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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 성서에 생애를 바친 개혁자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30
도쿠젠 요시카즈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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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젠 요시카즈(德善義和: 1932 - )마르틴 루터는 이와나미 문고로 나온 책이다. 저자는 신학박사이자 목사이다. 루터는 말에 생애를 바친 인물이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고 서로마 제국이 라틴어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자 그리스도교 교회는 스스로를 로마 카톨릭이라 칭했다.

 

중세 말 내내 교회는 라틴어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고해성사는 민중을 위하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의식 중 하나였다. 이때 언어는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였다. 민중의 마음과 성서의 가르침을 이어준 가장 친밀하며 유일한 접점이었다.

 

고해성사만으로는 불안을 해소할 수 없었다. 성직자가 대신 참회를 해주었다. 여기서 진화한 제도가 면벌부 제도였다. 교회는 이익을 추구하며 돈을 받고 면벌부를 팔았다. 루터가 배운 아이제나흐의 성게오르크 학교는 200년 후 바흐가 배운 곳이기도 하다. 루터는 에르푸르트 법대 학생이 되었다.

 

루터는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판 한가운데서 벼락을 맞고 쓰러졌다. 루터는 공포 속에서 성 안나(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호 성인), 살려주시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살아난 루터는 서원대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수도사가 되었다.

 

이 수도회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계보를 잇는 프란치스코회 계열이었다. 은둔 수도회가 아닌 도시에서 지내는 탁발 수도회였다. 탁발은 스스로 부족한 존재임을 마음에 새기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이후 전통으로 자리잡은 행위였다.

 

저자는 루터가 종교 개혁을 추진한 이유 중 하나로 수도원의 타락을 꼽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수도원의 가장 좋은 부분에 잠재한 뿌리 깊은 문제 즉 자기만족과 거만을 깨달은 결과라는 것이다.

 

루터는 개체야말로 실재이며(유명론) 실재는 의지와 능력에 의해 확인된다는 오컴의 논의에 익숙했다. 유명론(唯名論)은 인간 총체(보편)란 이름 뿐이며, 존재하는 것은 개개의 개체라고 보는 입장이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들을 읽음으로써 인간이란 죄 있는 존재이며 무()인 존재라서 은혜로운 구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는 중세 철학과 신학을 지탱해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1511년 루터는 수도회의 명을 받고 학적을 비텐베르크대학으로 옮긴다. 루터는 이곳에서 신학 연구를 계속했고 이듬해는 신학 박사가 되어 성서 교수로 임명되었다.

 

성서 강의를 하던 루터는 당신의 의로움으로 저를 해방시켜주십시오.”라는 구절(시편 312)에 걸렸다. 신의 의로움을 분노, 심판, 벌이란 맥락에서 파악해온 루터는 신의 의로움과 인간의 구원이란 결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루터는 그리스도가 신의 의로움과 인간의 구원을 매개한다고 이해했다. 신의 의로움이란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의로움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의미다. 독일에는 네 개의 루터의 도시가 있다. 탄생지 아이슬레벤, 라틴어학교를 다닌 아이제나흐, 수도사의 길에 들어선 에르푸르트, 수도원의 명으로 간 비텐베르크(여기서 그 유명한 95개 반박문이 내걸린다.) 등이다.

 

비텐베르크는 당시 인구 2000명의 소도시였다. 나치 시대에 유대인 학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루터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 그 죄에서 구원해주는 은혜로운 의로움에 대해서,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점에 대해서 가르쳤다.

 

루터에게 성서 강의는 성서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학생들과 나누는 활동이었다. 종교개혁이란 기본적으로 성서를 읽은 운동이다. 이는 성서를 혼자 읽는 것에서 나아가 모두와 함께 읽고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나누는 운동임을 의미한다. 그 모두에 해당하는 첫 사람들이 비텐베르크 대학 학생들이었다.

 

루터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성서 읽기 나눔 활동을 펼쳤다. 성서가 라틴어로 쓰인 시대에 독일어로 말해주자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설교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었다. 죄를 강조하는 다른 설교자들은 필연적으로 면벌부 판매로 나아갔다.

