardron collider; 대형 강입자 충돌기)에서는 양성자를 광속의 99.999991%의 속도로 서로 충돌시킨다. 양성자는 어떻게 얻을까? 수소 가스통의 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낸 것이 양성자다. 힉스입자는 다른 입자들이 잠겨 있는 바다라 생각하면 된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진공이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힉스장의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는 증거다. 이것은 우리가 진공 에너지라 부르는 것 즉 우리가 만든 진공실이나 우리가 방문한 은하간 우주공허처럼 텅 빌대로 빈 공간 안에 들어 있는 에너지의 일부다.

 

힉스입자는 이 비소멸 진공에 기여함으로써 다른 모든 유질량 입자에 영향을 미쳐 그들의 속도를 늦추며 이것이 사실상 관성 질량의 기원으로 이어진다. 암흑 물질, 암흑에너지와 달리 가상 입자는 가설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물질이나 에너지가 아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모든 알려진 입자에 편재(遍在)하는 영혼으로 양자 요동 때문에 항상 존재한다.(183 페이지) 실체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아 우주 어딘가에 있는 미지의 무언가로 가설을 세워야 하는 암흑 물질, 암흑에너지와 달리 가상 입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질과 공간의 근저에 항상 깔려 있는 물리적 현상이라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등가 원리를 전제로 구축되어 있다. 등가 원리에 따르면 우주 만물은 중력과 동등하게 연결되어야 하며 시공간 구조에도 비슷한 영향을 미쳐야 한다. 저자는 일반 상대성이론이 무질량 글라이트 파동을 일관되게 기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글라이트처럼 질량 없이 가볍다는 것은 놀랍게 들릴 뿐만 아니라 해방된 느낌마저 준다. 저자는 중력이 질량을 가진다는 개념은 언뜻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보통 질량체가 중력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지 중력장 자체의 질량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질량이 있다는 말은 그냥 글라이트 더 정확히는 글라이트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이 관성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지 중력이 거대하다거나 중력의 질량이 자기 자신을 끌어당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힘이 질량을 갖는다는 개념은 자연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약한 핵력을 예로 들어 생각하면 이 힘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약한 힘이다. 유질량 중력이라는 개념이 근래 들어 새로운 추진력을 얻었지만 개념 자체는 거의 일반 상대성 이론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중력자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입자가 질량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볼프강 파울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리학에서 유령은 음의 에너지를 갖는 입자를 말한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구조와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실재 안에서 유령의 존재를 인정하기만 하면 건강한 일반 입자가 무한한 음의 에너지 유령으로부터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그냥 빌려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유혹을 누가 뿌리칠 수 있겠는가?

 

저자는 네 번째 차원인 시간을 따라 앞뒤로 떠나는 여행은 슬프게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유질량 중력은 중력을 매개하는 가상의 입자인 중력자가 질량이 미세하지만 0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반한다. 유질량 중력 이론이 등장한 것은 우주의 가속 팽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유질량 중력 이론을 도입하면 정체 불명의 존재인 암흑에너지가 없어도 가속 팽창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중력자가 미세한 질량을 가지면 중력의 사거리가 한정된다.

 

어느 특정한 한계 거리를 넘어서면 중력의 세기가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것보다 훨씬 급격하게 감쇄하여 사실상 0에 수렴한다. 암흑에너지는 현대 물리학에서 계산한 진공 에너지의 이론 값과 실제 관측 값이 10의 120제곱 배나 차이나는 치명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 중력자가 0이 아닌 미세한 질량을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수정, 암흑에너지 퇴출과 우주론의 대전환, 중력파의 속도가 빛보다 느린 것으로의 수정, 양자 중력 이론에의 힌트 등이다.

 

저자는 우리 이론에 반대하는 논증을 대부분 막아내거나 적어도 유령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고 나니 이 모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 마침내 시작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유질량 중력은 아직 옳은 것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그 점에서는 그 어떤 이론도, 심지어 일반 상대성 이론도 옳다는 것이 입증된 바 없지만 이 이론이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론을 현실과 비교하며 시험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고 말한다.

 

과학의 발전은 절대적인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현실과의 끊임없는 비교 과정을 통해 실패하지 않는 이론들을 유력한 후보로 남겨두는 여정을 의미한다. 유질량 중력이 말이 되려면 중력자의 질량이 아주 작아야 하며 그 작용 범위는 오늘날 관측 가능한 우주와 비슷하거나 더 클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과 플랑크가 등장하기 전에는 빛이 전기장과 자기장이 파도처럼 요동치는 순수하게 고전적인 현상이라고 믿었다.

 

플랑크는 복사(輻射)한 원자에서 나오는 이런 파동이 담고 있는 에너지는 임의의 값을 가질 수 없으며 복사의 주파수의 에너지가 결정되는 불연속적인 양으로 양자화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저하듯 처음으로 제안했다. 플랑크의 관점에 따르면 빛의 흡수는 고전적인 현상인 반면 빛의 방출은 양자화된 현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양자적으로 성공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이 개념을 확장했다. 그는 이런 양자화된 에너지가 진공에서도 빛이 가지는 속성이라 주장했다. 따라서 주어진 주파수의 빛은 불연속적인 에너지 수준에서만 흡수되고 방출될 수 있다.

 

파동-입자 이중성은 양자론에 내재되어 있으며 빛, 전자, 그리고 알려진 다른 모든 입자에 대해 철저히 검증되고 확립되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중력자다. 전자기 현상과 중력, 전자기파와 중력파 사이에서 접했던 놀라운 유사성을 고려하면 과학자들이 중력 또한 양자 입자 수준의 기술이 가능함을 입증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로 보일 수 있다. 광자가 빛과 연관된 입자인 것처럼 중력자는 글라이트와 연관되어야 하는 입자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보편적인 힘이라는 뉴턴의 중력 개념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시공간 곡률의 개념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변화는 결국 불가피하게 탱고로 이어지게 된다. 자유낙하하는 천체들은 직선 경로로 나아가더라도 곡율의 존재 때문에 필연적으로나 선을 그리며 우아한 탱고를 추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시공간 구조 안에 중력의 근본적인 힘이 숨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 힘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의 구조 안에 내재되어 있다. 저자는 일반 상대성 이론은 감히 견줄 수 없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중력과 관련해서 중요한 돌파구가 생기거나 일반 상대성이론과의 결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는 시간이 아니면 중력 그 자체가 말해줄 것이다. 진짜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여기서 멈춰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외계 행성 발견과, 외계 생명체 탐사는 현재 진행중인 가장 흥미로운 과학적 도전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중력을 더욱 잘 이해하면 새로운 우주, 새로운 차원의 공간, 심지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외에 새로운 암흑의 존재를 찾을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중에는 완전히 새로운 종과 문명이 우리 바로 옆에서 나란히 공존하는 터전이 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중력을 좇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중력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걷든, 다이빙을 하든, 하늘을 날든, 우주비행사가 되어 우주를 탐험하든 솟구치고 떨어질 때, 성공하고 실패할 때, 우리는 모두 중력에 의해 정의된 우주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한 명의 과학자로서 영원히 그 비밀을 찾아 나설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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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이클 길렌 지음, 김홍빈 옮김 / 야다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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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길렌(Michael Guillen; 1959 - )의 [믿음 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리학 중심의 과학 지식으로 기독교라는 종교와 신앙, 진리와 지능의 관계를 다룬 최고의 책이다. 원제는 믿어야 보인다는 의미의 [Believing is Seeing]란 제목의 책이다. 코넬대학교에서 물리학, 수학, 천문학 분야의 통합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천문학자, 그리고 기독교인“인 자신은 ”과학적 방법과 성경, 이성과 신앙, 우주와 하나님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믿음을 우주 안팎의 모든 것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 그가 보는 믿음이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믿어야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주장을 신뢰하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무언가가 사실일 수도 있다고 믿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직접 조사해 보거나 확인해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79, 80 페이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엄격한 오순절 계통의 가정에서 자란 저자는 어려서부터 조금씩 과학적 세계관을 흡수한 결과 UCLA를 졸업한 무렵 과학과 무신론의 세계에 푹 빠져 살며 그 둘(과학과 무신론)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특별하다. 1) 무신론자가 주장하는 자유로운 생각들도 모두 증명할 수 없는 몇 가지 가정들에 근거한다고 주장하기(21 페이지) 때문이며, 2) 무신론적 세계관이 과학적 세계관과 반대되며 오히려 기독교적 세계관이 본질적으로 과학적 세계관과 어울린다고 주장하기(81 페이지) 때문이다.

