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후
기욤 뮈소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부싸움 중 주된 원인 중 하나가 자녀 문제이다. 서로 불만이 있더라도 아이들 문제가 없다면 큰 싸움까지 안갈 수 있지만 아이 양육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경우 다툼이 커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세바스찬과 니키도 아이 문제로 이혼을 한 경우이다. 이혼하면서 쌍둥이는 부모를 따라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10대가 된 아이들은 부모에게 언제나 걱정의 대상이다.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들을 찾아 오랜만에 재회한 부부는 점점 엄청난 사건들 속으로 빠져들고 급기야 도망자 신분이 된다.

 

  기욤 뮈소의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이 책은 내가 읽은 다른 책에 비해 속도가 빠르고 스릴 있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3개국에 걸친 로케이션 촬영 같은 직접적인 묘사와 치밀한 사전조사로 이루어진 사건 전개 덕분에 생생하게 상상하며 읽었다. 물론 빠르게 넘어가는 책들이 그렇듯 특별한 깊이는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깨어진 가정이 다시 회복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혼으로 상처받는 건 당사자뿐 아니라 자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국적을 불문하고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책에 여러 번 등장하는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얼마 전 재미있게 읽어서인지 더 반가웠다. 세바스찬이 유명 바이올린 제작자라는 것, 그리고 감초처럼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의 제목들이 친근했다.

 

 

- 세바스찬은 제레미의 사진을 달빛에 비추어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들의 관계는 애매했다. 아버지와 아들치고는 너무나 소원하게 지내왔고, 무수히 많은 오해들이 쌓여가는데도 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세바스찬은 물론 제레미를 사랑했다. 그 사랑은 따뜻한 마음과 스킨십이 결여된 사랑, 공통의식이 전혀 없는 추상적인 사랑이었다. 그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 그에게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제레미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항상 카미유와 비교하기 일쑤였고, 두 아이가 선의의 경쟁을 펼칠 때에도 은근히 카미유를 응원한 적이 많았다. (26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940370933

 

사랑 이야기라 젊은 남녀가 등장하는 줄 알았다. 물론 시작은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은 혈기 넘치던 젊은 시절 잠깐 사랑했다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서로 헤어져 지낸다. 그 이유는 여자 주인공인 페르미나 다사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가진 것 없었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다사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물질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그를 스쳐간 여자들은 많지만 70대에 들어선 그는 자신의 인생에 다사 이외에 아무도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그녀에게 다시 다가갈 방법을 강구한다.

 

  평생에 걸쳐 한 여자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다른 남자의 여자를? 작가는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아마도 주변 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책 속에 녹아들어가 있을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신작인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엄청난 스토리 전개도 좋지만 뛰어난 묘사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이나 상황을 절묘한 비유를 이용해 묘사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난 작가다. 제목이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내용에 딱 맞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달 인문학 모임 책이라 구입한 이 책은 우리나라 초판본이다. 사실 요즘에 나오는 책은 두 권으로 되어 있어 한 권짜리로 사느라 이 책을 고르기도 했지만 초판본에 있는 구어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도 있었다. ‘초등학교국민학교아무튼아뭏튼으로 표기되어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누런 종이와 깨알 같은 글씨로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묘한 감동을 느낀 책이다.

 

- 다른 어느 방보다도 세심한 엄숙함을 자아내는 곳은 나이먹어 죽을 때까지 의사 우르비노의 성전이 돼줄 서재였다. 그곳에 그는 그의 부친이 썼던 호두나무 책상과 장식으로 술이 달린 가죽 안락의자를 중심으로 빙 둘러 있는 벽들과 심지어 창문에 이르기까지, 앞에 유리문이 달린 서가를 늘어 세우고 책 등에는 금박으로 그의 이름의 머리글자를 새기고 모두 똑같이 송아지 가죽으로 제본한 3천권의 저서를 정신착란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세심하게 순서에 따라 배열해 놓았다. 항구의 시끄러운 소리와 역겨운 바람이 제멋대로 들어오는 다른 방과는 달리 서재에서는 언제나 고요함과 수도원의 내음을 즐길 수 있었다. (30쪽)



