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만 더
하라다 마하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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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을 키우다보면 행복하고 기쁜 반면, 아기나 나름 없는 애견들의 뒤치다꺼리에 참을 수 없을 만큼 귀찮거나 짜증이 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이사 온 후로 개 두 마리를 마당에서 키우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사라졌지만, 일전에 살았던 아파트에서는 배변을 정해진 곳에 하지 않고 아무 곳에나 하거나, 눈에 보이는 온갖 물건들을 물어뜯는 경우엔 나도 모르게 절로 손이 올라간다. 한번은 퇴근하고 돌아온 이후 방에 있던 나의 모든 물건들을 다 꺼내서 물어뜯어 놓았기에 이성을 잃고 채벌을 가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올리면 그 때 심하게 맞았던 기억이 남아 있는지 본능적으로 먼저 몸을 움츠리는 모습에 참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현재 애견 두 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산책을 시킨 경우도 거의 없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하고 시간도 없어서 물과 사료를 챙겨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엔 잠자리에 돌아와 책을 읽다가 잠에 빠져들곤 했다. 주말에는 약속이다 뭐다 자꾸만 일이 생겨서 주말 역시 같이 놀아주거나 함께 있어준 경우가 거의 없다. 「일분만 더」의 주인공 ‘아이’를 보면서 가장 반성했던 점이 바로 이 점이다. ‘아이’는 여성 패션지 에디터로 일하는데, 그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리라’의 산책만은 하루 두 번씩 빠지지 않고 챙긴다. 그런데 나는 뭐지? 죽을 만큼 바쁜 것도 아니면서 귀찮다는 이유로 그렇게 좋아하는 산책 한 번 제대로 시켜 준 적이 없었다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원래 개를 좋아하고, 싱글인 입장에서 개를 두 마리나 기르고 있기에 「일분만 더」를 더욱 애착 있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주인공의 경우와 내 경우가 기가 막히게 맞아 들어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동시에 가슴 아프기도 했다. 책을 받고 하루 만에 뚝딱 읽고 난 후, 어제 밤 다짐 한 것이, ‘저녁에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강아지들 산책만은 반드시 시켜 주리라.’ 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우리 개를 데리고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숨이 넘어 갈만큼 흥분하면서 뛰어다니는 모습에 다시 한 번 가슴 한 구석이 아파왔다.

원래 정말 소중했던 존재는 그 존재가 사라진 이후 느끼는 법이다.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꼭 호강시켜 드린 다는 말을 무덤 앞에서 통곡하며 떠올리는 것처럼, 무엇이든, 어떤 존재든 간에 극한의 상황에 치닫고 나서야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리라’가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난 후에 ‘아이’가 흘렸던 눈물처럼 추억과 함께 다가오는 나와 함께 했던 애견의 모든 것들은 일상에서는 너무 소소했기에 한참 후에나 그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길 가의 작은 돌멩이, 개미, 흙, 풀, 꽃잎 같은 모든 사소한 것들의 냄새를 맡고 궁금해 하는 개들. 매일 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앉아 있을 그 모습이 오늘 따라 정말 눈에 많이 밟힌다.

현재 애견을 키우고 있거나, 키울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지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고 위해서나 오락을 위해서 키운다고 보기엔 애견을 입양하는 책임은 제법 막중하다. 애견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데, 우린 항상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다. 애견에게 주인은 다만 함께 걸어주고, 함께 놀아주고, 함께 웃어준다면 바랄 것이 없는 반면, 우린 항상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이제부터 하나씩, 하나씩, 내가 그들의 요구에 발맞추어 주기로 결심했다. 어제부터 매일 밤 애견과 산책을 하기로 한, 중대한 결심을 심어준「일분만 더」라는 소설에게 평생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회사 일에 바쁘게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일과 사랑, 애견이라는 딜레마는 너무도 힘들지만 달콤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엔돌핀이자, 삶의 이유인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펑펑 울었고,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중대한 결심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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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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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도 신’의 원작 소설을 읽기 전에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을 먼저 관람 했다. 원작과 리메이크 작을 볼 때면 매번 비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역시 비교 아닌 비교를 해야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작품 모두 매력과 장단점이 있는 듯 하다. 우선 영화는 권순분 여사의 자제분들이 모두 방탕하고 이기적으로 그려진 반면, 소설에서는 도시 여사의 자제분들이 세상물정 모르는 단순함이 있는 반면, 어머니의 구출을 위해서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참여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아무래도 소설 쪽이 뭔가 더 가슴이 남는 진지함이 있다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가볍게 즐기기엔 영화도 추천할만하다.

