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지구에서 7만 광년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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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지구에서 7만 광년>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제법 무거운 주제를 가진 SF소설일거라 짐작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나의 무서운 선입견에 대한 반성을 해야 했다. 약간은 어눌하면서도 두뇌회전이 빠른 꼬마 아이 짐보가 등장하더니, 그 친구 약삭빠른 악동 찰리와 함께 이야기를 이어가는 재기발랄한 청소년 소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의 출세작 <한밤중에 개에게 읽어난 의문의 사건>도 읽어보지 못했고, ‘마크 해던’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는 소설이 이 작품이었으니, 작가가 글을 쓰는 분위기나 작품 전반에 대한 색감을 알 수 없었기에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약간은 더 당혹감에 휩싸여야만 했다. 밝고 귀여운 소설이 아닌,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기대한다면 일단 다른 SF 과학서를 찾아보기를 권장한다.

<쾅!...>은 앞서 설명했듯이 귀여운 두 꼬마가 펼쳐가는 재기발랄한 모험담이다. 모범생은 아니고, 큰 문제아도 아닌 평범한 악동인 짐보와 찰리는 어느 날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두 선생님, 피어스 선생님과 키드 선생님에게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상상도 못할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상한 외계언어로 대화를 하고 이해 못할 행동을 하는 두 선생님을 목격하면서 그들을 미행하고 뒷조사를 시작하는데, 결국은 두 꼬마가 지구 밖, 머나먼 행성, 지구로부터 7만 광년이나 떨어진 낯선 외계로 떨어져 버리는 화를 자초하게 되었다. 두 꼬마는 지구 밖으로 날아가 외계인을 만나고, 재미있는 모험을 하고, 일반적으로 알던 SF소설과는 그 맥락이 비슷하지만, <쾅!...>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100% 순수 상상으로만 이루어진 웃기는 청소년 용 SF 소설’. 한 마디로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이러하다.
 

<쾅!...>을 읽은 후, 작가 ‘마크 해던’에 대해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추억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청소년이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깊을 것 같다는 점이다. 10년도 훨씬 전에 출간 되었지만, 별로 빛을 보지 못했던 이 소설을 다시 펴내게 된 이유는, (물론 지금 크게 출세해서 높은 판매부수를 보장 받을 수 있단 점을 배제 할 수 없겠지만) 오래전 출간 되었던 이 책을 기억하는 한 학교의 교사가 자신의 반 아이들이 이 책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가 하는 편지글을 보내게 되면서였다고 한다. 그 후로 작가는 고민하다 예전에 <그리드즈비 스푸드베치>라고 출간되었던 이 책을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만들었다고 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꼬마들에 대한 작가의 가득한 사랑도 느낄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이 사랑스럽고, 외계인을 두려워하고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를 갈망했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 후 <E.T>를 다시 보게 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게 마음이 포근해졌다.

청소년소설답게 화려한 기교 섞인 문장이나 놀랍도록 예리한 과학적인 지식은 없지만, 유머러스한 문장들을 읽으면서 재미난 모험을 떠날 수 있었다. 짐보 아빠의 알록달록하고 멋진 요리들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대리만족도 느낄 수 있었고, 실수투성이의 어른들을 보면서 자신을 투영하여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다. 어른 시절을 회상하며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쾅!...>을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많이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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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트릭
엔도 다케후미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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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이 작품을 두고 ‘과격’하다는 표현은 피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소설의 분위기나 줄거리와도 크게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이상하게도 읽고 난 후 문득 떠올랐던 표현이었다.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맨 마지막 한 줄을 읽고는, ‘왜?’라는 질문이 내내 과격하게 내 머리통을 반격해왔다. 어쩐지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너무 작위성이 짙기도 하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복잡 미묘한 심정이랄까. 여하튼 기분이 개운치 않았던 것은 틀림이 없다. 추리소설의 특성상 마지막 한 컷의 반전을 읽기 위해 전 페이지를 할애한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야릇한 기분은 뭘까. 말로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읽어보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읽은 후엔 참으로 갸우뚱 오묘 허무했다.

