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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평점 :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 따위는 망각하고 싶은 게 모든 이들의 생존법이 아닐까. 그래서 모두들 대충대충 적당히, ‘오늘 하루도 무사히’를 외치며 살아남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들 밥을 먹고, 사랑을 하고, 야동도 보면서 세상을 향해 욕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내 하루의 끝이 절망일망정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저 쿨 하게 세상을 살고 싶을 뿐이다. <하악하악>은 이런 내 마음의 대변자라도 되는 듯 등을 토닥거려 주기도 하고, 웃음으로 배꼽을 날려버리기도 하고, 쓴 소리 한마디에 시무룩해지기도 했다. 파리가 두 손 모아 싹싹 비는 비굴한 인생을 살기보다는 차라리 고개를 외면한 채 내가 세상의 일인자라도 되는 으쓱함으로 벅차게 살고픈 마음이 든다고나 할까.
처음 표지의 그림을 보고 가상으로 그린 ‘용’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존하는 민물고기 ‘목어’라고 한다. 실제로 저렇게 특이하게 생긴 물고기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책 속의 수많은 종류의 민물고기 세밀화를 보고 더욱 놀라웠다. 생긴 것도 비슷비슷 별 특징도 없어 보이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고운 이름까지 지어져 있었다니. 하찮고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스쳐지나갔던 모든 사물, 생물들의 존귀함을 문득 떠올렸던 순간이랄까. 기분이 참 오묘했다. 멋진 세밀화와 이외수님의 수려하고도 유머러스한 문장이 만나니 뜻밖에도 찰떡궁합을 이룬다.
인터넷상에서 닉네임 하나 덩그러니 남겨놓고는 신원불명의 인물이 저지르는 악플의 만행에 대해서 경탄하는 글이 많은데, 누군가의 횡포로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도 있지 않은가. 눈여겨보지 못한 연약한 생물들에게도 저마다의 생존 이유가 있듯이 하물며 사람 된 도리로 타인에게 어찌 그런 언어폭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을까. 세상에 대한 한탄과 더불어 세대 간의 벽을 허물려는 작가님의 노력이 엿보였다. 감상적인 글도 있고, 지극히 평범한 한 문장 속에 뼈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젊은 층을 겨냥해 글을 쓴 듯 요즈음 유행하는 넷상의 언어들로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웃으며 넘길 수 있으면 된 것이니 그리 괘념치는 않는다. 발악하며 살기도 배부른 세상이지만 모두들 최소한의 노력을 하며 주제파악부터 하라는 충언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악하악 거친 숨소리 나게 살아봤던 때가 언제였을까? 웃다가 기절 할 만큼 재미있어 본적은? 대부분의 삶이 남을 비방하는 대리만족감으로 내 영혼의 풍요를 박살내고 있었다. 현실을 돌아보자. 웃으며 살면 더 없이 좋고, 하악하악 호흡이 거칠어질 만큼 열심히 살다보면 젊은 날의 보상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니.
감성마을에서 손님들을 맞으며 행복하고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글쟁이 이외수. 이분을 뵈면 언제나 외곬수의 광인이 떠오르는데, <하악하악>을 통해 그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인생의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더욱 기발하고 창의적인 문장들이 탄생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