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N.H 클라인바움 지음, 한은주 옮김 / 서교출판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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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대학 진학에 대한 주위로부터의 지나친 기대에 비롯된 중압감이 사무치게 힘이 들어서 한번쯤 자살을 꿈꾸어 본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집이야 워낙 무관심 일색이었으니 내 개인적으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해 본 경험은 별로 없지만, 일부 부모님의 경우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요즘은 말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영어다 뭐다 ‘공부’란 것을 주입시키고 있다. 이제 막 걸음마 뗀 아이에게 유학을 보내 공부를 시킨다. 징그러운 입시 전쟁, 불법 과외, 사교육비라는 명목의 천문학적 금액. 이쯤 되면 ‘도대체 요즘 애들은 숨 막혀서 어떻게 살지?’ 라는 생각부터 든다.
 
  그런 요즘 아이들에게 ‘당신에게는 청춘이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죠?’ 라고 물어본다면 과연 그 아이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죽도록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갔어요. 보세요. 그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요.’ 이렇게 대답하며 미소를 지을까. ‘하루하루가 죽고 싶은 날들이었어요.’라고 대답하며 울상을 지을까.
  ……그러지 말고 현재를 즐기세요. ‘카르페 디엠!’ 인생을 독특하게 사세요.

  내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쯤으로 기억된다. 영화를 보며 긴 감동의 여운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다. 여전히 잘생긴 에단 호크의 풋풋함에 기분 좋고, 정말 좋아하는 배우 로빈 아저씨의 구수한 눈가의 주름이 편안하게 마음을 열어준다. 미국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를 훔쳐보며 대리 만족도 느꼈고, 동시에 안타까움에 입술을  깨물기도 했었다.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동을 이어받고 싶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책은 영화의 원작이 아니라 영화의 각본을 새롭게 각색해서 발표한 소설이다. 그러기에 영화와 내용은 동일하고, 영화의 감동보다는 못했지만 지난날의 추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오직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기 위해 존재하는 명문 사립 고등학교 ‘웰튼 아카데미’. 밝고 활기찬 생명력 대신 엄숙하고 경건하다 못해 살풍경하기까지 한 새 학기와 함께 답답한 기숙사 생활이 시작된다. 명문대를 진학하기 위해 존재하는 명문고의 2학년생 토드, 닐, 낙스, 달튼, 믹스, 카메론, 피츠는 서로의 유대감을 쌓으며 살인적인 학업과 시험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국어 선생님 ‘존 키팅’은 획일화된 교육에서 벗어나 창조적으로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자긍심을 열어준다. ‘키팅’이라는 괴짜 선생님은 읽지 않아도 무방한 딱딱한 논문을 찢어버리라고 명령하는가 하면, 하라는 공부는 않고 학생들과 농담과 진담인지 모를 아리송한 대화들로 수업을 채워가기 시작하는데…….

  키팅 선생님은 왜 너의 미래를 타인에게 의탁하는지의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스스로 꿈을 창조하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큰 환희를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일을 지금 찾아 한다면 오늘을 마치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하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죽고 나면 행복했던 기억만 안고 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기며, 또 현재를 사랑하며, 기쁨으로 충만 된 당신만의 세상을 설계하라는 멋진 가르침.

  어쩌면 우리는 죽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뜻하는 바가 그렇다. 죽어야만 정회원이 될 수 있다는 클럽 ‘죽은 시인의 사회’는 살아감을 최우선으로 여기 되, 죽은 후에야 진정한 나 자신이 완성된다고 보고 있다. ‘문학’, 그리고 ‘시’가 주는 평탄한 아름다움. 언어라는 유희가 가장 절정으로 빛나는 행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우리보다 똑똑했던, 그리고 우리보다 오래 살았지만 이미 죽은 시인들의 메시지를 읽어보기를 바라고 있다.