  독자를 속이기 위한 작가의 트릭이 넘쳐나는 작품들을 읽다 보면 심취하여 빠져들어 마지막엔 의례 희열을 느끼기 마련이다. 독자를 완벽히 속아 넘기기 위해서 작가는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탄탄한 구조로 치밀한 연결을 시도해야 한다. <프리즌 트릭>은 좀 복잡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이름의 등장인물들이 워낙에 많이 등장해서 헷갈렸던 부분도 있었고, 연결이 순탄치 못하여 의문을 남기는 부분들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읽고는 의문이 가는 부분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게 작가의 실수인지, 작품을 미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의 실수가 있었는지 미심쩍고 앞 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 문제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읽어주는 수고로움이 필요할 듯싶다.

  <프리즌 트릭>은 교도소에서 벌어진 의문의 밀실 살인을 주제로, 교도소 관계자들, 경찰과 보험회사 직원, 기자들이 등장하여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처음부터 엇갈린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실과 그들을 둘러싼 비밀들이 하나씩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사건은 점점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데, 짧은 분량임에도 굉장히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장르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푹 빠져들어 가볍게 읽기엔 전혀 무리가 없는 작품이지만, 단숨에 달려온 페이지의 마지막이 아쉬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를 매우 재미있게 봤었는데, 약간 비슷한 내용이므로, <프리즌 브레이크>를 재미있게 봤던 시청자라면 <프리즌 트릭> 역시 괜찮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물밀듯이, 폭풍 쓰나미 되어 불어 닥친 일본 문학의 판도가 점점 장르소설로 확고하게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하다. 트렌드 강한 신작들을 보면 대부분이 그러하다.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 같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거장들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작품들도 있을 텐데, 이번에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엔도 다케후미’ 같은 실력 있는 신예들의 등장도 돋보인다. 그러나 너무 비슷한 분위기의 비슷한 전개에 대한 매너리즘에 싫증이 난 독자들을 위해서 조금 더 참신하고 혁신적인 주제가 등장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즌 트릭> 역시 괜찮게 읽기는 했지만, 가슴에 콱 들어와 박히는 거대한 임팩트는 없었으므로. 달리 이야기 하자면, 변덕스러운 내 자신이 일본 장르 소설에 점점 기대감을 잃어가고, 염증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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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신호등 - 내 몸이 질병을 경고한다
닐 슐만 외 지음, 장성준 옮김 / 비타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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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예전에 비해 조금씩 건강이 나빠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허리가 아파오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 것 같고, 지방도 더욱 많이 축적되고 있는 부한 몸을 보고 있자니 절로 건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몇 가지 증상으로 병원에 갔는데, 큰 병은 아니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수술까지 하게 된 결과를 낳았다.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몸 관리를 안 해서야 나중에 더 큰 고생을 하게 될게 뻔해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식습관의 문제와 심각한 운동부족, 흡연이나 음주, 그리고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 우리 몸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건강의 상식들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건강에 관련된 서적을 찾고 있던 중 ‘건강 신호등’이라는 반가운 책을 만나 읽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풍부한 질병의 상식을 알게 되어 뿌듯한 마음이다.


