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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태어나 아프지 않고 사는 법 -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오행 습관
장허야오 지음, 정주은 옮김 / 비타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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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주피모(肺主皮毛)란 말이 있다. 폐가 피부와 모발을 지배한다는 말이다. 피부는 비위(脾胃)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비위를 튼튼하게 하면 폐에 도움이 된다. 토생금(土生金)이기 때문 즉 비위를 상징하는 토가 폐를 상징하는 금을 낳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행(五行)에 따른 해석이다. 오행은 특별히 여성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부, 모발 등을 생각할 때 여성에게 더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다.


오행을 이루는 목()은 나서 자라고 막힘없이 밖으로 뻗어나가는 작용을 하는 사물이다. ()는 뜨겁고 위로 솟는 작용을 하는 사물이다. ()는 심어서 기르고 수확하는 작용을 하는 사물이다. ()은 정결하고 소슬하며 변혁하는 작용을 하는 사물이다. ()는 아래로 흘러 윤택하게 하고 차가운 작용을 하는 사물이다.


중의사인 저자는 피부, 모발 뿐 아니라 가슴, 자궁, 난소 등의 건강도 오행의 작용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오행은 상생 관계 뿐 아니라 상극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등이 상생 관계를 나타낸다면 목극토(木克土), 토극수(土克水),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 금극목(金克木) 등은 상극 관계를 나타낸다.


간이 손상되면 비장에도 영향을 미친다.(간은 목이고 비는 토이니 목극토를 말한다.) 풀어 쓰자면 간이 비장을 불편하게 한다기보다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가 아닌가 싶다. 사주(四柱)에 따라 체질이 결정된다.(부록에 사주에 따라 자기의 체질을 찾을 수 있게 표가 작성되어 있다.) 가령 목 체질은 오장 가운데 간()이 대응한다. 이는 간이 약하다는 의미이다. 오미 가운데 신 맛이 해당된다. 이는 신맛 나는 음식을 조절해서 먹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각 체질에 따라 신체적 특징, 신경 써야 할 장기, 걸리기 쉬운 질병, 황금 혈자리, 해당 음식 등을 제시해 보인다. 계절마다 다른 오행의 규칙들이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가령 봄(1 - 3)은 오행 가운데 목(), 오장 가운데 간(), 잘 걸리는 질병은 흉부 팽만, 유선증식 등에 잘 걸리며, 잘 걸리는 사람은 목 체질 여성과 간 질환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이고, 방법은 간경 및 담경을 자극하는 것 등이 제시된다.


간에 문제가 있으면 늙어 보인다고 한다.(간은 목이다.) 물이 부족하면 땅은 점점 척박해져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진다. 이런 땅에서 자란 나무와 꽃이 푸르른 생명력을 발산할 리 없다. 여성의 간에 피가 부족하면 일찍 주름이 생기고 얼굴빛이 칙칙해지며 입술과 손톱이 창백해진다. 어지럼증을 자주 느껴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기운이 없고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 노화가 일찍 시작된다.


간은 피를 담아두는고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간경(肝經)은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가장 기운이 왕성해 열심히 독소를 배출하는데 이 시간에 깨어 있으면 간이 독소를 배출하는데 써야 할 힘을 눈과 뇌를 위해 쓰게 되어 독소 배출이 되지 않아 몸 여기 저기에 문제가 생긴다. 아시혈(阿是穴) 즉 누르면 아픈 혈자리가 있다. 이에 걸맞게 저자는 간 건강을 지키려면 날마다 간경을 천천히 지압을 하는 것이 필요한데 지압을 하다가 가장 시큰거리거나 아픈 부위, 뭉쳐 있는 곳을 힘껏 누르거나 두드려주라고 말한다.