 

저자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과학에서조차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즉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것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세계관에 큰 도전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37, 38 페이지) 우주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보통 물질은 약 4.9%, 암흑에너지는 약 68.3%, 암흑 물질은 약 26.8%를 차지한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반대 역할을 한다. 암흑물질은 강한 중력을 행사해 은하가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암흑에너지는 우주 공간 자체를 밀어내어 우주가 점점 더 빠르게 원리적으로 밀려나도록 만드는 가속 팽창의 원동력(척력 또는 반중력)으로 작용한다.

 

저자의 행보에 주요한 계기로 작용한 인물이 현재의 아내인 로렐이다. ‘시인을 위한 물리학’이란 수업의 학부생이었던 로렐의 제의로 저자는 함께 성경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저자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 성경을 읽게 된 것은 책 자체 때문이 아니라 로렐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56 페이지) 신약성경을 읽어가는 동안 양자(量子)물리학을 생각하게 된 저자는 신약성경이 논리적이지 않은 만큼 양자물리학 역시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양자물리학은 분자, 원자, 전자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불연속적 에너지와 입자들의 기묘한 움직임을 다루는 학문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이 논리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근거해 신약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후 그것이 자신을 어디로 이끄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신약성경에 비논리적인 면이 있다고 본 것은 1) 악질 중의 악질 죄인이라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 2) 친구 뿐 아니라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 3)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 4) 참으로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말, 5) 강자가 아니라 온순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며 기존의 논리와 초논리적(超論理的) 사고의 엄청난 차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통상적인 사고는 우리를 자명한 진리로 이끈다. 자명한 진리의 반대는 항상 거짓이다. 초논리적 사고는 우리를 심오한 진리로 이끈다. 심오한 진리의 반대 역시 사실이다.’(60 페이지) 물론 저자가 양자물리학과 신약성경을 초논리적 사고의 두 가지 강력한 사례로 보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생각이 그의 무신론에 흠집을 낼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진리는 증명보다 크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는 “한 이론의 진리 여부는 결코 증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미래의 어느 날 누군가 그 결론과 모순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로도 뒷받침된다. [믿음 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많은 물리학자들, 수학자들의 이론을 접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책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리 스몰린, 마틴 리스, 숀 캐럴, 스티븐 와인버그, 브라이언 그린(이상 물리학자), 사비네 호센펠더, 모리스 클라인, 존 배로, 유진 위그너(수학자)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여섯 개의 수]라는 책의 저자인 마틴 리스의 경우를 보자. 리스가 든 여섯 개의 물리 상수(常數)는 N(뉴턴; 우주의 중력 크기), ε(엡실론; 원자핵 결합력), Ω(오메가; 암흑 물질과 우주의 밀도), λ(람다; 우주상수), Q(Quadrupole; 우주의 생산력/불균일도), D(디멘션; 우주의 공간 차원 수) 등이다. 이는 우리 우주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절묘하게 미세 조정(Fine-tuning)되었으며 값이 조금만 달랐어도 지금과 같은 우주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틴 리스는 이런 조율이 그저 맹목적인 우연도, 인자한 신의 섭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인류는 오직 올바르게 조합된 우주에서만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인류가 현재 얼마나 귀한 상황에 있는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가령 수소가 융합해 헬륨이 될 때 질량의 몇 %가 에너지로 바뀌는지를 나타내는 ε(엡실론; 원자핵 결합력)의 경우 그것이 0.007%가 아닌 0.006이었다면(10만 분의 1 정도만 작았다 해도) 수소 외에 다른 원소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0.008이었다면(10만 분의 1 정도만 컸어도) 빅뱅 직후 모든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어 물(H₂O)이나 별의 연료가 될 수소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떤가.

 

초기 우주에 존재했던 물질 분포의 미세한 주름(밀도 요동)의 크기를 나타내는 Q(우주의 생산력/불균일도)의 경우 약 10⁻⁵보다 작았다면 물질들이 중력으로 뭉치지 못해 은하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이보다 컸다면 우주는 거대한 블랙홀들로 가득 차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거친 환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또 어떤가. 이들만 보더라도 기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양자물리학의 주요 정의와, 예수님은 필멸자(인간)이자 불멸자(신)라는 설명을 나란히 놓는다. 또한 모든 색상의 빛(레드, 그린, 블루)을 더하면 흰색이 되는 과학의 진리와,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기독교의 정의를 나란히 놓는다. 저자는 시간을 창조한 ‘시간 초월자’인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99 페이지) 저자의 이 정의는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기에 “나는 나다“라고 설명하는 전통 방식과 다른 참신하고 독특한 해석이다.

 

저자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자신의 질문에 가장 잘 대답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이 과학적 세계관과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택한 결과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103 페이지) 저자는 지능지수(IQ; intelligent quotient)와 영적지수(SQ; spiritual quotient)를 함께 갖추는 것을 시너지 효과를 내는 3D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비유한다. 이 3차원 렌즈를 이용할 때 우리는 깊이와 의미를 인식하면서 우주의 물리적인 동시에 영적인 웅장함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대단히 도약적이지만 근거가 충분하다.

 

저자는 이와 같은 시각은 우리가 죽어 불멸의 영혼으로서 창조주와 다시 만날 때 얻게 될 특권적인 시각을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며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는 바울의 말을 예시한다.

 

저자는 많은 과학자들이 맹목적인 믿음과 증거에 기반한 믿음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거나 아예 알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과학의 전체 구조 자체가 맹목적인 믿음과 증거에 기반한 믿음이라는 두 개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127 페이지) 저자는 모든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에 맞서 믿음을 1) IQ에 기반한 깨달은 믿음, 2) IQ에 기반한 잘못된 믿음, 3) SQ에 기반한 깨달은 믿음, 4) SQ에 기반한 잘못된 믿음의 네 가지로 나눈다.

