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유쾌한 가출 일기

허패의 집단 가출 - 허영만의 캐나다 여행 우보산행의 철학, 허영만의 이색여행 프로젝트 1 ㅣ 탐나는 캠핑 3
허영만 그림, 이남기 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출판을 기획하기 위해 캐나다 산행을 떠났다는 본문의 글을 읽고 솔직히 약간은 씁쓸한 기분이었다. 거의 대다수의 여행 서적들이 그렇겠지만, 어딘가 모르가 상업적인 냄새가 폴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보기에 그럴듯한 위선으로 포장한 말들도 있었을 테고,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거짓과 진실 사이의 위험한 줄타기도 있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패의 집단 가출 사건이 나에게 남긴 의미는 남다르다. 그저 자연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나라로만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던 것이 전부였던 ‘캐나다’라는 나라를 지금보다 한층 더 친근하고 가깝게, 그리고 자세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허패!!’. 우리나라 대표 만화가 중 한 분이신 허영만 화백과 허화백을 추종하는 8명의 멤버가 모여 캐나다로 산행을 떠나게 되었다.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모두 제각각. 단지 산을 사랑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똘똘 뭉쳤다. 산을 오르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하에, 결국은 험준한 로키산맥까지 진출하여 자연의 신비로움에 한껏 매료됨을 경험하게 된다. 완곡한 캐나다의 산을 오르며 느꼈을 희열과 탄성이 이 곳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면 과장일까? 풍부한 여행 사진과 생동감 있는 현지 소식에 나 역시 언젠가는 캐나다를 가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마저 충족된다.

  사실 캐나다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나에게 무척이나 뜻 깊고 아름답게 남겨져 있다. 옛날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 자주 비디오를 빌려가던 한 외국인 손님이 있었는데 그 분이 영화배우 뺨 칠 정도로 근사한 외모의 소유자셨다. 그 분의 국적이 다름 아닌 바로 캐나다. 우연히 월드컵 당시 한국에 왔다가 한국이 좋아 장기간 머물고 있다던 젊은 청년이었는데, 조각 같은 외모와 몸에 배인 따뜻한 친절이 캐나다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고품격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던 멋진 나라 캐나다는 나의 예상처럼 아름답게 신이 빚어놓으신 낙원임에 틀림없었다. 허패가 직접 거닐었던 캐나다의 황홀한 산과 현지 사람들의 동물을 보호하고 자연을 아끼며 보존 하려는 마음에서 나의 상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열흘간 시간을 내어 등산에 참여했던 9명의 사람들 속에서 깊이 묻어나는 사람 냄새를 맡았다. 함께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고, 한잔의 캐나다산 와인으로 피로의 여독을 풀고, 무성의한 햄버거 대신 취사도구로 밥을 지어먹는 재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들, 그리고 인생의 의미들. 그들 모두가 자신들 삶의 주인공이기에 만화 ‘식객’처럼 감동과 재미가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풍부한 사진 자료들을 보면서 캐나다의 숨 막히는 절경을 흠뻑 만끽했다. 만년설로 뒤덮인 산들, 야생동물이 뛰어놓는 국립공원, 수 없이 많은 호수의 신비로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촬영지들을 돌아보면서, 그 언젠가 내가 그 나라 위에 당당히 서 있는 꿈을 꾸어본다. 
     

서글픈 영혼을 위한 서러운 전주곡 ‘로맨틱한 초상’

로맨틱한 초상
이갑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책을 읽기 전에 항상 책의 날개에 적혀 있는 작가의 짧은 프로필을 습관처럼 읽는다. 「로맨틱한 초상」의 작가 ‘이갑재’. 처음 접하는 작가의 존함이지만, 사진 아래 적혀있는 몇 줄의 이력만으로도 얼마나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다 가셨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양한 인생 경험과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접했기에 작가가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인 소설 「로맨틱한 초상」은, 한 인간이 거닐었던 인생의 발자취이자, 장편 분량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다만, 작가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사이코는 아니었길 바란다.