간이 피를 받으면 눈이 밝아져서 잘 보이게 된다.는 구절이 황제내경에 있다. 눈 건강을 위해 멀리보기가 필요하다. 눈동자 굴리기도 필요하다. 태충혈 문지르기도 필요하다.(태충혈은 발등 부분의 혈자리이다.) 귓불 만지기도 좋다. 저자는 장자의 양생주를 열심히 읽을 것을 권한다. 우리의 삶과 활력은 끝이 있지만 앎은 끝이 없으니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바라거나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기어코 하려고 하면 몸과 마음이 상해 정신이 오갈 곳을 잃는다고 귀띔하면서.


양생주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니 몹시 위태롭구나.. 만사에 자연 법칙을 따르면 목숨을 지키고 천성을 보전하며 정신을 수양해 천수를 누릴 수 있다.저자는 호흡만으로 살이 빠지는 척주조식법, 지방간을 말끔히 없애는 음식과 혈자리 등을 알려준다. 심장은 여자의 영원한 집이다. 심장의 건강은 신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노화 속도에 영향을 미치고 일생의 아름다움에 직격탄을 날리기 때문에 여성은 특히 심장 보양에 신경써야 한다.


먹을수록 수명이 길어지는 오행 심장 보양죽도 눈길을 끈다. 씨를 제거한 대추 20, 심을 제거한 연밥 20, 건포도 30, 대두 30, 흑미 적당량으로 만드는 죽이다. 하루 동안 물에 담갔다가 한 번에 냄비에 붓고 끓여 먹으면 된다. 대추는 폐금(肺金)을 보하고 연밥은 심화(心火)를 없애며 포도는 간목(肝木)의 기혈을 보양한다. 대두는 비(脾土)를 보한다. 흑미는 신수(腎水)를 보한다.


저자는 열등감과 소심함도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한다. 소충혈에 침을 놓고 밝고 긍정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겁이 많고 소심한 여성들을 치료하는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다. 비위는 여자의 기본이다. 앞에서 말했듯(폐주피모) 폐가 튼튼해야 촉촉해 보인다. 역시 혈자리 자극이 필요하다. 쌀뜨물은 흰색으로 오행 중 금()에 속한다. 쌀뜨물을 얼굴에 담그고 숨을 참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폐가 튼튼해지고 피부가 백옥처럼 하얗게 된다고 하니 흥미롭다.


저자는 오행 폐 보양죽도 소개한다. 영향혈과 합곡혈을 시큰시큰하고 마비가 올 때까지 3분씩 문지르면 비염과 부비강염이 사라진다.(영향혈은 코 양 옆의 혈이다. 합곡은 엄지 손가락 옆의 혈이다.) 신장이 나쁘면 여성미가 부족해 보인다. 역시 혈자리가 중요하다. 저자는 머리 빗기의 놀라운 효과도 소개한다.


이 밖에 식초의 효능, 대상포진을 치료하는 비법, 연꽃처럼 앉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내용도 있다. 가부좌(跏趺坐)를 말한다. 노인성 치매를 예방하는 고치법(叩齒法)도 있다.(는 두드릴 고이다.) 여자로 태어나 아프지 않고 사는 법은 여자에게 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특별히 여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임은 물론이다.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 여자로 태어나 아프지 않고 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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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크라의 힘 - 내 안에 잠든 근원적 에너지를 깨우는 명상법
스와미 사라다난다 지음, 김재민 옮김 / 판미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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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는 가깝고도 낯설다. 내가 관심을 두는 불교와 관련짓는다면 가깝지만, 어렵고 힘든 호흡법, 기이한 자세 등을 감안하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붓다가 요가 수행자(요기)였고, 불교의 철인들이 요가(yoga: 유가瑜伽))라고 불리는 원초적인 선정(禪定)의 수행에 전념했다는 일지 스님의 ‘중관불교와 유식불교’ 중 한 구절(180 페이지)을 참고하면 요가가 불교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지 스님은 위파사나는 요가 실천법의 하나라 말씀하신다. 요가를 정신과 육체의 결합 정도로 알고 있는 나에게 상당한 관심거리로 다가오는 말이다. 불충분했을망정 나도 위파사나를 했었기에 넓은 의미의 요가 수행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번 읽은 김혜나 작가의 ‘나를 숨쉬게 하는 것들’에 나와 있듯 관건은 호흡법이다. 호흡법의 중요성은 ‘차크라의 힘’을 쓴 스와미 사라다난다의 ‘호흡의 힘’을 통해 알 수 있다. ‘차크라의 힘’은 차크라를 중심으로 요가를 쉽고 상세히 설명한 책이다.