 

면벌부는 당시 민중의 요구에 부응한 행동이었다. 문제는 불안해 하는 민중의 요구에 편승해 민중의 영혼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한 것이었다. 면벌부 시스템에는 자기 자신을 체크하는 기능이 없었다. 루터는 이를 지적했다.(75 페이지)

 

7세기경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고해성사는 초기에는 수도사들이 짊어졌던 민중의 죗값을 배려한 진지한 행위였다. 면벌부로 인해 급기야는 몸으로 직접 벌을 필요도, 대리인을 쓸 필요도 없어졌다. 95개의 논제를 통해 루터가 성직자와 신학자들에게 묻고자 한 것은 단순한 교회비판이 아니라 민중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었다.(88 페이지)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모두 성서의 말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는가? 루터는 95개조 논제를 통해 그렇게 물었다. 15187월 루터를 60일 이내에 로마로 소환해 이단 심판에 부치겠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독일 민중, 제후 등이 맹렬히 반발했다. 루터는 원래 루더였다. 95개 논제를 발표한 시점부터 루터라 이름했다.

 

1518년 아우크스부르크 심문, 1519년 라이프치히 토론, 1521년 보름스 심문이 루터가 맞이한 3대 시련이었다. 보름스 심문은 최고재판소 판결을 의미한다.(106 페이지) 보름스 심문에서 루터는 저의 양심은 신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교황과 공의회를 믿지 않습니다.”란 말을 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는 루터에 대해 제국 내에서의 일체의 법적 보호를 박탈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보름스에서 비텐베르크로 가던 중 루터가 자취를 감춘다, 선제후 궁정 고문관들이 벌인 눈속임의 유괴극이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성에 은닉되었다. 루터는 작은 밧모섬에서라고 발신처를 쓴 편지를 보냈다. 밧모섬은 에개해 남동부의 작은 섬으로 요한이 이 섬에 들어갔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곳이다. 루터는 이 섬에서 저술을 했고 신약성서를 번역했다.

 

루터의 관심 대상은 성서의 문자와 어구를 얼마나 세밀하게 다루느냐가 아니라 성서에 담긴 신의 은혜로운 말 즉 복음이었다.(123 페이지) 루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종교개혁은 철학이 신학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립적인 학문으로 발전하도록 해주었다.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교회라는 제작 거점이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회화는 점차 교회 밖으로 나와 시민 예술의 한 축을 이루었다. 음악도 조금 늦었지만 마찬가지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단순히 교회의 추락을 바로잡는 것이었다면 글자 그대로 리폼이었을 뿐 리포메이션이라 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152, 153 페이지)

 

그것이 개혁을 넘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은 사람들의 신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찬송가가 그리스도교 예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가 문화를 만든 것이 루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175 페이지)

 

민중이 부르는 찬송가를 코랄이라 한다. 루터는 평생 약 50편의 코랄을 작사했고 그중 몇 곡은 작곡도 했다. 성서의 말에 근거한 루터의 개혁은 교회 내부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주목할 것은 학교 교육 개혁이다. 당시 독일 사람들의 문자 해독률은 높지 않았다.

 

초등교육은 교회와 수도원에서 사제와 수도사들이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수준이었다.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관계도 흥미롭다. 인간 의지에 대해서 에라스무스는 학문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루터는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였다.(197, 198 페이지)

 

루터는 죄에 사로잡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는 없으며 신을 따르든 악마를 따르든 의지는 노예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한층 첨예화한 결과다. 에라스무스는 어느 정도까지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루터의 필생의 작업은 성서 번역이었다. 그는 성서의 말이 가리키는 진리를 평생 추구하고 전파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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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공부 가이드 - 브리태니커 편집장이 완성한 평생학습 지도
모티머 J. 애들러 지음, 이재만 옮김 / 유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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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 저술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장을 지낸 모티머 애들러(Motimet Adlet; 1902 2001). 그의 '평생 공부 가이드'는 독특하다는 평으로는 부족한 책이다. 저자는 찰스 반 도렌과 함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을 쓴 분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여기까지 읽을 만큼 인내심과 끈기가 있는 일부 독자는 약간 당황했을 것이라 말한다.(161 페이지) 이 책은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지식 분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책을 열면 인문학을 전문화라는 야만을 다스릴 치료제로 이해함으로써 아스펜 인문연구소의 설립을 격려한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에게란 말이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안내서라 부른다. 종국에는 매력적인 목표이자 노력의 완성인 이해와 지혜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모든 사람이 여정을 시작할 때 필요한 지도를 자신의 책이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종합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을 추구하는 책이고 스스로 공부해 이해와 지혜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이다. 저자는 당대의 모든 지식을 알파벳순이 아닌 방법으로 백과사전처럼 포괄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알파벳순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인간의 지식을 조직하는 체계적이고도 원리적인 방법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37 페이지)

