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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마르그레테 라몬 지음, 드라호스 자크 그림 최인자 옮김, 메리 셸리 원작 / 웅진주니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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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클래식 호러 소설은 단연,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두 작품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공포 소설과 영화들의 모티브가 된 시발점인 ‘프랑켄슈타인’이 세기가 넘도록 사랑 받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메리 셀리’에 의해 탄생되었다. 이토록 수준 높은 공포 소설이, 겨우 19살의 여성이 썼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이야 인간복제라는 말이 놀라울 것도 없지만, 당시로써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을 인간의 복제에 대한 문제점을 섬뜩하게 비판하며, 노골적으로 다루었다는 점 또한 매우 놀랍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지만 소설로 접하기는 처음이다. 소설을 읽기 전까지 나는 무지하게도, ‘프랑켄슈타인’이란 이름이, 박사가 만든 괴물의 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바로 괴물을 탄생시킨 박사의 이름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 이름부터 착각하고 있었으니, 그 줄거리와 감동까지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었다. 대략의 중심 틀만 알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한 가지의 이미지라는 편견 속에 자리해 있던 작품,「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영화나 입담을 통해 알고 있던 줄거리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이 바로, 시체보관소에 있던 사체들의 장기와 신체를 잘라 붙여 만든 ‘괴물’의 설정에 대한 부분이다.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의 일반적인 인식이라 한다면, 우락부락하고 끔찍한 모습을 한, 멍청한 짐승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관자놀이에 커다란 못을 꽂고 좀비처럼 돌아다니며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말도 못 하는 어리석은 악마쯤으로 여겼었는데, 원작에 나온 괴물의 이미지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괴물의 이미지와 판이하게 달랐다.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걸어 다니는 시체의 몰골을 한 괴물은, 지독한 외로움과 소외감 속에서 고뇌하는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스스로 인간의 말과 언어까지 습득하는 끈기와 높은 지능,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까지 지니고 있는 틀림없는 연민의 대상이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을 창조했으면서도, 두려워하며 멸시하던 조물주 프랑켄슈타인에게 복수를 하게 된다. 공포 소설이지만, 실제로 읽은 「프랑켄슈타인」은 묘한 슬픔과 우울함이 범벅이 되어, 서글픈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이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작품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미지가 180도 다르게 보인다. 인간에 의해 탄생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하는 인간문명에 대한 비판과, 위험천만한 인간의 복제를 작가는 미리부터 경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초의 본성이 절망스러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 것인지도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인간의 허황된 욕망에 의해서, 기하학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학을 걱정하는 작가의 모습까지 투영되어 있는 듯 하다.

지금까지 본 공포 소설 중 가장 안타깝고 애잔한 소설인 것 같다. 의미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귀도 없을 뿐더러, 여러 가지 강렬한 메시지가 깃든「프랑켄슈타인」은 매우 감동적인 고전 명작이다.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읽어 볼만한 책이지만, 다양한 연령의 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또한 책이 어찌나 예쁘게 제본되었는지, 보고만 있어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올 컬러의 내지에 화려하고도 점잖은 그림들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책 크기는 다소 큰 편이지만, 굉장히 예쁜 양장본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소장의 기쁨 또한 크게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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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여자, 돈, 행복의 삼각관계
리즈 펄 지음, 부희령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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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에게 있어서 ‘돈’이란 무엇일까? 돈을 적절한 방식으로 지배하며 살아야 하는데, 돈 앞에 눈이 멀어 돈에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재의 우리네 모습일 것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있어서 돈이라는 유혹의 손길은 욕구를 넘어선 생식의 본능과도 같다. 특히 가부적인 역할에 존중되던 남성에게는 돈은 권력과 직결되는 능력의 상징이라면, 언제나 그 아래 군림하던 여성들에게 돈이라는 존재는 더 없이 매력적이면서도, 극도로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회자되곤 하는, 감춰진 치부와도 같다.