차크라는 에너지적 신체인 미세 신체 내에 에너지 통로들이 교차하는 곳에 존재하는, 생기 에너지로 이뤄진 강력한 소용돌이이다. 우리 몸에는 일곱 개의 차크라가 존재한다. 차크라들은 불균형한 상태가 되기 쉬운데 이로부터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차크라들은 감정과 생각이 물질적 신체에 영향을 주고, 물질적 신체도 감정과 생각에 영향을 주는 메커니즘이라는 점이다. 전화 교환국처럼 기능하는 차크라들은 뇌의 뉴런들이 신호를 주고받음으로써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인도에 차크라가 있다면 중국에는 단전(丹田)을 비롯한 혈(穴)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읽은 바에 의하면 붉은 밭인 단전은 자궁이기에 남자에게는 해당하지 않지만 자궁이 있는 부위를 어림잡아 남자에게도 단전이 있는 것으로 친다고 한다.(2015년 3월 16일 한국일보 허담 한의사 글) 그 단전에 해당하는 차크라는 어떤 차크라일까? 스와디스타나 즉 천골(薦骨) 차크라일 것이다.


저자는 차크라 명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에너지 센터들을 관념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직접 느껴볼 것을 주문한다. 차크라에 의식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차크라에 따라 명상으로 발달되는 것들이 다르다는 점이다. 물라다라(뿌리) 차크라는 마음의 안정, 스와디스타나(천골) 차크라는 창조의 충동과 흐름을 따르는 능력, 마니푸라(태양신경총) 차크라는 적응하고 변화하는 능력, 아나하타(심장) 차크라는 연민과 자비, 사랑하는 능력, 비슛다(인후) 차크라는 창조성, 소통 기술,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는 능력, 아즈나(미간) 차크라는 지성과 직관, 사하스라라(정수리) 차크라는 영적 통찰력과 깨달음 등이다.


차크라를 알기 위해서는 하타 요가를 알아야 한다. 고대 이래로 차크라 명상은 하타 요가의 일부였다. 정신의 완성을 이루는 수단으로서 신체의 수련을 강조하는 하타요가는 정화방법, 호흡조절, 아사나(체위) 등을 강조한다. 세 종류의 신체가 있다. 물질적 신체, 아스트랄(미세) 신체, 종자로 된 원인적 신체 등이다. 원인적 신체에 과거 행위의 결과들인 카르마와 과거의 삶들로부터 전해진 모든 미세한 인상들이 축적된다.


미세 신체의 통로들이 나디이다. 7만 2천개의 나디 중에서 오직 세 개만이 차크라 명상에 연관된다. 척주(脊柱)의 왼쪽으로 흐르는 이다(Ida), 오른쪽으로 흐르는 핑갈라(Pingala), 척주로 추정되는 중앙 통로로 흐르는 수슘나(Sushumna) 등이다. 이다(Ida)가 달과 여신 삭티로 상징되고 여성, 차가움, 능동적 음(陰), 침착, 내향적, 통합적, 감정적, 주관적, 비언어적, 공간적, 직관적인 특징을 지닌다면 핑갈라(Pingala)는 태양과 남신 쉬바로 상징되고 남성, 따뜻함, 수동적, 양(陽), 흥분, 외향적, 분석적, 이성적, 객관적, 언어적, 수리적, 논리적인 특징들을 지닌다.


