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쉽게 하기 - 인체 드로잉 -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배운다! 스케치 쉽게 하기 1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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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만화에 관심이 많아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의 주인공을 따라 그려보곤 했다. 그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인체 드로잉 부분에서는 아주 초보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기초 지식 없이 무작정 주인공을 따라 그리다보면 엉성한 완성작이 나오기 일쑤이고, 더더군다나 만화 캐릭터에 사람과 똑같은 사실감이 있을리 만무하다. 눈의 크기는 얼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지나친 롱 다리에 한 뼘도 안 될 것 같은 가는 허리. 그나마 동작 같은 연습을 하기에는 좋았지만, 그림에 흥미를 잃어가면서 그마저도 퇴색해버렸다.

풍경보다는 인체가 그리기도 쉽고 매력적이라 잘 그려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정물이나 사람을 스케치 한 후 명암 넣기가 결코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역시 기초가 없는 나에게는 무리라고 포기부터 해버리고 만다. <스케치 쉽게 하기 - 인체 드로잉> 을 차근차근 훑어보면서 역시 인체는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어려운 미술의 소재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인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근육의 움직임과 관절의 부드러운 곡선을 잘 숙지해야 하는데, 인체 균형과 감각을 배우기 위해서는 정말 피나는 연습이 필요할 듯 하다. 저자의 말마따나 인체 드로잉에 필요한 3가지 요소, 눈, 가슴, 손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당연하지만 이것만이 해답이다.

상상력 보다는 사실적인 부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기에 인체의 균형이나 원근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람의 몸은 조물주에 의해 탄생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인데, 균형을 깨트리지 않고 멋진 인체 드로잉을 그릴 수는 없을까? 책에 나오는 신체를 나누는 등분법이나 여러 가지 명암 넣는 방법을 보면서 차근차근 연습한다면 언젠가는 나도 멋진 크로키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파리나 네덜란드의 거리의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을 크로키로 잡아내는 화가들을 보면서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언젠가 나도 그 자리에 앉아 미술의 기본이 되는 스케치를 훌륭하게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선 반드시 카메라와 스케치북, 그리고 연필을 챙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꾸준한 노력 없이 그리는 인체 드로잉은 역시나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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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의 삶과 욕망
박희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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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분신이 되는 그림은 한 점, 한 점, 모두 제각각의 사연을 담고 있다. 한 점의 그림이 탄생하기까지 그 속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나면 이미 알고 있던 그림도 다시 보게 된다. 대체로 100~400년 전에 탄생한 명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나 스캔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어 더욱 재미있다. 화가 본인의 정부를 모델로 내세우는 경우도 허다하며, 부르주아 계층이나 귀족들의 은밀한 사생활도 그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유명한 클림트의 경우도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들을 화폭에 담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매춘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상류층의 여인과는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고, 매춘부들과는 육체적인 사랑을 탐했다는 클림트의 이분 법칙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녀들이 없었으면 클림트의 신비로운 누드화도 존재하기 힘들었으리라. 상처 받고 아파하고, 때로는 타락한 매춘부나 치명적인 끌림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요부, 정숙한 부인, 청초한 소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만큼 명화 속에 많은 주제를 선사하며 등장한 주인공들도 없을 것이다. 남성들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여체의 아름다운 매력을 그림을 통해서나마 보고 싶은 것은 성별을 떠난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이라 생각 된다.

「명화 속의 삶과 욕망」은 아름다운 누드화 속에 담겨진 인간의 욕망을 쉽게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욕망(慾望)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의 대부분은 성(性)에 귀속되고, 어쩔 수 없는 본능을 자극한다. 터부시되는 관습처럼 성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지만, 본능에 의해 터져 나오는 성에 대한 호기심과 자극들은 이미 인간의 가장 내부 깊숙한 곳을 침투 되고 있다. 성서나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허구적인 에피소드에서부터 실제로 발생한 누군가의 스캔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어차피 생식을 해야만 하고, 관계 속에서 황홀경을 얻는 섹스라는 무한한 ‘욕망’을 얻어야만 한다. 그 속에서 사랑이 꽃피고, 가족이 이루어지고, 어여쁜 아이들이 탄생한다. 이것이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순서적으로 밟고 사는 우리네 삶이다.

