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호흡 (애니메이션 DVD (외전 포함))
뿡빵뀨 지음 / 디앤씨웹툰비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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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만큼은 아니었던것 같아요.이유는 너무 짧아서.... 솔직히 국내 비엘 애니시장 협소한건 알지만,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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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전 : 악몽일기
박승예 글.그림 / 책나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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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학창시절에 어느 선생님께서 꿈을 꾸고 나면 그 꿈의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억지로 잠에서 깨어 침대 맡에 놓아둔 종이에 꿈의 내용을 기록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꿈을 꾸고 난 후에 대부분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꿈의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비몽사몽간에 종이에 꿈의 내용을 적다니. 나로썬 대단하고 신기하게 여겨질 뿐이다. 그런데 <괴물전 - 악몽일기>의 저자 ‘박승예’씨도 악몽을 꾼 후에 그 내용을 기록한다고 한다. 학창시절 선생님 같은 분이 또 계시다니……. 저자가 지난 몇 년간의 기록을 멋진 일러스트와 함께 실어 책으로 출간했는데, 매우 참신하고 기발하다고 여겨진다. 누군가의 꿈의 내용을 훔쳐본다는 것은 묘하게 두근거리고,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비밀스럽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의 글인데, 꿈의 내용은 끔찍한 악몽도 있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나는 악몽은 물론이고 꿈을 꾸어본지가 오래되었다. 회사 일이 피곤해서 집에 돌아오면 늘 피로에 지쳐 곯아떨어지기에 꿈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자는 편이다. 자다가 깨어나는 일도 드물고, 꿈을 꾸는 일은 더욱 더 드물다. 어떤 꿈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오래전 꿈은 현실과는 전혀 동 떨어진 내용이었는데, 친구에 관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대부분 현실과는 맞지 않아서 잠에서 깨어난 후엔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악몽에 얽힌 일화가 전혀 없다. <악몽일기> 속에 등장한 몇몇 장면들은 피가 난자하는 잔인한 살인에 관한 내용이나, 의문의 소녀, 움직이는 손만 등장하는 공포스러운 부분도 있었고, 어지럽고 희한한 내용들도 있었다. 어차피 꿈이기에 그냥 스쳐지나갈 잠시의 추억에 머물 테지만, 악몽을 꾸고 난 후에 가라앉아 좋지 않은 기분들을 되새겨볼 수 있었다.


얼마 전 최근 개봉한 영화 <인셥센>을 관람했는데, 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인간이 꿈을 지배하게 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의식과 무의식간에는 어떠한 간극이 있는지, 또 얼마만큼의 깊은 연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악몽을 꾸는 건 불안정한 현재의 심리상태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인지 매우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꿈이 미래를 예지한다거나 꿈에 전적으로 의지 하는 건 미신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여겨지는데, 그래도 오랜 옛날부터 꿈과 관계해 현실을 풀어가는 해몽이나 태몽 같은 경우는 의심은 가지만 어느 정도 신빙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꿈에 대해 더욱 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꿈의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현실의 실수를 되찾을 수 있을까? 악몽일기 속에 등장한 글들을 통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는 꿈들의 조각이 현실과 어느 정도 연결이 되는 듯해서 조금은 섬뜩한 기분도 든다.


그림이 매우 인상적이고 강렬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을 매우 좋아한다. 공포, 혼란, 분노가 지니는 무의식의 충돌을 가장 잘 표현한 화가라고 생각하는데, 베이컨의 그림과 비슷한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인상적인 그림들이었다. 기발한 그림들과 악몽들의 추억. 요즘처럼 끈적끈적 불쾌감을 남기는 한여름과 매우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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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2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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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로 남을지도 모르는, 우리 지구와 우주의 최초는 어떻게 탄생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새벽은 어디에서 시작되며, 최초의 인류는 누구인지. 그리고 어두운 심연으로 가득한 이 우주와 수십억 개의 별들이 탄생된 역사는 누구나 한번쯤 궁금해 하던 질문이 아니었던가? 매우 철학적이고 심오해서 어렵고 난해하기까지 한 이 문제를 작가 ‘마크 레비’는 흥미진진한 소설의 특성에 부합될 수 있도록 재미를 선사하며 독자를 이끈다.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스토리라인의 전개가 매우 빠르고 유동적이다.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의 활약이 흡사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게 나타난다. ‘마크 레비’의 작품들 대부분이 영화화 되었다고 하니, 이 작품 역시 영화화 되는 것을 겨냥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특출하다. 