호흡이 양쪽 콧구멍으로 고르게 드나드는 유일한 때는 명상을 하는 동안 곧 호흡이 중앙 에너지 통로인 수슘나로 들어갈 때다. 쿤달리니는 어머어마한 잠재적 에너지의 원천이다. 쿤달리니를 각성시키면 신비로운 체험이 가능하다. 먹기 명상이 있는 것도 특이하고 여러 어려운 아사나들도 흥미롭다. 한의학에서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則不痛 不通則痛)이란 말을 한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말이다.


차크라 명상은 통즉불통 불통즉통의 담론이 더 구체화되고 전문화된 것 같다. 본문에 소개된 여러 아사나들은 우선 기이하게 여겨진다. 물론 기이함이 목적이 아니다. 필요에 의해 그렇게 기이하게 보이는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얀트라 명상이 있다. 설명(용어풀이)에 의하면 얀트라는 신비한 도형 또는 기하학적 상징이자 우주와 그것의 축소판으로서 인간의 신체 층위와 에너지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도상(圖上)이다.


본문에는 각 차크라에 해당하는 아사나들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틈나는대로 펴보며 따라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이든 눈으로만 익히거나 머리로만 익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몸으로 익히는 것이 최선이다. 옴 명상도 있다. 진동과 관련 있는 이 명상은 잠재적인 심령적, 정신적 힘이 깨어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슛다 에너지를 위한 요가 아사나편에 내 눈길을 끄는 것이 나온다.


어깨로 서기 자세인 사르방가사나, 쟁기자세인 할라사나 등이다. 평소 하는 것들이다. 아즈나 에너지를 위한 요가 아나사에 반물구나무서기 자세가 있다. 우주적인 잠인 요가 니드라(잠)는 편안한 자세로 눕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시르샤사나 즉 물구나무서기 자세가 나온다. 하타 요가의 정수(精髓)라고 한다. 통찰력과 직관력의 명료성을 높여준다, 이 자세는 내가 가끔 취하는 자세인데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울 때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 알고 싶다. ‘차크라의 힘’은 요가를 상세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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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 후암동 골목 그 집 이야기
권희라.김종대 지음 / 리더스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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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華川)에 한옥 학교가 있다. 내 형편을 생각하면 가입을 망설이게 되는 목수 양성 학교이다.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목수(木手)의 길은 목수(木修)의 길이며 숲길을 걸어들어가 홀로 깊어지는 것”이라는 문구가 생각을 유도한다. 내 서재에는 ‘한옥 짓는 법’이란 책이 있다. 구입한 지 5년이 되어 부분 부분 탈색이 된 책이 내 꿈의 퇴색을 알려주는 듯 하다. 물론 아직 퇴색은 아니고 유보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건축, 공간, 서재, 마당 등을 키워드로 한 책들을 꽤 읽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집 사정은 상당한 격랑과 침체가 공존하는 듯 하다. 1인 가구가 많은 현실에서 회재(晦齋) 이언적의 독락당(獨樂堂)이 얼핏 대비되어 생각된다. 홀로, 고독함을 즐기는 집이지만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1인 가구와 독락은 너무 다르다. 우리는 어느덧 집 크기를 행복, 재산 등과 등치시켜 생각하곤 한다.


협소주택(狹小住宅)이란 개념을 생각해 보자. 집을 지을 수 없을 만큼 좁은 땅에 최상의 기술력과 디자인을 동원해 공간 활용도를 높인 주택을 말한다. 공사비가 저렴하지 않다. 끊고 버리고 떠나라는 의미의 단사리(斷捨離) 운동이 집은 그대로 둔 채 소비 또는 소유를 줄이는 것이라면 협소주택은 집 자체를 작게 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이렇게 협소 공간이란 개념을 주요하게 인지시키는 책, 획일적인 아파트에서 아이를 구출하려는 계획에 따라 골목으로 이루어진 동네에 집을 짓게 된 부부의 책이다. 아내는 실내 건축 디자이너이고, 남편은 영화 프로듀서이다. 부부는 불필요한 기름기를 뺀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시작된 자신들의 집짓기 프로젝트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말한다.