우선 작가의 이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어렸을 적 간질을 앓았던 트라우마가 그대로 작용하여 성인이 된 이후에도 후유증과 정신질환에 몸살을 앓고 있는 주인공과 작가는 혼혈일체가 된 것처럼 보였다. 음악과 미술,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 또한 이 작품을 탄생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간혹 소설 속 주인공을 작가의 경험담을 고스란히 투영시킨 분신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소설은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해도 믿을 만큼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관심을 가지고 즐기며 파고들었을 일종의 유희를 문학이라는 장르로 탈바꿈 시켰기에 더욱 혼신의 힘을 쏟았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추리, 스릴러 소설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평균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평균 그 자체로 진행되는 스토리가 가장 매력적인 장르이기에, 특별히 머리 아프게 꼬아놓은 장치 없이 진행되는 사건의 전개가 매우 편안했다. 의사와 교수 등, 인텔리 그룹들 사이에 갑작스런 연쇄살인이 시작된다. 피해자는 모두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들이다. 이러한 의문 연쇄살인, 즉 ‘메뚜기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반장과 범인의 모습이 수시로 교차되며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책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대부분의 독자가 알아 챌 수 있도록 친절한 힌트를 주면서 시작한다. 그러기에 다소 긴박감은 떨어지지만, 풍부한 감성의 문체라든지 작가의 박식함에 탄복하며 작품에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칭찬을 하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매력은 이 소설 작품이 지니고 있는 사실적인, 지나치게 리얼한 가치에 있다. 한국 소설을 읽는 한국인이기에 더욱 큰 친밀함과 실감나는 상황묘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의 구절을 인용한 부분들, 범인의 정신적인 문제점, ‘납치-강간-살인-유기’ 라는, 기존의 추리 소설들에서 보여 지던 진부한 스텝을 그대로 밟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점을 배제하고 장르 문학이 가지는 고유의 음침함과 세련된 필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탄탄한 줄거리에 탄탄한 배경지식, 여름 한 철 읽기엔 아까울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나서 매우 기쁘다. ^^

근대 민주주의 1세대들의 부자 열풍

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부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운이 지독하게 좋아 한순간 일확천금의 대박을 얻은 사람들, 대대손손 뼈대 있는 가문 (소위 있는 집) 자손이라 뼛속까지 부르주아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 평생을 노력해서 땀으로 일궈낸 성공으로 자수성가 하는 사람들……. 이렇게 많은 부자들 중에서도 부자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는지, 혹은 없는지, 제각각의 좋고 나쁜 사연들을 모두들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럭키 경성」은 이러한 부자들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돈을 쫓다가 돈에 쫓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를 일화를 곁들어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일간지 한 귀퉁이에 실려 있는 작은 사진이나 기사들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을 바탕으로 탄생한 책이라는 점에 무게를 실어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벌어야 ‘돈’이라는 요물이 굴러들어오는지 몸으로 부딪히며 터득한 사람들이다. 돈 맛을 알고, 어느 정도의 돈을 벌고 나면 그 후는 쉽다고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관건이기에, 우리가 가장 궁금해 하는 ‘어떻게?’란 물음을 미약하게나마 알려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라는 서글픈 역사의 한 단락 속에서도 모던의 물결은 흘러가고 있었다. 근대라는 이름 속에 꽃피는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물결. 그 속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의 부동산 투기가 우스워 보일만큼, 노련한 두뇌로 개발지구의 토지를 매입한 김기덕에서부터, 현재의 주식과 비견될 ‘미두’라는 확률게임에서 승리한 반복창, 혼인한지 2년 만에 남편의 부고를 겪고 홀로된 몸으로 몇 백억 자산을 소유하고 고스란히 사회로 환원시킨 시대의 여성 백선행씨까지.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 같이 돈이라는 혈류가 흐르기라도 하는지 귀신처럼 재산을 불려갔다.

  그러나 대다수가 해피엔딩이 아닌 소위 쪽빡 신세로 전락한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기에 한편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악착같이 벌어봤자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할 텐데, 뭐 하러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악착같이 벌었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데, 저마다들 무슨 부귀영화를 그렇게 누리겠다고 돈이라는 요물에 집착하는 건지…. 그래도 세상 모든 이들은 말 할 것이다. 평생 쓰지 못해도 좋으니 한번 벌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그건 이기적인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고 싶으나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너무도 강력하게 원한다. 강한자의 권력과 명예 속에 움트는 돈이라는 요물을.