 

SQ에 기반한 깨달은 믿음으로 저자는 양자 진공(眞空) 및 성경의 하나님을 든다. 인간은 좌뇌형, 우뇌형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좌뇌와 우뇌를 모두 온전히 사용한다고(전뇌형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두 반구(半球)는 거의 정반대이면서 상호 보완적인 두 가지 세계관을 제공한다는 설명을 더한다. 더 설명하면 좌뇌는 세상을 보고, 의식적으로 알고, 언어로 쉽게 묘사할 수 있고 우뇌는 세상을 보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알고 비언어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139 페이지) 그렇기에 오직 보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만 믿기로 선택한다면 문자 그대로 반쪽 뇌로 사는 셈이다. 믿어야 보이는 것이다.

 

깨달은 믿음은 뇌의 두 반구가 서로 잘 지내도록 만든다. 저자는 과학도 종교처럼 믿음에 의해 이끌리는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144 페이지) 그리고 그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깨달은 믿음이 과학과 기술의 토대가 되기에 자연의 네 가지 힘(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보다 강력하다고 결론짓는다.(146 페이지) 저자는 우리 뇌의 두 반구에 본래부터 내장된 자연적 선물인 믿음은 종교뿐 아니라 과학, 자신이 사랑하는 수학, 물리학, 천문학까지 작동시키는 힘인 반면 논리는 아테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안한 영리한 발명품으로 특정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레시피 같은 것, 믿음을 핵심 재료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에 의하면 믿음이라는 자연적 선물은 논리에 의존하지 않으나 논리라는 발명품은 믿음에 의존하기에 실제로는 믿음이 논리보다 우월하다.(146 페이지) 저자는 오늘날 세속화된 과학적 방법 역시 증거는 있지만 증명은 없는 공리들을 믿도록 요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이 전제로 삼는 세 가지 공리적 믿음을 소개한다. 1) 우주는 설명이 가능하다. 2) 가능한 가장 단순한 설명이 항상 최선이다. 3) 실험이 우주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등이다.

 

저자는 우주의 합리적인 설계자가 있다는 생각이 무한히 많은 숨겨진 우주들이 있다는 생각보다 더 터무니없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아원자 입자를 매우 간접적인 방식으로, 난해한 데이터로부터 추론하는 현실을 보며 그런 문제가 자신이 참여했던 거대한 실험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모든 분야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설명하려는 현실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고생물학자들은 한 지역에서 발굴된 한 개체의 턱뼈 하나만 가지고 그 종 전체에 대해 전 지구적인 결론을 도출하고 천문학자들은 실제로는 볼 수 없는 외계행성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별의 궤도와 밝기의 미세한 변화를 근거로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에 대해 흥분된 주장을 한다.

 

그 별들은 무려 수천 조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역자주(譯者注)처럼 독자주(讀者注)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암흑에너지 논의도 관측이 아닌 추론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암흑에너지를 눈으로 봐서 믿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중력 법칙이 맞다면, 관측된 우주의 가속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암흑에너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고도의 논리적 추론이자, 현재로서는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최선의 모델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자라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선입견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이 발표한 결론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저자가 구원자로 여기지는 않지만 변함없이 신뢰하는 과학을 구사하고 작동하게 하는 믿음은 IQ와 SQ가 함께 작동하는 깨달은 믿음이다. SQ는 먹고 사는 것과 같은 현안(懸案)인 아닌 문제들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음미하게 한다. SQ가 있었기에 과학이 탄생했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4차원 리만 세계, 기하학적 점, 양자 진공, 가상 입자 등과 같이 난해하면서도 초논리적인 수학 공리와 개념을 바탕으로 한 과학 이론들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어왔다. 저자는 가상 입자들이 아주 짧은 시간 출몰하는 양자장(量子場)을 충분히 세게 튕기면 들을 수 있는 음을 만들어내는 유령 기타 줄 같은 것이라 설명한다.(46 페이지)

 

”경험과 무관하게 인간의 사유가 만들어낸 수학이 현실의 사물에 이렇게도 절묘하게 들어맞을 수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185 페이지) 이는 아인슈타인의 감탄이다. 저자의 감탄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을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이라 말하는 저자다. 저자는 물리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한때 신을 믿었던 것처럼 양자물리학의 기이한 논리를 믿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원자, 전자 등이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양자 중첩 현상은 이상한 나라라는 미시 세계 거주자라면 누구나 지닌 일반적인 특성이다.

 

우주의 가장 깊숙한 비밀은 불확실성의 커튼 뒤에 숨겨져 있다. 도로시(오즈의 마법사의)와 같은 물리학은 그 커튼을 절대 걷어낼 수 없으며 우리의 강력한 SQ조차도 그 너머를 제한적으로 엿볼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성경 번역본, 해석 등 여러 항목에 관해 기독교인들의 의견이 상당히 엇갈리는 것처럼 양자물리학을 두고도 물리학자들 역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했고 그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243 페이지)

 

저자는 다른 종교들을 다룰 때처럼 기독교 세계관을 철저하게 파고들 때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신약성경의 핵심과 본질을 판단하려면 그 중심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냉철하게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동정녀 탄생이 많은 사람에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먼저 만약 성경 속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면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행하실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생물학에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의 유전체에는 과거 수많은 세대를 거쳐 우리 종을 감염시킨 수많은 바이러스로부터 유래한 약 10만 개의 DNA 조각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이 고대 바이러스들은 주로 염색체의 중심부에 위치한 동원체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구조는 놀라울 만큼 복잡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만약 우리의 염색체가 이렇듯 고대 바이러스의 DNA에 감염되어 있다면 구약성경을 읽어본 바에 따르면 우리는 또 다른 고대의 전염성 병원체 역시 함께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 아담과 하와의 반역 정신이라는 바이러스다. 이 오래된 병원체를 기독교인들은 원죄라고 부른다.(259, 260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비좁고 논리 중심적인 세계관으로 인해 참으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신 예수. 낮고 천하지만 동시에 하늘에 속한 그 분의 희생적 죽음이라는 모순적이면서도 초논리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마침내 그것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저자에게 그것은 평생에 걸친 무신론의 끝의 시작이었고 동시에 우주와 생명의 가장 깊은 신비 속으로 뛰어드는 지적, 영적 여정의 시작의 끝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262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평생 연구해온 장엄하고도 불가해한 별들과 은하들, 퀘이사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며 또한 그 사랑에 넘치는 그러나 멀리 계신 하나님이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덕분에 나와 당신,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그 분을 인격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그 분과 천상의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268 페이지)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예수를 온전히 신뢰하기 위해 SQ보다는 IQ에 지나치게 의존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바울의 말로 풀어낸다. 육(肉)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 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며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고린도전서 2장 14절)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기독교에 대해 무엇을 믿든 바울의 주장을 가볍게 무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불합리하다. 자신이 진심으로 믿지 않는 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독교의 관점으로는 무신론자야말로 가장 속박되어 있으며 가장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라 말한다. 저자는 우리를 붙잡아주는 힘인 강한 핵력을 이루는 쿼크를 떼어내기 위해 가장 강력한 입자 가속기로 원자핵을 폭격했지만 실패했음을 언급하며 이는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벗어나면 진정한 자유 사상가가 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닮았다고 설명한다. 쿼크는 원자핵 안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쿼크는 강력의 근원과의 거리가 제로일 때 가장 자유로운 것이다.(291 페이지) 강력은 중력, 전자기력과 반대로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결합력이 약해진다.