「대유괴」의 간단한 소개문 개요를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바로 이 작품의 1979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된 소설임에도 긴박한 상황이나 세상 돌아가는 정서가 지금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핸드폰도, 컴퓨터도 없던 그 시절,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세상의 모든 미디어로 장악하고 있을 무렵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현재 난무하는 초특급 과학수사보다 더욱 정교하고 화려한 수사 방식에 매료되어 흥미롭게 푹 빠져들 수 있었다. 뭔가 허점이 있을 법도 하지만, 수사적인 두뇌가 발달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들의 완전 범죄 중, 의문점이 남았던 경우는 없었다.

소설의 설정부터가 재미있다. 인자하시고 지혜로운 80대 할머니와 어딘가 모르게 초보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풋내기 유괴범들이라니……. 게다가 할머니가 얼뜨기 유괴범들에게 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인질극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이 매우 신선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건실함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인 도시 여사를 비롯해서 겐지, 마사요시, 헤이타, 이카리, 미스구……. 순수하다 못해 미련해 보일 만큼 사리사욕을 챙길 줄 모르고 심성이 착하다. 착한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라서 그런지 몰라도 범죄 자체도 그리 밉지가 않다. 당시 100억 엔이라면, 지금의 환율로 따지자면 더욱 더 천문학적인 수치가 될 텐데, 너무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돈에 대해 무감각해진다고나 할까.

간혹 재벌들의 횡령 사건을 접할 때 마다 한 마디 욕을 하지만, 솔직히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큰 욕심이 생기는 법이니까. 100억 엔이라면 평생 먹어도 못 먹을 라면을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제트기를 두 대나 살수도 있다. 돈은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분명 소설이기에 우스개로 넘길 수 있는 유괴사건이지만, 「대유괴」는 세상에 존재하는 일부 몰지각한 재벌들에게 가하는 작가의 따끔한 충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더불어 노인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사람의 몸값을 금액으로 측정했을 때, 과연 얼마의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라는 윤리적인 문제까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듯 누구나 저마다의 생명은 자신이 느끼는 가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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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쉽게 하기 - 투명 수채 기법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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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렸던 수채화는 하나 같이 엉망이었다. 어떻게 된 게 중,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은 수채화에 대한 기초조차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놓고 무턱대고 ‘그려라!’라는 명령만 내렸으니,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어렸을 적부터 미술 학원을 다녀 꾸준한 교육을 받은 친구들이 그린 수채화는 근사한 반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유아기 때 미술 학원을 잠깐 다녔던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미술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수업 시간에 풍경화를 그린답시고 야외로 나가 교정을 그릴 때 내심 잘 그리고 싶어서 이런 저런 색을 섞어 스케치북에 담아 봐도 붓은 왜 내 맘을 그리도 몰라주는지 언제나 좌절감만 맛보고 실망을 해야 했다. 혼자만의 취미로 간혹 그림을 그려보곤 했지만, 약간의 재능을 믿고 지나치게 오만했던 자존심에 차마 내 실력을 솔직하게 판단 내리기조차 두려웠었나 보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 언제나 그림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보게 된 「수채화 쉽게 하기」는 수채화에 대한 나의 막연한 두려움을 씻어주었다.

기초. 그야말로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어보고 처음으로 실감했다. 물감과 파레트, 스케치북, 붓, 물통 등을 선별하는 방법, 기본 색채를 옮기는 방법 등을 자세하게 읽어보면서 기본부터 잘 습득해야지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올 수 있음을 깨달았다. 물로 색의 농도를 조절하는 어려운 수채화지만, 두 가지 색을 혼합하면 그만큼 다채롭고 풍부한 색감을 찾아낼 수 있다. 물과 물감, 그리고 붓. 이 삼중주의 하모니는 미술의 위대함에 새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되는 최상의 아름다움인 듯하다.