명화들이 탄생한 시대도 다르고, 화가도 다르고, 그림 속에 숨겨진 사연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기쁨은 모두 동일한 무게이다. ‘몸’, ‘사랑’이라는 주제를 캔버스에 옮겼던 화가들과 그 그림을 보는 관객 모두 인간이기에 이유 모를 매혹의 욕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 누드화를 보며 문란 혹은 선정적으로 보이기는커녕, 숨겨놓았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럽다. 「명화 속의 삶과 욕망」에는 총 78점의 명화가 등장하는데, 익숙한 그림도 있었고, 처음 보는 낯선 그림도 있었다. 그림이 매우 작은 사이즈지만, 다양한 명화들과 그 속에 숨겨졌던 비화를 볼 수 있어서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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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눈물처럼, 그리고...
이숙 지음 / 청출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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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화보집이다. 그림 재료 중에서 사용하기 가장 까다롭다고 하는 컬러 잉크로 그려진 소박한 꽃 그림들과, 지금껏 작가가 살아왔던 삶의 무게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고스란히 알려주는 짧은 산문시들……. 「꽃잎처럼, 눈물처럼, 그리고……」제목처럼 꽃잎의 향이 살포시 코 속으로 전해지는 듯 했고, 눈물이 맺힐 듯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많이 아끼는 동생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면 이 화집을 주고 싶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저자 ‘이숙’씨는 매우 다양한 이력을 지니신 분이다. 자세한 프로필은 나와 있지 않지만, 아버지가 영국인이시고, 본인은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고, 첫사랑의 실패와 두 번의 결혼으로 인한 국적이 다른 두 아이를 데리고 산다. 여성으로서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의 입장에서 반평생 이상을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문화적 차이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을 겪고, 혼자 상처 받고, 아름다운 꽃을 보며 그 아픔을 달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녀의 시를 읽으며 참 외로운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방법 또한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로서 당연히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화합하고, 혹은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는 약하지만 강한 존재들. 살아가면서 꼭 한번은 느끼게 되는 철저한 고독 속에 고립되어 긴 한숨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올 때 읽는다면 위로가 될 수 있는 글이 많다.

잠들기 전,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읽는다면, 적어도 이 넓은 세상에 외롭고 힘든건 나 혼자 뿐이라는 서글픔은 날려버릴 수 있을 듯하다. 그녀의 말처럼 너무 힘들고 지칠 땐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내려다 봐야 한다. 나보다 더 절망에 사로잡혀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배부른 소리 그만하고 이제 그만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꿋꿋하게 일어나 다시 내일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지구가 마흔 아홉 번 바뀐대도 돌아오지 않을 그 사람이지만, 향기로운 꽃과 한 잔의 술이 그 빈자리를 채워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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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의 은밀한 거래 - The Secret World Of FIFA
앤드류 제닝스 지음, 조건호.최보윤 옮김 / 파프리카(교문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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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축구를 가리켜 지구상에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전쟁이라고들 한다. 총 22명의 선수들이 파릇한 잔디밭 위해서 공 하나를 가지고 경합하는 이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는 지구촌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어느 경기장 앞에서 환희에 들 떠 있을 것이다. 열광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광신적인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축구는 하나의 거대한 사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FIFA라는 축구의 핵이 자리하고 있다.

  어디를 가나 돈 냄새에 밝은 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축구를 사업의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바람직한 선택인가. 총질이나 피 튀기는 살인을 하지 않고서도 떳떳하게 남의 주머니에서 거대 자금을 굴릴 수 있는 돈 줄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셈이니, 양복 입은 넥타이 부대 마피아가 스위에서 둥지를 틀기엔 최적의 장소다.