여자들이 모이면 접시가 수십 장 깨어지는데, 그러한 수다의 파라다이스에서도 단연 돈 문제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여자라는 자체가 남자와는 다른 피가 흐르고 있고, 그 뜨거운 피 속 흐르는 질투와 시기심의 표출,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친구라고 해서 결코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민감하면서 가장 위험하게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 ‘돈 문제’를 굉장히 솔직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본서의 저자 ‘리즈 펄’은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의 여성으로써, 화목한 가정에서 아무런 근심 없이 하루하루를 남편과 아이, 쇼핑이나 여가를 즐기며 살아가던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하루아침, 남편과의 결별로 인한 재정적인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그제 서야 현실을 직시한 그녀의 경제관념 재수립이 부득이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십 명에 이르는 여성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이나 인터뷰를 통해 매우 사실적으로, 여성이 겪는 돈에 관한 고충들을 편안하게 풀어내고 있다.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파산의 두려움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내면의 불안요소라고 생각 된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의 문제는, 너무도 막연하다는 점이다. 지금은 이렇게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언제 내가 거리에 나 앉아 입에 풀칠도 못할 지경에 이를지, 그 언젠가가 정확히 언젠가 될지, 막연한 두려움의 근원은 만사가 너무 태평하다는 데에 있었다. 뚜렷한 목적의식도 없으면서 돈을 모은다는 자체가 현재의 나에겐 남의 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노후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절대 필요하지 않는 사치품을 필수품으로 둔갑시켜 스스로를 합리화 하고, 몇 년 후에는 나아지겠지, 라는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힌 나 자신을 발견했다. 본서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의 문제점 역시,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대책 없이 쓰는 버릇, 살아가면서 결코 필요하지도 않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사기 위해 아등바등 돈을 모아, 그 물건을 살 때의 만족감과 동시에 느껴지는 허탈감은 무엇으로 대체해야 하는 걸까.

안정된 기반을 위해 결혼을 결심하는 여성들 또한 근본적인 문제는 다르지 않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이혼의 위기에서, 자립할 수 있는 강인한 능력을 대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결혼으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 해결법은, 부자 되기 열풍과 로또의 열풍과도 같은 단락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자립할 능력이 없는 것을 여성 특유의 연약함으로 미화시켜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단 한번의 인생 역전을 노리며, 언제 올지 모를 ‘그 분’을 기다리며, 미용과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고, 미래에 철저한 준비는 자신도 모르게 은폐시켜 버리고 마는 여성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그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여성들 또한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 여자 남자를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다. 돈에 대한 일말의 욕심도 없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본서는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현실적인 고통과 그러한 문제점의 지적, 어쩔 수 없이 돈에 끌려가게 되는 여성들의 심리를 명쾌하고 아주 솔직하게 그려낸 책이다. 또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며 경제적인 독립과 노후까지 대비할 수 있는 자신감까지 심어주고 있다. 여성으로서 사회에 나와 돈을 벌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높은 이상의 벽과 물질적인 욕망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지 않고 중심점을 찾아 주는 자기개발서이다.

살아가면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파산에 따른 막연한 불안감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진지하게 성찰해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아직은 젊다는 이유로 너무나 불필요한 지출 목록에 투자를 많이 했던 나 자신을 반성 하면서, 돈의 위력과 막강한 힘에 지배되지 않도록 바르게 살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오늘도 쇼핑으로 허기를 채우며, 남편 혹은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는 불안정한 여성들에게 저자는 명쾌하게 한 마디 한다. 돈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다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이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세대를 막론하고, ‘여자’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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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사도의 편지 1 뫼비우스 서재
미셸 브누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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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와 진실.  


  솔직하게, 나는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다. 지독한 무신론자로 20년을 좀 넘게 살아오면서, 오직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 밖에 없다는 다소 위태로운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다고 당당하게 외치던 니체의 말마따나, 우주를 정복하는데 대략 50년 밖에 남지 않은 지금 21세기, 최첨단의 과학시대에, ‘종교’라는 주제가 툭 튀어나온다면 일단 피곤해지고 만다. 하느님 말씀도 좋지만,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믿음의 결과는 결국 의지하고 싶은 나약한 자신의 변명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간혹 소장하고 있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믿음이 가질 않았고, 이해할 수 없는 의문점들이 많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이견을 다는 분이 없었으면 한다.)

