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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ㅣ 문학동네 시인선 57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평점 :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05056219
교과서에 글이 실리기도 했다는 윤희상 시인의 시집을 만났다. 사랑 노래를 엮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애환을 그려낸 그의 시들이 정겹고도 섬뜩했다. 혼란스러웠던 광주의 사건들을 경험한 그의 시는 이후 검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스스로 검열을 한다고 하니 시인이 사회를 보는 눈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임진왜란 일본에 항거해 싸우다 죽었던 조상이 있는 그의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그가 평생 겪었을 색안경 낀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죽하면 그것을 시로 썼을까?
시인의 눈에는 귤 값도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가 하면 줄글도, 한 행의 시도 있다니 요즘 시들은 정말 자유분방하다.시라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시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매일의 우리의 대화 속에도 시가 있고, 풍경에도 시가 들어 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윤희상님의 시들에서 슬픔과 인생무상의 정서가 느껴진다. 글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묻어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암울한 시대를 거쳐 나온 그가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기억의 한 구석에 숨어 있는 아픔을 누르기는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웃음이 픽 나오는 시들도 있다. 그는 원래 유쾌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 북악 스카이웨이 (46쪽)
지름길로 가기 위해 돈암동에서 우회전하여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지금 앞서가는 차는 단풍놀이를 한다. 천천히 간다. 빨리 갈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빨리 가야 한다. 일하러 가는 길이다. 가는 길은 한 길, 그러니, 앞질러 갈 수도 없다. 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으니 단풍이 곱다. - 무등산의 마음 (57쪽)
어느 해 여름, 소쇄원과 식영정을 둘러보고 환벽당을 둘러보고 취가정을 둘러보고 호숫가로 내려가서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호수 건너편의 무등산이 호수를 건너왔다 도무지, 올 수 없는 곳을 그림자로 왔다. 큰 산이 물을 적시지도 않고 호수를 건너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내가 엉겁결에 산속으로 들어간 것은 당연하다 - 윤희상의 시는 사실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해설이 필요 없다. 시가 평이할뿐더러 저 자신을 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아마도 우리 시대에 읽기 쉬운 언어로 가장 많음 비밀을 끌어안고 있는 시집을 고른다면 윤희상의 이 시집을 몇 손가락 안에 꼽아야 할 것이다. (94쪽) - 윤희상에게서는 그 평이한 언어 자체가 문명 비판의 가치를 지닌다.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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