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우체부
공태현 지음 / 종려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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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92369530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 왔다는 문학 소년이 있습니다생각한 것들을 적지 않으면 못 배길만큼 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습니다다만 그것을 적지 않았을 뿐입니다.

 

  시인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걸 보기도 하고느끼지 못하는 걸 깊이 느끼기도 하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이 책을 읽으며 사소한 사건 하나도작은 물건도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소년의 시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세상을 맑게 보는 사람의 시여서인지 착하고 맑고 투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아직도 순수한 시를 쓰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시를 통해 응어리를 해소했을 시인은 행복한 사람입니다입시 준비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은 무엇으로 그 울화를 풀까요누구에게나 건전한 해소거리가 필요합니다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 좋을 것 같습니다그 중 시를 짓는 건 가장 고상한 취미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 촛불 (46쪽)

한순간의 기적이 꺼지면
내 얼굴은 까맣다


- 핸드폰 (56쪽)

얹혀 있는 손이 자연스럽다
시도 때도 없이
자판 위를 움직이는
노예가 되었다
연인도 아닌 것을 사랑하니
애달프고
고달프다
집착 같은 쓸모없는 사랑을
지켜내야 한다
불빛이 번쩍이면
손은
우편배달부
오늘도
중매인이 되어
열심히 사랑을 실어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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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시선 237
김태정 지음 / 창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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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가는 버스에서 만난 시집, 시인의 고독과 가난이 뚝뚝 떨어지는 안쓰러운 마음 가득한 시집이다. 그가 쓴 슬픈 시처럼, 많지 않은 나이에 지병으로 저 세상으로 가셨다. 따스한 방에서 다리 뻗고 자 봤을까, 이 시인은……

 

  호마이카 식탁에서 시를 쓰고, 소박한 밥을 먹고, 고뇌하던 그녀의 작고 소중한 작업실.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다가도 마감 일이 다가오면 술술 풀려나오는 시어들을 엮으며 상쾌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 같은 그 식탁을 이제는 버려야 할 것 같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밥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286 컴퓨터에 얽힌 사연은 귀엽고도 애처롭다. 왜 시인은 가난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생활고에 시달리며 부업으로 연명하면서도 시를 놓지 못했던 시인의 삶.

 

  처음에 시인이 남자인 줄 알았다.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보다는 고군분투하는 삶의 전쟁을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한 문장들 때문이다. 그러다 ‘언니’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보고 여자라는 걸 알았다. 김태정 시인을 검색하니 환하게 웃는 사진이 나왔다. 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의 삶이 애달프다. 그 사실을 알고 다시 시를 읽으니 처음 읽을 때는 또 다른 느낌이다.



- 멸치 (76쪽)
네 뼈로 내 뼈를 세우리
네 살로 내 살을 보태리
네 몸을 이루는 바다로
삶의 부력을 완성하리
은빛 비늘의 눈부심으로
무디어진 내 눈물을 벼리리
어느날 문득 육지를 보아버린
네 그리움으로
메마른 서정을 적시리

그리하여 어느 궁핍한 저녁
한소끔 들끓어오르는 국냄비
생의 한때 격정이 지나
꽃잎처럼 여려지는 그 살과 뼈는
고즈넉한 비린내로 한세상이 가득하여,

두 손 모아 네 몸엣것을 받으리
뼈라고 할 것도 없는 그 뼈와
살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 살과
차마 내지르지 못하여 삼켜버린 비명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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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 창비시선 385
문인수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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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33284864


  창비 시선집이 좋다. 내가 익히 들어보지도 못한 시인들의 마음이 담긴 385편의 시집을 하나씩 읽으면 각 시인마다 지닌 정서가 얼마나 서로 다른지 알 수 있다. 바로 앞번에 읽었던 김태정 시인의 시집은 애처롭고 안타깝기만 했다면 문인수 시인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개구쟁이 같은 장난기가 느껴진다.

 

  전주에서 올라오는 기차에서 곱씹어 읽으며 시를 읽는 재미에 빠졌다. 풍성한 말놀음에 세상을 오래 산 이의 허허로운 삶의 자세가 느껴져 좋았다. 먼저 보낸 친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혼자 버스를 타고 아무 곳이나 내려 여행하는 객기도 지니고 있다.

 

  쓸쓸히 교정을 지키는 폐교의 나무를 보고도 시를 쓰고, 폭탄 맞은 레바논 아이에 대해서도 시를 짓는다. 시인은 세상을 보는 스펙트럼이 촘촘한가보다. 삶이 아무리 고달파도 자조적인 마음으로 시를 쓰는 사람은 마음이 부자다. 나이가 들수록 움켜잡기보다는 내려놓을 줄 알고, 아픔도 시로 녹여내어 허허 웃을 줄 아는 여유를 갖고 싶다.



- 죽도시장 비린내 (16-17쪽)
이곳은 참 복잡하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물씬, 낯설다.

포항 죽도공동어시장 고기들은 살았거나 죽었거나 아직 싱싱하다. 붉은 고무 다라이에 들어 우왕좌왕 설치는 놈들은 활어라 부르고, 좌판 위에 차곡차곡 진열된 놈들은 생선이라 부르고……

죽도시장엔 사람 반, 고기 반으로 붐빈다. ‘어류’와 ‘인류’가 한데 몰려 쉴 새 없이 소란소란 바쁜데, 후각을 자극하는 이 파장이 참 좋다.

사람들도 그 누구나 죽은 이들을 닮았으리.

아무튼 나는 죽도시장에만 오면 마음이 놓인다. 이것저것 속상할 틈도 없이 나도 금세 왁자지껄 섞인다.