기초 드로잉부터 인물, 풍경, 동물을 그리는 고난위도로 넘어갈수록 뿌듯해 할 내 자신을 떠올리면서 지금부터 찬찬히 수채화 연습을 해봐야겠다. 새하얀 여백을 모든 색의 물감으로 빽빽하게 채워야 한다는 중압감을 떨쳐버리고, 여러 가지 기법을 활용한 나만의 붓 터치를 익힌다면 굳이 관습에 얽매인 큰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늘 문득, 가까운 산으로 가서 모노톤으로 변해가는 가을 풍경을 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수채화를 그린다면 챙겨야 할 준비물이 제법 많지만, 아름다운 야외에서 직접 풍경화를 그려본다면 투명 물감이 이루어내는 색에 동화되어 그쯤의 수고로움은 금세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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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101가지 이야기 - 누구나 알아야 할
프레데만 슈렌크 외 지음, 배진아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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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역사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오류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46억년이나 되는 지구의 역사. 46억년이라는 엄청난 숫자는 오히려 감각이 상실될 정도로 천문학적 수치인데, 이 또한 지난 100년 사이에 밝혀낸 사실의 일부이다. 지구의 빅뱅에서 시작해 고생물 화석의 등장까지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밝혀진 사실들이 대부분은 신뢰할만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대략 50년 후면 우주가 탄생한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진다고 하는데, 그 때까지 인류의 우주 탐험은 계속 될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지구와 우주’ 백과사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자주 보내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생물은 바로 삼엽충인데, 통통한 몸과 커다란 등이 마치 번데기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공룡이 지구를 장악했던 백악기와 쥐라기 시대도 내가 좋아하는 시대 중 하나이다. 만약 대대적인 지각변동으로 인한 대륙이동과 운석의 충돌, 빙하기의 도래 등이 없었다면 지금도 지구는 과거에 살았던 주인들이 계속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인간까지 출연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거대한 육식공룡이 지구를 장악하고 있었겠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짜릿하다.

과학은 어렵기도 한 반면 정말 재미있기도 한 분야다. 과학에 역사가 합쳐져 지구과학이 만들어졌으니, 이보다 더 흥미롭고 매력적인 과목이 또 있을까 싶다. 진화론이나 인류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지만 많이 어렵고 난해하기도 해서 늘 책 선택을 신중하게 하게 되는데, 「누구나 알아야 할 선사시대 101가지 이야기」는 일목요연하고 최대한 일반인들의 수준을 고려해 쉽게 편집한 책으로 여겨진다. 마치 독자에게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 라는 질문을 던지듯 지겨울 사이 없이 간략하게 등장하는 사진과 설명 등이 매우 돋보인다. 이렇게 다양하고 세심하게 선사 시대를 나뉠 수 있는 건지도 처음 알았고, 그토록 신비로운 생명체들로 북적거렸던 과거의 모습도 쉽게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만약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이라고 친다면, 인류의 진화와 함께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그 광범위한 분량의 세계사나 국사는 겨우 ‘마지막 1초’에 해당된다고 하던 ‘스티븐 호킹’의 말이 떠오른다. 46억년이나 되는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짧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길었던 지구의 수명을 오염으로 제멋대로 깎아버렸다는 죄책감 또한 느껴야 한다.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신비로운 생명들로 가득했던 선사시대를 살펴보고, 또 대재앙이 왔던 원인들을 면밀히 살펴본다면 불안정한 환경으로 둘러싸인 지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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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은 스타일이다
전지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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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만의 수다란 참으로 즐거운 것이다. 보통 두세 명의 여자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마지막으로 카페에 앉아 하루 종일 수다를 떨어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고 너끈하기만 하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입에서 단내가 나며 입 속이 바싹바싹 타 들어가도 수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다. 그리고 모임에서 유독 시선을 끌며 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들어주는 쪽이 있다. 아마 이 책의 저자는 전자에 해당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발랄하고 즐거운 수다에 동참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조용히 들어주고 있었으니까.