  이렇게 뼛속까지 무신론을 지지하는 내가, 기독교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도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도 매우 놀랍다. 종교에 무지한 관계로, 「13번째 사도의 편지」를 읽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단어나, 모르는 성경의 내용들이 나올 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최대한 바른 방법으로 문장의 의미를 해석코자 노력했다. 같은 장르의 스테디셀러「다빈치 코드」에서 보았던 비슷한 흐름을 간파하면서도, 추리 소설 특유의 몰입감은 언제나 동일한 느낌의 재미로 다가온다.  

  ‘카라바조’의 아름다운 그림, ‘성 마태와 천사’가 표지로 등장한 「13번째 사도의 편지」는 예수의 비밀을 둘러싼 벌어지는 추리 형식의 소설이다. 어느 날 로마발 특급열차에서 도서관 사서신부인 안드레이 신부가 살해당한다. 의문스러운 죽음을 필두로, 그의 절친한 친구인 닐 신부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온화한 해석학 교수이자 수도원의 사소한 규칙까지 어겨본 적 없는 모범적인 사제인 닐 신부가 온갖 위험을 무릎 쓰고, ‘13번째 사도’가 남긴 비밀의 편지를 찾으면서 사건은 점점 흥미롭게 전개된다. 물론 그를 제지하려는 바티칸의 방해공작이 이어지고, 닐 신부를 도와주는 든든한 친구들도 합세하여, 진짜 편지를 추적을 시작하게 된다.
 
  전반적인 흐름은 여느 추리 소설과 다르지 않다. 의문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는, 암호가 적힌 작은 쪽지. 그리고 선량하고 우직한 주인공과 타락한 종교인들의 추악한 모습까지…. 그러나 「13번째 사도의 편지」의 진정한 교훈의 목적은 기독교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본질적인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신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기독교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나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에 대한 의문을 품을 것이고, 더욱 공감하거나, 혹은 거부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개개인의 입장을 폭넓게 수용하면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정직한 소설이라고 생각 된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책에도 등장했다 시피, 그 비밀은 교회의 계급제도로 보호된 신앙의 본질을 다시 문제 삼을 수도 있는 위험한 문제일 것이다. 「13번째 사도의 편지」는, 최후의 만찬부터 예수의 행로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현재’의 닐 신부가 모험을 펼치는 내용이 교차적으로 등장해서 더욱 큰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화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유다’의 죽음은 자살로 귀결되었는데, 베드로가 살해했다는 이색적인 주장은 매우 파격적이라고 생각 된다. 또한, 한 사람의 종교인으로써 권력과 돈의 망상에 사로잡힌 변태 성욕자 ‘칼포’ 대주교를 비판하는 작가의 시선이 매우 따끔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퇴색되고, 점점 물질화 관습화 되어가는 교회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일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책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제법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기독교인이나, 비 기독교인에게 진중한 물음을 던져주는 책, 「13번째 사도의 편지」. 기가 막힌 반전이나 소름이 끼칠 만큼 쓰릴 있는 추리 소설은 아니지만,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만큼, 진중한 무게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성경을 빼 놓고는, 서구의 역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사실이니까, 나처럼 종교에 크게 의지하지 않는 분들도 한번쯤 읽어보며 여러 가지 의견들을 머릿속에 정리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작가의 이력에서 나타난 실질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생동감이 넘치는 소설이 탄생한 것 같다.     정치적인 야망에 눈이 먼 열두 사도들이 예수를 신격화하면서, 허울뿐인 평화를 외친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기독교의 본질은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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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30년 만의 휴가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공경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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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나의 친구에게 들은 여행 이야기 하나가 있다. 친구의 언니의 친구, 이렇게 멀찌감치 건너 건너서, 나와 전혀 인연이 없던 누군가의 여행기를 들은 것이다. 그 분은 3년간 직장에 다니며 착실하게 모은 돈으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꽤 오랜 시간 여행을 했고, 돌아와서는 넓은 세상을 보고 온 흥분 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했다. 3년간 모은 돈을 여행에 모두 써버리다니, 아깝지 않느냐고 주위 사람들이 물었는데도, 그 언니는 1원 한 푼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계속 넓은 세상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이런 위험하면서도 스릴 있는 일탈을 마음먹기는 결코 쉽지 않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자주 접했던 행위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보기는 처음이라, 그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굉장한 자극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나도 여행을 위해 모아뒀던 저금을 털어 과감하게 떠날 수 있을까?’이런 걱정들이 드는 동시에 그 분의 용기가 부러웠고, 그 분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 언니는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인생의 가장 귀중한 경험을 얻은 것에 만족했으리라…….