  근대 조선이라고 해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돈 되는 일이라면 저마다들 한 몫 잡겠다고 우르르 몰려가서 가진 재산을 탕진하고, 그 속에서 한두 명 나올까 말까, 대박 신화를 이끌어낸 사람들도 간혹 볼 수 있다. 성공이 보장된 투기, 무모한 도박, 땀으로 일궈 낸 승리까지, 돈을 벌기란 너무도 어려웠다. 그러나 부의 법칙에서 단 한 가지 배울 수 있었던 사실은, 제 아무리 많은 재산을 축적해서 부자 대열에 오른 사람이라도 그들 수중의 돈은 항상 제자리에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돈은 안주하지 않으며 더욱 큰물을 노리는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게 되는 것이 세상사의 법칙이다.  
    


 

‘빌 게이츠’ 식으로 성공하기

무엇이 빌 게이츠를 승자로 만들었을까?
샤오쭤 지음, 김락준 옮김 / 이스트북스 / 2007년 7월

  MS사의 회장 겸 사장 ‘빌 게이츠’는 12년 연속 세계 최대의 부호로 선정되고 있다. 과거의 록펠러가 울고 갈 정도의 재력을 지니고 있는 그이지만, 요즘은 욘(yawns)족의 수호성인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헝클어진 고수머리, 평범하고 수수한 옷차림, 그리고 언제나 여유로운 입가의 미소와 안경 너머의 주름 진 눈가에는 따스함이 느껴지는 사람. 도무지 재벌로 보이지 않는 이 편안한 남자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동시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상대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부의 상징 내지는 금전적인 형상의 이미지와 결부하여 연관 짓게 된다. ‘대체 얼마나 부자 길래? 대체 어떻게 벌었을까?’ 하는 물음. 실리콘 밸리의 대표 아이콘으로 인식되던 빌 게이츠를 닮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즐비하고, 모든 이들의 워너비로 삼고자 하는 그 탁월한 돈 버는 능력이 천문학적인 재산과 함께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나는 단순하게 그가 아주 부럽다. ……아 - 부럽다는 한 마디로는 도저히 부족하겠다. 부럽다 못해 질투로 범벅이 된 채로 그를 응시하게 됨은 어쩔 수 없다고 고백해야겠다.

  이역만리 떨어진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나도 그가 이토록 부러운데, 그를 곁에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사촌이 땅만 사도 배가 아파 일주일간 복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우리네 본성인데, 불과 서른 살에 억만장자가 되어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는 빌 게이츠를 바라보던 동창들의 기분. 막연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나보다 공부 못했던 그가, 지금은 나와 비교도 안 될 재벌이 되어 세계 컴퓨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제길!’

  「무엇이 빌 게이츠를 승자로 만들었을까?」는 빌 게이츠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동문, 친구, 동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우 짤막한 일화가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그를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 그런지 매우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초등학교 동창이 들려주었던 어린 시절의 빌은 역시나 총명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빌은 책을 매우 좋아했고, 무슨 일이든지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을 즐겼다. 단순한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들을 찾아 학습하며 공부를 즐거움의 원천으로 삼았다. 대부분의 천재들에게서 공통점으로 나타나는 총명함과 더불어 자신의 노력이 더욱 큰 빛을 본 경우이다.

  명문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에서 빌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전환기를 맞이한다.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컴퓨터’라는 획기적인 기계를 만나면서부터 변화하게 된 것이다. 컴퓨터라는 놀라운 기계는 하루 종일 그 앞에 앉아 중독되게 했고, 자신을 컴퓨터 광인으로 바꾸어버렸다. 당시로서는 전무하다시피 한 개인용 컴퓨터에 매료되면서 자신의 생을 컴퓨터에 걸기로 다짐한다. 컴퓨터가 21세를 주도할 가장 중요한 제품이라는 것을 선경지명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빌은 하버드 대학을 중퇴한 후 결국엔 하버드 동문이었던 ‘폴 앨런’과 MS사를 세우게 되었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컴퓨터의 75%에 ‘Microsoft’라는 소프트웨어 이름을 세기기에 이른다.