 

이를 점근자유성(漸近自由性)이라 한다. 쿼크는 원자핵의 중심부(양성자나 중성자의 내부)에서 서로 가장 가까이 뭉쳐 있을 때 가장 자유롭다. 강력의 존재는 속박이 아니라 해방이다. 하나님의 임재 역시 속박이 아니라 해방이다. 여기서 결합력이 약해진다는 것은 관계의 단절이나 약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기에 더 이상 나를 억누르는 강제적인 힘이 필요 없어지며 비로소 가장 자유롭고 안전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볼 수 있고, 증명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로만 믿음을 제한하는 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 말하는 저자는 자신처럼 과학적 성향으로 똘똘 뭉친 사람에게는 성령이 마치 강력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즉 그것은 실재하며 우리는 그것과 매우 밀접하다. 성령은 우리 안 깊숙이 우리 존재를 이루는 쿼크의 가장 깊은 곳까지 숨겨져 있다. 그보다 더 친밀할 수는 없다.

 

저자는 당신의 세계관이 흔히 쓰이는 유행어처럼 증거 기반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초에는 증명할 수도, 볼 수도, 심지어 온전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공리적 신념들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설령 당신의 세계관이 무신론적일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308 페이지)

 

저자는 꿈과 소명의 차이를 인상적으로 논한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소명을 찾아나서라고 말한다. 저자의 책에 최근의 핫 이슈인 유신진화론이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물리학 지식만으로 하나님을 설명한 내공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 책은 지금껏 내가 읽은 어떤 물리학 책보다 유익하고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어떤 기독교 책보다 영적이면서 설득력이 강한 책이다. 저자는 소명을 찾으려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멈추어 서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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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지질여행
박기화 지음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제주도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자연유산(2007년), 세계지질공원(2010년)으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제주도 지질여행]은 바로 이 제주도의 다양한 암석 및 지질 상황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제주도가 유네스코 다중지정지역이라는 사실 만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마그마와 화산재가 물과 관계를 맺었는가 아닌가다. 제주도에는 파호이호이 및 아아 용암이 굳은 암석이 모두 존재한다. 현무암질 용암은 폴리네시안 언어에서 유래된 파오이호이 용암 또는 아아 용암으로 구분된다. 이들 용암의 형성은 마그마의 화학 성분상 차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용암 분출 당시의 온도, 점성, 유속 등과 같은 물리적 조건 및 탈기체화에 수반된 변화, 지표면 경사 등에 의해 좌우된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표면이 유리질과 같이 반짝이고 매끄러우며 용암 단위의 상하부에 집중된 기공(氣孔)은 대부분 둥근 형태를 지닌다. 아아 용암은 용광로 슬래그처럼 표면이 거칠고 암괴와 같은 형태의 클링커를 지닌 용암류로서 대개 상하부 경계가 불규칙하며 산화로 인해 적색을 띠는 클린커층을 형성하고 중앙부는 비교적 치밀한 용암 상태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마그마가 물과 만나면 급히 식고 물은 끓게 된다. 이런 냉각 및 가열 반응은 매우 격렬하게 일어나 수증기를 다량 함유한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이를 수증기 마그마성 분출 또는 수성 화산활동이라 한다.

 

고온의 마그마가 차가운 물을 만나면 마그마는 작은 반투명한 유리 조각 알갱이로 깨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뜨거운 유리컵을 찬물에 넣으면 유리컵이 깨지는 현상과 같다. 화산분출에 의해 형성된 응회암은 퇴적암 등의 퇴적 구조에서 관찰되는 평행한 줄무늬 구조인 층리(層理)가 형성되어 있어서 퇴적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응회암을 구성하고 있는 유리질 파편들은 물리적 성질이 불안정하며 수증기를 흡수하여 안정화되면서 부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도 쉽게 단단한 암석이 된다.

 

제주도 작은 화산체인 오름은 주변 지형에 비해 뚜렷이 솟아올라 봉긋한 지형을 가리키는 제주어다. 악(岳), 봉(峰), 산(山)으로도 불린다. 오름은 열하(熱河) 분출과 관련이 깊다. 지각운동으로 인해 마그마와 지표 사이에 생긴 단층(斷層)과 같은 줄 모양의 틈으로 용암이 스멀스멸 대량으로 흘러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대체로 유동성(流動性)이 큰 현무암질 용암이 그런 분출을 보인다. 열하분출 하다가 마그마의 양이 떨어지면 지표면의 하나의 통로(화도)나 점을 통해 집중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중심분출을 한다.

 

소화산체는 주로 규모가 큰 순상화산 또는 성층화산의 주화도의 측방 이동, 열극(裂隙)을 따라 만들어진 화산이란 의미에서 기생화산이라 불렸으나 최근 연구에 의해 이들이 순상화산과 성층화산의 사면 분화(flank eruption) 활동과 관계없이 현무암질 화산암 지대에서 독립적인 화산체로서도 만들어질 수 있기에 단일 마그마의 분화에 의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체라는 의미에서 단성 화산이라 한다.

 

단성 화산에 해당하는 368개의 오름은 대부분 화산 폭발시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쇄설물이 화구 주변에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원추형의 작은 화산체인 분석구(噴石丘)이며 그 외 응회구, 응회환, 사발 모양의 화산 분화구인 마르, 방패형 화산 및 용암돔으로 구성된다. 분석구란 분출한 화산쇄설물이 쌓인 언덕을 말한다. 응회환(Tuff Ring)은 마그마가 지하수나 바닷물, 호숫물 등 풍부한 물과 만나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키면서 형성된 나지막한 고리 모양의 수성화산체를 말한다. 정리하면 응회환은 수성 화산체, 분석구는 분화구 주변의 돌언덕을 의미한다.

 

응회구(凝灰丘)는 마그마가 풍부한 물(바닷물, 호숫물 등)과 만나 폭발한 수성 화산체, 분석구는 물 없이 마그마 자체의 가스 압력으로 분출한 육성 화산체다. 응회구란 글자에는 물에 대한 정보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없다. 하지만 화산재 원래 마른 먼지처럼 바람에 쉽게 날아가는 성질을 가진다. 이 화산재가 날아가지 않고 한곳에 단단히 엉겨 붙으려면(凝) 반드시 수분(물)이 필요하다. 마른 모래는 성을 쌓을 수 없지만 물을 섞으면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물이 마그마보다 훨씬 많으면 폭발력이 매우 강력해진다. 물이 순식간에 기화(氣化)하면서 화산재와 파편들을 사방으로 멀리 날려 보내기 때문에 높이 쌓이지 못하고 옆으로 넓고 완만한 고리(環) 모양을 이루게 된다. 이를 응회환이라 한다. 물에 비해 마그마의 양이 많으면 끈적하고 젖은 화산재 반죽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분화구 바로 주변에 떨어진다. 이 수분 가득한 화산재 반죽이 흘러내리지 않고 분화구 주변에 그대로 찰떡처럼 가파르게 쌓이면서 높은 언덕(丘) 모양이 된다. 이를 응회구라 한다.