- 그는 보이는 그대로 쓸모있고 진지한 노인이었다. 그의 신체는 깡마른 데다 곧았고, 그의 피부는 검고 털을 깎아내 매끄러웠으며, 그의 눈은 둥근 은테 안경 뒤에서 뜨겁게 이글거렸다. 그리고 그는 끝부분에 포마드를 바른 낭만적인 구식 턱수염을 갖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937284261

 

  작년에 소설가 한강씨의 수상 소식을 듣고 두 권의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채식주의자보다 소년이 온다가 좋았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보다는 우리의 암울한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의미 있게 다가왔나 보다. 그 때도 이 책이 인기였는데 다음에 읽어야지, 하고 미루다 도서관에 꽂힌 걸 보고 빌려와 읽었다.

 

  시도 아닌 것이, 에세이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묘하게 섞인 책이었다. 주제는 단 하나 으로 연상되는 것들이다. 실제로 흰 것도 있고, 희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었다. 책의 주제로 참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걸 골랐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그림자로 남아있는 아픔이 있다. 태어난지 두 시간만에 죽었다는 언니에 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걸로 봐서 얼마나 크게 자리잡은 존재였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은 두 형제가 만약 살아있었다면 어쩌면 그녀와 남동생은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읽으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오묘하게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다.

 

  흰색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소금, , 각설탕과 같은 보기에도 흰색인 것 말고도, 배내옷, 파도, , 은하수, 당의정, 백야, 넋과 같은 연상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경험이 녹아 있는 소재를 골라 서로 조금씩 연결되게 적어 내려갔다.

 

  약간의 어두움과 멋진 문장, 그리고 작가만의 경험들이 만나 좋은 책이 되었다. 이 책을 보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른다. ‘이런 책 나도 쓰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를 보고 너는 쓰지 않았잖아.’하고 말하겠지. 중요한 건 생각한 것을 써서 책으로 냈느냐, 쓰지 않았느냐의 차이다. 나도 쓰고 싶다. 좋은 책.

 

 

 

- 활로 철현을 켜면 슬프거나 기이하거나 새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 문장들이건 흘러나올 것이다. 그 문장들 사이에 흰 거즈를 덮고 숨어도 괜찮은 걸까. (10쪽)



-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단 것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이따금 각설탕이 쌓여있는 접시를 보면 귀한 무엇인가를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그게 모든 걸 물들이고 망가뜨린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83쪽)



-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 (126쪽)



- 언니, 라고 부르는 발음은 아기들의 아랫니를 닮았다. 내 아이의 연한 잇몸에서 돋아나던, 첫 잎 같은 두 개의 조그만 이. 이제 내 아이는 자라 더 이상 아기가 아니다. 열세 살 그 아이의 목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준 뒤, 고른 숨소리에 잠시 귀기울이다 텅 빈 책상으로 돌아온다. (12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 쓰는 것이 아니다, 짓는 것이다 - 글쓰기 대가들에게 배우는 최고의 글쓰기 비법
김동인 외 지음 / 루이앤휴잇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933037991

 

  늘 가는 도서관에 있는 작법에 관한 책은 거의 다 읽었는데 얼마 전 들렀더니 새 책이 하나 들어와 있어 빌려왔습니다. 뒷면에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소설처럼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글쓰기 대가들의 명쾌하고 살아 있는 글쓰기 원칙과 비법!” 하지만 제가 읽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분들이 오래 전에 살았던 분들이고, 문체와 단어들이 옛날식이기 때문입니다. 오기로 끝까지 읽었던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고 여겨집니다. 초창기 소설을 비롯한 작법들에 대해 여기저기에 써 놓은 것들을 한데 모았기 때문에 당시 작가들의 생각과 작법을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까지도 지닙니다.