  키팅 선생님이 읊어준 ‘월트 휘트먼’의 시는 오늘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우리는 구더기의 밥이 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그러니 섬광처럼 흘러가는 그 짧은 순간들을 결코 헛되이 여기지 말며, 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해보면서, 현재를 즐기며 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나도 아름답게 살고 싶다. 오늘을, 그리고 내일의 오늘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죽은 시인의 사회」는 지금도 학업에 분투하고 있을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 어제도, 내일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오직 그대가 서 있는 지금의 현실.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 어떤 미래도 행복을 보장할 수 없으며, 행복할지언정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기 힘들다.

  장미꽃 봉오리를 따려면 지금
  시간은 언제나 말없이 흐르고
  오늘 이렇게 활짝 핀 꽃송이도
  내일이면 시들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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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 지친 내 삶에 찾아온 특별한 행복
로저 하우스덴 지음, 윤미나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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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다.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 왜 시가 생각나는 것일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라고 위로하던 어느 위대한 시인의 다독거림이 있었기 때문일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인생의 등불이 되어 힘이 들 때 어깨를 다독여 주는 시 문학의 위대함을 새삼 절감해 본다.

  여느 자기 계발서 와는 달리「오아시스」는 ‘시’를 통해 내면의 자아와 대화를 시도한다. 힘들고 지칠 때, 문득 왜 사는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 스스로에게 던지며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총 10편의 시는 모두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귀한 작품들이다. 생소하기에 더욱 신선하고, 운치 있고, 희망을 버릴 수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가혹하게 당신을 바꾸려 드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는지,
  여기가 내 자리라 말하며
  단호한 눈빛으로 뒤돌아볼 수 있는지.
 
  위의 시는 ‘데이비드 화이트’의 「자화상」 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이토록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세상이라는 중압감을 견디며 나란 존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우리는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며 사회를 바라보는 경향이 만연한 듯하다. 우선은 내 자신을 알아야 하는데, 내 자신이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무엇을 열망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직시하지도 못한 채 그저 가볍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당신에게 이 세상은 오락거리일 뿐인가요?
  당신은 바다에 몸을 담근 채,
  공손히 양 옆으로 비켜서는 물들을 본 적 없죠.
  당신이 마치 잔디인 것처럼
  잔디와 함께 누운 적은 있나요?
  검은 도토리 너머 허공으로,
  날개를 펼치며 뛰어든 적은?

  위의 글은 ‘메리 올리버’의 「들어가요! 들어가라니까요!」의 문장들이다. 이 시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단조로운지, 얼마나 과신하며 하찮게 여기고 있는가를 조용하게 질타하고 있다. 바닷물과 잔디, 하다못해 도토리 하나까지 자연이란 이름의 위대함으로 세상을 지키고 있는데,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쩜 이렇게 단조로울까. 무엇을 찾고자 하는 열망도 없이 무엇을 이루겠다는 노력도 없이, 그저 가볍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던 내 스스로의 양심이 따끔거려올 정도다. 정말, 어쩌면 세상은 나에게 그저 가벼운 유희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고 소리치고 있는 또 다른 내가 다른 나의 자아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오아시스」를 읽으며 마치 명상을 하는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평소 접할 수 없었던 시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조금은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인간은 침묵 속에서 가장 솔직해지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꾸준한 성찰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부가 되었든, 건강이 되었든,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힘이 되었든, 언젠가는 ‘행복’이라는 이름이 되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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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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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쾌하지 않은 공포가 있을까? 여름 특수를 노린 상업성에 휘둘린 살인귀의 등장으로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여 나가는 공포물에 식상한 독자들은, ‘오츠 이치’의 「ZOO」처럼 공포의 근원을 해부하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다려 왔을 것이다. 「ZOO」가 그려내는 공포는 불편 내지는 불쾌하지 않은 공포다. 마치 인간이라는 지층의 가장 최 하단에 자리한 ‘공포’라는 근원을 알게 쉽게 차곡차곡 해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짧은 분량의 총 10편에 이르는 단편들이 하나 같이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연결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지?’ 저자는 마치 SF에 버금가는 놀라운 상상력 하나로 치밀한 사건 전개를 이룩해 내고 있다. ‘이토 준지’의 만화를 소설로 그려내면 이런 느낌일까? 그러나 이토 준지의 만화가 소름이 끼치는 잔인함과 서늘한 공포를 제공한다면, 오츠 이치의 작품들은 무서운 공포 끝에 애잔함 내지는 묘하게 전율 시키는 서글픔까지 함께 선사하고 있다. 서글픈 자아의 충돌, 인간 내면에 자리하는 악의 은밀한 고발, 그래서 참혹하도록 슬픈 공포 소설이다.