 

제주도 서쪽 고산포구에는 수월봉과 당산봉이 있다. 낮은 구릉 형태의 수월봉은 응회환이고 경사가 급한 높은 산을 이루고 있는 당산봉은 응회구에 해당한다. 응회환과 응회구가 가까이 분포하고 있어 서로를 비교할 수 있다. 응회암도 물과 관련된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쌓여서 굳은 퇴적암의 한 종류다. 이 화산재가 암석으로 변하는 모든 과정에서 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 없이 만들어지는 특이한 응회암도 있다. 화산이 폭발할 때 너무 뜨거운 화산재(수백 도 이상)가 엄청난 무게로 순식간에 짓눌리면 녹아서 떡처럼 들러붙어 굳는다. 이를 용결응회암(Welded Tuff)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는 물보다는 자체 열과 무게로 굳은 예외적 케이스다.

 

물은 화산재의 1) 요리사, 2) 그릇, 3) 강력 본드 역할을 한다. 땅속에 있던 엄청나게 뜨거운 마그마가 바다나 지하수(물)를 만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이 폭발력 때문에 마그마가 잘게 쪼개지면서 엄청난 양의 고운 화산재 먼지가 만들어진다. 물이 마그마를 화산재로 요리해 낸 것이다. 하늘로 날아간 화산재들은 아래로 떨어지는데, 많은 수가 바다나 호수(물속)로 떨어진다. 그냥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아가 사라지기 쉽지만 물속에 떨어지면 물이 그릇처럼 화산재를 안전하게 모아준다.

 

무거운 재는 먼저 가라앉고 가벼운 재는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시루떡처럼 예쁜 줄무늬(층리)를 그리며 차곡차곡 쌓인다. 화산재 더미 사이로 지하수(물)가 끊임없이 흘러 지나간다. 물속에는 미세한 광물 성분들이 녹아있다. 이 성분들이 화산재 알갱이 사이에 풀처럼 끼어들어 서로를 단단하게 접착시켜 준다. 화산재가 물과 만나면 스스로 화학 반응을 일으켜 끈적한 진흙처럼 변하면서 돌처럼 굳기도 한다.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남쪽으로 약 9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남서-북북동의 장축과 약 41km의 폭을 지닌 타원형의 본섬 및 8개의 사람이 사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도는 바다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만 대륙붕 위에서 이루어진 대륙 지각 내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섬이기 때문에 그 지질학적인 특징은 울릉도, 독도 그리고 하와이 같은 다른 해양 화산도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다. 중앙부에 한라산이 자리하고 368개의 오름이 섬 전체에 고루 분포한다.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은 화구로서 지름이 575m이고 깊이가 100m이다.

 

제주도를 멀리서 보면 서쪽과 동쪽은 완만하고, 한라산에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쪽은 험준하다. 서쪽과 동쪽에 완만한 저지대 지역에는 파호이호이 용암이 굳어서 된 암석이, 북쪽과 남쪽 지역에는 아아 용암이 굳어서 된 암석이 주로 분포한다. 제주도에는 용암 분출에 의해 형성된 화산암과 화산 폭발에 의해 형성된 화산쇄설암 또는 응회암이 있으며 용암과 용암 사이의 퇴적층도 나타난다.

 

시추 조사에 의하면 제주도 동부는 해수면 하부로 150m까지, 서부지역은 해수면 하부 50~ 70m까지 용암이 분포하고 있고 그 밑으로는 서귀포층과 U층(unconsolidated formation; 굳지 않은층 또는 미고결층)이, 더 깊은 곳에는 중생대 화산암과 화강암이 기반암으로 자리한다. 응회구와 응회환은 수성 화산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체로 제주도 해안에 주로 분포한다. 이 화산체는 수 cm에서 수십 cm 두께로 반복된 응회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출봉과 같이 높은 산을 이루고 있다.

 

응회암층의 수평 분포는 수백m에서 수 km에 이르며 근원지로부터 멀어지면서 그 두께는 점차 얇아진다. 제주도 지표 하부에도 용암에 의해 덮여 응회암층이 분포해 있는 것이 시추 조사로 확인된다. 제주도는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지표 부분으로 기반암-U층-서귀포층-화산암류 및 퇴적층 순서의 지질 분포를 이루고 있다. 분출 시기를 달리하는 용암과 용암 사이에는 수m 내지 수십m에 이르는 퇴적층이 사이에 존재한다. 이들 퇴적층은 화산활동의 휴지기 동안 또는 종료 이후 퇴적된 것으로 역질(礫質) 내지 이질(泥質)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퇴적물은 대부분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굳지 않은 화산회(火山灰)가 빗물에 의해 씻겨나가고 계곡이나 얕은 곳에 퇴적된 것이다.

 

곳에 따라서는 하천이나 바닷물에 의해 이동 퇴적되어 형성된 퇴적층에는 사층리, 비늘 구조 등의 퇴적 구조도 발달한다. 제주도의 해수면 44m-258m 하부에 모래와 점토로 구성된 퇴적층(U층)이 나타난다. U층은 해수면이 가장 낮았던 시기에 육지와 연결되어 있던 제주도 초기의 환경을 알려주는 지층이다. 모래와 점토로 구성된 제주도 하부의 퇴적층은 아직도 굳지 않아 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마그마가 약 150m 두께의 U층을 뚫고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물을 만나게 된다. 이 때문에 화산 폭발의 모습은 매우 격렬하고 마그마가 깨지면서 수많은 작은 돌 알갱이들로 이루어진 수성 화산체를 만든다.

 

제주도를 이루고 있는 용암 전체를 걷어낸다면 일출봉과 같은 화산체가 곳곳에 분포하는 제주도 형성 초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가 만들어지는 동안에 여러 번의 빙하기가 있었다. 빙하기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130m 정도 낮아서 여러 차례 육지와 연결되었던 적이 있었다. 해수면이 높아진 시기에 분출한 용암은 물속으로 흘러 들어가 베개 모양의 암석을 만들었다. 제주도에 여러 차례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말은 우리나라 전체의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얼음으로 뒤덮이지 않은 비빙하 지역이었다. 제주도 삼양 해변은 검은 모래로 유명하다. 이 검은 모래는 해안 주변에 분포하는 화산암이 오랜 기간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과 하천을 통해 운반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현무암은 규소의 함량이 적은 대신 철과 마그네슘 함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고철질(苦鐵質) 마그마로부터 생성되기 때문에 감람석, 휘석, 각섬석, 흑운모 등의 광물들이 많아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을 띤다. 현무암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암편과 광물들은 해양생물 파편보다 무겁기 때문에 파도에 의해 멀리 운반되지 않고 연안에 잔류할 수 있어 검은 모래사장이 발달할 수 있다.

 

삼양 해변 이외에 이호 해변, 성산읍 종단, 성산 해변, 남원읍 공천포 해변, 안덕면 화순 해변, 대정읍 하모 해면 등도 제주의 주요 검은 모래 해변 지역이다. 만장굴과 김녕사굴은 신흘리 현무암이 분출할 때 만들어진 용암 동굴이다. 용암 동굴은 파호이호이 용암에서 흔히 형성된다. 넓이는 수m에서 수십m에 이르고 길이는 수백m에서 수십km에 이른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점성이 낮고 높은 온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표면이 얇게 굳어도 내부에서는 높은 온도의 용암이 계속 흐르게 된다.

