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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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체라는 세상 아래, 개인에게 주어지는 삶의 짐은 간혹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힘겨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어렵고 고단하고 지치는 세상  살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투박하고 무거운 짐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힘겨운 인생의 고통들을 가볍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발견하게 되는 작은 진리는, 신께서는 정말 소중한 인생의 발견은 가장 마지막에 남겨둔다는 점이다. 슬프고, 지치고, 고단한 일생, 이러한 아픔들 후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생각지도 못했던 달콤한 행복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모리 에토’의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는, 누구나 겪게 되는 고단한 인생길에서, 반드시 발견하게 되는 행복의 미학을 알려주고 있다. 그 행복이란 결단코 크거나 화려하지 않고, 감동의 깊이를 측정할 수도 없을 만큼 작고도 소박하다. 겹겹이 쌓여있는 양파 껍질을 벗기듯 조심스럽게 들추어 낸 누군가의 인생은 우리가 결코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기가 막힌, 너무도 비밀스러운 행복들이 존재하고 있다.


  지금의 내 인생을 누군가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면, 지극히 다채롭고 상식을 깨는 신선함이 존재하듯이, 이 책을 통해서 바라보게 되는 타인의 인생 역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발견’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6편의 단편들 속에서 각각의 인생에 자신을 투영시켜 본다면 어느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막연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삶’이라는 괴리감이,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틈엔가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첫 번째 단편 ‘그릇을 찾아서’에 등장했던 ‘야요이’의 관심사는 오직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 하나뿐이다. 케이크라는 매개물로 인해 자신의 행복의 질과 미래의 운명까지 결정짓는다. 이러한 삶의 기준은 자신이 좋아하는 기호품을 넘어선 본인의 꿈과 연관 되어 있고, 이것은 각각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다. ‘강아지의 산책’에서 ‘에리코’의 삶은 강아지가 자신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수호신’의 ‘유스케’에게는 고전 문학, ‘종소리’의 ‘기요시’에게는 자신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하는 불상이 존재하고 있다. ‘X 세대’의 ‘동창들과의 동네 야구 약속’ 역시 잃어버렸던 과거의 추억을 상기시키면서 보다 행복할 수 있을 현실과 미래의 감동을 깨닫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의 제목이자, 가장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단편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를 읽고 나서는, 눈시울마저 붉어졌다. 코끝이 시큰거리는 감동을 느끼며, 깊은 사랑이라는 참 존재에 대해 탐구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손으로 만지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찾게 된다. 허상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감동이나 사랑의 원천 따위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인생의 모순을 파헤치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작은 사랑과 행복의 감동을 세심하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의 제목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를 보고 무슨 내용일까 상상해봤었다. 진부한 사랑 타령을 하거나, 또 반복되는 일상의 편린들을 읊고 있지 않을지 내심 걱정스러웠는데, 의외로 차분하게 전개되는 문체 속에서 아늑함을 찾을 수 있었다. 여섯 편의 단편들 모두 한결 같이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고, 특색 있는 주인공들의 이력과 다채롭게 펼쳐지는 인생사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고 있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던 어떠한 선입견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모두 다른 내용들의 단편들이지만, 다른 단편들이 모두 모여서 하나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고, 그 뼈대에는 고단한 인생 속에 꼭꼭 감춰져 있는 행복의 존재라는 달콤한 감동들이 붙어있었다. 단단하게 닫혀 진 문을 열고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내 인생의 숨겨진 비밀들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아마 아직 나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한 작지만 소중한 행복들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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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 2007-03-14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스카 님, 잘 읽었습니다. 모리에토의 장편소설 <검은마법과 쿠페빵>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모리 에토의 진정한 맛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겁니다.

mind0735 2007-03-1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마법과 쿠페빵>... 이 작품도 제목이 특이하네요. 관심이 팍팍 가는걸요~ 앞으로 꼭 읽어보도록 할게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