여긴 비린내 아닌 시간이 없어,
그것이 참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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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간다 창비시선 366
이영광 지음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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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22091622


  도서관 서가를 지나가다 이영광 시인의 시집을 발견했다. <<나무는 간다>>라는 제목이 재미있어서 눈에 띄었나보다하지만 내용이 굉장히 심오하고도 어두웠다몇 날 며칠이 걸려 시를 읽고또 읽곤 했지만 시들에 담긴 참 뜻을 몇 퍼센트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하지만 그의 시에 무언가 있다그래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인생을 많이 살아온 사람의 넋두리일 수도잘 못 살아왔다는 회환일 수도 있는 이 시들에 애정이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핏빛 처절한 시들을 읽으며 왜 내 마음이 아플까시인으로 살아온 평생 그는 시를 통해 무엇을 이루었고얻었을까그는 시인이라는 자신의 직함에 대해 시를 썼다.늘 들으면서도 낯설게 다가왔을 시인님이라는 말이 언제쯤 그에게 익숙해질까?

 

  시인의 시에는 비유가 많다말장난에 가까운 언어의 유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그래서 읽는 동안 재미를 느낀 것 같기도 하다늘 대하는 일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시들과거를 이리저리 후벼 파는 시들을 읽으며 역사의 한 자락을 떠올려 보았다시에 깊게 깔린 죽음과 삶의 모호한 경계치매로 변해가는 사람들중독자들……시인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았을 것이다그들이 느끼는 아픔을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시인도작가도 모두 인간과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고귀하기도미천하기도 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한다그가 시를 쓰며 느꼈을 괴로움과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내뱉은 말들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썼다고 믿기지 않을 시구들에 대한 자부심을 평생 함께 지니고 살았을 것이다난해해서 더 읽고 싶은 시집이다.



- 얼굴(38쪽)

너는 내 표정을 읽고
나는 네 얼굴을 본다

너는 쾌활하고 행복하게 마시고 떠든다
그래서
나도 쾌할하고 행복하게 마시고 떠든다

그러다 너는 취해 운다
그래서 나는 취하지 않고 운다

눈물을 닦으며 너는 너를 사랑한다
눈물을 닦으며,
나는 네 사랑을 사랑한다

너는 나를 두고 집으로 갈 것이다
나는 너를 두고, 오래 밤길을 잃을 것이다

네 얼굴엔 무수한 표정들이 돛처럼 피어나고
내 얼굴은 무수한 표정들에 닻처럼 잠겨 있다

- 시인님 (122-123쪽)
시인님이라고 쓴 소포들 책들
시인님이라고 부르는
인터뷰어들
청탁 전화들

그의 꿈꾸는 어질머리와
이무는 가슴
거친 두 발 중에

사타구니를 타고 오르는 벌레처럼
동냥그릇에 떨어지는 동전처럼
시인님은, 대체 무엇을 높이려는 말일까

시인님이 되느니
땅끝까지 실종되고 말겠다
시인님이 되느니
살처분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겠다

높이지 않아도 시인은
만장처름 드높으므로
아무리 높여도 시인은
끓은 상주처럼 낮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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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문학동네 시인선 57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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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05056219


  교과서에 글이 실리기도 했다는 윤희상 시인의 시집을 만났다사랑 노래를 엮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애환을 그려낸 그의 시들이 정겹고도 섬뜩했다혼란스러웠던 광주의 사건들을 경험한 그의 시는 이후 검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지금은 스스로 검열을 한다고 하니 시인이 사회를 보는 눈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임진왜란 일본에 항거해 싸우다 죽었던 조상이 있는 그의 어머니는 일본인이다그가 평생 겪었을 색안경 낀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오죽하면 그것을 시로 썼을까?

 

  시인의 눈에는 귤 값도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재미있다그런가 하면 줄글도한 행의 시도 있다니 요즘 시들은 정말 자유분방하다.시라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시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매일의 우리의 대화 속에도 시가 있고풍경에도 시가 들어 있다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윤희상님의 시들에서 슬픔과 인생무상의 정서가 느껴진다글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묻어나오기 때문일 것이다암울한 시대를 거쳐 나온 그가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기억의 한 구석에 숨어 있는 아픔을 누르기는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웃음이 픽 나오는 시들도 있다. 그는 원래 유쾌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 북악 스카이웨이 (46쪽)

지름길로 가기 위해
돈암동에서 우회전하여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지금 앞서가는 차는
단풍놀이를 한다.
천천히 간다.
빨리 갈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빨리 가야 한다.
일하러 가는 길이다.
가는 길은 한 길,
그러니, 앞질러 갈 수도 없다.
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으니
단풍이 곱다.

- 무등산의 마음 (57쪽)

어느 해 여름, 소쇄원과 식영정을 둘러보고
환벽당을 둘러보고
취가정을 둘러보고
호숫가로 내려가서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호수 건너편의 무등산이
호수를 건너왔다 도무지, 올 수 없는 곳을
그림자로 왔다. 큰 산이 물을 적시지도 않고
호수를 건너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내가 엉겁결에
산속으로 들어간 것은 당연하다

- 윤희상의 시는 사실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해설이 필요 없다. 시가 평이할뿐더러 저 자신을 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아마도 우리 시대에 읽기 쉬운 언어로 가장 많음 비밀을 끌어안고 있는 시집을 고른다면 윤희상의 이 시집을 몇 손가락 안에 꼽아야 할 것이다. (94쪽)

- 윤희상에게서는 그 평이한 언어 자체가 문명 비판의 가치를 지닌다.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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