  「앨리스, 30년만의 휴가」의 저자도 그 언니와 마찬가지로 잊고 있던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본서의 저자,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두 자녀를 둔 50대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유럽을 돌아보기로 결심하고, 과감하게 근무하고 있던 신문사에 휴직서를 내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30년 만에 긴 휴가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여,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가 한창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던 그 여름 날, 나 역시 머릿속은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열심히 일했으면, 휴식이 필요한 법.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하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라면 복잡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피해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XX, ~~가다.’라는 식의 책들이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시점에서,「앨리스, 30년만의 휴가」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적절한 여행 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낭만을 알고, 사랑을 꿈꾸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냥 ‘여자’이기 때문이다. 떠나고 싶음에, 발길이 이끄는 대로 유럽 대도시를 돌며 여행을 시작 했지만, 하나씩 발견하게 되는 내면의 진정한 나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재미까지 독자들을 흠뻑 매료시키고 있었다. 혼자 떠나는 것을 망설이는 여자들에게 한 가닥의 멋진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오히려 혼자임이 편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모든 이들이 친구가 된다. 이런 간단한 진리를 깨우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앨리스가 발 딛고 서 있는 멋진 도시의 어느 한 구석,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성공한 미국 여성이라는 자신의 커리어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점을 배제하고도 ‘혼자’가 주는 이득이 의외로 많음을 깨달았다. 평범한 카페나 레스토랑에 앉아 있을 때, 자연스럽게 곁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녀들의 삶의 방식이 너무도 시원해 보인다. 스쳐가는 한 마디의 대화라도, 조국을 떠난 타지에서 이방인의 입장에 서 본다면, 얼마나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지. 

  한번쯤 꿈꾸어 봤던 특별한 여자의 삶. 열심히 일한 후, 과감하게 현실을 떠나 멋진 유럽을 여행할 수도 있고, 향수병에 걸리면서도 이탈리아 호텔 테라스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시며, 모델처럼 근사한 남자들을 훔쳐보기도 하고…. 영국의 작은 연극무대에서 「오만과 편견」을 보면서 환희를 느끼기도 하고…. 그런 사소하면서도 아늑한 여행 이야기가 이 책에 자주 등장한다. 보금자리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짜릿한 스릴까지 그녀가 거닐었던 거리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가장 애틋했던 이야기는 뭐니 뭐니 해도 ‘지베르니 행 기차’에서 만난 일본인 ‘나오히로’와의 운명적인 로맨스가 아닐까?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 생생한 나오히로와의 조심스러운 사랑에 대한 솔직한 고백. 여자의 입장에서 진실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 바로 그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일하는 여성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다 유럽으로 과감히 떠났던 앨리스. 그녀의 이름처럼 예쁘고 낭만 가득한 여행에 동참한 기분이 매우 즐겁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모르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면서 느껴가는 내면의 성숙함도 매우 부러웠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언젠가는 나도 정말 이 곳을 떠나보고 싶다. 그 생각만이 간절하다. 그리고 혹시 또 모르지, 나도 프랑스 여행 중에, ‘나오히로’ 같은 근사한 남자를 만나 여행 내내 ‘피가 뛰는’ 호사를 누리게 될지. ^^