‘건강 신호등’은 제목 그대로 우리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에 대해서 원인과 그 대책을 비교적 상세하고 알기 쉽게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처음 목차를 살펴보면 몸을 부위별로 나누어 우리 몸이 보내는 이상 증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다. 총 5부로 나누어 성인과 소아의 건강 이상신호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의료 과실을 피하는 방법과 개인적으로 제법 도움이 많이 되었던 응급처치 요령 등이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제법 두꺼운 페이지수를 자랑하지만, 금방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락이 짧아서 큰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학 용어도 그리 복잡한 수준이 아니라서 지금까지 익숙하게 들었던 질병과 의학 관련 용어들이었기에 초보자가 읽기에도 큰 부담이 없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의 저자들이 미국인들이기에 미국에서 주로 발병하는 질병들 위주로 저작하였기에, 우리나라에서 많이 발병하는 병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주로 발생하는 질병과 큰 병들이 대부분은 비슷하지만, 국가별로 분명한 차이가 있을 몇몇 질병들은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재편집을 했더라면 더 좋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사소한 몸의 이상신호에 대해서 대충 넘어가면서 좀 더 두고 보자고 자위했던 지난날들이 충분히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어딘가에 이상이 있을 시에는 반드시 병원을 찾아 원인을 찾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건강에 대한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지식이나 부, 명예는 물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다시는 볼 수 없다. 한 순간의 실수로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사태를 불러일으키기 전에 다시 한 번 자신의 몸 상태를 올바르게 체크하며 어딘가가 아픈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을 수 있었던 문장은 바로 ‘조기에 발견해야 치유가 가능하다’라는 문장이었다. 어떤 병이든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가 가능하다. ‘건강 신호등’은 모든 병이 발병하고 최초의 증상이 어떤가에 대해 알아볼 수 있어 조기에 대처 할 수 있는 유용한 책이었다. 지금부터라도 내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꼭 일 년에 한 번씩은 종합건강검진을 받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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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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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 따위는 망각하고 싶은 게 모든 이들의 생존법이 아닐까. 그래서 모두들 대충대충 적당히, ‘오늘 하루도 무사히’를  외치며 살아남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들 밥을 먹고, 사랑을 하고, 야동도 보면서 세상을 향해 욕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내 하루의 끝이 절망일망정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저 쿨 하게 세상을 살고 싶을 뿐이다. <하악하악>은 이런 내 마음의 대변자라도 되는 듯 등을 토닥거려 주기도 하고, 웃음으로 배꼽을 날려버리기도 하고, 쓴 소리 한마디에 시무룩해지기도 했다. 파리가 두 손 모아 싹싹 비는 비굴한 인생을 살기보다는 차라리 고개를 외면한 채 내가 세상의 일인자라도 되는 으쓱함으로 벅차게 살고픈 마음이 든다고나 할까.

  처음 표지의 그림을 보고 가상으로 그린 ‘용’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존하는 민물고기 ‘목어’라고 한다. 실제로 저렇게 특이하게 생긴 물고기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책 속의 수많은 종류의 민물고기 세밀화를 보고 더욱 놀라웠다. 생긴 것도 비슷비슷 별 특징도 없어 보이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고운 이름까지 지어져 있었다니. 하찮고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스쳐지나갔던 모든 사물, 생물들의 존귀함을 문득 떠올렸던 순간이랄까. 기분이 참 오묘했다. 멋진 세밀화와 이외수님의 수려하고도 유머러스한 문장이 만나니 뜻밖에도 찰떡궁합을 이룬다.

  인터넷상에서 닉네임 하나 덩그러니 남겨놓고는 신원불명의 인물이 저지르는 악플의 만행에 대해서 경탄하는 글이 많은데, 누군가의 횡포로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도 있지 않은가. 눈여겨보지 못한 연약한 생물들에게도 저마다의 생존 이유가 있듯이 하물며 사람 된 도리로 타인에게 어찌 그런 언어폭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을까. 세상에 대한 한탄과 더불어 세대 간의 벽을 허물려는 작가님의 노력이 엿보였다. 감상적인 글도 있고, 지극히 평범한 한 문장 속에 뼈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젊은 층을 겨냥해 글을 쓴 듯 요즈음 유행하는 넷상의 언어들로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웃으며 넘길 수 있으면 된 것이니 그리 괘념치는 않는다. 발악하며 살기도 배부른 세상이지만 모두들 최소한의 노력을 하며 주제파악부터 하라는 충언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악하악 거친 숨소리 나게 살아봤던 때가 언제였을까? 웃다가 기절 할 만큼 재미있어 본적은? 대부분의 삶이 남을 비방하는 대리만족감으로 내 영혼의 풍요를 박살내고 있었다. 현실을 돌아보자. 웃으며 살면 더 없이 좋고, 하악하악 호흡이 거칠어질 만큼 열심히 살다보면 젊은 날의 보상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니.
 