 

물론 백과사전의 항목을 알파벳순으로 하지 않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구성하면 이용자에게 지식의 구조 즉 학식 세계의 지도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이용자가 관심 있는 항목을 손쉽게 찾게 해주는 참고 도서로서의 기능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41 페이지)

 

저자는 인문학이 학문의 모든 갈래를 열거한 뒤 남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본다. 저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야기를 한다. 기원전 1세기에 이집트를 침략한 로마군의 공격에 잿더미가 된 그 도서관의 파피루스 필사본들이 어떻게 배열되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에 맞게 배열되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59 페이지)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4세기에 리케이온에서 한 강의를 일군의 정연한 논리로 편집하고 편찬한 것도 백과사전으로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저는 물리 현상과 천체의 운동에서 시작해 식물과 동물, 생명의 모든 현상을 거쳐 생물의 영혼에서 끝나며, 신학적 논의의 마지막 부분이자 편찬자가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을 붙인 논저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러한 저작 다음으로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시학을 다루는, 이론적이기보다 실천적이라 할 만한 다른 종류의 논저가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전체의 서론을 이루는 것은 논리학과 학문 방법론에 관한 논저로서, 이 논저를 통칭해 오르가논이라 부른다.(33, 34 페이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 지식의 영역을 하위의 자연학, 중위의 수학, 상위의 형이상학의 위계질서로 조직했다.(162 페이지)

 

프랜시스 베이컨은 책을 산출하는 인간의 능력을 오름차순으로 기억력, 상상력, 이성으로 분류했다. 전기(傳記)와 역사는 기억력의 영역에 들어가고, 시와 픽션은 상상력의 영역에 들어가고, 철학은 이성의 영역에 들어간다.(60 페이지) 물론 기억력만이 아니라 이성과 상상력도 역사적 지식에, 역사적 연구와 서술에 관여하지만 기억력이 없이는 역사도 없다.

 

마찬가지로 기억력과 상상력은 모든 형식의 철학적 또는 과학적 기획에 관여하지만 이성 없이는 철학이나 과학은 존재할 수 없다. 이성과 기억력 역시 시 창작에서 일정 역할을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상상문학은 없을 것이다.(91 페이지)

 

저자는 여러 학자들을 이야기한다. 그 중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빼놓을 수 없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어의 사용과 정신의 작용을 통제하는 훈련, 문법과 논리를 공부해 습득하는 기술을 배움의 첫 단계로 정했다. 플라톤처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특정 주제에 대한 공부를 개개인이 많은 경험을 쌓아 원숙해진 시기로 유보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과 정치학 공부는 젊은이의 몫이 아니라 말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 진리와 철학적 지혜를 추구하는 탐구의 정점 또는 가장 높은 수준과 관련이 있다. 플라톤은 변증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이다.(형이상학은 물리현상을 넘어설 뿐 아니라 변화, 움직임, 생성보다 존재에 관심을 두는 학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차이점도 많다. 플라톤은 물리적 세계와 자연의 관찰 가능한 현상에 대한 지식을 주는 학문 전부를 뺐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포함시켰다.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을 엄격하게 구분했다.(79 페이지) 플라톤은 역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가 역사보다 철학적이라는 말을 할 때 한 번 역사를 언급했다. 시는 실행할 수 있거나 실행할 법한 행위를 묘사하고 역사는 일어난 사건만을 다룬다.

 

입증이나 반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면 역사, 철학, 과학 등은 지식의 영역에 속하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92 페이지) 그런데 위의 네 영역을 더 넉넉한 의미로 진리를 받아들일 경우 모두 진리에 포함된다. 저자는 우리의 이해에 이바지하는 시와 철학의 공통점은 지성을 사용하는 것이라 말한다.(186 페이지)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프란시스 베이컨에게서 심대한 영향을 받았지만 베이컨과 달리 종교적 신학을 철학에 포함시킴으로써 인간의 지식과 신성한 지식의 구별을 무시했다.(102 페이지) 콩트는 인간 지식의 세 단계 발달론을 제시했다.

