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의 은밀한 거래 - The Secret World Of FIFA
앤드류 제닝스 지음, 조건호.최보윤 옮김 / 파프리카(교문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축구를 가리켜 지구상에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전쟁이라고들 한다. 총 22명의 선수들이 파릇한 잔디밭 위해서 공 하나를 가지고 경합하는 이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는 지구촌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어느 경기장 앞에서 환희에 들 떠 있을 것이다. 열광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광신적인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축구는 하나의 거대한 사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FIFA라는 축구의 핵이 자리하고 있다.

  어디를 가나 돈 냄새에 밝은 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축구를 사업의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바람직한 선택인가. 총질이나 피 튀기는 살인을 하지 않고서도 떳떳하게 남의 주머니에서 거대 자금을 굴릴 수 있는 돈 줄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셈이니, 양복 입은 넥타이 부대 마피아가 스위에서 둥지를 틀기엔 최적의 장소다.

  ‘블래터의 위원들은 진짜 마피아다. 부패로 가득 차 있고, 구단 내부의 음모와 마약, 스테로이드 거래, 자금 세탁, 도박 등으로 뒤얽혀 있다. 이것이 FIFA의 병이다. - 리비아 일간지 「알 자프 알 아크다」’

  FIFA회장 제프 블래터와 그의 수족들에 대해 이렇게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담은 기사가 있었다. 이들은 총질만 안 했다 뿐이지, 돈이 될 수 있는 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입으로 떳떳하고 밟힌 블래터가 성공을 위해 아벨란제에게 아첨해야만 했고, 다슬러에게 빌붙었으며, 안드레 겔피와 음모를 꾸며야 했던 과거. 그리고 그를 따른 충신들 잭 워너, 척 블레이저와 연합하여 스폰서를 기획하고 돈 세탁을 철저하게 (비록 많은 이들에게 들키기는 했지만) 함구하며 유지하려고 했던 번지르르한 회장 자리가 참으로 씁쓸하다. 그는 어디까지나 잔인한 독재자와 결탁하야 순수하게 축구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유혈을 서슴지 않았던 또 다른 독재자일 뿐이었다.

  작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을 보면서 한국 선수들이 유럽의 심판들에게 부당한 오류를 당하는 모습을 보며 캐스터와 해설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스포츠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데, 지금 판정은 누가 봐도 조작으로 보여 지는군요.’ 아무리 눈에 빤히 보이는 연극이라도 공중파 방송에서 이런 멘트가 나올 정도면 그 문제는 생각의 범위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겠다. 과거, 동계 올림픽 중계 사건에 대해 언급을 하는 이유는 축구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스포츠에서 횡횡하게 정치와 사업에 의한 부정부패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2006년 월드컵은 또 어떠한가? 한국 vs 스위스 경기는 참으로 많은 뒷담화를 낳았는데, 이해 못할 부심과 주심의 판정에 대해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터져 나왔던 말이 ‘FIFA회장이 스위스 사람이잖아.’라는 자조 섞인 말이었다. 한국 경기뿐만 아니라 모든 월드컵, A매치를 보다 보면 이해 못할 수준을 넘어선 심판의 행동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어딘지 모를 찜찜한 판정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게 된다. 돈 냄새가 절로 폴폴 풍기며, 이 경기에서 승리한 팀으로 인해 득을 볼 나라와 관계자들에 대한 계산이 먼저 나오게 되는 것이다.

  「FIFA의 은밀한 거래」의 작가이자 현직 스포츠 기자 ‘앤드류 제닝스’는 참으로 치밀하고 영악하다. 축구라면 환장하는 나라,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 기쁨 충만한 훌리건들이 설쳐대는 영국의 기자라서 그런가.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파헤칠 때가지 파헤쳐서 피파 조직 위원들의 위선을 뿌리 뽑자는 집념이 느껴진다. 블래터가 제닝스를 가르켜 ‘당신 지금 소설을 쓰고 있네!’라는 표현을 했는데, 본서는 정말이지 논픽션이 아닌 픽션 같다. 실제 발생하고 있는 사실을 지우고 읽는다면, 여느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이 따로 없다. 국제축구연맹의 점잖고 돈 많은 제프 플래터라는 마피아 두목과 그의 심복 똘마니들은 오늘도 각본 없는 영화를 찍고 있겠지. 그리고 그들의 비리를 파헤치고자 고군분투하는 집념의 사나이들이 바짝 뒤를 쫓고 있을 것이다.

  이 책, 「Foul! The Secret World Of FIFA」가 2006년도에 출간 되었는데, 제프 블래터가 2007년에 또다시(!!)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참으로 이해 못할 아이러니다. 아돌프 히틀러께서 아마 10년 정도 가장 높은 위치에서 독재자로서의 능력을 멋지게 발휘해주셨는데, 제프 블래터씨 역시 히틀러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와 다르게 축구라는 ‘합법적인 전쟁’을.

뇌물 비리를 전면 부인하던 제프 블래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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