그들이 지은 집의 이름은 디자인 하우스이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구성을 취했다.(본문에는 희노애락이라 나오지만 정확한 것은 희로애락이다.) 부부는 쾌적하고 편리할 줄만 알아 살기 시작한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서의 생활이 골칫덩어리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부는 아파트의 획일성과 무작정의 학원 교육을 불편해 하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쾌적한 환경을 찾아 힘든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라는 말이 해당되는 사례이다. 부부는 자신들이 지은 집을 크래프트 홈으로 만들어 갔다. 집을 사람과 문화와 음악으로 채워간 것이다. 이런 집은 당연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정체성이 반영된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으며 고(故) 김현 평론가의 ‘두꺼운 삶과 얇은 삶‘이란 글을 생각했다. 그에 의하면 아파트에서의 삶은 인위적이고 표면적인 것만을 중시하는 얇은 삶이고, 땅집에서의 삶은 자연적이고 정신적인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두꺼운 삶이다.


사실 집, 하면 투기, 아파트 공화국, 폭력적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부정적인 개념들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부부가 정착하기로 마음 먹은 곳은 후암동이다. 몇 년 전 언론인인 서화숙 님의 ’마당의 순례자‘란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선택한 곳은 부암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후암동을 부암동으로 착각했다. 부암동은 서울의 이색 공간이라 할 만큼 문화나 정서 면에서 빛나는 곳이다.


그런데 후암동은? 부부는 왜 구도심의 낙후된 동네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성장과 개발 이전의 사람이 중요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닿았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 여정이 희(喜)에 담겨 있다면 로(怒)에는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 없이 출렁이는 땅값이라든가 전문가는 없고 훈수꾼만 넘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부부는 젊다. 걷기를 즐기고 세류에 편승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안목과 취향도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에는 안 해보고 후회하지 말고 경험을 통해 뭐라도 배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발품을 팔고 공을 들여 집을 짓다 보면 과정 자체를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상량식(上梁式)이 인상적이다. “’논어‘와 ’맹자‘를 탐독 중인 아버지가 문구를 정하고 취미로 캘리그라프에 한창 빠져 있는 어머니가 붓글씨를 쓰고 가구 만들기가 취미인 우리가 나무를 켜서 판을 만들고 전체적인 디자인을 맡기로 했다.”


부부는 축소인봉(築巢引鳳: 둥지를 만들어 봉황을 끌어들인다)이란 문구 양쪽에 예쁜 발자국과 손자국을 찍어 가족만의 상량판을 완성했다. 애(哀)는 건축 과정에서 벌어진 실망스런 사연들, 힘겨운 사연들이 담긴 장이다. 부부는 말한다. 자신들에게 집은 인생 역전이나 큰돈 버는 수단이 아니었다고. 다채로운 삶의 레시피를 모색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던 것 뿐이었다고.


이 장에는 편하게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들과 달리 맞춤식 집을 지을 때 발생하는 시공업자들과의 트러블들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예상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실제로 우리가 직접 그런 경우에 처할 수도 있기에 충분한 참고거리가 된다. “상황에 따라 업체에 맡길지 직접 시공할지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돈은 돈대로 쓰고 어이없는 결과만 떠안게 될 수도 있다.”


부부가 원한 공간은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요리를 하면 집 전체가 부엌이 되고, 책을 읽으면 서재가 되고, 잠을 자면 침실이 되고, 아이와 놀고 있으면 놀이방이 되고, 손님이 오면 응접실이 되는 공간을 말한다. 시공업체로서는 생소한 주문 사항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부부가 원한 것은 작아도 넓고 깊어 보이는 집이었다. 관건은 부부가 말했듯 15평 집에서 넓고 깊이 있는 공간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다시 김현 평론가의 두꺼운 삶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집 짓기는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것은 그만큼 많다. 부부가 원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가족의 웃음소리와 행복한 추억으로 넘쳐나는 공간이다. 마지막 장은 락(樂)이다. 참 행복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치른 노고와 생각 등을 생각하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님을 헤아려야 한다.