 

지식을 신화나 미신 등과 동일시한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 즉 사변적 단계, 실증과학으로 대표되는, 경험적으로 증명된 타당한 지식의 단계다.(114 페이지) 저자는 에피스테메와 파이데이아의 차이를 설명한다. 라틴어로 Scientia(스키엔티아)로 번역하는 그리스어 에피스테메는 특정 전문 분야에서 사용되는 전문 지식을 말한다. 라틴어로 후마니타스로 번역하는 그리스어 파이데이아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종합적 지식이다.(173 페이지)

 

저자는 전문화를 야만이라 부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를 언급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종합인이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 초반, 후반에는 종합인이 되어야 하고 중반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77 페이지) 저자는 평생 공부를 지속하는 데 특히 필요한 것은 시와 상상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이해라 말한다.(20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종합적 교양인을 나타내는 표식은 인간 학식의 전 영역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21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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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
허금행 지음 / 경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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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 수필문학, 시문학으로 등단한 허금행님의 수필집이다. 저자는 현재 뉴욕에 거주한다. 표제작은 수필집 가장 마지막에 수록되었다. 고교 2학년 때 만난 의과대학 본과 1학년의 남편 이야기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편은 미국 산부인과 자격시험으로 전문의가 된 후 곧바로 뉴욕신학대학에 입학해 목회학 박사가 되었다. 남편이 끝없이 공부만 할 동안 집안 건사는 아내인 저자의 몫이었다. 남편은 네 번째 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 저자에게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많이 했다는 말을 했다. 이것을 천사의 말이라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일 때문에 힘들어 한 남편을 위해 운영하던 화랑도 닫았다. 저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인 고린도전서 13장을 말한다. 자신을 지치지 않고 견디게 한 것이 사랑 장이었구나 란 말을 한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고 견디느니라..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란 구절들로 이루어진 장이 사랑 장이다.

 

이 사랑은 종교적 사랑이다. 계산하지 않는 사랑, 숭고한 사랑이다. 저자는 중학교 2학년에 덜 익은 정포도라는 글을 써내 문예반에 들어간 후 글쓰는 일을 줄곧 해왔다. ‘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란 글에 저자가 사랑은 흐르고 미움은 고인다는 시를 썼다는 대목이 있다. 플라톤은 말은 흐르고 글은 남는다고 하며 그렇게 흐르는 말이야말로 신성하고 빠른 것이라 했다. 이 말을 저자의 말에 대입하면 사랑은 빠르고 신성한 것이라는 말이 되는가?

 

저자는 희망의 속삭임이란 장에서 청각 장애로 평생 장애자 수혜금을 받고 있다는 말을 한다. 지금은 청각이식수술을 받고 최신형 보청기로 말 뿐 아니라 음악까지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일상을 글로 옮긴다. 시를 쓰는 것이다. 미국의 지하철에서 경험한 풍경도 적어놓았다.

 

나무 이야기, 꽃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등 저자의 글에는 수필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많은 소재들이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이런 말들이다. ”지나온 우리의 삶이 행복한 것이었다고 나를 다독거린다.“, ”나는 이 돌층계를 끝까지 오르면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린 나를 탈출시켜야 한다.“,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어떤가!“..

 

.‘탈출을 꿈꾸며란 시가 눈에 띈다. ”거울 면에서 멀어질수록/ 멀어져 가는 또 하나의 나는/ 오늘을 탈출하고 싶은 진정한 나이다/ 겨울비가/ 숲속에서 떠도는 어제/ 숨어버린 벌판의 바람과 그림자를 위하여/ 차갑게 흔들릴 때 나는 없어지고 싶어한다/ 시간에서 멀리 잡을 수 없는 공간으로/ 내부에서 밖으로 나와 무너지고 부서져 아무것도 아닐 때까지/ 스스로 부딪쳐 산산조각 흩어지는 나는/ 그대로 갇혀 있는 저 안의 흔적을/ 탈출시킨다/ 밤 깊은 저 너머로“(외우고 싶다.)

 

저자는 전주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전주에서 여중 1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동기 생각이 난다. 저자는 고교를 이화여고에서 다녔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서예가이신 아버지 앞에서 먹을 갈고 붓글씨 연습을 했다. 시나리오를 써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시 아니면 안 쓴다는 대책 없는 고집으로 물리쳤다. 저자는 이를 후회되는 일이라 말한다.