  거의 모든 작품이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몇 편의 후기를 남길까 한다. 첫 번째 읽었던 ‘SEVEN ROOMS’는 마치 영화 ‘쏘우’를 그대로 보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졌다. 이유 없는 납치와 감금.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의 울타리. 마지막 엔딩이 이토록 인상적이었던 공포 소설은 처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듯하다. ‘ZOO’ 에 담겨진 내면의 악마성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하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인간 그 자체라는 명제를 가장 명확하게 충족시켜 주고 있다. 다중인격의 변질된 악마성이 철저히 고발되고 있는 그 소설에서는 무엇보다 가장 큰 공포감을 맛보았던 것 같다.

  「ZOO」에 등장하는 10편의 소설들 대부분이 비슷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 세상과의 차별이 주는 외로움과 고독이다. ‘카자리와 요코’에서 요코는 어머니로부터 지독한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쌍둥이 여동생 카자리와의 차별이,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외로움의 공포를 자극한다. 극단의 상황에 처한 요코의 말투가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차가운 숲의 하얀 집’의 주인공 역시 백모로부터 거친 학대를 당하며 마구간에서 생활하며 세상과 벽을 쌓게 되고 외로움의 공포가 세상과의 단절, 자아와의 단절까지 초래하게 된다.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니컬한 세상 바라보기 역시 철저히 자기중심 적인 현 사회에 대한 고립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ZOO」에서는, 가슴 아플 만큼 애잔함이 있는가 하면, 철저히 이성적인 공포도 존재한다. 추리 소설 형식을 빌려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소설, 그리고 형식이 파괴된 소설에서 맛 볼 수 있는 신선함과 놀라운 반전까지. 일반적인 소설들과는 달리 절대 뒷내용을 유추할 수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한 번 손에 쥐게 되면 절대 놓을 수 없는 흡입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집이다. ‘오츠 이치’의 모든 작품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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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7-2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다른 작품이 나온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mind0735 2007-07-2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기대되어요, 물만두님! ^^
 
내 안의 창의력을 깨우는 일곱가지 법칙
켄 로빈슨 지음, 유소영 옮김, 백령 감수 / 한길아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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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개개인의 시각은 천차만별로 나뉠 수 있다. 무엇을 인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인식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만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은 분명 자아의 발전에 크나큰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른바 ‘창의력’의 문제인데, 「내 안의 창의력을 깨우는 일곱가지 법칙」에서, 이 책의 저자 ‘켄 로빈슨’은 사고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학벌, 지연, 혹은 지나친 아케데미즘의 문제로 회사에 취직하기조차 쉽지 않은 요즘이다. 사실 취직자리는 남아돈다고 하는데, 왜 전 세계적으로 실업률은 점점 증가하고 있을까? 경기가 불황이라서? 과거에는 그렇게 드물던 박사님들이 넘쳐나서? 3명당 1명꼴로 대학을 졸업하고 있고, 대학원에서부터 유학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방 끈은 점점 길어지고 있는데, 그 넘쳐나는 인재들이 갈 곳이 없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의 실마리는 간단하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걸어가서 남들과 똑같은 골인 지점을 향하게 되는 획일화된 교육제도와 본인의 의사결정이 결여된 사회적인 압박감이 작용한 탓이다.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본인의 창의적 능력은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흐르는 땀과 뜨겁게 돌고 있는 몸속의 혈류를 무시한 채 그저 남들과 똑같아야 한다는 관념이 강박으로 작용하여 저마다가 동일한 미래를 향해 뻗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동감되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비록 저자는 영국인이지만, 현 교육제도의 문제는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할 것이고, 성공이란 허울에 눈이 멀어 개인의 창조적인 능력을 계발하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으로 스스로의 미래까지 부모에게 맡겨야 하는 요즘 세대 아이들이 불연 듯 애처롭게 보인다.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몰살 시킨 채, 오직 대학 졸업장만을 위하여 기계 라인보다 더욱 획일적으로,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있다. 감성은 한 사람의 인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감각인데, 감성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기능으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모든 학문은 서로 소통하고 있다. 예술을 알아야만 과학적인 사고력이 배양되고, 수학을 잘하면 또 다른 감각기관이 더욱 예술적으로 작용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즐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개인의 창의력이 말살되는 시점에서부터, 역사와 사회,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시야가 확 트일 듯한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 낼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긴다.  