부부의 집은 부부와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까지 함께 층을 달리해 사는 가족의 공간이다. 덧붙여 사무실까지 갖춘 더할 나위 없는 여건을 갖추었으니 참 부럽기까지 하다. 부부는 작은 집이 더 마음 편하다고 말한다. 드디어 후암동 주민이 된 부부는 남산 도서관과 용산 도서관 이야기를 한다. “북촌에 정독도서관이 없었어도 이사를 왔을까? 아마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한 영화 평론가의 말과 달리 도서관을 보고 거처를 택한 것은 아니지만 듣기 좋은 이야기이다.


집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주거 형태에 따라, 거주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부부는 거창한 집짓기가 아니어도 본인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많다고 말한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책이다.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알찬 책이다. 얼마 전 경복궁 답사를 통해 집 정확하게는 궁궐의 유서(由緖)와 의미를 배운 나에게는 흥미있게 다가온 책이다.(강의를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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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보는 미국사 - 아메리칸 시티, 혁신과 투쟁의 연대기
박진빈 지음 / 책세상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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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세인트루이스, 앨커트래즈, 워싱턴 DC, 뉴욕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다룬 ‘도시로 보는 미국사’는 도시를 혁신과 투쟁의 공간, 인간과 상호 작용을 통해 항상 변화해가는 혁신의 공간으로 본 책이다. 혁신과 투쟁의 공간이라는 말이 제시되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며 투쟁, 정확하게는 폭력이 문제가 되는 메커니즘을 해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박진빈 교수의 책은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저자는 20세기 초 미국 연방정부 임대 주택 정책의 역사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에필로그에 소개된 바대로 미국의 주요 도시들은 개발을 위한 개발을 되풀이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지가 되었다. 뤼도빅 루블레르가 ‘달라이 라마와 히치하이킹을’에서 중국을 전역에 걸쳐 낙후된 지역을 일사불란하게 철거하고 그 자리에 현대식 건물을 짓는 미친 속도의 나라라 정의한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책을 좋아해 도서관을 자주 찾는 나는 도서관이 문화 컨텐츠의 관점이 아닌 토건(土建)적 관점에서 보아야 할 곳이란 말을 듣고 잠시 혼란스러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딱 적당한 만큼의 초록이라는 의미의 just green enough란 말이 있다. 중도란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첫 도시로 설정된 필라델피아는 상징적이다. 우애의 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필라델피아는 그에 걸맞게 이질적인 이민자들로 홍역을 앓는 곳이 되었다. 균형을 잃은 결정이지만 국민 투표로 브렉시트를 감행하게 된 영국의 사례를 생각할 만한 부분이다.


필라델피아는 가장 부패한 자족적인 도시로 불렸다. 책은 필라델피아의 자구책을 보여준다. 저자는 필라델피아가 초기 이민자의 증가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많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1876년 100주년 기념 박람회를 통해 주변 도시의 급성장으로 인해 서서히 잃어가던 전국적 관심을 되찾아 역사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립한 것에 그친 것을 작은 관심이 부족한 결과로 본다. 대도시의 우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다. 시카고 역시 갈등을 빼놓을 수 없다. 흑백갈등이다.


도시는 갈등과 투쟁, 문제해결의 반복으로 점철된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차 대전 특수(特需) 속에서 급성장한 애틀랜타도 문제의 도시라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애틀랜타는 인종 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막을 수 없었던 백인들이 대도시 외곽에 대대적인 주거지 개발이라는 교외화(郊外化)로 맞섰다. 세인트루이스는 애틀랜타와 반대로 문제를 안았다. 팽창 도시로서 애틀랜타가 홍역을 치루었다면 세인트루이스는 공장이 버려지고 주택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하는 현상 등으로 낙후(落後) 일로를 걸었다.