 

글씨가 활자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다는(물론 지금도 그러리라.) 저자를 보며 나도 늦었지만 붓글씨를 연습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이렇게 늦은 나이에 붓글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저자는 여성운동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가 이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일은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며 아무리 남자들이 무슨 말을 해도 뒤집어질 수 없는 가장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어떤 모임에 나가든지 좋아하는 시를 복사해 나가서 함께 읽곤 한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도 그 시들 중 하나다. 저자는 아직도 시를 많이 읽는 사람에게서는 향내가 난다는 생각을 깊이 새긴다. 누군가가 저자의 글에 잡글이나 쓰면서...“란 토를 달았다.(너무 무례하다.) 저자는 단정하고 네모나고 메마른 글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나다운 잡글을 쓸 것이라 말한다. 이어 아주 인상적인 말을 한다. ”잘라내야 할 것을 적당한 시기에 제대로 잘라내야 글도 사람도 이 세상도 풍성해지는 것이거늘, ...“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자탄으로 읽힌다. 저자에게 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저자는 자신이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날은 많이 힘들 때라고 한다. 시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두려움과 함께 심한 두통이 엄습한다. 대학 때, 시를 꺼내기 위해서는 아주 깊은 우물 속 같은 험하고 외로운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체험을 했다. 시로부터 도망쳤지만 끝내야 할 때가 있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글들을 읽었다. 기쁨과 슬픔이 묘하게 어우러진 글이고 생각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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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일로나 예르거 지음, 오지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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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라는 부제의 일로나 예르거(Ilona Jerger)의 책 두 사람을 읽었다. 동기(動機)가 된 것은 정조(正租)와 정약용의 관계를,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적 상상을 더해 논픽션 형식으로 쓰려는 생각이다. 사실 두 사람이 소설(형식의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소설 형식이어서 잘못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저녁 식사라는 말을 접하고 10년 전 읽은 장대익 교수의 다윈의 식탁을 떠올렸다. ‘다윈의 식탁은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논쟁 형식의 책이다. 나는 다윈에 대해서는 물론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최근 흐름으로 보건대 나에게 익숙한 것은 마르크스(의 생애).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자본을 쓴 그를 역시 같은 도서관을 자주 찾아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와 비교하는 글로 연결지었기 때문이다.

 

독일인 마르크스가 영국인 다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았던 것은 망명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존재를 알았다. 다윈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 헌사를 적어 다윈에게 보냈을 정도인데 두 사람이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마르크스와 다윈의 관계를 매개한 것은 허구의 인물인 베케트 박사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다윈의 지인이자 마르크스의 사위인 에이블링이 다윈에게 장인을 모시고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함으로써 성사되었다.

 

베케트 역시 두 사람에게 차례로 상대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허구의 인물인 베케트 박사는 다윈과 마르크스의 집을 번갈아 방문하며 각기 이런 저런 병에 시달린 두 사람을 치료해주는 주치의로 설정되었고 에이블링은 실제 마르크스의 사위였지만 그가 마르크스의 사위가 된 것은 마르크스가 사망한 후이다. 따라서 이 설정 역시 소설적 즉 (부분적으로) 허구다.

 

저자는 진화 이론 자체가 아닌 다읜의 내적인 삶에 초점을 맞춘 만큼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이론 구조보다 마르크스 개인 성격이나 국가 없는 망명자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말을 했다. 다만 다윈의 경우는 집안이나 산책로 등의 풍경이 상세하게 묘사된 반면 마르크스의 경우는 베케트와의 짧은 대화가 주되게 다루어졌다.(자료 찾기가 어려운 결과다.)

 

내적인 삶이나 개인 성격 등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베케트가 다윈과, 그리고 마르크스와 나누는 이론적 대화는 꽤 전문적이다. 마르크스와 다윈이 만난 자리에서 오고간 대화도 그렇다. 사실 이 부분은 다윈의 아내 엠마의 문제가 드러난 자리이기도 하다.(엠마는 무신론자인 남편 다윈이 기독교 신앙을 갖도록 설득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저술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본저술의 단서를 삼았지만 다윈을 기회주의자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다윈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관찰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동물과 식물의 세계에 그대로 대입했으며(141 페이지) 공산주의는 진보이며 순진하게 꿈결 같은 자연 상태가 진보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146 페이지)

 

다윈은 자연과학자로서 과학이란 모든 사회적인 분쟁의 외부에서 작동해야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는 말(162 페이지)과 함께 자연에 협력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종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경쟁의 결과라는 말, 협동을 기본 원칙으로 격상시키려는 사회가 두렵다는 말(163 페이지)을 했다.