아무리 멀더라도 방랑의 목표물을 보는 순간은 대단하다. 상상 속에 살던 것이 문득 손으로 만져지는 세계의 일부분이 된다. 그곳까지 산이나 강, 먼지 이는 길이 몇 군데 있든지 상관없다. 이제 이것은 영원히 나의 것이니까. - 프레야 - 2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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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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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네하라 마리’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이다. 생경한 작가의 이름을 듣고 처음에는 일본인 인줄 몰랐다. 어쩐지 유럽스러운(?) 작가의 이름과,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고 대강의 윤곽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글을 접하고, 기대 이상의 뿌듯한 수확을 맛볼 수 있었다.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수상이라는 대강의 정보까지 알지 못했더라면, 분명 「프라하의 소녀 시대」를 분명 잘 짜여진 픽션으로 오인하였으리라.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어릴 적 작가가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씌어진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단정한 성장 소설 같기도 하고, 기행문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참으로 애매모호한 장르의 책이다. 작가의 상상력을 배제한 ‘사실’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뿐이지, 격동적인 동유럽 근대사와 소녀들의 감수성이 절묘하게 융합된 멋진 장편 소설을 감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저자는, 1960년대에 아버지에 의해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로 이주하게 되면서, 프라하에서 5년을 보내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몸살을 앓고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공상정권아래 있던 세계 각국의 모습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격정적인 사회주의 시대에, 저자는 프라하에 있는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다.

  소비에트 학교라면 러시아에 의해 설립된 학교일 텐데, 왜 하필이면 러시아 학교로 갔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나중에 옮긴이의 말에서, 러시아어라면 일본으로 귀국 후라도 계속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소련 외교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외국 공산당 간부자제의 전용학교라 그런지, 특권층의 자제들이 심심찮게 등장한 것 같다.

  꽤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보고 싶다, 친구야’라는 비슷한 제목의 매체들이 많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친구를 찾는 전문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나더니, 연이어 방송에서도 ‘친구 찾기’ 붐이 일어나고 있다. 왜 갑자기 사람들이 오래전 연락이 두절 되었던 친구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을까. 바쁘게 살아가면서 잊고 살았던 유년의 친구들을 불러내서 지난 추억을 돌이켜 낸다고 무엇이 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현재의 삶이 풍요롭거나 지나치게 안정적일 때 보다는 ‘에구, 먹고 살기 힘들다…’, 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올 때, 더욱 지난 추억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지난 추억들 속에 낭만이 있고, 행복이 있고, 가득한 꿈이 있었기에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저자의 추억에는 어린 아이가 느끼는 마냥 편안하고 행복한 동심보다는, 격변하고 있는 시대에 따른 갈등과 유감들까지 지니고 있었다. 다른 시대를 산다는 것은 이런 걸까? 누가 나에게 13살 때 무엇을 하였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13살의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습은, 누가 일부러 지운 것처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나지 않는 그 때, 나와 같은 나이의 ‘요네하라 마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숙한 내면의 소유자였고, 곁에 있던 단짝 친구들을 걱정했고, 사회라는 울타리의 어두운 그늘을 발견했던 아이였다.

  나의 얄팍한 유럽사의 지식으로 동 유럽사를 보자면, 한 마디로 얽히고설킨 어지러운 거미줄과도 흡사하다. 세계의 역사에서도 유럽 전쟁의 역사는 너무도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피의 우범지대처럼 느껴진다. 마리는 전쟁에 의한 고뇌를 하는 것이 아닌, 단지 전쟁이 만들어 놓은 이념의 굴레에서 혼란을 느끼는 것이지만, 어쨌든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각국의 소녀들의 삶에 참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의 지배 하에 있으면서 우리가 느꼈던 울분을, 러시아의 지배에 있던 그녀들이 느꼈던 감정과 조금은 비슷할까….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유년의 갈망을 어느 날 화끈하게 해소할 수 있었던 요네하라 마리. ‘그리스,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의 세 친구들, ‘리차, 아냐, 야스나’와 함께 추억으로 떠난 여행이 너무도 즐겁고 감동적이었다. 50여국의 나라의 아이들이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로 모인 만큼 저마다들 제각각 애환 섞인 사연들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사연들을 특유의 서정미로 매콤하게 표현한 작가의 문체가 매우 인상적이다. 왠지 가슴이 울컥하고 내려앉는 기분이랄까…. 이미 고인이 되신 작가지만, 그녀가 남긴 멋진 작품들을 계속해서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번역서로 보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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