 

  김동인과 계용묵, 채만식, 김영랑과 같은 익히 알고 있던 시인이나 작가 외에도 임화, 박용철과 같은 생소한 분의 글도 실려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글 쓰는 삶과 방법에 대한 글을 썼다는 것이지요. 이들은 정확한 문장의 중요성, 글을 쓰는 어려움(계용묵), 작법, 수필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고어가 되어버린 말들을 섞어서 말이지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도 있지만 이들이 하고자 하는 말들은 공통됩니다. 진실한 글을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지난하고 힘들지라도 견뎌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기 위해 쥐어짜낸 의미 없는 글을 쓰는 것보다는 일단 문필가가 되기로 결정한 이상 가난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그러면서도 출판과 책읽기 바람이 일었던 것에 비해 출판사가 독식하던 이익에 대한 불만도 드러냅니다. 이들의 책을 거의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본문으로 제시된 내용이 생소하고 낯설었습니다. 앞으로 이분들이 쓴 책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소설들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합니다.

 

- 나 역시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 이에 앞으로 소설 잘 쓰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이다. 비록 내가 언제까지 소설을 쓸지는 알 수 없다. 이에 기약할 수는 없지만, 소설을 그만 쓰는 날까지 꾸준히 소설을 잘 쓰는 공부를 할 생각이다. - 채만식 (50쪽)



- 군이 이후에 쓰는 작품은 온종일 앉아서 꼭 한 장만 죽을힘을 다해 쓸 생각을 하고, 한 달에 삼십 장짜리 한 편을 쓴 후 그것을 한 보름 두고 열다섯 장쯤으로 줄여 보시오. - 계용묵(87~88쪽)



- 왜 이리 창작이 어려워지는지 모르겠다. 도시 붓을 들기가 끔찍하다. 창작욕은 여전히 사그라질 줄 모르는 데도 쓰기는 을씨년스럽다. - 계용묵 (9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927518212

 

1968년 마오쩌둥 주석이 벌인 학생 농민 재교육 운동은 그 넓은 중국 땅을 뒤집어 놓았다. 소위 지식인들의 자녀들은 농민들로부터 배우기 위해 부모와 떨어져 시골 깡촌으로 들어갔다. 그들 중 한 명인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뤄와 함께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본 적도 없는 시골 사람들이 모인 하늘긴꼬리닭 산으로 들어간다.

 

  '반동분자'의 자녀로 그곳에서도 촌장의 감시를 받는데 그가 가져간 자명종 시계와 이야기 풀어내는 실력으로 시골 사람들의 호의를 받기 시작한다. 급기야 시내로 가 영화를 보고 와서 전달해 주는 역할을 맡아 고된 노동에서 잠시나마 해방되기도 한다.

 

  마오쩌둥의 저서와 공산주의 저서 외에 다른 책들이 금서로 지정되었던 당시 학문에 매진하던 학생들에게 책이란 얼마나 귀한 존재였을까? 그곳에 들어온 안경잡이로부터 받은 발자크의 책은 그의 열정에 불을 지피고 안경잡이의 다른 책들을 빼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사실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을 각색했을 터)을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건 작가의 긍정적인 정서나 타고난 재치 덕분일 것이다. 미소를 머금은 채 읽을 수 있었고 중국 역사의 단면을 알 수 있는 책이다.

- 잔뜩 겁을 집어먹은 나는 각 장면의 배경을 기계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뤄는 타고난 이야기꾼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는 대신 등장인물들을 하나하나 연기하면서 각각의 성대를 모사하고 몸짓까지 그대로 흉내 냈다. 그는 이야기를 끌고 나가면서 서스펜스를 만들고, 의문을 제기하고, 관람객들의 반응을 끌어내고, 틀린 대답을 고쳐주었다. 결국 뤄 혼자서 모두 다 한 셈이었다. 우리,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뤄가 주어진 시간 내에 정확하게 영화를 끝냈을 때, 그 구전영화에 감동한 관람객들은 얼이 빠져버렸다. (3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