 

다윈은 자연의 수많은 법칙 중 몇 가지를 점점 더 이해함으로써 신앙심 깊었던 예전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말을 한다.(298 페이지) 다윈은 자신을 불가지론자로 규정했다.

 

두 사람은 내 관심사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마르크스와 스피노자의 유대인 및 랍비와의 연관성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와 스피노자 모두 유대인이었고 마르크스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랍비 아버지의 자식들이었으나 그런 점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고 누가 가족사를 알려고 하면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스피노자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랍비가 되기를 기대받았지만 범신론을 버리지 않아 파문당했다. 오랜만의 소설이라 말해야 하지만 소설 이상의 책이라는 생각에 그런 표현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소설 형식의 책이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말은 하고 싶다. 재미를 묻는다면 재미라기보다 진실의 감동이 더 크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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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로드 4000km - 대한민국 100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 투어가이드
김종훈 외 지음 / 필로소픽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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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독립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인 2019년은 뜻 깊은 해다. 많은 관련 책이 나왔고 기념식도 성대하게 거행될 것으로 보인다. '임정로드 4000km'도 관련 책들 가운데 하나다. 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항저우, 창사, 광저우, 류저우, 충칭 등지를 떠돌았다. 그 길이 4000km라는 사실은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임정로드 4000km'는 세세한 여행 안내가 돋보이는 책이다.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김구 선생의 효창원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부분을 0부로 정했고 마지막 10부를 번외편 일본과 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영웅들의 마지막 걸음으로 정했다.

 

도입부라 할 0부에서 만나게 되는 사연은 이승만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그는 김구 선생 묘소인 효창원을 무력화하기 위해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앞에 거대한 효창운동장을 조성했다. 임정로드 4000km의 시작점은 예전에는 김신부로(金神父路)로 불렸던 서금2(瑞金二路)이다.

 

"임정로드 4000km팀이 카메라와 삼각대, 지도 한 장을 들고 첫 걸음을 뗀 곳이다."(유래가 정확하지 않은 서금이로는 서금 1로와 함께 하는 이웃 길인 2로이고 김신부로의 김신부는 김대건 신부를 말하는 것으로 김신부로는 속칭이다. 서금을 중국어로는 루이진이라 한다.)

 

예관(?觀) 신규식 선생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리라. 흘겨본다는 뜻의 예관이란 호를 가졌던 선생은 중국 혁명 지사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상하이 지역에 독립운동 기반을 닦은 분으로 예관은 을사늑약에 분노해 음독 자살 시도 끝에 살아남았지만 오른쪽 시신경을 잃어 흘겨본다는 의미로 지은 호이다.

 

저자들은 걷고 또 걸어야 길이 생긴다는 말을 한다. 걷지 않는 길은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의미다.(110 페이지)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듯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이자 정신이다. 더구나 올해는 임정수립 100주년의 해이니 더욱 각별하다. 임시정부가 처했던 여건은 여관(중국 용어로는 '여사: 旅社'.)을 거처로 삼기도 했을 만큼 열악했다.

 

파수꾼을 자처한 세 인물 김철, 송병조, 차리석의 이름도 기억해야 하리라. 특히 평안도 출신으로 신학문을 접한 뒤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대성학교 교사가 되어 후학을 양성한 데 이어 비밀결사인 신민회 요원으로 활약했던 차리석 선생은 임시정부의 내일은 군주제의 청산이며 민주화의 새 출발을 기약함에 있다는 말을 남겼다.

 

저자들은 우리가 치욕스런 역사까지 기억하고 보존하는 중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172 페이지)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위안부 관련 진열관 하나 없이 소녀상 하나 세우는데도 일본의 눈치를 살폈다.(176, 177 페이지)

 

저자들은 정부가 지켜주지 않자 학생들이 나서서 할머니들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을 가장 안타깝고 아쉬웠던 지점이라 덧붙였다. 금릉대학(현 난징대학)은 여운형, 김약수, 조동호, 김마리아 등이 수학한 곳이고 약산 김원봉 장군이 의열단을 만들기 전 공부한 곳이다.(약산 김원봉 장군은 백범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이 컸던 유일한 인물이다.)

 

약산(若山)은 고모부이자 스승인 황상규의 주선으로 짓게 된 호다. 황상규는 김원봉과 김두전과 이명건을 의형제가 되게 했고 각각의 호도 지어주었다. 김원봉은 약산, 김두전은 약수(若水), 이명건은 여성(如星)이다. 산과 같다, 물과 같다, 별과 같다는 뜻이다.

