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 창비시선 385
문인수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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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33284864


  창비 시선집이 좋다. 내가 익히 들어보지도 못한 시인들의 마음이 담긴 385편의 시집을 하나씩 읽으면 각 시인마다 지닌 정서가 얼마나 서로 다른지 알 수 있다. 바로 앞번에 읽었던 김태정 시인의 시집은 애처롭고 안타깝기만 했다면 문인수 시인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개구쟁이 같은 장난기가 느껴진다.

 

  전주에서 올라오는 기차에서 곱씹어 읽으며 시를 읽는 재미에 빠졌다. 풍성한 말놀음에 세상을 오래 산 이의 허허로운 삶의 자세가 느껴져 좋았다. 먼저 보낸 친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혼자 버스를 타고 아무 곳이나 내려 여행하는 객기도 지니고 있다.

 

  쓸쓸히 교정을 지키는 폐교의 나무를 보고도 시를 쓰고, 폭탄 맞은 레바논 아이에 대해서도 시를 짓는다. 시인은 세상을 보는 스펙트럼이 촘촘한가보다. 삶이 아무리 고달파도 자조적인 마음으로 시를 쓰는 사람은 마음이 부자다. 나이가 들수록 움켜잡기보다는 내려놓을 줄 알고, 아픔도 시로 녹여내어 허허 웃을 줄 아는 여유를 갖고 싶다.



- 죽도시장 비린내 (16-17쪽)
이곳은 참 복잡하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물씬, 낯설다.

포항 죽도공동어시장 고기들은 살았거나 죽었거나 아직 싱싱하다. 붉은 고무 다라이에 들어 우왕좌왕 설치는 놈들은 활어라 부르고, 좌판 위에 차곡차곡 진열된 놈들은 생선이라 부르고……

죽도시장엔 사람 반, 고기 반으로 붐빈다. ‘어류’와 ‘인류’가 한데 몰려 쉴 새 없이 소란소란 바쁜데, 후각을 자극하는 이 파장이 참 좋다.

사람들도 그 누구나 죽은 이들을 닮았으리.

아무튼 나는 죽도시장에만 오면 마음이 놓인다. 이것저것 속상할 틈도 없이 나도 금세 왁자지껄 섞인다.

여긴 비린내 아닌 시간이 없어,
그것이 참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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