  주인공 ‘아드리안’은 천체물리학자이고, 그의 아름다운 파트너 ‘키이라’는 고고학자다. 두 주인공의 직업만으로도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슬쩍 감이 잡힌다. 키이라는 우리의 가장 조상이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에티오피아의 오모계곡에서 화석발굴을 하다가 기상이변으로 도중하차를 할 수밖에 없었고, 아드리안은 새벽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의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이서 별을 관찰 할 수 있는 칠레의 아타카마고원에서 일을 하다가 고산병으로 그만 도중하차를 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하던 일을 중단하고 연구비 마련을 위한 학술재단에서 논문을 발표하던 중 재회하게 되는데, 과거 첫사랑의 풋풋한 감정이 남아있던 두 사람이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의문의 돌멩이 하나 덕분에 큰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비슷한 두 주인공 아드리안과 키이라가 낭만 가득한 사랑에 대한 흔적을 찾아갈 법도 하지만, 알 수 없는 거대한 음모에 휩싸여 위험을 무릅쓴 채 검은 돌의 비밀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만 봐도 지금까지 종종 볼 수 있었던 ‘다빈치 코드’류의 소설과 매우 비슷하다. 모험과 스릴러가 로맨스와 결합되면서 흥미진진하게 독자를 이끄는 재미.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 있으면서 세계 각국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상세한 설명이 긴장감 속에서 속도감 있게 전개되기에 무언가 재미난 읽을거리를 찾는 독자들의 입맛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마크 레비’는 작품을 쓰기 전에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는 직접 찾아가 보고 사전조사를 완벽히 해 놓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의 작가가 그러하겠지만, 〈낮〉은 더욱 세밀하고 정교한 세계 각국 지역에 대한 설명이 있기에 더욱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다. 그런데 파리와 런던, 에티오피아, 칠레, 중국, 암스테르담, 그리스 히드라섬, 모스크바 등. 수 없이 많은 나라의 도시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정말 작가가 한 곳 한 곳 모두 가보았을까? 경비도 만만치 않고, 시간도 엄청나게 할애 되었을 텐데, 살짝 의문으로 남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작가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전해지는 이 도시들을 둘러보며 여행도 하고, 좋아하는 글도 쓰고. 또 그렇게 쓴 글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 보다 더 부러운 사람이 또 있을까. (순간 서평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워낙 출판사 책 소개 글에 과대광고가 많이 포함되어 궁금증은 일었지만, 크나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존스’에 비견될 수는 없겠지만, 그와 매우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 〈낮〉은 뜨거운 여름날 누군가의 모험에 동참해서 즐길 만큼 여유가 찾아온 날, 집안을 뒹굴며 읽어야 제 맛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가는 흔치 않은데, ‘마크 레비’의 소설은 그렇게 가볍지 않으면서 무겁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의 흥미와 감동을 선사해 준다. 그렇기에 부담 없이 누구나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과 영화는 일종의 대리만족인데, 늘 바쁜 일상에 파묻혀 있다가 푹 빠져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들을 만날 때 너무 행복하다. <낮>을 읽으며 나도 매력적인 여주인공 ‘키이라’가 되어, 잘생긴 ‘아드리안’과 함께 에티오피아에도 가보았고, 파리에도 가보았고, 런던과 중국을 탐험 했다. 천체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서 소설에 등장하는 다소 어려운 용어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 분야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한 작품을 읽고, 거기에 관련된 다른 책들을 좀 더 찾아보고 싶은 욕심. 바로 이때가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그리고 <낮>을 읽고 벌써부터 공상에 빠졌다. 이 책도 작가의 다른 책들처럼 영화화 될 수 있을까? 영화화 된다면 주인공은 누가 좋을까? 남자주인공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샘 워싱턴’으로. (연륜있는 교수 ‘아드리안’역을 하기에 너무 젊을지도 모르겠다.) 여자주인공은 스칼렛 요한슨.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기에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 것 같다. 그래도 나온다면 나는 꼭 보러 갈 것이다. (알 수 없는 회심의 미소를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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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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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너시스 2058」은 불의의 전염병으로 몰락해 버린 인류의 마지막 종착지인 어느 섬을 무대로, 2058년의 미래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미래는 우리의 과거와 닮아 있다. 플라톤(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름을 본떴다.)이 세운 새로운 공화국은 철저한 신분제와 강압적인 질서에 따른 억압된 사회다. 이성을 철저히 제어한 채, 관료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 같은 인간상을 보여주는데, 철저히 배타당하는 대상은 이성의 관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감상적으로 행동하는 인간들이다. 인간은 감성과 연민과 사랑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마음’을 만들어 내는데, 이미 기하학적으로 스스로 발달의 탈피를 보여주는 기계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단계를 넘어서, 인간과 함께 공존하여 인간의 마음을 흉내 낼 수 있는가, 하는 진중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요구한다.