 

용암의 공급이 줄어들거나 용암의 흐름을 막고 있던 방해물이 제거되면 굳은 표면은 남아 있고 내부에 흐르던 용암의 높이가 낮아져 동굴이 만들어진다. 용암 동굴 내에는 용암이 흐르던 높이가 변한 현상이 동굴 벽에 남아 있다. 계단 모양으로 층을 이루고 있는 지붕 모양의 암석을 동굴 입구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동굴 속을 흐르던 용암의 높이가 여러 차례 변했음을 의미한다. 동굴의 천장에는 오각형 또는 육각형의 절리들이 발달해 있다. 동굴 벽에는 용암이 흘렀던 기록들이 남아 있고 천장 가까이에는 돌고드름처럼 생긴 용암 종유석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용암은 상당히 묽은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제주도의 여러 오름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있다.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이다. 용암이 내부에서 밀어 올려져 용암 표면이 부푼 빵처럼 만들어진 구릉을 의미하는 투물러스를 만들 때 절리를 따라 내부 용암이 치약이 짜진 것처럼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를 스퀴즈업이라 한다.(베개 용암 형성시 용암이 빨리 식은 겉면을 뚫고 나오는 것을 수중 스퀴즈업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투물러스에 생긴 틈을 따라 내부의 용암이 코끼리 발톱 모양으로 지표로 나온 것을 라바토(lava toe)라 한다. 투물러스 표면에 형성된 거북등 절리도 있다. 주상절리를 위에서 바라본 것을 거북등 절리라고 한다.

 

산굼부리는 용암 분출을 일으킨 마그마의 공급이 갑자기 줄어들거나 마그마가 다른 곳으로 이동 함으로써 지하의 공간이 형성되어 위에 있던 암석들이 지금의 깊이로 침강하여 만들어진 함몰 분화구다. 함몰구조는 지름 크기에 따라 1km 이상이면 칼데라(caldera), 1km 이하이면 함몰 분화구(pit crater)라 한다. 제주도에는 화산암 뿐 아니라 화산활동이 멈춘 기간에 형성된 퇴적암도 있다. 퇴적암은 빗물에 씻겨 내려온 커다란 암괴와 미세한 암석 부스러기로 구성되어 있다. 미세한 입자들은 대부분 화산회다.

 

푸른 바다 사이에 우뚝 솟은 성채와 같은 모양 봉우리 정상에 있는 거대한 사발 모양의 분화구, 그리고 그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의 장관 때문에 성산일출봉은 많은 사람들의 감흥과 탄성을 자아낸다.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오름 중에서 그 모양과 멋이 가장 두드러진 일출봉에 대해 군계일학이라 표현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출봉은 다른 오름과는 어떤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왜 생긴 것일까? 제주도 대부분 지역은 온도가 1200°C에 가까운 현무암질 마그마가 분출한 후 용암이 되어 흐르다가 식어서 만들어진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뜨거운 마그마가 지표를 향해 올라오던 중 지하수를 만나거나 바닷물이나 호수 물 또는 빙하와 같은 얼음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마그마나 용암은 급히 식고 물은 끓게 된다. 이런 냉각과 가열 반응은 매우 격렬하게 일어나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물이 풍부한 지역의 마그마가 관입한 것이 바로 1963년 아이슬란드의 셧시(Surtsey) 화산과 일출봉을 만든 수성화산활동의 원인이다.

 

마그마나 용암이 물에 의해 급격히 냉각되어 산산이 부스러져 분출한 화산재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흑색 유리와 같다. 이렇게 수성 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유리질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소규모 화산체를 응회구 또는 응회환이라 한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대부분의 오름은 분석구다. 이들은 구성물질, 화산체의 크기와 형태가 응회환(응회구)과 다르다. 분화구의 바닥이 해발 90m에 있으며 높이가 180m에 이르고 경사가 30°를 넘는 유리질의 화산재 층으로 구성된 일출봉은 전형적인 응회구에 해당한다.

 

일출봉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구조는 황갈색 또는 짙은 회색의 응회암층들이 무수히 쌓여 만들어진 층이다. 화산재가 화구 근처에 겹겹이 쌓이면 사면의 경사가 점점 가파르게 변하지만 사면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경사각에는 한계가 있다.(78 페이지) 재들이 쌓이다가 어느 한계점에 이르면 더 이상 쌓이지 못하고 미끄러지거나 무너지게 된다. 이런 경사각도를 안식각이라 한다. 자연환경에서 가장 높은 자갈의 안식각이 35°인데 일출봉의 응회암층들이 보여주는 경사는 최대 45°에 이른다.

 

그 원인은 일출봉의 화산재들이 분출할 당시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안식각보다 가파른 경사면에 쌓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짝 마른 모래로는 모래에서는 싸울 수 없지만 축축한 모래로는 여러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리가 스쳐 지나가며 보아왔던 일출봉의 가파른 경사는 수성 화산활동의 선물이었기에 가능했다. 일출봉의 화산력(礫)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산재가 수 mm 두께로 덮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화산재가 화산역에 달라붙었을까?

 

다량의 물이 마그마와 섞이면서 수성 화산활동이 일어날 경우 습기를 머금어 끈끈한 상태인 화산재는 콩알처럼 뭉치기도 하고 화산력의 표면에 달라붙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산력을 부가 화산력 또는 피복 화산력이라 한다. 이런 화산력들이 일출봉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수성 화산활동이 물이 풍부한 상태에서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현무암질 마그마가 얕은 바다 밑에서 분출하며 형성되기 시작했다. 수심이 낮은 곳에서 분출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분출 초기부터 폭발적인 분출을 하였다. 다량의 물이 마그마와 섞이며 폭발이 일어나 화산재와 화산 력은 많은 물을 머금은 채 차갑고 끈적끈적한 상태로 분출하였다.

 

수백 m 높이의 분수처럼 솟구친 화산재와 화산력들은 화구 주변에 한 겹씩 쌓이며 다른 화산에서는 보기 힘든 뚜렷한 층리를 만들어 갔다. 화산재가 차곡차곡 쌓임에 따라 안식각(30도)을 훨씬 넘는 가파른 경사면을 가진 응회구가 만들어져 갔다. 가파른 경사로 인해 응회구의 사면에서 종종 크고 작은 사태가 일어났고 지층의 변형이 일어났다. 화산분출이 끝난 후에는 빗물과 유수에 의한 침식이 일어나 일출봉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번 쌓였던 화산재나 화산 쇄설물이 빗물이나 흘러내리는 물(유수) 등에 의해 다시 깎이고 이동하여 다른 곳에 쌓이게 된(재동; 再動; reworked) 퇴적층이 쌓이게 되었다.

 

바닷가까지 운반된 화산 기원 물질들은 파도와 해류의 작용을 받으며 퇴적되어 신양리층이란 현세의 퇴적층을 만들었다. 응회구는 지하에서 상승하던 마그마가 지하수나 바닷물 같은 많은 양의 물과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소규모 화산체를 말한다. 응회퇴적물의 지층 경사 방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화구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섭지코지 지역에는 분석구에서 흘러나온 아아 용암에 의해 낮은 구릉을 이룬 조면 현무암이 분포한다.