아직 노처녀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니지만 곧 있으면 나 역시 서른 줄을 바라보며 노처녀 딱지에 괴로워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주위로부터의 압박이 가장 거셀 것이고, 원인 불명의 자괴감에 힘들어하며 수 없이 남은 권태로운 일상을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런지 골머리를 앓게 될 터이다. 독신주의를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기를 쓰고 상대를 찾아 기필코 결혼이란 것을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 따윈 버린 지 오래다. 혼자 살면 사는 것이고,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하면 그것도 좋은 것이고. ‘반드시’라는 명제가 사라져서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다. 요즘은 여자들도 바빠서 서른 넘어서 결혼 많이 하더라, 라는 소리를 남 얘기처럼 나 자신에 통용시켜보곤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은근슬쩍 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혼자 살면 왜 안 되는 걸까? 안정적인 가정을 위해서? 2세를 낳아 종족을 번영시켜야 하니까? 아니면 단순히 인간이란 동물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혼자라는 짐이 주는 외로움을 견뎌낼 재간이 없으니까? 이런 교과서적인 이유가 있는가 하면, 단순하게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결혼을 선택하는 여성도 제법 많은 듯하다. 반드시 남들과 똑같이 살 필요는 없는데, 이도저도 말고 평균으로 살아가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어른들 말씀에 귀기울여볼 필요도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도 쭈욱 싱글 여성의 삶에 동참하고 싶다.

화려한 싱글은 화려할 수 없는 싱글들에게는 죄책감만 떠안겨주는 단어라 할지라도 스스로 자신을 싱글이라는 감옥에 가두지 말고, 그저 삶을 사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인식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싱글은 스타일이다」의 저자가 쉴 새 없이 달변을 토하며 혼자 살거나, 혼자 살기를 원하는 여성에게 주지하고 있는 말 역시 이것이다. 자신이 사는 방식을 선택하되, 후회는 금물이며 되도록 혼자라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또 나아가 자신이 사는 방식을 존중하고 사랑하자는 것. 비록 매달 엄청난 카드 고지서를 공포영화보다 더욱 혐오하고, 지인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이 가시방석이 될지라도 말이다.

싱글이라고 해서 반드시 화려할 필요는 없다. 싱글 여성은 능력이 좋고, 미인이고, 자신의 일을 가정을 꾸리는 일보다 더욱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서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쿨하게 살아가는 것.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등이 간지러울 때 시원하게 벅벅 긁어줄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토끼 같은 자식들이 없다는 점만 다를 뿐.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별 게 있겠는가? 오히려 마음껏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최대한 고독을 즐겁게 다스리면서, 그렇게 다른 누군가에게 향해야 할 사랑을 자기애로 100% 승화시키는 일 또한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스타일리쉬한 일러스트와 그녀의 화끈한 입담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으로 안 그래도 자유분방한 더 자유분방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커다란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프리랜서가 불안정한 박봉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쇼핑목록을 보니, 적어도 내 연봉의 두 세배는 될 것이 분명하기에 어쩐지 슬슬 질투심에 배가 아파오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 어디를 가나 여자와 남자는 고유 분모를 포함하고 있기에, 그녀가 느끼는 일상의 알레르기와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아드레날린에 대해서는 심각한 동감 표를 던지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성냥처럼 말라비틀어진 모델 같은 몸매를 선호하는 이 세상에 저주를 날리면서 오늘도 묵묵히 치즈 케이크와 시럽 듬뿍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있을, 애인 만들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쓸데없이 눈만 높아 웬만해선 성에 차지 않는 남성 편력을 가진, 나와 비슷한, 혹은 나와 똑같은 이 세상 모든 싱글 여성들. 화려하진 않지만 조금은 화려해 지고 싶은 날, 내달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갈 카드 고지서를 무시하고 사고 싶었던 쉬폰 원피스와 높은 하이힐을 쇼핑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나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며 세상을 바라본다면 혼자든 둘이든 그렇게 외롭지는 않지 않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의를 가지고 매달릴 수 있는 취미생활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 그리고 펑펑 울고 싶은 날 불러낼 친구를 반드시 만들어 둘 것. 마지막으로 언제든 챙겨서 어디든 떠날 수 있은 커다란 여행 가방을 마련해 두는 것이 싱글녀들이 지녀야 할 십계명 중 최우선 순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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