  뉴질랜드 소설은 처음 접하는데, 요란한 광고를 배제하고, 순수 SF문학으로 본다면 일단 나의 기대감은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방식의 신선한 소재였다고나 할까. 처음부터 질의응답 형식으로 이어지는 소설의 방향도 신선했고,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숨겨 놓고 진실에 근접해 가는 과정도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켜주었던 것 같다. 철학자들이 가장 높은 신분의 위치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2058년에, 여학생 ‘아낙시맨더’는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을 보게 되는데, 처음부터 깜짝 놀랄만한 철학적인 향연으로 위트가 넘치는 대화들이 오고간다.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기계, 누구의 말이 과연 진실일지는 마지막까지 읽어봐야 결론이 나므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긴 한데,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책 띠지에 무지막지하게 큰 글자로 책의 마지막을 홍보하는 건 그다지 달갑지가 않다. 마지막의 반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더라면, 분명 이 책을 더욱 더 인상적으로 읽었을 것이다.      
 
  SF소설에 등장하는 미래는 대부분 암울하지만, 그 속에는 늘 희망이 웅크리고 있다. 아낙스가 매료되어 반해버린 역사 속 주인공 ‘아담’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 메말라버린 인간의 감성에 대해서, 인간이기 때문에 절대 포기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짓는다. 안드로이드 오랑우탄 ‘아트’와의 대담에서 아무리 발달한 안드로이드라도, 결코 인간과 동등해질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는 철저한 양면성을 가졌지만, 그 이유는 결코 헛되지 않고, 모든 삶에 의미는 부여되어 있다고. 그래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연약한 여인의 눈동자에 매료되어 상사에게 복종을 거부하기도 하며,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 모든 느낌과 감정을 생산해 내는 인간에게 아무리 훌륭한 프로그래밍이 된 안드로이드라 할지라도, 흑과 백을 명백하게 가려낼 수 있다.   

  “너는 인간의 수명이 짧다고 비웃었지만, 바로 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에 생명을 불어주는 거야. 나는 사유에 대해 생각하는 사상가지. 내가 호기심이고 이성이고 사랑이고 증오인거야. 나는 무관심이기도 하고, 한 아버지의 아들이고, 그 아버지는 또 누군가의 아들이지. 나는 우리 어머니가 웃는 이유이고, 또 그 분이 우는 이유기도 해. …(중략)” -132p

  이 책은 인간의 오만함을 무참히 비웃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근엄한 생태학적 활동에 대해서 멋지게 포장하여 찬양하기도 한다. 매우 짧은 분량의 페이지가 뜻대로 빠른 속도로 넘어가지 않는 이유는, 한 문장 한 문장이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사변의 논리를 대신하고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인간의 뿌리와 휴먼로봇의 뿌리가 어디였든, 저 높은 곳에서 그들을 만든 창조자가 누구였든 간에, 온 몸의 세포가 자라나 피와 뼈를 이루고, 사상의 체계에서 과감하게 역동적이게 행동하는 우리 인간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철학과 과학, 그리고 도덕과 윤리, 배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가진「제너시스 2058」을 읽으면서, 마치 퀴즈처럼 참여해서 마지막까지 놀라움과 신선함에 푹 빠질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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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아이들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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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럽다. 아프다. 끔찍하다. 구토가 이는 절망적인 소설을 만났다. 더 이상 추악할 수조차 없을 만큼 추악한 지금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파헤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글을 읽는 내내 울컥 했고, 분노 했으며, 나 역시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은 모른 체 하고 싶을 뿐이고,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뿐이다. 모욕적인 범죄와 폭력이 자본의 흐름이라는 억울한 누명 아래 합법화 되거나, 눈 감아 버리고 마는 모순의 굴레의 연속이다. 내가 왜 이 책을 읽었을까, 하는 후회가 샘솟을 만큼 <어둠의 아이들>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게 저려왔다.
 