  감성마을에서 손님들을 맞으며 행복하고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글쟁이 이외수. 이분을 뵈면 언제나 외곬수의 광인이 떠오르는데, <하악하악>을 통해 그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인생의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더욱 기발하고 창의적인 문장들이 탄생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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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세이타로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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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과거에 비해 가부장의 든든한 역할이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권위적이고 직선적인 전통의 아버지 상이 최근에는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이 집안의 든든한 버팀목인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역시 고주망태가 되어 늘상 가족들에게 근심을 지우는 호탕한 모습으로 연상된다. 지극히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아버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하는 사업마다 족족 말아먹기 일쑤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주름진 눈가의 웃음 덕택에 가족들은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세이타로 가족의 버팀목인 아버지 '하나비시 세이타로'는 '한심한 아버지 상'이 갖추어야 할 모든 항목에 포함된 위인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길을 위해서 소신있게 밀어붙이는 강직한 아버지이다.

  '대여가족' 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처음에는 한참 웃었다. 실제 가족이 다른 가족이 되어 다시 만나 연기를 한다니... 주위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직업이다. 전혀 조화롭지 않은 세이타로 가족은 오로지 대여가족이 되어 다른 이의 가족 연기를 할 때만 진짜 가족이 된다. 정착하지 못하는 아버지란 사람의 혼란스러운 방황에 처자식들은 힘겨워하고, 심지어 딸 모모요는 아버지와 대화조차 하려들지 않는다. 반발심이라기 보다 포기 했다는 쪽이 옳을 것이다. 차후의 일이지만 부인 미호코의 숨겨왔던 진심을 알았을 때에는 '아차' 싶은 낭패감으로 양 볼이 물들어 버렸다.

  <유랑가족 세이타로>는 독특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평범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대화도 단절되고 소통도 안 되는 부모님 세대와 2세들간의 불협화음이 삐걱거리며 간간히 들려오지만, 꼭꼭 감추어 져 보이지 않았던 끈끈한 사랑이 언제나 희망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아주 한참 후에나,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후에나, 알아버리게 되는 서글픔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소설 속 공간의 분위기는 왁자지껄, 시끌벅적한 코믹함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매우 유머러스하다. 한 마디로 웃다가 울다가 정신이 쏙 빠지는 사이에 갑자기 은은한 감동으로 미소짓게 만들어 버리는... 매우 경쾌한 소설이었다. 익숙하지 않았던 일본의 유량극단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더욱 뜻 깊었다. 가부키나 온나카타 같은 지극히 일본스러운 분위기에 도취되어 일본풍의 전통 시대극을 정식으로 한번 관람해 보고 싶다는 욕구도 일었다.

  세이타로 가족들의 개인사가 파트 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인물은 간지의 누나 모모요의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에 출산을 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듯 싶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당당하고 사려 깊은 아가씨였다는 사실. 지나치리만큼 '쿨'한 그녀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 미호코가, 사랑스럽지만 엉뚱한 막내 간지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를 읽을 땐 왜 나도 덩달아 눈물이 흘렀을까. 때로는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하고, 절망과 실망으로 범벅이 된 채로 괴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그렇듯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다. 점점 해체되어만 가는 이 시대의 가족들이 가야할 곳은 어디일까, 라는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사이, 나도 모르게 다시 찾게 되는 따뜻한 우리 가족들이 있기에 행복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상처를 꿰맨 자리에 흉터는 남지만, 늘 그렇듯이 새 살이 돋아나 더 단단해진 피부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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