 

정정화 선생이 장강일기(長江日記)’에 썼듯 김원봉은 해방 후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모욕을 당하고 결국 자발적으로 북으로 건너갔다. 약산의 금릉대학 동문 중 한 분이 몽양 여운형이다. 좌우합작을 위해 헌신했던 몽양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피살을 당했는데 이는 약산으로 하여금 북으로 가게 한 위협이 되었다.

 

의열단을 창설한 약산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었다. "애국지사에게 말씀 드리기 송구하지만"이란 말로 운을 뗀 저자들은 임정 멤버들이 정정화 여사의 사진을 보고 보인 첫 반응이 모두 똑같았다는 말을 전한다. 엄청 미인이라는 말이었다.

 

정정화 선생은 열살에 구한말 고위 관료인 동농 김가진 선생의 아들인 김의한과 결혼을 했다. 9년 뒤 시아버지와 남편이 아무 말 없이 상하이 임시정부로 전격 망명하자 선생은 시아버지와 남편을 찾아 1920년 상하이로 망명했다. 홀로 압록강을 건넌 것이다.

 

장강일기에 의하면 드디어 선생이 시아버지와 상봉하자 시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시아버지는 "네가 어떻게 여길 왔느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온 게야?"라고 말했고 정정화 선생은 저라도 아버님 뒷바라지를 해드려야 할 것 같아 허락도 없이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했고 시아버지는 "그래 잘 왔다, 고생했다, 참 잘 왔다, 용기 있다."고 답했다.

 

정정화 선생은 상대적으로 감시가 덜한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 독립 자금을 모으는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탐사팀은 심한 고생을 했다. 예정보다 일찍 떠나는 기차도 한 몫을 했다. 저자들은 이제 건국절 논란은 그만 하자고 말한다. 임시정부는 1921년에 외교권을 행사했다.

 

저자들이 말했듯 이승만 정권이 출범한 1948815일을 건국절로 못박는 세력들의 잘못을 알리고 임시정부 탄생일인 1919411일을 대한민국의 시작일로 알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저자들은 그런 점이 임정 프로젝트의 이유이자 목적이라 말한다.

 

9부는 해방의 감동을 느끼다란 부제가 붙은 충칭이다. .충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처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로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한 곳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는 피난의 연속이었다. 상하이에서 12, 충칭에서만 4번 청사를 옮겼다.

 

김구 선생의 강력한 의지로 탄생한 광복군은 1942년 조선의용대와 합쳐진 후에야 대한민국의 정식 군대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김구 선생은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편입을 결정하며 조선의용대 총대장인 김원봉 장군을 광복군 부사령 및 1지대 지대장으로 선임했다. 군의 좌우 합작 뿐 아니라 임시정부 의정원에도 좌익진영 인사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1945815,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수년 동안 준비해온 국내 진입은 중단되고 말았다. 김구 선생은 3개월이나 해방 조국에 돌아가지 못했고 그 사이 미소는 한반도에 38선을 그었다. 한 달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마지막 부()에서 윤봉길과 윤동주, 송몽규의 묘한 인연을 보자. 윤동주는 북간도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시샤대학 영문과 재학중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송몽규는 만주 은진중학교를 거쳐 서울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한 후 1942년 도쿄 제국대학에 입학했다.

 

윤동주 생가를 관리하며 명동촌 촌장을 지낸 송길연씨란 분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가 명동촌의 선바위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 안중근 의사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밀사로 파견(1907)된 이상설이었다. 이상설이 세운 간도의 첫 근대식 학교였던 서전서숙은 후에 명동서숙을 거쳐 명동학교로 발전했다.

 

안중근 의사가 간도로 갔는데 이유 중 하나는 이상설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서였다. 충북 진천 출신인 이상설은 25세때 과거에 급제한 뒤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를 다섯 차례나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내던지고 국권회복운동에 나선 데 이어 이듬해에는 조선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간도 용정으로 갔다.

 

저자들은 다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자고 말한다. ‘임정로도 4000km’는 중요 부분을 간추려 설명하는 압축적 편성이 돋보인다. 대장정이라 말하고 싶다. 감사드린다.

    

 

 * 네이버 작가 소영처럼님이 제공한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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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1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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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2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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