  창의력이란 무엇일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백지 상태로 머물러 있던 스스로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또 다른 자아를 키워내는 일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찾아서 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며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창의력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학생에서부터 기업인, 어느 정도 성공의 열망을 꿈꾸는 성인들까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창조적인 시야로 두뇌 속에 잠재하고 있는 본인의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시대의 새로운 천재로 거듭날 것이다. 과거의 그들이 걸었던 행로를 똑같이 걷는 것은 어차피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결과일 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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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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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썼던 일기장을 읽어보며 문득 소스라치게 놀랐던 경험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게 짝이 없는 ‘살의’를 그 어렸던 시절의 내가, 아무렇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휘갈겨 쓴 글씨로 누군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라는 끔찍하고 잔인한 감정을 품을 수 있었던 모습이 지금은 전혀 기억 나지조차 않지만, 당시의 나로썬 온 몸을 다 바쳐 저항하고픈 고통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혹은 ‘누군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이러한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문제가 많은 가정일수록 가족 중 누군가의 부재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가령 폭력이나 강간에 시달리는 어린 여학생의 경우, 아동 시기에 자리 잡은 증오의 표출은 숨죽인 채 참는 수밖에 달리 해결 방법이 없기에 차라리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가 자연 사라지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도저히 가정사에 대한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없어 참으며 빈 방에 웅크리고 있었던 기억. 누구나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열 세 살의 같은 반 두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평범하거나 혹은 평범한 척 가장하는 ‘아오이’와 묘한 고딕풍의 차가운 소녀 ‘시즈카’. 어떠한 계기로 두 소녀는 친구가 되어 살인의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다. 여린 소녀 둘이서 겪는 질풍노도의 공황상태는 그 시절에만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특권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은 바꾸어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자신을 아껴주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자 자기 방어의 수단이다.

  어렸을 적, 황폐한 어른들의 공격으로 고통을 안게 되는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 섬뜩한 면도 있었고, 같은 동질감을 느꼈던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성장 소설과 미스터리 소설의 어정쩡한 경계에 머물러있다. 강한 임팩트가 빠진 싱거운 숭늉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서 후반에 등장하는 줄거리가 「지푸라기 여자」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정말 이 책에 등장해서 놀라웠다. ‘카트린 아를레’에 대한 ‘사쿠라바 가즈키’의 오마주? 실질적으로 책의 제목과 줄거리까지 인용하여 등장시켰다는 점을 보면 작가도 그 책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던 것이 분명하다.

  잠시 사족을 붙이자면, 나 역시 「지푸라기 여자」를 굉장히 강렬하게 읽었다. 오래되어 노랗게 빛바랜 낡은 문고본으로 읽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지금이야 워낙 흔한 줄거리가 되어버렸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서스펜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생각난 김에 조만간 다시 한번 그 책을 읽어보며 비교를 해봐야겠다.

  여하튼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소녀들이 느끼는 성장기의 아픔과 고통들을 또렷하게 전해주는 잔혹 동화 같은 소설이다. 아픔을 털어 놓을 상대가 없어 혼자 괴로워하고, 친구들과의 사교에 문제가 생겨 쩔쩔 매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기를 원하는 평범한 열 세 살의 소녀. 그러나 여러분 들 중 누구라도 고민이나 아픔은 혼자 묻어둔 채 동굴 속을 갖혀 있지 않기를 바란다. 혼자 끙끙 앓다보면,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증오하는 상대를 향한 살의로 빚어진 살인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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