  컴퓨터의 영혼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룩한 사람. 기술을 다루는 천부적인 재능과 자신이 꿈을 위해 그 분야를 미친 듯 파고들어 업계 1위를 지속적으로 고수하고 있는 사람, ‘빌 게이츠’. 그의 성공담이 지독스럽게 화려하기에 이질감이 느껴짐은 당연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참 좋아졌다. 너무 잘나고 멋진 사람을 보면 응당 질투에 사로잡혀 배가 아파오기 마련이지만, 유독 빌 게이츠만은 ‘성공 할 수밖에 없는 열정’이 고스란히 눈앞에 보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응원하는 수밖에…….

  매일 아침 따뜻한 이불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가장 힘들다 고백하는 초거대 재벌의 수수한 말처럼,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분주하게 움직이면 기회는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신은 스스로 돕지 않는 자를 그저 방관 하고 말듯이.

  한창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청소년이 이 책을 읽어본다면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 이미 성공이라는 티켓에서 절반쯤 멀어져버린 성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한번쯤 자신의 뒤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만일 누구든 동창회에 나가는 것이 가장 큰 고역이라면, 지금부터라도 달라져보는 것이 어떨까? 빌 게이츠 식으로 살아가는 습관이 몸에 베인다면 적어도 후회하지 않는 남은 삶이 보장된 셈이니까. 

 

    

세상이 격리시킨 남자, 세상을 격리시키다.

아동 수집가 1
자비네 티슬러 지음, 권혁준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아동 수집가」는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이 작품에 집중하게 되는 장점을 가졌다. 범인은 여느 사이코들처럼 섬뜩하거나 잔인하지 않다. 철저히 이기적이기는 하지만 피 튀는 살육이 없기에 다소 얌전해 보이기까지 하다. 다만 외형적으로는 잘생기고 상냥한 평범한 이웃집 남자지만, 시커먼 내면은 썩을 대로 썩어버린 변태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굉장히 박식한 척 잘난 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고, 냉혹한 표정으로 칼 같이 빳빳한 카라 깃을 세우는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은둔형 외톨이의 이미지를 가졌다.

 주인공이자 범인인 ‘알프레도’라는 이 독일 남자는 동성애자이자 소아성애자이다. 귀엽고 예쁘장한 어린 미소년을 납치해 성폭행을 가한 후 살인을 하게 된다. 독일에서부터 이탈리아까지 총 6번에 걸쳐 살인을 계획하면서 단 한 차례의 단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결국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의하여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진실의 면모가 서서히 드러난다는 줄거리다. 아름다운 토스카나, 그 황홀한 숲 속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던 걸까.

「아동 수집가」의 주요 테마는 바로 ‘트라우마’다. 어린 시절 유일하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형, 그리고 그 형의 죽음으로 철저히 파괴되어버린 자아는 결국 또 다른 소년에의 집착을 부르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자기도 모르고 있던 자신의 성적 취향을 발견하게 되는 범인은 우발적 살인이 결국은 연쇄 살인을 이어가게 되었다. 세상 모든 소년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이 불행했던 것처럼 똑같이 불행해야 한다는 강박 역시 살인의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타인이 자신의 삶에 관여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세상으로부터 벽을 쌓고 지내지만, 정작 본인의 외로움이 가장 견딜 수 없었던 무게로 그를 짓눌렀다.

모든 사건의 연결이 부드럽고, 등장하는 캐릭터의 연출 또한 매우 꼼꼼하다. 한 명 한 명이 제각각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작가는 그들의 시점에서 완벽하게 상황을 그리고 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또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전환되는 배경에서 느껴지던 원인 모를 아슬아슬함. 범인이 누군지 뻔히 알고 있기에 더 재미있다고나 할까? 살인 과정의 치밀함 보다는, 범인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이 펼쳐가는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훨씬 더 깔끔하고 탄탄했다. 여름 밤, 조용한 계곡에 앉아 이 책을 읽어본다면 분명 팔뚝에 닿는 섬뜩한 소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