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젊음을 발산할 패기도 없고, 특별히 뭔가 하고자 하는 욕구도 없다. 그렇다고 일 자체를 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딱딱하고 지루한 회사보다는 좀 더 기발하고 재미난 곳에서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든다. 컴퓨터와 핸드폰 mp3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참을 수 없으며, 어디라도 이동할 수 없다. 저마다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를 쫓고 있다. 영화, 책, 음악, 쉼 없이 발산되는 매체의 유행. 아이디어위해 장초된, 앞으로도 창출해 낼 수 있는 미디어를 향해 미친 듯이 열광한다. 제자리에 있기를 거부하며 빠르게 돌아가는 네트워크, 든든한 백그라운드 없이는 출세하기 쉽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와 맞설 힘이 점점 소진되어 가는 우리의 젊은이들……. 허영이나 질투, 끝없는 추락과 절망과 조우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지금, 바로 여기 대한민국 서울이란 장소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20대의 자화상을 이토록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퀴즈쇼」를 읽는 내내 내 주변의 누군가를 탐색해 보았는데, 대다수가 이 작품의 화자 ‘민수’와 닮아 있다. 심지어 나조차도 이건 내 자신이 아닐까, 싶을 만큼, 김영하씨가 창출해 낸 살아 있는 캐릭터에 공감했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긴 가방끈이 무색할 만치 번듯한 직장 없이, 컴퓨터와 하루 종일 놀고 있는 주인공 ‘민수’. 스물일곱 살이나 먹었지만,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조차 알지 못한다. 부모 없이 외할머니의 손에 컸는데, 외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시자, 이 넓고 넓은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은 희망마저 사라진 기분이 든다. 딱히 내 새울 만한 것은 오직 퀴즈에 능통하다는 것 뿐. 민수는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상식이 풍부하다는 것 빼곤 무기력한 세상의 낙오자로 비춰지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젊은이다.

  지금 이 시대의 이십대 젊은이들은, 마치 컴퓨터의 아바타처럼 저마다들 개성은 틀리지만, 그들만이 갖는 분위기는 흡사하다. 무엇을 향한 반항인지도 모른 채 지루한 반항을 하며 기성세대들과 공방을 벌이는데, 그것은 아직도 그들이 순수하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단순히 철이 덜 들어서 정신 못 차리고 반항을 해대는 애송이일 뿐인 걸까? 너무 순수해서 오히려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젊음의 상징을 너무도 잘 지적한 작품이「퀴즈쇼」가 아닌가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막연한 허영의 삶을 선택하는 우리들. 가령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에 동화되거나, 게임 속으로 무한정 빠져 들어간다던지, 혹은 채팅방에서 만난 얼굴 없는 그(그녀)에게 연정을 품고 상상 속에서 사랑을 키워가기도 한다. 이것은 현재의 삶이 실패라기보다는 좀 더 나은 유토피아적 환상을 꿈꾸는 그들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혼란을 가중시킬 만큼 무겁지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주제. 빠른 전개와 기발한 재치. 일반상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퀴즈쇼」는 매우 즐겁고 유쾌한 소설이다. 소설 속 퀴즈를 하나씩 풀어 가면서 스스로의 무지함을 탄식하기도 했고, 간혹 맞추기라도 하면 민수처럼 희열에 들 떠 세상의 지배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퀴즈는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승자 아니면 패자가 되어 버리는, 혹은 살아남는 자 아니면 죽어야만 하는 자, 라는 무시무시한 법칙이 적용되는 게임이지만, 퀴즈는 바로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다. A인가 B인가 선택하는 사이에 판은 끝나버리고 나 아닌 상대방에게 우승이 돌아간다. 진로도, 삶도, 꿈도, 사랑도, 모두 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 작가는 이러한 미니어처 인생을 통해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방탕하지 않다! 새파란 하늘이 이토록 밝게 우리를 향해 방긋 웃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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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007-11-2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의 리뷰의 제목을 엔제리너스 테이블매트의 퀴즈쇼 광고에 나스카 이름을 넣어서 삽입할 예정입니다. 리뷰를 너무 훌륭하게 써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mind0735 2007-11-29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고에요?? 우와. 영광입니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