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간다 창비시선 366
이영광 지음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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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22091622


  도서관 서가를 지나가다 이영광 시인의 시집을 발견했다. <<나무는 간다>>라는 제목이 재미있어서 눈에 띄었나보다하지만 내용이 굉장히 심오하고도 어두웠다몇 날 며칠이 걸려 시를 읽고또 읽곤 했지만 시들에 담긴 참 뜻을 몇 퍼센트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하지만 그의 시에 무언가 있다그래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인생을 많이 살아온 사람의 넋두리일 수도잘 못 살아왔다는 회환일 수도 있는 이 시들에 애정이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핏빛 처절한 시들을 읽으며 왜 내 마음이 아플까시인으로 살아온 평생 그는 시를 통해 무엇을 이루었고얻었을까그는 시인이라는 자신의 직함에 대해 시를 썼다.늘 들으면서도 낯설게 다가왔을 시인님이라는 말이 언제쯤 그에게 익숙해질까?

 

  시인의 시에는 비유가 많다말장난에 가까운 언어의 유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그래서 읽는 동안 재미를 느낀 것 같기도 하다늘 대하는 일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시들과거를 이리저리 후벼 파는 시들을 읽으며 역사의 한 자락을 떠올려 보았다시에 깊게 깔린 죽음과 삶의 모호한 경계치매로 변해가는 사람들중독자들……시인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았을 것이다그들이 느끼는 아픔을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시인도작가도 모두 인간과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고귀하기도미천하기도 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한다그가 시를 쓰며 느꼈을 괴로움과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내뱉은 말들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썼다고 믿기지 않을 시구들에 대한 자부심을 평생 함께 지니고 살았을 것이다난해해서 더 읽고 싶은 시집이다.



- 얼굴(38쪽)

너는 내 표정을 읽고
나는 네 얼굴을 본다

너는 쾌활하고 행복하게 마시고 떠든다
그래서
나도 쾌할하고 행복하게 마시고 떠든다

그러다 너는 취해 운다
그래서 나는 취하지 않고 운다

눈물을 닦으며 너는 너를 사랑한다
눈물을 닦으며,
나는 네 사랑을 사랑한다

너는 나를 두고 집으로 갈 것이다
나는 너를 두고, 오래 밤길을 잃을 것이다

네 얼굴엔 무수한 표정들이 돛처럼 피어나고
내 얼굴은 무수한 표정들에 닻처럼 잠겨 있다

- 시인님 (122-123쪽)
시인님이라고 쓴 소포들 책들
시인님이라고 부르는
인터뷰어들
청탁 전화들

그의 꿈꾸는 어질머리와
이무는 가슴
거친 두 발 중에

사타구니를 타고 오르는 벌레처럼
동냥그릇에 떨어지는 동전처럼
시인님은, 대체 무엇을 높이려는 말일까

시인님이 되느니
땅끝까지 실종되고 말겠다
시인님이 되느니
살처분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겠다

높이지 않아도 시인은
만장처름 드높으므로
아무리 높여도 시인은
끓은 상주처럼 낮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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