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가족 세이타로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제는 과거에 비해 가부장의 든든한 역할이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권위적이고 직선적인 전통의 아버지 상이 최근에는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이 집안의 든든한 버팀목인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역시 고주망태가 되어 늘상 가족들에게 근심을 지우는 호탕한 모습으로 연상된다. 지극히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아버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하는 사업마다 족족 말아먹기 일쑤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주름진 눈가의 웃음 덕택에 가족들은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세이타로 가족의 버팀목인 아버지 '하나비시 세이타로'는 '한심한 아버지 상'이 갖추어야 할 모든 항목에 포함된 위인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길을 위해서 소신있게 밀어붙이는 강직한 아버지이다.

  '대여가족' 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처음에는 한참 웃었다. 실제 가족이 다른 가족이 되어 다시 만나 연기를 한다니... 주위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직업이다. 전혀 조화롭지 않은 세이타로 가족은 오로지 대여가족이 되어 다른 이의 가족 연기를 할 때만 진짜 가족이 된다. 정착하지 못하는 아버지란 사람의 혼란스러운 방황에 처자식들은 힘겨워하고, 심지어 딸 모모요는 아버지와 대화조차 하려들지 않는다. 반발심이라기 보다 포기 했다는 쪽이 옳을 것이다. 차후의 일이지만 부인 미호코의 숨겨왔던 진심을 알았을 때에는 '아차' 싶은 낭패감으로 양 볼이 물들어 버렸다.

  <유랑가족 세이타로>는 독특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평범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대화도 단절되고 소통도 안 되는 부모님 세대와 2세들간의 불협화음이 삐걱거리며 간간히 들려오지만, 꼭꼭 감추어 져 보이지 않았던 끈끈한 사랑이 언제나 희망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아주 한참 후에나,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후에나, 알아버리게 되는 서글픔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소설 속 공간의 분위기는 왁자지껄, 시끌벅적한 코믹함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매우 유머러스하다. 한 마디로 웃다가 울다가 정신이 쏙 빠지는 사이에 갑자기 은은한 감동으로 미소짓게 만들어 버리는... 매우 경쾌한 소설이었다. 익숙하지 않았던 일본의 유량극단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더욱 뜻 깊었다. 가부키나 온나카타 같은 지극히 일본스러운 분위기에 도취되어 일본풍의 전통 시대극을 정식으로 한번 관람해 보고 싶다는 욕구도 일었다.

  세이타로 가족들의 개인사가 파트 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인물은 간지의 누나 모모요의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에 출산을 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듯 싶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당당하고 사려 깊은 아가씨였다는 사실. 지나치리만큼 '쿨'한 그녀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 미호코가, 사랑스럽지만 엉뚱한 막내 간지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를 읽을 땐 왜 나도 덩달아 눈물이 흘렀을까. 때로는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하고, 절망과 실망으로 범벅이 된 채로 괴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그렇듯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다. 점점 해체되어만 가는 이 시대의 가족들이 가야할 곳은 어디일까, 라는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사이, 나도 모르게 다시 찾게 되는 따뜻한 우리 가족들이 있기에 행복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상처를 꿰맨 자리에 흉터는 남지만, 늘 그렇듯이 새 살이 돋아나 더 단단해진 피부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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