모든 도시가 팽창할 수 없음을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공동화(空洞化)가 현안(懸案)이 된 것이다. 물론 공동화의 대안은 재개발이다. 1970, 80대년 당시 세인트루이스는 전체 인구는 감소하는 가운데 흑인 인구는 증가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나쁜 것은 흑인 인구가 증가했음에도 흑인 분리가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그 지역에서 흑인이 얼마나 빠져나가야 정상적인 인구 분포 수준이 되는가, 란 지수가 설정된 결과이다.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미국 도시들에서 확인되는 인종 분리의 정도는 인종 분리가 완화되고 인종간 평등화가 진행되었을 것이란 세간의 믿음을 배반한다고.


“여전히 흑인 게토가 있고 백인들의 교외가 있으며 도심지 슬럼은 빈민 혹은 최하위 계층의 전유물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분리가 단지 인종과 인종을 구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영구화하는 일종의 사회 구조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181 페이지) 미국의 역사는 정복(을 위한 학살)과 무단점거의 역사이다. 이는 이와사부로 코소의 관점으로 누구나 공감할 주지의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와사부로의 주장이다. 그는 도시를 거리의 꿈틀거림, 웅성거림, 시끌벅적함을 통해 춤을 추는, 움직이는 신체 즉 유체(流體)로 본다.


‘도시로 보는 미국사’는 용산 참사를 보며, 파괴적 결과라는 점에서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도시의 무분별한 상업화를 보며 죽어가는 도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나라에도 시사적인 책이다. 1964년 독일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가 런던 시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유입되면서 기존 거주자들인 노동자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보고 붙인 젠트리피케이션은 역사가 꽤 긴 이름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도시 공간이 계급적으로 독점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인류학자이자 지리학자인 닐 스미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젠트리피케이션을 주도하는 도시 정부의 특성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도시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주도하는데 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에 저항하는 세력에 대한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공권력 행사를 포함한 철저한 불관용 정책이다.


저자는 어디서든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떠밀려 다니다가 결국 도시의 언저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저자가 진단했듯 상황은 대단히 어렵다. 인상적인 것은 마이클 카츠(Michael B. Katz)의 주장이다. ‘왜 미국 도시들은 불타지 않는가?’란 책에서 그는 그렇게 차별받고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20세기 내내 인종 분리가 진행된 결과 흑인들이 분노를 쏟아 부을 백인이 존재하지 않아 흑인들 서로 분노의 총구를 겨눈다는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주의가 맹신되는 탓에 사회 구조의 변화를 위한 투쟁에의 의지가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카츠의 주장 중 하나이다. 군대화한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구실로 사소한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된 흑인을 대규모로 투옥하는 등의 이유로 불을 지를 만큼의 정치화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지적도 빼놓을 수 없다.


마이클 카츠는 혹시 우리가 그동안 도시의 실패를 이야기하는 데 너무 애쓴 것은 아닌지, 실패 담론에 가려진 성공한 공공 임대주택의 예들이나 연방의 결정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사적 재원을 구축해 도시 주택 문제에 접근한 예들을 언급한다. 저자의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신자유주의의 뿌리나 현재를 다룬 책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희망의 증거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 이후 최신 흐름을 반영한 ‘도시로 보는 미국사’는 그 만큼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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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사랑한 클래식 - 영화로 보고, 글로 읽고, 귀로 듣는 클래식의 세계
최영옥 지음 / 다연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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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클래식 음악의 관계를 해명한 책을 읽는다.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이다. 영화와 그림(한창호 지음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영화와 정신분석(김서영 지음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영화와 인문학(김영민 지음 '영화인문학'), 영화와 경제학(박병률 지음 '영화 속 경제학') 등 영화와 함께 생각하는 또는 영화로 만나는 다양한 전문 분야의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나는 영화보다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이겠지만 최영옥 저자의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을 클래식에 비중을 두고 대하게 된다.


최근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초기 작 중 하나인 '여수의 사랑'에는 비제의 칼멘 중 하바네라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자흔이라는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여수(麗水)에 가면, 나한테도 음악 같은 건 필요 없어요"란 답을 한다. 영화화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중편 소설이고 드라마틱한 부분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한다면 관련 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영화 제작자들도 내가 그랬듯 자신의 영화를 빛낼 클래식 음악들을 고르고 생각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리라.