  모든 것이 ‘돈’ 때문이다. 코흘리개 꼬마 아이를 단 돈 몇 십 만원에 팔아버리는 비정한 부모나, 그 아이를 사서 온갖 폭력을 행세하고,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만들어 어린 몸을 욕되게 만들어 결국에는 장기까지 팔아치우는 사람도, 그런 사실을 눈 감아 주는 군부대, 경찰, 정부, 모두 다 결국은 돈 때문에 악행을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돈이 뭐 길래, 돈의 완전한 노예로 전락해 인간이길 포기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일까? 아우슈비츠 이후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가장 악덕한 횡포를 접하고 한 동안 공황상태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가슴이 답답하고, 분노의 눈물을 삼켰다.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 없이 되뇌어 봤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에 더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이야기는 태국의 어느 북부 산악지대에서 여덟 살 난 여자아이를 판매하는 가난에 찌든 부모와 그 아이를 사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의 목숨이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며 아이를 두고 가격 흥정에 옥신각신하는 첫 장부터 간담이 서늘했는데, 역자가 번역하기조차 어려워 건너뛰었다는 2장에서는 더욱 더 가관이다. 아이가 팔려가서 어떤 수모를 당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2장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 노골적인 성 묘사에 치를 떨며 분노를 삼키자 그것이 현실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한참이나 놀라워 할 수밖에 없었다. 잔인한 호텔 업주들에게 학대당하고, 외국 손님들이 아이들에게 행하는 변태적인 모습을 어찌 감당해야 할까.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듯 너무 정교한 문장들을 읽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동남아 일대에서 벌어지는 매춘 관광을 들어본 적은 있는데, 아이들을 상대로 이토록 큰 군락이 형성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작은 영혼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팔려오거나, 인신매매 당해서 지하에 감금되어 하루에도 열 차례도 넘게 성 학대를 당하며 죽어나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런지.

  <어둠의 아이들>은 학대 받는 아이들과 그들을 관리하는 업주들의 횡포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다가,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해내려고 노력하는 복지센터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면 최소한의 관심은 필요하다. 자원봉사자들은 작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을 설득시키며 상황을 개선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돈에 굶주린 거대한 권력 앞에 무능하게 쓰러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학대 받는 아이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는 맺는다. 아무런 해답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이지만, 오직 단 하나 ‘희망’에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것이다. 나파폰, 게이코, 소오파…. 보이지 않는 희망을 믿으며, 보이지 않는 비명에 대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쓴 가슴을 달랬다.

  언제쯤이면 세상에 만연한 기아와 난민들, 가난에 지쳐 생살을 파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어질까? 부자들에게 먹일 가축들의 사료를 위해 이 세상의 식량이 절반 이상 할애된다고 한다. 아무리 살아봐도 잘 사는 사람은 잘 살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이 어두운 논리는 정말 해답이 없는 걸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라는 책을 읽으며 느꼈던 세상사의 부조리를 더욱 더 끔찍한 사태로 엇나간 욕심 많은 사람들을 보며 다시금 되새긴다. 부디, 하루 빨리 그 사람들이 가난에서 해방되어 아이와 냉장고를 교환하는 일이 없어져야 할 텐데. ‘소아성애자’라는 비정상적인 성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머나먼 나라까지 원정을 가서 아이들을 학대하는 일이 사라져야 할 텐데……. 슬픈 이 현실은 과연 어디가 끝일까? 너무도 불편해서 외면해 버리고만 싶은 소설 <어둠의 아이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으며 함께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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