 

성산일출봉이 형성될 때 운반 퇴적되어 만들어진 성산층이 조면현무암을 덮었고 곳곳에 풍성(風性) 사구가 있다. 제주도에는 360여개의 오름이 있다. 이 가운데 약 340여개는 분석구이다. 나머지는 수성 화산체(물과 마그마의 반응)와 용암 원정구(점성이 높은 용암)다. 더데오름은 분석구도, 수성화산체도 아닌 끈적끈적한 조면암질 마그마가 분출하여 지표에서 멀리 흐르지 못하고 굳어진 용암돔(종상화산체)이다. 섭지코지에는 분석구의 형성 비밀이 담겨 있다. 섭지코지 해안에는 분석구가 침식되어 분석구의 중심부인 화도와 이로부터 멀리 날아가 쌓인 스코리아 층까지 노출되어 있다. 이렇게 분석구의 중앙부부터 외곽부까지 모두 관찰할 수 있는 곳은 제주도에서도 섭지코지가 유일하다. 섭지코지는 바다 쪽으로 좁게 길게 뻗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조면암(Trachyte)은 산성 또는 중성 화산암이다. 조면암은 제주도와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암석이다. 섭지코지 일대의 아아 용암은 섭지코지에 있는 분석구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표면이 매우 거칠고 크고 작은 암편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분석구(오름)가 먼저 형성된 후 또는 형성되는 과정 후기에 용암이 흘러나온 것을 의미한다. 분석구는 화산 활동으로 생긴 산(구릉) 자체를 말하고 분화구는 그 산 꼭대기에 뚫려 있는 구멍(분출구)을 뜻한다.

 

지하 깊은 곳에서 올라온 마그마는 탄산음료와 같다. 처음에는 가스가 꽉 차 있어서 뚜껑을 열자마자 콰아아 하고 공중으로 엄청나게 뿜어져 나온다. 이때 공중에서 식어 떨어진 자갈들이 분출구 주변에 모래성처럼 높이 쌓인다. 이것이 바로 오름(분석구)이다. 시간이 지나 가스가 다 빠지면 뿜어져 나갈 힘(압력)이 없어진 걸쭉하고 무거운 치즈 같은 용암만 남게 된다. 이 무거운 용암은 자갈로 대충 쌓여 있는 약한 모래성(오름) 꼭대기까지 올라갈 힘이 없다. 대신 모래성의 맨 아랫부분이나 약한 옆구리 틈새를 뚫고 스르륵 삐져나와 주변 바닥으로 흘러가게 된다. 마치 꽉 찬 치약의 옆구리가 터져서 나오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름을 현대적 의미의 천문대는 아니지만 별을 관측하기 가장 좋은 자연 천문대로 본다. 1928년 일본인 지질학자 하라구치 쿠만이 서귀포시 천지연 폭포 서쪽 새섬 앞 해안가에 패류 화석을 많이 포함한 지층을 서귀포층이라 명명했다.

 

대포동 주상절리에서 바닷물과 만나는 부분은 절리가 뚜렷하지만 클링커층이 있는 윗부분에서는 주상절리가 희미하다. 주상절리의 상부에 있는 두꺼운 클링커(clinker)층이 외부 열을 차단하는 보온 역할을 하여 용암류 상부가 서서히 식었기 때문이다. 주상절리의 치슬마크(Chisel mark; 끌 무늬 또는 마디층)는 용암이 한 번에 쭉 갈라진 것이 아니라 석공이 조각칼(끌)로 바위를 조금씩 쪼아내듯 단계적으로 균열이 깊어지면서 기둥 표면에 남은 수평 방향의 무늬를 말한다.

 

제주도에 분포한 화산암을 모두 제거하면 해수면 하부 100m 지점부터 200m의 두께로 분포하는 굳지 않은 퇴적층이 나타난다. 제주도는 약 188만 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퇴적층만 제주도에 분포했었다. 이 퇴적층은 뚫고 올라온 마그마는 퇴적층에 들어 있는 물과 접촉하여 수성 화산분출부터 시작하였을 것이다. 용머리 응회환은 이 시기에 발생한 수성 화산분출에 의해 만들어졌다.

 

제주도 서남쪽에 자리한 송악산은 우리나라 최남단 섬인 마라도를 볼 수 있고, 한라산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제주도 전체 경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라산 정상 북쪽에는 한라산 조면암이 분포하고 조망대 지역에는 백록담 현무암이 분포한다. 한라산 조면암은 높은 점성을 가지고 돔상(狀)으로 솟아 한라산을 더 웅장하게 만들었다. 한라산 정상은 백록담 현무암을 만든 용암이 마무리하였다. 이 용암이 북동쪽으로 오동동까지 10km, 남동쪽으로 신례리까지 11km를 흘러갔다. 관음사 부근에 구린굴을 만들고 곳곳에 밧줄 구조를 남긴 것으로 보아 점성이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이었다.

 

제주도에는 연 평균 2,061mm에 해당하는 비가 내리지만 연중 물이 흐르는 하천이 없다. 물이 잘 빠지는 다공질 화산암으로 제주도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과거 제주도는 물이 매우 귀한 섬으로 알려졌지만 지하수를 개발해 이용하면서부터 물 부족 문제는 사라졌으며 제주 삼다수가 국내 먹는 샘물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제주도에 1년 동안 내리는 빗물을 양으로 환산하면 37억 6900m³에 달한다. 이 중 55%의 빗물은 중발산작용과 직접 유출 과정을 통해 손실되고 나머지 45%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된다. 제주도의 지하수 함량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투수성이 좋은 다공질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며 우리나라 대륙지역 평균 지하수 함양률보다 3배나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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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도미노 총서 5
에티엔 클렝 지음,박혜영 옮김 / 영림카디널 / 1997년 10월
평점 :
절판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과학 철학자인 에티엔느 클랭(Étienne Klein; 1958- )이 쓴 시간을 주제로 한 [시간]이란 책이다. 저자는 항상 사용하는 개념들이 가장 큰 수수께끼를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시간은 난점(難點)이다, 그 이유는 뒤로 물러서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시간의 밖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을 잡을 수도 없다. 전 우주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적 의미의 시간은 없다는 말을 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도 표준으로서의 시간,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시간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시간은 우리가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저자는 시간은 자명하면서도 만질 수 없고,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재빨리 사라져 버리고, 친숙하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이라 말한다. 물리학자들의 말대로 시간이 화살표 방향으로 흐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발견할 수 없는 대상일 뿐이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물리학자들은 늘 시간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가변적이며, 불안정하고, 덧없는 것인 반면 물리학은 변화를 벗어난 관계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움직이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것 또는 적어도 비가역적인 것을 열망한다.

 

물리학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물리학의 목표가 일시적인 현상들에서 출발하여 영원한, 다시 말해 시간에서 해방된 법칙들을 세움으로써 변화하는 것을 항구적인 것으로 귀결시키는 데 있다고 믿는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라면 누구나 시간을 초월하는 것을 겨냥하지 않는가? 저자는 물리학 내에서조차 시간은 다양한 양상을 띤다고 말한다. 단적으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카를로 로벨리처럼 루프 양자중력 이론 진영에 속하지만 시간은 실재한다고 말하는 리 스몰린의 차이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이 말한 시간의 화살은 사랑의 욕망을 상징하지 않고 시간의 가차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흐름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떤 두 사람도 시간을 꼭 같이 계산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껠레비치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이상하게도 시간은 텅 비어 있을수록 더욱 우리에게 짐스럽게 여겨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러한 시간은 역학의 일반 대상들과 구별된다.