말했듯 클래식 음악보다 영화를 덜 좋아하는 나는 클래식 음악이나 작곡가들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들을 공부하듯 들으려는 나는 그의 교향곡 54악장이 수록된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토마스 만 원작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아직 감상하지 못했고,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2악장이 아름답게 흐르는 '엘비라 마디건'을 보며 비슷한 듯 다른 투명한 슬픔이 인상적인 같은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 232악장을 영화에 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 최영옥 님은 음악전문지 기자, 음악칼럼니스트, 음악 평론가, 공연 기획자 등 음악 전문가이지만 강의를 위해 클래식 음악들이 흐르는 영화를 찾고 훑는 등 노력을 기울이느라 가끔 자신이 클래식 음악 전문인지 영화 전문인지 헷갈린다고 말한다.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은 저자의 말에 의하면 영화들 중에서도 클래식이 될 영화들을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흔히 클래식이라면 고전 또는 낭만 음악 위주로 생각을 하지만 고전(古典)이란 말이 의미하듯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을 명작들을 의미한다.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은 클래식 음악에 얽힌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거기에는 작곡가, 연주자, 영화감독 등과 관련된 다양한 사연들이 있다. 지난 2000년 바흐 서거 250주년 기념으로 일본의 NHK가 방영한 어느 사찰에서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 전곡 연주를 들으며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영화였다면 그렇게 고즈넉한 분위기에 투박한 첼로 선율을 수십 분씩 담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영화 이야기는 이런 방식으로 하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영화는 당연히 스토리가 위주이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삶과 사연이 깃들어 있다. 나는 아직 영화를 뇌과학을 이해하기 위한 또는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물론 이는 인간과 삶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 수행의 궁극적 목적 가운데 하나가 (깨달음이 아니라) 고통을 여의고 기쁨을 얻는 것(서광 스님 지음 '치유하는 유식 읽기' 191 페이지)이듯 내가 영화를 통해 뇌과학을 이해하려는 것도 삶과 사연들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더 잘 어울려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도로 올해 초 읽은 책이 제프리 잭스의 '영화는 우리를 어떻게 속이나'이다. 잭스에 의하면 뇌가 진화해온 오랜 시간 동안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뇌의 인식 시스템은 현실과 영화를 구분하지 못한다.('영화는 우리를 어떻게 속이나' 16 페이지) 음악은 그렇게 영화가 우리를 교묘히 속이는 것을 돕는 보조 장치가 아닐지?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이 다룬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46편의 영화 중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이 나오는 '쇼생크 탈출'부분에는 의미심장한 글이 나온다.


프랭크 다라본트가 감독한 이 영화에는 수감자 앤디가 교도소 방송실의 문을 닫아걸고 음반을 트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모차르트의 여성 이중창 곡인 '저녁바람 부드럽게'로 수감자들은 느닷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잊고 있던 바깥 세계의 자유를 떠올린다. 음악은 우리를 속이는 영화를 돕는 조력자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는 매개체이기도 한 것이다.


앞서 정신분석 이야기를 했지만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에는 "괴이쩍은 사랑의 정신분석학적 보고서"인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와 그 영화에 수록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이야기가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김서영 교수의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에도 이 영화가 나온다. 김서영 교수는 "정신분석이란 바로 이렇게 드러난 이야기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를 읽어 내게 만드는 도구"('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204 페이지)란 말을 한다.


최영옥 저자는 "난해하고 모호하기 그지 없"는 영화라는 평과 함께 감독이 영화를 보는 내내 저마다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피아니스트'란 말을 던진다. 저자는 세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고통을 겪은 슈베르트의 삶을 생각하면 해답이 나올 것도 같다는 말을 한다. 영화에는 이렇듯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제 영화들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눈여겨 보게 될 것 같다. 어쩌면 클래식 음악을 듣기 위해 영화를 감상하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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