  ‘블래터의 위원들은 진짜 마피아다. 부패로 가득 차 있고, 구단 내부의 음모와 마약, 스테로이드 거래, 자금 세탁, 도박 등으로 뒤얽혀 있다. 이것이 FIFA의 병이다. - 리비아 일간지 「알 자프 알 아크다」’

  FIFA회장 제프 블래터와 그의 수족들에 대해 이렇게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담은 기사가 있었다. 이들은 총질만 안 했다 뿐이지, 돈이 될 수 있는 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입으로 떳떳하고 밟힌 블래터가 성공을 위해 아벨란제에게 아첨해야만 했고, 다슬러에게 빌붙었으며, 안드레 겔피와 음모를 꾸며야 했던 과거. 그리고 그를 따른 충신들 잭 워너, 척 블레이저와 연합하여 스폰서를 기획하고 돈 세탁을 철저하게 (비록 많은 이들에게 들키기는 했지만) 함구하며 유지하려고 했던 번지르르한 회장 자리가 참으로 씁쓸하다. 그는 어디까지나 잔인한 독재자와 결탁하야 순수하게 축구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유혈을 서슴지 않았던 또 다른 독재자일 뿐이었다.

  작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을 보면서 한국 선수들이 유럽의 심판들에게 부당한 오류를 당하는 모습을 보며 캐스터와 해설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스포츠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데, 지금 판정은 누가 봐도 조작으로 보여 지는군요.’ 아무리 눈에 빤히 보이는 연극이라도 공중파 방송에서 이런 멘트가 나올 정도면 그 문제는 생각의 범위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겠다. 과거, 동계 올림픽 중계 사건에 대해 언급을 하는 이유는 축구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스포츠에서 횡횡하게 정치와 사업에 의한 부정부패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2006년 월드컵은 또 어떠한가? 한국 vs 스위스 경기는 참으로 많은 뒷담화를 낳았는데, 이해 못할 부심과 주심의 판정에 대해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터져 나왔던 말이 ‘FIFA회장이 스위스 사람이잖아.’라는 자조 섞인 말이었다. 한국 경기뿐만 아니라 모든 월드컵, A매치를 보다 보면 이해 못할 수준을 넘어선 심판의 행동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어딘지 모를 찜찜한 판정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게 된다. 돈 냄새가 절로 폴폴 풍기며, 이 경기에서 승리한 팀으로 인해 득을 볼 나라와 관계자들에 대한 계산이 먼저 나오게 되는 것이다.

  「FIFA의 은밀한 거래」의 작가이자 현직 스포츠 기자 ‘앤드류 제닝스’는 참으로 치밀하고 영악하다. 축구라면 환장하는 나라,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 기쁨 충만한 훌리건들이 설쳐대는 영국의 기자라서 그런가.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파헤칠 때가지 파헤쳐서 피파 조직 위원들의 위선을 뿌리 뽑자는 집념이 느껴진다. 블래터가 제닝스를 가르켜 ‘당신 지금 소설을 쓰고 있네!’라는 표현을 했는데, 본서는 정말이지 논픽션이 아닌 픽션 같다. 실제 발생하고 있는 사실을 지우고 읽는다면, 여느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이 따로 없다. 국제축구연맹의 점잖고 돈 많은 제프 플래터라는 마피아 두목과 그의 심복 똘마니들은 오늘도 각본 없는 영화를 찍고 있겠지. 그리고 그들의 비리를 파헤치고자 고군분투하는 집념의 사나이들이 바짝 뒤를 쫓고 있을 것이다.

  이 책, 「Foul! The Secret World Of FIFA」가 2006년도에 출간 되었는데, 제프 블래터가 2007년에 또다시(!!)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참으로 이해 못할 아이러니다. 아돌프 히틀러께서 아마 10년 정도 가장 높은 위치에서 독재자로서의 능력을 멋지게 발휘해주셨는데, 제프 블래터씨 역시 히틀러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와 다르게 축구라는 ‘합법적인 전쟁’을.

뇌물 비리를 전면 부인하던 제프 블래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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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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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히 날렵한 얼굴에는 검은 코와 날카로운 이빨이 있지만, 어둠 속에서는 갈색의 예쁜 눈동자가 수정처럼 반짝인다. 북극의 살인적인 추위에도 견딜 수 있는 멋진 은회색의 두터운 털외투를 걸치고 긴 다리로 꼿꼿이 앉아 있는 늠름한 늑대의 모습에 오래전부터 나는 매료되어 왔다. 늑대는 야생 동물 중 유일하게 일부일처제를 고집하고 있고, 씨족 위주로 5~10마리 가량 구성된 무리는 끈끈한 유대감에서 비롯된 놀라운 사회성을 이루고 있다. 무리의 리더는 탁월한 통솔력을 지닌 매우 용감하고 영리한 녀석이다. 늙어서 은퇴하지 않는 한 절대 자신의 가족들을 버리는 일이 없다. 새끼들을 기르는 어미는 사람의 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오직 새끼의 안전과 건강만을 염려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는 모습은 늘 나와 함께 있는 인자하신 누군가와 닮아 있다.