 

권태로운 시간은 끝없이 길게 느껴지며, 초조한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나 밀도가 높고, 기쁨의 시간은 강렬하고 마치 정지한 것 같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장 껠레비치의 이야기는 할 일이나 의미로 채워지지 않은 텅 빈 시간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보다 오히려 권태라는 무거운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알 수 있는 말이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날것 그대로 느낀다. 이는 인간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불안이 되기도 한다.

 

공간의 위상 기하학과는 반대로 시간의 위상 기하학은 대단히 초라하다. 그것에는 단지 두 가지 변이(變異) 밖에 없다. 즉 직선과 원 다시 말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선적인 시간과 고리 모양으로 맞물리는 순환적 시간이다. 후자는 원의 마술적 특성에 힘입어 그리스인들(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의 영원회귀 신화에서처럼 신화 속에서 많이 나타난다.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물리학은 고통스럽게도 그리스 사상의 두 기둥을 중심으로 양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한편에는 존재와 근본적인 부동성을 주장한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있고 다른 편에는 그와 동시대인으로서 변전(變轉)과 유동성(流動性)을 주장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있다.

 

저자는 뉴턴, 아인슈타인, 프리고진의 시간론을 말한다. 뉴턴은 우주 전체에 하나의 거대한 시계가 똑같이 흘러간다고 보았다. 관찰자의 상태나 물질의 존재와 상관없이 시간은 독립적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적 시간의 개념을 깨뜨리고, 시간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속도)와 중력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론 아인슈타인에게도 시간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4차원 시공간의 한 축일 뿐이다.

 

프리고진은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물리 법칙이 자연계의 '가역성(되돌릴 수 있음)'만 설명하는 반쪽짜리 과학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에 기반하여, 자연계는 에너지를 소비하며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산일(散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우주는 되돌릴 수 없는 한 방향으로만 진화하며, 이를 통해 물리 법칙 안에 시간의 화살과 우주의 창조성을 복원시켰다.

 

역학(力學)은 자연이 행하는 모든 것을 똑같은 과정에 따라 해체할 수 있다. 가령 종이 위에서 항성들은 거꾸로 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뉴턴의 물리학에서 동시성의 개념은 그 어떤 원칙상의 혼란도 야기하지 않는다. 두 명의 실험자는 그들의 시계를 동시에 작동시켜 동시성을 갖게 할 수 있다. 단지 빛으로 신호를 교환하기만 하면 된다. 뉴턴에 의하면 빛은 무한 속도로 퍼져가기 때문에 이 신호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두 실험자는 시계의 동시성이 그대로 유지 됨을 확인하여 그들의 개인적 시간이 아닌 보편적이며 공통된 시간을 창조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단 하나의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뉴턴의 시간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밀도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 시간은 영원하며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시간이므로 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항상 동일하게 흘러간다. 미시방정식(물리학의 분자·원자 수준의 법칙)은 시간 반전 대칭성을 가지기 때문에 가역적이고, 거시방정식(열역학이나 유체역학 등)은 확률적 통계와 엔트로피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비가역적이다. 거시방정식은 미시방정식에서 비롯된다.

 

프리고진은 시간이 발명품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베르그송의 경구(驚句)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에 발명품이란 망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베르그송이 시간은 발명품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이유는 그가 보기에 진짜 시간이란 매 순간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절대적인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베르그송 철학의 정수인 [창조적 진화]의 핵심 개념이다.

 

저자는 일리야 프리고진이라면 시간의 화살표는 없지만 거시적 층위에서는 시간의 한 화살표가 있다는 환상이 생긴다는 말 대신 시간의 화살표는 있지만 미시적 층위에서는 시간의 화살표가 없다는 환상이 생긴다고 말할 것이라 말한다.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도 통계역학의 기초를 다지던 루트비히 볼츠만의 H-정리(H-theorem)와 거시적 비가역성(시간의 일방통행성)에 대해 강력한 논리적 이의를 제기했다. 물론 저자가 말했듯 푸앵카레의 영원회귀는 주기가 너무 길어서 사실상 비가역성과 맞먹는다.

 

저자는 중력과, 오늘날 훌륭한 중력이론인 듯 여겨지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서도 논한다. 그의 체계에서 중력은 우주의 서로 다른 물질적 내용물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 자체의 기하학적 속성이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중력을 언급하며 무게를 갖는다는 것은 자기 시간을 갖는 또 다른 방식이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말은 물질이 존재하며 가지는 무게(중력)라는 속성이 단순히 아래로 떨어지는 성질이 아니라 그 존재가 우주 속에서 시간과 관계를 맺는 독특한 방식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무게가 없다면(빛처럼 질량이 없다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 채 시공간을 최고 속도로 통과하지만, 무게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자신만의 리듬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의 원칙들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원칙들은 아직 모순 없이 양립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파동함수를, 서로 다른 여러 항들의 합이라 정의한다. 모든 물리적 체계를 모든 가능한 상태들의 합으로 설명하는 것은 중첩원리라 불리는 것의 직접적인 결과다.

 

합(+)의 형태로 중첩되어 있는 여러 개의 파동함수들 중에서 측정 후에 선택된 하나의 파동함수는 실제로 측정된 에너지의 값과 일치하므로 그대로 존속한다. 이때 우리는 파동함수가 측정에 의해 축소되었다고 말한다. 양자물리학에서 특정한 속성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다름 아닌 측정 그 자체다. 저자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나이도 같고 흔히 약혼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못해 짝짓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시간이 개념의 보편성이란 없으며 시간을 중심으로 한 이론적 통일성도 없다고 말한다. 시간의 화살통의 목록은 작성했으나 우리가 본 것은 단지 화살의 동강들(열역학적, 우주론적, 양자적) 단편들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현상학자 후설은 미래는 기다림의 대상, 현재는 주의의 대상, 과거는 기억의 대상이라 말했다. 시간에 대한 베르그송의 생각은 양자물리학의 시간론과 잘 들어맞는다. 베르그송은 상대성이론은 비판했고, 양자역학은 긍정했다. 공간은 우리가 지닌 힘의 표시이자 그 증거이기도 하다.우리는 공간을 정리할 수도 있고 개조할 수도 있다. 공간 속에서 모든 방향으로 온갖 속도로 돌아다닐 수도 있으며 지그재그로 갈 수도 있고 공간의 외양과 형태를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오히려 우리의 나약함의 표시이다.

 

시간은 우리가 어느 때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산책 장소가 아니다. 시간은 유순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시간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우리에게 자신을 강요한다. 시간은 서서히 조금씩 우리 모두를 거의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한 불로 파멸시킨다. 우리의 무능함을 상징하는 시간, 그것은 우리 인간 조건이 거역하지 못할 경계이다. 저자는 인간의 권한이 인간에 대한 저주가 되지 않도록 보장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묻는다.

 

저자는 어떤 생각들은 우리를 시간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 다른 생각 들은 우리를 시간으로 이끌어들인다고 말한다. 고엽이라는 샹송에 나오는 “낙엽이 무수히 쌓이네”라는 가사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우수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때 시간은 텅 빈 허전함이 되며 우리를 가을의 블루스 속에 천천히 잠들게 한다. 가을은 언제나 무언가의 종말이어서 우리 자신의 종말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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