  야생의 세계는 오직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단순한 논리가 적용되는 예도 있겠지만,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면 감동과 놀라움이 더욱 더 만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바로 늑대의 예가 그렇다. 이 매력적인 동물에게 나는 오래전부터 매료되어 왔는데, 그 시발점은 웹서핑 하다가 우연히 시청했던 다큐멘터리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동물들에게 매력을 느끼기는 하지만, 특히 야생 동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늑대의 습성을 제대로 알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 기특한 영국 방송 덕택이었다. 어렸을 적 ‘시튼 동물기’에서 읽었던 ‘이리왕 로보’처럼 소름끼치도록 영리하고 멋진 늑대들. 일종의 자기 최면처럼 나에게 받아들여진 늑대라는 존재는 언제나 서구에서 경시하던 악마의 화신도, 인간을 잡아먹는 잔인한 동물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먹고 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인간과의 보이지 않지만 편안한 공존을 위하여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기를 갈망하는 약한 짐승일 뿐.

  「울지 않는 늑대」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캐나다의 동물학자인 ‘팔리 모왓’이 캐나다의 아북극 지역에서 1년가량 늑대를 연구하던 당시를 기념하며 썼던 책이다. 저자 역시 늑대는 그저 살인귀일 뿐이고, 이유 없이 순록들을 살상하여 멸종 시키는 무자비한 동물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늑대라는 동물에게 연상되는 이미지는 절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늑대 한 마리의 목에 몇 십 달러의 현상금까지 걸려 있어서 늑대를 죽여서 돈을 버는 전문 사냥꾼까지 만연하게 존재하던 시절……. 잔인한 이 동물을 연구하기 위해 얼어붙을 만큼 추운 북극에 온 저자는 조금씩 늑대라는 동물을 알아가며 늑대의 매력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마치 언젠가의 나처럼.

  논픽션이기에 더욱 생생한 그 때의 감동들이 밀려온다. 저자는, 눈으로 뒤덮인 낯선 지역으로 날아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에스키모들과 친해졌고, 늑대의 편견과 오해를 풀어가며 그들의 생활방식을 하나씩 하나씩 이해하고 알아 갈 때의 희열을 느낀다. 한 무리의 가족을 이루고 있는 늑대들을 연구하면서, 조지, 앤젤린, 앨버트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마치 동물이 아닌, 우리와 비슷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생명체를 바라보는 듯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풀어간다. 그리고 이유 없이 대량 살상을 일삼는 인간들을 보면서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었을 분노들. 우리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살상의 문화는 그저 환멸만이 가득한 서글픈 문명일 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인간과 짐승의 역할이 바뀐 듯 했다.

  늑대들의 그 고집스러운 우직함이 좋았다. 아니, 늑대뿐만 아니라 모든 야생의 세계는 그들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주어진 것만을 탐하는데 반해, 우리는 늘 지나친 욕심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던가. 필요 이상으로 먹고,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려 하고, 필요 이상의 즐거움을 찾다가 지금은 이 우직한 늑대라는 친구들을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들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던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인간 사회가 별 이상한 이유를 다 갖다 붙여서 파괴하려고 했던 이들의 세계는 결국 우리들의 잃어버린 세계일뿐이다. 울지 않는 늑대처럼, 우리도 우리들이 간직했던 소리를 잃게 될까? 그런 후엔 그들처럼 흔적도 없이 멸종되어 사라지지 않을까.

  모든 일에 오만한 결정권자가 제멋대로 내렸던 판단들이 정확하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과의 경계에서 지독한 피해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은 죄 없는 야생 늑대들뿐이다. 인간과 공존하며 자신들이 몇 만 년 전부터 터 잡고 살았던 작은 영역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에게 목청껏 울 수 있는 그 세계를 다시 돌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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